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몸살 기운이 감지된 건 지난 밤이었지만 걷는 걸 자제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지 않았던 걸 보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30000보가량 걸으며

 내내 하드락을 들었다. 1)


 미간을 모으면 미열도 아니고 고열도 아닌 상태가 체감된다. 어쩌자는 거지? 중얼거리면 아무려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정도다.

예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밤이다. 일단,

 어제 읽다 덮은 'N분의 1은 비밀로'라는 소설을 이어 읽어야겠다.

 약간 어처구니 없게 여겨지는 소설 2)이지만 나름 소소한 재미는 없지 않다.

 주인공 격인 교도관 둘이- 수용자들의 물품을 보관 관리한다- 어느 날 영치 창고에 보관 중인 어떤 가방에서 5만원권 현금 다발을 발견한다. 대략 9억원이다. 돈의 주인은 얼마 전 사고사했다. 가족도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둘은 이 돈을 외부로 잘 유출해 반으로 나누기로 한다. 그러나 돈의 존재를 아는 이가 하나둘 늘기 시작하는데... 라고 정리해도 좋을 만한 소설이다.


 약간 피식, 웃게 하는 문장도 있었는데, 이런 것도 유머로 볼 수 있을까 잠시간 고민하다 말았던 기억이다.

 

 하물며 책의 앞에 포함된 추천사에는 "타고난 유머감각"이라는 평가도 보였는데, 깜짝 놀라 심사위원의 면면 3)을 일별하고서야 아,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근데 요새 같은 세상에 약간 피식, 웃게 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자문하고 나자, 이 작가가 신생 유머리스트처럼 여겨진다.


 모르겠다. 아직 반쯤 더 읽어야 하는데, 일단 더 읽어보겠다.


그나저나 가능하다면 23시로 예정된 토트넘의 경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미열보다는 고열 쪽에 가까운 게 아닐까 확신하고 싶은 열기가 미간의 조력 없이 얼굴 전반에서 절로 체감되고 있다. 

 

 걷고 내려오자마자 죠스바를 사 먹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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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드락 전문 라디오 채널.

     8-90년대를 풍미했던 락을

   틀어주는데, 소프트락을 틀어주면

   걷기에 주력했고, 하드락이 나오면

   걷기를 완화하며 듣기에 열중했다.


 2) 어떻게 이런 소설이 출판이 되었을까?


 3) 나는 이 소설이 공모전 수상작인 걸 

   어떻게 이런 소설이 다 있지? 의문을 갖는 가운데

  책의 앞뒤를 하릴없이 일별하다가 알게 되었다.


 심사위원을 보니 박생강, 김종광 등이다.

 박생강이나 김종광의 입장에서는 이 작가가

 매우 유머러스하게 여겨졌을 것 같다. 사실상 (소설적) 동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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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오늘 이 시간에 뭐 했는지 공연해 궁금해졌던 만큼 수첩을 펼쳤고 이런 메모가 씌어 있었다. '12월 1일부터는 근면하게 살겠다. 따라서 오늘 마지막으로 한잔 마시자.' 


 어제 밤이었던가, 침대에 모로 누운 채 하릴없이 티비를 봤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약에 의지하지 않겠다고 일종의 고집을 부린 이후, 고수하고 있다. 사과와 청포도와 따듯한 물이 내게는 약이었다. 티비에서는 전문가로 보이는 여성이 나와 루틴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산책을 하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루틴을 설명하기 위해 산책하기를 예로 든 그의 아랫입술이 피로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터졌다가 아문 흔적이 돌올하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약간의 몸살 기운은 온데간데없었으므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고 정말이지 하루를 가열차게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일종의 자기보상 차원에서


 나는 11월의 마지막 날, 한잔 마시고 있다.


 작년 오늘 이 시간에 뭐 했는지 공연히 궁금해진 건, 종로에 나가 있는, 목도리로 목을 칭칭 감은 기상캐스터가,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추워질 거라고 말한 바로 그때였다. 


 나는 춥다기보다는 기실 더위를 느끼고 있었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없는 상황은, 나로 하여금 해찰을 도모하게 했던 터, 작년 오늘 나는 뭐 했지?라는 자문이 비롯했던 것이다.


 아무려나 그래서, 아니 그래서는 아니지만, 한잔 마시고 있고, 동시에 읽기와 듣기와 보기를 수반하고 있다.


 내가 멀티라는 뜻이 아니라, 뭐 하나 딱히 제대로 하는 게 없는 타입이라는 증좌를 제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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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만 보 1)가량 걷고 돌아온 지 두 시간 반쯤 지난 시점이다. 지금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역시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므로 대번에 눈에 띈 '플라멩코 추는 남자'를 한달음에 읽었다.

 이 소설은 약간 작위적이고, 문장이 평이하다는 면을 차치한다면 힘을 완연히 빼고 쓴 소설의 좋은 사례라고 봄직하다.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을 접하면, 소설적으로 능란한 건지 그건 아니었는지 얼마간 알 수 있으리라.

  아무려나 '팬데믹 상황, 가족주의' 등의 키워드를 잘 버무린, 나름 감동 뭉클한 소설이었다고 기억하고자 한다.

 부연하건대 소설은 육십 대 후반에 이른, 굴착기 기사로 흠결 없이 살아온, 가부장적인, 그러나 이제는 은퇴를 하기로 한,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결심한 노인이 메인 화자다. 노인은, 나와는 달리, 말한 바를 곧바로 이행하는 노인은 스페인어를 배우고, 플라멩코를 배우고, 화를 내지 않고, 주어+동사+목적어로 말하고.......


 나도 희망합니다, 계획대로 움직이는 삶을!


 그러나 나는 이번 생에서는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벌써 내린 바 있고,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음, 남은 인생....어쩌지?'


 그나저나 토트넘과 번리의 경기 시작 시간까지 두 시간 여 남았군? 


 .....뭘 해야 할지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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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 둘레길에서의 4만보는 일반 포도에서의 4만보와는 현저히 다르다.

    포도보다 걷기의 강도가 대략 1.5배 세다고 보면 맞다. 가령 나는 오늘 6시간가량

    걸었다. 다시 말해 포도에서였다면 6만보 이상의 수치였을 것이다.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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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보고 있다. 3편까지 한달음에 봤는데, 지금까지 감상은 아주 별로라는 것이다. 어떤 미지의 무언가가 당사자에게 죽음의 시간을 고지하고, 실제로 그 시간이 되면 우스꽝스럽게 크고 검은 고릴라 같은 무언가가- 셋씩이나 온다- 뛰어와 집행한다(세 고릴라에 의해 태워진 사체는 볼 만했다). 그런데 이때 어떤 사이비 종교는 이상 현상을 십분 활용해 교세를 전폭 확장한다. 세상이 흉흉할 때, 사이비집단이 횡행한다는 게 일종의 불문율인 걸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한편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유아인)가 내뱉은 몇몇 줄기적 언사는 내가 20년 전에 한국의 소설가인 이응준과 이승우를 통해 접했던 묵시록적 문장들과 유사하거나 동일했다. 기왕에 비교 분석하고 싶은데, 옮기기 귀찮다. 아니 실은, 귀찮은 게 아니라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무언가를 하려 할 때 신명이 나지 않으면 하지 않고 마는 타입이 나다. 

갑자기 오늘따라 한국소설이 읽고 싶다는 욕망이라면 약간 인다. 가령 이승우와 이응준이 작성해 세간에 내놓았지만 제법 빛을 보지는 못한, 종교적 색채가 다분한 어떤 출중한 몇몇 소설들.


 그나저나 오랜만에 한잔 마시니 금세 취하는 기분이다(참고로 1차는 소맥이었다). 


 계속 이어 마시며 드라마도 이어 봐야겠지. 반전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토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약간의 반전을 묵묵하게 바라봐야겠지.


 이 밤, 딱히 할 일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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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막에서는 뛰었고, 평지에서는 생각하며 걸었고 혹은 걷다가 생각했고, 내리막에서는 걷는 데 주력했다.

 샌드라 거스의 '묘사의 힘'을 몇 장 읽은 기억이 났고, 주로 그 생각을 했다는 기억이다.

 샌드라 거스의 말에 따르면, 허구적 장르에 있어 '말하기'보다 '보여주기'가 대체로 힘이 세다. 

 나로서는 크게 동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의 입심, 즉 말하기가 강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사나운 개가 컹컹 짖었다"라는 문장을 놓고 볼 때

 샌드라 거스에 따르면 이 문장은 '말하기'다. 개가 어떻게 사나운지 독자들은 알 수 없고, 독자들은 작가의 확정적 언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따름이다.

 샌드라 거스는 이 문장을 아마 아래처럼 바꾸는 게 좋다고 조언하리라. 

 이빨을 한껏 드러낸 채 바들바들 떨던 개가 이내 몸을 들썩이며 짖었다.


 한데 나는 사나운 개가 컹컹 짖었다는 문장이 더 사납게 여겨지는 것이다. 내가 잘못된 건가? 아무튼.



 아무튼.


 .... 더 이상 할 말이 없군?

 

 반복해 말하건대, 일전에 오르막에서 어떤 생각 1)을 하다가 엎어져 정강이와 손바닥에 큰 상처를 낸 후로는 거의 철칙처럼 지키는 걷기 요강이다. 오르막에서는 뛰고, 평지에서는 걸으며 생각하고, 내리막에서는 걷기에 집중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평지든 혼이 나간 얼굴로 걷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면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데, 걷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걷는 부류라는 걸 알아서다. 

 때로는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 "오르막에서는 뛰기도 하시고, 평지에서는 마음 편히 걷고, 가령 생각도 하시고요, 다만 내리막에서는 걷기에만 주력하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남을 위해 어떤 말인가를 먼저 해 본 적이 없으므로.


 나른한 저녁이다.

 이 느낌 때문에 걷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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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욕을 자제하고 싶지만 어렵군.

     어렵겠지만 자제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책은 각고의 방법을 통한 정서적 환기,

    생활 속 근면 등일 것이다. 한데 물욕을 꼭 자제해야 하나?

    어떤 면에서는 편견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예를 들어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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