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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ㅣ 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평점 :
지금은 'Insure safety distance'로 바꾸었지만, 원래 내 서재의 타이틀 명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였다.
있는지도, 실체도 알 수 없는 마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대략 난감이 아니고, 대략 꿀꿀이었던 터여서,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나무꾼'처럼 그렇게 찾아나서면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마음이란 것이 찾아나선다고 하여 찾을 수 있는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는 고사하고,
나를 객관화시킬 수 없는 데,
내 마음이란 것을 어디서,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꺽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말고 가슴에 작은 둥지를 만들어 쉬고 날아갈 힘을 주어야 하리라.'라고 노래하던 서정윤의 시 한구절처럼,
곁에 둔다고 해서 '마음'의 실체를 찾게 되는 게 아니란걸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란 건 사랑과 마찬가지로 곁에, 가까이 있을수록 해치고 상처입힐 수도 있으니,
적절하게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자기장처럼,
안전 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겠다, 는 것이 요즘의 깨달음이다.
이 시집의 제목만해도 그렇다.
제목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1부부터 4부까지의 목차를 쭈욱 모아놨을때에야, '온'으로 읽힌다.
1부,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2부,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3부,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를수록 좋았다,
4부, 부서지고 열리는 어린잎을 만져본다,
로 되어있다.
한때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고 했으니,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를 놓고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 시집은 나의 그런 과거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시집 곳곳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시집 속의 '마음'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든지,
'진짜'라고 하여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여겨지지만,
자세히 시집을 읽다보면 'all or nothing'이고,
'진짜'이지만 동시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허허로움은 꿈의 형태로 드러나고,
일기의 형태로 독백되어진다.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스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기는 것
자기 빼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이 시를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마이클 코넬리의 '로스트 라이트'가 생각났다.
'로스트 라이트'는 이렇게 시작했었다.
"There is no end of things in the heart."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두고 '전부'나 '모두'라던가 '진짜'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게 아닐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는 거,
그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불 꺼진 고백
너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간 적 없었다.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가두어둔 물. 멈
춰 있는 몸.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
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진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
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
조언
벽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림자를 빛으로 생각한 적
이 많다 어제의 날씨는 아주 오래전에 지나간 일 같고
멀리 있는 단어들을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 적
도 생몰연도 부탁 비스킷 소원처럼
누군가는 계속해서 문을 열어놓는다
울퉁불퉁한 기침과 기울어진 위불 위
노란색으로 된 달력을 갖게 될 때까지
모과 냄새는 썪지 않는다 잠깐이라는 말을 모른디
네가 붉은빛 금붕어의 얼굴로 듣고 있어서
오늘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원 퍼레이드 바이올린 두발자전거
그림 속 개구리들이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하고
큰 옷은 내일 입고 싶다고 말하게 될 때
아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정면에는 흐르는 나무가 있다
가끔은
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벽돌을 매개로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그림자 속엔 빛이 들어있다.
벽돌은 매개일 수 있지만,
빛과 그림자 사이에선 기준점일 수도 있다.
정면에 흐르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를 객관화시킬 수도 있고,
그래야 비로소...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좋은 시들이 여럿 있었지만,
나는 '불 꺼진 고백'과 '조언'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랬더니 마음은 쓸쓸해져 오는데,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쓸쓸함으로 충만해져서 어쩌지 못하겠고,
난 그런 마음을 잘 다독여, 느낌을 몇 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