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영화 '럭키'를 봤다.
자세한 얘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언젠가 봤던 영화 '킹스맨'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뭐~(,.)
영화를 보고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꾸준함은 힘이 세다' 정도가 되겠다.
애노희락의 심리학
김명근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10월
배를 엮다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하려는 얘긴 영화 '럭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요즘 사상 체질을 융 심리학의 직관, 감각, 감성, 사고와 연결시켜 해석하려한 '애노희락의 심리학'을 읽고 있어서 였을게다.
언젠가 한번 읽다가 집어던진 '배를 엮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이유를 굳이 정당화 하자면 말이다.
이 책의 맛은 뭐랄까,
아무 재미도 없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의 삶은 독특하긴 하지만,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게 또 나랑 닮아서,
나에겐 독특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뿐더러 새로울 것이 없었다.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담담하게 따라가다가는 끝부분에 가서 허를 찔린 듯 감동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ㆍㆍㆍㆍㆍㆍ마지메는 지금까지 줄곧 '특이한 녀석'이라는 부류에 있었다. 학교 생활에서도 회사 생활에서도 늘 따로 놀았다. 가끔 호기심과 호의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도, 마지메의 응답이 너무 엉뚱한 탓인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바로 가 버린다. 마지메 본인은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응대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고통스러워 책을 읽게 되었다. 아무리 말을 못해도 상대가 책이라면 침착하게 깊고 조용히 대화할 수 있다.또 하나, 학교 쉬는 시간에 책을 펴 놓고 있으면 친구들이 괜히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었다.ㆍㆍㆍㆍㆍㆍ아무리 지식으로서의 말을 모아 보아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하는 것은 여전했다. 허무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메는 자신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기와 함께 받아들였지만, 사전편집부로 이동한 뒤로 욕심이 났다.
"미짱은 직장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 거로구나. 친해져서 좋은 사전을 만들고 싶은 게야."
다케 할머니의 말을 듣고 마지메는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45~46쪽)
'대도해'라는 사전을 만드는 팀에 합류하게 된 '마지메'의 얘기이다.
마지메가 자신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기와 함께 받아들였듯이,
나 또한 일상에서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다던가, 나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의지를 '스스로'를 '따'시킴으로 접었었다.
이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선 친해지고 싶거나 나를 전달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났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말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삼각관계에 빠져 보지 않고는 그 쓴맛도 괴로움도 충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말을 바르게 뜻풀이할 수 없겠죠. 사전 만들기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과 사고思考의 지치지 않는 반복입니다."(72쪽)
흠뻑 담굼질하여 온몸을 통과하며 느낀 것만이,
그게 쓴맛이든 괴로움이든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듯이,
말로 아는 것과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경험을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경험을 글로 기록하여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경험과 기록 사이에 시간 차가 생겨버리게 되면,
죽은 문장이나 쓸모없는 단어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단어를 수집하고 용례를 만들고 사전으로 만들어낸다는것은 적어도 십수년이 걸리는 지루한 일인데,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간의 노력이 허사다.
"영업부에서는 할 일이 정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는 혼자 서점을 돌면 됐거든요. 도달해야 할 목표가 명확해서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속 편하다고 하면 편한 쪽이었어요. 그런데 사전을 만드는 건 그렇지가 않아요. 전원이 같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작업을 분담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어디가 문제인 거냐?"
"나는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남한테 설명하는 걸 잘 못해요. 단적으로 말해 사전편집부 안에서 겉돌고 있어요."
그런 마지메의 말이기 때문에 니시오카는 위안이 됐다. 요령이 없어 거짓말도 빈말도 못하고 진지하게 사전을 생각하는 능력밖에 없는 마지메의 말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었다. (171쪽)
컴푸터나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일에는 요령이 필요한 것 같고, 그건 시간과 동의어처럼 들리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요령이 없어 거짓말도 빈말도 못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해가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더디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를 잃지않는 것,
누구 다른 사람에게 혹하여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능력 말이다.
사전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업을 잘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저마다 제각각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그렇게 사람이 제각각 다르다고 하여, 다른 것을 틀리다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일도 아니다.
수고. 오늘은 우리 집에 있어. 몇 시든 상관없으니 서두르지 말고 와. 기다릴게.
니시오카는 미소 지으며 내용을 두 번 읽었다. 이모티콘은 하나도 없다. 레미의 문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건조했다. 그래도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다. 따뜻한 뭔가가 전해진다.
문자와 말의 신기함이다.(187쪽)
그동안 나는 글로 씌어진 문자와 말은 다르다고 생각했었고,
글은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이젠 글이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거나,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진심을 담고 있으면 글이고 말이고에 상관없이,
따뜻하고 차가움 따위 온기의 정도를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때문에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다.
십수 년 공을 들인 사전의 단어와 용례들이 요즘 신조어에 밀려 사어가 되어버린다면 너무 허무할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니, 혼자 산다면 '사전'따위에 공들일 필요가 없겠다.
'스스로'를 '따'시키니 어쩌니 해가며 쿨한 척 하지만,
결국엔 더불어 하는 세상을 꿈꾸며 자기 자신을 꾸준히 인정받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제스츄어에 다름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인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인데,
나는 같은 단어를 놓고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얘기로 읽은 걸 보면 말이다.
여자가 중시하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하는가'라는 걸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성실하네요"라고 여자가 말하면 대부분의 남자는 무시당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어쩐지 여자는 '성실함'을 진심으로 최상급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성실함'의 내실이 '나한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나한테만 자상하게 대해 주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124쪽)
사전을 만들면서 말과 진심으로 마주서게 되고서야 나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든다. 기시베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이 갖는 힘, 상처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누군가와 이어지기 위한 힘을 자각하게 된 뒤로,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고 주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주의 깊게 헤아리려 애쓰게 됐다. (258쪽)
그동안 전자책이 나왔다고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었다.
대도해가 '정이 깊었지만 떠날 때는 깨끗한 여자 같은 종이를 만들라고요. 어떻습니까, 이 비유. 미끈거리는 손맛이라는 걸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263쪽)라며 종이 사전을 고집하듯, 종이 책만을 고집했었다.
그런데 '알라딘 크레마 사운드'란다.
소리체계로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생긴다.
요즘 테레비전 오락 프로를 봐도 그렇고,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너무 외로워 핸드폰이랑 대화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들이 폰과 대화를 보고 있으면 공감과 소통에 실패하여 어긋나는 것이,
소싯적의 나를, 또는 '배를 엮다'의 '마지메'를 보는듯 여겨져서 어쩌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