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마리앙토아네트적인 발상이라고 하였더니,
정작 마리 앙토와네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던데,
역사적인 입장을 두고 그리 죽기살기로 달려들면 할말이 없을 뿐이고~--;
정작 '밥이 없으면 빵을 먹고 고기가 없으면 달걀을 먹으면 될 것이 아니냐'며 마리앙토와네트 보다 더한 얘기를 한 사람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있었단다.
(이 문장에 미루어, 난 '엉뚱하고 뚱딴지 같다'는 의미로 '마리앙토와네트 같다'고 하곤 했었는데, 이젠 자제하여야 겠다.)
나라는 형편없이 가난해 미국의 원조에 의지하는 거지꼴이었고,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가 우글거렸던 그때의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는데, 권좌에 앉아 간신들의 달콤한 말만 믿고 노욕을 부렸었다고 한다.('윤재근'의 '논어' 298쪽에 나오는 말이다.)
우정, 나의 종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6년 5월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고백컨대 '우정, 나의 종교'를 읽을때만 해도 사람들이 슈테판 츠바이크에 열광하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우정, 나의 종교'를 읽으면서,
글솜씨가 너무 탁월하여 인물을 살아움직이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물의 본성을 가리운다고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의 앞 날개에선 슈테판 츠바이크를 일컬어,
'무의식 세계의 미묘한 움직임이라든가 이상심리, 성적 욕구 등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 분석이 뛰어난 작가'라고 하여 찬사를 더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다른 새로운 인물로 재창조되었다.
내 입장에서야,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도 추앙하는 정도가 심하다며 퉁쳐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맞물려 참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리앙토아네트를 '성녀도 매춘부도 아니었고, 유난히 영리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선을 베풀 힘도 악을 행할 의사도 없는 평범한 여인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듯 보이지만,
마리앙토아네트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라 한나라의 왕비였다.
이쯤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게 있는데,
그는 역사가가 아니라 전기작가라는 것이고,
이 글도 역사적 인물을 다루고는 있지만,
한꺼풀 걷어내고 보면 한편의 잘 짜여진 소설일 뿐,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은 없는 셈이다.
때분에 그녀를 왕비이기 이전에 한명의 여인으로 보고 접근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왕비가 아니라 한명의 여인이기만 했다면,
후세에까지 회자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이렇게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철없는 소녀가 프랑스의 왕비가 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의 내면적 성숙을 그린 심리소설에 가깝다고 하나,
그것은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쓰는 입장일뿐,
한 나라의 왕비라는 위치는 책임을 회피하고 비껴가려 한다고 해서, 비껴 갈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고리고릿적 외국의 왕비도 이렇거늘, 현대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암튼, 이렇게 한 사람을 성실하게 대변하고,
그리하여 매력적으로 재탄생시키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가 만들어놓은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쯤되니 사람들이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의지력이란 결국 육체적 활력의 정신적 표현에 불과하다. 이 비극적인 무능으로 인해서 모든 권력이 어떻게 부박스러운 한 젊은 여인의 손으로 들어가 경박하게 흩뿌려지는가를 재상들과 여제인 어머니 그리고 온 궁정이 절망적인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일단 결정된 힘의 평행사변형은 정신적인 상태로 굳어지는 법이다.(41~42쪽)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던 구절 또 하나,
숙명적인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와 같은 거창한 세계사적인 과제에 간여할 수 있다고는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대를 이해할 생각은 않고 오직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생각만 했다.ㆍㆍㆍㆍㆍㆍ그녀는 왕비로서보다는 아내로서 승리하기를 원했고, 세계 역사 속에서의 위대하고 광범위한 승리보다는 사소하고 여자다운 승리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117~118쪽)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그녀가 왕비보다 아내로 남고 싶어 했는지,
세계 역사 속에 위대한 왕비보다는 여자로 남기 원했는지, 따위는 후대에 동정하는 말들 중 하나였을뿐,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 대통령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했다던데,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일지 어떨지는 후에 우리가 동정으로 할 수 있는 말들이고,
대통령 변호를 맡은 그가 국민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되도록 제대로된 자기 편 하나 만들지 못하다니,
변호를 맡았다는 사람마저 이렇게 찌질하다니,
노년의 인생이, 삶이, 참 불우하고 쓸쓸하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