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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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리우의 또 다른 책이다. 이번이 세 권째인데 역시 단편 모음집이다. 장편은 없는 건가, 겉면만 보고 쉽게 알 수 없기에 좀 고민이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각각 장단이 있다. 단편은 다양함이 있고 작품이 많다보니 그래도 내 취향이 뭐하나라도 걸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분위기와 이야기에 들어가야 하니 그게 좀 귀찮다. 장편은 한번 빠져들면 긴 몰입감으로 책을 쭉쭉 읽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하나라 취향을 타주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튼 켄 리우의 책은 모두 재밌었지만 이번 책은 지난 주 읽은 책과 상당히 유사해서 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두 부분 정도가 인상깊었다. 하나는 멀리 떨어진 자식이 와병중인 부모를 원격으로 로봇에 접속해 로봇을 움직이며 병문안하고 간병하는 이야기였다. 이 로봇은 죄의식을 덜어주기 위해 개발되었다는데 그는 로봇을 통해 아픈 어머니의 똥기저귀 냄새, 죽음의 냄새등을 맡지 않아도 된다. 켄 리우는 마치 가족 중 중환자가 있었던 경험이 있는 것처럼 이 장면을 그리고 간병을 해야하는 가족의 심리를 잘 묘사했는데 이를 또 과학기술과 접목하니 탁월했다.

 다른 장면은 역시 인공지능 부분이다. 삼부작이 연결되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사람들의 뇌를 스캔하여 가상 세계에서 물질을 초월해 영생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하나 둘 현실 세계를 떠나간다. 처음엔 죽음을 앞둔 사람, 병에 걸린 사람들이었겠지만 나중엔 멀쩡한 사람들도 그 길을 따라간다. 그렇다보니 현실은 초토화된다. 발전을 하는 사람도, 도시를 관리하는 사람도, 공무원도 직장인도, 기업인도, 상인도, 농업인도 사라진다. 남은 사람들은 모든 도시 기반 시설이 망가진 상황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한 가족은 그런 삶은 영위하면서 진정한 삶은 물질에 기반하여 죽음을 맞는 삶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의 어머니가 병에 걸리고 아버진 자신과 그녀의 신념에 반하지만 그녀를 잃을 수 없기에 영생 시술을 강행한다.

 그리고 가상 세계로 들어간 어머니는 변화한다. 그녀는 남은 가족들에게 이 세계로 들어올 것을 권한다. 아버지는 그녀를 따라간다. 그리고 가상세계의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이들을 탄생시키는 방법도 알아낸다. 그래서 아이들은 물질 세계를 경험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구분된다. 가상세계의 아이는 살아가며 로봇에 들어가는 것을 통해 물질세계 지구를 구분한다. 가상세계에선 3-4차원의 낮은 차원을 무척 지루해하던 그들이었지만 3차원에 불과한 물질세계가 주는 느낌과 경험, 감각에 압도된다. 

 만약 인간 사회에 가까운 시일내에 이런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다. 인간이 사라져 문명은 초토화되었으나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지구 생물권은 놀랍게 회복된다. 그리고 가상세계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긍정하며 과거 야만적으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지구를 파괴했던 과거를 경멸한다. 그런데 그들의 가상세계도 아마도 거대한 데이터 센터와 통신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등의 물질세계가 필요하다. 그건 어떻게 된 것일까. 책엔 자세한 설명은 나오진 않는다. 하여튼 이 같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때 인류 대부분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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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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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리우를 알게 된 건 2018년 종이호랑이를 보고 나서다. 책을 보고 테드 창보다 더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과학소설을 쓴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신간을 발견하게 되어 재미있게 읽었다. 덥고 축 처지는 여름 날엔 역시 소설이 제격이란 생각이 든다. 켄 리우는 중국계이면서도 최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속세 국가 미국에 살다 보니 양자의 정체성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을 쓴다. 종이호랑이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그랬다.

 동북아시아의 과거, 한국, 일본 그리고 주로 중국을 그리고 첨단과학기술을 다루는 미래가 시공간배경이자 소재로 다뤄지는데 그러면서도 문학의 핵심인 인간의 고민과 삶이 핵심으로 그려져 작품에 재미와 더불어 상당한 여운이 남는다. 

 제목은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지만 책은 단편 모음집이다. 전작 종이호랑이는 종이호랑이가 대표제목임에도 좀 인상적이지 못했고, 한편에 불과했지만 이번 모음집에서는 신들을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가 연작으로 3개가 실렸고, 무게중심도 제법 잡혀있어 훨씬 타이틀로 그럴 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싱귤레러티를 맞은 초인공지능인데 인간이 순수하게 창조한 것은 아닌 뛰어난 인간 과학자나 기술자의 의식을 업로드한 인공지능이다. 이들은 그들의 재능을 이익측면에서 아쉬워한 기업에 의해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자신의 의사에도 반해 이러 되었다. 이런 신들은 처음엔 기업의 이익에 봉사하지만 차츰 자신들의 위치와 의식을 알게 되고 세상을 장악해 붕괴시킨다. 세상은 이들로 인해 거의 붕괴하여 상당히 후퇴하게 되는데 인류의 미래가 물질적 상황에서 정치, 사회, 공동체, 기술문명이 붕괴한 자연 인간으로 남을지 아니면 이들과 같이 무한한 포스트 휴먼으로 가상세계에서 한계없이 살아가게 될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인간은 이런 선택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며 켄 리우는 종이호랑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단편을 구성한 적이 있다.

 조선을 다루는 단편도 있는데 임진왜란으로 명의 만력제가 이여송을 조선으로 파병하여 구원토록 하는 내용이다. 물론 만력제는 명 역사상 제정신이 아니었고 제위기간 내내 직무유기에 가까운 생활을 한 황제지만 소설에선 상당히 영민하고 철학적인 젊은 황제로 나온다. 그는 명이 영락제 시절 세계를 서구에 앞서 정벌할 수 있었음에도 정신문명을 우선시 하여 이를 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만력제의 실상을 알고 있는지라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설사 그가 실제 영민하였다하더라도 속세의 제국을 이루고 있던 명제국이 아무리 도교 전통을 갖고 있더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상당한 의문이다. 뭐 소설은 소설이다.

 또 다른 인상적인 작품은 명청 교체기 시절 양주를 다룬 내용이다. 이미 북경이 함락되고 중국의 거대도시 양주가 만주족의 공세에 위기를 맞는다. 결국 함락되는데 양주의 유명한 기녀 하나가 기지를 발휘해 최대한 사람을 구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명청 교체기 청은 과거의 원과 마찬가지로 정복과정에서 상당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중국은 한족 중심 국가임에도 정복왕조들을 모두 중국의 정식 역사로 인정하면서도 못 마땅해하는 모순적 태도를 갖고 있는데 그런 면이 이 소설에도 나오는 것 같다. 청은 만주족 국가이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지금의 중국의 광대한 영토를 완성한 국가로 명이 만약 근대화 이전 중국의 마지막 국가였다면 지금의 티벳이나 신장 위구르, 만주지역은 모두 다른 독립 국가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복과정에서 청이 학살한 한족은 수천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양면성이 현대 중국 한족으로 하여금 이들에 대한 태도를 모호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켄 리우의 소설은 재미난 소재로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 외에도 간혹 매우 좋은 문장이 나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의 다른 책이 종이호랑이 이후 알게 모르게 국내에 더 발간되었다. 여름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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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7-10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단편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용을 보면 제가 주말에 극장에서 본 이번 <미션 임파서블>과 상당히 유사한 것 같습니다. ^^
켄 리우 소설 참 좋죠. ^^
테드 창과 비슷한 듯 좀 다른 듯 합니다. ^^

닷슈 2023-07-10 22:52   좋아요 1 | URL
미션임파서블 기대됩니다. 편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도 악당들 스케일이 커지더군요. 나라나 조직을 공격하는 수준에서 어느 새 세계가 타켓이 되었습니다.

패스파인더 2023-07-12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때가... 재밌게 봤는데 이 책도 기대가 됩니다. 주문했어요!

닷슈 2023-07-12 23:50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좋은 독서가 될겁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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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라는 제목은 충분히 실망스러웠다. 제목이 너무 최신 유행을 타는게 분명했고, 줄거리를 적당히 알아보니 많이도 여기저기서 우려먹은 선행성 기억 상실증이 주 소재였다. 분명 사랑하는 두 사람 중 하나가 이런 병에 걸려있을 테고 그와 관련한 좌충우돌과 사랑이 나올게 뻔했으며 읽어보니 역시나 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뻔함에도 소설이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감동도 충분했고, 작중 인물들도 재미났으며 간간히 참신하고 좋은 문장이 있었고, 결국은 아름답게 끝나지 않아 더 큰 여운을 남겨주었다.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고 했던가.

 소설은 고교 2학년에 서로 만나는 카미야 토루란 남자아이와 히노 마오이란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토루는 우울하고 내성적이지만 항상 청결하며 정감있고 정의감 있는 남자아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의 사정이 딱하고 괴롭히는 녀석들의 행위가 어이가 없어 차라리 자기를 괴롭히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집은 가난하다. 어머닐 일찍 여의었고, 어머니를 대신하던 누나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와 딸을 잃은 아버진 아버지 노릇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가장으로써 토루를 부양하긴 한다. 반에서 괴롭힘을 주도하는 악당 녀석은 토루가 다른 반의 히노에게 고백하는 것을 조건으로 그런 행위를 그만두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토루는 이걸 받아서 히노에게 고백하는데 웬일인지 히노가 이걸 덮썩 받아버린다.

 그렇게 둘의 연애가 시작된다. 연애는 조건이 3가지 있었다. 방과 후에 만날 것, 휴대전화 등을 통한 연락은 간단히 할 것, 그리고 진짜로 좋아하지 말 것이었다. 토루는 이런 이상한 연애를 그만 할까 하지만 아름다운 히노와 그녀의 매력에 곧 이끌린다. 사실 히노에겐 비밀이 있었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병인데 책엔 다른 아이를 구해주다 사고로 그리 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히노는 뇌에 문제가 생겨 기억을 저장하지 못한다. 즉, 영원히 사고 전날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히노는 매일 일기와 수첩, 방 여기저기 붙여놓은 종이로 스스로를 이어나간다.

 즉, 자신이 선행성 기억 상실증이고 이미 시간이 꽤나 흘렀으며 더 이상 무언가를 학습하지 못하고, 미래를 설계해 나갈 수 없음을 매일 아침 체감해야한다는 의미다. 스스로의 매일을 이어나가기 위해 기억하지 못하는 전날의 자신들의 메모를 봐야하기에 히노는 매일 일찍 일어난다. 사고 마지막 날 히노는 늦게 잠이 들었기에 충분히 자지 않고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자신에게 의문을 품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사실은 충분히 잤음에도 말이다. 

 그런 히노가 변화를 위해 남자친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이런 상황에서도 둘이 서로를 이해해가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진행된다. 책은 충분히 재미있는데 토루의 복잡한 다단한 가정사정이 여기에 얽히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얻어주기도 한다. 책은 상당히 흥행한 듯하다 . 책띠지에 이미 75만부가 팔렸다고 하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젊은 시절의 감성과 연애의 달콤함도 느낄수 있다. 그리고 내가 선행성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면 나는 하루하루를 처신하며 나를 이어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들게 된다. 

 하루하루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 나를 쌓아갈 수 없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직장에서의 일도, 책을 읽어나가는 것도 아무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또한 매일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있음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통사고 후 의식을 찾았을때 신체 한 부위가 장애를 입게 되면 큰 충격이 올텐데 그 짓을 매일 해야한다는 셈이다. 또한 먼 훗날 내기 이미 나이가 상당히 들었음에도 현재의 나는 과거의 어릴 적에 머물러 있다. 이건 정말 충격일 것이다. 병이라도 걸려 있어 매일 투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할 것이고. 하여튼 책은 재밌으며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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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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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의 종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마도 분명히 문학일 것이다. 소설이든 시든, 수필이든 문학은 가장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인공지능마저 문학을 창작할 미래에도 이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언젠가 인공지능도 자신이 또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학을 보며 이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책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보면서 나한테 문학이란 뭔지, 내가 왜 문학을 보는지 생각해봤다. 난 책을 꾸준히 보는 편이지만 문학과 지식으로 책의 주제를 아주 거칠게 두 개로 나눈다면 단연 나의 관심사와 분야는 '지식' 책 쪽이다. 매년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읽은 책의 70-80%는 항상 지식 책이 차지한다. 분야는 과학과 교육, 사회, 지리, 경제, 역사, 예술, 철학 등의 순이지만 사실 분야는 잘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보려고 한다. 

 내가 지식 책을 편식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그것을 알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주로 영감을 얻는 분야는 우주와 진화, 지리를 다룬 책들인데 인간을 설명하는 근원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지식 책을 읽을수록 아쉬운 점은 경제학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처럼 영혼을 뒤흔들거나 머리를 도끼로 깨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들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처럼 지식 책이 주는 효용은 상대적으로 분명한데 비해 문학은 개인적인 측면에선 아리송하다. 문학을 보면서 느낀 개인적 효용은 아무래도 재미였다. 책을 읽으면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과 이야기, 그것을 둘러싼 세계관에 빠져들었고 간혹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는 경우도 있었다. 천명관의 '고래'나 '삼체', '7년의 밤' 같은 소설이 그랬다. 그리고 현실이나 과거의 세태를 비판하는 책들도 나름의 재미를 주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도 그렇고 문학을 좋아하는 몇몇 분들은 아름다운 문장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실 문학을 많이 보지 못한 지라 그런 느낌은 많이 받아 본적은 없다. 물론 대단히 멋진 표현이고 많은 것을 담아냈으며 날카롭게 인생사를 파악한다는 느낌의 문장은 더러 본적은 있지만 내가 그런 것들에게 아름답다란 느낌을 받으려면 개인적 노력이 더 필요하단 생각이다.

 그래도 문학이 필요한 시간은 아름다운 문장이 제법 많았다. 문학을 보면서 이런 감수성과 생각을 할 수 있구나란 점에서 많이 배웠다. 볼만한 책들의 추천도 좋았다. 내가 본 것들은 조금 있었고 봤지만 보면서 저자 같은 관점과 생각은 미쳐 갖지 못했기에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나는 문학을 통해 내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과 만난다."라는 표현이 좋았다.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한 번쯤 가고 싶었던 길을 버린 적이 있다. 특히 어릴적에 그랬기에 더 가슴에 남는데 문학으로 그 가능성을 다시 지펴보는 것. 대리 만족이든 아니면 다시 불을 지펴주는 것이든 문학은 그런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문학 작품 속의 문제적 개인은 단순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라는 표현도 인상 싶었다. 나와 비슷한 문제적 개인을 책에서 만나면 왠지 너무 부끄럽고 피하고만 싶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그런 개인을 등장시키는 것은 그런 개인의 아픔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런 표현은 정말 정곡을 찌른단 생각이다.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누구에게든 상처를 입힐 것 같지 않는 사람조차도 끝없이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것의 생의 본질적 조건이다"라는 표현에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제 아무리 자기 성찰 지능과 대인관계 지능이 높아도 개인은 타인이 될 수 없기에 어떻게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문학은 그런 다양한 개인과 상황을 접해서 그런 상상력을 넓혀준다. 그렇게 개인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내가 주는 상처를 줄이고 받는 상처에 대한 내성을 문학을 키워주지 않을 까 싶다. 

 이 책은 소개한 표현 외에도 좋은 문장과 소개하는 괜찮은 문학 작품이 있다. 책에 나온 표현을 곱씹어 보며 관련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겉 같다. 나는 '소유의 문법'과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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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 Manifesto - ChatGPT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SF 앤솔러지'
김달영 외 지음 / 네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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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4.13일 KBS 다큐 인사이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주의 회차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소재가 바로 챗 GPT를 이용해 국내의 소설가들이 SF소설 단편 모음집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챗 GPT를 대부분 처음 접하였는데 초기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만들어가면서 챗 GPT가 사실 한 방에 소설을 길게 쓰진 못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뭔가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내진 못하고, 여러 개의 주제나 인물, 사건은 쉽게 많이 만들어 내나 개성있는 한방은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이구 동성으로 지적했다. 바로 이 점이 인간 작가가 챗 GPT를 이용해 채워나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책 '매니페스토'는 그렇게 발간되었다. 심지어 이 책은 표지도 인공지능이 만들었다. 작가들의 소설 내용과 구성의도를 입력하고 그에 따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여러 표지를 편집진이 고르는 장면이 다큐 인사이트에 나왔다. 하나같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었지만 편집자들은 너무 무난해서 이것다 하는게 없어서 고르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책 내용으로 돌아가면 이 책의 단편은 무척 재미나진 않다. 일단 내용이 실험적이어서 그런지 너무 짧은 편이다. 읽을 만 하면 대부분 끝인데 7편의 단편집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소설 한 편당, 작가들이 챗 GPT를 어떻게 활용하여 소설을 완성해나갔는지가 매 단편 바로 뒤에 수록되어 있다. 즉, 단편 7개와 챗 GPT를 통한 소설 구성장면 7개가 책에 수록되어 있는 셈이다. 챗 GPT를 활용하는 방법은 작가가 주제를 어떻게 잡았는가 그리고 작가가 어떤 활용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공통점은 챗 GPT가 써내는 분량자체가 짧아 여러 차례의 작업 지시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특히, 챗 GPT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은 잔혹하거나 어둡게 써내는데 약점을 보였다. 아무래도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어 개발사에서 차단한 듯 하다. 또한 어떤 이야기든 한 방에 써내는 분량이 적었는데 이 역시도 챗 GPT로 무언가를 길게 한 방에 생산할 경우 미칠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 개발사에서 막아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가들은 큰 구성을 챗 GPT로 부터 얻거나 또는 원하는 구성이나 인물, 플롯이 나올때 까지 다른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원하는 작업이 나올때까지 챗 GPT에게 명령을 구체적으로 다시 하달하고 정 안되면 작가가 채워 넣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역시 아직까진 그럴듯한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챗 GPT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다. 작가들은 챗 GPT를 좋은 어시스턴트, 구조나 캐릭터를 빠르게 편성하는 사람, 분량을 순식간에 채워주는 사람 등으로 파악했다. 

 이 책의 시도는 매우 재밌고 의미 있는 것으로 작가들 처럼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챗 GPT를 잘 사용하면 모두 효율적이고 완성도 있는 글을 구성하는게 가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글을 구성하는 능력이 매우 모자라다면 이와 같은 작업은 할 수 없고 챗 GPT의 글을 그대로 표절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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