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우리집 막내의 첫영성체 교리가 있었다. 첫영성체를 하려면 일주일에 4번 성당에 가서 교리를 받아야 했는데 성당까지 가는 길이 좀 빡쎄다. 난 운전을 할 줄 모르고 버스를 타고 가기엔 애매해서 막내랑 같이 비탈 심한 길을 걸어다니느라 헉헉거렸다.  그나마 더워지기 전이라 다행이었지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웠다면 첫영성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앙심이 그 정도로 깊은 사람이 아니니까. (나이를 먹고 늙어갈수록 종교생활이란 게 도움이 된다는데...) 내가 내내 안나가고 있던 성당을 다시 나가면서까지 막내에게 첫영성체를 받게 한건 시댁이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막내는 5월 내내 교리를 받고 6월 첫 날 무사히 첫영성체를 마쳤다. 첫영성체를 하는 날에는 인천에서 시부모님이 축하해주러 오셨다. 처음에 성당을 낯설어하던 막내는 첫영성체 교리를 받는 동안 친구들도 사귀게 되면서 성당에 많이 재미를 붙였다. 첫영성체를 마친지 한 달이 지난 요즘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남편의 차를 타고 성당에 간다. 대학생 큰애들은 실컷 늦잠자라고 놔두고 남편과 나, 막내 셋이서만 간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남편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며 막내의 주일학교가 끝나길 기다린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함께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준비해 먹는 게 일요일 아침의 우리집 풍경이 되었다.

열심인 신자는 결코 아니고, 성당 사람들이 어떤 단체에 들어서 같이 활동하자고 하면 미꾸라지처럼 빠져 달아나는 날나리 신자라서 미안하지만 그냥 딱 이 정도. 일요일 아침 두 명이 빠지긴 했지만, 암튼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이 나들이 같기도 하고 산책 같기도 한, 딱 이 정도의 종교생활이 난 좋다.

 

 

 

 

몇 년 전에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 햇빛공방이라는 엄마들의 바느질 모임이 만들어졌었다. 함께 모여 그림책 속에 나오는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고, 헝겊 그림책도 만드는 아주 재미난 소모임이었다. 나도 잠깐 햇빛공방에 들어가서 <야옹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에 나오는 고양이 캐릭터를 넣어서 막내의 가방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바느질이라면 적성에 안맞는 일이라고 손사레를 치던 내가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그 책은 우리 막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그림책 중 하나였다)

그런 작은 모임이었던 햇빛공방이 작년에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해서 따로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은 마을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살림하고 애들 챙기면서 바쁘게 일하는 햇빛공방 엄마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햇빛공방 엄마들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함께 일을 해오던 엄마들인데 이번에 도서관협회에서 도서산간벽지의 작은 학교들에 책꾸러미를 만들어 보내면서 권윤덕 선생님의 <시리동동 거미동동>에 나오는 여자 아이와 토끼, 까마귀를 인형으로 만들어 선물로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 인형의 제작을 햇빛공방이 맡았고 권윤덕 선생님과의 협의 끝에 드디어 인형제작에 들어갔는데 일일이 핸드메이드로 만들다보니 일손이 부족...  내 코를 석자로 만들어놓은 일이 있어서 그 일을 먼저 마치느라 일찍부터 일을 돕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 햇빛공방의 한 멤버였고 오랫동안 함께 도서관 일을 해온 충만한 의리감으로 무장하고 마지막 이틀, 일손을 도왔다. 무사히 일을 마치고 80박스의 인형을 트럭에 실어 보내는 햇빛공방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엄마들은 힘이 무지무지 세다. 흠!!

 

 

 

 

트럭이 와서 인형박스를 실어가는 걸 보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왔더니 막내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울먹이며 떠듬떠듬 하는 말이.. 그러니까,  수요일이라 4교시밖에 안하고 집에 일찍 왔는데 밖에 같이 놀 친구가 하나도 없더란다. 혹시 같이 놀 친구가 나오려나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고, 그게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그래서 열 살 막내가 나를 붙잡고 엉엉 우는 거였다.

"내 시간 어떡해~~~ 어떡해, 내 시간~~~"

저런 멘트를 날리며 우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좋아하던 둘째가 어릴 때 "빵빵~~ 빵빵~~"하고 운 적은 있었지만 놀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이 아까워서 통곡처럼 우는 아이는 처음인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엉엉 우는 딸을 앞에 두고 엄마인 나는 우하하하하 웃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막내가 평소에 못놀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매일 저녁 7시 30분까지 신나게 밖에서 노는 아이다. 옛말에 틀린 말 없다더니..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이 딱 이런 경우에 맞는 말이다. 놀아본 놈이 노는 맛을 안다. 그 맛을 못 봤으니 저렇게 서러웠던 거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토닥토닥 해줬더니 금세 내 품안에서 곯아떨어졌다. 큰애들은 혼자 놀 줄을 모른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제 7월이다. 한 해의 반이 지나고 한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올해 지나간 반은 내 뜻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따라가기에 바빴던 것 같다. 이제 남은 반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한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을까. 작년까지 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 계셨던, 나랑 동갑인 선생님이 사서 일을 그만두고 황토집 짓는 걸 배우러 다니신다. 건강하고 즐거워하신다고 전해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내 시간을 살아야지'하는 조바심 비슷한 게 꾸물거린다.

나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성공을 하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도 별로 없다. 그냥 지금의 일상을 잘 지켜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그냥 조용한 내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마음이 내킬 때는 이렇게 주절주절 혼잣말하듯 끄적거리고 싶다. 아직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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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7-0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 첫 영성체 축하드립니다. 대견하네요^^
따뜻한 일상입니다. 성당을 나들이처럼........ㅎㅎ
일 그만두고 황토집 짓는걸 배우러 다니는 그 사서님 멋지시네요.

섬사이 2014-07-04 16:0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늦었지만 세실님 생일도 축하드려요. ^^
'사서'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 중에는 멋지고 좋은 생각을 갖고 사시는 분들이 많은가봐요.
세실님은... 지금은 '사서 선생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사서로 계셨으니까,
그래서 어르신의 워드 작업을 도와드리는 멋진 일도 하실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책을 늘 가까이 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라 그만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은 게 아닌가 싶어요.
뜨거운 날이네요.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몸 튼튼,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하늘바람 2014-07-06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이뻐요. 막내 울 태은이두. 저리 이쁘게 자랐으면하네요

섬사이 2014-07-07 16:04   좋아요 0 | URL
드레스를 입히니까 쪼끔 이뻐 보여요.
남자 아이들과 S보드 타면서 놀기를 좋아하는
머스마 같은 딸이랍니다.
태은이처럼 깜찍한 맛이 없어요. ㅠ.ㅠ

순오기 2014-07-08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도 예쁘고 인형도 예쁘지만 울면서 하는 말이 최고에요!!^^

'내 시간 어떡해~~어떡해 내 시간!'

섬사이 2014-07-08 23:28   좋아요 0 | URL
하루라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면
엉덩이에 뿔이 돋는 아이입니다.
그 날은 아마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잔뜩 기대했는데
빈 밥상을 받은... 그런 기분이었을 거예요.
걱정이지요.
갈수록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줄고 있거든요. ㅠ,ㅠ
 
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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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책꽂이에 꽂혀있던 세계문학전집의 갈색 책등을 훑어 보고 있었다. 아마 무지 따분하고 지루한 날이었나보다. <죄와 벌>, <적과 흑>, <전쟁과 평화>, <보봐리 부인>, <이방인>... 여기저기서 들어본 제목들이 가지런하게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 중에 내 눈을 붙잡는 제목이 있었다. <달과 6펜스>. 단발머리 중학생 여자아이가 보기에 그 책은, 묵직하고 심각한 다른 제목들 사이에서 무척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제목으로 돋보이고 있었다.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뽑아 들었고, 방학 때였는지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이 책을 붙들고, 제목에서 느꼈던 낭만과 감성의 문맥을 만나려고 애쓰며 씨름했던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지루하고 힘든 씨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긴 시간이 흐르고 이 책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읽었다'는, '읽어냈다'는 사실 뿐이었다. 책을 읽으며 만났을 문장 한 줄은 커녕 낱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누가 그 책이 어떤 내용이었냐고 묻는다면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과연 읽었다는 건 사실일까? 그 날 나는 도대체 책을 붙잡고 뭘 했던 걸까? 말 그대로 읽은 게 아니라 씨름을 했었나 보다.

 

쉰이 멀지 않은 나이에 다시 이 책을 펼쳤다. '읽었다'는 사실만 있을 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책. 그런데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p.11)이라는 글 위에서 잠시 멈췄다. 하하, 웃음이 났다. 이런 류의 글이 이어진다면 여중생이었던 내가 이 책과 어떻게 공감을 나눌 수 있었겠는가. 오래 전 그 여중생도 틀림없이 범상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범상한 삶이 주는 무기력과 공허감 따위는 없었다. 심심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조차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반짝임을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대책없는 낭만의 꿈은 꾸었을지언정 '낭만적 정신의 저항'의 처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나는 저 문장 하나로 이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처럼 책을 읽는다기 보다 씨름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섬세하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행간의 깊은 의미를 짚어내려고 눈을 부릅뜨고 읽지 않더라도,  이 책이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쓴 소설이라는 건 알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변화를 겪으며 문명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타히티로 떠난 고갱에 대한 이야기는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고갱과 겹쳐지는 인물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인데, 고갱의 비참했던 삶에 소설의 극적인 픽션이 더해지면서 비상식적이고 기괴한 성품을 얻게 된 스트릭랜드는 독자를 책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얼마쯤 책을 읽어가다 보니까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서 자꾸 니코스 키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아마도 허위와 가식으로 뒤덮힌 세상을 조롱하듯 거침없이 신념대로 밀고 나아가는 성격 때문인 것 같은데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내 어렴풋한 기억을 더둠어 보자면 조르바가 건강하고 유쾌하고 자유롭게 삶을 통째로 끌어안고 살아간다면, 스트릭랜드는 비극적 운명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스인 조르바>도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겠구나..)

 

예를 들면 이런 글들. 증권브로커였던 스트릭랜드가 그 안락하고 편안한 삶과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고 난 후, 글 속의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을 받고 파리로 가서 스트릭랜드를 만나는 장면이다.

 

한 번은 이렇게 비꼬아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런 격언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격언 말입니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돼먹지 않은 헛소리요."

"칸트가 한 말인데요."

"누가 말했든, 헛소리는 헛소리요."

이런 인간을 상대로 양심에 호소해 보았자 효과가 있겠는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격이었다. 나는, 양심이란 인간 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중략)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중략)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중략) 그리고 양심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온갖 독설을 퍼붓는다. 왜냐하면 사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그런 사람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p. 77

 

한편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에서는 이런 글이 나온다.

 

재수없는 사람은 자기의 초라한 존재 밖에도 스스로 자만하는 장벽을 쌓는 법이다. 이런 자는 거기에 안주하며 자기 삶의 하찮은 질서와 안녕을 그 속에서 구가하려 하는 게 보통이다. 하찮은 행복이다. 만사는 정해진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험한 길, 신성한 길을 따르다 안전하고 단순한 법칙을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공격이 차단된 하찮은 확신의 테두리 안에서 지네처럼 꼼지락거리다 보면 아무 도전도 받을 수 없다. 숙명적인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강력한 적은 오직 하나, 터무니없는 확신뿐이다. 확신은 내 경험의 벽을 허물고 내 영혼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p.507

 

스트릭랜드와 조르바가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뒤적이다 발견한 문장들이다. 양심이니 질서와 안녕이니, 정해진 순서를 따라 안전하고 단순한 법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러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스트릭랜드와 조르바 앞에서는 여지없이 갈가리 찢겨져서 편안하고 안락하고 폼나게 사는 게 꿈이었던 내 자신이 지네만도 못한 보잘 것없고 좀스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자기만의 확신을 가진 두 인물 앞에서 나는 놀라고 당황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통쾌한 해방감과 막연한 동경과 경외심을 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찬찬히 두 책을 읽다 보면 서로 비슷한 듯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통하지만 사뭇 다른 두 인물을 드러내줄만한 더 적당한 문장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스트릭랜드 주변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을 책을 통해 관찰하는 것도 씁쓸한 재미를 주었다. 가난하고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지만 진솔한 사람들과 우아하고 지적인 영국 중상류층 삶의 가식과 허례가 대비를 이루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 면면의 틈바구니에는 내 모습이 슬쩍슬쩍 보이기도 한다.

 

스트릭랜드는 문둥병에 걸려 자기가 살던 낡은 오두막 벽에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함께 살던 원주민 여자 아티에게 자기가 죽으면 작대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오두막을 완전히 태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실제 고갱은 타히티에서 심장마비로 죽었고, 유언같은 작품으로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작품을 남겼다. 다행스럽게도 불에 타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묘사한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작품이 작가가 이 작품을 염두에 두고 묘사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달과 6펜스>를 읽고 나서 고갱의 마지막 작품을 보는 내 마음은 그 전과 같지 않다.

 

 

여전히 달을 향해 날아오를 수 없는 나. 앞으로도 달을 향해서 날아오를 일이 없을 것 같은 나.

달을 잊지 않고 매일매일 바라보기라도 한다면 좋을 텐데, 난 자주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달마저도 잊고 산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56쪽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그 전환이 광신자에게처럼 단숨에, 사도들에게처럼 광포하게 왔다고나 할까. -75쪽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90쪽

그야 인간이라는 예측불능의 존재를 두고 얘기할 때는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긴 하나, 어쨌든 블란치 스트로브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생각했던 인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도무지 납득이 안 되었다. 친구의 신뢰를 비정하게 저버린 행위는 이상할 것이 없다. 남의 불행이야 어찌 됐든 제 기분만 만족된다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것, 그것은 그라는 인간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었다. 고마움이라고는 전혀 몰랐고 동정심도 없었다. 보통 사람이면 으례 갖기 마련인 감정들도 그에게는 없었다. 그에게 왜 그런 감정이 없느냐고 탓한다면 우스운 일이 되고 만다. 야수더러 왜 그렇게 사납고 잔혹하냐고 탓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58쪽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실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211쪽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223쪽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이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260쪽

세상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는 것,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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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도 김씨 김수로 사계절 아동문고 85
윤혜숙 글, 오윤화 그림 / 사계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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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그 속에서 여러가지 벽을 만나게 된다. 사람마다 다 나름의 역경과 고난이 있듯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저마다 부딪치게 되는 벽이 있으니까.  책을 읽는 나는 그 벽 앞에서 힘들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으쌰으쌰 응원하기도 하고, 답답함에 열불이 나서 냉수를 들이키기도 한다. 어린이책을 읽으면 주인공이 '어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안타까움도 응원도 열불도 배가 되곤 한다.

 

'김수로'는 12살 남자 아이다. 아빠는 '김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로 귀화한 인도인이다. 아, 써놓고 보니 이 말도 틀린 말이다. 수로와 김하산씨가 듣는다면 펄쩍 뛸 일이다. 제대로 고쳐 말하자면  김수로의 아버지 김하산 씨는 인도인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로 귀화한 우리나라 사람이다. 아들인 수로가 보아도 '크고 깊은 눈, 두툼한 입술, 숯검댕처럼 굵은 눈썹, 까무잡잡한 피부만 아니면 나도 가끔 우리 아빠가 인도 사람 맞나 헷갈릴'(p.17)정도로 김하산 씨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완벽 적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로에게는 아빠가 원래는 인도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되는 고민이 있다.

 

수로네 세 식구는 할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깐깐하고 엄격한 대목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아빠를 싫어한다는 게 수로의 고민이다. 수로 생각에 할아버지가 아빠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빠가 인도 사람이기 때문인데 책에 또다른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수로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서류상 절차상 '한국인'으로 인정은 받았다고 해도 사람 사이에서 심정적(?)으로 '한국인'으로의 대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우리 나라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다문화 가족의 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온 다른 국적의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붙이고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니 할아버지가 외출하신 틈을 타서 할아버지의 목공방에 숨어들어 목공작업에 열심인 아버지를 보며 '내 소원은 우리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른 집들처럼 서로 친해지는 거'(p.10)라고 하는 수로의 소원이 이해된다. 어느 날 인도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냐는 수로의 질문에 김하산 씨는 '순례자'였다고 말한다. 히말라야를 아마 스무 번도 넘게 오르셨을 거라면서.

 

"인도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아. 무엇에 얽매이는 게 싫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세상을 배우는 거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인도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떠돌이 병을 앓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 같았다. 대목인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평생 한뎃잠을 주무셨다. (p.89)

 

온정성을 다해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아갈 집을 짓는 대목 할아버지로서는 머무는 데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순례하는 인도인들의 관습과 가치관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비록 똑같이 '떠돌이병'을 앓았다고 해도 병의 증상과 원인이 다른 병인 셈이다. 그러니까 김하산 씨가 인도 사람이어서 싫은 이유에는 이런 충돌과 갈등들이 함께 들어있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보듬어 앉는 '집'이라는 공간을, 그것도 나름의 완고한 철학과 고집을 갖고 짓는 대목이라는 것은 인도인 사위 김하산을 결국엔 보듬어 안을 것이고 수로의 소원은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또 하나의 큰 고민은 얄미운 외사촌 종수에게서 시작되었다. 수로와 한 반인 종수는 교실에서 '패밀리가 떴다'라는 게임을 벌인다. 김씨와 이씨 성을 가진 아이들끼리 모여 누구네 조상이 더 잘났는가를 따지는 건데, 수로가 은근슬쩍 김씨 패밀리 쪽으로 다가가자 종수는 수로에게 '우리 나라 사람이긴 한데 토종이 아니'(p.44)라고 하며 수로를 혼란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집까지 가는 길에 시장골목을 걸으며 '저 상추는 토종일까, 외래종일까? 뽀바이가 좋아했으니까 시금치는 토종이 아닐지도 몰라.'(p46)라며 혼자 고민에 빠질 정도로.  이 고민의 해결은 12살 남자아이 같지 않게 의젓하고 생각 깊은 같은 반 친구 태석과 멋진 담임 선생님에 의해 해결된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자기 성의 시조에 대해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 준다. 화산 이씨인 태석이는 자기 시조는 베트남의 가장 오래된 리 왕조의 왕자였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가야국의 김수로 왕과 결혼한 인도의 공주 허황옥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로와 선생님의 몸에는 똑같이 한국인과 인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인도 김씨도 한국인의 성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어느 김씨세요?"

"네, 저는 인도 김씨입니다."해도 아무도

"네? 인도 김씨요? 그럼 인도에서 오셨어요?"하는 바보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될 거다.

지금 베트남에서 온 리 왕조의 왕자나 인도에서 온 허황옥 공주의 후손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듯이.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우리는 다같이 섞여 살게 되어 있으니 '가짜'니 '토종'이니 '다문화'니 하는 말들이 다 쓸데없고 부질없고 무의미한 말이고 편견이라고, 그런 옹졸한 마음에 잡혀있지 말고 빨리 사이좋게 섞여 살아갈 궁리를 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다.

 

김수로나 김하산 씨보다 더 힘든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들 곁에 '이태석'같이 똑똑하고 줏대있고 의젓한 친구가 있을까?  수로네 담임 선생님처럼 센스있고 멋진 분이 계실까?  특히나 '이태석'이라는 아이는 너무 멋지고 이상적이라 좀 현실감이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진짜로 그런 아이, 그런 선생님이 계실까 하는 의문을 접고 '이런 친구, 이런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하는 작가의 착한 바람이 깃든 거라고 이해하자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무거우니까.

 

문득 나의 시조가 궁금해져서 찾아 봤다. 놀랍게도 나의 시조는 기원전 117년 신라 건국 이전 부족국가 시대의 촌장이다. 2,100년도 전의 까마득한 이야기가 내 안에 있었구나. 그 까마득하게 오랜 시간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엔 수 많은 사연과 사건들이 얼룩져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야말로 '다문화'라는 말로는 모자랄 세계 문화의 응집체이자 인류 모든 혈족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걸까?) 사정이 이렇다면 시조를 따져서 우리끼리는 같은 핏줄이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의 성씨의 기원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혼인으로 섞인 피만 따진다 쳐도 내 안에는 온갖 성씨, 온갖 민족들의 피가 다 흐르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2천년 전의 시조의 끈을 잇고 있는 우리가 참 독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핏줄에 대한 집착이 무시무시하다는 뜻일 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어린 김수로와 김하산 씨들의 고단함을 손톱만큼 알 것도 같다. (소심하게나마 으랏차차, 힘내세요,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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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키는 사람들 사람이 보이는 사회 그림책 1
신순재 글, 한지선 그림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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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표지부터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그림책이 틀림없는데, 어째서 만화의 느낌이 나는 건지.. 혹시나 해서 휘리릭 속을 훑어보니까 어, 정말 만화같은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표지만 보고 만화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림책의 그림과 만화책의 그림은 어떻게 다른 걸까? 말풍선이나 몇개의 컷으로 화면을 분할한다거나 하는 눈에 띄는 특징 말고 그림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만화적 느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그 고민을 붙잡고 어영부영 며칠이 휙 지나가 버렸다. 어떤 과장된 표현이 들어있나 했지만  <마법사 똥맨>이라든가 <선생님 과자>같은 책에 그림을 그린 김유대의 그림에 비하면 특별히 과장된 그림이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스스슥 선의 느낌을 살려 그린 듯한 그림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  어쨌든 무겁고 진지하다는 느낌이 덜하니까 아이들은 더 쉽게 책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직업'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예전에 비하면 참 많이 소박해지고 다양해진 것 같다. 뭔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까운'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달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깨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몇 차례 읽고 난 느낌을 미리 말하자면 '일'보다는 '사람' 또는 '삶'의 소박하면서도 강인하고 따뜻한 모습이 더 마음에 남았다. 사계절 출판사의 '일과 사람'시리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사람이 보이는 사회 그림책' 시리즈도 '사람이 하는 일'보다는 '일 하는 사람'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지 않아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사계절 출판사의 '일과 사람 시리즈'가 한 권의 책에 하나의 직업을 담고 있다면 창비의 이 '사람이 보이는 사회 그림책 시리즈'는 어떤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는 하나의 직업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이를테면 이 책은 제목대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경찰관, 구급대원, 새벽 수산물시장의 사람들, 환경미화원, 도로정비원, 천문학자, 그리고 택시운전기사. 마지막으로 조카 영두와 함께 밤에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와서 밤을 지새우며 만화를 그리는 영두의 고모까지.

 

사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내 친정오빠는 디자인 일을 한다. 20대 대학시절부터 밤새기를 밥먹듯 하는 올빼미다. 친정엄마는 항상 그런 오빠를 탐탁치 않아 하신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오빠와 아직도 그 문제로 티격태격하시는데, 간혹 나한테 오빠에 대한 못마땅함을 드러내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금은 농경사회가 아니다, 농사짓고 살던 때나 해뜨면 일찍 일어나 일하러 나가는 거였지, 요즘은 일하는데 밤낮이 따로 없다고 말씀드리지만 말씀드릴 때뿐이다. 오빠의 건강을 염려하며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오빠의 밤샘을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보신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을 우리 친정엄마에게 읽어드리고 싶었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우리엄마의 노심초사를 이 책으로 덜어드리고 싶었다.

 

버스커버스커의 '서울사람들'이란 노래를 듣는다. '아가씨 어디가 클럽가요, 아니요 오늘도 야근해요~'하는 가사가 흐른다. 낮에 일하든 밤에 일하든, 무슨 일을 하든 고단함을 덕지덕지 어깨에 짊어지며 살아가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또는 그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내가 고맙고 소중하고 대견하다고 여겨주는 사람들이 많다면 힘들어도 견디며 살만하지 않을까. 이 책을 참 좋은 책이라고 한다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우리 아이들에게 '일'의 소중함과 함께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고마움을 갖게 한다는 것. 시리즈 제목대로 사람의 직업적 기능이 아니라 '사람'이 보인다는 것.

 

아이들의 공부가 중요해질수록 지식정보그림책이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지식정보그림책들에 묻혀 수준높은 순수문학적(이런 게 있었나? 싶지만 아무튼 용어선택에 대한 문제점은 그냥 넘어가주기를..) 그림책이 점점 사라져갈까봐 두렵다. 지식정보그림책은 아이들에 대한 어른의 욕구가 반영된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아이들이 이런 것 까지 알아야하나? 싶을 정도의 내용을 담은 책들을 보기도 한다. 지식정보그림책의 증가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요구라 한다면 조금은 아이들 입장을 헤아린 책들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사람'을 보여주는 이 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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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4-04-15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 교과를 일찍 배우면서 어린이책 출판 판도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이 책, 그림과 설명은 그림책 읽는 아이들 연령에 맞는 것 같아서 반갑더라고요. 그런데 밤에 일하는 사람을 '투명인간'이라고 한 대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_- 재밌게 쓰려고, 또는 안 보여도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뜻으로 썼겠지만 '안 보인다'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 같아서 말예요.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영화 "빵과 장미"에서 사무실 청소일을 하는 사람이 유니폼을 가리키면서 '이 옷이 우리를 안 보이게 해준다'고 했던 것도 생각나고요. =_=

섬사이 2014-06-20 13:10   좋아요 0 | URL
이렇게나 늦은 댓글이라니! ㅠ.ㅠ
잘 지내시죠?
얼마 전에 도서관에 원종찬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의 근대아동문학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어요.
그것도 세 번이나!!!
네꼬님 생각이 나던걸요. ^^
 

어느새 3월이 끝나간다.

도서관은 새로 열리는 강의들이 넘쳐난다.

내가 속해 있는 모임들도 올 1년을 어떻게 꾸려갈지 대강의 계획이 세워지고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갔다.

 

1.

지난 한 해동안 책고르미는 서울의 산, 강, 궁, 길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일 중에서

'산'을 맡아 일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우리 아동문학의 거목을 돌아보다'라는 제목으로

방정환에서 권정생까지의 구비구비 곡절도 사연도 많은 우리의 아동문학사를 짚어가기로 했다.

그 첫단추를 아동문학사에 대한 강의를 듣는 걸로 계획,  

원종찬 선생님을 모시게 되어 지금 무척 설레며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강의를 다 듣고 나면 책고르미들이 모여 아동문학작품들을 읽고 공부해서

가을에는 바깥도서관을 열고 책잔치를 벌일 예정이다.

 

2.

6월부터는 시인 신동호 선생님을 모시고 8회에 걸쳐 책모임을 갖는다.

이 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녹취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볼까 논의중.

 

3.

지난 겨울, 도서관에 오는 유아들을 데리고 책놀이 시간을 맡아 진행했다.

겨울이 끝나자 3월부터는 도서관에서 초등2학년 문학교실을 맡게 되었다.

문학교실을 맡게 되자 1년동안 책놀이 활동가로서의 교육과정을 밟을 기회가 생겼다.

교육과정을 함께 할 10명의 사람들이 책놀이 창작소라는 모임을 꾸렸다.

가까운 초등학교의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될 것 같다.

도서관 문학교실, 초등학교 책놀이 활동... 커리큘럼을 짜고 준비하느라 머리속이 복잡하다.

 

4.

막내가 속해 있는 미술품앗이 모임 색깔아이에서는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작가 특유의 그림 기법을 배워 책을 만들기로 했다.

마당에 개를 키우신다는 이억배 선생님의 작업실을 막내는 제일 가고 싶어 한다.

아직 어떤 작가의 작업실을 갈 수 있을지는 미정이지만

이호백 선생님과 정승각 선생님은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꿈꾸고 있다.

도서관 관장님이 열심히 섭외(?) 중이니까 가능할 거라 믿는다.

색깔아이는 작년에 서울의 '강'에 대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책을 만들지...

이미 스토리텔링 강의도 들었건만, 아이들은 고민이 없다.

아이 데리고 작업실 찾아다니며 일을 진행해 나갈 엄마들만 고민, 고민, 고민 중.

 

5.

놀기위한 3학년 아이들의 모임, 피노키오.

작년에도 참 열심히 놀러 다녔는데 올해는 움집체험이 계획 중이다.

아이들더러 움집을 만들어보라고 할 생각이다.

하루종일 땅만 파라고 해도 즐거워할 아이들이라는 걸 알기에

엄마아빠들까지 생각만으로도 싱글벙글이다.

올해도 열심히 돌아다니고 아이들에게 즐거운 기억들을 심어줘야지.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앙코르와트를 가자고 매달 회비를 내서 저축 중.

마음으로는 100번은 다녀왔을 앙코르와트다.

 

6.

해마다 여름에는 도서관 아이들이 2박 3일 캠프를 떠난다.

막내가 1학년이었던 재작년에는 목공과 건축이 주제였다.

꼬맹이들이 톱질, 망치질 해서 작은 의자도 만들고 놀이집도 만들었었다.

작년에는 생태, 세밀화 캠프. 생태 숲 해설가 선생님들과 북한산 숲을 거닐었고,

세밀화를 그렸다.

올해 도서관 여름캠프는 그림책에 나오는 집 만들기.

4,5명의 사람이 들어갈 크기의 집을 아이들이 만들게 될 것 같다.

 

7.

천문해석학 강의도 포기했고,

도서관에서 준비한 어린이들 대상의 여러 프로그램들에도 눈감아 버렸다.

특히나 도서관 노래모임인 노래소풍에서는 함께 노래할 어린이를 충원,

올해 두 번째 음반을 낼 예정이다.

첫번째 음반을 낼 때에도 막내를 참여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울 막내가 노래부르기 싫다고 딱 결정을 내려주는 덕에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막내도 10살.  마음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무리다.

욕심이 과하면 재앙을 부르기 마련.

열심히 노래소풍을 꾸려온 엄마들과 아이들을 응원하는 걸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 앞에 놓여진 일들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까 생각하면 마음이 비장해진다.

정신없이 바빠진다고 해도 나름 보람있는 일이니까 괜찮은데,

어쩐지 책 읽고 끄적이는 일도 점점 멀어지고 더 멀어질 것만 같은 슬픔 예감...

내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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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4-03-2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 문학교실에 저도 가고 싶네요!!

섬사이 2014-03-24 20:22   좋아요 0 | URL
우왕, 네꼬님~~
2학년 아이들 데리고 버벅버벅 헤매고 있어요.
문학교실에 오고 싶다는 네꼬님 댓글을 보는 순간!!!!
아, 네꼬님이 문학교실 선생님으로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