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가의 렌즈로 안중근을 만났다. 역사적 인물 안중근의 삶에 대해서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위인 전기를 통해서, 다큐를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소설가 김훈의 눈에 비친 안중근을 만났다. 김훈은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는 포부를 갖았다. 오랜 기간 그의 어께를 짖눌렀던 짐을 이제 '하얼빈'이라는 작품으로 내려놓았다.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소설책도 역사와 비교하며 읽는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니 어쩔 수 없다. '하얼빈'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안중근을 만나보자.

 

1. 작가 김훈, 안중근을 그리다.

소설은 영친왕 이은과 메이지와의 대면으로 시작한다. 고종과 메이지는 동갑이다. 둘다 조선과 일본의 국왕이며 황제이다. 그러나 고종의 나라는 망국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고, 메이지의 나라는 대륙으로 침략의 발톱을 길게 드러냈다. 아버지 고종과 나이가 같은 메이지를 만났을 때 영친왕 이은은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조선의 현실을 김훈은 이 한장면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평생을 충실한 포로의 삶을 살아간 영친왕 이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 투쟁에 뛰어들지 못한 원망이 샘솟았다. 충량한 포로의 삶을 살아야 일제하의 안락함과 목숨을 보존할 수있다는 생각을 했을 그에게 나는 너무도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또 한명의 인물이 소설에 등장한다. 영친왕 이은의 배다른 형 순종이다. 순종 이척은 김홍륙 독차사건으로 여러개의 이가 빠졌다. 말을 하는 내내 그의 소리가 셀수밖에 없다. 영친왕 이은을 보호하지 못하고 일본에 볼모로 보내는 못난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의 모습은, 백성을 보살피지 못하는 대한제국이라는 나라의 모습이기도했다. 촉의 마지막 황제 유선이 나라가 망했는데도 행복하게 천수를 누린 것 처럼 대한제국의 황손들은 일제에 맞서기 보다는 행복한 순응을 택했다.

이들 대한제국의 지배자들과 대비되는 인물이 있다. 젊은 그들의 이름은 안중근이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작가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한국 청년 안중근은 (중략) 세계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있었다.'(305)라고 적고 있다. 김훈은 안중근과 우덕순의 젊음에 심취했다. '포수', '백수', '담배팔이'라는 그들의 직업을 언급하며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그려내려 노력한다. 소설가 김훈이 청춘에 방점을 두었다면, 나는 역사에 방점을 두고 싶다. 안중근은 대한의군참모중장이라고 재판과정에서 분명히 말했다. 자신을 만국공법에서 규정한 포로로 대우해줄 것을 당당히 요구했다. 김훈이 청춘을 그리려 안중근 독립투쟁을 소략했다면, 나는 안중근을 바로 보려면 그의 독립투쟁을 바로 보아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독립운동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김훈은 안중근이 권총으로 이석산을 위협하여 100루블을 빼앗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젊은 청춘이 의협심으로 이석산을 위협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는 김훈의 서술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묘사된 안중근의 삶과 너무도 맞지 않은 서술이다. 이토를 처단하고 나서도 천주교 신부 빌렘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싶다고 말했던 안중근이 아닌가! 사실 안중근의 독립운동 자금은 페치카 최재형의 손에서 나왔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은 안중근이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할 때 자금을 대주었던 인물이다. 대한의군참모중장인 안중근은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위해서 최재형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 경찰의 심문과정에서 최재형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학계의 연구결과를 인정해야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 수 있다. 독립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김훈의 작품 구성은 탁월하다. 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과 이토의 행로가 교차 편집되어 있다. 그러면서 작품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박진감 넘치도록 장면들을 배치한 노 작가의 탁월한 역량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를 처단한다. 이후 이야기는 안중근의 법정투쟁과 안중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서술로 이어진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가 소개되지 않은 것이다. 감동적인 이 내용을 소설가 김훈은 왜? 소설속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일까?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여장부 조마리아 여사의 풍모가 안중근을 가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에서였을까?

 

2. 안중근과 주변인물들

이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들이 이책 속에는 등장한다. 그 첫번째 인물이 안중근이다.

안중근은 의병을 이끌고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한다. 소규모 전투에서 일본군 포로를 잡지만 만국공법에 따라서 그들을 풀어준다. 그 댓가는 혹독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되고, 그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 포로를 풀어준 안중근의 선택은 옳았는가? 적이 반칙을 사용하며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 만행을 저지르는데, 나는 규칙과 윤리에 따라서 적을 상대해야할까? 신이 적을 사랑하라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라고 하였지만,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자를 용서하는 것은 만용이 아닐까?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양공이 강을 건너는 초나라 군사를 맞아, 강을 건너고 있는 적을 치는 것은 인의를 해치는 일이라며 공격하지 않았다. 결국 강을 건너 전열을 정비한 초나라 군대에게 송나라 양공은 목숨을 잃는다. 악을 상대할 때는 악이 사용하는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안중근이 위대한 인물이지만, 포로를 풀어준 그의 행동에 공감할 수 없다. 안중근 의사가 나를 소인배라고 몰아붙인다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이다. 그의 세례명이 토마스 즉, 도마인 것도 그 때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빌렘 신부는 뮈텔 주교와는 달리 안중근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가 뮈텔주교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을 만나러 여순으로 출발한 것만 보더라도 그는 조선인을 이해하는 것 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안중근의 사촌 안명근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한다는 사실을 빌렘이 뮈텔에게 알리고, 뮈텔이 조선총독부 경무총장 아카시 모토지로에게 알린다. 바로 이것이 안악사건의 시초이다. 결국, 친일의 댓가로 진고개에서 명동성당에 이르는 구역을 일본인들이 무단 점거한 일이 순조롭게 해결된다. 명동성당에는 민주화의 역사뿐만 아니라, 친일의 역사도 담겨있다. 빌렘과 뮈텔을 믿고 따르는 조선의 천주교도들의 고통에 그들은 공감할 수 없었나보다. 안중근은 뮈텔 주교의 판단에 따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남아 있다. 강자의 폭력을 합리화하며 자신들의 어린양의 헌금을 걷는 그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이 감돈다.

안중근의 의거에 유동하와 조도선도 함께했다. 유동하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의거에 참여하였고, 유동하는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다. 작품의 전개를 위해서 이 두 인물을 삭제했다. 그리고 우덕순을 의인으로 묘사했다. 우덕순이 친일파로 변절했다는 연구 결과를 알고 있는 나는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이러한 인물을 비중 있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후기에도 우덕순의 친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자료조사를 철저히했을 김훈이 우덕순의 친일을 모를리가 없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을 펼쳤다. 우덕순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자료조사를 하니, 우덕순의 친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20년대 조선인문회 하얼빈 지회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의 친일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1930년대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에는 "농후한 배일사상을 갖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서로 다른 자료를 보면서, 혼란이 밀려왔다. 한 인물의 친일 여부를 판가름하기가 너무도 힘들다. 일단은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을 유보하자. 그의 전체 행적을 본다면,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을 이용하려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다. 안중근의 막내아들이 그가 누나 안현생과 함께 친일의 길을 걸었다. 19391015일 안준생은 총독부 관리들과 함께 박문사를 참배하고 이토의 명복을 빌었다. 16일에는 조선호텔에서 이토의 차남 이토 분키치를 만나 아버지 안중근의 의거를 '사죄'했다. 그로부터 일년 오개월이 자난 1941326일 안현생은 남편 황일청과 함께 박문사를 참배했다. 326일은 아버지 안중근의 기일이었다. 백범 김구는 '호부견자(虎父犬子)'라며 안준생을 제거 대상으로 규정했다. 호랑이에게서 개같은 아들이 태어났다며 독립운동가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안중근의 가족을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죄는 없을까? 첫째 아들은 독이 묻은 과자를 먹고 죽었다. 상하이에서 안중근의 가족은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굶주려야했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고통의 유산을 만겨준 인물일 것이다. 그들이 굶어 죽어야했을까?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잘못은 없었을까? 참으로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져본다.

 

책장을 덮었다. 너무도 유명한 안중근의 일대기이기에 별로 새로울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나를 짖누른다. 쉽지 않은 질문들이 나를 괴롭힌다. 조선의 한 청년이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고 이토를 쏘았다. 그의 짊은 가족에게도 넘겨졌다. 그의 가족이 고통 속에서 굴복했다. 그리고 안중근의 유해조차도 광복이 된 조국에 묻지 못하고 있다. 한미일 연합훈련이라는 핑게로 우리 독도 인근에 일본 군함이 와서 작전을 했다.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군이 올 수도 있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안중근을 생각하며 착잡한 심정을 가라앉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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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1-18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어느 교수가 이 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며 논문을 썼더라구요.
물론 역사와 소설이 다를수 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해야한다며 자기는 드라마 슈룹도 잘 보고 있다고 말을 맺더군요.
독자나 시청자는 아무래도 알려고 하기 이전엔 무방비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니 역사학자의 입장에선 걱정할 수 밖엔 없겠죠.
작가로선 좀 찔릴 것 같습니다.
전에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역사 소설로 보지 말라고 당부하더군요.
역사를 가장한 실존 소설이라나 뭐라나…

2022-11-18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이달 2022-11-24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2-11-25 04:40   좋아요 0 | URL
서평을 썼을 뿐인데 고맙다니
제가 감사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