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방학이 없이 학교에 나가는 울 아들이,

공부가 힘들다는 얘기를 못하고...

"엄마는 왜 날 이 학교에 보냈어?"

하고 하소연을 하길래,

"왜, 학교가 어때서?

 너, 몰라서 그렇지...나름 명문이었다...!"라고 붇돋워주려하였더니,

"엄마, 옛날에나 배산임수(背山臨水)라서...풍수지리학적으로 좀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앞에 물이 없어서 전혀 아니거든~"

 

암튼, 난 '박준' 그의 시가 친근하다.

그가 시 속에서 얘기하고 있는 동네들이 하나 같이 내가 아는 동네여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지명들은 하나 같이 '물(水)'을 품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시가 하나같이 아련하고 눈물겹다.

그래서, 내맘대로 '물'은 치유라고 읽는다.

 

사실 이 시집의 제목으로도 쓰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어쩌면 시인은 '자서전을 써서(지어서) 며칠을 먹고 살았다'라는 의미로 썼을 수도 있을테지만,

난 내 맘대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처방받아 며칠을 먹었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며칠 전부터 친구가 아프다고 골골거린다.

난 추운데 옷을 여며입지도 않고 '불.금.'을 즐긴 탓이라고 이래저래 타박을 했지만,

실은 약 한알, 주사 한방 처방해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나 보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서로의 이름만으로 처방이 되는,

서로의 마음만으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한 걸까?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용산 가는 길 - 청파동1' 부분)

이 시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흡~'하고 울었다.

이 사내의 마음 씀씀이 때문에 울었다.

이 사내의 시가 '물(水)'을 품고 있어서 눈물이 난것이지 결코 내가 눈물이 헤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와 '도'라는 조사가 주는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였다.

'그대가 나를 떠난 것'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일때는 떠난 책임의 주체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 될때는,

그대를 떠나게 만든 그 이유로, 다른 이들도 떠나 보냈을 수 있는 것이 되니까...

일말의 책임을 나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그렇게 그대를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내 자신을 생각하면 아프지만,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은 것이다.

아니, 덜 아플 수 있다면...기꺼이~!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의 무릎에 밀어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지난 꿈 애기를 하던 어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어 노랗게 말랐다

이런 시를 읽으면 '같이 살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는' 시절에 만나지 못한 걸 서글퍼 해야 하나 싶지만,

그러다가도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내가, 또는 그대가 새가 아닌 것에 '무한 땡큐'를 날리게 된다.

울음에는

숨이 들어 있었다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바람은

바람이어서

조금 애매한

 

바람이

바람이 될 때까지

불어서 추운

 

새들이

아무 나무에나

집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

 

나는 오늘

('오늘의 식단 - 영(暎)에게', 부분)

그런 생각을 한다.

아파 본 사람만이 건강의 고마움을 알 수 있고,

상처에 아파해본 사람만이 사랑의 행복함에 감사할 수 있으리라.

슬픔을, 아픔을, 또는 그리움을 내 것으로 견디고 감당해 본 사람만이...그 뒤에 오는 모든 소박한 것들에 감사할 수 있으리라.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나는 아파해 보지 않은 사람 마냥 툴툴거리며, 꾀병의 마지막 연을 읊조린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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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호흡 사이를 참지 못해 후회하게 되지
    from 그냥 헛짓! 2013-01-30 11:42 
    내 하루는 언제나 다짐으로 시작해 결국 후회로 끝나지. 오늘 당신이 없는 사이, 누군가에게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았어. 그러고 싶지 않았어. 한 호흡만 참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온당한 말은 세상이 먼저 알고 수용하게 되어 있거든. 역시나 당신이 모르게 나는 당신을 아프게 했어. 당신을 아프게 해서 치욕스런 나의 하루가 지났어. 젊은 시인 박준은 이렇게 말하지.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한 죄로 나는 내
 
 
다크아이즈 2013-01-29 10:42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순간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을 대상이 제게 과연 몇 명일까 되내어 봤다는.
손 안에 꼽히는 걸 보면서 제가 너무 좁게 살았나 싶다가도, 이렇게 생겨 먹은 게 나란 존재구나, 하는
체념을 하게 되지 뭡니까.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을 대상... 하루 종일 박준의 이 구절을 되낼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페이퍼^^*

하늘바람 2013-01-29 13:46   좋아요 0 | URL
저도 따라서 흡하고 울었네요 그대도 나를~
그 '도'라는 조사에 언젠가 외로운건 내 천명이다라고 한 점쟁이 말에 대성통곡했던 생각도 나고
덕분에 오랫만에 좋은 시 많이 감상해요
아파본 사람만이
그래선가요
어디나 다쳐 속상할때 이상하게도 알라딘 들어오게 되고 꼭 님이 있어요

2013-01-30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1 0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02-01 20:53   좋아요 0 | URL
이 시집. 한번 훑었는데.. 천천히 다시 읽어내려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