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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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처럼 이 책은 조선의 미술품에 대한 책이며, 진경산수화를 그려 사실상 조선의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연 정선 시대 이후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즉, 작품들이 모두 조선 후기라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품 자체에도 주목하지만 그림이 등장한 이유나, 민중들의 삶, 작가의 상황과 당대의 정치적 상황도 모두 다루어 책에 입체적 의미를 더했다. 

 그래서 화가는 주로 김홍도, 정선, 신윤복이 주로 등장한다. 김홍도는 그림을 그릴 때 인물과 사물에 집중하기 위해 바닥이나, 벽, 창, 문을 좀처럼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다. 김홍도는 기록에 따르면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음악에도 천재였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김홍도가 그린 사람과 동물 그림은 리듬감이 풍부하다. 김홍도는 정조대의 사람으로 도화원에서만 거의 30여년을 일했다. 그는 중인신분이었는데 당대 중인의 신분 상승 분위기와 정조의 사랑으로 48세의 나이에 충청도 연풍현감으로 발령난다. 이는 좀 쉬고 오라는 정조의 배려였다. 김홍도는 매사냥을 나가는 관료의 모습으로 당시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만 초상화를 남길 수 있었는데 김홍도도 현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자신의 초상화를 남겼단 기록이 있다. 김홍도는 연풍현감을 지내다 탄했되어 물러났는데 바로 그해 복직하여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그린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그렸다. 그래서 저자는 이게 김홍도에게 일을 시키기 위한 일종의 작업이 아니었는지 의심한다.

 신윤복은 풍속화에 여인들을 무척 많이 남겼다. 기생이나 일반 여인네들의 삶을 상당히 자세히 그려 한때 국내에서 신윤복을 여성으로 상상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만큼 그는 여인들의 고단한 실존에 관심이 많았다. 신윤복의 부친은 신한평으로 그 또한 유명한 화가였다. 조선시대 중인은 계급과 직업을 세습하였는데 조선의 법도상 친인척은 같은 관청에서 상피하였다. 여기에 부친 신한평은 상당히 늦은 나이인 70이 넘어서도 도화원에서 근무하였기에 신윤복이 관청에 뒤늦게 진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여인을 많이 그렸으며 특히 길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무척 많이 그렸다. 

 정선은 진경산수 속 선비얼굴이 둘 이상 나오는 경우 대개 재미를 위해 한 명의 얼굴은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 구성하여 일부러 그려 넣지 않았다. 

 풍속화와 더불어 기록화도 당대 조선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장치다. 1719년은 기해년으로 숙종이 59세를 맞는 해였다. 당시 세자와 연잉군, 연령균은 숙종이 한 해 일찍 기로소에 들어가기를 청하여 기로잔치가 열렸다. 기로소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 문신이 들어가는 곳으로 관료사회에선 최고의 영예였다. 왕은 60세에 들어갔는데 숙종은 일 년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 왕이 60세를 넘기게 되는 것은 태조 이성계 이후 무려 300여년 만의 일로 상당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숙종은 아주 오래간만의 정실 왕비가 낳은 첫째 적장자로 상당한 정통성을 가진 오래간만의 임금이었다. 숙종이 일년 일찍 기로소에 들어간 것은 탁월한 판단이었는데 숙종이 바로 일 년후 승하하기 때문이다. 당시 숙종과 같이 기로소에 있던 기로신은 10명으로 당시 기로신들이 이 국가 경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것이 기해기사첩이다. 

 기로신이어도 건강상의 이유로 기로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요건에 해당되어도 왕의 미움을 받았다면 참여하지 못했으며 품계가 다소 미달하는 경우 품계를 올려주어 기로잔치에 참가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회에는 기로신의 자제들도 관직에 있다면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이 경우 기로신들의 영예는 더욱 배가 되었다. 왕의 베푼 연회가 끝나면 기로신들은 왕이 하사한 음식과 술을 갖고 돌아가 따로 사적연회를 열었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보다 편한 진정 즐기는 장소는 이곳이었을 것이다. 기로신들은 기념으로 자신의 초상화도 남겼는데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정권이 바뀌며 같이 기로잔치를 즐겼던 이들이 서로의 파벌에 따라 죽고 죽이는 사화를 겪고 마니 이 또한 슬픈 일이었다. 

 책 후반부에는 영조대의 기로잔치가 또 나오는데 숙종대와 여러 모로 차이가 있어 이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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