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봄이다. 초여름 날씨처럼 덥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댄다. 어제는 시조부님 기일이라 산소에 가는데 도로 화단에 심어놓은 팬지 꽃들이 세찬 바람에 꽃잎을 떨어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꽃이 늦어진다 했더니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다 만개해버린 것도 올봄이 유별나다는 증거다. 매년 노란 산수유 꽃이 피고 나면 가녀린 매화가 짧게 피었다 져버리고, 그 다음에 개나리와 벚꽃이 핀 다음 목련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나무가지 위에 툭툭 피어나곤 했다. 그런데 올봄엔 산수유와 매화와 개나리, 벚꽃, 목련이 다 한꺼번에 피었다. 신기하게도 민들레 꽃은 참 드물게 보인다. 작년에 첫 민들레를 3월 14일에 보았고, 재작년에는 3월 21일에 보았는데, 올해는 3월 30일에서야 민들레를 보았다. 그것도 거의 찾아다니다시피 해서 너무나 작고 약해 보이는 민들레를 만날 수 있었다. 
올봄은 지금까지 내가 맞이했던 봄들 중에서 제일 못됐다. 



미세먼지에 날씨도 요동을 쳐서 가뜩이나 나다니기 싫어하는 나는 거의 매일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책을 읽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고 호감을 느꼈던 작가 박지리의 첫 소설책이다. 이 작품으로 2010년에 제 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던 것 같다. 오합, 오체라는 이름의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인데,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비해 문체가 밝고 경쾌했다. 다음엔 <맨홀>을 읽어볼 작정이다. 



오래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얼마전 가수 요조가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소개하는 걸 읽었다. '요조'라는 이름도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딴 거라고 했다. 더욱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나는 이 책이 내 인생을 뒤흔들만큼 인상깊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래, 맞아.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하는 마음으로 자꾸 곱씹게 된다. 물론 이 작가와 나는 살아가는 시대적 상황이 다르고, 환경도 여건도 다 다르고, 나는 무엇보다 자살 기도를 할 정도로 삶이 고통스럽다거나 세상에 환멸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소설 속 주인공 요조가 인간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 공포, 인간 삶의 난해함 같은 것들이 자꾸 마음을 건드렸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읽고 나서 불편해지는 책은 대부분 좋은 책이다.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매일매일 가만가만히 작은 공책에 옮겨 적고 있다. 지금까지 63쪽 '나비'라는 시까지 옮겼다. 옮겨 적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다. 눈으로 쓰윽 읽었을 땐 그냥 스치듯 지나갔던 행들이 갑자기 돋을새김을 한 듯 눈에 띈다. 그럴 땐 잠시 펜을 멈추고 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가만히 좋아하는>을 다 옮겨 적고나면 집에 있는 시집들을 한 권씩 꺼내어 옮겨 적는 일을 계속 해보려고 한다. 


책을 샀다.
며칠 전에 마음책방 '서가는'에 가서 책을 두 권 사왔다.


내가 요즘 내 오래된 기억들을(예를 들면 내가 기억하는 첫 집, 어릴 때 엄마가 사줬던 목걸이, 어릴 적 동네의 풍경 같은 것들) 확인하려 든다고 했더니 책방 쥔장이 추천해준 책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지 알 수없지만 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자기의 여러 기억들을 돌아보는 내용인 것 같다. 나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 나와 나의 기억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나의 기억'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신분석학자는 자기의 기억으로 책을 한 권 써냈다. 정신분석학자가 생각하는 '기억'의 가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고 '나'를 넘어서는 확장된 공감을 일으킬만한 것일까. 나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을 다룬 심리 그림책인데,  그림책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궁금해지는 책이다.  그림책이지만 그림책 같지 않은 책.  뭐랄까, 그림책으로서의 매력이 약하다는 게 아쉽다. 일러스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마 글작가가 정신의학과 교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명문 같은 글들이 부자연스럽다. 굳이 따지자면 그림책이라기보다 글이 적고 그림이 예쁜 짧은 교양심리에세이? 


오늘, 아니다. 이미 어제가 되어버렸다. 어제 우리동네 세 책방(카모메 그림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서실리)이 모여 '호호서가'라는 이름의 플리마켓을 열었다. 바람 불고 춥고 비까지 뿌리는 날씨였다. 집에서 늑장을 부리다 3시 반이 지나서야 집을 나섰다. 가면서 속으로 '날씨도 구질구질한데 벌써 철수한 거 아닐까. 다 철수해서 없으면 걷기 운동했다 치고, 아직 마켓을 하고 있으면 책 구경을 하면 되고.'하는 마음이었다. 
바람 불고 춥고 비까지 뿌리는 날씨였지만 플리마켓은 진행 중이었고 책 3권을 데려올 수 있었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혹시 자기계발서인 건 아닐까 슬쩍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저자가 '철학과 물리학, 심리학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사람이라고 하니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게다가 이 책은 중고책이라 단돈 3천원에 내 품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꺼내놓으니 큰딸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응,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데려왔어.)


난 임경선이라는 작가를 모른다. 그리고 '예담'이라는 출판사도 나와 성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예담'의 책들은 거의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고른 건 제목때문이었을 거다. 자유라잖아. 자유로워지라잖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만큼 대담할 수 있는지 가르쳐줘,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아마 이 책이 나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거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말이 쉽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책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메모지에 '화분에 물줄 것'이라고 적어 놓은 걸 보는 기분이다. '자유로울 것'이라니...... 이 작가는 어떤 생각일까. 그 생각이 궁금해진다. 



김선우의 시집이다. 사실 난 김선우의 글은 시집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아까 적었듯이 나는 매일 시를 옮겨적는 사람. 그러니 기념으로 시집 한 권을 더했다. 집에 있는 시집을 다 필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지만 거기에 이 시집을 한 권 더하는 건 꽤 걸리는 시간에 아주 조금을 보태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다. 김선우의 시와는 좀 친해져보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집에 있는 김선우의 다른 시집들과 한꺼번에 이어서 필사하면 좋겠다.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는 날씨가 풀린다고 했다. 이제 미친 봄은 그만하고 화사하고 청명한 봄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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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혜화동 <마음책방 서가는>에 다녀왔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심리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심리독서모임이라니,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쯤 일찍 도착했다. 책방 분위기는 깔끔하고, 세련됐다. 주인장이 우아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이를 테면 저 엔틱(?)한 느낌의 책꽂이와 작은 책상, 촛대와 촛불모양의 전등.


           입구 왼편에 놓여있던 저 테이블 셋팅 같은 거. 
           책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책방의 분위기가 어떨지 느낌이 왔다.


'마음책방 서가는'은  몸, 마음, 삶을 주제로 한 책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책방이다. '생각속의집'이라는 출판사가 만든 책방이기도 하다. 심리와 관련한 그림책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우울을 다룬 <굿바이 블랙독>과 불안을 다룬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가 바로 여기서 탄생한 것들이라고.






책방 안. 여기저기 레이스 테이블보. 역시 여성스럽고 우아한 취향. 난 그런 취향이 아니라서, 가끔 이런 분위기 속에 있으면 기분이 새롭고 좋다. 맨 아래 사진은 커다랗고 두터운 나무 테이블이 있었던 방의 한쪽 구석이다. 그 커다랗고 두꺼운 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모임을 했다. 남양주에서 오신 분, 안산에서 오신 분, 그리고 나. 3명이었다. 

고백하자면 난 독서모임 같은 걸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예전에 도서관 책고르미로 활동하고, 도서관 상근자의 입장에서 책낭독 모임을 해본 적은 있다. 아, 신동호 시인과 함께 잠깐 책모임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그것도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순수자발적으로 참여해 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책 읽기는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경험이라고 믿는 편이었고, 굳이 그걸 다른 누군가와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남들 앞에 꺼내놓을 만큼 그럴듯한 느낌이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가끔씩 읽은 책에 대해서 블로그 같은 데에 감상을 적긴 하지만 그것도 기억하기 위한 개인적인 기록의 의미가 더 크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자리였다. 하지만 모임 내용의 충실 여부를 떠나서 나와 삶의 내용이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아, 이래서 독서모임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독서모임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야 다양한 관점들이 나올 것 같았다. 엄마들만 모인다거나, 20대 청년들만 모인다거나, 여자만 혹은 남자만 모인다거나 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다양한 나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고 듣는다면 훨씬 더 재미있고, 나를 확장시키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모인 사람들 모두 다른 관점을 수용하는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모임에서 선정한 책은 <에고라는 적>이다. 얼마 전에 이 책을 읽었던 건 다 이 모임 때문이었다. 사실 난 <에고라는 적>이 별로였다. 심리독서모임이라고 했는데, 왜 자기계발서를 읽으라고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책방쥔장의 해명에 따르면 3월에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을 가지고 모임을 했기 때문에 '에고'라는 주제에 더 깊이 들어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선정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책선정에 미스가 있었던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에서는 '꽤 괜찮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오직 '성공'만을 지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특히 모임에 참석한 사업경영자 분의 입장에선 공감가는 부분이 꽤 많아서 평가가 높아졌던 것 같다.  

4월엔 불안을 다룬 그림책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로 모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4월에도 또 참석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독서모임이 신선하기는 했지만 "누군가가 정해주는 책 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테닷" 하는 제멋대로 책읽기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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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쓰고 만화가 정훈이가 그린 책 표현의 기술을 읽었다. 스스로 '정치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유시민은 '왜 쓰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발췌와 요약의 중요성, 악성댓글 대처법, 표절에 대한 의견과 비평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고, 자소서, 보고서, 회의록 쓰는 법,어린 학생들의 글쓰기에 대한 조언까지 이어나간다. 워낙 글을 명료하게 잘 쓰는 '유시민'이므로 쉽게 잘 읽힌다. '쉽게 잘 읽힌다'는 건 분명 장점이지만 유시민의 다른 저작들에 비해 날카롭게 '벼리는 맛'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절하지만 느슨하고 이것저것 상냥하게 설명해주고 조언해주지만 뭔가 덜 채워진 것 같은 허전함이 있다. 유시민의 글은 '글쓰기'를 위한 글보다는 사회의 여론형성을 위한 글이 훨씬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그게 왜 쓰는가라는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기도 했으니까.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대답할 수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대답할 수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대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다운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유시민은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은 ''라는 철학적 자아의 특성에 대한 물음이며, 우리는 인간 일반의 본성 위에 그 어떤 '자기만의 것'을 세웠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거창한 이야기가 결국 '자기소개서' 쓰기로 이어진다. 유시민의 말마따나 '자기소개서'를 폄훼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뒤이어 설명하는 자기소개서 쓰는 법은 결국 그것을 읽는 사람, 혹은 기업이 요구하는 바에 맞춰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기소개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그것을 읽을 사람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사실을 중심으로 정해진 분량만큼만 써야 합니다'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아주 실용적이고 유용한 조언이다. 하지만 '철학적 자아의 특성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 글이 이렇게 끝나는 것은 뭐랄까, 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논문 쓰는 절차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랬다. 유시민은 논문 쓰는 절차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주제를 명확한 형태의 질문으로 만든다.

2)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논문 주제와 관련한 기존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그 현황과 성과와 한계를 요약 정리한다.

3) 기존 연구 결과를 반박, 보완, 수정, 극복하는 데 필요한 사실, 가설, 이론, 해석을 제시하고 서술한다.

4) 논문에 담은 연구 결과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를 정리한다.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썼다.

 

간단하지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글쎄..... 이게 나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논문작성을 앞둔 예비 학사, 석사, 박사들한테 이게 식은 죽 먹기인가. 내가 논문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걸 '간단하다'고 말하는 저 문장 앞에서 더 큰 절망을 느낄 것 같은데... 유시민에게는 저게 간단하고 쉬운가 보다.

 

콘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 '느끼는 책읽기'의 권유, '마음이 먼저'라는 글쓰기 철학(?) 등에는 충분히 공감했고, 새겨들을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얕게 다루었다는 아쉬움이 크다.

 

정훈이가 그린 만화가 글 중간 중간에 삽입되었고, 마지막 11장에는 만화가 정훈이의 <나는 어쩌다가 만화가가 되었나>란 제목의 만화가 실려있다. 글 중간에 들어간 만화들은 챕터가 다 끝난 마지막에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읽다가 중간에 만화가 나오니까 순간 당황스러웠다. 만화를 읽고 지나가자니 글의 맥이 끊기고, 그냥 안 읽고 넘어가자니 읽다가 만화를 보기 위해 다시 돌아가야 하고...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편집인 것 같다. '표현'이라 함은 꼭 '글쓰기'에 한정된 얘기는 아닙니다, 라는 의미로 만화가 정훈이의 이야기가 들어간 것 같다. 정훈이의 만화로 온전히 채워진 11장에서 정훈이는 말한다.

 

가장 좋은

표현의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근데, 사람의 마음은 '기술'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정훈이가 순수고졸의 학력으로 대학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씨네 21>에 만화를 연재할 수 있었던 것도, 그건 모두 '표현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진심과 최선'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제목부터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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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02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오늘은 초여름 느낌도 드는 월요일입니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오후예요.
즐겁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섬사이 2018-04-02 23:2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날이 좋다는데 전 오늘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새로 구입한 큰딸아이 의자가 오늘 배송오기로 했는데,
온다고 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해서요.
오늘은 하루종일 의자만 기다리다 시간을 다 써버린 기분이었는데,
서니데이님의 다정한 인사가 위로가 됩니다.
 


319일 비 내리던 봄밤에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꺼내 읽고 주책맞게 찔끔거리고 난 후에 시집을 다시 책꽂이에 꽂아두지 못하고 거실 테이블에 놓아 두었다. 가끔씩 펼쳐지는 대로 시를 읽다가 지난 토요일부터는 작은 노트 하나를 꺼내 꾹꾹 옮겨적기 시작했다. 맨 앞에서부터 차례로 하루에 두 개, 혹은 세 개씩. 처음 옮겨 적을 땐 속으로 '내가 이걸 왜 옮겨 적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종이 낭비는 아닐까. 나무한테 미안한 짓을 하고 있구나. 시를 다 옮겨 적더라도 그 노트를 펼쳐 읽지는 않을 텐데. 시를 읽고 싶으면 시집을 펴지 볼펜으로 삐뚤하게 적어놓은 걸 읽겠어? 시간 낭비야. 차라리 옮겨 쓸 시간에 시를 하나라도 더 읽지 그래? 그런 말들이 계속 머리 속을 떠다녔다.

그런데 시의 한 줄 한 줄을 옮겨 적고 있으려니까 그 시간이 그렇게 조용하고 차분할 수가 없었다. 시를 옮겨 적을 때마다 시가 파르르 떨면서 노트로 건너 오는 것 같기도 하고, 간질간질 간지럽다며 날보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성당이며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은 뜨거운 신앙을 증명하려는 듯 두껍고 글자도 많은 성경책을 필사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시를 옮겨 적으며 증명할만한 시에 대한 뜨거운 애정 같은 걸 갖고 있지 않다. 남들보다 시를 더 많이 읽고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다만 그 봄밤 이후 시하고 잘 지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는 다른 글들보다 좀 더 오래 꼭꼮 씹어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욕심에 옮겨 적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 같다. 난 지금 시를 꼬시고 있는 중이다. 혹시 모르지. 시가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하면서..... . 그만 하자.

 

오늘은 <전주>라는 시를 옮겨 적었다.


전주

 

자전거를 끌고

여름 저녁 천변 길을 슬슬 걷는 것은

다소 상쾌한 일

둑방 끝 화순집 앞에 닿으면

찌부둥한 생각들 다 내려놓고

오모가리탕에 소주 한 홉쯤은 해야 하리

그러나 슬쩍 피해가고 싶다 오늘은

물가에 내려가 버들치나 찾아보다가

취한 척 부러 비틀거리며 돌아간다

썩 좋다

저녁빛에 자글거리는 버드나무 잎새들

풀어헤친 앞자락으로 다가드는 매끄러운 바람

(이런 호사를!)

발바닥은 땅에 차악 붙는다

어깨도 허리도 기분이 좋은지 건들거린다

배도 든든하고 편하다

뒷골목 그늘 너머로 오종종한 나날들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그러나 여기는 전주천변

늦여름, 바람도 물도 말갛고

길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버드나무 길

이런 저녁

북극성에 사는 친구 하나쯤

배가 딴딴한 당나귀를 눌러타고 놀러 오지 않을라

그러면 나는 국일집 지나 황금슈퍼 앞쯤에서 그이를 마중하는 거지

그는 나귀를 타고 나는 바퀴가 자글자글 소리내며 구르는 자전거를 끌고

껄껄껄껄껄껄 웃으며 교동 언덕 대청 넓은 내 집으로 함께 오르는 거지

바람 좋은 저녁

 


이 시를 옮겨 적으면서 저기 저, 당나귀를 탄 북극성 친구와 자전거를 끌고 가는 시인이 함께 가는 버드나무 길의 정경을 떠올리다가 그림 하나가 생각났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저 그림 속 말(당나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을 타고 가는 선비 옆에 자전거 끌고 가는 시인을 그려주면 딱 좋겠다. 그림 그리는 재주만 있었다면 어떻게 좀 그려볼 텐데. 시인의 천진한 웃음까지 멋지게 그리고나서 나도 같이 흐뭇하게 웃을 텐데.

 

올해는 꽃들이 늦다. 이제서야 매화가 느릿느릿 꽃잎을 펼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미 피고 졌을 시기다. 앞산에 개나리도 노란 점을 몇 개 찍어 나가기 시작했다. 산수유만 화창하다. 올해 첫 민들레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봄을 부르는 것 같은 저 그림이 더 생각났나 보다. 오늘 밤엔 미세먼지고 뭐고 따지지 말고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북극성에 살고 있는 시인의 친구를 향해 건배하고 싶다. 늦은 만큼 더 서둘러 성큼 오고 있는 봄에게도. (술을 마실 줄 몰라도 건배는 할 수 있잖아. 아니면 술 대신에 같이 커피라도 한 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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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3-28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 겨울이 많이 추워서 그런 걸까요. 다른 곳에는 목련도 핀다는데, 제가 사는 곳에는 동백나무에 작은 꽃 하나 피었어요. 그래도 이번주에는 기온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손으로 써보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많이 들어요.
요즘은 손글씨를 잘 쓰는 분이 그래서 부럽습니다.
섬사이님, 편안한 밤 되세요.^^

섬사이 2018-03-28 21:59   좋아요 1 | URL
손으로 쓰려니 좀 어색하긴 해요.
쓰는 데 시간도 더 걸리고, 쓰다가 틀리면 속도 상해요.
그래도 시는 대부분 아주 길지는 않으니까 천천히 쓰기 좋아요.
쓰다가 잠깐 멈추어도 급할 게 없구요.
제 글씨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가 마음에 들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고 쓰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

라로 2018-03-29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경 필사하는 일인 여기 있습니다. ㅎㅎㅎㅎ 아직은 베껴쓰는 수준이에요. 머리엔 안 들어와요. ㅠㅠ 왜 하고 있는 이러고 있는 상태. 좀 지나야 도를 닦을 까요??? ㅎㅎㅎㅎ
암튼 섬사이 님은 여전히 글을 잘 쓰시는 군요!!

섬사이 2018-03-30 22:15   좋아요 0 | URL
성경을 필사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전 신약성서의 맨 앞부분, 누가 누굴 낳고 또 누가 누굴 낳고.... 그 부분만 봐도 헉, 이걸 어떻게 필사하지? 싶거든요. 그건 정말 신앙이든 신념이든 그 무엇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아니면 성경필사를 하면서 신앙이나 신념 같은 것이 자라나 단단해지는 걸까요?

글을 잘 쓰다니... 칭찬,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말 잘 쓰면 좋겠어요. ㅠ.ㅠ)

라로 2018-03-31 13:55   좋아요 1 | URL
저는 신앙이나 신념이 없어서 그렇게 필사를 하면 좀 생길까 하고서 하는 거에요. ㅎㅎㅎㅎ
저는 날라리입니다요. ㅠㅠ마음을 모아 이제는 좀 진실되게 종교에 다가가고 싶은 소망이지요.

섬사이 2018-03-31 22:22   좋아요 0 | URL
제가 시를 필사하는 마음과 같네요.
저도 시에 다가가고 싶은 소망을 담아서 노트에 시를 옮기고 있는 거거든요.

예전에 대학다닐 때 임용고시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늘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하던 친구였는데, 늘 성경책을 꺼내서 필사를 하고 나서 공부를 시작했지요.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나네요.
성경필사가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라로님의 성경필사, 저의 시 필사, 좋은 영향을 줄 거라 믿어요. ^^

2018-03-29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30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뭐라도 되겠지>는 소설가 김중혁의 산문집이다. 기분을 가볍게 하기에 아주 그만이다. 초반에 작가의 자유분방한 학점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하고 웃음이 터졌다. ‘학고(학사경고의 줄임말) 김중혁 선생의 학점을 비웃으려는 의도는 1도 없었다. 그가 얘기하는 방식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가 심각하고 진지하게 말했다면 난 진심으로 같이 걱정해주었을 뿐 아니라 위로와 격려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얘기하는 방식은 , 나 학사경고 4번이나 받았어. 그래서 F4. 근데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하는 식이다. 그래서 걱정해주지 않아도 잘 살 것 같고, 위로나 격려 따위는 개나 줘버려, 할 것 같다. 밝고 씩씩하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학점이 웬만큼 잘 나와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오해하지 마시길,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엔 멋모르고 한 번 받았는데, 그게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니까 못 받으면 부모님께 죄스러운 이상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에 밀려서 공부를 했다. 근데 내가 대학을 다닌 시기는 바야흐로 80년대 중반. 영화 <1987>을 본 사람은 알 거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격렬한 시간을 보냈는지. 그러니까 시험 때가 되어 공부를 하는 것이, 장학금을 받는 것이 이게 또 이상한 죄책감으로 작용을 하는 거다. 물론 나도 시위대 가장자리에 끼어보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뭐랄까... 내가 가짜인 것 같은 불쾌함이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괴롭게 했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참아가면서 공부하고, 불쾌감을 견뎌가며 대학을 다녔는데, 막상 졸업하니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냥 학점이 꽤 높은 대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좀 더 많은 일에 도전하고 경험을 쌓을 걸, 신나게 놀아보기라도 할 걸, 후회했다.


얼마 전에 읽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때 강요받는 일을 예전부터 참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고 하면서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라는 진리라고 말한다.


작가는 고등학교 때 어렴풋이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볼까 하는 생각으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국어국문학과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학과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는 학교를 대충 다녔다고 한다. 그때 학점관리를 안하고 시간을 충분히 낭비하며 뇌를 싱싱하게 유지한 것이 소설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현명한 판단이었던 거다.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학생인 이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사람들이 성적을 보면 얘가 성실한 아이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옛날엔 그런가?’했는데, 언젠가부터 말도 안 돼!’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지난번에도 어떤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 공부에 통 관심이 없는 아이 때문에 속상해하면서 또 그 성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근데,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에, 심지어 하기 싫어 죽겠는 일에 성실하기가 쉬운 일일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3때까지 총 12년을(대학 4년을 더하면 16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에 한결같이 성실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12년간 성실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싫어하는 일을 12년 동안이나 성실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만약 누군가 나에게 달리기는 지구력과 심폐기능 향상, 혈액순환에 좋을 뿐 아니라 인내심을 키워주는 훌륭한 운동이니까 앞으로 12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달리세요.’라면서 강요한다고 치자. 그게 사회적으로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매우 중요한 거라서 달리기를 잘해야 취업과 승진에 유리하고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치자. 난 달리기가 싫은데, 달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더러 불성실하다고 하고, 왜 최선을 다해 더 빨리 더 오래 달리지 못하냐고 재촉하고, 이대로 달리기를 못하면 내 앞의 인생이 깜깜해질 것 같고, 난 이미 틀려버린 건 아닐까 불안하고, 근데 난 달리기는 젬병이라 자주 다리에 쥐가 나고 발이 무거워진다면..... 난 어쩌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어야 그나마 즐겁게 기꺼이 성실할 수 있다. 아이가 공부에 성실하지 못하다면 그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놈의 공부’, 그게 문제인 거다. 노력하면 뭐든지 다 가능하다고 말하지 마라. 아들딸이 엄마아빠는 왜 재벌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셔서 이 모양 이 꼴이세요,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아이에게 성실을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내가 그다지 성실하지 않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난 가끔 슬쩍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오기도 하고, 밥하기 귀찮으면 인심 쓰는 척 자장면 같은 걸 시켜 먹이고, 어쩔 땐 빨래가 밀려서 수건이 없다 양말이 없다 찾게 만들고, 종종 설거지거리가 쌓여있고, 자주 청소를 거르는, 그런 엄마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누구에게 완벽을 구하랴.


실패해도, 시간을 낭비해도 좋고(경우에 따라 낭비를 권장하고),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이 모습대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고, 굳이 애쓰며 살지 말라고 말하는 이 책이 좋다. 게다가 작가는 웹툰 작가의 경험도 있어서 책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만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청년들과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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