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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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축학 개론은 로맨스를 다룬 영화로는 의례적으로 남성관객의 반응을 이끌어 낸 작품이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성실함을 보이는 연애물은 주로 여성의 심리를 자극하는데(남성은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연애 과정에서 남자 존재의 어리석음과 순수함, 젊음이 보이는 실수를 마음껏 드러내며 남성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남녀를 통틀어 어린 날의 연애는 큰 생각(미래에 대한 현실적 고민) 없음과 무수한 실수, 잘못된 생각,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후회가 많이 남는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어린 날의 연애물은 대개 재밌고 공감을 많이 이끌어낸다.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사놓고 무려 10년을 보지 않은 책이다. 보지 않은 건 제목이 주는 부담감(지극히 개인적이다), 심리의 자세한 묘사, 두께 때문이 아닐었을지. 최근 좀 시간이 나서 큰 마음을 먹고 펼쳤는데 이 책을 왜 그동안 보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들었다. 책은 생각만큼 무겁지도 공감이 어렵지도 않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책이 갖는 공감과 충분한 재미, 감동을 주었다. 다른 분야의 책은 10년 정도 묵으면 세월로 인해 뒤떨어짐이 발생하지만 이 책은 문학인 만큼 그런 것이 없었다.

 이 책의 주제는 20살의 사랑으로 지극히 큰 어둠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간의 이야기다. 어쩌면 둘 다 그렇기에 끌렸을지 모른다. 사실 둘은 사랑에 빠질만한 이렇다 할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특이하게도 비교적 잘생긴 남자와 상당히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을 다룬다. 연애물에서 남성은 좀 그렇다쳐도 여성의 외모가 못생긴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몇몇 순정만화에서도 여주인공을 못생긴 사람으로 설정하면서도 사실 준수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경우에도 주인공은 몇몇 계기로 제대로 꾸미거나 상당한 매력을 갖는다. 정말 외적인 매력이 전혀 없는 주인공은 사실상 본적이 없는데 이 책은 여주인공을 정말로 그렇게 설정한다. 어쩌면 영화 만화와는 다르게 직접 보지 않고 상상만 해도 되는 소설이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남녀 주인공 둘은 1985년에 만나 1986년에 헤어진다. 85년에 백화점에서 일하며 만나게 되는데 둘 다 큰 어두움을 갖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존재였다. 그의 아버지는 탈렌트로 평생을 무명으로 살았지만 뒤늦게 성공하며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새장가를 든 인물이다. 여주인공은 못생긴 외모로 태어나 이로 인해 평생 고통을 받는다. 어릴 적엔 주변의 남자들 커서는 외모로 인해 능력이 있어도 취직과 직장생활에서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백화점엔 요한이 있다. 이 인물 역시 그림자가 짙다. 자기가 일하는 백화점의 아마도 창업주였을 늙은이가 요한의 아버지다. 요한의 어머니는 그의 수 많은 여자중 하나였는데 버림받고 자살해버린다. 요한은 그래도 백화점 사주 일가의 챙김을 받아 강남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아파트를 갖고 살아가며, 백화점에 꽂아준 것도 그들이다. 처음에 그들은 요한을 그럴듯한 사무직에 배치했지만 요한은 견디기 어려워 지하 주차장에서 일한다.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을 보고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그녀를 돕다 갑작스레 친구를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남주의 마음을 꿰뚫은 요한이 둘을 연결시켜주고 그렇게 둘은 연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은 잘생기고 인기 많은 남자주인공에게 자신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을 잘 지내는 듯 했지만 남자는 대학을 가고, 여자는 백화점을 그만두고 사라져버리며 헤어지게 된다. 훗날 남자주인공은 여자의 주소를 알아내 편지를 보내 겨울날 버스를 타고 찾아가며, 그것이 이 소설의 첫 장면이다. 

 이후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첫 장면 이후, 나이가 들어 작가가 된 남자주인공의 장면이 등장한다. 86년의 헤어짐-현재-85년의 연애-이후의 과정이 소설의 순서다.

 소설엔 특이하게 남주와 여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중심인물이면서 그 둘을 연결한 요한의 이름만이 나올 뿐이다. 이 또한 특이한 점다. 소설은 재밌고, 80년대의 정서와 사회분위기 향취를 느낄수 있다. 앞부분엔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정서가 좀 독특해 몰입을 방해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부분은 적고 서사가 길어지며 읽기가 편했다. 괜찮은 소설로 누구나의 과거를 상기하며 재미나게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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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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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재밌었다. 주제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러하며 만들어낸 세계도 완성도가 이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전작 '지구 끝의 온실'도 환경과 관련한 주제였지만 이 책도 사실상 그렇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환경파괴를 만들어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듯 하기도 하다.

 현대 인간 사회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존재와 협력자로서의 인간 존재 중 사실상 전자가 승리한 상태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독립적 이성을 갖춘 존재로 인식하여 자연환경과 분리시켰고, 그들의 과학 역시 그러한 전제조건과 분리되고 독립적이라 생각하는 실험 속에서 발달했다. 반면 다른 지역은 좀 더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문명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형태로 존재하곤 했다. 

 하지만 서구 문명의 이룩한 과학 기술이 더 강력했기에 이들은 다른 문명을 침탈했고, 각성한 다른 문명은 서구를 지난 200년간 추종했다. 그래서 지금 거의 모든 인간은 개별자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환경을 이용한다. 그 결과 인간의 개체수는 상당히 늘어났지만 다른 생물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엄청난 환경파괴와 가해자인 인간 자신도 위협을 느낄정도로 온난화로 인해 지구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반면 가해자인 인간은 자신의 이런 가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온난화가 자신을 침탈하자 그제서야 미온치 않게 반응하는 형국이다. 이러서는 안된지 않을까, 인간 자체의 인식과 정체성이 협력자로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작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책의 세계는 암울하다. 언제인지 모를 근미래 우주로부터 일종의 균류로 추정되는 것들이 지구로 침투한다. 이들은 우주를 떠돌면서 그 행성에 자신들을 뿌리내는 종 같은데 균류들이 그렇듯 제한없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보다도 무섭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침투한다. 침투된 생명체들은 변이를 일으켰다. 특히 인간은 자아를 잃고 광폭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우주 균류들, 아니 범람체라 부르는 이것들이 내뿜는 포자롤 광증 아포라 부르면 두려워한다.

 결국 인간은 이상하게도 범람체들이 침투하지 않는 지하(오히려 좋아할 법한 장소인데)에 몇몇 기지를 건설해 간신히 문명을 유지해나간다. 하지만 지하도 아니아. 환기구나, 통로 등 갖가지 경로로 범람체는 침투해왔고, 그 결과 지하기지는 몇몇 구역을 상실하곤 했다. 그리고 기계는 범람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광증아포에 침투되 광증을 보이는 이들을 실시간으로 체포하는 구금 기계가 돌아다니고 있다. 

 주인공은 태린이라는 여자아이다. 광증에 지나칠 정도로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 태린의 꿈은 파견자이다. 파견자는 책 제목이기도 한데 이들이 하는 일은 그 위험한 지상으로 나아가 범람체를 채집하고, 인간의 영역을 늘리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일이 위험한 만큼 이들에게 높은 지위와 보수가 따랐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태린이 파견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이제프 파로딘의 존재때문이다. 그녀는 제1의 파견자로 태린이 어릴 적 보살펴주고 지상에 대한 꿈을 심어준 소위 멘토 이기 때문이다.

 태린은 파견자 시험에 임한다. 하지만 이즈음 태린에게 이상증세게 나타나는데 난데 없이 무슨 소리가 뇌리에 울리는 것이었다. 태린은 시험 중 이 존재로 인해 패닉에 빠져 이론 시험을 망치고 만다. 하지만 태린은 뇌리의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시작하며 그와 소통한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 가장 어려운 실전 시험을 1등으로 통과한다. 하지만 태린은 자신이 솔이라 명명한 이 존재에 의해 실전시험에서 포집한 위험한 범람체를 지하도시 한복판에서 풀어버리는 범죄를 범하고 만다. 

 그로 인해 태린은 추방의 위기에 놓이나 이제프가 나서 태린은 파견자로 임명하고 가장 위험한 실전임무에 투입하는 조건으로 그를 구한다. 그렇게 태린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향하고 범람체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그를 다루는 과정으로 치닿는다. 

 작가가 내놓는 결말은 좀 재밌기도 하고 고민스럽다. 어쩌면 그런 선택이 개별자로 변해버린 인간을 치유할 유일한 방법같기도 하다. 무척 재밌는 소설로 두껍지만 높은 가독성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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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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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발다치의 추리소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그 네 번째 작품이다. 1-3번째는 출간과 더불어 바로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시리즈를 지난 몇 년간 놓치고 있었다. 그 사이 이 작품을 포함해 세 권이 더 나온 것 같다. 모두 봐야겠다. 데커 시리즈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추리 소설을 많이 보진 않지만 그래도 데이비드 발다치와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이 재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도 볼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이 둘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에이머스 데커는 발다치가 만든 독특한 캐릭터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거구를 자랑하지만 뇌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고, 그 다친 뇌가 그를 변화시켜 경찰의 길로 이끈다. 지금은 FBI다. 그는 공감능력과 사회성을 상당 부분 상실한 대신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뇌를 갖게 되었다. 이는 수사엔 축복이기도 하나 지옥이기도 하다. 데커는 자신의 딸과 아내, 처남이 살해당한 장면을 영원히 기억하기 되었기 때문이다.

 4번째 시리즈에서 데커는 배런 빌이라는 곳으로 휴가를 가게 된다. 같은 FBI동료인 재머슨의 자매 집으로 휴가를 따라 나온 것이다. 데커는 재머슨의 조카와 놀아주다가 곧 폭풍우가 들이닥칠 것을 감지한다. 자매집 뒷에는 집이 하나 더 있었는데 데커는 그곳에서 보이는 불빛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다. 곧 폭풍우가 밀어닥치고 데커는 그 집을 향한다. 집을 급습한 데커는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희생자 둘 은 모두 기묘한 방식으로 살해당한듯 했다. 이상한 것은 무척 한적한 이곳에서 범인이 어떻게 이렇다할 목격과 흔적도 없이 두 개의 시신을 이 집에 놓았냐는 점이었다.

 휴가기간임에도 데커는 이를 수사하기 시작한다. 우린 휴가기간이 아니냐는 재머슨의 말에 데커는 바로 휴가니깐 이런 걸 한다는 식으로 응수한다. 사건은 점점 커진다. 사실 배런 빌에서 살인은 총 6건이 발생한 상태였다. 데커는 자신만의 뛰어난 능력을 이용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을 찾아나간다.

 마을 배런빌은 몰락한 미국의 한 소도시다. 과거 탄광이 있고, 제조업이 발달하여 마을 사람들은 대개 이 직업에 종사했다. 그리고 그 탄광을 발견해 굴지의 사업가로 부를 축적한 것이 배런 1세였다. 세계사의 흐름처럼 미국의 제조업과 석탄산업을 몰락했고, 배런빌의 사업들도 몰락해버린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활력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재기하지 못하고, 약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마을에서 6명이나 살해당한 것이다. 

 마을의 높은 곳에는 배런가의 후손을 살고 있다. 그는 대저택을 갖고 있지만 겉모습만 요란할 뿐 오래도록 관리가 되지 않아 폐가나 다름없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된데는 배런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아무 상관없는 후손 배런을 온 마을 사람들이 증오하고 괴롭히며 부자라 생각한다. 실제 배런은 무척 가난한데도 말이다. 

 데커가 수사한 사건엔 지역 경찰이 가세하고, 미마약수사국도 관여하게 된다. 데커가 발견한 시신 두구가 사실 미마약수사국의 수사관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마약과 배런가, 그리고 과거의 증오와 사건들이 얽혀 흥미진진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에이머스 데커는 습격을 당해 머리에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데커는 긴 숫자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시적으로 격게되는데 위험한 상황이나 살인사건 장면을 보면 나타나는 그의 공감각 색채도 사라지게 된다. 반면 데커는 기존의 능력을 크게 유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챙기고 공감해주는 사회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다. 데커가 변하게 되는 것일까? 아마 시리즈가 계속되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데커는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데 그 뒤에는 배런가와 관련한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긴장감 있고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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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06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이틀만 보고는 왠지 제 생각
이 나더라는 ㅋㅋ

휴가가 필요해~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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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은 뭘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김영하 작가에겐 인간의 필멸성이 그 대답인 것 같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 즉,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렇게 때문에 그 짧은 생애 동안 자신이 경험하는 것과 믿게 된 이야기에 많은 가중치를 두고, 치열하게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다 간혹 성공하고 대부분 실패하며 죽어간다. 심지어 후손에게 하고자 했던 뭔가에 대한 유지를 남기기도 한다. 

 이런 필멸성으로 인한 한계성, 그래서 주어진 시간에 일어난 행위와 경험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라질 미래에 인간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소설 작별 인사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작가의 하나의 대답이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21세기 말이나 22세기 정도로 보이며 공간적 배경은 통일 한국이다. 한국은 통일을 이뤘지만 고령화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로 지방은 크게 수축하여 쇠퇴해 버린 공간이 되었고, 정부가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지역은 서울, 인천, 부산, 평양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역은 인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반란 세력의 통치를 받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과학기술은 상당히 발전해 인공지능을 탑재한 다양한 휴머노이드가 이미 인간사회에 상당히 침투해 있었다. 개들중 일부는 사실상 인간과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혈액이 있고, 생활을 위해 음식물을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며, 잠을 자고 꿈을꾸고 성욕을 느끼고 땀까지 흘려 씻지 않으면 마치 사람처럼 더러워지며 노화도 겪는다. 

 이런 미래 사회 평양은 한 기업 연구 캠퍼스에서 아버지와 철이가 같이 살아간다. 철이는 바깥 세상에 관심이 많지만 아버진 바깥은 위험하기만 하다며 만류한다. 캠퍼스 안에서도 매우 제한된 곳에서 있던 철은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나왔다고 휴머노이드들에게 구류된다. 그 휴머노이드들은 미등록된 다른 휴머노이드들을 잡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철이를 휴머노이드로 인식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이 아무리 인간임을 주장해도 이 고철 덩어리들은 판별기의 결과 만을 들이대며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 철은 아버지가 자신을 금방 구해줄 것을 믿으며 이렇게 끌려온 휴머노이드들의 수용소에 끌려간다. 거긴 매우 다양한 휴머노이드들이 있었다. 예전 버전이고 전투용이기에 순수히 기계로 만들어진 것들, 그리고 인간과 유사한 휴머노이드들이 있었다. 최근에 정말 잘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들은 철이처럼 자신이 인간이라고 끝가지 주장했는데 그러면 기계파들은 그 휴머노이드의 팔이라도 뽑아 기계 섬유를 드러내 너 역시 우리 같은 로봇임을 보이곤 했다. 철은 그런 기계들을 무척 조심해야 했다.

 철은 수용소에서 인간인 선과 휴머노이드 민을 만난다. 민은 어린 휴머노이드로 입양되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여기까지 흘러들게 되었고, 선은 복제 인간으로 학대 받으며 생활하다가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죽어 수용소로 흘러들게 되었다. 선은 유일한 인간이기에 여기서 인간만의 특징은 거래를 하며 여러 기계와 휴머노이드들을 장악한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외부 상황이 악화되어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며 수용소의 전기와 식량 공급이 끊긴다. 부족한 자원에 로봇 끼리의 약탈과 파괴가 일어나고 셋이 탈출한다. 

 탈출한 셋은 달마라는 로봇을 만난다. 그는 인간은 결국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뒤를 이어받아 인공지능의 시대가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 자아는 모두 의미 없는 것이며 네트워크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통합된 하나의 지성이 탄생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말에 철은 그리고 선은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훗날 철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고 선과 민과 이별한다. 그리고 최첨단 휴머노이드로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철은 육신을 잃고 네트워크에 흘러 인공지능으로 자리하게 된다. 몸을 통해 얻었던 모든 감각과 경험이 사라지고 첨단 지능이 된 것이다. 그런 그는 마치 인간을 대변하는 것처럼 먼 훗날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 늙은 선도 다시 만난다.

 책에서 작가는 다소 낭만적이면서도 허무함이 느껴지는 결말을 맺는다.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인 만큼 책이 흥미 있게 잘 읽히고 어렵지도 않다. 결론 부분의 임팩트가 좀 아쉽긴 한데 개인적 생각일 뿐이다. 난 이미 나이가 많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해 내게도 생명체로서 필멸의 길과 인공지능과 통합한 영생의 길 중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택할지 고민이다. 이미 많은 영화와 책에서 그런 것을 다루고 있지만 필멸의 존재로서 그런 매체에서 내린 선택에는 인간으로서의 선택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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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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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단편 소설 집으로 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김연수인데 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분이다. 제목을 장식한 단편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이다. 내용은 좀 복잡한데 사람은 보통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거나 구성당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에 뭔가를 하기로 선택해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어떻게 보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하지만 과거에 얽매인 삶은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미래에서 과거로 삶이 진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미래에 파경을 맞은 부부가 있다면 과거로 진행하는 삶은 그들이 한창 서로에게 빠져 행복을 누리던 순간으로 향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삶이 바뀌어진다. 지금의 힘듬이 아름다운 과거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그들이 다시 희망을 얻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어이가 없기도 한 대목이지만 울림을 주는 측면도 있었다. 테드 창의 소설 당신의 인생 이야기에서도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지 않고 통으로 보는 외계인과의 만남을 통해 같은 시각을 얻은 한 과학자가 자신의 딸의 죽음으로 결혼이 파탄나고 큰 아픔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선택을 바꾸지 않고 꿋꿋이 알려진 미래로 나아가는 장면이 앞뒤 순서만 바뀌었을 뿐 이 대목과 비슷하다. 어찌보면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특정 시점 결말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을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또 하나 눈이 갔던 단편은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라는 소설이었다. 한국의 한 유명가수가 한일교류행사에 초청받고 그 주동인물인 일본인 사업가를 만나게 된다. 자신은 심지어 유명해지기도 전 일본에 단 한차례 간 것뿐이며 일본인과는 그 어떤 인연도 없는데 기이했다. 그 일본인이 가수를 찾은 이유는 자신이 곤경에 처해 삶을 마감하기로 했을때 자신이 들어간 카페에서 한 한국인이 신청한 일본음악에서 삶은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작은 행위, 심지어 선의조차 없던 우연한 행동이 한 사람의 삶에 긍정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단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는 의외로 좀 인상 깊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 내가 하는 작은 행위, 언어, 생각 등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린 항상 조심하고 배려하며 선의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래도 결과는 좋지 못할 수 있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얽혀있기 때문이다.

 책의 단편들은 하나하나 탁 하고 이해가 되기 보단 어렵고 여러 번 책장을 다시 넘기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작가는 90년대에 많은 상념과 애정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소설의 많은 시간적 배경에서도 그렇고 당시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각, 감성등이 소설에 그대로 묻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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