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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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는 다른 책들은 주변인들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달랐다. 일단 본가에 하나가 있었다. 낡고 오래된 이전 버전인데 부모님이 사놓으신듯 했다. 그리고 직장내 원어민도 이 책을 알고 있었다. 물어보니 오래전에 읽었고 미국에선 교육과정 내 교재로 많이 쓴다고 하였다. 그런데 작가가 인종차별과 관련되어 지금은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책이 분명한듯해 많이 이상했다. 답은 집 근처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주셨다. 이 책의 작가인 하퍼리의 이후 작품인 파수꾼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알순 없었지만 이 책에만 국한한다면 작가는 적어도 좋은 책을 썼다. 

 책의 배경은 1930년대인듯하다. 책 초반에 자꾸 남북전쟁이야기가 나와서 19세기인듯 했는데 히틀러의 유태인 탄압이야기가 나오고 아직 전쟁으론 치달으진 않은 듯 하니 시간적 배경은 아마도 1930년대 중후반일 것이다. 공간적 배경은 메이컴이란 곳인데.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면이나 읍소재지 정도 느낌이다. 메이컴이란 명칭이 친숙하지 않아 초기엔 영국인가 했는데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앨라배마란 곳을 찾아봤다. 미국 동남부였다. 간혹 주변에 미국의 50개주의 이름과 위치에 능통한 이들이 있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지리를 꽤 좋아하지만 이상스럽게 미국 주는 하와이와 알라스카만 확실히 안다. 그럼에도 앨라베마란 이름은 이상스레 친숙했다. 고민하니 오랜 멜로디가 머리에서 자동연주되었다. " 오 수재너 이 노래 부르자. 멀고먼 앨라베마나의 고향은 그곳"이란 부분이 있는 노래를 아마 중학교 쯤에 배웠던 것 같다.  제목은 오 수재너일테고 작곡가는 포스터였던 것 같다. 그 땐 음악교과서 전국공통인 시절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 노래가 기억날지 모를 일이다. 

 책은 핀치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은 4명으로 변호사인 아버지 애치커스 핀치, 아들 젬 핀치, 딸 스카웃, 그리고 집에서 가정일을 돕는 칼퍼니아가 있다. 뒤로 가면 멀리서 살던 고모가 아이들 양육을 돕기 위해 집에 들어온다. 아버지 핀치는 나이가 무려 50세다. 첫째인 젬이 고작 13세, 스카웃이 10세인걸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늦게 결혼한 셈이다. 당시라면 할아버지여야 했을 나이일 것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스카웃은 너무어릴때라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빠젬은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한다. 

 메이컴은 무척 시골로 핀치집안이 있고, 이웰집안이 있고, 커닝햄집안, 래들리 집안등이 있다. 각 집안 사람들은 각각의 묘한 특징이 있는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런 집안의 풍토가 집안 구성원들을 옥죈다는 점이다. 핀치가문 사람이라면 이러해야 하고, 커닝햄은 저러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임에도 미국에서는 아이의 생활경험을 중심하는 듀이의 교육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매우 보수적인 사회와 교육기관에 진보적 교육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듀이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아버지 핀치의 훌륭함이었는지 젬과 스카웃은 아버지의 영향아래 집안과 풍토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개성있는 존재로 자라난다. 

 젬과 스카웃에게는 딜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딜은 스카웃을 좋아한다. 툭하면 뽀뽀를 하기도 하고 이미 어린나이에 스카웃에게 결혼하자면 미리 찍어놓는다. 스카웃은 자신보다 싸움도 못하고 오빠에 비하면 터무니없게 작기까지한 이 딜이란 녀석이 이상스레 싫지 않다. 유년의 그들에겐 한가지 무서운 곳이 있었으니 래들리 집이다. 

 래들리 집안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돌았는데 부 래들리란 사람이 어렸을때 저지른 악행으로 아버지에 의해 집안에 감금되어있다는 것이다. 스카웃은 부가 살아있다 여기는데 그 이유는 죽어서 관으로 나온 사람이 없기 때문. 이런 래들리 집안에 젬과 스카웃은 몰래 침입했다 젬이 래들리 집안 사람들이 쏜 총에 놀라 도망가다 철조망에 걸려 바지를 잃어버리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젬과 스카웃에게 어느날 친구들은 아버지가 검둥이를 변호한다며 심한 욕을 곁들여 가며 놀려댄다. 실제 아버지 핀치는 마을의 흑인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야밤중에 사무실로 동네 백인들이 찾아와 소동을 벌이는 험악한 일도 겪게 된다. 

 사건은 이랬다. 이웰집안의 첫째 딸이 톰 로빈슨이 자신을 강간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 이웰은 격분해 보안관에게 톰을 고발하고 톰은 체포된다. 하지만 아버지 핀치가 재판과정에서 밝혀낸 진실은 달랐다. 출근길에 이웰집앞을 지나게 되는 톰에게 관심을 먼저 보인건 딸 이웰이었다. 그녀는 장녀에 아래로 7명의 동생을 보살피는 고작 20살의 처녀였고, 아버지 이웰은 술꾼에 가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없었다. 딸 이웰은 매일 같이 집앞을 지나가던 톰에게 이런 저런 도움을 요청하고 급기야는 연정을 품게된다. 그리고는 어느날 톰을 집안으로 유인해 키스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톰은 살기위해 이웰을 뿌리치고 도망간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장면을 아버지 이웰이 목격하게 되고 그는 딸을 무자비하게 폭행한후, 톰을 폭행과 강간죄로 고발한 것이다. 

 변호사인 아버지 핀치는 이러한 사건의 전말을 배심원에게 잘 드러내지만 배심원들은 톰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합리성과 이성보다는 인종차별이 더 우선시되는 시대였다. 이런 정의 실현의 실패는 스카웃,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젬에게 많은 상처와 가르침을 주게된다. 

 마을에서 거렁뱅이 취급받던 이웰은 이 사건에서의 승리로 자신이 마을의 영웅대접을 받을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시선은 더욱 냉랭해졌으며 패배한 아버지 핀치는 오히려 더욱 존경받고 명성이 높아진다. 인종차별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누가더 고매한 선택과 싸움을 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한 이웰은 아버지 핀치와 판결을내렸던 판사를 공격하고자 시도한다. 모두 실패하자 그가 노린 것은 핀치자매였다. 학교에서의 연극 연습후 귀가하던 핀치자매는 칼을 든 이웰에게 습격당하고,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을 구한 것은 전설속의 부 래들리였다. 처음부터 거의 막장까지 베일에 가려있던 부는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하고, 책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이상스레 스카웃과 젬이 갖고 있던 부가 괜찮은 사람일거란 환상은 신비스럽게도 맞았던 것이다. 

 무척 재밌고, 신나는 책이었다. 젬과 핀치의 기억은 어느새 독자인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주었다. 그들이 어른들과 부딪히는 것, 정의가 승리하지 못함에 분노하는 것, 나무 위의 집들, 친구들과의 주먹싸움, 무서운 곳이자 꼭 가고 싶은 래들리 집들이 보여주는 심상들은 누구나 유년시절에 갖고 있을만한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정의에 유난히 민감한 아이들의 눈을 통해 부정의를 보여줌으로써 부조리는 더욱 격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스카웃과 젬도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핀치가 있고, 고매한 가정부인 칼퍼니아와 삼촌핀치, 그리고 죽은 톰 로빈슨과 부 래들리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무슨무슨 집안 사람이나 ,뻔한 이야기나 하는 마을의 부인들처럼 자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카웃은 딜과 결혼했을 것 같다. 스카웃 정도의 왈가닥을 감당할 수 있는건 아무래도 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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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닷슈 2017-12-22 20:47   좋아요 2 | URL
커헉 어떻게 아시고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2017-12-23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7-12-23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