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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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는 먼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3년 전쯤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라는 그림책으로 '로타'를 만난 적이 있어서 오랜만에 재회하는 기분이랄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야  워낙 아이들의 세계를 잘 그려내는 작가라고 인정받는 대가니까 내가 뭐라고 중언부언 설명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린드그렌의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태주의 <풀꽃>이나 이창희 시, 백창우 곡의 <꽃은 참 예쁘다> 같은 시와 노래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예쁘지 않은 꽃은 없'는데 우리는 그것을 자세히 보거나 오래보지 않아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줄을 모른 채 무심히 살고 있고, 린드그렌은 꽃 하나하나의 빛깔과 모양과 향기를 오래오래 보고 자세히 또 보고 마음에 담아서,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우리 앞에 이렇게 글로 펼쳐놓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린드그렌의 글을 읽고 그제서야 "아! 그래! 어릴 때 우리도 이랬고, 우리 아이들도 이렇지!"하고 그 사랑스러운 유년의 시기를 돌아보며 감탄을 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린드그렌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린드그렌의 따스한 눈빛을 느끼게 된다. 이 책도 딱 그렇다.  

 

'뭐든지 다 오빠 언니랑 똑같아지고 싶었'던 5살 로타는 요나스 오빠와 미아 마리아 언니처럼 '진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바람을 가르며 언덕을 내려오고 싶다. 생일 선물로 '진짜 자전거'를 못 받자 이웃에 사는 베리 아줌마의 창고에서 '진짜 자전거'를 훔치기로 결심한다. 우리집 10살짜리 딸아이는, 비밀 운운하며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이 자존심 강한 로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웃음짓다가 자전거를 훔치려고 마음 먹는 부분에서는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린드그렌의 글은 어른들에게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잘 파고드는 것 같다.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것도 불필요한 일인 것 같다. '뭐든지 다 오빠 언니랑 똑같아지고 싶은' 로타의 도전과 모험과 역경과 극복의 이야기라고만 설명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린드그렌의 글맛을 느끼지 못한 채 책의 줄거리만 자세히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굳이 그림책으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다.  그림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림 없이 글만 읽어도 이야기는 생생하게 전달되니까. 그러나 그림이 있으면 아이들의 책에 대한 호감은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개인적으로 린드그렌의 책이 그림책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단,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림 부분에서 내가 재미있게 느꼈던 건 같은 또다른 로타 이야기인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라는 그림책을 펼쳐놓고 이 책과 비교해 보았을 때였다.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나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나 모두 한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일론 비클란드'라는 작가인데 린드그렌 책 대부분에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삐삐 시리즈는 일론 비클란드가 아니라 롤프 레티히가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두 그림책이 모두 로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 그림작가가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림의 느낌이 참 다르다.<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는 부활절 시기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는데 그림의 분위기가 좀 을씨년스럽다. 모르겠다. 스웨덴은 부활절 즈음까지도 이렇게 겨울같은 풍경이 계속되는지는..  그에 반해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는 꽃이 만발하고 초록 이파리들이 싱그러운 봄의 기운이 가득 차있다.  로타의 집이 있는 거리 풍경을 예로 들면 이렇다.

 

 

 

 

 

 

위의 그림이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에 나오는 로타네 동네 풍경이고, 아래 그림이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에 나오는 그림이다. 두 그림에 나오는 집들이 비슷해서 어느 집이 로타네 집인지 금세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의 그림이 더 어둡고 칙칙하다.

 

이웃집 아줌마도 양쪽 책에 다 등장하는데, 그 이웃집 아줌마네 방 풍경도 아주 흡사하다.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에는 베리 아줌마네로 나오고,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에는  베르크 아줌마로 등장한다.

 

 

 

 

 

 

 

탁자 위에 놓인 전등과 의자, 소파, 소파 위의 쿠션, 바닥에 깔린 카펫, 벽지와 화장대, 화장대 위에 놓인 액자..

모두 똑같다. 텔레비젼과 청소기, 강아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식탁에 로타네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식탁에 테이블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지만 가족들이 앉은 위치가 똑같다. 

 

그림의 느낌이 사뭇 다르지만 같은 작가의 그림인 것 맞는 것 같다. 작가의 그림풍이 왜 이렇게 다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그림의 톤이 밝고 색도 더 선명하고, 그림이 좀 더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이들이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의 그림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예쁜 그림이 모두 훌륭한 그림이 아니라는 거, 안다. 하지만 밝고 사랑스러운 로타 이야기와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 풍의 그림은 뭔가 잘 안맞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 린드그렌의 평전을 읽었다. 고통스러운 십대시절을 보내며 상대적으로 린드그렌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더욱 빛나는 보석으로 간직했을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이 린드그렌에게는 행복했던 유년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린드그렌에 대해 다시 감탄하며 린드그렌의 책들을 기웃거리고 있다.

사랑스럽고 깜찍한 로타를 <나 이사 갈거야> (논장)과 <말썽꾸러기 로타>(다락방),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논장)에서 더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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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에 있었던 도서관이 세들어 있던 건물의 2차 경매는 유찰되었다.

8월에 더 낮은 가격으로 3차 경매가 이루어진다.

70억대로 경매에 나왔던 건물과 땅이 4차 경매까지 가면 30억대로 떨어진다니,

돈만 있으면 누구든 탐낼만 하다.

게다가 왕십리 역과 한양대 사이, 큰길(6차선 도로였던가...?)가의 건물이라

쫓겨날 위기에 놓인 우리 눈에는 누구든 손에 넣고 싶은 보석으로 보여 더욱 불안하다.

 

 

 

건물은 노후되어 낡았어도 팍팍한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 숨겨진

촉촉하고 시원한 샘물같은 공간이었더래서

이대로 사라지면 안될 것 같아 이런저런 해결책들을 강구중이다.

작년에 공들여 도서관 출입문도 새로 달고, 옥상에는 텃밭 공간도 꾸몄는데

낙찰이 되면 아무래도 이 공간을 유지하기는 어렵지 싶다.

 

듣기로는 건물주가 2001년 도서관 개관 이후 단 한 번도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지 않았단다.

건물주는 부도가 나고 경매에 들어가면서도 어떻게든 도서관은 지킬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했다던데

이렇게 되고 보니 건물주에 대한 그동안의 고마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250여 가족의 후원금으로 근근히 버텨오던 가난하고 작은 도서관.

그러면서도 서울시나 문화재단, 아름다운 가게 등등에서 벌이는 각종 프로젝트 사업을 따내어

그 혜택을 엄마들과 아이들이 맛볼 수 있게 해줬던 도서관이다.

개관하던 2001년 즈음 도서관에 들락거리던 아이들은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군에 입대한다며 인사를 오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품앗이 활동을 하고, 프로젝트 사업을 해오던 엄마들은

도서관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도서관 활동을 밑천삼아

협동조합을 꾸리기도 한다.

그만큼 도서관은 엄마들과 아이들을 키웠다.

 

서울시 천만인소 열린청원에 도서관을 지켜달라는 글이 올라가 있다. 

지난번 페이퍼에 걱정거리를 꺼내놓았을 때만해도 지지한 사람이 겨우 13명이었는데

지금 134명까지 올라갔다.

함께 걱정해주고 지켜주고자 하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아 고맙고 고맙고 고맙고...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이런 일을 맞닥뜨리고서 내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도서관 엄마들이 모두 그렇다.

주변에 아는 재벌 없느냐며 실없이 서로 묻기도 한다.

어떤 이는 조상님이 나타나 숫자들 좍 보여주는 그런 꿈을 꾸기도 한다는데,

평생동안 맨날 개꿈만 꾸고 살아온 것 같아 살짝 억울한 기분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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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7-1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좋아요~ 13년이나 주민과 함께 한 도서관이 위기에 처했네요.ㅠ
(사) 작은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에도 알아보시면 어떨지...

섬사이 2014-07-17 18: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네, 도서관 운영위원회의에서 건의하겠습니다.
일단 서울시청 천만인소 청원지지 천명을 이루려고 힘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청원 지지가 천명이 넘으면 서울시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여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말리 2014-07-1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라도 들어가 보고 싶을 예쁜 도서관이네요. 시청, 구청 등에 다 알아보셨겠지만, 행정당국에서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네요. 시립 도서관 산하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방법은 없나 하는 생각을 해보네요. 잘 되기를 진정 바랍니다.

섬사이 2014-07-17 18:27   좋아요 0 | URL
말리님, 반갑습니다.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네, 참 예쁜 도서관이죠.
언제나 와글와글 항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재미있는 도서관이기도 하구요.
시립이나 구립 도서관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도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문제는 '공간'인데, 그 문제가 쉽지가 않네요.
걱정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죠.
사라지지 않도록 열심히 힘을 내겠습니다. ^^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아이와 함께 자주 이용하던.. 아니 이용이라기 보다 제 2의 집 같았던

도서관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001년부터 한 자리에서 아이와 엄마들을 위한 사랑방이 되어주었던 도서관이

건물주의 부도로 인해 터를 잃게 되었다.

 

250여 가구의 적은 후원에 기대어

14년째 묵묵히 천천히 자라온 작은 어린이 도서관.

그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공간이 아니었고,

엄마들이 모여 더 큰 품 안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인 공간이었다.

책을 매개로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만나고,

함께 뭔가를 이루고, 함께 성장하는..

 

작지만 사람 소리 가득한 도서관이어서

그렇게 내 아이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이 뿐 아니라 나도 도서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어울리고 여물었다.

가까운 거리에 그런 도서관이 있다는 것,

아니 세상에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게 그저 좋았다.

 

나는 가끔 내 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된 다음에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이 도서관을 찾게 될 거라고 상상을 하곤 했다.

"여기가 엄마가 어릴 때 자주 갔던 도서관이야.

여기서 그림도 그리고, 친구도 만나고, 놀았지.

사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 작은 도서관에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했던 것 같아."

그 때가 되면 내 아이는 자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거라고.

그러니까 도서관은 계속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도서관 건물의 2차 경매가 있는 날이었다.

아직 결과를 알지 못한다.

 

도서관을 사랑하는 한 분이 서울 시청 홈피에 정원 글을 올렸다.

지지자가 1000명이 되어야 서울시의 공식적인 답변이라도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7월 8일에 올린 청원글에 이제야 지지자가 13명이다.

관장님이 도서관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도서관 엄마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까닭이다.

 

http://petition.seoul.go.kr/petition/petition_view.web

(청원을 지지해 주세요)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다.

서명운동을 벌이던지, 아니면..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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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4-07-1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장님 트위터에 멘션을 남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책 좋아하시고 지역공동체문화에도 관심이 깊은 분이시니...

섬사이 2014-07-16 17:42   좋아요 0 | URL
마음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건조기후님.
덕분에 13명이었던 청원지지자가 방금 전 107명이 되었습니다.
시장님 트위터에 멘션을 남기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상황 돌아가는 걸 봐서 그 방법도 써보려고 합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막내 개똥이는 친구와 어울려 뛰어놀기를 좋아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울려 뛰어놀 친구들이 줄어들고, 그만큼  밖에서 노는 시간도 줄어든다. (아이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특히 여자 아이들은...?)

뜨거운 여름, 바싹바싹 다가오는 방학!! 집에서 혼자 놀기가 고역인 우리 막내 개똥이가 걱정이라 고심 끝에 몇 가지를 마련했다.

 

 

맨처음 장만한 것은 보드게임.  집에는 젠가를 비롯해 도둑잡기, 할리갈리, 다빈치코드, 카르카손, 인생게임.. 등이 있지만 새로운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루미큐브와 젬블로를 구입했다.  지금까지 구입했던 보드게임 중에 가장 성공한 것 같다. 큰애들도 재미있어 하고 심지어, 남편까지 가담해서 서너판의 게임을 이어가기도 했으니까.

개똥이는 젬블로보다 루미큐브를 더 부담없이 즐기는 것 같다. 게임규칙이 좀 복잡하지만 일단 숙지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게임이라 특별히 집중해서 머리를 써야 하는 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젬블로는 게임규칙은 간단하지만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야 하는데, 큰애들과 남편은 젬블로를 더 재미있어한다. 나도 젬블로가 조금 더 재미있다.

장마가 시작되거나 아니면 폭염으로 나가 놀기 어려울 때에는 개똥이랑 내가 같이 즐기기 좋을 것 같다.

 

 

  

 

지난 페이퍼에서 소개한 적 있는 햇빛공방 덕분에 개똥이는 7살 무렵부터 바늘을 잡았다. 그렇다고 바느질을 해서 뭘 만들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자투리 천에 자기 맘대로 홈질을 해대는 수준이었다. 큰애들 어렸을 때에는 바늘을 잡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식겁해 못하게 말렸었는데, 셋째에 이르고 보니 바늘을 잡고 뭘 하겠다고 해도 그냥 '그래, 해봐라~'하게 된다.

저 책은 얼마 전에 알라딘에서 반값할인이벤트를 하는 걸 보고 9,900원에 얼른 구입했다.  배송된 책을 살펴보니 열살 개똥이가 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여 마음에 들었다. 책이 배송된 날 학교에서 돌아와 마침 놀 친구가 없어 심심해하는 개똥이에게 이 책을 꺼내주니 반색을 했다. 플라스틱 안전바늘이랑 실, 단추, 펠트천을 비롯한 약간의 천 등등이 착한 부록으로 들어있어서 당장 바느질을 시작하고싶은 의욕을 부채질하니 성격 급한 우리 개똥이는 참지 못하고 뭘 만들까 고민 시작. 

우선 플라스틱 안전바늘로 홈질, 감침질, 박음질을 연습한 다음 (책 안에 구멍 뽕뽕 뜷린 바느질 연습용 페이지가 있다), 개똥이는 '다용도 주머니' 만들기에 도전했다. 마침 집에 예전에 가방 만들고 남은 천이 있어서 꺼내주고 책 뒤에 있는 도안을 오려주었더니, 개똥이는 서둘러 실 골라 오고 바늘이며 시침핀을 챙겨 꺼내왔다.  몇 번 실이 엉키고 마주 댄 양면이 어긋나 애써 박음질한 것을 뜯어내고 다시 하기도 했지만 우리 딸의 번듯한 첫 바느질 작품이 탄생했다.

 

 

작품완성으로 자신감이 붙은 개똥이는 방학 동안 책에 나와 있는 공룡인형과 부엉이 인형을 22개 만들어서 반친구들 전체에게 선물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이번 주말에 당장 펠트천을 사러가잔다. 음. 어쩐지 이 손바느질 책 한 권만으로도 여름방학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알라딘 반값 이벤트에 부응해서 개똥이를 위해 장만한 또다른 책들이다. 이 책에 대한 개똥이의 반응도 매우 뜨거운 편.  큰딸까지 가세해서 책을 펼쳐놓고 개똥이랑 둘이서 한 쪽씩 맡아 여백을 채우기 바쁘다.  두 책의 내용은 비슷한데 <그림으로 상상력 키우기>는 그리기 활동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내 멋대로 미술놀이>는 그리기, 오리기, 접기 등등의 활동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개똥이는 자기는 오리기는 귀찮다며 <그림으로 상상력 키우기>만 갖고 <내 멋대로 미술놀이>는 친구에게 선물했다.

 

틈틈이 도서관 캠프에 가족휴가, 영어학원캠프, 품앗이모임캠프.. 4번의 캠프와 여행이 끼어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겠지. 혹여 좀 심심한 날이 있더라도 휴식으로 알고 참아주겠지. 그렇겠지.

 

 

 

  

 

 

나는  <혼불>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초판이 1996년. 둘째가 태어나 정신없이 육아에 전념했을 시기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10권의 대하소설을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이제 아이에게 잔손가는 일도 줄었고, 잠시 모임이며 도서관 활동이 뜸한 시기로 접어들면서 용기를 냈다.

 

1권의 첫 장 <청사초롱>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부터 난 이 작품을 쓴 최명희라는 작가가 부럽고 궁금하고 신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항상 드는 마음이지만, 이번에도 나는 왜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지 않았을까, 하고 나의 태만을 탓했다. 바로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그저 저희끼리 손을 비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 건너 강골 이씨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쪽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어디 먼 타지에서 불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그러다가도 허리가 휘어질 만큼 성이 나서 잎사귀 낱낱의 푸른 날을 번뜩이며 몸을 솟구치는 소리, 그런가 하면 아무 뜻없이 심심하여 제 이파리나 흔들어 보는 소리,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제 몸 속의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 내는 한숨 소리, 그 소리에 섞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얼마든지 들어 낼 수가 있었다.  (1권 8쪽)

 

이건 대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대숲에 이는 바람에 귀가 젖어 그것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와 몸짓을 다 눈치챌 수 있었다는 문장들 뒤에 나오는 대숲 바람에 대한 묘사들이다. 위의 저 문장들에 앞서,

 

그런데 이처럼 날씨마저 구름이 잡혀 있는데다가 잔바람이라도 이는 날에는 으레 물결 쏠리는 소리를 쏴아 내면서, 후두둑 비 쏟아지는 시늉을 대숲이 먼저 하는 것이었다. (1권 8쪽)

 

라는 표현도 나온다. 대숲에 이는 바람 하나 가지고 이처럼 다양한 표현과 문장들을 엮어내다니!!  첫 두 페이지에서 이렇게 감동시키면 앞으로 읽게 될 10권에 거는 독자의 부푼 기대를 어찌 감당하려고, 초반 문장에 이토록 치밀한 정성을 들였을까. 조심조심 문장들을 따라가며 천천히 천천히 공을 들여 읽고 싶어진다.

 

난  <혼불>로, 막내 개똥이는 바느질로 이 여름을 잊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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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7-1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에는 혼불을 읽자고 다짐했는데 벌써 7월이고 이번 주문에서도 또 빠졌어요. 이 페이퍼 보니 자극받네요. 다음주 주문엔 혼불을 꼭 넣고 올해의 목표를 달성하겠어요. 불끈!

섬사이 2014-07-14 23:1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과 저의 공동의 목표가 생겼군요. 음, 꼭 달성해요, 우리! 불끈!!!

하늘바람 2014-08-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정말 여름을 잊을 준비를 해야겠어요

섬사이 2014-08-20 10:4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죠?
어제 밤에 선풍기 닦아서 커버덮어 정리하는 꿈을 꾸었어요.
어느새 자다가 깨서 이불을 찾아 덮을만큼 여름이 물러났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영원한 삐삐 롱스타킹 여유당 인물산책 1
마렌 고트샬크 지음, 이명아 옮김 / 여유당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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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그녀에 대한 내가 몰랐던 이야기.

작가로서의 그녀는 너무나 훌륭하지만

여성으로서의 그녀,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삶은 아프다.

이 책을 읽어서

그녀의 책들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세 살 적 여름이 기억나요. 더 이상 놀이를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더 이상은 안 됐어요. 너무나 당혹스럽고 슬펐어요." (36쪽)

그렇다면 그녀는 출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출판되려면 그 책이 좋은 책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외하고는 어떤 요구 사항도 없었다. "미래의 어린이책 작가에게"라는 글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이 지키고 있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을 밝혔다. 언어를 아이들에게 맞게 잘 가려 쓰고 다듬어야 한다는 점과,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른들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삼가야 하지만, 아이들 마음에 쏙 드는 익살스러운 이야기는 흘러넘쳐도 좋다. (108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직감에 몸을 내맡긴다. "머리를 너무 많이 굴리지 말라! 그것이 최선이다. 솔직히 터놓고 마음 가는 대로 써라. 난 모든 어린이책 작가들이 어른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당연히 허용되는 자유, 곧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쓸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109쪽)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교욱하려는지 끝도 없이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나는 모든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오로지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그 아이에 관해서만 생각한다고 되풀이해서 대답한다." (115쪽)

"엄마는 자신의 십대 시절을 조금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그 시절을 텅 비어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우리 관계는 무척 돈독했어요." (126쪽)

스투레가 세상을 뜨자 아스트리드는 일과를 필요에 맞게 조정했다. 새벽 5시나 6시에 일어나 차를 끓인다. 그리고 빵 두 조각에 잼을 발라 재빨리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장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 원고를 쓰는 습관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 스톡홀름의 집에서든, 여름을 보내는 푸루순드에서든 침대에 누워서 속기를 했다. 속기를 마치고 나면 바사 공원이 내다보이는 책상 앞이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푸루순드 베란다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마음에 들 때까지 손질한다. (132쪽)

"한 문장을 열 번 넘게 고쳐 쓰는 일이 잦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문장들을 내 귀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내 귀에 최고의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때까지 쓰고 다시 쓰고 또 고쳐 썼다. 어느 한 곳도 뚝 끊어지는 일 없이 문장들이 선율을 타고 흐를 때까지..... 난 독특한 언어의 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가락도 이야기도 내 마음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울림이다." (132쪽)

글을 쓰면서 그녀는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글쓰기. 그것은 고된 노동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근사한 일이다. 아침이면 글을 쓰고 밤이 되면 생각한다. 아! 내일 아침이 밝아 오면 다시 글을 쓸 수 있겠지!" (134쪽)

마르가레타 스트룀스테트는 말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 세계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여자애를 한 명이라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작품 속의 외로운 남자아이들에게는 라르스를 바라보는 아스트리드의 감정이 조금은 녹아 있다. (151쪽)

"꿈의 세계를 꽃피우는 자양분으로 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만 있다면,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영혼의 방에 은밀히 들어앉아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들을 그려 낼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그림들이 꼭 필요하다." (159쪽)

작가는 아이들에게 승리를 안겨 줌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162쪽)

책을 쓰기 시작하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일을 중단하는 것도 관심을 흩뜨리는 것도 참지 못했다. (165쪽)

'더 간단히 말할 수 없을까? 더 소박하게.'(171쪽)

그녀의 작품 활동은 완전히 끝이 났다. 아직도 매일같이 새로운 이야기들이 떠올랐지만 말이다. 1987년 9월 어느 날, 집 앞 바사 공원 위로 땅거미가 내릴 무렵 아스트리드는 친구 마르가레타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머릿속에 온갖 상황들을 생생하게 그려 놓고 말도 안 되게 아이들 같은 이야기를 계속 떠올려. 그러곤 이야기 속의 일들을 다 겪어 봐. 내가 직접 주인공 노릇을 하면서 말이야. 사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털어놓지 못했어. 아직까지도 이렇게 어린아이 같다는 게 조금 창피하잖아."(207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자기 안에서 가장 강렬하게 꿈틀거리는 본능은 '돌보기 본능'이라고 말하곤 했다. 외로운, 겁먹은 아이를 돕는 꿈은 한결같이 그녀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이 아이는 때로는 꼬마 칼, 때로는 미오나 베르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리고 변함없이 라르스이기도 할 것이다. (208쪽)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그녀는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꼭꼭 숨어 버리려고요. 어딘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날 거예요. 저를 어디서도 찾지 못할 겁니다. 약속할게요.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하게 되겠지요."
-중략-
2002년 1월 28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눈을 감은 날은 월요일이었다. 그녀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한 달 내내 고생하다 마침내 삶을 마감했다. (220쪽)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난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농부의 딸로 산, 스몰란드 출신의 아스트리드이다."
1996년 저 높은 하늘에서 발견된 유성 3204번이 우주 곳곳을 날고 있다. 러시아 학술원은 그 유성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름을 따 붙였다. 아스트리드가 날고 있는 우주 어딘가에 진실이 놓여 있다.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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