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뱀
베르나르 뒤 부슈롱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뱀을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뱀'이라는제목이 싫었고

아주 얇은, 겨우 200쪽밖에 안 되는 두께도 싫고

(두툼해야 속까지 든든한 기분이 되는 법!)


'76세에 쓴 생애 첫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문학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 수상' 이라는 특이한 이력에도

한 눈 팔지 못하게 뱀은 그렇게 나를 몰아냈다.



서점에 드나들 때마다 선뜻 잡지 못했으나

호기심이 뱀을 드디어 이겨 내 손에 들어왔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가상의 공간인 극한의 누벨텔레 지역으로 선교차 떠나게 되는 배

'짧은 뱀'

인술로 몬타누스는 특사로 뽑혀 그곳으로 떠나게 된다.


책은 전체적으로 몬타누스가 교황에게 보고를 하는 형식으로

그리고 간간히 중간에 그 배를 몰았던 선장의 눈에 비친

광경이 드러난다.


끔찍한, 혐오스러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아무렇지 않게 묘사되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동료의 시체를 언 상태 그대로 먹기도 하고

갓 태어난 아이들을 그냥 얼음 위에 방치해 두어 죽게 만들기도.

온기를 나누거나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면

아무하고나 관계를 맺는 등 우리 기준에서 '상식'에서

혹은 '정상적'인 것에서 한참을 벗어나는 일들이 벌어진다.


결국 전도는커녕 자신이 처음 도착하여 벌 하였던

간음죄는 자기 스스로 저지르게 되면서 섬을 떠나는 몬타누스와

교황의 이름과도 같은 누벨툴레의 우두머리인 아이나르 소카손을

처형한 일은 권위만을 내세우는 교회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라

보면 너무 지나칠까?

 

인간답다는 것은 내가 어떤 문화 속에 들어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고로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내 눈에 비친

그대로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다.

다만, 오지에 사는 종족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 한 편을 본

그런 느낌이었다.

환경에 지배받게 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교황의 특사로 간 수도원장이 교화해야 할 이교도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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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루이스 세풀베다는 <연애소설 읽는 노인>으로 처음 만났던 작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답게

이 동화도 환경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주인이 휴가를 가고 혼자 남은 고양이 소르바스 앞에

기름에 날개가 다 붙어 버려 날지 못하던 갈매기가

한 마리 툭 떨어진다. 자신을 도와주려는 소르바스를 믿고

한 개의 알을 낳은 채 죽어버린 가엾은 갈매기.



그때부터 소르바스와 항구의 모든 고양이들은 바빠진다.

어떻게 알을 부화시킬 것이며, 무엇을 먹일 것이며

어떻게 나는 법을 가르칠 것인가

백과사전을 뒤지는 고양이 사벨로또도

곤경에 처한 많은 고양이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꼴로네요

사사건건 꼴로네요를 가로막고 먼저 말을 해버리는 세끄레따리오

다들 제 일처럼 아기 갈매기 아뽀르뚜나다(행운아)를

돌봐주는데 엄마 갈매기와의 마지막 약속인

나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에 자꾸만 제동이 걸린다


갈매기가 도무지 날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르칠 방도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고양이들의 금기사항을 어기고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아뽀르뚜나다는 시인의 도움으로 멋지게 날 수 있게 된다.


환경을 더럽히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시중에 이런 책들이

너무나도 많은 가운데

주제를 드러내놓고 강조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고양이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해서 너무 좋다.


아이들하고 수업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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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인사이드 메피스토(Mephisto) 15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장호연 옮김 / 책세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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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셀리그도 자신의 그런 능력을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자랐다.

그리고, 그 능력을 축복이라 여기는 다른 사람에 비해

굉장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컬럼비아 대학 구내를 어슬렁거리며 대학생들의 레포트를

대신 작성해주고 그 댓가로 먹고 사는 남자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자신이 가진 능력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잠깐 생각해봤다

내가 이런 능력이 있다면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같은 능력을 가진 니퀴스트가 했던 것처럼

주식시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좋은 정보를 캐내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도 괜찮겠다.

그런 식으로 유리하게 써먹기만 한다면

한 평생 여행만 하면서 살아도 되겠다.

너무 쉽게 돈을 벌게 되어서 사람이 망가지려나?


머릿속에서 내내 둘이서 열심히 싸우는 것 같은 그 생활은

나도 조종을 못한다면 너무 괴로운 상황일 것이므로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셀리그의 모습은 정말 안쓰럽다.


이 책은 다양한 인용구와 주석이 붙어 있어

읽는 동안 곤혹스러웠다.

내가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고나 할까.

역시 죽을 때까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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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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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는 끈질기게 내 옆에 붙어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이후 마음에 든 까닭이다.

<동굴>은 그의 책 답다


가끔은 주인공들이 겪는 힘듦이 내 속으로 파고 들어

그런 책은 그만 좀 읽었으면 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중간에 잠깐 쉰 이유이기도 하다.

내 성정이라는 게 그리 모질지는 못해서

드라마를 볼 때도 뻔히 비극이 예견되거나

모진 상황을 맞기 전이라면 그 다음 것을 안 보려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로서 무책임한 짓을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 터라

내 마음대로 읽는 시기를 결정해도 되는 책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주인공인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예순네 살이 되는 도공이다

그는 딸인 마르타와 센터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마르살과 함께

살아간다.


흙으로 만든 그릇들을 점점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면서

인형을 만들게 되고 그것마저 반응이 신통치 않자

공방을 폐쇄하고 상주경비원이 된 마르살을 따라

센터로 들어가게 된다.


모든 물질과 정신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센터

감시카메라와 금지구역.

자꾸만 두고 온 집이 그리워지는 식구들.

그러던 어느 날, 센터 아래 지하에서 동굴이 발견된다.

엄중한 경계 속에 비밀에 부쳐지던 동굴을 직접 가 본

알고르와 마르살은 동굴의 모습을 본 후 센터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거기서 뭘 보셨는데요, 죽은 사람들은 누구고요.

그 사람들은 우리다.


쇠사슬에 묶여 움직일 수 없는 모습으로 죽어 있던 사람들을

알고르는 자신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맨 앞 장에 먼저 붙여 놓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누군가가 움직이는 대로 내 팔을 들어올리고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대로 다 믿어버리며

누군가가 '이게 네 운명이니 거스르지 말거라' 하면

'네' 대답하는 인형 같은 나도

거기 죽은 여섯 사람 중에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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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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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은 그렇게 자랐다. 소매치기들이 범람하는 그런 곳에서

장물을 취급하는 사람 곁에서, 아이들을 맡아 키우면서 돈을 받는

위탁모 곁에서 사랑을 받는다고 믿으면서,

살인자인 어머니가 교수형을 당했다는 걸 꿋꿋하게 견디면서.

아무런 걱정 없이 불편함도 모르던 그 생활에 변화를 준 건

그들이 '젠틀먼'이라고 불렀던 리차드 리버스

그는 시골 '브라이어'에 사기 칠 인물을 하나 점찍어 두고

그녀을 속이기 위해

그를 도와줄 하녀로 수전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그들이 속여야 할 인물인 '모드 릴리'가 그를 사랑하게 만들어서

결혼을 하기만 하면 그녀의 유산을 떼어주겠다는 말로 꾀어서

수전을 교육시킨다.


참을 수 없을 것 같던 브라이어에서의 생활도 점점 익숙해지고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하게 될 모드에게 애정까지 느끼게 된 수전

젠틀먼의 계획에 동참하는 걸 갈등하면서도 가엾은 모드와

야반도주를 하고 젠틀먼과 결혼식을 치르게 한다


괴로운 며칠 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정신병원에 넣기로 한 날

충격적인 반전에 또 반전..오호라!

이 책 이야기를 하려면 내용을 전부 공개해야 하지만

뒷 이야기를 말해버리면 책을 읽는 재미가 뚝 떨어지기 때문에

찌이익~

7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뒷장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너무 궁금해서 잘 수가 없었다

그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이름이란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내 전부를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게 이름이리라

이름을 들으면 내 얼굴이 떠오르고

내 습관이 떠오르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 닮고 싶은 것, 닮기 싫은 것,

더불어서 내 뒤쪽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

내가 이루어놓은 일들이 생각나겠지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을 한다

이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 이름을 발음했을 때 울리는 공명에도 책임을 져야겠지


수전 트린더와 모드 릴리.

두 명의 삶에 대해 긴박한 700쪽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이렇게 이름에 대해 잠깐 집착을 해봤다

그 세월 동안 내가 행동한 것들, 이룬 것들이 보일 텐데

아직까지도 '조00'에서 'ㅈ'부분에만 색을 잔뜩 칠해 놓은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 하는 건 아닐까 겁도 났다


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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