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도 서울태생이고 나 역시 서울태생이며 그래서 마땅히 친가와 외가가 모두 서울인 나는 서울 이외 지역을 상상만 하고 살았다. 국딩땐 서울이 되게 크다고 생각했었고(대한민국에서 마땅히 가장 클 것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경기도가 더 크다는걸 알았을땐 충격이었다) 서울 이외 지역은 시골이라는 이름으로 퉁치고 살곤 했다. 그랬던 사람이 지방을 군생활 중 처음 경험한 이후 직장이 경기 지역에 자리하여 지방에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으니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서울태생임에도 지금에 비하면 많이 저렴한 2천년대 초중반의 서울 집값이 난 당시 무척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다 얼마 안되는 내 종잣돈과 급여를 매몰해가며 십수년을 대출과 이자를 감당하며 살아가느니 당시 부동산 값이 싼 지방에 자리 잡아 사는게 어떨까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처음 읽은 지방에 관련한 책이 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 였다. 모든 것이 수도권에 몰린 한국의 현실을 잘 지적하고, 지방 삶의 쾌적함과 지방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책이었다. 다음책은 '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로 지방민의 입장에서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지방재정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책이었다. '지방소멸'은 일본 책으로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로 지방소멸 위기를 겪는 일본의 현 주소를 제시한 책이다. 텅 빈 집 문제와 소멸 대상 도시로 65세 이상 인구와 20-39세의 가임기 여성수를 비교해 노인 인구가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역을 소멸 대상 지역으로 꼽았다. 지방의 생존전략으로 거점도시 개발과 주변 지역의 연계를 꼽은게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본 책이 제목조차 살벌한 마강래 교수의 지방도시 살생부다.

 최근의 지방과 수도권의 상황은 더욱 극변하고 있다. 서울로의 집중은 더욱 심화되어 몇년 전 마침내 서울과 인천, 경기를 합친 수도권 인구가 그 좁은 면적에도 전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고 말았다. 산업구조도 2천년대 이후 재편되어 단순 제조업 중심의 지방기업은 경쟁력이 쇠퇴했고, 글로벌 기업 본사가 위치한 수도권 지역의 일자리가 더욱 고급화되고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인재는 더욱 서울로 몰렸고 양 지역의 일자리 급여차도 커짐에 따라 집값도 더욱 양극화되었다. 

 그래서인지 부동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현 여당대표가 갑작스레 세종시로의 행정수도의 완전한 이전을 주장하며 갑작스레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이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으로의 분권에 대한 생각은 무척 오래되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수도권 과밀화는 오래된 그리고 갈수록 답이 없이 심각해지는 문제다. 언급한 것처럼 사실 정부의 지방활성화에 대한 고민과 대책 및 재정투입은 저출산 문제만큼 오래되었다. 무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지방중소도시의 인구이탈이 본격화되며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지속되었고, 저출산문제만큼 진단을 잘못하여 그간 5조에 달하는 재정이 투입되었음에도 효과는 미미하다. 

 책 '지방도시 살생부'는 향후 20년후 위기에 빠질 지방중소도시를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15만 인구 이하의 지역으로 정의한다. 이 지역들은 2천년대 이후 인구가 꾸준히 빠지고 있는데 몇몇 지역은 최근 인구감소가 정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희망적인게 아니며 이미 이동가능한 인구인 젊은 층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이기에 일시적 정체를 겪는 것이며 노년 인구가 사망하는 시점이 되면 본격적으로 다시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지방중소도시의 위기는 거대한 4가지 메가트렌드 때문인데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그리고 4차산업혁명때문이다. 지방도시는 세계화 이후 지방제조업이 쇠퇴하고 글로벌 대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면서 서울등 수도권에 비해 일자리의 양과 질을 크게 줄어들었다. 때문에 젊은 층이 떠나가니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되어 인구가 줄어들었다. 거기에 저성장 기조로 인해 나라의 투자와 자원이 경쟁력있는데 집중된다. 즉, 집적효과가 큰 수도권에 더 큰투자가 된다는 셈으로 지방은 소외된다. 4차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등을 활용한 자동화로 어려 직종의 인간대체 효과를 크게 가져온다. 창의성있는 고급직종이 대체를 피할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직종 역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단순제조형태와 서비스업이 집중된 지방중소도시일수록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효과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설상가상인셈이다.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쇠퇴원인으로 저자는 크게 4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제조업 경재력의 쇠퇴다. 대부분의 지역이 해당하며 거제나 울산, 포항, 아산, 당진, 구미, 여수, 광양등 한 산업에 특화된 지역일수록 외부 환경에 의해 더욱 취약하다. 이런 쇠퇴지역의 생존전략으로는 아예 다른 사업으로 도시의 산업을 전환하는 손떼기 전략과 급여나 후생복지등의 감소로 비용을 절감시켜 가격경쟁력을 회복하는 절감 전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역 고유의 특수성을 살려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보존 전략이 있다. 하지만 이중 어느것도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쇠퇴요인은 지역의 자연자원이 고갈되거나 수요가 사라진 경우다. 강원도의 탄광도시들이다. 세 번째는 미군부대가 이전하는 경우로 동두천이나 의정부가 그러하다. 한국군부대의 해체 또는 이전도 요인이 될 것이다. 네 번째 요인은 교통망의 변화가 도시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과거 육상교통이 미비할 때 수로 교통의 이점을 노렸던 나주가 그렇다. 

 하여튼 지방의 이런 여러 문제의 핵심에는 결국 일자리 문제가 자리한다. 건물이 부실해서도 인구가 적어서도 아니다. 문제는 일자리다. 양질의 일자리만 생긴다면 인구는 늘어나고, 서비스업도 활성화되고 기업도 알아서오며 재투자가 이루어지는 건물도 새것들이 들어서고 교통망도 확충된다. 세수도 많이 걷히니 공공인프라도 우수해진다. 양적 되먹임인 것이다.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기에 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후 지방은 일자리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일자리유치를 위한 지방의 첫 번째 해결책이 산업단지 육성이다. 산단은 국가산단, 일반산단, 도시첨단산단, 농공단지 4개로 구분되며 국가산업단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시군 차원에서 얼마든지 지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렇다보니 경쟁력없이 마구잡이로 산업단지를 지자체별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상당수의 산업단지가 미분양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이에 지자체들은 지자체가 미분양을 모두 떠안는다던지 그외 파격적 경제조건으로 분양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며 이런 무리한 정책으로 인해 지방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다음은 축제다. 지방자치제의 실행이후 지방은 온통 축제판이다. 다만 주객이 전도되어 행사관계자가 항상 손님보다 더 많을 뿐이다. 지방의 행사는 총 361개 정도의 큰 행사 그리고 작은 것까지 하면 무려 1만 5천개 정도에 달한다. 상당한 재정이 투입되는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자 축제는 화천의 산천이 축제가 유일하다. 그 유명한 보령 머드 축제도 적자다. 그런데 축제는 성공해도 일자리 창출효과가 미미하다. 축제의 특성상 일년 내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일자리도 일시적으로 창출되는 편이며 교통의 발달과 축제 콘텐츠와 관광 인프라 부족으로 당일치기 관광이 대개 이루어져 숙박업에도 기여가 없기 때문이다. 함평의 나비축제도 크게 성공한 편인데 그럼에도 지역의 이미지는 개선되었지만 지역 인구는 꾸준히 줄어든다고 한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축제는 효과가 없는 셈이다. 아이러니한건 지방의 대부분 축제는 그 지역의 특색 문화와 관련 없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며 가장 성공한 화천엔 정작 산천어가 없고 함평엔 본래 나비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방을 대체 어떻게 살려야할까? 가까운 시일내에 지방을 살리지 못하면 지방은 향후 세금을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도시에는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 가스, 도서관, 소방서, 경찰서, 학교등 많은 공공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는 서울이나 지방이나 마찬가진데 문제는 인구가 좁은 지역에 모여 집적도가 높을 수록 인당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2016년 대도시는 주민 1인당 공공서비스를 위한 세금이 1619만원이 필요했지만 중소도시는 무려 4822만원, 군지역은 7369만원이 필요했다. 이것이 2027년엔 각각 2467만, 7568만, 1억 1739만으로 상승 예정이다. 그야말로 지방은 돈먹는 하마이지 밑빠진 독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걸 막기 위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3가지다. 우선 고밀도 압축 개발이다. 현재의 도심재생이나 지방회생전략은 쇠퇴를 모두 막아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이미 실패한 정책이며 불가능한 것이다. 어떻게 모든 지역이 인구가 늘어나고 산업지역이 될 수 있을까? 각 지자체는 모두 인구증가를 목표로 내세우는데 그들의 공약이 모두 실현되려면 남한 전역에 1600만명의 인구가 필요하다. 어불성설인셈이다. 때문에 저자는 현실을 인정하고 쇠퇴하는 지역은 과감히 쇠퇴시키되 거점지역을 고밀도로 개발하고 여기에 서비스를 집중시키고 다른 지역도 이 지역과 교통망을 통해 연결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원도심을 쇠퇴시키는 도시 외곽지역의 무분별한 아파트 공급및 개발을 막고 대형마트등의 입점도 막을 것을 제시한다. 또한 원도심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해당지역으로 이주시 이사비나 빈집 리모델링, 임대주택등을 활용하고 공공서비스 기능을 집중시키는 것을 제안한다. 

 두 번째 회생전략은 일자리 창출이다. 많은 지역이 외부기업이나 대형마트 유치를 희망하지만 설사 그들이 들어와도 지역의 고용효과는 미비했고, 지역의 부만 외부로 유출되어왔다. 따라서 지역의 문화와 특색, 특산물을 활용한 마을 기업을 제시한다. 마을 기업은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대부분 지역민을 고용하며, 지역의 교류를 활성화시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마을 기업에 지원금을 공급하고 판로 및 경영지원을 통해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대규모 체인점등이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 이들 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역의 마지막 회생전략은 대중교통결절점 위주의 교통재편이다. 지방중소도시의 경우는 서울이나 대도시 같은 환심형 교통체계는 적합하지 않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역이 너무 광범위하고 사람들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비용을 초래한다. 때문에 저자는 선형으로 교통을 재편하고 사람들도 그에 맞게 집중배치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선형 교통에 겹치는 결절점을 중심으로 주거, 상업을 집중해야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20년 한국의 생산인구와 인구절대수는 감소하고 세계화와 경제침체로 지방과 수도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 자명하다. 물론 통일이라는 변수와 4차산업혁명 역시 큰 변수로 다가올 가능성은 있다. 통일이 된다면 적어도 북한 전지역은 과거 남한처럼 양적성장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으며 4차산업혁명은 의외로 큰 경제성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방에 대한 회생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도시파산제도가 없기에 텅빈 비역을 버릴수 없고 안그래도 좁은 땅에 인구가 부족하다고 하여 지역을 포기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방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미리 경각심을 갖고 마을기업등의 설립으로 일자리 위주로 접근하고 지방문제를 풀기위해 지역을 스마트하게 압축 거점화하고 교통결절점을 선형강화한다면 저자의 생각처럼 지방은 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방이 이렇게 살아난다면 이는 출산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가능성이 높다. 결국 일자리 문제가 어느정도 지역수준에서도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얼마 없고 해결해야할 숙제는 많다. 정치권에 기대를 갖고 지켜봐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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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동물이기에 태어나 자연히 직립보행하고, 보고, 듣는 등의 생존을 위한 기본 기능이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다. 물론 언어능력처럼 좀 늦게 얻어지는 것도 있지만 언어를 위한 유전자는 분명히 있으며 이는 이 기능이 선천적이라는 걸 의미한다. 다만 언어구사의 숙달을 위해선 어느정도 후천적인 노력과 기간이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언어가 큰 공통점은 있지만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이고 역사와 문화 세월에 따라 꾸준히 변화하는 다양한 환경적 요인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지 싶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언어능력은 어디까지나 구어의 말하기 듣기능력이다. 또 다른 언어능력인 쓰기와 읽기는 인류가 고작 수천년전에 발명한 문자에 의해서 생겨났다. 즉, 이를 생득적으로 취득할만한 유전적 프로그래밍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인간은 물론 다른 무료 기능에 비해 어렵긴 하지만 말하기 능력은 3-4세 무렵이면 거의 완성하는 반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적어도 5세이후에서야 슬슬 발달하기 시작한다. 인간에겐 문자를 읽는 행위, 즉 독서를 위한 선천적 능력은 적어도 없거나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문자의 발명 이후 기존의 다른 뇌의 기능 회로들을 활용하여 문자를 읽는 독서능력을 습독해야 했다. 당연히 이는 어려웠을 것이고 때론 습득을 좀 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등장했다. 책은 이런 독서에 대한 전제를 갖고 논의를 시작한다.


1. 구어의 한계와 문자의 탄생

 구전전통 시대에 사람들은 내려오는 쓸모있는 지식을 모두 외워야 했다. 그러도보니 전승되는 쓸모있는 지식의 양도 적었고, 사람의 불완전한 기억과 구전이라는 과정속에 와전되기도 일수였다. 또 다른 문제는 구전전통이 기억을 위해 리듬이나 기억구, 공식구, 전략에 의존하다보니 개인의 기억과 메타인지에 상당한 부담을 주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동화책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지만 말하면서 혹은 정지없이 주어지는 말을 듣고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는 매우 어렵다(그래서 개인적으로 오디오 북은 성공이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제대로된 기억 및 창의성의 발현은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서 인간은 기초적인 문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량을 표시한 물표 같은 것이 그것의 시작인데 초기 문자는 대부분 그림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이런 식의 실제 물건의 문자라는 기호로의 상징화는 인간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 두 가지인 특화의 역량을 통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일단 생겨난 문자는 수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대대로 인간은 그 사용법을 새로운 세대에 가르침으로써 적응 및 변화를 위한 뇌의 역량에 대한 지식도 전수되었다. 

 상징을 익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새로운 연결이 필요한데 하나는 인지-언어적 연결이고 또 하나는 대뇌의 연결이다. 기존에 시각, 언어, 개념화 통로로 형성되어 있던 뇌의 회로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이 발달했고 눈과 특화된 시각 영역 간의 새로운 망막 위상 경로가 새로운 상징체계인 문제에 할당되었다. 즉, 이는 인간에게 독서만을 위한 기존의 유전자나 뇌의 구조는 없고, 기존의 구조를 활용하여 독서기능을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함을 의미한다.

 문자가 발달하며 인간의 시각체계에 의해 기본적인 인식이 쉬운 그림 문제체제에서 수메르인의 쐐기문자같은 세련된 형태의 표의, 추상문자가 등장한다. 표의 문자체계는 단어가 음성을 전달하지 않는다. 이런 한계 때문에 향후 수메르 쐐기문자엔 구어의 음절의 일부를 표상하기도 한다. 이런 표의음절문자법은 그림문자에 비해 뇌에 상당한 부하를 주었는데 무려 수백개에 이르는 수메르 쐐기문자를 해독하기 위해 인간 뇌의 시각 부위와 시각연합부위에 훨씬 더 많은 경로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표의음절문자의 개념적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인지체계가 개입하게 되고 결국 후두엽의 시각 영역과 측두엽의 언어 영역과 전두엽에 대한 연결이 훨씬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뇌가 변하게 된 것이다. 

 한자나 수메르 쐐기문가 같은 표의음절문자체계에 대응해 더욱 효율적인 형태음소적 문자체계인 알파벳이 등장한다. 형태음소적 문자체계는 스펠링 안에 형태소(의미의 단위)와 음소(음성의 단위)가 모두 표상되는 체계다. 알파벳에는 3대 기준이 있는데 우선 20-30개 정도로 한정된 수의 문자를 갖고, 해당 언어의 최소 음성단위를 전달 할 수 있는 포괄적 문자집합이어야 하며, 음소와 시작적 기호 및 글자가 완벽히 대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파벳은 이런 음성과 문자가 일치한다는 효율성으로 인해 독서로 인한 뇌의 인지 부하를 크게 덜어 혁신적 사고를 촉진하게 되었고 초보독서가가 글을 쉽게 배운다는 기여를 하였다. 


2. 독서하는 사람의 뇌와 인간의 독서발달과정과 독서교육

 문자체계에 따라 다소 다르긴 하지만 독서를 할때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인간의 뇌 부위가 있다. 후두측두영역으로 어떤 문자를 읽던 인간을 유창한 시각 전문자로 만들어준다. 다음은 브로카 영역을 포함한 전두부로 단어 안에 포함된 음소와 단어의 의미라는 두 가지 분야를 해결한다. 마지막은 상위측두엽과 하위 두정엽에 걸쳐 분포하는 다기능적 부위로 다양한 음성과 의미 요소들을 처리하므로 특히, 알파벳과 음절 문자체계에서 이 부위가 중요하다. 정리하면 인간 뇌의 보편적 독서시스템은 전두엽, 측두-두정엽, 후두엽을 연결한 4대 뇌엽중 엄선된 일부분이 된다.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말로 표현된 단어와 발음으로 표현되지 않는 생각을 문자화하려는 행위를 통해 생각을 만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각 자체도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문자언어를 차츰 더 정확하게 사용하면서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개발 역량이 촉진된다. 그리고 알파벳은 그 효율성으로 인해 이런 혁신적 사고를 더욱 촉진하게 되었는데 그리스 알파벳이 보급된 시기 문학, 예술, 철학, 연극, 과학이 심오하게 발달한 것은 이로 인함인지도 모른다. 

 독서를 위한 아이들의 언어발달은 4가지 요소를 필요로 한다. 의미론적 발달은 아이의 어휘발달을 통해 단어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증가시키는 것이고 통사론적 발달은 아이가 언어에 있는 문법관계를 터득하여 복잡한 책속의 언어문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형태론적 발달은 아이가 의미의 최소단위를 알고 사용법을 깨우치는 것이고 화용론적 발달은 자연스러운 문맥속에서 언어의 사회문화적 규칙을 인식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독서를 위해서는 시각적으로 표상화된 추상적 문자-상징의 이름을 인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다양한 정보원과 시각과 청각, 언어 및 개념 영역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뇌의 능력도 필요하다. 이처럼 독서를 위한 뇌의 기능이 기존 영역을 새롭게 연결해야하기에 독서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이로 인해 독서교육에는 생물학적 시간표가 고려되어야 한다. 

 사람은 5세가 되기 전 감각 및 운동부위가 모두 수초화가 되는데 각뇌와 같이 시각, 언어 및 청각 정보를 빠른 속도로 통합시키는 능력의 기반이 되는 주요 부위들은 대부분 5세 이후에도 수초화가 마무리 되지 않는다. 일부 남자아이들은 이 수초화의 속도가 더욱 느린데 그래서 남자아이의 독서능력발달이 여자아이에 비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것인지 모른다. 하여튼 이로 인해 4-5세 이전 독서를 가르치는 것은 경솔한 일이고 오히려 역효과를 낼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 문자해득 교육이 시작된다.

 독서의 단계로 저자는 입문단계의 예비 독서가, 초보독서가, 해독하는 독서가, 유창한 독서가, 숙련된 독서가로 나눈다. 예비 독서가는 문자가 언어의 음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 정도를 갖고 있고, 규모가 큰 단위를 듣고 그것을 분절하는 방법 정도를 하는 예비단계다. 초보독서가와 해독하는 독서가는 문자와 대응하는 음성을 알고 이를 읽어내는 수준이다. 이 시기엔 언어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늘어나있고 추론 능력도 있지만 이제 막 독해하기 시작한 수준이다. 때문에 어른들은 이 시기 아이가 독서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고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제 막 독해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유창한 독서가는 가장 긴 발달 시기로 초등3-4년 정도의 나이에 도달한다. 문자를 읽는 것이 거의 자동화된 시기로 해독에 시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아 추론과 통찰에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이가 어릴적엔 독서를 위해 좌뇌와 우뇌가 시각 영역의 많은 대뇌피질과 시각영역의 상측두부위와 하두정엽, 전두엽에 이르는 많은 부위를 이용해야해 느리고 효율이 떨어진다. 하지만 유창한 독서가에 이르면 뇌가 독서를 할 때 양뇌가 아닌 특화된 좌뇌의 경로만을 이용하므로 인지적 부하가 적어져 텍스트의 의미와 이해를 위한 활성화를 위해서 양뇌를 활용한다. 즉, 혁신적 사고와 깊은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숙련된 독서가는 이를 넘어서 독서를 학습하는 뇌가 완전히 완성되고 학습하기 위해 독서를 하는 단계가 된다. 


3. 난독증

 난독증은 문자를 읽지 못하는 증상이다. 난독증은 연구가 상당히 어려운 편인데 언급한 것처럼 독서는 생득적인 과정이 아니기에 기능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뇌가 상당히 복잡하게 변화해야한다. 따라서 연구가 어렵다. 또한 그러기에 관련 연구분야가 너무 많아져 통합된 연구가 어렵고, 난독증을 앓는 사람이 단순히 전반적인 지적 기능이 떨어지는 저기능상태가 아닌 다른 분야의 상당한 강점과 약점이 혼재된 상태라는 점이다. 

 이런 난독증의 원인으로는 우선 언어 또는 시각적 기저구조에 유전적인 발달성 장애가 있는 것, 혹은 주어진 특화 작업 그룹 내에서 표상을 인출하지 못하거나 회로에 구조가 연결되지 못하거나 혹은 둘다인 경우다. 세 번재로는 이 구조들 사이에서 회로가 연결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존할 가능성. 마지막은 특정문자체계에서 기존에 사용되는 회로와는 전혀 다른 회로가 재편성 되는 경우다. 실제 난독증은 한 문자체계에선 없지만 다른 문자체계에선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난독증을 예측하는 강력한 도구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네이밍 스피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음소인지 프로세스다. 음소인지 프로세스는 문자의 음소부분을 인지하느냐는 테스트로 주로 형태음성문자체계에서의 난독증은 대부분 이 테스트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네이밍 스피드는 물체를 보고 그것의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독서능력이 문자를 보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인식하고 청각적으로 연결해 그 소리를 말하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문제가 있으면 거의 난독증으로 연결된다. 놀랍게도 독서를 습득한 사람은 문자를 보고 말하는 속도가 물체를 보고 말하는 속도보다 빠른데 문자의 경우 독서를 통해 인출이 자동화 된 반면 물체는 그 갯수가 너무 많아 어느 정도의 패턴은 있지만 완전한 자동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서하는 뇌는 초기 양쪽 뇌를 모두 복잡하게 사용하다 숙련되면 언어의 해독에 좌놔편향 시스템을 사용하고 이후 의미의 깊이 있는 해석과 창의적 과정 및 감정을 느끼는 부분에 양뇌를 활성화한다. 하지만 난독증의 뇌는 독서시 경로가 완전히 달랐다. 좌뇌 편향적 시스템이 아니라 오히려 양뇌를 모두 사용하는 우뇌편향적 시스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효율성이 발생해 문자해독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난독증 사람은 유창한 독서가나 숙련된 독서가로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 진화과정에서 이렇게 불리한 난독증은 왜 남아 있는 것일까? 이는 난독증 사람 상당수가 다른 분야에서 보통 이상의 재능을 가진 것과 관련한다. 이들은 우뇌 편향으로 공간인지나, 창의성, 예술부분에서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오늘날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과거 문맹사회에서는 상당한 사회적 생산성이었을 것이다.(가우디, 조니댑, 에디슨 등이 난독증이었다.) 때문에 적합도가 떨어질 일이 없다. 또한 독서 기능은 아주 최근에 생겨난 유전자 수준에 반영된 수준의 기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난독증은 이런 면에서 역설적으로 뇌가 독서에 적합한 회로를 타고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문자의 발명과 독서의 시작은 인간 개인을 기억의 부담뿐만 아니라 시간에게서도 해방시켰다. 자동화 능력을 통해 초기 해독시간을 줄여 문자화된 생각을 보다 깊이 분석할수 있도록 인지적 시간과 이를 위한 물리적 피질공간이 더 많이 할당되었고 이는 문명을 발달시킨 혁신적 사고를 촉발시켰다. 독서를 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기초적인 연산 능력의 재배열이 일어나고 이는 새로운 사고의 신경세포적 기초가 된다. 즉, 독서를 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새로운 회로와 경로들이 남다른 혁신적 사고의 물리적 기초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독서의 효과는 이 뿐만이 아니다. 문자의 진화는 인간의 지적 능력 중 매우 중요한 문서화 체계화 ,분류, 조직화, 언어의 내면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의식, 의식 자체에 대한 의식등이 발현하는 인지적 발판을 제공했다. 문자의 발명을 통한 독서가 인간의 뇌를 바꾸고 이 바뀐 뇌가 다시 독서를 바꾸어 문명을 발달시키는 양의 되먹임 효과가 어쩌면 인류 역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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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0-08-12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을 정독했습니다. 특히 오디오북과 관련된 설명에서는 설득력이 있으시다고 느꼈는데요. 현재의 출판시장이 오디오북과 같은 변화된 구성으로 이윤을 위해 다각화를 하는게 옳은건지 모르겠네요. 원래 독서라는 부분이 손쉽게 갈 수 있는 권도는 없는 것인데 아무래도 열악한 국내 출판시장과 관련이 있겠네요. 많은 걸 생각해하는 글을 써주신 것 같습니다. 하여튼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닷슈 2020-08-12 19:04   좋아요 1 | URL
긴 글을 정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디오 북 같은 경우는 의미있을 만한 책은 솔직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쓴 것처럼 독서란게 이해하고 내 생각과 경험등과 연결시키며 사유의 폭을 변화 및 확대해나가는데 멈춤없이 들리는 오디오 북이란게 그게 가능할리 없어 보입니다. 저는 동화들려주는거 아니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낌니다. 말씀에 많이 공감합니다. 출판시장의 어려움때문에 생긴 새로운 시도겠죠. 그래서 좋게 보는 부분도 있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8-12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도 짤방 유투브 봤는데요, 긴호흡을 필요로 하는 독서는 재미있는 유투브와 경쟁 상대가 안 될 것 같습니다. ㅠ 앞으로 어찌 변할지 더욱 관건입니다. ^^

닷슈 2020-08-13 09:04   좋아요 0 | URL
지금의 흐름으론 짧은게 대세죠. 저도 긴 독서가 알라딘의 길고 어려운 리뷰들이 유튜브를 이길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알라딘 tv를 만드건 같구요. 하지만 독서는 여전히 독서 나름의 기능을 하며 살아남지 않을까 합니다. 짤방은 글자그대로 짤은 정보와 짤은 감동과 얇음 밖에는 줄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실 -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교육의 시작
박일준.김묘은 지음 / 북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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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전 인터넷시대가 열리며 교육현장엔 ICT 활용교육 붐이 일었다. 워드프로그램이나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그리고 컴퓨터 자체의 활용을 가르키는 것이었는데 초기엔 제법 쓸모가 있다가 컴퓨터가 가가호호 보급되며 기술이 일반화되고, ICT를 활용한 교육효과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조용히 사장되어갔다. 그 많던 컴퓨터 학원이 사라진걸 보라.

 하지만 최근 모바일을 통한 제2의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SNS, 유튜브 같은 것들이 활성화되어 개인의 영상이나 음악, 사진등을 제작 및 편집하는 기술이 그리고 코딩 및 3D 프린팅, 드론등이 활성화되며 각각의 매체를 활용하는 기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직접 이런 것을 활용하여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더라도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으로 언제든 검증받지 않은 뉴스를 접하며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 역시 민주시민의 새로운 역량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내용을 다룬 책이다. 디지털 리터러시랑 위와 같은 새로운 디지털 기술, 데이터, 정보, 콘텐츠,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관리, 통합, 분석, 평가, 해결, 소통하며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소양을 말한다. 즉, 새로운 디지털 매체에 접근, 활용, 성찰이 가능하다 것이다. 그렇기에 디지털 리터러시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교육현장에서 꼭 학생들에게 갖추도록 해야할 역량이 된다. 

 책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 수업밥법으로 STCPR을 제시한다.

Search- 주제에 관해 스스로 탐색 질문을 하는 단계

Talk-대화, 생각, 사고를 나누고 키우며 정리하는 단계

Creat-다양한 콘텐츠를 창작하는 단계

Presentation-발표 및 공유하는 단계

Reflection-성찰 및 발전의 단계


 즉, 주어진 혹은 스스로, 혹은 협력하여 발견한 생활의 문제에 대해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충분히 검색하고 생각하여 질문을 만들어내고, 이를 교사 혹은 친구들과 생각 및 토의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키워나간 후, 그 정리한 생각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콘텐츠(사진, 영상, 음악, 만화, 영화, 코딩 프로그램, 앱 등등)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를 발표하여 친구들 및 선생님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아 성찰하고 발전해나간다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책에는 디지털 리터러시와 최근의 디지털 환경과 더불어 교사가 현장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수업을 위해 쓸수 있는 다양한 무료 사이트를 소개해놓았다. 사진 편집의 픽슬러, 퀴즈를 만들 수있는 패들렛, 인공지능의 학습을 체험할 수있는 오토드로우, 신문을 직접 편집하고 만들 수 있는 뉴스페이퍼 클럽, 만화를 제작하는 파우툰, 다양한 음악을 창작하고 체험하는 크롬뮤직 등이다. 모두 즐겨찾기 해놓고 들어가 해보았는데 역시 쉬워보이지만 익숙해지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사가 모든걸 다 잘할 필요는 없다.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소개시켜주고 기본적인 것을 할 수 있게만 해주어도 아이들은 잘 해낸다. 학생들은 아직 가소성이 매우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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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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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하이드씨에 대해서 분명 잘못 알고 있었다. 영화나 만화, 그외 다른 매체에서 하이드씬 가끔 등장하곤 하는데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어벤져스 헐크의 흰색 버전이었다. 덩치도 크고 힘이 어마무시하며 성격은 포악하면서 피부는 흰색이며, 얼굴은 그에 걸맞게 당연히 괴물같은 그런 모습. 헐크와 다른 건 색뿐이랄까. 변신하며 옷이 찢어진 것도 비슷하다. 이상하게도 역시 하의만 무사한 것도 공통점......

 그런 하이드씨를 기대하며 책을 읽었는데 원전의 하이드는 변신전의 지킬박사보다도 작았다. 오히려 지킬이 훤칠한 외모다. 지킬에 비해 하이드는 키가 작아졌고, 나이는 오히려 젋어졌으며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파보였지만 오히려 지킬이 느끼기엔 활력이 있었다. 외모는 매우 창백한 피부에 그리 못생기진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악을 연상시키고 지독한 불쾌감을 주는 그런 외모였다. 

 책의 배경은 영국, 시기는 100여년 정도 전, 런던이다. 의사이면서 화학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던 지킬, 부자에다, 의사이고 주변엔 명망있는 친구들로 가득한 그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신사적인 교양인이다. 하지만 내면엔 어려서부터 자리한 동물적 본능에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다. 늘 그것을 억누르고 감추던 지킬은 여러 화학물질을 연구한 끝에 자신의 악의 본성을 끌어내는 약물을 개발한다. 

 과감히 그것을 들이킨 지킬은 하이드가 된다. 기분은 의의로 좋았다. 자신을 억누르던 이성, 도덕, 규범등이 말끔히 사라지고 본능을 쫓는 욕망만이 남았다. 지킬은 하이드가 되어 마구 날뛴다. 다시 약물을 들이켜 지킬로 돌아오면 후회가 가득했지만 뭔가가 해소된 느낌이다. 그렇게 지킬은 자주 하이드가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지킬이 본 모습이고 하이드가 변신한 느낌이었는데, 변신이 잦아지면서 약물의 복용없이도 지킬의 모습에서 하이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젠 주객전도가 되어 하이드 상태에서 지킬이 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약물의 원료가 떨어지고 새로 주문한 원료는 예전과 다르다. 지킬이 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하인들도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하이드를 못마땅해하고 지킬을 걱정하는 변호사 친구 애터슨의 관심도 부담스럽다. 지킬은 어떻게 될까나. 

 대충 이런 내용이다. 산업혁명이 한창을 달리던 당시는 아무래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발견, 그리고 막강한 힘을 주던 이성에 대한 불신도 모순되게 자리잡았던 시기인듯 하다. 그래서인지 당시는 이런 괴물 소설이 많다. 프랑켄슈타인, 지칼박사와 하이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리고 드라큘라 정도가 이런 범주에 들어갈듯 하다. 괴물의 탄생에 상당한 과학적 성과가 자리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불가능한 과학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맹신과 더불어 괴물들이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또 다른 어두운 모습에 대한 고찰도 꽤나 사회적으로 자리잡았던 듯 하다. 그래서 이 시기 유독 이런 소설이 많은게 아닐런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의 원전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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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폴 김 지음, 함돈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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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김은 대단한 인물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고교를 마친 후 한국의 입시전쟁에 잘 적응하지 못해 그다지 좋지 못한 성적으로 미국으로 간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그는 거기서 성공해 대학에선 컴퓨터 공학을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해 스탠포드 교수가 된다. 그리고 연구실에만 갇힌 교수가 아닌 저개발도상국들의 교육개혁을 위해 힘쓴다. 실천가가 된 것이다. 그는 우연히 멕시코를 방문해 아이들의 실상을 알게된 후, 에일리언 교수법, 포케스쿨, 스마일프로젝트등을 실행했다. 이런 폴김과 질문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개혁에 관해 함돈균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걸 엮은게 이 책이다. 

 두 사람이 보는 한국 교육의 문제는 한 두개가 아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 교육은 학생과 학부모의 공포에 기반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항상 다른 아이들처럼 그리고 다른사람들의 속도만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이탈하고 낙오될 거란 두려움에 빠져있다. 이러니 모두가 사교육을 하며 애들을 학원을 돌리고 같은 방식의 암기식 교육이 학력이자 실력이라 믿는다. 

 그리고 한국의 학교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것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는 시민의 책임감이다. 이것은 리더십의 중요요소인데 한국에선 리더십을 경영이나 돈을 버는 수완, 다른 사람들 다스리는 능력정도로 천박하게 생각한다. 시민의 책임감에 주목하지 않는건 이미 선진사회에 진입한 한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다소 놀라운 부분이다. 물론 한국이 워낙 큰 주변 강국에 둘러쌓여있고, 선진국으로서 세계를 선도해본 경험이 없고,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해 세계보단 우리 내부의 불행부터 해결하자는 민족주의적 시각이 이런 원인일 것이다. 다음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공부하는 방법이다. 자기주도성을 갖고 평생 가치와 목표를 갖고 학습을 개선해나가는 메타인지등의 상위기술을 가르쳐야하지만 그것보다는 단순 암기를 쉽게 하는 하위기술만에 주목한다.

 대학도 큰 문제다 한국의 대학들은 글로벌 순위 자체도 낮은 편이지만 실제 글로벌 역량을 더욱 떨어진다. 우선 영어구사능력의 부족이다. 이것의 부족으로 인해 국제적 학술회의나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보이지를 못한다. 다음은 글로벌 역량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환경이나 내전문제, 자원문제, 개발도상국 지원문제등의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두지만 한국 대학들은 이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지막은 글로벌 협업이 없다는 것이다. 영어능력과도 관련이 있는데 다른 유수의 국제적 대학들의 학술교류를 거의 하지 않으며 과감하게 유명 교수를 초빙하지도 못한다. 몇몇 소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 외국 교수는 거의 왕따로 살게되며 어떤 교류도 갖지 못하고 떠나간다. 대학내엔 다양성이 크게 부족해 자기 대학 출신이 상당수이다. 이런 상황에 교류가 웬말일까. 

 폴김은 혁신을 강조하는데 그가 말하는 혁신은 세 가지 요건이 있다. 단순화와 맥락화, 지속가능성이다. 제3세계 국가를 지원하는데 뛰어난 정수기를 개발해서 보낸다. 하지만 메뉴얼이 복잡하다면 곧 사장된다. 버튼 하나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게 단순성이다. 맥락화는 그 지역의 문화, 유산, 언어, 관습을 고려한 지원이다. 맥락화 없는 지원은 거부된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단순히 말하면 가난한 농민들은 이를 거부한다. 하지만 농촌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게임을 가르친다는 플랫폼으로 학습프로그램을 만들어 접근한다면 받아들여진다. 마지막은 지속성이다. 혁신지원가들이 지원하면 그 순간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면 애써 만들어 놓은 지원기반이 무너지기 쉽다. 그들이 스스로 할수 있게 하거나 관련 단체를 조직해야 지속성이 생겨난다.

 폴김은 포켓스쿨과 외계인 교수법, 스마일프로젝트, 천일동화를 진행했는데 모두 저개발도상국을 돕는 혁신적 교육프로젝트다. 포켓스쿨은 모바일 기기에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프로그램들을 이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외계인 교수법은 아이들에게 마치 자신은 외계인인 것처럼 학습기기를 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기기의 구동법부터 안의 학습프로그램을 통한 학습까지 스스로 배워나가는 방법이다. 아마도 폴김이 어릴적 컴퓨터 가게의 구동장면을 보고 스스로 프로그램 작성법을 익힌 것에서 따온게 아닌가 싶다. 천일동화는 아이들에게 책을 주는 것이다. 과거 저개발 국가 아이들에게 맥락에 맞지 않는 신데렐라 같은 동화책을 주었지만 그들을 그것을 읽지도 않았고, 땔감으로 쓰기 일수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그렇게 아프리카, 혹은 아시아의 어려운 아이들의 동화를 묶어 자신들만의 책을 만들어준게 천일동화다. 마지막 스마일 프로젝트는 스탠포드에서 개발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학생이 학습한 내용에 대한 질문정도로 학습성취정도를 파악하는 프로젝트다. 질문의 수준이 높을 수록 학습수준이 높아진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폴김과 함돈균은 한국의 교육, 그리고 미래의 교육이 학생에게 자율권을 주고 배움의 주체가 되어 자기 능력을 실제로 배가시킬 수있는 디바이스와 테크놀리지가 개발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서 질문하는 힘을 어려서부터 길러 질문하는 시민이 되고 그래야 사회 각분야에 혁신이 일어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게 그들의 생각이다. 갈길이 멀게 느껴진다. 한국에선 형식만 민주주의지 질문 자체를 싫어하고 질문 보다는 내가 질문을 했을 때 지적받을 사항, 강의를 방해할 수 도 있단 생각, 나이에 따른 권위에 도전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하는 사회에서 기존의 질서를 의심하여 혁신과 발전이 일어나기에 사회가 더 나아가기 위해선 교육분야에서부터 피할 수 없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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