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이미지는 오랜 영화포스터다. 나홀로집에와 패밀리맨이다. 하나는 20년 하나는 30년 된 것이지만 난 지금도 크리스마스면 얘네들과 함께한다. 지금은 결혼했지만 아직 애들은 어리고 잠이 많은 아내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당일이던 일찍 자버린다. 그러니 할께 뭐가 있겠는가? 녀석들과 함께하는 수밖에. 크리스마스면 서울시내 주요거리는 걷기도 힘들정도로 인사인해가 된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면 이런 녀석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인산인해는 소수지만 그저 모아놨으니 많을 뿐 일 것이다. 물론 올해는 코로나로 그 소수가 더욱 작아질 것이라 믿는다. 


 얼마전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를 읽었다. 모지스 할머니를 알게 된 계기였다. 할머니는 아름다운 미국의 대자연에서 성장했다. 미국 역시 중위도에 나라의 대부분이 위치한 국가이니 사계절이 풍부하고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할머니가 자란 지역이 북부지역이다 보니 겨울의 색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실제로 할머니는 눈의 흰색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오래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며 인생의 역경을 겪은 굴곡진 사람의 평범한 인생이 주는 깊이가 이 책엔 있었다. 마치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초년생이 그린 것 같은 그림. 그러면서도 사람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고, 자연의 아름 다운 변화와 동물들, 사람들간의 관계와 살아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 좋은 그림들이 이 책에 가득했다. 원치 않게 오래살아가며 같이 살아온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했던 일들, 그리고 그것들을 담담히 말하는 할머니의 말에서 깊은 슬픔과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패밀리맨과 케빈을 다시 만나기전 또 다른 친구로 모지스 할머니를 보기로 했다. 검색해보니 모지스 할머니의 책은 두 개가 더 있었다.












 바로 "모지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였다. 책을 구매할 때 사실 두 권 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처럼 애나 모지스가 직접 쓴 글과 그림을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위의 두 책은 아쉽게도 원전을 가공한 제 2저작물이라 할만한 것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책은 할머니가 그린 그림 중 겨울,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부분을 짧게 추려내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물론 크리스마스에 볼만한 책이지만 얇고 상업성이 짙다)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는 미술학도인 저자가 미술사를 공부하며 우연히 발견한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그의 삶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곁들여 에세이처럼 구성한 책이다. 

 그런면에서 두 책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는 저자가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많이 써놓아 할머니의 삶을 객관적으로 알아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애나는 미국 뉴욕주 버몬트에서 태어났다. 지도를 찾아보니 캐나다와 인접할 만큼 미국에서 최북단 지역이다. 이러니 겨울이 길고 추울수 밖에. 애나는 유년의 기억을 그의 인생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을 그 시기를 상당히 많은 그림작품을 통해 강렬하고 자세히 그리고 재밌고 아련하게 표현했다. 아마도 자연과 가족, 친구 및 이웃과 함께 보낸 그 시절이 애나가 길고 힘든 시절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일 듯 하다. 애나의 그림 중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이 슈거링 오프인데 겨울에 단풍나무 수액으로 메이플 시럽을 만들어 먹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남북전쟁의 여파로 북부의 사람들은 남부의 사탕수수와 설탕을 사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메이플에 더 집중했음은 후문이다.   

 애나는 즐거운 유년을 보내다 12세 무렵 인근 집에 가정부로 들어간다. 다행히 애나는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한때 서로 숨기는 것이 없을 만큼 친했다고 할만큼 주인집 부부 및 자녀들과 친했다. 당시 미국도 살림이 넉넉친 않았는지 여자아이가 일정 나이가 되어 가계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다른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는 일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애나는 그 집에서 형편을 봐주었는지 그 집에 아이들과 함께 14세까진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무려 27세의 나이에 남편 토마스 모지스를 만나 결혼한다. 토마스는 당연히 연하였고, 애나는 당시로선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미국 남부로 향한다. 막 남북전쟁이 끝나 흑인이라는 노동력을 대거 북부에 빼앗긴 남부는 마치 서부개척시대처럼 기회의 땅이었다. 일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농장이 임대되었고 일한 만큼 벌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래서 애나와 토마스는 남부에 정착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아름다운 10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중 다섯이 죽었다. 이후 다섯 아이를 키우며 20여년을 그곳에서 살아가다 애나의 고향과 가까운 북부의 이글 브릿지로 이사한다. 그것은 오랜 농장일에 지친 애나의 향수병때문이었다. 그래서 애나는 아름다운 셰넌 도어 밸리에 조그만 다섯 무덤을 두고 왔다고 담담히 말한다. 애나는 젊을 적 무척 농장일 솜씨가 좋았는데 자신이 만든 토마토 통조림이 지역 대회에서 일등을 하여 부상으로 자동차를 받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글 브릿지로 이사하고 몇 년 후 아름다운 유년 시절을 만들어주었던 양친이 죽는다. 그리고 거기서 20년을 살다 40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 토마스가 협심증으로 죽는다. 모지스의 나이 67세의 일이다. 그리고 딸 애나가 결핵에 걸려 고향 버몬트 주로 다시 이사한다. 딸 애나는 관절염으로 더이상 자수를 할 수 없게 된 모지스 할머니에게 그림을 권유한 아이였다. 딸 애나는 모지스의 간호에도 몇년 후 죽는다. 그리고 그 남편마저 곧 사망해 모지스 할머니는 손자들을 돌보기 위해 그 지역에 더 거주한다. 

 이글브릿지로 다시 돌아온 것은 75세에 이르러서였다. 이글브릿지에서는 막내 아들 휴와 함께 살았다. 그림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린 그림을 지역 박람회나 자선바자회 등에 팔았는데 신통치가 않았다. 하지만 1938년 수집가 루이스 칼더가 약국에 걸린 모지스의 그림을 발견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뉴욕 에티엔 미술관의 소유주인 오토칼리어의 눈에 들자 할머니의 그림은 대중적 관심과 찬사를 받게 된다. 애나 모지스의 그림은 당시 대공황으로 신음하고, 농장을 떠나와 도시에서 살아가던 많은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들이 좋은 시절 걱정없던 시절 미국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함께 하며 살아오던 순간이 그 그림에 있었기 때문이다. 

 애나 모지스의 전국적 스타가 되었고, 연하장과 작품집에 인기를 끈다. 1946년 애나 모지스의 그림이 실린 크리스마스카드는 무려 6000만장이 팔린다. 1948년엔 모지스 할머니 10주년 회고록이 에티엔 미술관에서 열렸고 너무 오래살았는지 그리고 인생엔 항상 좋은 일만은 없는 일인지 1949년 막내아들 휴가 먼저 세상을 등진다. 1951년엔 다리가 불편했는지 단층주택으로 이사하고 딸 위노나와 함께 살아간다. 1952년엔 후원자 오토칼리어가 내 삶의 역사(이게 인생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책인듯 하다)라는 모지스의 회고록도 출간한다. 1958년 98세가 되자 딸 위노나도 사망한다. 새년도어 밸리에 두고 온 이름도 지어주지 못해준 다섯 아이들과 양친, 남편 토마스, 딸 애나와 막내아들 휴에 이어 딸 위노나를 먼저 보낸 것이다. 이 모든 죽음을 애나 모지스를 담담하게 회고록에 묘사했다. 

 101세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 해를 맞아서도 애나 모지스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생의 마지막 해에도 그의 작품이 있을 정도다. 페이퍼를 마무리하며 할머니의 인생과 글을 보는 내 마음을 돌아본다. 분명 이전에는 반응하지 않았을 글과 그림일 듯하다. 같은 것에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나이가 든 증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확실히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음을 생각하게 되고 변화했음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 케빈과 케이지가 차지 하던 자리 한켠을 내줄 정도로 애나 모지스의 인생과 그림은 내게 울림이 있었다. 매년 크리스마스에 보게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분들에게도 크리스마스에 볼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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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리커버 에디션)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전쟁은 인류 전체가 하나이고 같은 동종이며 같은 인격체이고 같은 생명체라는 분명한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망각시키는 수단이다. 전쟁과 동시에 적국의 모든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거나 다른 개체이자 증오의 대상으로 박멸시켜야할 존재로 전락한다. 그리고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적과의 전투로 수많은 전우의 죽음과 전쟁자체의 참상을 목격하고 스스로가 적으로부터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되므로 이런 인식이 더욱 강화된다.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적이 아군으로부터 당한 비인간적 공격을 문제시할수 있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인 그 무언가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인 커트 보니컷은 2차대전에 참전했고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독일 도시 드레스덴으로 끌려가 노역에 동원된다. 당시 연방군의 무차별 폭격에 시달리던 독일의 주요도시와는 다르게 드레스덴은 문화유산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폭격 역시 한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방심의 상태에서 일어난 드레스덴 폭격은 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포로였던 보니컷은 이렇다할 숙소도 없어 형편없던 도살장에서 작업장이자 쉼터였던 형편없던 도살장에 머물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설에 의하면 폭격이후의 도시는 마치 달의 표면과 같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전개방식은 매우 독특한데, 처음 읽을 때에는 작가가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순차적으로 소설로 구성하여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과 전쟁중 함께 있었던 것 같은 혹은 자신을 투영한 듯한 가상의 인물 빌리 필그림을 만들어 소설을 전개해나간다. 그리고 빌리 필그림이 진행해나가는 이 소설은 전쟁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소설은 빌리가 1967에 라디오에 출연하여 자신이 과거에 외계인에 납치되었고, 수년간 외계행성에서 생활했지만 그들이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 실제로는 몇백만분의 1초만 지구에 없었기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이 인지할수 없었으며 심지어 그 기간중 유명 여배우의 같이 납치되어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여튼 빌리는 이 납치사건 이후, 자신의 외도할순 없지만 시대를 살아가며 계속 자신의 과거 시간대로 이동하여 그 시절을 살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때론 길게 어쩔땐 짧게, 그리고 어느경우느 먼 과거로 어느 경우엔 약간의 과거로 가기도 한다. 

 그렇게 2차대전때의 빌리와 현재와 근접한 빌리, 그리고 현재의 빌리, 아주 어릴적의 빌리가 계속 나타난다. 그래서 이 책은 반전소설인 것 같기는 한데 과학소설 같은 느낌도 강하게 나타난다. 빌리를 납치한 외계인은 트랄파마도어인이다. 그들은 4차원 이상의 존재로 시간을 다룰수 있다. 빌리는 시간이동능력을 갖게 된 후, 그리고 트랄파마도어인의 영향을 받은 후로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뭐 그런 거지."라고. 트랄파마도어인들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마지막에 시공을 초월해 과거의 시간을 볼 수 있었던 것 처럼 언제든 과거의 순간을 볼 수도 거기에 들어가 생활할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어떤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 죽는다는건 일정 순간에 그 개체가 그져 상태가 나쁜 것이고 죽기전의 과거로 가서 그를 얼마든지 만나고 이야기하며 함께 지낼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걸 이해하고 어느정도 할수 있게된 빌리에게 죽음은 뭐 그런거지가 될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죽음에 대한 이런 장치를 보니 그것이 마치 컴퓨터의 영화파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지만 난 그걸 언제든 재생할수 있고, 볼수 있다. 그러면 그 영화에 끝에 주인공이 죽더라도 그는 죽는게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다시 재생해서 그의 삶을 보고 경험할수 있으니 말이다. 트랄파마도어인처럼 언제든지 그의 과거에 참여해 같이 생활할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빌리는 트랄파마도어인에게 처음 납치되었을때 왜 나라는 말을 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수많은 유인행성을 돌아다니며 왜, 어째서, 목적은 목표는 등처럼 항상 이유를 찾는 존재는 인간이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우주의 과거에서 마지막을 볼수 있는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모든 것인 그저 이유없이 정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정해진 것에 이유를 찾는 행동은 무척이나 무의미해진다. 네가 이유를 찾는 그것마저 정해진 행동이기 때문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이 과거에 들어가 생활을 참여해도 그건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도덕이나 윤리니 하는 것들도 무의미해진다. 그건 애초에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었고, 매우 어지럽고 나쁜 순간이지만 그것역시 그들이 쭉 나열해 동시에 총체적으로 경험할수 있는 시간의 단지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전체중 한 부분이 좀 이상하다고 해서 그걸 나쁘다고 하긴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빌리는 자유의지도 묻는다. 그런데 그것도 무의미하다. 모든게 정해졌는데 자유의지란것 역시 무의미해진다. 빌리가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정하는 모든 것들도 역시 사실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도 자유의지는 착각이라는 걸 암시하는 연구결과를 보여주는데 인간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기전 이미 무의식 차원에서 그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단지 무의식이 이미 결정을 한 아주 짧은 시간후 의식적으로 그것을 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사실상 없는 셈이 된다. 다만 무의식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평소 나의 생각과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할텐데 그런 부분에서 자유의지를 어느정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처럼 자유의지도 없이 그저 우주에서 정해진 시공간에서 정해진 수순의 일을 정확히 수행해내니 트랄파마도어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결국 '기계'에 불과하게 된다.

 빌리는 전쟁 후 아내 발렌시아와 결혼한다. 검안사였던 그는 돈이 많은 아버지를 둔 발렌시아를 실질적으로 공략한 셈인데 그녀는 무척 뚱뚱한 여자로 스스로도 자신이 결혼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빌리는 아내 발렌시아와 결혼하는 장면으로 돌아갔을때 자신의 결정이 정말 형편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40대 후반까지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 과거 자신의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서 선택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트랄파마도어인에겐 그건 그저 결정된 것이지만 이후의 모든 걸 알고, 변해서 인생을 조금더 높은 곳에서 보게된 자신이 보기에 과거의 결정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정도로 어리석고 부끄럽지 않을까나. 물론 빌리는 그것도 그저 결정된 것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이긴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소설의 주제가 뭐랄까 무척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전을 주제로 독특하고 재밌는 과학 소설을 쓴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과학적인 부분을 들여와 전쟁의 참상을 강조하면서도 외계인의 시각을 빌어 세월의 힘으로 그것 역시 인간사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관조하게되는 부분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이 책의 가치는 높게 생각된다. 재밌는 서술과 자신과 세계, 인생사를 소중히 하면서도 별것 아니것처럼 이야기하는 외계인의 시각을 빌려온 관점은 오래된 소설임에도 무척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소설에 대한 평가가 높은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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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4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4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백수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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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한 권 정도 그 책 내용이 나의 지적 소양에 비해 어렵거나, 혹은 저자와 내가 지나치게 맞지 않거나 그것도 아니면 저자의 글자체가 담은 함의나 내포를 내가 이해하지 못해 책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읽고도 소화를 하지 못한 비율이 적은 것은 그럴만한 책을 피하는 편이기 때문인데 과거보단 나이가 들어 두려움이 앞서는 책에 대한 도전정신이 확연히 떨어진 것 같다.

 여름비도 이해하지 못했다. 2년전에 본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그랬는데 페소아의 책은 어렴풋이 알것도 같아 이해도 못한 주제에 리뷰를 제법 길게 쓸수 있었지만 이 책은 그럴 자신도 전혀 없다. 배경은 집이 너무 가난하고 애들도 많아 과거 인줄 알았는데 시속 400으로 달리는 고속열차와 자동차가 있는 현대이다. 공간적 배경은 프랑스인데 특이하게 아버지는 이탈리아인 어머니는 폴란드인이다. 아이들은 무려 일곱이나 되고 집은 부모가 모두 무직인 관계로 무척 가난하다.

 어쩌다 집에 많이 부분이 불탄 책이 들어왔는데 학력이 짧은 부모도 그 책을 보았고, 놀랍게도 글을 모르는 큰 아들인 에르네스토와 셋째인 잔도 그것을 이해했다. 책은 사라졌는데 아이들, 특히 에르네스토가 변했다. 갑작스레 아니 어쩌면 원래 그런걸 수도 있지만 세상을 모두 알면서도 알필요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 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부처같다고 할까.

 에르네스토는 학교 가기도 거부한다. 이유가 어이없는데 학교에서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에르네스토가 학교를 거부하는데는 4일정도 그리고 에르네스토를 이해하면서도 다른 잔은 10일정도가 걸렸다. 에르네스토는 학교를 거부하고 이를 어머니에게 알린다.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는듯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사실 이해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직업도 없으면서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듯한 이부모도 의무교육의 굴레를 저버리지 못하고 교사에게 상담을 간다.

 교사는 에르네스토를 만나고 아이가 범상치 않음을 알게된다. 물론 이해한것 같지는 않다. 아이는 교사의 추천에 의해 프랑스 정부의 눈에 들게되고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된다. 비슷하게 뛰어난 잔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에르네스토와 잔을 잃게 되는것을 두려워했고, 동생들도 그러했지만 결국 그렇게 된다. 소설 말미에 부모는 상실속에 죽어버리고 아이들은 시설에 맡겨졌다고 나온다. 

 주인공 에르네스토의 선문답 같은 말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어린시절 평범하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글을 알게 되고 세상 이치를 스스로 깨닫게 되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사회나 문화, 지식, 종교등 큰 굴레에 얽매이고 지식이나 권력 다른걸 추구해서 그것에서 벗어나거나 더 알려고 하지만 그럴수 없다는걸 알게된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그런걸 하기 위해 지나가는 기관인 학교도 의미가 없어지고 가족도 사랑하지만 더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며 그런걸 소중히 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신도 의미가 없어지는 듯하다. 

 물론 저자가 이런 의도로 책을 썼는지는 알길이 없다. 도무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니 말이다. 힘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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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11 04: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내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겁니다 ^^

2020-12-11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20-12-11 14: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올해 활동이 뜸하셔서 안타까웠습니다 돌아오셔서 좋네요

닷슈 2020-12-11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해를 못했다는게 너무 아쉽네요
 
교과융합 프로젝트 수업과 학습공동체 이야기 - 미래핵심역량을 키워주는
솔밭중학교 학습공동체 지음, 미래교육공감연구소 감수 / 테크빌교육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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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관련 글을 쓸때마다 동어반복하게 되지만 지금 세계 교육선진국들의 교육과정은 역량중심교육과정이다. 그리고 그 역량은 자신이 학습한 지식, 기능 등을 실생활의 맥락에서 스스로 적절하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할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역량의 특징은 바로 프로젝트 수업과 맞닿는다. 프로젝트 수업은 실생활은 문제를 학생이 스스로 혹은 친구들과 협력하여 학습한 내용을 이용하여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 역량 배양의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각 교과가 실생활과는 유리된 분절적이고 비맥락적이며 탈지역적인 매우 일반적이고 이상적이며 이론적인 성격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학교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교과 간의 통합 혹은 융합 혹은 연결이 반드시 수반된다. 초등학교에서는 이 교과 간의 연결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된 성인들은 잘 기억이 안나겠지만 초등학교에선 담임교사가 거의 모든 과목을 혼자 가르치는 원맨쇼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이나 체육, 영어나 국어처럼 서로 기름과 물과 같은 교과마저 섞는데는 심리적인 혹은 어떤 물리적 저항도 없다. 오직 그 교과들을 학생 교육을 위해 화학적으로 융합시킬 교사의 교육적 역량이 문제가 될 뿐이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는 다르다. 중고등학교의 교사들은 사범대학에서 자신의 전공 교과에 대해 준전문가 수준의 이론적 기능적 전문성을 쌓게 된다. 때문에 각 교과에 대해서는 상당한 전문성을 갖게 되지만 다른 교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중학교 이상의 학교에서 프로젝트 수업은 시작자체가 어렵다. 프로젝트 수업을 설사 잘 잡았더라도 각 교과에서 어떻게 서로 융합하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학습을 해나가야할지 어렵고, 교사마다 다른 생각의 간극을 좁히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솔밭 중학교의 선생님들은 그 어려운걸 해냈다. 상당히 여러개의 프로젝트를 여러 교과 선생님들이 합심하여 이뤄냈는데 그 성과가 놀랍고, 훌륭했다. 10개 정도의 프로젝트가 보였는데 흥미롭게도 프로젝트마다 상당한 규칙성이 있었다. 

 먼저 프로젝트 주제들이 공정무역이나 지구온난화, 다문화가족, 인권, 지진 등 사회과나 윤리과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각 교과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어쩔수 없는 측면이란 생각인데 프로젝트 수업이 실생활의 문제해결을 다루는 만큼 교과중 실생활의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루는 사회과나 가치의 문제를 다루는 윤리과가 아무래도 주제를 제공할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는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학생들의 지식이나 개념을 심화하거나 그 문제자체에 대한 학습 또는 문제해결을 위한 기능을 배우는 단계에서 사회과나 국어과 과학과 수학과 등의 주지교과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 역시 그 교과들이 그러한 지식과 기능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마지막은 포로젝트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단계인데 이 부분에선 기술가정, 영어, 미술 등의 교과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포스터나 카드뉴스, 동영상, 기계장치 등인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성과물을 내는 과정이 해당교과들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정리하면 중등 아니 분명 초등에서도 프로젝트 수업은 대개 주제 설정 단계에서 사회과나 도덕과에 주로 의존하게 되며, 프로젝트의 심화과정인 지식, 기능, 개념학습 단계에서는 주지교과인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에 주로 의존하고 마지막인 결과물의 산출에선 영어, 미술, 기술가정등의 교과가 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제법 흥미로운 점이며 오래전부터 어렴풋하게 느껴오던 점이 이 책을 보면서 체계화된 느낌이다. 그 만큼 이 책들의 프로젝트는 일관성이 있었고, 각 주제는 다르지만 일관되게 유사했다. 

 글을 마무리하며 중등에서의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실현을 위한 프로젝트 수업 내실화 방안을 생각해보게 된다. 일단 떠오르는건 대학 단계에서의 부전공이다. 중등교사가 지식 기능 측면에서 반드시 준전문가 수준까지의 심화가 필요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데 주전공에 주력하면서 적어도 관련이 있는 교과가 다른 교과의 2,3전공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좀더 깊이 있고 연결성 있는 교과융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또 다른 생각은 교과간 융합을 유도하는 교육부 차원의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 변경이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가 대표적인 예인데 그런 것들을 보다 활성화 하고 지원해나간다면 그런 기회는 자연히 많아질 것이다. 

 모처럼 책 내용과 관련해 여러 생각을 가질 기회였다. 좋은 책이며 프로젝트 수업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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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10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닷슈 2020-12-10 20:3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올해도 서니님 덕분에 알았네요

희망찬샘 2021-06-05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살펴봐야 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 드립니다. 대충 읽었던 프로젝트 관련 책 다시 읽기 성공 후 읽어봐야 겠어요.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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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책에서 주로 지식과 영혼의 흔들림, 깨달음, 재미와 감동, 분노 등을 얻는 편이다. 책에서 마음이 정화되는 힐링의 느낌이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데(아무래도 보는 책의 종류 탓일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한 사람의 삶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책 자체가 인간이 자신의 모든 걸 담아낸 것인데 그것이 인간에게 주지 못하는게 뭐가 있을까.  

 책의 저자인 애나 모지스는 1860년에 태어나 1961년에 죽었다. 무려 101세를 살았다. 그러다 보니 그의 인생엔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사이 미국은 농업국에서 산업국으로 그리고 세계 제1의 강국이 되었다. 그리고 남북전쟁과 1-2차대전, 경제공황, 한국전쟁 등이 있었다. 

 애나는 미국 북부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형제자매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본격적으로 농가일을 돕기 전인 12살 이전까지는 마음껏 미국의 대자연과 농가의 평화로움을 즐기며 살았다. 봄이면 꽃을 꺾었고, 여름이면 형제들과 함께 방앗간 인간의 호수에 띄울 뗏목을 같이 만들어 띄워 놀았고, 가을이면 단풍수액으로 시럽을 마음껏 만들어 먹었고, 겨울이면 눈으로 놀고, 아버지와 썰매를 탔다. 애나의 집은 주도로와 좀 외진 곳에 있었는데 그래서 큰 눈이 내리면 아버지가 썰매를 꺼내어 말들에 매어 달려 길을 내었고, 아버지가 그럴때면 애나와 형제들은 볏짚이며 이불이며 추위를 견딜만한 걸 잔뜩 가지고 함께 썰매를 탔다. 애나는 어릴적 그게 가장 신나는 기억이었다고 한다. 정말 재밌었을 것 같다. 애나의 어린 시절은 정말 아름답고 좋아 보이는데 책엔 언급은 없지만 남북전쟁의 전투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는 걸 보면 아주 어릴적이지만 전쟁에 대한 기억도 있었던 것 같다. 애나는 형제중 나이가 가장 비슷한 아서와 친했다. 어릴적 같이 놀고 함께 모든걸 공유하는 사이였지만 아서는 일찍 죽는다.

 애나는 커서 농장일을 도왔다. 남은 기름과 잿물을 이용해 한해 동안 쓸 비누는 모조리 만들었고, 양털에서 실을 뽑아 천을 짜거나 뜨기도 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여자의 일이었는데 워낙 바빠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여자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엔 워낙 옷이 귀해 옷에 풀을 먹이고 표백했는데 그래야 옷을 오래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애나는 더 나이가 들어 다른 집에 들어가 가정부 일을 시작한다. 그 일을 꽤 오래한 듯 한데, 그 집 사람들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그 집의 아이들도 그리고 주인집 아주머니 아저씨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애나 만큼 오래살지 못해 이제는 더 이상 같이 있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애나는 그 집에서 자신의 남편이 된 토마스 모지스를 만난다. 책엔 나오지 않았는데 알아보니 토마스는 애나보다 연하란다. 

 결혼해서 애나는 처음으로 남부에 자리잡는다. 애나는 남편이 성실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돈이 많은 남자는 그로 인해 좋아하면 돈이 떨어지면 싫어지고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애나는 여자라도 남편이 벌어다주는것만 먹고 사는게 아니고 똑같이 일하고 싶어 했다. 물론 형편이 충분치 않은 점도 있었을 것이다. 애나는 무려 열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애나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가 10명 이상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 특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니만큼 4명의 아이들은 죽어서 나왔고, 한 명의 아이는 출생후 6주를 살다가 죽었다. 애나는 그 아이들을 아름다운 셰년도어 벨레에 조그마한 무덤 다섯개로 남겨두었다.

 결혼해서도 농장일은 바빴다. 월요일엔 빨래를 하고, 화요일엔 다림질과 수선, 수요일엔 빵을 굽고 청소를 하고, 목요일엔 바느질, 금요일엔 바느질에 화단 가꾸기와 잡다한 일을 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해가 뜨기전 옷을 갈아입고 불을 지피고 찻물을 끓였으며, 닭장에서 닭 모이를 주고 물을 주었으며 아침식사를 차렸다. 낮까지 들에서 일을 하고 점심을 준비한 후, 다시 밭에서 일을 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우유를 짰다. 자기전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되며 나이가 들었다.

 1927년 남편 토마스가 추운 겨울에 나무를 하러 갔다. 그냥 돌아와 몹시 피곤해하며 서너시간을 자다 다시 일어나서 죽었다. 협심증이었다. 남편이 죽고 이미 노인이 된 애나는 평생을 해오던 바느질을 계속한다. 하지만 손이 아파서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그림이 누군가에 눈에 들었고, 팔리기 시작했고, 전시회까지 하게 되며 미전역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타임지에까지 실리고 애나가 죽었을때 추도사를 케네디 대통령이 할정도였다.

 책은 애나의 그림이 무척 많이 실려있는데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이 그림을 애나는 무려 1600여점을 그렸다. 그림을 보면 애나가 살았던 미국 시골의 대자연과 4계절 그리고 동물들과 작물들이 많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많았고, 전체적으로 배경이 넓게 보이는걸 보면 미국의 대 자연이 애나에게 어릴적 부터 무척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림엔 항상 사람이 많다. 서로 함께 일하고 놀고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런 목가적인 모습때문에 애나의 그림은 당시 세계 대공황과 도시화의 부작용으로 시달리던 미국인들에게 무척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인에게도 울림이 큰게 아닐까 한다. 번외적 이야기지만 애나의 그림을 보면 유독 다리에 지붕이 있는 경우가 있어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당시엔 다리에 지붕을 씌우는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다리를 나무로 만들었는데 지붕이 없으면 눈비를 맞아 수명이 15년에 불과하지만 지붕을 건설하면 무려 100년가까이 유지가 되었다고 한다. 

 애나 모지스의 책은 연말이나 크리스마스를 둔 시점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의 그림과 긴 생에서 얻은 깨달음이 주는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말과 생각을 즐겨보는 것도 연말을 보내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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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12-07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해보니 책에서 영혼의 흔들림.
뒤 늦은 이해. 분노.. 등을 얻을 때가 많네요

긴 생애를 견디어 내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동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닷슈 2020-12-07 21:37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긴 생애를... 그리그 그것을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잘 살아낸 사람의 인생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제법 큰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