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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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명강의가 가슴에 와 닿지 않을때가 있다. 대학에서 젊은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 참! 열정도 많고 많은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느낌은 들지만, 깊이있는 깨달음을 얻지는 못해 아쉬울 때가 있다. 반면, 노련한 노교수님의 강의는 많은 내용을 말하지 않는데도 많은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에 새기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들은 그러한 교수님의 강의를 '명강의'라고 말하며 후배들에게 추천했다. 사회에 나와서 배움의 열의가 시들지 않았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다양한 강의를 찾아 듣는다. 그렇게 알게된 교수님과 저자들 중에서 고 신영복 선생은 단연 많은 것을 깨우치게한 명강의를 나에게 선사해주었다. 너무도 강렬했던 '강의'에 이어서,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가 되어버린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을 펼쳐들었다. 신영복이라는 문을 통해서 진리의 화원에 들어가 보자.

 

1. 신영복을 읽는 키워드 '관계'

  '나의 고전 독법 강의'를 읽으면 신영복 선생 고전독법의 키워드는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관계'를 중시여기는 그의 인생철학은 '담론'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감옥에 들어온 사람이 출소하면서 '이 사람은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것야!'라고 신영복에 예측하면 번번이 그 예측이 빗나갔다. 반면 노인들은 그 사람이 다시 들어올지, 사회에 나가서 잘 살게 될지를 잘 맞추었단다. 신영복은 뒤늦게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신영복이 그 사람됨만을 보았던 반면, 노인들은 사람과 처지를 함께 보았다. 나무는 홀로 설수 없다. 흑과 물과 돌과 나무와 어우러져야 하나의 나무가 우뚝 설 수 있다. 신영복이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다. 아무리 세상과 단절하고 홀로 독야청청하리라 마음먹어도, 보통 사람들은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관계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관계'를 우리는 잊고 산다. 신영복이 재소자에게 이응노 화백에 대한 일화를 들었다. 이응노 화백은 감옥에서 사람을 부를 때, 수인 번호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불렀다한다. 한 젊은 재소자에게 이름을 묻고는 "뉘집 큰아들이 감옥와 있구먼"이라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재소자는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신이 홀로 서있는줄 알았으나, 자신은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와 누이가 보고 싶어졌고 그들을 생각하며 밤을 지세웠다한다. '관계'를 깨닫자 젊은이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관계'로 이어져있다. 자신의 존재를 '관계'를 인식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치유가 시작된다.

  '관계'가 치유의 작용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 때문에 상처받고 슬퍼하기도한다. 그러나 외딴 섬에 홀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지눌 스님의 '정혜결사'문에 "땅에 넘어진자, 땅을 딛고 일어서라."라는 말이 있다. ''관계'에 상처받은자, '관계'를 딛고 사랑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2. 세상을 살아가는 키워드 '사랑'

  셍떽쥐베리는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강신주는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눈부처를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눈부처'란, 연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뜻한다. 사랑은 서로의 눈부처를 바라보는 것일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신영복 선생은 사랑은 '삼께 맞는 비'라고 표현한다. 세월호 사건의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어설푼 위로보다는 같이 눈물흘려주는 것이 그들의 치유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었다. 고통도 슬픔도 함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함께할 때만이 서로의 눈부처를 보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랑이 고통을 주기도 한다. 신영복은 '사랑'을 이용한 고문방법을 경험한다. 전기고문을 받다가 신영복은 탈진을한다. 그러자 취조관이 의무실에 전화를 걸어 딸아이의 감기약을 부탁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신영복은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아야지. 저 지독한 가족 이기주의를 난들 어떻게 할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무자비한 취조관이 사실은 딸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지독하리만치 크지만, 인류에 대한 사랑은 눈꼽만치도 없는 잔혹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영복은 얼마나 환멸을 느꼈을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딸아이의 감기약을 부탁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고문의 일환으로 연출된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한 고도의 고문방법이었다. 잘못된 사랑이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간에 대한 환멸을 주기도한다. 그렇다면, 올바른 사랑의 모습은 무엇일까?

  신영복 선생이 '강의'와 '담론'이라는 책에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 씨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씨과일로 큰 열매를 먹지않고 남겨 놓는 모습! 까치밥이라면서 가장 큰 감을 남겨 놓는 시골 농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까치밥으로 가장 큰 과일을 남겨 놓으면 새가 날아들어 그 과일을 먹는다. 그리고는 어느 곳에 그 과일 씨앗을 배설물과 함께 떨어 뜨린다. 그래서 새로운 과일나무가 어느 곳에선가 자라기 시작한다. 나만을 사랑하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자연과 우리 모두를 사랑할 때만이 참다운 사랑은 이뤄질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무엇일까? 신영복은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한다. 머리로 알지만 가슴으로 느끼고 이를 발로 실천할 수 있다면 최고의 공부가 아닐까? 이것이 가장 진실된 배움이지만 이것이 가장 힘든 배움이기도 하다. 좁은 가족의 사랑을 인류의 사랑으로 실천하는길! 가장 힘들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여행이다.

 

3. 오늘을 생각하고 깨우친다.

   신병교육대에서 훌련을 받다가, 한 훈련병이 제대로 훈련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교는 그 훈련병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야, 너 서울대 나왔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네, 그렇습니다."라는 훈련병의 답변이 나왔다. 순간, 주변에서는 "야~~ 제가 서울대 나왔어?"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교관은 주변을 의식했는지, "놀랄것 없어, 예는 공부 못해서 서울대 간거야! 안그래?"라고 말했다. 훈련병은 "네, 그렇습니다."라며 군기든 대답을 했다.

  서울대 나왔다는 말에 '내가 서울대 다니는 사람을 보다니...'라는 생각을 하며 감탄을 하는 주변의 수많은 훈련병이나, 서울대 다니는 훈련병을 공부못해서 서울대 갔다고 말하는 조교 모두가 서울대에 대한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신영복 선생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적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랙스가 없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서울대 컴플랙스' 집단 감염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서울대 애들이 나보다 똑똑하니까, 내가 굳이 그들을 이기려 노력할 필요가 있어?"라고 말하는 패배주의자들도 여러명 보았다. '서울대 컴플랙스'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절대 '서울대'라는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변방의 창조성'을 가지려면 그 컴플랙스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신영복 선생은 '담론' 곳곳에서 외치고 있다. 그럼, 나는 또다른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컴플랙스를 직시하려 노력해보았다. 그 컴플랙스를 직시하며 그 컴플랙스가 사실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변방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곡돌사신(曲突徙薪)이라는 말이 있다. 굴뚝을 돌려 놓고 장작을 옮겨 놓아 불이 나는 것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묵자'에 나와 있듯이, 불을 끄려 동분서주한 사람은 환영을 받지만, 곡돌 사신을 해서 불을 사전에 예방한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병을 고친 사람은 명의라 칭송받지만, 병을 미연예 예방한 사람은 칭송을 받지 못한다. 인간은 소 도둑을 잡은 사람에게는 칭송하지만, 소도둑이 들지 않도록 외양간을 튼튼히 지은 사람에게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우뫼한 일을 지금 우리는 하고 있지 않는지 반문해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3차 정상회담을 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한 많은 성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를 두고서 비판하는 일부 수구 정당과 그를 추종하는 불쌍한 인간들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든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전쟁이 벌어지는 길을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연에 전쟁을 예방하여 평화의 길을 여는 길을 원하는 것인가? '곡돌사신'의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만큼 지금 이순간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너무도 소중한 기회이다.

 

4. 배움에 더해서...

  좋은 책은 책을 뛰어 넘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하는 책이다. '담론'에는 책을 뛰어 넘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그중 몇가지를 살펴보자.

  거꾸로 읽으면 의미가 살아나는 말들이 많다. '객관'이라는 말을 거꾸로 읽으면 '관객'이 된다는 신영복선생의 말은 '객관적이어라.'라고 말하는 언론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기계적 중립에 치우쳐서 박근혜 정권에서 행해지던, '한국사 국정화'도 관객의 시선에서 구경하듯 보도했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관객'이 되지 말아야한다. 그들과 '관계' 맺었음을 깨달아야한다. 이러한 단어가 '자살'이다. 자살을 거꿀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부단히 외치고 있다. '살고 싶다.'고 .... 단지 우리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다케시마'라는 말도 거꾸로 읽으면, '마시케다'가 된다. 일본은 침략주의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를 '마시케다'며 넘보고 있다. 벼가 있는 언어 유희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톨레랑스'를 아는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말이며, 우리사회에 '톨레랑스'가 필요함을 많은 사람들이 외쳤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은 톨레랑스는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공존합시다.'라는 뜻으로 근대사회의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갈 것을 당부한다.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새로운 시작이어야합니다.' 단순한 공존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나가자! 새로운 사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발자국 더 나가자! 신영복은 외치고 있다. 목수는 집을 그릴때 지붕부터 그리지 않는다. 주춧돌부터 그린다. 톨레랑스라면 서로 인정하면서 공존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신영복은 자신의 부족한점을 깨닫고 목수의 그림을 배우려한다. 자신을 변화시킨다. 톨레랑스를 뛰어 넘으려한다. '톨레랑스'를 말할때, '톨레랑스'그 너머를 보자! 신영복은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신영복은 공자와 귀곡자의 말을 대비해서 설명한다. 두가지를 대비해서 설명하는 신영복 특유의 설명법은 우리에게 탁월한 이해와 영감을 준다. 공자는 말잘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을 어질지 못하다고 했으니, 말잘하는 공자가 얼마나 말잘하는 사람을 싫어했는지 짐작할 수있다. 반면 귀곡자는 '언어는 좋은 그릇에 담아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라 말한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갑자기 '문질빈빈연후군자(文質彬彬然後君子)'라는 '논어'구절이 생각났다. 겉모습과 속이 빛나야 군자라는 공자의 말을 말에 적용시켜보자. 말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 말의 포장도 잘되어야 참다운 말이 아닐까? 말의 내용과 수사가 잘 갖추어져있다면 그 사람을 어진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보면 대화할 때, 대화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대화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사람의 입장에서 대화해주는 방법을 강조한다. 수많은 논리적 근거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문질빈빈'이라는 말은 언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당신은 사실을 뛰어넘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가? 신영복 선생은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말한다. 단편적인 레고조각 한두개를 가지고 전체의 진실을 알기는 매우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레고조각을 모으는 수고로움을 회피하며 한두개의 레고 조각으로 진실을 본듯이 말한다. 많은 레고 조각을 모았다고 하여 모두가 진실을 보는 것은 아니다. 공룡뼈 화석을 발굴한 고고학자가 몇십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공룡뼈를 잘못 맞추어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발굴을 통해서 알았다는 일화는 질실을 알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해준다.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꿰뚤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자!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시는 언어를 뛰어 넘고 사실을 뛰어 넘는 진실의 창조'활동이라 신영복은 말한다.  우리 사실을 뛰어 넘어 진실을 창조하자! 그리고 그 길을 모색해보자!!

 

5. 신영복 선생님 이의 있습니다.!!

  탁월한 식견을 가진 신영복 선생님이지만, 그의 견해 모두를 동의할 수는 없다. 신영복 선생님 질문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대학생을 '계급을 스스로 선택하는 계급'이라 말한다. '대학 4년은 계급을 고민하는 시기'라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과연 계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대학생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극히 일부 명문대, 몇몇 학과에서는 가능할 수 있으나, 자본의 냉혹함 속에 내몰려 혹독한 취업준비를 해야하는 고민을 하는 이 시대의 대학생들이 '계급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는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생각할 시간을 박탈당하고 취업준비에 내몰린 대학생들에게 '계급 선택'의 자유는 없다.

  '다수가 힘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정의'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말은 신영복 선생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전체주의 사상이라는 오해를 받을 위험성이 많다. 다수의 횡포! 중우정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다수가 힘', '다수 그 자체가 정의'라는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리가 될 수 없다. 다수가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과거 상당수의 국민이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뽑았다. 그렇다면 이에 당신은 박정희와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타나길 바라는가? 참다운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도 존중할 때만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민주주의는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제도이다. 신영복이 '모두가 위반할 수 밖에 없는 규칙은 고쳐야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다수가 힘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정의이기 때문이다.' 라는 그의 주장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통일신라는 개방화되고 속국화됩니다.'라는 표현도 동의할 수 없다. 신영복 선생이 통일 신라 시기를 주권이 침해된 시기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통일신라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권이 침해된 속국은 아니었다. 한예로 김춘추의 묘호를 '태종'이라고 짓자 중국이 당태종 이세민과 묘호가 겹친다하여 고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서 신라는 당당히 김춘추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초석을 닦은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고 주장하며 당나라의 요구를 물리쳤다. 신영복은 '자주'와 '개방'이라는 2분법을 축으로 해서 우리역사를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이해는 역사 이해를 쉽게할 수는 있으나, 역사 인식의 외곡을 가져올 수 있다.

 

 

  20여년이라는 기나기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며 20여년이라는 기나기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며 언제 밝은 세상에 나올지도 모르는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더욱이 그는 감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담론'에는 신영복 선생이 2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적혀있다.

  신영복은 '우리가 작은 추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추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뜻밖의 밤길에서 만나는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청구회 추억'이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으며, 감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그들의 추억을 머릿속에 담으려했다. 그리고 감옥에 비치는 한줄기 햇볕을 보았다. 신영복은 햇볕을 보면서 죽지 않는 이유를 찾았고, 깨달음과 공부를 통해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했다. 자신의 추억뿐 아니라, 타인의 추억 속에서 깨달음과 공부를 했다. 빅터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의미치료'라는 치료방법이 있다. 그에게서 '추억'은 '깨달음과 공부'를 가능하게하는 힘을 주었고, '깨달음과 공부'는 신영복에게 살아야하는 '의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의 깨달은 그의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명필은 장수해야 한다.'라고 신영복은 말한다. 추사는 71세를 살았으며, 이광사는 73세를 살았다. 그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지 않았다면, 그들의 서체는 완숙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오래 살아서도 안된다. 부단히 인생을 생각하며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아는 노력을 해야한다. 신영복이 감옥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세상을 달관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러 우리에게 '강의'와 '담론'을 들러주었기에 그는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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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0-06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강나루님.~
편안한 주말밤 되세요^^

강나루 2018-10-06 20:26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6 2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다 읽꼬나면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완독부터 해야할텐데요 ㅎㅎ

강나루 2018-10-06 20:36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으시면 되요
좋은 책이라 생각하며 느끼며 읽어야하기에 천천히 꾸준히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