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마리앙토아네트적인 발상이라고 하였더니,

정작 마리 앙토와네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던데,

역사적인 입장을 두고 그리 죽기살기로 달려들면 할말이 없을 뿐이고~--;

 

정작 '밥이 없으면 빵을 먹고 고기가 없으면 달걀을 먹으면 될 것이 아니냐'며 마리앙토와네트 보다 더한 얘기를 한 사람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있었단다.

(이 문장에 미루어, 난 '엉뚱하고 뚱딴지 같다'는 의미로 '마리앙토와네트 같다'고 하곤 했었는데, 이젠 자제하여야 겠다.)

나라는 형편없이 가난해 미국의 원조에 의지하는 거지꼴이었고,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가 우글거렸던 그때의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는데, 권좌에 앉아 간신들의 달콤한 말만 믿고 노욕을 부렸었다고 한다.('윤재근'의 '논어' 298쪽에 나오는 말이다.)

 

 

 

 우정, 나의 종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6년 5월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고백컨대 '우정, 나의 종교'를 읽을때만 해도 사람들이 슈테판 츠바이크에 열광하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우정, 나의 종교'를 읽으면서,

글솜씨가 너무 탁월하여 인물을 살아움직이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물의 본성을 가리운다고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의 앞 날개에선 슈테판 츠바이크를 일컬어,

'무의식 세계의 미묘한 움직임이라든가 이상심리, 성적 욕구 등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 분석이 뛰어난 작가'라고 하여 찬사를 더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다른 새로운 인물로 재창조되었다.

내 입장에서야,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도 추앙하는 정도가 심하다며 퉁쳐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맞물려 참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리앙토아네트를 '성녀도 매춘부도 아니었고, 유난히 영리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선을 베풀 힘도 악을 행할 의사도 없는 평범한 여인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듯 보이지만,

마리앙토아네트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라 한나라의 왕비였다.

 

이쯤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게 있는데,

그는 역사가가 아니라 전기작가라는 것이고,

이 글도 역사적 인물을 다루고는 있지만,

한꺼풀 걷어내고 보면 한편의 잘 짜여진 소설일 뿐,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은 없는 셈이다.

 

때분에 그녀를 왕비이기 이전에 한명의 여인으로 보고 접근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왕비가 아니라 한명의 여인이기만 했다면,

후세에까지 회자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이렇게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철없는 소녀가 프랑스의 왕비가 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의 내면적 성숙을 그린 심리소설에 가깝다고 하나,

그것은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쓰는 입장일뿐,

한 나라의 왕비라는 위치는 책임을 회피하고 비껴가려 한다고 해서, 비껴 갈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고리고릿적 외국의 왕비도 이렇거늘, 현대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암튼, 이렇게 한 사람을 성실하게 대변하고,

그리하여 매력적으로 재탄생시키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가 만들어놓은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쯤되니 사람들이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의지력이란 결국 육체적 활력의 정신적 표현에 불과하다. 이 비극적인 무능으로 인해서 모든 권력이 어떻게 부박스러운 한 젊은 여인의 손으로 들어가 경박하게 흩뿌려지는가를 재상들과 여제인 어머니 그리고 온 궁정이 절망적인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일단 결정된 힘의 평행사변형은 정신적인 상태로 굳어지는 법이다.(41~42쪽)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던 구절 또 하나,

숙명적인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와 같은 거창한 세계사적인 과제에 간여할 수 있다고는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대를 이해할 생각은 않고 오직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생각만 했다.ㆍㆍㆍㆍㆍㆍ그녀는 왕비로서보다는 아내로서 승리하기를 원했고, 세계 역사 속에서의 위대하고 광범위한 승리보다는 사소하고 여자다운 승리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117~118쪽)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그녀가 왕비보다 아내로 남고 싶어 했는지,

세계 역사 속에 위대한 왕비보다는 여자로 남기 원했는지, 따위는 후대에 동정하는 말들 중 하나였을뿐,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 대통령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했다던데,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일지 어떨지는 후에 우리가 동정으로 할 수 있는 말들이고,

대통령 변호를 맡은 그가 국민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되도록 제대로된 자기 편 하나 만들지 못하다니,

변호를 맡았다는 사람마저 이렇게 찌질하다니,

노년의 인생이, 삶이, 참 불우하고 쓸쓸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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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8 14:39   좋아요 1 | URL
오늘은 예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유체합체를 하셨는지, 슬금슬금 계엄령 얘기도 나오더라구요.
정말 까도 까도 그 속을 알 수 없는게 대왕 양파이지 싶습니다~ㅠ.ㅠ

한수철 2016-11-17 15:33   좋아요 0 | URL
박근혜의 변호사는 자기 상황에 유리하게 말과 문맥을 끼워 맞추는 비열한 자군요. 물론 이런 자는 종내 같은 방식으로 당하기 마련이죠.

박근혜가 이번에 혹여 방어를 잘해 퇴임을 한다손 쳐도(안 돼!!!!) 이후 말년은 내내 황폐할 것입니다. 죄과를 치르고, 남은 여생이라도 마음 편히 살지. 역시 생각이라는 게 없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아, 책 소개 감사합니다. 도서관에 가게 되면 찾아 보려고요. 잘 읽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8 14:44   좋아요 0 | URL
퇴임을 하든지, 하야를 하든지...다 좋으니, 어여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내려오셔도 잠이 보약이니 잠도 넉넉히 주무실 것이고,
시크릿가든의 길라임 놀이도 하셔야 할테니까,
심심하지는 않으실텐데 말예요.

전 별로인데, 슈테판 츠바이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구요.
좋아하는덴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에요~^^


감은빛 2016-11-17 15:39   좋아요 0 | URL
저도 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이유의 장미] 책을 사두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 글을 보니 빨리 읽고 싶네요.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왕비가 또 뭘 얼마나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어차피 왕도 귀족들 눈치를 보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못하고 살았을테니.
물론 그럼에도 그들이 가진 권력이 어마어마했고, 대부분은 원하는 대로 했겠지만,
남성인 왕과 달리 여성인 왕비는 서민들의 삶에 대해 알 수도 없었고,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정보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양철나무꾼 2016-11-18 15:07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게되면 루이 16세가 합바지 저고리로 나와요.
이런 경우,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왕을 보필하든, 왕 대신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든...하는게 긍정적인 경우의 수일텐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치고 국민들에게고 관심이 1도 없었죠.

마리앙투와네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왕비이기 이전에 여자라는 면을 강조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정유라가 시련을 견딜 나이가 아니라던 그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고 말예요.
외려 혼란스럽고 복잡합니다.

님의 말씀처럼, 왕비가 서민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고 하더라도...쉽게 정당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싶습니다.

감은빛 2016-11-18 15:4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뭐 그래서 잘못이 없다 그런건 아니고,
상대적으로 더 나쁜 놈이었던 왕과 귀족들보다,
왕비가 더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는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6-11-18 15:49   좋아요 0 | URL
글은 이래서 제한적인것 같습니다.
뜻을 다 전달하지 못할수도 있고,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저도 님의 의도대로 읽었습니다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AgalmA 2016-11-17 17:4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왜 구하기가 그리 어려운 건지요.... 마리 앙투아네트 빵 타령과 배틀할 만한-_-....

유영하 변호사 BBK 사건 때 미국에 김경준 만나러 간 변호사! 이명박근혜 이 고리 속에서 한국은 우주미아 같기만 하니...

양철나무꾼 2016-11-18 15:1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예요.
정말 구실을 만들어서 억지로라도 이해해 드리고 싶은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계염령 얘기도 나오더라구요~ㅠ.ㅠ

북프리쿠키 2016-11-18 15:52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마리 앙뚜와네트 이 책 장바구니 넣어놓고 째려보고 있는데... 또 질러야겠습니다. ㅋㅋㅋ 양철나무꾼님 저 좀 말려주세요 ㅋㅋ

2016-11-1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1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21 17:30   좋아요 1 | URL
전 츠바이크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는데,
좋았던 점은 전기 작가이지만, 사람을 영웅이나 위인이 아닌 살아 피 흐르는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고,
별로였던건 그런 위인들에게 너무 몰입과 애정을 하다 보니, 별로인 사람들도 멋져 지는 그런 점이었어요.

외국에서 온 왕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님의 얘길 들으니,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군요.
시야가 넓어지고 밝아지는 느낌이랄까,
이런게 이곳에 글을 올리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여 체력을 탕진하고,

방전된 체력을 회복하겠다고 어젠 하루종일 방바닥과 딱 달라붙어 시체놀이를 했다.

잠이 보약이란다.

 

최근 박 대통령과 만난 종교계 인사는 "박 대통령이 예상과 달리 상당히 밝은 표정과 맑은 눈이었다. 그래서 '잠은 잘 주무시나 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미소를 지으며 '잠이 보약이에요'라고 하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는 보도도 있던데,

잠이 보약이라는 걸 모르는게 아니라,

너무 피곤하니 잠조차 오지 않아서 퀭한 채로 출근한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밝은 표정과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니를 향하여 괜히 약이 오르고 빈정이 상하는 거라~--;

 

최진석이 쓴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을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데나 펼쳐서 읽는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친구는 최진석의 노자는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거라고 하던데...그건 잘 모르겠을 뿐이고.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01년 12월

 

 

노자를 읽을 때 범하기 쉬운 오류 가운데 하나가 노자가 말하는 모든 가치를 상대적 차원으로 해소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장자에게는 어느 정도 정당하나 노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제 2장에서 선과 악, 미와 추를 상대적인 관계 속으로 해소하려는 시도들을 이미 비판한 적이 있다. 즉 악이 있어야 선도 있고, 추함이 있어야 미도 있다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사람에 따라 추하게도 받아들이고 아름답게도 받아들인다는 등의 태도들이다.

  그러나 노자가 지향하는 가치는 어느 한쪽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즉 경솔함보다는 중후함, 조급함보다는 안정됨, 추함보다는 아름다움, 악보다는 선, 남성성보다는 여성성, 강함보다는 부드러움, 굳셈보다는 약함, 채움보다는 비움, 불보다는 물 등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어느 범위 안에서는 반대편과의 '관계'속에서 기능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ㆍㆍㆍㆍㆍㆍ

노자는 이 세계가 대립항들끼리의 상호 꼬임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 反이라는 운동경향을 매개로 대립항들이 서로 꼬여서 존재한다는 원칙을 도라는 글자로 나타낸다. 그런데 이런 원칙 아래 존재하는 세계나 이런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의 태도는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노자가 분명히 지향하는 어느 한편의 모습 즉 낮고 부러우며 여성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ㆍㆍㆍㆍㆍㆍ즉 가치론적으로 중립적이며 존재의 영역에만 관여하는 것들이다. 노자의 철학을 잘못 받아들여 가치 상대론으로 오해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여기서도 노자는 중후함이 경솔함의 근본이 되고, 안정된 것이 조급함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일반 원칙을 제시한다. 그런 후에 그것을 모델로 하여 통치자는 무기와 양식을 싣고 자신을 따신을 따르는 무거운 수레[輜重]곁을 떠나지 않는다. 즉 무슨 일을 하든지 중후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화려함이 그를 둘러싸고 있어도 그는 조용한 곳에서 초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중후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228~229쪽)

 

그동안 노자의 도덕경을 해설해 놓은 책을 판본을 바꿔가며 들이고,

개 중 몇 권은 읽는다고 이렇게 저렇게 들추기도 하였지만,

매번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었다.

그러던 차에 강신주를 읽으면서 별개의 노자와 장자를 놓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뭉뚱그려 생각하기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그동안 나는 장자는 물론이거니와 노자도, 그 어떤 것들도...

기준을 정하고 거기서 비롯함이냐 말미암음이냐를 얘기하는 가치 상대론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것은 어떤 대상과 대립항들의 상호 꼬임인데,

이런 대립항들이 서로 꼬여서 존재하는 원칙을 '도'라는 글자로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다.

 

이걸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높음의 반대 개념으로 낮음, 불의 반대 개념으로 물...따위를 얘기했었고,

그걸 중간의 어떤 기준점을 놓고 비롯함이나 말미암음이나의 문제로 봤었는데,

그게 아니라,

높음과 낮춤이 서로 꼬여 존재하는데 그걸 '낮춤'으로 얘기하고,

불과 물의 꼬임을 '물과 같음'으로 얘기하는 식이다.

그러니 '낮춤'과 '물과 같음' 따위가 노자가 말하는 '도'인 것이다.

 

놀라웠던 또 한가지는,

공자, 맹자 따위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통치 이념으로 익히 알았지만,

노자 마저도 '통치자는 어떠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그런 것인줄은 몰랐다.

노자의 사상 안에서 통치자들에게 조용한 곳에서 초연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나,

자신을 고孤(부모가 없다는 의미), 과寡(남편을 잃은 홀어미), 불곡不穀(不善하다는 의미) 등으로 부르게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을 낮추기 위한 외적인 장치들이라는 걸 보면,

노자가 말하는 도란 이런 것임을 알겠다.

 

하긴 나도 노자를 들먹일 깜냥은 아니고,

지금 그니에게 통치자의 통치 이념 따위를 기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 포토 에세이
 KBS 구르미 그린 달빛 제작팀, 김민정.임예진 극본, 김성윤.백상훈 연출 /

 열림원 / 2016년 11월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박보검과 김유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구르미 그린 달빛'을 봐도 그렇고,

수렴청정이나 세도정치를 하게 되면 왕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데,

직접 순실의 코앞에 그것들을 갖다 바치고,

밝은 눈과 맑은 표정으로 '잠이 보약'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 구조는 어찌된 것일까?

뇌가 없다고 눈물 짓던 허수아비나, 대통령 코스프레 놀이를 즐긴 찌질이나 지진아는 아니었을까?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동화를 보면,

호기심 많은 공주가 물레에 찔려 영원한 잠에 빠진 것을,

잘 생긴 왕자가 나타나 입맞춤을 해줘서 잠에서 깨어난다.

 

잠이 보약이라는 또 다른 공주님은 호기심도 전혀 없는데다가,

한번 잠에 빠지면 그 미모를 보고 나타나 입맞춤을 해줄 왕자님 따윈 없으니,

옛날식 물레만 구하면 안성맞춤인데 말이다.

 

옛날식 물레가 요원하다면,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을 "찔끔찔끔' 아껴 마시면서 잠을 청해야 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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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4 17:28   좋아요 0 | URL
잠자는 청와대의 공주가 잠이 덜 깬 것 같습니다. 아니면 눈치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요.

양철나무꾼 2016-11-16 09:24   좋아요 0 | URL
잠이 덜 깬게 아니라, 잠에 취하는 마법에 걸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길라임이라니요~, 췟~(,.)

지금행복하자 2016-11-14 17:36   좋아요 0 | URL
잠이 보약은 맞는데 어떻게 자느냐가 문제일듯 해요. 이런 판국에 잠을 잘 수 있는 그 멘탈이 존경스럽기까지 해요~~

양철나무꾼 2016-11-16 09:2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물레에 찔렸든지,
마녀들의 마법으로 잠에 빠진것이라고 돌려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비가꾸는꿈 2016-11-14 18:33   좋아요 0 | URL
함께 하지 못 했지만 응원하고 마음 만이라도 힘을 보탭니다. 공주님은 원래 그런 분이었죠;;; 안타까울뿐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6 09:31   좋아요 0 | URL
저도 남편이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참석하지 못했을겁니다.
님과 같은 마음과 마음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ㅅ!

암튼 원래 그런 분인 것을 우리가, 우리 중의 몇명이 과대평가했었나 봅니다~ㅠ.ㅠ

푸른희망 2016-11-14 18:48   좋아요 0 | URL
보약도 잘못쓰면 부작용이 어마어마하지요 잠도 너무자면 온몸이 결리거든요...
그 공주는 잠이 덜 깼든 눈치가 없던 기본적으로 사악하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6 09:38   좋아요 0 | URL
양약은 고어구나 이어병이요 충언은 역어이나 이어행이라는데 말이지요~^^

책읽는나무 2016-11-14 19:33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은 병원을 가셔야할 것같습니다
이상해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병원을 안가시니 자꾸 증세가 더 심해지시는 듯ㅜㅜ

양철나무꾼 2016-11-16 09:42   좋아요 0 | URL
병원을 가시긴 하셨는데, 길라임으로 가셨더라구요~^^
그럼 그 남자 배우랑 막 영혼이 뒤바뀌곤 하시는 건가요???^^
...

2016-11-14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6 09:47   좋아요 1 | URL
네, 노자, 장자 이론은 어려운 것 같아요.
원래도 어려운 이론이니 많은 사람들이 해석해 놨을거고,
그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변용되고,
거기에 그 사람들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바뀌고 한 걸 거예요.
그 복잡다단한걸 우리는 강의로 듣는 것도 아니고,
책으로 퉁치려니 더 어려운 것일테구요.

전 요즘 감산덕청이랑 비교하며 읽는데,
최진석이 그래도 열배쯤 쉬운 것 같습니다~^^

오늘은 더 쌀쌀한 것 같아요, 님도 건강하셔야 해요~^^

2016-11-16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7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쌩 2016-11-16 20:34   좋아요 0 | URL
강신주도 노자를 통치철학으로 설명했던거 같은데 동양철학은 ‘같기도‘ 갖은 해석이 많아 난해한것 같습니다.
요새 주옥같은 어록들이 쏟아져 나오는군요. 잠이 보약이란게 사실 틀린말은 아닌데...웃프네요.

양철나무꾼 2016-11-17 11:54   좋아요 0 | URL
그쵸~^^
강신주도 논문을 노자, 장자로 썼으니...나름 일가를 이루었을텐데,
강신주에서 특이했던 건 조삼모사 얘기였거든요.
최진석은 그런 얘기를 도표화해서 의미가 확연하게 들어오는게 장점이예요.
심재원이 번역한 감산덕청의 노자도 있는데,
그건 노자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려 해서 그런가 제겐 더 어렵더더라구요.

그렇네요, 주옥 같은 그 어록들만 좇아도 하루가 금방이예요.
이래 저래 책볼 시간이 줄어들어요~--;
 

그렇지 않아도 멘.붕.인데,

이런 넘은 시선집중에 왜 나오는건가 모르겠다.

어차피 중앙일보 따윈 읽지도 않지만서도,

논설위원이란 존칭이 무색하다.

 

11월 4일 신동호의 시선집중. (==>링크)

11/4 (금) "'최순실 정국'의 해법과 전망"
-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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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04 11:26   좋아요 1 | URL
세월호에서 집단 트라우마, 메르스에서 집단 안전 위기감, 지금 순실사태에서는 정치 공황상태...ㄷㄷㄷㄷ

양철나무꾼 2016-11-04 11:39   좋아요 2 | URL
모든 사태에서 핵심은 박근혜인데,
핵심은 빠지고 논란만 가중시키는 꼴이네요.

어찌되었건,
`멀쩡한 농민이 죽어도 된다`는 넘을, 참~(,.)

AgalmA 2016-11-04 12:27   좋아요 1 | URL
저 패널로 해법 전망? 말세 해법으로 풀어가실랑가.....

양철나무꾼 2016-11-04 12:34   좋아요 1 | URL
완전 막장 토론이었어요. 끝부분에 `멀쩡한 농민이 죽어도 된다`에서 신동호가 급마무리 마이크를 내리더라구요.
내내 마음이 심란하고 정신이 어수선해 죽겠습니다.

AgalmA 2016-11-04 12:34   좋아요 1 | URL
전 김진 위원 나오면 안봐요. 너무 혈압이 올라서.

양철나무꾼 2016-11-04 12:39   좋아요 1 | URL
며칠전 진중권이랑도 완전 난리 아니었더라구요. 그래야 재밌으리라 생각해서 여기 저기 등장하는건지 모르지만...정신건강에 안 좋을테니 저도 이제 안 보고 안들을래요.
옛날엔 시집 살이 3년 귀막고 눈감으랬는데, 이젠 정치판을 향하여 그리하여야 하려나 봅니다~ㅠㅠ

AgalmA 2016-11-04 13:15   좋아요 1 | URL
요즘은 김어준의 뉴스공장(tbs 아침 7~9)이 대세 아님까. 특종 팡팡~ 조국 교수, 박원순 시장 나와서 박근혜 하야를 얘기하는 속시원함! 왜 영양가없는 신동호를 듣고 피폐해지세요~ 적진 동태 파악도 좋지만 시간이 넘 아까움.

양철나무꾼 2016-11-08 22:21   좋아요 2 | URL
전 그런 의미에서 악마기자 정의사제를 장만했습니다, 음화화화~^^

cyrus 2016-11-04 16:51   좋아요 1 | URL
권석천 논설위원과 그 외의 몇몇 논설위원들은 한쪽 방향에만 치우치지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중앙일보에 출입한 일이 여러 차례 있어서 그분들의 진짜 생각들을 들어볼 수 있었어요. 김진 논설위원이 중앙일보 대표 논설위원으로 많이 거론되긴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진 논설위원 때문에 중앙일보 좋은 이미지 다 깎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6-11-08 22:24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전 아무래도 cyrus님보다는 올드하니까 조중동을 묶어서 생각하곤 했는데,
님의 이 댓글을 읽고보니 그냥 뭉뚱그리면 안 되겠네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신 댓글, 감사합니다~(__)
 

누가 내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겠다.

독서 기록을 왜 남기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그냥' 이라고 대답해야 겠지만, 이건 '그냥'은 아니다.

소싯적 기억력이 좋을때는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도 책을 읽으면서의 감정 변화나 읽은 후의 느낌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서 기억하기가 힘이 든다.

 

 

 

 

 

 

 

 소중한 경험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5년 7월

 

 

 

'김형경 독서성장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있는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시간과 공간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와있는 독서나 독서모임들은 어떤 방향성이나 지향점 따위를 가지고 있는 듯 여겨졌고,

게다가 그것도 독서 자체보다는 독서나 독서 모임을 통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듯 하여  씁쓸했다.

 

생각이 이리저리 딴방향으로 튀는 것이 짬뽕공 같은 나는 요번에도 이책에서 애기하는 것과는 다른 엉뚱한 것을 느꼈는데,

책을 성찰하는 책읽기, 치유하는 책읽기 등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가, 

책읽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그냥 내멋에 겨워, 내 방식대로 읽으면 안되는 것인가 따위를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타인으로 하여금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드는 재능과 더불어,

타인의 비밀을 듣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순간 잊어버리는 망각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프롤로그 말미에서 책으로 엮으면서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다고 하는 걸 보면,

과연 망각의 능력을 두루 갖추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쩝~(,.)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는 차치하고,

독서토론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귀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만 아프고 힘든 것이 아니라는 동료 의식을 더하여.

 

 

그런데 김형경은 책을 만들기 위한 소재를 수집한 것 같다.

치고 자기는 빠져버린다.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귀가 필요하지도 않고, 자기만 아픈 것이 아니라는 동료의식도 그녀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절실하지가 않다.

절실하고 치열하지가 않으니 타인을 위로 할 수가 없다.

애벌레가 크기 위해서 누에고치를 벗어놓고 탈피를 하듯 그렇게 자신은 성장한다.

 

책 내용에 무의식을 자극당하면 미처 몰랐던 분노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때도 그 감정이 자기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이상한 꼬투리를 잡아 책에게 화를 낸다. 이 책은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는 둥, 표지가 촌스럽고 편집이 나쁘다는 둥 심지어 책이 시시하다거나,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화내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내면 감정을 책과 저자에게 투사하는 행위이다. 독서모임에서는 그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 배면의 감정을 알아차리도록 이끈다. 사실 삶에서 만나는 타인이나 경험에 대해 판단이나 의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이라면 치유 노력이 필요없는 상태일 것이다.(36쪽)

 

독서나 독서모임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하고 그걸 성장과 동격으로 취급하는 그녀를 탓하려는건 아니다.

독서 모임이나 독서토론은 차치하고,

그냥 묵묵히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개인의 기억을 위한 용도로 기록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것이다.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이 처음부터 자기표현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일 년이 지나도록 자기 이야기를 한 마디도 꺼내놓지 않는 이도 있고, 친구 따라 모임에 참석했지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오래 사용해 온 페르소나를 벗는 일이다. 모임에서 말하는 방식도 그들의 생김이나 성격만큼 각양각색이다. 이를테면 책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와 세미나에서 발표하듯 말하는 사람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으면 내면이 정전된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일상생활을 사건 파일 보고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일을 겪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느냐고 물으면 언어가 중단된다.(39쪽)

 

나라가 뒤숭숭 해서 책이 안 읽힌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저 묵묵히 책을 읽고, 읽은 느낌을 이렇게 정리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all or nothing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냥'은 단순히 그냥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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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10-26 18:19   좋아요 2 | URL
그냥 이라는 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면.. 사는것이 좀 많이 피곤할듯 해요~
그냥 책 읽고 그냥 공부하고 그냥 .. 하고 싶어서...
너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사는것 처럼 보일까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6-10-27 15:2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냥이라는 말 좋아요.
목적이 없는 듯 순수하게 여겨져서 말이지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 듯 살더라도,
바람이나 햇살 따위 경계가 없더라도 두루 공평하게 넉넉할 수 있잖아요.
그리 살아도 좋지않을까요?
헤에~^____^
 

주말에 영화 '럭키'를 봤다.

자세한 얘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언젠가 봤던 영화 '킹스맨'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뭐~(,.)

영화를 보고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꾸준함은 힘이 세다' 정도가 되겠다.

 

 

 애노희락의 심리학
 김명근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10월

 

 

 

 배를 엮다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하려는 얘긴 영화 '럭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요즘 사상 체질을 융 심리학의 직관, 감각, 감성, 사고와 연결시켜 해석하려한 '애노희락의 심리학'을 읽고 있어서 였을게다.

언젠가 한번 읽다가 집어던진 '배를 엮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이유를 굳이 정당화 하자면 말이다.

이 책의 맛은 뭐랄까,

아무 재미도 없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의 삶은 독특하긴 하지만,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게 또 나랑 닮아서,

나에겐 독특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뿐더러 새로울 것이 없었다.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담담하게 따라가다가는 끝부분에 가서 허를 찔린 듯 감동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ㆍㆍㆍㆍㆍㆍ마지메는 지금까지 줄곧 '특이한 녀석'이라는 부류에 있었다. 학교 생활에서도 회사 생활에서도 늘 따로 놀았다. 가끔 호기심과 호의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도, 마지메의 응답이 너무 엉뚱한 탓인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바로 가 버린다. 마지메 본인은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응대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고통스러워 책을 읽게 되었다. 아무리 말을 못해도 상대가 책이라면 침착하게 깊고 조용히 대화할 수 있다.또 하나, 학교 쉬는 시간에 책을 펴 놓고 있으면 친구들이 괜히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었다.ㆍㆍㆍㆍㆍㆍ아무리 지식으로서의 말을 모아 보아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하는 것은 여전했다. 허무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메는 자신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기와 함께 받아들였지만, 사전편집부로 이동한 뒤로 욕심이 났다.

"미짱은 직장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 거로구나. 친해져서 좋은 사전을 만들고 싶은 게야."

다케 할머니의 말을 듣고 마지메는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45~46쪽)

'대도해'라는 사전을 만드는 팀에 합류하게 된 '마지메'의 얘기이다.

마지메가 자신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기와 함께 받아들였듯이,

나 또한 일상에서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다던가, 나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의지를 '스스로'를 '따'시킴으로 접었었다.

이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선 친해지고 싶거나 나를 전달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났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말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삼각관계에 빠져 보지 않고는 그 쓴맛도 괴로움도 충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말을 바르게 뜻풀이할 수 없겠죠. 사전 만들기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과 사고思考의 지치지 않는 반복입니다."(72쪽)

흠뻑 담굼질하여 온몸을 통과하며 느낀 것만이,

그게 쓴맛이든 괴로움이든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듯이,

말로 아는 것과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경험을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경험을 글로 기록하여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경험과 기록 사이에 시간 차가 생겨버리게 되면,

죽은 문장이나 쓸모없는 단어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단어를 수집하고 용례를 만들고 사전으로 만들어낸다는것은 적어도 십수년이 걸리는 지루한 일인데,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간의 노력이 허사다.

"영업부에서는 할 일이 정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는 혼자 서점을 돌면 됐거든요. 도달해야 할 목표가 명확해서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속 편하다고 하면 편한 쪽이었어요. 그런데 사전을 만드는 건 그렇지가 않아요. 전원이 같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작업을 분담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어디가 문제인 거냐?"

"나는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남한테 설명하는 걸 잘 못해요. 단적으로 말해 사전편집부 안에서 겉돌고 있어요."

그런 마지메의 말이기 때문에 니시오카는 위안이 됐다. 요령이 없어 거짓말도 빈말도 못하고 진지하게 사전을 생각하는 능력밖에 없는 마지메의 말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었다. (171쪽)

컴푸터나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일에는 요령이 필요한 것 같고, 그건 시간과 동의어처럼 들리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요령이 없어 거짓말도 빈말도 못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해가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더디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를 잃지않는 것,

누구 다른 사람에게 혹하여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능력 말이다.

사전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업을 잘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저마다 제각각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그렇게 사람이 제각각 다르다고 하여, 다른 것을 틀리다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일도 아니다.

수고. 오늘은 우리 집에 있어. 몇 시든 상관없으니 서두르지 말고 와. 기다릴게.

니시오카는 미소 지으며 내용을 두 번 읽었다. 이모티콘은 하나도 없다. 레미의 문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건조했다. 그래도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다. 따뜻한 뭔가가 전해진다.

문자와 말의 신기함이다.(187쪽)

그동안 나는 글로 씌어진 문자와 말은 다르다고 생각했었고,

글은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이젠 글이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거나,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진심을 담고 있으면 글이고 말이고에 상관없이,

따뜻하고 차가움 따위 온기의 정도를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때문에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다.

십수 년 공을 들인 사전의 단어와 용례들이 요즘 신조어에 밀려 사어가 되어버린다면 너무 허무할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니, 혼자 산다면 '사전'따위에 공들일 필요가 없겠다.

'스스로'를 '따'시키니 어쩌니 해가며 쿨한 척 하지만,

결국엔 더불어 하는 세상을 꿈꾸며 자기 자신을 꾸준히 인정받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제스츄어에 다름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인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인데,

나는 같은 단어를 놓고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얘기로 읽은 걸 보면 말이다.

여자가 중시하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하는가'라는 걸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성실하네요"라고 여자가 말하면 대부분의 남자는 무시당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어쩐지 여자는 '성실함'을 진심으로 최상급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성실함'의 내실이 '나한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나한테만 자상하게 대해 주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124쪽) 

 

사전을 만들면서 말과 진심으로 마주서게 되고서야 나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든다. 기시베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이 갖는 힘, 상처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누군가와 이어지기 위한 힘을 자각하게 된 뒤로,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고 주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주의 깊게 헤아리려 애쓰게 됐다. (258쪽)

 

그동안 전자책이 나왔다고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었다.

대도해가  '정이 깊었지만 떠날 때는 깨끗한 여자 같은 종이를 만들라고요. 어떻습니까, 이 비유. 미끈거리는 손맛이라는 걸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263쪽)라며 종이 사전을 고집하듯, 종이 책만을 고집했었다.

 

 

 

 

 

 

 

 

 

그런데 '알라딘 크레마 사운드'란다.

소리체계로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생긴다.

요즘 테레비전 오락 프로를 봐도 그렇고,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너무 외로워 핸드폰이랑 대화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들이 폰과 대화를 보고 있으면 공감과 소통에 실패하여 어긋나는 것이,

소싯적의 나를, 또는 '배를 엮다'의 '마지메'를 보는듯 여겨져서 어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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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7 17:23   좋아요 1 | URL
제가 무척 좋아하는 덕목이 꾸준함입니다..^^비록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즐기는 낙으로 삼고..일종의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오래 했으면 좋겠더군요...사진 한 15년 쯤 찍으니.그 느낌 한두개로써는 도저히 모르죠... 게다가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때문에 다시 책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되고, 무엇보다도 카메라 들고 돌아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해요..사진에 몰두하여 아름다움 빠져들고 사유할 수있는 행복... ㅎㅎㅎ하기야 중독의 꾸준함은 피폐함이 밀려들지만 의미와 가치의 꾸준함은 뭔가 세상에 없는 걸 만들거든요...영화도 꾸준히 보고 영화책 많이 읽다보면 영화평론가도 할 수 있거든요..물론 꾸준할려면 자신이 먼저 좋아해야 한다는거니까요..싫은 걸 억지로 할 수는 없죠.

양철나무꾼 2016-10-18 14:55   좋아요 0 | URL
사진을 하는 것도 사전을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이 글들을 벼리는 작업이라면,
사진은 빛을 벼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미립이 난다고 하죠?
한가지 일을 강산이 변할 정도로 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먼저 좋아해야 하는 건 물론일거예요~^^

2016-10-17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0-18 15:07   좋아요 2 | URL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일본 영화가 원작이라죠.
암튼 유해진에 힘입어 만들어진 영화이지 싶어요.
유해진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유해진 만큼의 시너지는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제가 `킹스맨`을 얘기한건 말이죠~,
보셔야 압니다~여~ㅅ!^^

푸른희망 2016-10-17 19:42   좋아요 1 | URL
전 배를 역다

참좋아합니다 밋밋하고 재미없음이 주인공 마지메와닮은 책의 매력이지요
언어와소통 공감 그리고 꾸준함
요즘 제 화두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0-18 15:10   좋아요 1 | URL
네, 푸른 희망 님~^^
저도 좋았어요.

밋밋하고 재미없는 재미, 쌀밥을 꼭꼭 씹어먹는 느낌이랄까요~?

전 요즘 말 안하고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없을까와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잖아...사이에서 망설이고 고민 중이랍니다~^^

AgalmA 2016-10-17 21:09   좋아요 1 | URL
김건모가 술 취해서 시리랑 얘기하던 거 보고 웃프던데...
침착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책인 거 저도 동감.
사전 만드는 작업과 장의사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말의 마무리와 남아있는 이에 대한 마무리를 동시에 한다는 점에서. 두 직업 다 그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남다른 직업이죠.
오랜만에 양철나무꾼님 만나 말 거니까 좋아요^^ 어어, 넘어지진 마시고요ㅎ

양철나무꾼 2016-10-18 15:16   좋아요 1 | URL
김건모 말고도,
혼술남녀에서 박하선도 폰이랑 대화를 나눠요.
폰의 그걸 `SIRI`라고 하는군요?

네, 저도 agalma님이랑 댓글로 수다 떠니까 좋아요~^^

넘어지는 건 유해진 식의 몸 개그이고,
전 엉.뚱.한데다가 무게중심이 낮아,
넘어지는 쪽으론 비교적 안전하답니다~^^

마르케스 찾기 2016-10-18 23:57   좋아요 2 | URL
일본문학은,, 왠지 닫힌, 막힌, 억압된, 너무 짜맞춰서 가지런한 답답한,,, 개인적으로 잘 공감되지 않아서, 나쓰메소세키와 하루키, 류등 몇 작가외엔 별로 찾아 읽지 않았지만,,
˝배를 엮다˝,, 접해 보고 싶네요.

럭키는 아직 못보고ㅋ
원작인 열쇠도둑의 방법만 봤는 데,, 럭키도 보려고 수요일 내일 오전으로 예매했죠ㅋㅋ
˝수요일 오전˝ 조조상영의 극장은 한산해서 좋습니다.
가끔 혼자서 볼 때도 있는 데, 그땐 전 좌석을 다 대여한 재벌이 된 것 같아요ㅋㅋ 화, 목은 아줌마들이 서넛 모여 냄새나는 간식 잔뜩 사들고 떠들며 보니,, 그때를 피해서 봅니다ㅋ

친구신청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댓글 답니다 ^^
쓰신 리뷰들도 찬찬히, 잘 읽고 갑니다. (리뷰들 찬찬히 다 읽은 것 만 좋아요를 누르느라,, 시간이 꽤 걸렸네요ㅋㅋ)

양철나무꾼 2016-10-19 10:18   좋아요 2 | URL
전 장르소설을 엄청 좋아하는데, 일본 장르소설은 잘 못 읽어요.
님이 말씀하신 그런 이유를 포함해서 말이죠~^^
그런데 그런 이유때문에 간과하기엔 가끔가다 흙 속의 보석같은 작품들이 있더라구요.
유메 마쿠라 바쿠 같은 경우엔 `신들의 봉우리` 같은 경우 제 인생의 책이라고 설레발을 치지만 음양사 같은 경우는 정서 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소설이더라구요.

전 좌석을 대여한 재벌이란 말이 재밌어서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친구신청은 말이죠.
최규석도 그렇고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싶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말예요, ㅋ~.

마르케스 찾기 2016-10-20 08:53   좋아요 2 | URL
6천원으로 재벌 놀이 하는 거죠ㅋㅋ
최규석님,,,, 혼자 분노했다가 같이 아파했다가 웃다가 반성도 하고ㅋㅋ
만화가 주는,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친근함에 놀라고, 깊숙히 울리며 공감되어 놀랐던 작가님이셔요ㅋㅋ
쓰신 글들이 참 좋았습니다 좋아서 좋아요를 눌렀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