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와의 대화 - 하버드 의대교수 앨런 로퍼의
앨런 로퍼 & 브라이언 버렐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한때 똑부러지고 야무진 부류였다.

아니 야무진 과라고 자신할 수는 없어도, 하고 싶은 얘기는 쏟아내야 직성이 풀렸었다.

금전적이나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손해보는게 싫었었다.

헤플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자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고보니 '중도' 내지 '중간', '중용'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그리 먹는다고 하여 내 입맛에 맞게 그렇게 '중간'을 지키게 되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묻기 위해선 목소리를 과하게 높여 크게 말해야 하고,

대답으로 듣는 목소리 또한 그렇게 큰 목소리들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면,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정적이 그립다.

감히 정적을 '중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앨런 로퍼는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보스톤에 위치한 브리검 여성 병원의 신경과학부의 최고 임상의이다.

이 책을 시도하는 사람은 알게 되겠지만,

두뇌나 신경, 이쪽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주변에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기에 좋겠다.

 

책엔 앨런 로퍼 말고도 브라이언 러셀이라는 사람이 지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기획자 정도 되는 것 같다.

 

여기 저기서 여러 가지 교훈과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이 책이 깔끔하게 읽히진 않았다.

읽으면서 좀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래서 번역의 문제인가 했었는데,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자가 두 명이어서인듯 하다.

 

한 꼭지에서 한 사람의 얘기가 명확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친절한 설명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뒤섞여 버린다.

없어졌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두뇌와 신경 쪽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것 마냥 (원제가 Reaching down the rabbit hole이다) 너무 깊숙해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가볍게 접근하는 것도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고 존경하는 마음이 샘솟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였다.

 

데니스,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병동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한 시간, 두 시간, 심지어 세 시간이나 차를 달려 우주의 중심(보스턴이 그렇게 자칭한다)으로 왔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들어야 할 것들이다.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치료다. 제대로 들을 때 우리는 자세한 사항을 알아서 다음 환자에게 더 나은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다. 레지던트들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은 진단과 치료, 기술, 척도, 농도, 복용량, 비율, 증가와 감소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그것들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듣는 것을 잊지 마라.(19쪽)

 

여기서 듣는 다는 것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듣는다는 의미 이상의 좀 복잡한 의미일 것이다.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다는 의미 외에,

말하는 장단이나 어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능력,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지 의 여부는 두뇌의 영역과 관련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환자가 하는 말을 그냥 주의깊게 들어도 좋겠다.

사이 사이 적당한 추임새는 덤이다.

 

히스테리 증상 대다수는 진짜 신경에 질병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증상으로는 마비, 걷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것,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것, 발작, 힘이 빠져 약해지는 것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때로 문제를 조작해내는 한 기관(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증상은 더욱 얼토당토않게 될 수 있다. 몸의 오른 쪽이나 왼쪽, 즉 한쪽 부분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해당 쪽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든가 눈이 보이지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신경계는 이러한 결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은 질병이 신경계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뇌가 뇌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위장은 위장의 문제를 만들어낼 자체의 정신이 없다. 결장도 그렇고 폐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다.(129쪽)

 

이 부분은 내가 만나는 환자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

뇌나 신경 분포 영역대로 공식에 대입하듯 아픈 사람들도 있지만,

그 패턴에서 벗어나서 전혀 상관 없는 부위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가치 판단이나 조언, 진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어줄 귀'가 절실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두뇌나 신경과 관련된 지침서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나이 먹어가고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ㆍㆍㆍㆍㆍㆍ조지,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지난 10년 동안 나는 100퍼센트 현재에서 살았어요. 나는 4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3년 전에는 갑상선암을 진단받았고, 지금은 조지가 병을 앓고 있어요. 우리 삶이 이제 평온해졌고,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주 분명해요. 최우선순위는 도덕적, 정신적 나침반을 유지하는 것, 우리의 건강과 웰빙 그리고 우리 딸의 건강과 웰빙, 나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일 년 후, 혹은 24개월 후, 혹은 48개월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 걱정하지 않아요. 그때 우리가 괜찮을까, 혹은 그때 괜찮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있는가? 그건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 여기에 살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우리가 가진 것이니까요. 나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요. 조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ㆍㆍㆍ."(261쪽)

 

이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무릇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지기 위해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줄여,

그리하여 더 단순하고 소박해져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것들을 때때로 '중용'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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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08 18:11   좋아요 2 | URL
지나간 것과 오지 않은 것들에 마음 쓰일 때가 있어요.
그건 지금은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을 잘 찾고 잘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잘 되지 않는 걸 알지만, 생각나면 그 때만이라도요.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저녁도 맛있게 드시고요.^^

양철나무꾼 2018-06-09 10:37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의미에선 좋은 것 같아요.
지나간 과거는 잘 기억나지 않고,
얼마남지 않은 미래의 일들은 미루어 짐작하겠는지라 두근거리거나 설레일 일이 별로 없어요.
매일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평상심이 무심이 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 내공에는 이르지 못했네요~--;

아침부터 날씨가 훅훅 거려요.
얼마나 대단하려고 그러는지...
시원하고 맛난 점심 드세요~^^

페크pek0501 2018-06-08 19:16   좋아요 3 | URL
남의 얘기를 잘 들어 준다는 건 그의 얘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집중하며 편견이나 선입감 없이 제대로 들어 주려는
의지의 영역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것도 일종의 습관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양철나무꾼 2018-06-09 10:5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누군가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건 쉽지않아요.
게다가 저분처럼 얘기에서 의학적 정보들을 캐치해 내려할때는,
그 얘기가 증상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해내야하니 좀 더 어려울 수 있을 거예요.

알라딘 서재에서의 패크님을 보면,
꾸준히 마실도 다니시고,
댓글도 교환하고,
좋은 습관이 형성되신것 같아서,
전 마냥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