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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ㅣ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평점 :
이 책을 보고는 먼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3년 전쯤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라는 그림책으로 '로타'를 만난 적이 있어서 오랜만에 재회하는 기분이랄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야 워낙 아이들의 세계를 잘 그려내는 작가라고 인정받는 대가니까 내가 뭐라고 중언부언 설명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린드그렌의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태주의 <풀꽃>이나 이창희 시, 백창우 곡의 <꽃은 참 예쁘다> 같은 시와 노래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예쁘지 않은 꽃은 없'는데 우리는 그것을 자세히 보거나 오래보지 않아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줄을 모른 채 무심히 살고 있고, 린드그렌은 꽃 하나하나의 빛깔과 모양과 향기를 오래오래 보고 자세히 또 보고 마음에 담아서,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우리 앞에 이렇게 글로 펼쳐놓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린드그렌의 글을 읽고 그제서야 "아! 그래! 어릴 때 우리도 이랬고, 우리 아이들도 이렇지!"하고 그 사랑스러운 유년의 시기를 돌아보며 감탄을 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린드그렌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린드그렌의 따스한 눈빛을 느끼게 된다. 이 책도 딱 그렇다.
'뭐든지 다 오빠 언니랑 똑같아지고 싶었'던 5살 로타는 요나스 오빠와 미아 마리아 언니처럼 '진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바람을 가르며 언덕을 내려오고 싶다. 생일 선물로 '진짜 자전거'를 못 받자 이웃에 사는 베리 아줌마의 창고에서 '진짜 자전거'를 훔치기로 결심한다. 우리집 10살짜리 딸아이는, 비밀 운운하며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이 자존심 강한 로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웃음짓다가 자전거를 훔치려고 마음 먹는 부분에서는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린드그렌의 글은 어른들에게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잘 파고드는 것 같다.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것도 불필요한 일인 것 같다. '뭐든지 다 오빠 언니랑 똑같아지고 싶은' 로타의 도전과 모험과 역경과 극복의 이야기라고만 설명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린드그렌의 글맛을 느끼지 못한 채 책의 줄거리만 자세히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굳이 그림책으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다. 그림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림 없이 글만 읽어도 이야기는 생생하게 전달되니까. 그러나 그림이 있으면 아이들의 책에 대한 호감은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개인적으로 린드그렌의 책이 그림책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단,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림 부분에서 내가 재미있게 느꼈던 건 같은 또다른 로타 이야기인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라는 그림책을 펼쳐놓고 이 책과 비교해 보았을 때였다.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나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나 모두 한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일론 비클란드'라는 작가인데 린드그렌 책 대부분에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삐삐 시리즈는 일론 비클란드가 아니라 롤프 레티히가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두 그림책이 모두 로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 그림작가가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림의 느낌이 참 다르다.<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는 부활절 시기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는데 그림의 분위기가 좀 을씨년스럽다. 모르겠다. 스웨덴은 부활절 즈음까지도 이렇게 겨울같은 풍경이 계속되는지는.. 그에 반해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는 꽃이 만발하고 초록 이파리들이 싱그러운 봄의 기운이 가득 차있다. 로타의 집이 있는 거리 풍경을 예로 들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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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이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에 나오는 로타네 동네 풍경이고, 아래 그림이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에 나오는 그림이다. 두 그림에 나오는 집들이 비슷해서 어느 집이 로타네 집인지 금세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의 그림이 더 어둡고 칙칙하다.
이웃집 아줌마도 양쪽 책에 다 등장하는데, 그 이웃집 아줌마네 방 풍경도 아주 흡사하다.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에는 베리 아줌마네로 나오고,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에는 베르크 아줌마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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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 놓인 전등과 의자, 소파, 소파 위의 쿠션, 바닥에 깔린 카펫, 벽지와 화장대, 화장대 위에 놓인 액자..
모두 똑같다. 텔레비젼과 청소기, 강아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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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로타네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식탁에 테이블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지만 가족들이 앉은 위치가 똑같다.
그림의 느낌이 사뭇 다르지만 같은 작가의 그림인 것 맞는 것 같다. 작가의 그림풍이 왜 이렇게 다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그림의 톤이 밝고 색도 더 선명하고, 그림이 좀 더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이들이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의 그림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예쁜 그림이 모두 훌륭한 그림이 아니라는 거, 안다. 하지만 밝고 사랑스러운 로타 이야기와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 풍의 그림은 뭔가 잘 안맞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 린드그렌의 평전을 읽었다. 고통스러운 십대시절을 보내며 상대적으로 린드그렌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더욱 빛나는 보석으로 간직했을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이 린드그렌에게는 행복했던 유년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린드그렌에 대해 다시 감탄하며 린드그렌의 책들을 기웃거리고 있다.
사랑스럽고 깜찍한 로타를 <나 이사 갈거야> (논장)과 <말썽꾸러기 로타>(다락방),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논장)에서 더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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