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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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부분의 문과생이 그렇듯 그 대단한 유시민 작가님도 수학과 과학, 특히 수학이 안되서 문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문과는 과학과 수학이 잘 안맞기도 하고 선택의 시기인 이때 다소 버림받은 느낌이 들어 과학 수학을 오래도록 거부한다.(공부 잘하는 문과생도 대개 수학이 어려워 문과를 간다고 하지 사회, 영어, 국어 등이 너무 좋아서 간다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과생도 그렇다. 그들도 과학 수학이 정말 좋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되서 간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여튼 이런 유시민도 결국 과학 책을 보고 만다. 상당수의 문과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고교시절 보고 안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지적 욕구와 개방성은 아무래도 이걸 허락치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인문학이 과학에 미친 영향보다는 과학이 인문학에 미친 영향이 훨씬 더 지대하며 이건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 조건으로 필요한데 이런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생존기계로 진화의 부산물로 대단한 지능과 그로 인해 유전자의 지시를 넘어서는 행위가 가능하다. 이것을 설명하는게 진화론이나 진화심리학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는 뇌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뇌의 원리를 파악하는게 뇌과학이며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 행성과 우주가 생겨난 원리, 그리고 우주가 언젠가 사라짐을 모두 설명하는게 과학이다. 이것에 대한 근본 이해가 없는 인문학은 다소 공허하다.

 그래서 유작가는 이번 책에서 인문학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며 그렇기에 인문학이 사라지는 일은 없겠으나 과학이 새로 찾아내고 발견한 사실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고, 과학과 소통 교류를 거부한다면 대학의 인문학은 그 존재 근거를 잃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하에 유작가는 자신이 읽은 과학책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과학책을 읽었는데 어쩐지 엠비씨 뉴스외전에서 뜬금없이 엔트로피로 정치를 비유했는데 평소의 이런 내공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인문학을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를 책에서 버무려나간다. 여러 부분이 다 재밌었지만 진화론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관점이 인상깊었다. 좌파와 우파는 모두 진화론을 오염시켰는데 우파는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오용하며 이용했고 좌파는 이런 점의 비윤리성 때문에 진화론을 배격했다. 우파는 경쟁을 옹호하며 인간사회를 생존경쟁의 장으로 파악하고 격차와 불평등이 발전의 원동력이자 피할수 없는 것이며 그 결과를 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적 약자를 불우히 여기기는 하나 승자와 대등한 존재로 보진 않는다. 반면 좌파는 사회적 약자와 착취당하는 자를 만드는 구조를 불순히 여기고 이들을 대등한 존재로 보며 다양한 가치를 옹호하고 불평등을 줄이려고 한다. 

 이런 우파에게 진화론은 사회적 다윈주의로 오용되기 매우 적합했다. 스펜서의 적자생존이나 골던의 우생학이 그러했다. 사회다윈주의는 사회를 개선한다는 미명하에 열등한 개체를 제거하고자 하는 우생학과 결합한다. 그래서 불과 100여년 전 유럽이나 미국에선 장애인에 대한 불임수술이 자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전체주의와 손을 잡아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고 만다. 이런 우파의 자행으로 인해 좌파는 진화론을 아예 배격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론은 도덕과는 무관하며 단순히 어느 종과 어느 개체가 더 살아 남아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더 잘 전파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다음으로 재밌던 부분은 화학 부분이다. 화학은 물질의 조성과 구조, 성질, 관계,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들은 상당히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서로 결합하는데 그로 인해 다양한 분자가 생겨나고 여러 물질이 생겨나고 생물이 존재하게 된다. 원자의 결합은 둘 이상의 원자가 서로 전자를 공유하는 공유결합과 전자를 방출하거나 흡수해 양이온, 음이온이 된 원자들이 서로 다른 극이 되어 끌어당겨 결합하는 이온결합이 있다. 공유결합은 대개 분자화합물이 부드러워 액체나 기체가 많은 반면 이온 결합은 고체인 경우가 많다. 

 물은 산소와 수소의 결합인데 산소가 수소와 공유하는 전자를 자기 쪽으로 살짝 끌어 당기게 된다. 그래서 물은 전체가 전기적으로 중성이나 부분적으로는 산소쪽은 음전하, 수소쪽은 양전하를 띠게 되어 극성분자가 된다. 그렇기에 물과 닿는 다른 물질들은 이 극성에 의해 이리저리 찢겨나가게 되어, 쉬운 말로 물에 녹게 된다. 그래서 물은 생명의 요람이 되었고 다양한 음료수가 될 수 있으며 세척 기능을 갖는다. 

 전자를 좀 더 살펴보면 개개의 전자는 음극으로 서로 같이 붙어 있기 어렵다. 하지만 자전하는 방향인 스핀이 서로 반대이면 두 개 가진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전자들은 같은 극임에도 원자의 궤도에 쌍으로 붙어 있을 수 있게 된다. 원소 주기율표의 한 주기는 대개 전자껍질 한 층에 해당한다. 전자껍질 한 층에 여러 개의 오비탈이 있는데 1층엔 오비탈이 한 개여서 전자가 두 개만 있다. 2층과 3층은 전자가 8개, 4층과 5층은 전자가 18개 있으며 6층과 7층은 32개다. 원자는 최외각 층의 모자라거나 남는 전자를 어떻게든 처리하려 하며 이로 인해 결합이 발생한다. 

 예로 산소는 전자가 8개로 1층 2개 2층 6개로 2층에 2개 전자가 모자란다. 그래서 다른 산소 원자와 2층에 전자 두개를 공유해 산소분자를 이룬다. 그래서 자연상태에서 산소는 거의 분자로만 존재한다. 원소상태론 태생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수소도 그렇다. 수소는 전자가 1층에 1개이니  1개가 모자란다. 그래서 같은 수소와 전자를 공유해 수소 분자로 대개 존재하게 된다. 

 탄소는 양성자가 6개로 전자가 6개다. 그래서 1층에 두 개 2층에 4개로 4개의 전자가 부족하다. 하자민 탄소는 전자가 원자핵과 비교적 가까이 있어 전자를 탐하면서도 잘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DNA처럼 때로는 쪼개져야 하나 안정성도 상당히 유지해야하는 물질의 재료로 걸맞다. 그래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탄소기반이다. 여기에 탄소는 여러모로 다른 것들이 붙기에 좋아 상당히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생명에 더욱 적합한 것이다. 

 책에는 작가 유시민이 과학책을 읽으며 인문학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얻은 여러 통찰이 나오며 그가 추천해주는 과학책도 많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나도 과학책을 좀 봤다고 생각하는데 유작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 같다. 이걸 책 말미에 목록으로 정리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유시민의 책 중 특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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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부 - 인공지능 시대, 돈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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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10년이 안된 것 같은데 뜬금없이 미국의 골드만 삭스가 미래 한국이 세계 경제규모 2위를 차지할 거란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중국도 인도도 아닌 한국이 2위라 무척 의아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말인데 당시만 해도 아직은 연간 출생아 수 40만을 유지하면서 출산률이 1점대를 찍는 상황이었다. 보고서는 아마도 통일이 빠른 시간 안에 잘 되어 남한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자본이 결합하고, 섬의 한계를 벗어나 대륙인 중국과 러시아와 결합하여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누리게 되는 통일 강소국 한국을 상상하고 작성된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통일은 쉽지 않다. 북한의 2인자 김여정은 한국을 거의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 불렀다. 그동안 북한이 기분 좋으면 남측 나쁘면 남조선이라 칭하니 약간 무시하는 듯했는데 이젠 대놓고 대한민국이라 부르니 다소 정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여기에 출생아 수는 40만 수가 무너진 후 2010년대 중반 불과 3년만에 30만선도 무너졌고 곧 10만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주 성장 발판이었던 거대한 중국 시장은 미중 갈등 속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리 외교로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의 형국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쌓아 놓은 돈이나 충분한 복지 체계도 없는데 OECD최고의 노인 빈곤률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벌써 국민 연금의 고갈 걱정을 하고 있다. 돈은 없는 상태에서 무자비한 사회적 경쟁과 부실한 사회 안전망으로 기성세대는 교육 전쟁으로 자식 투자에, 그리고 복지 미비로 부모 부양에 재산을 모두 써버렸다. 이들은 수십년 내 이렇다 할 자산 없이 모두 은퇴할 것이고 지금보다도 훨씬 빈약한 명맥만 유지하는 국민 연금이 그들의 썩은 생명 동아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몇 십년 먼저 겪은 일본은 우리의 반면교사임과 동시에 우리보다 상황이 낫다. 일본 정치인들은 그래도 한국보다 몇 배는 나아 자신들의 인구 구조를 미리 살피고 고령화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적 연금과 사적 연금 체계를 마련했고, 오랜 기간 세계 2위의 황금 경제를 유지하면서 중산층이 워낙 두터웠기에 사적 자산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이 지난 30년간 워낙 크게 폭락했고, 평균수명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면서 2016년 노인 200만이 파산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일본은 그래도 건실하다. 버블경제와 인터넷 전환기에  자신들은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도 많은 해외투자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형편없는 경제상황 속에서도 매년 해외에서 국채나 여러 채권 및 주식배당금 및 각종 투자이익으로 무려 200조의 자산이 국내로 들어온다. 여기에 일본은 과거의 영화에서 얻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로 인해 통화도 안정적인 편이다. 그리고 아직 경제 규모도 세계 3위로 막강한 내수시장을 자랑한다. 여러모로 우리에 비할바가 아닌 것이다.

 책은 이런 암울한 상황에 대한 답을 사회적으로 찾기 보다는 철저히 개인에게 돌린다. 이게 이 책의 마음에 안드는 점인데 그래도 개인적 자구책을 무시할 순 없다. 책이 제시하는 답은 주식인데 다른 여러 나라의 주식도 아닌 바로 미국의 주식이다. 이유는 4차 산업혁명 미중 전쟁 상황 속에도 미국은 초기술격차를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에서 이미 벌려 놓았고 중국을 기술 경쟁에서 철저히 국제적으로 배제시켜 놓았기에 향후 100년 동안에도 1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책은 미국의 강력한 기술 기업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기업을 추천한다. 이들은 이미 미래의 먹거리인 데이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기술에서도 다른 기업이 따라올 수 없고, 클라우드 시장 또한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다른 나라의 막강한 기업들도 이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인 부분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미 비싼 이들의 주식은 미래의 값어치에 비하면 아직도 싼 편이며 그렇기에 충분히 비축하여 미래 암울한 한국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은 1등 주식을 사고 배당을 받으면 다시 그 돈으로 1등 주식을 산다고 하는데 한국인 역시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냉정하게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반도체의 설계 및 비메모리 부분을 하고 있지 못하기에 한국의 반도체는 냉정히 말해 소작농에 불과하다. 그리고 배터리 역시 아직은 최고 수준이지만 차세대 제품은 전고체 부분에서의 경쟁력이 부족하고 중국의 교체 방식과 테슬라의 단순 배터리에 대응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갖는다. 물론 이 예상과 다르게 현재 국내 배터리 주식은 매우 잘 나가고 있다. 대표적 인게 에코프로다. 

 책을 읽으면서 암울함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한국의 암울한 미래 전망이 뭐하나 틀린게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무자비한 교육경쟁을 배제하고, 국민 행복과 인재양성을 위해 교육개혁을 해야 하며, 여력이 남아있을 때 증세를 통해 두터운 복지체계를 구축하고, 지방을 양성해 인구를 분산시켜 더욱 인구를 늘려야 하며, 북한과의 평화정책을 통해 통일까진 아니더라도 군사적 긴장을 풀고 서로 간 왕래 및 평화교류를 통해 지정학적 약점을 극복해야하는데 말이다. 현재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게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암울하다. 국가가 하는 것이 없어 각자도생을 해야하니 그 또한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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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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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리우를 알게 된 건 2018년 종이호랑이를 보고 나서다. 책을 보고 테드 창보다 더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과학소설을 쓴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신간을 발견하게 되어 재미있게 읽었다. 덥고 축 처지는 여름 날엔 역시 소설이 제격이란 생각이 든다. 켄 리우는 중국계이면서도 최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속세 국가 미국에 살다 보니 양자의 정체성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을 쓴다. 종이호랑이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그랬다.

 동북아시아의 과거, 한국, 일본 그리고 주로 중국을 그리고 첨단과학기술을 다루는 미래가 시공간배경이자 소재로 다뤄지는데 그러면서도 문학의 핵심인 인간의 고민과 삶이 핵심으로 그려져 작품에 재미와 더불어 상당한 여운이 남는다. 

 제목은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지만 책은 단편 모음집이다. 전작 종이호랑이는 종이호랑이가 대표제목임에도 좀 인상적이지 못했고, 한편에 불과했지만 이번 모음집에서는 신들을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가 연작으로 3개가 실렸고, 무게중심도 제법 잡혀있어 훨씬 타이틀로 그럴 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싱귤레러티를 맞은 초인공지능인데 인간이 순수하게 창조한 것은 아닌 뛰어난 인간 과학자나 기술자의 의식을 업로드한 인공지능이다. 이들은 그들의 재능을 이익측면에서 아쉬워한 기업에 의해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자신의 의사에도 반해 이러 되었다. 이런 신들은 처음엔 기업의 이익에 봉사하지만 차츰 자신들의 위치와 의식을 알게 되고 세상을 장악해 붕괴시킨다. 세상은 이들로 인해 거의 붕괴하여 상당히 후퇴하게 되는데 인류의 미래가 물질적 상황에서 정치, 사회, 공동체, 기술문명이 붕괴한 자연 인간으로 남을지 아니면 이들과 같이 무한한 포스트 휴먼으로 가상세계에서 한계없이 살아가게 될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인간은 이런 선택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며 켄 리우는 종이호랑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단편을 구성한 적이 있다.

 조선을 다루는 단편도 있는데 임진왜란으로 명의 만력제가 이여송을 조선으로 파병하여 구원토록 하는 내용이다. 물론 만력제는 명 역사상 제정신이 아니었고 제위기간 내내 직무유기에 가까운 생활을 한 황제지만 소설에선 상당히 영민하고 철학적인 젊은 황제로 나온다. 그는 명이 영락제 시절 세계를 서구에 앞서 정벌할 수 있었음에도 정신문명을 우선시 하여 이를 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만력제의 실상을 알고 있는지라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설사 그가 실제 영민하였다하더라도 속세의 제국을 이루고 있던 명제국이 아무리 도교 전통을 갖고 있더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상당한 의문이다. 뭐 소설은 소설이다.

 또 다른 인상적인 작품은 명청 교체기 시절 양주를 다룬 내용이다. 이미 북경이 함락되고 중국의 거대도시 양주가 만주족의 공세에 위기를 맞는다. 결국 함락되는데 양주의 유명한 기녀 하나가 기지를 발휘해 최대한 사람을 구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명청 교체기 청은 과거의 원과 마찬가지로 정복과정에서 상당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중국은 한족 중심 국가임에도 정복왕조들을 모두 중국의 정식 역사로 인정하면서도 못 마땅해하는 모순적 태도를 갖고 있는데 그런 면이 이 소설에도 나오는 것 같다. 청은 만주족 국가이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지금의 중국의 광대한 영토를 완성한 국가로 명이 만약 근대화 이전 중국의 마지막 국가였다면 지금의 티벳이나 신장 위구르, 만주지역은 모두 다른 독립 국가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복과정에서 청이 학살한 한족은 수천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양면성이 현대 중국 한족으로 하여금 이들에 대한 태도를 모호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켄 리우의 소설은 재미난 소재로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 외에도 간혹 매우 좋은 문장이 나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의 다른 책이 종이호랑이 이후 알게 모르게 국내에 더 발간되었다. 여름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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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7-10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단편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용을 보면 제가 주말에 극장에서 본 이번 <미션 임파서블>과 상당히 유사한 것 같습니다. ^^
켄 리우 소설 참 좋죠. ^^
테드 창과 비슷한 듯 좀 다른 듯 합니다. ^^

닷슈 2023-07-10 22:52   좋아요 1 | URL
미션임파서블 기대됩니다. 편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도 악당들 스케일이 커지더군요. 나라나 조직을 공격하는 수준에서 어느 새 세계가 타켓이 되었습니다.

패스파인더 2023-07-12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때가... 재밌게 봤는데 이 책도 기대가 됩니다. 주문했어요!

닷슈 2023-07-12 23:50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좋은 독서가 될겁니다
 
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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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처럼 이 책은 조선의 미술품에 대한 책이며, 진경산수화를 그려 사실상 조선의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연 정선 시대 이후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즉, 작품들이 모두 조선 후기라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품 자체에도 주목하지만 그림이 등장한 이유나, 민중들의 삶, 작가의 상황과 당대의 정치적 상황도 모두 다루어 책에 입체적 의미를 더했다. 

 그래서 화가는 주로 김홍도, 정선, 신윤복이 주로 등장한다. 김홍도는 그림을 그릴 때 인물과 사물에 집중하기 위해 바닥이나, 벽, 창, 문을 좀처럼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다. 김홍도는 기록에 따르면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음악에도 천재였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김홍도가 그린 사람과 동물 그림은 리듬감이 풍부하다. 김홍도는 정조대의 사람으로 도화원에서만 거의 30여년을 일했다. 그는 중인신분이었는데 당대 중인의 신분 상승 분위기와 정조의 사랑으로 48세의 나이에 충청도 연풍현감으로 발령난다. 이는 좀 쉬고 오라는 정조의 배려였다. 김홍도는 매사냥을 나가는 관료의 모습으로 당시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만 초상화를 남길 수 있었는데 김홍도도 현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자신의 초상화를 남겼단 기록이 있다. 김홍도는 연풍현감을 지내다 탄했되어 물러났는데 바로 그해 복직하여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그린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그렸다. 그래서 저자는 이게 김홍도에게 일을 시키기 위한 일종의 작업이 아니었는지 의심한다.

 신윤복은 풍속화에 여인들을 무척 많이 남겼다. 기생이나 일반 여인네들의 삶을 상당히 자세히 그려 한때 국내에서 신윤복을 여성으로 상상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만큼 그는 여인들의 고단한 실존에 관심이 많았다. 신윤복의 부친은 신한평으로 그 또한 유명한 화가였다. 조선시대 중인은 계급과 직업을 세습하였는데 조선의 법도상 친인척은 같은 관청에서 상피하였다. 여기에 부친 신한평은 상당히 늦은 나이인 70이 넘어서도 도화원에서 근무하였기에 신윤복이 관청에 뒤늦게 진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여인을 많이 그렸으며 특히 길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무척 많이 그렸다. 

 정선은 진경산수 속 선비얼굴이 둘 이상 나오는 경우 대개 재미를 위해 한 명의 얼굴은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 구성하여 일부러 그려 넣지 않았다. 

 풍속화와 더불어 기록화도 당대 조선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장치다. 1719년은 기해년으로 숙종이 59세를 맞는 해였다. 당시 세자와 연잉군, 연령균은 숙종이 한 해 일찍 기로소에 들어가기를 청하여 기로잔치가 열렸다. 기로소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 문신이 들어가는 곳으로 관료사회에선 최고의 영예였다. 왕은 60세에 들어갔는데 숙종은 일 년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 왕이 60세를 넘기게 되는 것은 태조 이성계 이후 무려 300여년 만의 일로 상당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숙종은 아주 오래간만의 정실 왕비가 낳은 첫째 적장자로 상당한 정통성을 가진 오래간만의 임금이었다. 숙종이 일년 일찍 기로소에 들어간 것은 탁월한 판단이었는데 숙종이 바로 일 년후 승하하기 때문이다. 당시 숙종과 같이 기로소에 있던 기로신은 10명으로 당시 기로신들이 이 국가 경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것이 기해기사첩이다. 

 기로신이어도 건강상의 이유로 기로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요건에 해당되어도 왕의 미움을 받았다면 참여하지 못했으며 품계가 다소 미달하는 경우 품계를 올려주어 기로잔치에 참가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회에는 기로신의 자제들도 관직에 있다면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이 경우 기로신들의 영예는 더욱 배가 되었다. 왕의 베푼 연회가 끝나면 기로신들은 왕이 하사한 음식과 술을 갖고 돌아가 따로 사적연회를 열었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보다 편한 진정 즐기는 장소는 이곳이었을 것이다. 기로신들은 기념으로 자신의 초상화도 남겼는데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정권이 바뀌며 같이 기로잔치를 즐겼던 이들이 서로의 파벌에 따라 죽고 죽이는 사화를 겪고 마니 이 또한 슬픈 일이었다. 

 책 후반부에는 영조대의 기로잔치가 또 나오는데 숙종대와 여러 모로 차이가 있어 이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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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하는 학교 - 시스템사고를 통해 본 학교 복잡계 운영
피터 센게 외 지음, 한국복잡성교육연구회 옮김 / CIR(씨아이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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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는 학습이 이뤄지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학교가 학습으로 성장한 경우는 혁신교육 이전의 한국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인데, 대충 3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 수 있다. 

 우선 한국은 국가중심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상세한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제공하니 굳이 학교는 학생 교육을 위해 교육 방법과 내용을 만들기 위한 학습을 할 필요성이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강한 공교육 체제다. 미국을 비롯한 지자체가 강하고 공교육 체제가 약한 나라들은 교육 효과가 약한 학교가 수시로 폐교되고 지역의 요구로 생겨나기도 한다. 학교는 지역민의 강력한 요구와 이에 부응하고자 하는 교육장과 학교장의 필요성으로 인해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은 어느 지역이든 공립학교가 존재하고 공립교사를 배치하니 이럴 필요가 없다. 마지막은 행정업무 위주의 학교 내부구조다 오랜 기간 학생 학습보다는 상급기관에 의해 하달되는 공문 처리가 학교의 중심이었고, 이렇다 보니 교사집단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 학습하는 시간과 경험의 부족으로 자생력을 잃었다. 이렇다 보니 학습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했다. 교육은 학습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했고 국가 중심 교육은 변화하는 사회와 지역 및 학생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기에 학습은 지역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지역의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어 학교를 꾸준히 변하시키는 학습 뿐이다. 

 책 학습하는 학교는 학습으로 교육 효과성을 높여나가며 성장하는 학교가 갖춰야할 시스템 사고와 핵심 원리 5가지, 그리고 수많은 성공 사례로 가득한 책이다. 책이 거의 1000쪽에 달하고 번역이 좋지 못하며, 앞 부분의 이론적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긴 하나 뒷 부분이 대부분 미국의 사례로 한국의 상황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고 그나마도 대개 20년 전 사례라는게 이 책의 약점이다. 

 책에서 말하는 학습에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인간이다. 인간은 시스템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인간의 학습엔 리더십이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계속 변화하는 구조다. 시스템 구조가 피드백 되는 순간 자기 동력이 생겨나서 외부자극 없이도 스스로 작동하는 체계가 되는데 그래서 조직은 학습이 중요해진다. 

 저자는 학교가 학습해야 하는 이유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안전하게 학습할 장소로 학교는 여전히 미래 사회에도 필요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세계가 개선되려면 학교가 스스로 학습하여 그 효과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학교는 국가나 상급 기관의 명령이나 지시, 규율, 강제가 아닌 학습을 지향해야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고 창조성을 갖게 되며 이것이 바로 학습하는 학교가 된다. 

 시스템 내의 구성원들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바꾸려면 다섯 가지 학습 규율이 필요한데 이는 시스템 사고, 개인적 숙련, 정신 모델, 공유 비전, 팀 학습이다. 이 다섯 가지가 이뤄지고 지속되려면 학습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개인적 숙련은 자기 삶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와 인생에서 성취하고픈 비전에 대한 일관된 이미지를 개발하는 실천 방법이다. 어떤 직종이든 자신의 현재 모습을 평가하고 그 직종의 이상적 이미지를 파악하고 현재에서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꾸준한 실천을 한다면 개인적 숙련이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공유 비전은 공동 목적으로 구성원들이 함께 창조할 미래상, 전략, 원리, 실천 지침등을 함께 만들어 모두가 조직에 대해 헌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직을 개선하고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모두가 적극성을 가져야 하는데 서로 간의 상황과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같은 방향을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공유 비전은 이들 모두가 서로의 욕구와 목표를 이야기하고 합의를 통해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해나가며 공동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스스로가 합의한 비전인 만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헌신할 수 있게 된다. 

 정신 모델은 현실 세계를 명확하고 정직하게 정의하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학교의 주요 임무는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주제를 신중하고 생산적으로 토론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다소 번역이 이상하긴 하지만 정신 모델은 결국 현실의 문제점과 현실 그 자체를 정확하게 직시하게 도와주는 능력이다. 개인으로 따지만 메타인지나 자기성찰 능력정도가 될 것이다. 팀학습은 팀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집단의 상호규율, 대화와 숙련된 토론 기술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켜 총체적 변화와 실천을 일으키는 것이다. 학교 현장의 전문적 학습공동체 같은 것이 팀학습의 예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시스템 사고다. 시스템 사고는 시스템에 대한 사고다. 시스템 사고를 하게 되며 상호작용과 변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행동의 결과를 만드는 동력을 효과적으로 다루게 된다. 

 책의 뒷 부분은 언급한 것처럼 이런 다섯 가지 규율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실천한 미국의 구체적 사례와 관련된 책의 소개다. 인상적인 부분도 있지만 거의 20년 전 사례라 혁신학교가 일반화된 2020년대의 한국 교육 입장에서도 한 번쯤은 경험하거나 들어 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사례보다는 다섯 가지 규율과 시스템 사고에 대한 이해가 책에서 더 중요해 보이며 이것만 정리한 또 다른 피터 센게의 책을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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