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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신화
아침나무 지음 / 삼양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달빛에 바래면 전설이 되고, 햇볕에 빛나면 역사가 된다.!! 세계의 신화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덜어 내어 마침내 문자로 정착된 이야기이다. 달빛에 바랜 전설이 햇볕을 만나 우리에게 전해져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단군신화와 중국의 삼황오제, 그리고 그리스 로마신화를 뺀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너무도 협소하다. 그중에서도 단군신화는 거짓말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고, 그리스 로마신화만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여기는 신화 사대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연수를 들으며, 세계의 다른 민족도 많은 아름다운 신화를 갖고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빼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우리의 신화는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신화를 잘알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는 '단군신화'를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동명신화를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창조신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단군신화'에는 천지창조 이야기는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창조신화가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부도지'의 주인공인 마고가 등장한다. 그리고 선천시대와 중천시대, 후천시대를 거치면서 만물이 창조된다. 무속신화(천지왕본풀이)에서는 옥황상제와 천지왕이 세상만물을 창조한 것으로 나온다.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제주도의 신화에는 설문대할망이 제주도를 만든 이야기가 나온다. 비루하게 '단군신화'만을 우리의 신화로 알고, 우리신화에는 천지창조 이야기가 없다고 주장했던, 우리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사랑을 가지고 우리 삶 속의 모든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잊혀졌던, 우리 태고의 이야기가 들린다. 이 책을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이책에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있다. 환인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이 책에는 과감하게 환인이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 순간 '환단고기'를 참조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환단고기'에는 '치우천황'이라는 인물이 소개되는 이 책에도 치우천황을 우리의 영웅으로 소개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위서로 평가하는 책을 과감하게 채용하여 책을 서술한 저자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러나 저자의 이름이 '아침나무'라는 필명으로만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이야기도 신화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일까?
이 책에는 우리 조상들이 모셨던 신들이 나온다. 황우양이 성주신이 되고, 황우양의 부인이 지신, 터주신이 된다. 우리의 토착 신들도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모르고 살았다.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통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자연스럽게 어린이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서낭신이 소진랑 이라는 이야기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황우양이 길가는 이들의 침이나 받아 먹으라고 세워 놓았는데, 서낭당은 커다란 숭배의 대상으로 숭배되어 왔다. 고려시대 관리는 서낭당에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관직에서 파직되기도 했다. 참, 재미있는 아이러니이다.
불교 탱화를 감상하다보면, 시왕도가 눈에 띈다. 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는 나에게는 시왕도의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리떼기 이야기에는 바리데기의 일곱 아들이 열시왕 즉, 십대왕이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불교의 시왕도와 바리데기 신화의 연관성이 무엇일까? 지옥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인 시왕(十王)을 그린 시왕도가 오리 무속의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무속신화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적 요소를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무당의 조상신이 되는 바리데기와 불교와의 습합은 이질적인 두 종교가 만나서 새로운 교류를 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2. 신화의 보편성.
세계의 신화는 고립적으로 발전하기도하고 교류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한다. 때로는 고립적으로 발전하고 때로는 교류하면서 발전하기도 했던 세계의 신화들에게서 너무도 보편적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내용과, 신이 창조한 인간을 신은 홍수를 통해서 심판했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성경에 나와있는 신이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유대교와 크리스트교가 탄생한 서아시아 지역의 페르시아에도 최초의 인간 '키유마르스'를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 몽골 신화에서도 오치르마니는 챠간 숑고드에게 흙으로 사람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저 멀리 신대륙의 마야문명에도 진흙과 나무로 인간을 만들었으나 불완전하여 옥수수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관념은 세계의 공통적인 관념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리적 차이점에 따라서 자신들의 주식인 옥수수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수정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인간의 관념을 엿 볼 수 있는 신화적 요소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페르시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뿐만 아니라, 인도판 노아 이야기 라고 할 수 있는 '마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강물이 범람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이 벌어지는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러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상상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과 불은 떼어 놓을 수 없다. 불은 신성한 것이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서, 신들의 세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는, 아프리카 신화에서도 전해진다. 즉, 피그미족의 신화를 보면, 우연히 신의 집에서 불을 보고는 용감한 피그미 한사람이 신의 집에서 불을 훔쳤다고 한다. 이러한 프로메테우스적인 이야기가 세계 여러 신화 속에 많이 나오는 것은 불이 인간에게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리라....
3. 신화의 특수성 - 신도 죽을 수 있을까?
신도 죽을 수 있을까? 신은 불사의 존재일까? 우리는 신은 불멸의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보편적이지 않은 생각이다. 크리스트교의 신처럼 절대적인 존재는 세계의 신화속에서 흔히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종교에서는 신들은 하나의 특정한 능력을 가진 존재일 뿐이다. 심지어는 죽기도하고 중노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집트신화에서 '오시리스'라는 존재는 세트의 함정에 빠져 죽었다가 살아난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는 지혜와 지하수의 신 에아가 바다 신 아프수를 죽인다. 그뿐인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는 지위가 낮은 작은 신들은 홍수방지와 농사를 위해서 침전된 강바닥을 파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술에 취하기도하며, 노동에 불만을 품기도 한다. 켈트 신화에서 브레스 왕의 폭정으로 다난족의 신들까지 중노동을 해야했으며, 풍요의 신 다그다는 브레스의 성주변에 참호를 파기가지 한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인간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신이 마지막 전쟁 나그라뢰크에서 죽는 모습은 북유럽 신화에서도 보인다. 신은 불사의 존재라는 것은 보편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계통의 신화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대교 계열의 신앙이 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세계의 신화는 그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었다.
4. 신화의 특수성 - 북유럽 신화의 귀환
'반지의 제왕', '리니지', '라그나뢰크'의 줄거리와 캐릭터의 모델이 되는 신화를 알고 있는가? 우리에게 낯설게 보이는 북유럽 신화가 그 모델이다.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다른 점이 너무도 많다. 북유럽의 자연환경과 북유럽인들의 투쟁이 신화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유럽 신화의 다양성과 독특함이 21세기에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수도사들에 의해서 정리된 북유럽 신화의 마지막은 나그나뢰크로 끝난다. 마지막 전쟁 나그나뢰크에 오딘을 비롯한 많은 신들이 참여하여 장렬히 싸우다가 죽는다. 그라나 나그나뢰크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하나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북유럽 신화를 보고 있다면, 북유럽 신화는 암울하다는 고정관념이 틀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둡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삶을 개척해 나가야했던 북유럽인들은 자연에 굴복하지 않았다. 한시대의 끝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희망을 품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갔다. 그리고 지금 그 창조적 신화의 에너지는 다시 '반지의 제왕', '리니지'라는 문화 콘텐츠로 되살아나고 있다.
5. 살아있는 켈트신화
켈트 신화를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 잘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캘트신화는 우리 삶 속에 너무도 가까이 다가와 있다. 요즘 할로윈 데이가 되면 기괴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영어 유치원을 비롯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에서는 그 잔치를 성대하게 한다. 사실 할로윈 데이를 미국에서 시작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켈트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켈트족들은 마법에 걸린 사후의 인간 영혼은 드루이드가 섬기는 신인 샴하인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생각한다. 10월 31일은 겨울이 시작되는 심하인 축제날이다. 삼하인 축제날에는 죽은 자들이 긴 겨울밤에 활동하기 위해서 되살아난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자신들의 집을 볼품 없게 보이기 위해서 벽난로 불을 꺼뜨리기도 했다. 이것이 기독교가 전파된 후에 11월 1일을 '만성절'(모든 성인의 날 All Hallows' Eve)로 불려지게 되었고, 이 말이 '할로윈(Halloween)'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할로윈데이를 즐기는 이들이 이러한 기원을 알고 있을까?
'침략의 서'에 신족인 '투아다 데 다난'족이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피르볼그족'과 전투를 한다. 잉글랜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바이킹족의 침략과 로마인들의 침략, 스페인의 무적함대의 침략을 받은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환경이 신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침략자들을 신족으로 묘사한 것도 이 신화를 만든 이들이 본토의 토박이 켈트족이라기 보다는 유럽대륙에서 이주해온 켈트족일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신화는 시대와 소통하면서 형성되고 발전되기 때문일 것이다.
6. 그리스 로마 신화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을까?
신화라는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양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추앙받는 이유는 그 신화의 위대성보다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한 세계가 패권을 장악하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했던 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문학성과 우수성을 주장하며, 그리스 로마신화가 우수하지 않았다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선생님의 강력한 반발을 듣기도 했다.
그럼,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문학성과 강력한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선 개방성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이집트의 하토르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아프로디테가 되고, 아누비스는 헤르메스가 세트는 티폰이 된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신들의 기원은 사실 이집트 문명에 있다. 진정한 창조는 이집트 문명에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이들 원석을 받아들의 자신들만의 보석으로 만들었다. 두번째는 끊임 없는 재창조에 있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와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문학화 작업을 했다. 신화가 살아있는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재탄생의 과정을 가져야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 작업을 끊임 없이 해가고 있다. 스타벅스 커피 로그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사이렌이 살아 있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는 끊임 없이 재탄생되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살아있는 이유이다.
7. 신화 속에 녹아있는 심리학
인도의 신화에 하늘의 신 드야우스와 땅의 신 프리비티 사이에 인드라가 태어난다. 많은 신들이 인드라를 주시하자, 인드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드라를 숲속에 숨기고 귀여워하지 않았다. 부모의 방치로 인해서 인드라는 드야우스를 죽이고, 번개라는 강력한 무기를 쟁취한다. 그리고 하늘, 땅, 지하 3계를 지배하는 최고 권력자가 된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신화 속의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쟁취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신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다는 설정은 신이 불사의 존재라는 고정관점을 깨뜨려야 이해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아버지를 이기고 독립하려는 아들의 심리를 형상화한 신화로 해석 가능하다. 큰나무 밑에서는 작은 나무가 자랄 수 없다. 아버지를 이기지 않고 아들은 세상에 나갈 수 없다. 어려서부터 오이디푸스 컴플랙스를 겪던 아들은 아버지를 이기고 세상에 나간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 진리를 그리스 로마신화와 인도신화는 말하고 있다.
인도신화에서 프라자티는 욕정이 강한 신이다. 딸을 보면서 욕정을 느낄 정도이다. 딸이 사슴으로 변해서 도망가자, 프라자티는 숫사슴으로 변해 추적한다. 참다 못한 폭풍의 신 루드라가 화살을 쏘아 프라자티를 맞추었다. 엽기적인 이러한 내용의 신화는 다른 지역의 신화에서도 나온다. 사춘기가 되면 딸은 아버지를 멀리한다. 스킨십을 하는 것을 특히 싫어한다. 이것은 근친상간의 위험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딸들의 보호욕구이다. 이러한 심리학적 기재가 신화속에 투영되어 프라자티 신화로 탄생했다. 신화를 알면 인간의 저변에 깔려 있는 심오한 심리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8. 신화를 통해서 알게 된 이야기들과 의문들
가. 일본인들은 천당과 지옥에 가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신들이 사는 곳(다카마노하라)과 인간계(아사하나노 나캇쿠니) 그리고 악령이 사는 곳(오미노 쿠니)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들 신들이 사는 다카마노하라와 악령이 사는 오미노 쿠니에 갈 수 없다. '천당 간다.', '지옥간다.'라는 말을 내뱉는 우리들의 사고관념과 일본인들의 사고관념은 너무도 다르다. 아직도 천황이 있고, 천민이 있는 일본사회 속에서는 죽어서도 자신의 신분을 벗어난 세계에 갈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신사에 갈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가까우면서도 먼나라 일본은 죽음에 대한 세계관이 우리와 너무도 다르다.
나. 피그미족, 다양한 인종을 탄생시키다.
피그미족 신화에 따르면, 한마법사가 세상을 창조했다. 인간을 만드는데, 코요테의 장난으로 인해서 흑인과 백인, 황인종이 생겨났다. 외부와의 교류가 별로 없었던 피그미족 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신화가 만들어졌을까? 혹시 백인 선교사가 들어 오고 나서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다. 약속을 지키는 인도와 지키지 않는 켈트인
인도신화 속에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한다.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운명의 사슬을 벗어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러나 켈트 신화에서는 프윌은 그와울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적을 유인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신화를 재미있게 이끌어가기 위한 장치일 뿐일까?
라. 비극적 최후를 맞는 페르시아 영웅들
많은 영웅들을 공주를 구하고 부와 명예를 얻으며 공주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신화 속에 나오는 잠시드와 마누키르라는 영웅은 자신의 위대한 성공에 취하여 비참한 말로를 겪는다. 다른 지역의 영웅담과는 너무도 다른 결말이다. 이것이 이란의 특징일까? 아니면 자만에 빠지기 쉬운 인간에게 울리는 경종일까?
9.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
이 책에서는 몽골과 한국어가 비슷한 단어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몽골과 한국을 같은 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몽신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몽골에도 있으며, 몽골의 '~치'가 한국에도 그대로 있고, 몽골이 말을 '몰'이라고 발음하고, 제주도에서 '몰'로 말을 발음한다. 이러한 근거가 몽골과 한국이 같은 계통이라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 왜? 그럴까? 사건을 바라보는 선후가 다르다. 한국어와 몽골어가 비슷한 이유는 몽골과 한국이 같은 계통으로 같은 뿌리를 갖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고려의 원간섭기에 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다. 연지와 곤지, 쪽두리, 소주 등이 이때 몽골로 부터 들어왔으며, 몽골에 의해서 강제로 제주도에서 말을 사육하기 시작했으며, 몽골인들로 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말을 키우는 법을 배웠다. 몽골에 동명신화가 남아있는 이유는 고구려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고구려의 유민이 이곳을 점령하거나 망국에 한을 안고 이곳에 정착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신화를 공부하는 사람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낮선 신화들을 쉽게 이해하도록 다양한 사진과 지도를 첨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힘든 이미지들을 친절한 그림으로 설명해주니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흥미진진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이 책에서 가장 나의 가슴을 울린 한마디를 떠올려보았다.
"마지막 남은 나무가 베어진 뒤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히 뒤에야, 마지막 남은 물 한붕울이 사라진 뒤에야, 그때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은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황금만능주의에 물들고 환경오염을 문제시하지 않는 주변의 인간을 바라보며, 북미대륙에 살았던 크리족의 이 말은 나의 가슴을 울린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 이와 비슷한 말이 전해온다. 이스터섬의 마지막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문명이 붕괴할 때,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중에 하나는 자연환경의 파괴이다. 이스터섬의 사례는 자산파괴가 인간 문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경고는 북미대륙에 살았던 크리족의 신화속에서 부터 전해져오고 있다. 우리 인류는 그 경고를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