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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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던가,

저자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이런 느낌을 남겼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충격도 고스란히 내몫이었다."

 

소설집은 소설이라서 자신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아도 좋으니,

재기발랄하고 좀 파격적이기도 했었다.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복면가왕'에서 좀더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가수들 마냥,

소설은 있을 수 있는 일, 있을 법한 일을 쓰는 것이니,

소설 속에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든 작가 자신일 필요는 없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망하게 펼쳐내는 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었다.

 

 

수필집은 수필집대로 좋았다.

수필집에선 그동안 내가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던 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글들도 있어서 그랬을테지만,

문장이 깔끔하고 단정한 것은 그대로이지만,

피격적이고 자유분망하다기보다는 감정을 많이 절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신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웅숭깊다. 

 

미니 에세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책은  사람, 생활, 책, 일상, 글과 관련된 것들이라는데,

가볍다기 보다는, 좀 학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신변잡기라고 하기엔 학구적인 고찰이 돋보인다.

영화나 책 따위에서 뻗어나가는 발상의 전환들이 그러하다.

 

암튼 이 책을 님의 조언대로 손길 가는 대로 편하게 펼쳐서 읽다가,

옳다구나 하고 학문하듯이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그게 '잔소리'라는 꼭지였다.

 

부모는 말하고 자식은 거부하는 것, 그것이 잔소리의 속성(28쪽)이라는데,

나도 요즘 '나의 두번째 애인'이었던 아들만 보면 잔소리를 시전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름이 깊게 패이고 늙는게 느껴진다.

 

아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맘에 안드는데,

힘들면 씹어보지도 않고 뱉으려 한다.

친구에게 하소연하였더니,

신세대라서 그렇다는데,

그렇다면 요즘 신세대는 무엇을 씹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이빨이 약한가 보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책의 곳곳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하여 하는 잔소리가 내게도 통용되는 것 같아서,

따뜻한 온기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말이다.

 

타자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긍정하도록. 나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타자의 시선도 나를 곡해하게 된다. 호의적인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껏 스스로를 옭아매고 몰아쳐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부터 버린다.(57쪽)

 

판단의 무능은 사고와 성찰이 부족할때 생겨난다. 악의 평범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을 경계할 수 있는 사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게 문제라는 말. 악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 철학적 사유의 반성으로 거듭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 그것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었을까.(129쪽)

 

'작가의 말'에서 님은 일천 글자 쓰기를 거의 매일 하셨단다.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작업이었다며 겸양을 부리신다.

말이니까 하기 쉽지 육백여편이면 2년이라는 세월이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일천 글자 쓰기'라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엄청 좋아서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가며 읽다가,

보이지 않는 밑줄을 계속 긋다가,

외워버렸다.

ㆍㆍㆍㆍㆍㆍ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이나 하고, 망원경으로 새나 관찰하는 독신녀 제인 마플. 별일 하지 않는 척, 아무 것도 못 본 척하는 그녀는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요란 없이 꿰차는 노파 탐정이었다.

  미스 마플이 될 수도, 그럴 마음도 없었던 나는 다만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무심해 보이는 그녀도 멜랑콜리에 젖은 옷소매를 말리기 위해 바람 드는 새벽 창가를 찾는 일이 잦았을 거라고. 단단해 보이는 한낮의 미스 마플일수록 울지 않는 새벽은 드물었을 것이다. 해결하지 못할 숱한 과제 앞에서 눈물짓는 미스 마플이야말로 내 오랜 친구였다.('작가의 말' 중에서)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수필은 소설과는 다르게 겸손하고 두루뭉술하다.

한낮에 단단해 보이는 미스 마플에겐 늘 울면서 맞이하는 새벽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일 앞쪽을 보면,

곱게 미소짓는 님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ㆍㆍㆍㆍㆍㆍ여전히 바닷가 소도시에서 좋은 사람들과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나누며 살아간다. 책장을 넘기는 횟수만큼 감사하고, 백스페이스나 딜리트 키를 누르는 횟수만큼 용서를 바라는 그러저러한 나날이다.'

라고 되어있다.

그렇게 그렇게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누리시길 기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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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1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6-01 17:54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거의 다 읽어가는데, 문장이 간결해서 좋던데요.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이고요.

오늘부터 6월 시작입니다.
6월엔 더 좋은 일들 많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8-06-02 09:12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매력인것 같아요.
간결하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서 어디서 부터든지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님은 또 어떤 감상을 올려주실지 기대가 돼요.
요즘 손글씨로 올려주시는 거 잘 보고 있거든요~^^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진 열어놓은 창문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네요.
오늘도 힘내자구요~!^^

세실 2018-06-02 06:41   좋아요 1 | URL
아 전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데 님은 벌써...
스마트폰 만지는 시간만 줄여도...그쵸?
팜므님 글 정갈하고, 사람내음이 나죠. 매일 일천자 쓰기... 참 대단하신, 멋지신 팜므님^^
그리고 훌륭한 애독자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8-06-02 09:20   좋아요 1 | URL
아마 님은 일로도 여러 가지 책을 접해서 더 그러실거예요.^^
요즘 나이가 드는건지 부쩍 책 읽기도, 음악 듣기도 버거운데,
이 책은 아무데나 펼쳐서 한꼭지씩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팜므님 멋지신거야 웬만한 알라디너야 다 아는 것이고,
저에게까지 덕담을 날려주신 세실 님,
님은 분명 천사이십니다~!^^

2018-06-02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02 16:23   좋아요 0 | URL
ㅎ, ㅎ....잘 지내세요?
꼼꼼이 읽으시고 댓글 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폰에선 수정이 불가능해요. 월욜날 출근해서 수정하겠습니다, 꾸벅~(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