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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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니...... 책 제목이 이리도 나를 직접 찌르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내가 정말 관심갖고 봐온 책들은 이상하게도 나의 생활과 거의, 어쩌면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내 생활과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지 않는 책들에 더 많은 재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다니 갑자기 그런게 이상스레 느껴졌다. 물론 그건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들이지만.

 시에 대한 나의 수준은(수준이라 하기도 민망하지만) 사실상 고교 시절이 마지막이다. 시는 해석이란게 잘 안되서 늘 어려웠고, 하다못해 고전시가라도 나오면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시에는 뭔가 해석이란게 있었는데 그것도 참 재미가 없었고, 어쩌다 시를 보며 흥분하는 국어선생님이라도 만나면 정말 이해가 안갔다. 시의 맛을 모르고 살아온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시 전공자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공대생이 주 타켓이다. 그래도 나름 문과출신이라 조금 더 찔렸다. 

 책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시가 등장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46편의 시라는데 그래도 한국 주입식 교육과정이 한몫했는지 어디서 본듯한 느낌의 시가 절반을 된 듯하다. 작가는 나름 주제 12가지를 가지고 시를 엮어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 영화, 심지어 광고와 유행가 가사까지 동원해나가며 재밌게 독자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 나간다. 12개의 주제도 시적이어서 사실 읽어보고서야 무슨 내용인지 알수 있다. 저자가 교수이고 나이가 있으신지라 인용하는 광고나 유행가 가사, 영화들이 좀 많이 올드하다. 나 정도 나이도 간신히 알듯말듯 한게 말았는데 비교적 최근 예로 든 유행가 가사가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고 광고라고 등장하는 것 용각산 광고다. 강의시간에 이런 예를 요즘 학생들이 알아먹을진 미지수다.

 공감이 가는 주제도 있고, 아닌 주제도 있었지만 마음이 가는 부분이 두군데 있었다. '노래를 잊은 사람들'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분이다. 노래를 잊은 사람들 부분에서는 젊어서는 노래를 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속세와 자본에 찌들어 이젠 이야기를 하는 내용의 시가 등장한다. 노래는 순수한 열망과 개혁, 정의, 예술 이런 것들을 의미했을 것이다. 반면 이야기는 다커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노래보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식 이야기, 직장 이야기, 월급이야기 아마 이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노래보단 이야기가 어울린다. 노래를 잊은 사람들에 등장한 시중 인상적인 것은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였다. 내가 작가였다면 이 부분에서는 유행가로 넥스트 4집의 hero를 썼을 것 같다. 둘은 내용이 많이 비슷하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아버지라는 숙명과 굴레에 관한 내용이다. 이 부분의 시 작가들은 모두 불우한 삶을 산 아버지를 뒀다. 그래서인지 그 반동으로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반동 자체가 아버지의 그늘이자 그로부터 받은 숙명인 것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시에는 그렇게 아버지와 다르게 살아온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했고,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나와 좀 찡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여기 나온 시인들은 삶이 불우했다. 천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고, 가정형편이 좋지 못하거나, 결혼했음에도 다른 이를 사모하며 앓았거나, 건강이 나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또한 집안의 기대나 과거 부모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 예술가적 삶이 아닌 속세적인 삶을 억지로 살려고 노력한 경우도 많았다. 이런 불행이 그런 시들을 낳을 것일까? 과거 한 방송에서 노래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이별했다는 가수 김범수의 사례가 생각났다.

 책에서 인상적인 시인은 개인적으로 신경림과 기형도, 김광규였다.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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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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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는 다른 책들은 주변인들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달랐다. 일단 본가에 하나가 있었다. 낡고 오래된 이전 버전인데 부모님이 사놓으신듯 했다. 그리고 직장내 원어민도 이 책을 알고 있었다. 물어보니 오래전에 읽었고 미국에선 교육과정 내 교재로 많이 쓴다고 하였다. 그런데 작가가 인종차별과 관련되어 지금은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책이 분명한듯해 많이 이상했다. 답은 집 근처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주셨다. 이 책의 작가인 하퍼리의 이후 작품인 파수꾼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알순 없었지만 이 책에만 국한한다면 작가는 적어도 좋은 책을 썼다. 

 책의 배경은 1930년대인듯하다. 책 초반에 자꾸 남북전쟁이야기가 나와서 19세기인듯 했는데 히틀러의 유태인 탄압이야기가 나오고 아직 전쟁으론 치달으진 않은 듯 하니 시간적 배경은 아마도 1930년대 중후반일 것이다. 공간적 배경은 메이컴이란 곳인데.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면이나 읍소재지 정도 느낌이다. 메이컴이란 명칭이 친숙하지 않아 초기엔 영국인가 했는데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앨라배마란 곳을 찾아봤다. 미국 동남부였다. 간혹 주변에 미국의 50개주의 이름과 위치에 능통한 이들이 있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지리를 꽤 좋아하지만 이상스럽게 미국 주는 하와이와 알라스카만 확실히 안다. 그럼에도 앨라베마란 이름은 이상스레 친숙했다. 고민하니 오랜 멜로디가 머리에서 자동연주되었다. " 오 수재너 이 노래 부르자. 멀고먼 앨라베마나의 고향은 그곳"이란 부분이 있는 노래를 아마 중학교 쯤에 배웠던 것 같다.  제목은 오 수재너일테고 작곡가는 포스터였던 것 같다. 그 땐 음악교과서 전국공통인 시절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 노래가 기억날지 모를 일이다. 

 책은 핀치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은 4명으로 변호사인 아버지 애치커스 핀치, 아들 젬 핀치, 딸 스카웃, 그리고 집에서 가정일을 돕는 칼퍼니아가 있다. 뒤로 가면 멀리서 살던 고모가 아이들 양육을 돕기 위해 집에 들어온다. 아버지 핀치는 나이가 무려 50세다. 첫째인 젬이 고작 13세, 스카웃이 10세인걸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늦게 결혼한 셈이다. 당시라면 할아버지여야 했을 나이일 것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스카웃은 너무어릴때라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빠젬은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한다. 

 메이컴은 무척 시골로 핀치집안이 있고, 이웰집안이 있고, 커닝햄집안, 래들리 집안등이 있다. 각 집안 사람들은 각각의 묘한 특징이 있는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런 집안의 풍토가 집안 구성원들을 옥죈다는 점이다. 핀치가문 사람이라면 이러해야 하고, 커닝햄은 저러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임에도 미국에서는 아이의 생활경험을 중심하는 듀이의 교육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매우 보수적인 사회와 교육기관에 진보적 교육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듀이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아버지 핀치의 훌륭함이었는지 젬과 스카웃은 아버지의 영향아래 집안과 풍토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개성있는 존재로 자라난다. 

 젬과 스카웃에게는 딜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딜은 스카웃을 좋아한다. 툭하면 뽀뽀를 하기도 하고 이미 어린나이에 스카웃에게 결혼하자면 미리 찍어놓는다. 스카웃은 자신보다 싸움도 못하고 오빠에 비하면 터무니없게 작기까지한 이 딜이란 녀석이 이상스레 싫지 않다. 유년의 그들에겐 한가지 무서운 곳이 있었으니 래들리 집이다. 

 래들리 집안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돌았는데 부 래들리란 사람이 어렸을때 저지른 악행으로 아버지에 의해 집안에 감금되어있다는 것이다. 스카웃은 부가 살아있다 여기는데 그 이유는 죽어서 관으로 나온 사람이 없기 때문. 이런 래들리 집안에 젬과 스카웃은 몰래 침입했다 젬이 래들리 집안 사람들이 쏜 총에 놀라 도망가다 철조망에 걸려 바지를 잃어버리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젬과 스카웃에게 어느날 친구들은 아버지가 검둥이를 변호한다며 심한 욕을 곁들여 가며 놀려댄다. 실제 아버지 핀치는 마을의 흑인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야밤중에 사무실로 동네 백인들이 찾아와 소동을 벌이는 험악한 일도 겪게 된다. 

 사건은 이랬다. 이웰집안의 첫째 딸이 톰 로빈슨이 자신을 강간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 이웰은 격분해 보안관에게 톰을 고발하고 톰은 체포된다. 하지만 아버지 핀치가 재판과정에서 밝혀낸 진실은 달랐다. 출근길에 이웰집앞을 지나게 되는 톰에게 관심을 먼저 보인건 딸 이웰이었다. 그녀는 장녀에 아래로 7명의 동생을 보살피는 고작 20살의 처녀였고, 아버지 이웰은 술꾼에 가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없었다. 딸 이웰은 매일 같이 집앞을 지나가던 톰에게 이런 저런 도움을 요청하고 급기야는 연정을 품게된다. 그리고는 어느날 톰을 집안으로 유인해 키스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톰은 살기위해 이웰을 뿌리치고 도망간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장면을 아버지 이웰이 목격하게 되고 그는 딸을 무자비하게 폭행한후, 톰을 폭행과 강간죄로 고발한 것이다. 

 변호사인 아버지 핀치는 이러한 사건의 전말을 배심원에게 잘 드러내지만 배심원들은 톰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합리성과 이성보다는 인종차별이 더 우선시되는 시대였다. 이런 정의 실현의 실패는 스카웃,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젬에게 많은 상처와 가르침을 주게된다. 

 마을에서 거렁뱅이 취급받던 이웰은 이 사건에서의 승리로 자신이 마을의 영웅대접을 받을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시선은 더욱 냉랭해졌으며 패배한 아버지 핀치는 오히려 더욱 존경받고 명성이 높아진다. 인종차별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누가더 고매한 선택과 싸움을 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한 이웰은 아버지 핀치와 판결을내렸던 판사를 공격하고자 시도한다. 모두 실패하자 그가 노린 것은 핀치자매였다. 학교에서의 연극 연습후 귀가하던 핀치자매는 칼을 든 이웰에게 습격당하고,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을 구한 것은 전설속의 부 래들리였다. 처음부터 거의 막장까지 베일에 가려있던 부는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하고, 책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이상스레 스카웃과 젬이 갖고 있던 부가 괜찮은 사람일거란 환상은 신비스럽게도 맞았던 것이다. 

 무척 재밌고, 신나는 책이었다. 젬과 핀치의 기억은 어느새 독자인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주었다. 그들이 어른들과 부딪히는 것, 정의가 승리하지 못함에 분노하는 것, 나무 위의 집들, 친구들과의 주먹싸움, 무서운 곳이자 꼭 가고 싶은 래들리 집들이 보여주는 심상들은 누구나 유년시절에 갖고 있을만한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정의에 유난히 민감한 아이들의 눈을 통해 부정의를 보여줌으로써 부조리는 더욱 격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스카웃과 젬도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핀치가 있고, 고매한 가정부인 칼퍼니아와 삼촌핀치, 그리고 죽은 톰 로빈슨과 부 래들리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무슨무슨 집안 사람이나 ,뻔한 이야기나 하는 마을의 부인들처럼 자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카웃은 딜과 결혼했을 것 같다. 스카웃 정도의 왈가닥을 감당할 수 있는건 아무래도 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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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닷슈 2017-12-22 20:47   좋아요 2 | URL
커헉 어떻게 아시고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2017-12-23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7-12-23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eBook]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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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주인공이 모두 여자라는 점에서 재밌는 단편 모음집이었다. 생각보다 장르가 다양하고, 결말이 아리송한 것도 있어서 의외.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현남오빠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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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12-21 00:03   좋아요 1 | URL
여러단편이 제각각 엮여서 길게 말하기가 좀어려웠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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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를 보던 영화를 보던 이렇게 주인공이나 핵심인물의 나이가 어느덧 내 나이보다 아래거나 비슷하면 기분이 묘하게 착잡해진다. 이렇게 다루어 질 정도면 사회에서 꽤나 나이가 들었단 말인데, 나도 그렇겠구나 라는 심정이 들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주는 처음 느낌은 그러했다.

 책은 한국사회에서 그리 예전도 아닌 80년대 초반에 태어나 자란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성 때문에 겪는 여러가지 차별과 부조리가 담겨져 있다. 다 읽고 나니 느낀건 성차별이 이정도였나라는 마음과 아래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이게 가능했던건 책이 매우 화가나는 사안에 대해서 정말 무덤덤하게 다루면서 더욱 끓게 만들고, 김지영씨란 사람이 정말 흔한 그 이름처럼 내 주변 누군가이것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책에서 다루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한 지극히 평범한 한국 여성이 당한 성차별이 나에게 예상보다 새로웠던 것은 내 삶이  성차별 부분에 있어 단순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김지영과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변두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여성과 남성이 내삶에서 특별히 다르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집에는 여자형제가 없었고, 어머니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살림도 담당했지만 우리아버지가 워낙 가사분담을 잘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김지영씨의 어머니도 그랬듯 당시엔 그런건 당연한 것이었다. 

 학교의 여자친구들이 특별한 존재로 슬슬 느껴질 무렵, 이런걸 잘 간파한 어른들은 묘하게 남여공학임에도 이 시점에 남여반을 분리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남여를 다르게 느끼게 된 건 여성의 특별함보단 남성의 특별함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폭력성이다. 묘하게도 작년만해도 남여합반상태에서 조용하던 남자아이들이 일년만에 상당히 폭력적으로 변모했다. 호르몬의 변화일까, 아니면 짐승 같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사라져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수컷들끼리 모이니 새삼 동물스럽게 서열정리라도 필요해서 였을까

 하여튼 남고로 진학 후, 이런 폭력성은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 대학진학시점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성이 이성적으로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갖게되었다. 이 생각은 대학진학후 거의 확신처럼 굳어졌는데, 하필이면 진학학과가 남성중심의 경제학과였기 때문. 희한하게도 동기녀석들은 이상스레 어린나이임에도 하이에나 마냥 장차커서 돈벌궁리만 하고 있었다. 당시 나에겐 이 것은 폭력 및 서열정리의 고급버전 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답답한 학과생활에 들어간 곳이 교내 신문사. 여자 선배들이 많았다. 동아리가 신문사이다 보니 지적으로 세련되고, 심지어 운이 좋아서인지 대부분 아름다웠다. 역시 여성이 확실히 났구나. 라는 생각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질 무렵 군대를 갔다. 군대야말로 남성을 가장 남성스럽게 만드는 곳이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이성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이젠 강철수준까지 변모하였다. 

 그러다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여성이 다수인 곳이었다. 드디어 남성들에게서 해방이란 생각으로 상당한 기대를 하고 갔건만 희망은 오래지 않았다. 대학내 여성들이 오랜 나의 편견과는 다르게 상당히 이기적이고 보신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었던 여성들에게 마져 다소 실망을 하게 되니 이젠 남성들이 예전보다 났게 보였고, 사고 방식이 상당히 남여중심적으로 변모해갔다. 

 졸업후 취직한 직장 역시 그들이 그대로 모이는 곳이었기에 이런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직장은 여성이 다수인 곳이고 급여 및 대우에 있어 거의 모든 것이 완전히 남여평등적인 곳이다. 이렇게 삶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편평하기에 김지영 같은 삶은 내게는 마치 다른 나라의 삶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아내에게 넘겼는데, 후딱 다 읽고나서 아내 역시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괜스레 죄진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나에겐 아무소리도 안했다는 것. 내가 생각보다 양성평등적인 남편이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알라딘 달려라 책 이벤트로 받은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넘긴 것인데, 아내에게 다음엔누구에게 넘길 것이냐고 물어보니 직장 상사에게 드린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최근 그분이 성차별은 아니지만 부당한 요구에 대해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란다. 이런 좋은 책 달리기가 계속 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뭔가 바뀔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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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12-11 11: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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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노벨상 수상자의 책으로 솔직히 노벨상 수상으로 인해 보게되었다. 나도 그렇지만 노벨상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본 사람이 지금처럼 많진 않았을 것이다. 책도 2009년 판으로 보면서 약간 오래된 책의 느낌과 냄새가 감각을 자극했다. 책 뒷부분에 역자가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붙어있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은 공간은 영국의 남부,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2차대전 이후다. 물론 중간중간 회상장면이 적지 않아 사실상 시간적 배경은 1차대전 직후, 그리고 2차대전 전의 상황인 것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 

 내용은 스티븐슨이라는 집사가 달링턴이란 귀족의 집에서 생활한 내용과 관련한다. 그리고 집사 스티븐슨의 경력은 대개 달링턴 경을 모시고 달링턴 홀에서 주요 국제적 귀빈을 맞이하며 정점을 달렸었다. 달링턴 경은 노환과 정치적 판단미스로 우울한 죽음을 맞이하고 스티븐슨은 현재 새로운 달링턴 저택의 주인인 미국인 패러데이를 모시고 있다. 스티븐슨은 마치 집주인의 이름처럼 전기와 기술의 발전으로 저택에 필요한 노동인원이 크게 줄어들며 제법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모처럼의 휴가를 맞아 과거 그와 함께 일했던 켄턴양을 떠올린다. 웬지 빠릿빠릿했던 켄턴양이라면 지금의 부족한 인원으로 최적의 인적자원운영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 새주인은 여행의 기름값을 대준다고 했으며 아름다운 영국의 산천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직장에서 헤어진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스티븐슨과 켄턴은 서로 서신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물론 이건 최근 일이다. 웬지 서신에선 켄턴양을 달링턴 저택에서의 삶을 그리워만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여러가지 호기와 동기가 겹쳐 스티븐슨은 켄턴양을 만나러 향한다. 그 과정에서 켄턴양과의 과거 집사로서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침내 켄턴양을 만나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스티븐슨은 집사로서 상당한 프로의식을 갖춘 사람으로 자신의 아버지대에부터 집사를 수행하고 있는 집사 집안이다. 집사로서 그들의 의식은 상당히 강박적이기 까지 한데, 그의 아버지는 술에취해 자신의 주인을 모독하는 고급손님들을 집사로서의 품격으로 제압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노환에도 끝까지 집사직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질세라 스티븐슨 역시 달링턴 홀에서의 여러 국제행사를 잘 치뤄냈으며 함깨 일하게 된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일을 선택할 만큼 만만치 않다. 

 스티븐슨에게 품격이란 집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면서도 항상 이상적으로 삼는 것인데 항상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면서 사적으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버지의 임종에서도 행사를 치루기 위해 곁은 지키지 않았고, 심지어 아버지를 위해 부른 의사가 이미 아버지가 죽은 후에 도착하자 병환을 앓던 저택 손님에게 보낸다. 또한, 주인이 유능한 하녀 둘을 유태인이란 이유만으로 해고하려들자 잘못된 생각이란걸 알면서도 이에 순응한다. 그리고 달링턴 경의 판단이 옳지 못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이런 면 때문에 어찌보면 그에게 품격이란 집사직을 위해 개인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그가 가끔 겉으론 엄격히 집사직을 수행하기 위함이란 핑계로 업무와 관련하여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켄턴양이다. 젋은 켄턴은 상당히 일을 빨리 배웠고 총무로서 스티븐슨의 눈에 들게된다.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도 스티븐슨은 말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업무적으로 괴롭힌다. 마치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짖궃은 어린 아이같이. 켄턴도 만만치 않은지라 이런 스티븐슨을 무시하거나, 스티븐슨의 아버지가 노환으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런 갈등은 이상하게도 썸으로 발전한다. 둘은 어느새 바쁜 와중에도 정기적으로 업무를 빙자하여 티타임을 즐기는 사이로 발전한다. 물론 수년간 둘은 업무이야기만하며 둘 사이엔 어떤 애정행각도 어떤 관계의 발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스레 마음을 깊어진거 같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30줄이된 켄턴은 스티븐슨에게 사실상 마지막 제안을 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하지만 스티븐슨을 여전히 바쁜 집사일에만 집중한다. 

 약속 후 돌아온 켄턴은 만난 사람은 정인이고 그가 청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안에 대해 스티븐슨의 의향을 묻는다. 켄턴이 이정도까지 들이댔음에도 스티븐슨은 여전히 집사로만 남고 켄턴을 그대로 떠난다. 

 수십년이 흘러 여러 고장을 거쳐 다시 만난 스티븐슨에게 켄턴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솔직히 말한다. 자신은 사실 스티븐슨을 좋아했고, 그로 인해 남편과의 삶이 불행했다고. 하지만 세월히 흘러 계속 함께해준 남편을 어느덧 사랑하게 되었고, 이 곳이 자신의 자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항상 품격있던 스티븐슨은 이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픔을 느낀다. 그럼에도 스티븐슨이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었음을 인정하는 생각이나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다 읽고 나니 책 내용이 제법 재밌었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론 고루해보이기만 하는 스티븐슨의 많은 자기변명적 생각을 듣는 것도 제법 괜찮았고, 오묘한 켄튼 과의 관계도 재밌으며 1-2차대전과 관련한 세계사적 내용과 당시 귀족상류층의 생각역시 재밌는 부분으로 다가온다. 평생 스티븐슨은 농담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농담이란걸 아는 사람이었다면 모든게 바뀌지 않았을 런지.

 그러고 보니 일본인들은 유럽 귀족 사회의 집사라는 계층에 대한 묘한 동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다루지 않는 집사를 유독 일본에서는 소설, 만화, 영화, 심지어 게임등 굉장히 다양한 매체에서 자주 다룬다. 거기에 그 집사들은 하나 같이 주인의 뺨을 후려칠정도로 외모도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한 경우가 상당수다. 이시구로 가즈오를 일본인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역시 일본계인 것도 사실이기에 집사에 대한 일본의 이런 관심에 주목해보는 것도 재밌는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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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1-24 0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시구로 주인공들은 왜 다 이렇게 답답한 것인가 작가 탓을 하게 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