* 19번째 술일기를 빼먹어서 오늘 올립니다.
* 어제 페이퍼를 열심히 쓴 덕분에, 그리고 여러분께서 추천과 답글을 많이 날려주신 덕분에 저 13위 했습니다. 이게 얼마만인지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지기님이 보내준 메일을 보니 "오랜만에 순위에 든 반가운 얼굴도 있다"고 하셨는데, 전 그게 저라고 우기렵니다. 감사합니다.
일시: 2월 18일(금)
마신 양: 소주1병--> 집에 가서 광에 있는 양주 반병 작살냄
‘사는 게 다 그렇지’라고들 해도,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삶을 산다. 걔중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내 선배 하나도 그런 분 중 하나다.
어려서부터 난 형보다는 누나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누나 말고!). 대학에 가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써클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동기들보다 선배 누나들과 더 친했을 정도고, 졸업 후에도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다 누나들이다. 그런 내가 딱 한명 친하게 지내는 선배 형이 있는데, 그가 바로 금요일날 만났던 만기 형이다(가명). 왜 그런지 생각을 해보니까 만기형의 유머가 출중하고, 사람이 착해서 그랬던 것 같다.
만기 형은 형수님과 결혼을 했다. 당연한 말 같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을 의사로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가졌던 부모님이 형수님 집안의 빈곤함을 들어 결혼을 반대했던 것. 그래도 만기형은 부모님께 빌고 설득한 끝에 결혼을 하셨는데, 문제는 둘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거였다. 결혼한 게 93년인데 2003년까지 아이가 없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을까. ‘아직도 애 없냐?’는 철없는 질문에 “우린 불임 부부잖아”라고 웃으며 대답해주는 만기형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형수님이 애 없이 지낸 건 아니다. 형수님의 오빠, 그러니까 만기형의 매형 되는 분이 이혼을 해서 만기형 집에 붙어사는데, 그 아이를 봐주고 있었던 것. 더 어이없는 일은 이혼을 앞두고 별거를 하는 상황에서 일을 벌여 둘째 아이를 가진 거였다. 결국 그 아이는 태어났고, 돌을 지난 후 이혼이 되어 아빠 품에 안겨졌다. 졸지에 형수님은 애 둘을 떠맡아야 했다. 자기는 애를 못낳아서 속상해 죽겠는데, 자기 애도 아닌 아이를 둘이나 봐야 하는 형수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더구나 매형 스타일이 애는 나몰라라 하고 맨날 술먹고 늦게 들어오고, 심지어 친구들까지 불러들이는 판인데. 내가 만기형 같았다면 짜증이 났겠지만, 만기형은 늘 웃는 표정이었다. 이런 말을 하긴 했다.
“별거 하면서 애는 또 왜낳는데?”
작년 4월 1일날, 무슨 거짓말을 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차에 만기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딸을 낳았단다. 에이, 만우절인 거 알아요, 라고 했더니 진짜란다. 난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결혼 후 11년만의 경사인데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쯤되면 매형 되는 분도 뭔가 조치를 취해줘야 할텐데, 그는 여전히 나몰라라 그집에서 딩굴딩굴 산다. 갓난애기를 다섯 살, 여덟살짜리 남자애 둘과 함께 돌봐야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삭신이 쑤시는 일이다.
만기형은 다음달 3월에 돌잔치를 한다며 날 초대했다.
“애 셋 보느라 형수님이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으니까 담담하게 이러신다.
“당연히 힘들어 하지! 그래도 어떡해. 매형의 결혼 비젼이 전혀 안보이는데”
애를 낳아 놨으면 돌보기라도 할 일이지, 여동생에게 맡기고 모른체하다니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닐까. 나 같으면 진작에 싸우고 내쫓았을테지만, 착한 만기형은 계속 이용만 당한다. 사람이 너무 착하면 그걸 미안해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만 하려는 게 요즘의 세태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