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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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은 2006년에 노벨상을 받은 작가가 아니라면

내가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을 테니)

터키의 작가이다.

익숙한 영미 문학이 아니면 늘 그렇듯,

이 작품도  친해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오르한 파묵의 어릴 때 꿈은 화가였기 때문에

이 소설의 바탕이 된 이슬람의 세밀화에 관심이 많았고

어릴 때 16세기와 18세기 이슬람 세밀화 기법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역시 관심이 모든 것의 시초가 되는 법!


 <물의 가족>에서 그랬듯이

이 책도 죽은 자가 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그림에 금박을 입히던 세밀화가 '엘레강스'가 살해된 것이다.

1591년 사랑하던 여인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 '카라'와

그림에 일생을 바친 세밀화가들 '나비' '올리브' '황새'

세밀화가장인 '오스만'과 반대파 격인 '에니시테'

이슬람 최고의 미녀이자 세밀화가 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세큐레'

그리고, 사랑의 연결 통로인 방물장수 '에스테르'

커피숍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들'

그 이야기에 배경이 되는 '그림들'

"빨간 물감'과 '죽음' 들이 번갈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정말이지 2권이 모두 끝날 때까지도 누가 범인인지

짐작하기가 참 어렵다. 사실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다.


참된 그림이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

그리는 것이라는 전통의 화법을 고수하는 것과

서양의 화법대로 원근법이 받아들여지고 작가의 눈에 보이는 대로

자신의 개성을 살려 그리는 화법이 충돌하면서

이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어떤 문화이든 변화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했을 것.

지극히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다른 것으로 바뀔 때

느끼는 혼란이 이랬을 것이라고,

내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고 평생을 그리 지냈다면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세밀화가 들의 비극이 순교자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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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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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헌혈이란 걸 해본 것은 고등학교 수학시간.

수학 수업을 받기 싫어서 하러 간 거였는데

너무 빨리 끝나는 바람에 결국은 수업을 들어야 했던

뼈아픈, 아니 피아픈 기억이 난다.

그 헌혈을 하고나서 엄마한테 혼난 기억도 난다.

비리비리해서 피도 모자라게 생긴 것이 헌혈을 한다고.


내 자유의지로 헌혈을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을 즈음엔

자주 하려고 노력을 했고,

부천역사에 헌혈원이 있을 때는

가끔 수업이 비는 중간이나 끝날 무렵

시간이 맞을 때마다 가서 헌혈을 하곤 했다.

내 의지라야 고작 얻어 먹는 빵 한 개와 우유 한 개, 그리고 영화상품권으로

다시 돌아오는, 어떻게 보면 좋은 일 하나 하고 공짜표도 생기는 신나는 일인데 비해

허삼관은 할 수 없이 살기 위해 피를 꼭 팔아야 하는 일이 생기고

목숨을 건 매혈을 통해 인생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간다

 

중간중간 웃음을 흘리게 만들면서도 가슴 찡한 이야기.

특히, 모든 가족이 국수를 먹으러 가고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밝혀진 일락이만 고구마 한 개로 끼니를 때우게 되었을 때

누구나 붙잡고 국수 한 그릇만 사주면 자기 아버지로 삼겠다고

울며 다니는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사주러 가는 장면이

잊혀지질 않는다.


매캐한 먼지 냄새와 빈곤, 지저분함과 기름진 것들을

함께 느끼게 되는 이 책은 쉽게 읽힌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허삼관의 모습에서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황주 두 냥과 돼지간볶음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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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의 이 한 마디 - 단군에서 김구까지
김경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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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잘 하지 않으려는 중학교 아이들과

수업할 때마다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머리는 장식이 아니야. 생각 좀 해라"

훗..그런데 나도 사실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란 걸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은

잡기조차 머뭇거려지는 것은.

이 책은 너무나 쉽게 씌여진 책이라고, 재미있을 거라고

한 번 읽어보라는 권유로 어렵게(?) 내 손에 들어온 책이다.

한국 철학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어렴풋하게 윤곽이 잡히고

-너무나 희미해서 선을 이어가는 것조차 어렵지만-

옛이야기처럼 구수하게, 정말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내가 게시판에 쓰는 '시 하나에 생각 하나'와 비슷하달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철학자들의 진중한 말씀 한 꼭지와

거기에 매달린 일화들과 해석, 그리고 전해지는 이해와 감동.


철학을 나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특히나 이제 막 청소년의 길로 들어선 아이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만 보는 바보>에서 너무 마음에 들었던 이덕무를 만나고

괜히 마음으로만 다짐하면서 실천이 잘 안 되어 미안해지는

일체유심조..그 말씀의 원효대사도 만나고

꼭 한 번 동화로 꾸며봐야지 생각했던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도 만나고

바람처럼 살다 간 진정한 자유인이라는 허균도 만나고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다.

외치셨던 김구 선생님도 만나고..

한 번에 한 분씩 뵐 것을 허겁지겁 한꺼번에 뵙느라고

약간씩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빨리 읽으려는 이 조급증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터!


하지만 뭐 어떠랴..

이래서 사서 두고 또 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니

또 한 번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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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소원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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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건 모든 모으는 걸 좋아하는 늙은 까마귀 한 마리


그날도 어김없이 반짝이는 걸 찾다가 그물에 걸린 백조를 구해주게 된다.


구해준 보답으로 백조가 준 건 소원을 들어주는 별가루.



무슨 소원을 빌까 고민하던 그의 앞에 참으로 많은 이들이 나타난다.


꼬리가 길어지고 싶은 주머니쥐


모두에게 선물을 사줄만큼 많은 돈이 필요한 청개구리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주는 이를 만나고 싶은 토끼 아가씨


그 누구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에게 별가루를 모두 나누어주고 돌아온 까마귀



옛날을 추억하며 아픈 몸을 누이고 있는 까마귀 눈에 비친 건


마지막 남은 별가루 한 알


"이것으로 될까? 아! 별가루야, 내 소원을 이루어 주렴.


나를 다시 젊고 활기찬 새로 만들어 주렴."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까마귀는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착한 일을 한 이들에게 찾아오는 행복


흔한 주제지만 지은이가 직접 그린 섬세한 그림과 더불어


읽을 때마다 가슴 환해지는 좋은 책이다.


그리곤 또 생각한다


내게도 소원을 들어주는 별가루가 있다면


난 과연 무엇을 빌 것인가?



내가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으로


이것저것 고민해보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하고


소시지 코에 붙였다 코에서 떼는 걸로 마무리하는


그 부부를 닮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


까마귀는 모든 걸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에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 게다.



나누어주는 삶..


어렵지만 까마귀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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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7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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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 프레드릭은 겨울이 다가오는 동안 열심히 일하는 가족들 틈에서

먹이를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은다.


겨울이 되어 모아 놓은 먹이 덕분에 행복한 날들을 보내지만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지면서 다들 우울하게 지내는데

이때 프레드릭은 자신이 가을내내 모았던 햇살을 꺼내 따뜻하게 해주고

색깔을 꺼내 곧 다가올 봄을 그려볼 수 있게 해주고

이야기를 꺼내 행복하게 해준다.


들쥐들은 프레드릭에게 이렇게 말을 하지.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레오 리오니는 늘 독특한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는다

짧고 간결한 문체 속에 넘쳐나는 잔잔한 감동.


꿈꾸는 자가 있어야 옆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꿈 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진 꿈으로 남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꿈은 어린 아이들만 꾸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꿈을 놓지 않고 사는 일

늙어가는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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