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3학년이 되면서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모아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라기보다는 '교습소'라고 할 수 있는 데로 영어를 배우러 다닌다. 선생님은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것 같은 여자 분인데 한 타임에 여자 아이 하나, 남자 아이 하나 딱 두 명씩만 받아준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가 좀 더 긴밀하고 다정하다. 선생님도 아이들을 예뻐하는 분이어서 다행히 아직까지 막내는 행복하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월요일은 막내가 영어를 배우러 가는 날이다. 학원이 아니라서 차량운행 같은 걸 안 하고, 우리 아파트와는 좀 떨어진 다른 아파트 단지까지 가야하는 터라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리고 와야 한다. 어제도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막내를 데리러 갔는데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들떠서 하는 말이, 다음 주 월요일에 영어선생님이 빕스랑 노래방에 데리고 간다고 했다는 거다. 뭐, 빕스?  아무 이유도 없이 웬 빕스? 알고 봤더니 2학기 개학을 앞두고 영어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 모두에게 빕스에서 한 턱 쏘고 노래방에 데려가서 신나게 놀게 해주려고 하신다는 거다.

"와, 너무 좋겠다. 우리 유빈이가 선생님 복이 있네. 고맙게도 선생님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냐."

그랬더니 우리 딸 하는 말이,

"응, 내가 선생님복이 있지. 엄마는 자식복이 있고."

아.. 열살 막내의 저 근자감에 난 그저 웃을 뿐.

"엄마가 자식복이 있구나. 그래, 그러네. 그럼 엄마한테 남편복은 있는 것 같아, 없는 것 같아?"

했더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없어!"

푸하하하하, 출장 간 남편 돌아오면 꼭 말해줘야지.

 

 

막내가 죽을 먹으며 끙끙 앓을 때, 설빙의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다 나으면 사주마 약속했었다.

오늘 큰딸도 오랜만에 아무 스케줄 없이 쉰다고 하길레 같이 설빙 빙수 먹으러 가자고 해서 우리집 여자들 셋이서 오랜만에 건대앞으로 외출을 했다. 주문한 블루베리 팥빙수랑 유자 인절미 토스트가 나오자 큰딸은 폰카로 사진부터 찍는다. 올여름에 먹은 팥빙수들을 사진으로 찍어 모아놓고 있다.  팥빙수의 종류도 참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다.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싼지.

인절미 토스트는 허니브래드보다는 훨씬 입맛에 맞았다. 근데 팥빙수는.. 음.. 개인적으로 투썸의 로얄밀크티빙수가 더 좋다. 올 여름 빙수를 별로 먹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딱 두 개를 놓고 비교하면 그렇다. 울 큰딸 말로는 투썸의 모히토 빙수를 내가 먹어봤어야 했다며 아쉬워한다. 한여름 더위에 지쳐서 기운없이 축 처질 때 모히토 빙수를 먹으면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 든단다.

빙수와 인절미토스트를 해치우고 그냥 일어서기 아쉬워 세 모녀가 책을 꺼내 좀 읽었다. 큰딸은 어린 유빈이가 벌써부터 카페에서 책읽고 공부하는 맛을 들이면 안된다고 걱정했지만 뭐, 가끔은 시원하고 분위기 새로운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경험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하여 세 모녀가 합심해서, 설빙 한 구석에 앉아 제법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읽은 책은.

 

큰딸은 <중국신화의 이해>, 막내는 <똑똑한 만화교과서-속담>, 나는 <혼불 6>

설빙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책을 주루룩 놓고 사진을 찍으니까, 큰딸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책 사진을 왜 찍냐고 물었다. "넌 빙수 사진 왜 찍는데?"했더니 아무말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큰딸이랑, 작은딸이랑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한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 그 시간에 함께 읽은 책을 사진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오늘 먹은 빙수가 뭐였는지, 맛이 어땠는지는 잊어버리더라도 우리 셋이서 함께 조용히 책을 읽고, 책을 읽다가 "엄마, 숭늉이 뭐야?"하고 묻던 막내와, <혼불>을 읽으며 마음 속으로 효원을 응원했던 나를 기억하고 싶다.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즐겨 찍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자기가 읽고 있는 책이나 책읽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는다면 그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알라딘에서 그러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바디샵'에 들러 티트리오일과 티트리훼이셜워시를 샀다. 아들녀석의 얼굴에 여드름이 다시 올라오고 있고, 큰딸 이마에도 뾰루지가 둘.  티트리오일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티트리오일만 사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신규회원으로 가입하고 티트리훼이셜워시까지 구입하면 만원 할인이라는 말에 두 개를 사들고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 큰딸이

"엄마, 외국 사람이 '더바디샵'이라는 가게 간판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왜?"

"'바디샵'이라잖아. '바디샵'. 그냥 직역하면 '몸을 파는 가게'.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지 않아?"

아... 그런가.....? 

 

얼마전에는 코코넛오일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게 웬일? 어째 가는 데마다 품절이란다. 다행히 인터파크에는 품절표시가 뜨지 않아서 주문을 했는데 다음날  품절이 되어 배송이 불가능하다고 문자가 왔다. 코코넛오일이 대대적으로 유행인가 보다. ㅠ.ㅠ

밤에 자기 전 큰딸은 훼이셜워시로 세안하고 티트리오일을 면봉에 묻혀서 뾰루지에 톡톡 발랐다. 내일 아침에 뾰루지 상태를 봐야겠다. 정말 나아질까...?

 

 

쓰고 보니, 어쩐지 광고성 글이 된 것 같은..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고 누가 말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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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8-2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선생님은 아이들 마음을 잘 헤아리는 참 좋으신분이네요. 통도 크시구요^^
따님의 근자감^^ 굿입니다.
인절미 토스트 먹고 싶어라~~~
제가 시간날때 즐겨하는건 투썸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버터 쿠키 먹으면서 책읽는거예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섬사이 2014-08-20 20:25   좋아요 0 | URL
네, 3학년 되어서야 제대로 정식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건데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빕스를 데려가거나 하는 이벤트 때문이 아니라 늘 세심하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게 느껴져요.
막내의 근자감은, 종종 도가 지나쳐서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
애들 개학해서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가을 날로 하루 골라서,
저도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싶어요.
저희 아파트 옆에 작지만 참 괜찮은 카페가 하나 있거든요.

CREBBP 2014-08-20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디샵은 영국회사라 그런 오해는 안할 듯.

섬사이 2014-08-20 20:1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바디샵이 영국회사인 줄 몰랐어요.
어쩐지,, 티트리 오일 사려고 바디샵을 처음 가본 건데,
제품들이 모두 수입품처럼 보여서 의아했어요.
그리고, 바디샵이 몸을 파는 곳이면,
헤어샵은 머리카락이머 털뭉치를 팔고,
네일샵은 손톱 파냐? 고 하면서 웃었더랬어요. ^^
반가워요, guiness님

프레이야 2014-08-20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고성이라 하더라도 좋은걸요, 섬사이님^^

섬사이 2014-08-22 13:06   좋아요 0 | URL
쓰고 보니 이런저런 업체의 상품들이 줄줄이 들어있는 글이 되고 말았어요.
다음에 이런 글을 쓸 때는 초성만 쓰는 센스라도 발휘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쓴 거 너무 티나는 글이죠. -.-;;

라로 2014-08-22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자감,,좋은 단어 배웠어요~~.^^
유빈이가 복이 정말 많으네요!!^^

바디샵이라고 했을 때 영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몸을 파는 가게라기 보다는
자동차 수리가게가 떠올라요. 그런 가게를 바디샵이라고 하거든요.
우리도 그런 단어가 있지 않나요??? 제 머리가 나빠서리 기억이;;;;;
근데 영어 샘 정말 통 크시다!! 저 한국에 있을 때 시간당 육만원씩이나 받았으면서 애들에게 쓴 게 없네요;;;ㅠㅠ
생각 났어요,,ㅋㅋ
제작년부터 영화볼때 경마장 광고를 했잖아요,,'말로 합시다'였나?
그런 효과를 노린 것 같아요. 더 바디샵 창업자가.ㅋ

섬사이 2014-08-22 13:12   좋아요 0 | URL
근자감, 근거없는 자신감. 딱 막내와 어울리는 말이죠. ^^
바디라고 하면 영어권 사람들은 자동차의 바디를 떠올리나 보군요.
그런 느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시간당 육만원의 영어샘은 빕스보다 더 좋은 걸 아이들에게 주셨겠지요.

라로 2014-08-23 04:07   좋아요 0 | URL
바디라고만 하면 몸이 생각나구요. 바디샵이라고 했을때 자동차수리점같은게 생각나요. 꽤 복잡하죠?ㅜㅜ
그러게 우리나가 언어가 젤 우수해요!! 정말 세종대왕 만세!!!
 
늑대가 나는 날 내 친구는 그림책
미로코 마치코 글.그림, 유문조 옮김 / 한림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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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나는 날>.

이 책의 제목을 듣는 순간, '늑대가 난다구?'하는 호기심부터 툭 솟아났다. 갈필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제목의 글씨를 보면서, 표지의 거친 터치로 그려진 동물들의 그림을 보면서, 어렴풋이 바람과 관계되는 내용일 거라고 예상을 했던 것 같다.

 

 

 

표지를 들추자 노란 바탕에 날아가는 하얀 새떼들이 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늑대도 날고 새들도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버라이어티한 일이 벌어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 책은 늑대가 나는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오늘은 바람이 세다.

휘잉 휘잉 세차게 분다.

 

이고, 펼친 양면에 가득히 사선으로 거칠게 그어진 붓자국들이 내 머리 속에 윙윙 바람을 일으킨다. 오른쪽 아래 머리카락을 온통 흩날리며 걷는 아이가 작게 그려져 있다. 이 책 속에서 내가 따라가야 할 아이다.

 

제목이 왜 <늑대가 나는 날>인지는 다음 면에서 알 수 있다. 아이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올 여름 어느 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고 해서 겁을 내지 않을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난 좀처럼 듣기 어려운 커다란 바람 소리를 즐겼다.  밖에서는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집안으로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바람의 결이 베란다 샷시 창을 요란하게 쓸고 지나갈 뿐 집안의 공기는 얌전했다. 그 때 나도, 어디선가 맹수들이 몰려와 날뛰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 아이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아이는 내내 혼자다. 엄마나 다른 가족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렇게 바람이 심하게 불고 천둥이 우는 저녁에. 난 오래된 엄마의 습성으로 책 속 아이를 걱정하지만 아이는 걱정도 불안도 두려움도 내색하지 않는다. 아이는 상상으로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메우고 견디는 것 같다.

 

아마도 아이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려고 책을 찾고,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쳤을 것이다. 찾는 책은 박쥐가 가져가고, 노래를 부르자 새들이 한꺼번에 날고, 피아노를 치는 동안 다람쥐들이 시계바늘을 몰래 돌려놓았다. 빗방울과 함께  검은 방울무늬의 치타들이 모여들고, 거대한 고래가 커다란 밤을 끌고 왔다. 아이는 이불 속에 누워 거북이들이 시간을 되돌려 놓아 천천히 지나가는 고요한 시간을 느낀다.  그리고 드디어,

 

비가 그쳤다.

바람이 약해졌다.

천둥도 멈췄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약해지고, 천둥이 멈춘 건, 비가 다 쏟아지고, 바람이 잠들고, 비구름이 흩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눈을 감고 이불을 덮은 아이의 그림 위에 비가 그치고, 바람이 약해지고, 천둥이 멈춘 진짜 이유가 적혀 있었다.

 

내가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날, 맹수들이 날뛰는 것처럼 바람이 불던 밤에도 우리집 막내는 그 요란함 속에서도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바람은 나에게만 불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그 밤은 여느 밤과 똑같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비도 바람도 천둥도 거센 소란스러운 밤의 정경을 담았으면서도, 절대로 시끄럽지 않다. 마치 밖에서는 맹수처럼 울어대는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집안의 공기는 얌전했던 그날 밤처럼, 밖이 요란해서 오히려 안의 고요와 평화가 더 잘 느껴지던 그 시간처럼, 이 책은 나를 비바람과 천둥이 치는 밖으로 내몰지 않고, 혼자 있는 아이의 마음 속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비바람 요란한 밤의 정경을 혼자 있는 아이의 상상과 은유로 묘사해가는 작가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소란한 밤을 소란하게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그 소란함의 반대편에서 혼자 있는 아이의 움추러진 감정과 정적인 분위기를 살린 점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은 작가의 자유로운 화풍의 그림도 마음에 든다. 작년에 없는 재주를 짜내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아이의 그림 같은 이런 대담한 선의 그림을 그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

작가의 홈페이지  http://www.mirocomachiko.com 에 가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 작가의 다른 그림들도 무척 마음에 든다.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동물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 같다) 살짝 다시마 세이조나 초 신타의 그림이 떠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의 그림이 더 시원시원하고 자유로우면서 뭔가 신비감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결론은, 난 이 작가가 참 마음에 들고,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을 더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그림책에 대해 쬐끔 질투를 느낀다는 것? (정말 쬐끔일까...?)

 

아파트 가로등이 너무 밝은 탓일까. 한밤중에 매미가 운다. 매미소리만 아니면 늑대도 치타도 없는 고요한 밤이었을 거다. 잠든 아이에게는 자기 꿈 속이 가장 소란할 시간이다. 아이를 깨워 이 책을 읽어주고 매미 울음소리에 귀기울이게 하고 싶어지지만 음. 난 이성적인 엄마니까, 그 충동을 가만히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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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 쯤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3박4일 동안 처음 이틀은 태풍 할롱의 영향으로 하늘이 흐리고 간혹 비가 내려서 양떼목장과 동굴을 보러가고 레일바이크를 타며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이틀은 해가 맑았지만 바다에 너울성 파도가 높았다.

 

그래도 바다를 찾아가서 파도가 으르릉대며 밀려들었다가 힘이 빠져 물러나는 그 쯤에서 파도의 끄트머리를 밟으며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나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파라솔을 치고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수평선 가까이서부터 일렁거리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일어서 거칠게 몸을 부풀리다가 제풀에 꺾이어 휘말리는 파도를 감상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바다가 일어섰다'거나 '바다가 끓는다'거나 '바다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왔다'거나 하는 표현들을 만나곤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아, 그게 이런 바다를 보고 하는 표현이었디는 걸 알았다.

 

마치 바다는 야수 떼 같았다. 정말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먹잇감을 노리듯 으르렁 거리며 몰려왔다가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힘을 빼고 물러났다. 물러나면서도 바닷가에 있는 우리를 삼키지 못한 게 아쉬운 듯 노려보는 듯 했다. 파도는 장관이었다. 이틀을 바닷가에 있으면서 파도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파도 구경하느라 챙겨갔던 <혼불>은 파라솔 아래 테이블 위에서 이틀 내내 홀대를 받았다.

 

가끔 해경이 와서 호루라기를 불며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나오라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파도 끄트머리에 발을 담그는 사람들조차 뒤로 물러나라고 엄격하게 제지했다. 누군가가 그럴거면 차라리 해변을 패쇄할 것이지 왜 사람들을 바닷가에 세워두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그래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허용하는 걸로 합의를 봐서 저녁 때까지 아이들은 파도와 놀 수 있었다. 저녁에는 바닷가에서 바베큐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었고, 밤바다 위에 뜬 둥근 달을 보았다.

 

 

 

우리에게 바다가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피서를 한답시고 바닷가를 찾은 것도 미안했다. 3박4일동안 동해, 삼척, 묵호, 강릉 등등을 돌아다니며 바다를 보았다. 그저 무심한 듯 묵묵한 먹빛 바다도 보았고, 흐린 하늘 아래 비를 맞고 누운 바다도 보았다. 바다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정작 숨긴 말을 꺼내야 할 입은 따로 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막내는 병이 났다. 기침을 하고 열이 오르고 토했다. (그것도 오전에 일이 있어 지인들을 만나러 카페에 갔는데 문 연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카페 출입문 앞에다가 토해서 난감하고 민망하고, 카페 주인장에게 미안하고...)  병원에 데려갔더니 감기 기운도 있는 데다가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기운이 없고, 기운이 없으니 소화기능도 떨어져서 그런 거란다. 오늘로 닷새째 집에서 요양 중이시다. 큰딸과 아들은 활동봉사자로, 막내는 참가자로 가기로 했던 2박3일 도서관 캠프는 막내를 빼고 큰애들 둘만 갔다. 세 아이를 다 캠프에 보내고 10년만의 여유, 혹은 자유, 또는 반란을 꿈꾸었던 나의 희망은 좌절됐다. 하긴 '뛰어봤자 벼룩'이라고, 그저 영화를 보러 가거나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늦은 밤 지인들과 족발집이나 치킨집에서 모여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을 게 뻔하다. 다행히 열도 떨어지고, 기침도 한결 가라앉았고, 배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으니 그걸로 만족. 자유와 반란은 좀 더 치밀한 계획을 세우며 후일을 기약하는 걸로.

 

아참, 평창에서 맛있는 탕수육 집을 찾아갔다. 남편이 데리고 간 집인데 외관이 허름해서 잘 눈에 띄지도 않을 중국집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다 찾아 오는지 1시간 쯤 기다려서 겨우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중국집의 대표 메뉴라 할 수 있는 짜장, 짬뽕, 탕수육을 시켜 먹었는데 먹어 본 짜장, 짬뽕, 탕수육 중 가장 맛이 깔끔했다. 막내는 이번 여름에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으로 이 집 탕수육을 꼽을 정도. 큰딸 말로는 '꿔바로우'와 맛과 느낌이 비슷하긴 한데 야채가 올라가 있고 맛도 더 좋은 것 같다고. 휴가동안 체중이 늘어나서 돌아왔다. 날씬해지는 건 꿈도 안 꾸고, 적어도 적정 표준체중은 되야하지 않나 해서 다이어트를 해볼까 했는데 매번 먹는 것 앞에서 이성을 잃고 무너진다.

나는 구순기를 잘못 보낸 게 틀림없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구순기를 잘못 보낸 사람은 식탐이 있고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푼다고 했던가. 잘못 보낸 구순기를 이제와 어쩔 수도 없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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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8-1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사건 있기 전에도 저는 가끔 바다에 가서 갑자기 커지는 파도를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들곤 했었어요. 잔잔할때와 너무 다른 모습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걸, 잔잔할때는 짐작 못하고 있었던거죠.
막내가 아팠었군요, 에구... 휴가 가면 집떠나 먹는 여러가지 먹거리가 안맞는 사람이 꼭 생기더라고요. 평소와 다른 일정에 몸이 좀 더 피곤한 상태였을지 모르고요. 어서 나았으면 좋겠어요.
오, 탕수육의 비주얼이 돋보이네요. 보통 고기를 눈에 잘 보이게 위로 올려담는데 이곳은 그 반대여요.

섬사이 2014-08-17 23:38   좋아요 0 | URL
저는 여지껏 잔잔한 바다만 봤나 봐요. 이번 휴가에서 본 바다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오늘 저녁에 자기가 개발한 '국수탕'이란 걸 만들겠다고 설치는 막내를 보니 이제 거의 다 나았구나 했어요. 기어코 만들어 자기가 먹었지요. ^^

다락방 2014-08-1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섬사이님. 저 역시 모든게 구순기 탓이었군요!! Orz
탕수육은 제가 좋아하는 먹거리는 아닌데, 저 비쥬얼은 그야말로 훌륭하네요!
막내는 닷새째 요양의 덕을 보아 건강해져있기를 바랄게요, 섬사이님.

섬사이 2014-08-17 23:41   좋아요 0 | URL
네, 구순기 탓이에요. 항문기 때 욕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청소를 한대요.
아, 차라리 항문기에 욕구불만이 있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4-08-17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오래만에 소식 반가워요. 막둥이가 휴가치레 호되게 하는군요. 낫고 나면 또 훌쩍 커보이지 않던가요. 아이들 보면‥ 세번째 문단이 참 좋아요. 저는 삼척 바다를 하루 보고 왔어요. 파도가 그렇게 어르렁대고 해무가 짙었지요. 저와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조금 다른 장소에서 나눈 것 같아 더 반가워요. 탕수육 ㅎㅎ제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저도 구순기 애착장애가 있었나 봅니다.

섬사이 2014-08-17 23:44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 정말 반가워요. 잘 지내고 계시죠?
네, 막내는 커가는 게 너무 서운하고 아쉬울 만큼 쑥쑥 자라고 있어요.
프레이야님은 구순기 애착장애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요. 예전에 본 프레이야님의 사진을, 저는 기억하고 있거든요. ^^

세실 2014-08-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도 구순기 탓인거예요? ㅜㅜㅜ
탕수육 좋아해요. 평창에 탕수육.....먹으러 가고 싶네요.
막내 좀 괜찮아 졌나요? 아이 어릴땐 그저 건강한것만으로 효도하는거죠^^

섬사이 2014-08-17 23: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프지 않고 크는 게 가장 큰 효도지요.
막내는 이제 거의 다 나아서 눈을 굴리며 놀거리를 찾아 다니고 있어요.
얼마전 세실님 서재에서 반말을 찍찍 해대는 도서관 이용자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분은 교양을 잘 쌓고 있는지 궁금해요.
저도 도서관에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정말 책 읽는 아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은데
책 읽는 엄마들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요. ㅠㅠ

라로 2014-08-1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연히 구순기 탓이네요~.ㅠㅠ
섬사이님께 제대로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고 믿으며 이런 댓글을,,,님의 글 언제나 좋아요.^^
그리고 도서관 일이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구요. 저도 좀 걱정 했었거든요;;;;;

섬사이 2014-08-20 01:15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아롬님!
(저도 아롬님께 제대로 인사드린 적이 있다고 믿으렵니닷!!)
도서관 일 걱정해주셨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번창발전해서 옮겨가는 건 아니지만,
나름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모두 기운을 내고 있어요.
알라딘에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뭐라도 쓰려면 주눅이 들고 위축되는 편인데
"언제나 좋다"고 해주시니 위로가 되네요. ^^
 

오늘 <혼불>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부엌이 어찌 단순히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먹은 그릇 설거지만 하는 곳인가. 이곳은 성소였다. 한 집안의 생,사, 화, 복의 근원이 부엌이었다. 인간이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아니면 무엇으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조왕신은 온 가족의 수명을 지켜 주고 다치거나 병들지 않게 살펴 주는 신이며, 불은 곧 재물을 뜻하는 것이라. 조왕님의 조화 여하에 따라 집안의 재운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 부엌의 아궁이에 때마다 끼니마다 붉은 불길 가득하고 솥전에는 더운 김 뿜어나는 것이나, 불 꺼진 재 써늘히 쌓여 빈 솥단지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 다 조왕신의 바른 뜻에 달린 것이었다.

효원은 정화수를 올리고 나서 아궁이 앞에 단정히 앉았다.

이때는 키녜나 돔바리나, 콩심이, 안서방네, 집안에 일하는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부엌을 기욱거려 들여다볼 수 없었다.

주변이 정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효원은, 강모가 이 집을 떠나 만주로 갔다는 그 말을 들은 날로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이 조왕에 정화수를 올린 다음에는, 갓 지어 푼 밥을 강모의 밥그릇에 담아, 조왕단의 정화수 앞에 놓았었다.

그 밥이 곧 강모였던 것이다.

먼 곳에 가서도 부디 배 곯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 따뜻한 이 밥을 식기 전에 먹기 바라는, 마음 지극한 정성이 오붓하게 담긴 밥그릇. (5권 24쪽)

 

강모는 매안의 이씨 가문의 종손. 유약하고 섬세한 성품을 가진 그는 종가집 종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너무 버겁다. 어린 나이에 효원과 혼인을 했지만 이미 마음에 둔 강실이에 대한 연민을 어쩌지 못하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리고 만다. 그리곤 강모는 도망치듯 만주로 떠나버렸다.

효원은 종가집 며느리로 시집왔지만 한번도 남편 강모의 다정한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고,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강모가 저리 된 게 그녀 탓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분노와 원망을 감추고 의연히 그 자리를 지키며 묵묵하게 버티는 그녀는 메말라 보였다. 노심초사하거나 애달파하는 기미가 없어 참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구나, 했는데 이 장면.

그저 지어미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메마른 의무감이 아니라 갓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빌며, 남편의 둘 데 없는 마음에서 휘몰아치는 황량한 바람을 잠재우고, 그 빈 마음을 이 따끈한 밥 한 그릇의 정성으로 채우려는 효원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저 문장을 읽고 다시 읽고.. 몇 번을 되풀이 읽었다. 자꾸만 마음에 와서 부딪치는 글. 왜 저 문장들에 마음이 끌릴까 곰곰 생각했다.

부엌이라는 공간에 대해 내가 너무 무심했더래서, 기도하는 성소의 자리로 승화된 부엌이 내게 약간의 충격과 신선함을 느끼게 한 걸까. 그 앞에서 난 반성의 의례가 필요했던 걸까.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나의 주방을, 가족들 앞에 내놓는 밥상의 무례함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성을 위해 저 문장들을 되풀이해 읽었던 건 아니다.

 

저 문장들은 상처받고 떠난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떠난 사람들에 대해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조용히 타이르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떠난 사람들에 대한 정성어린 예를 다 한걸까. 우리는 무엇을 앞에 두고 '이것이 곧 그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먼 곳에 가서도 부디 배 곯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 따뜻한 이 밥을 식기 전에 먹기 바라는 마음, 마음 지긋한 정성이 오붓하게 담긴 밥그릇.'이라는 문장에서 억울하게 주인을 잃고 차갑게 비어있을 밥그릇들이 떠오른다.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 있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밥 한 그릇만큼의 정성이 모자라 떠난 사람의 자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 정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어이없는 일들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갓 지어 푼 밥을 오붓하게 담은, 따뜻한 밥 그릇 하나씩만 마음 속에 갖고 있었다면.

 

갑자기 '착한' 밥상을 잘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정성껏 차린 따뜻하고 착한 밥상으로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따뜻한 밥 그릇 하나씩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요리를 배우러 다녀야하는 걸까.

 

<혼불>을 천천히 천천히 읽고 있다. 어쩌면 여름이 지나도 다 못 읽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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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8-0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의 글을 읽으니 <혼불>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묘사 하나 하나가 다 곱씹어보고 싶었어요. 인용해 주신 대목도 그렇네요.

섬사이 2014-08-13 16:10   좋아요 0 | URL
다른 건 몰라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참 성실한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네, 저도 그리워질 것 같아요. 참 만나기 힘든 소설인 것 같아서요.

다락방 2014-08-1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막 1권을 다 읽었어요. 강모와 효원이 5권에선 이런 사연을 풀어내는군요.

섬사이 2014-08-13 16:07   좋아요 0 | URL
참 천천히 흐르는 책이에요.
책보다 더 천천히 읽고 있어요, 저는. ^^
 

요즘 도서관은 아이들 캠프 준비가 한창이다.

해마다 초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40명을 신청받아 2박3일의 캠프를 꾸리는데,매해 캠프의 주제가 다르다.

올해는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집들을 골판지로 만들어보는 활동을 한다.

재작년에 톱질하고 못질을 해서 허술하긴 하지만 집을 짓기도 했던 아이들이니까 잘 해내리라고 믿는다.

 

도서관 건물의 경매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여기 저기 알아보고,

도움을 구한 결과 다행스럽게도 이사할 공간이 마련되었다.

구에서 예전에 경로당으로 쓰였지만 주변이 재개발이 되면서 쓸모없게 되어버린 2층건물을

우리 도서관이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지금의 도서관 건물보다 공간이 작아서 좀 걱정스럽고,

아직도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이 쌓여있지만.

이리저리 손보고 궁리를 하면 예쁜 도서관으로 꾸며서

올 12월 쯤에는 아이들과 엄마아빠들의 의미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관장님이랑 선생님들이랑 같이 이사할 건물을 보러 갔었는데

주변이 근린공원이라 아이들이 책을 읽다가 나가 놀기도 좋을 것 같다.

음... 솔직히 아이들이 책은 내팽개쳐놓고 밖에서 놀기만 할까봐 염려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 하도 답답하고 걱정이 돼서 도서관 건물 경매 이야기를 페이퍼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함께 걱정하고 염려를 해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든든했다.

그 분들께 도서관이 이사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희소식을 

알려드릴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7월 19일에 1박2일로 충주에 가서 정승각 선생님을 뵙고 왔다.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을 숙소로 내어주시고,

감자며 옥수수며 블루베리며 아욱이며.. 여러가지를 살뜰히 챙겨주셔서

편안하고 기분좋게 잘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신나게 놀 시간도 넉넉히 줄 수 있었고,

정승각 선생님과의 활동도 긴 시간을 두고 진행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좋은 일을 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요즘은 문득문득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에 대해 감사할 때가 있다.

남보다 잘나거나 부유하지는 않지만

주위에 나를 줗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알라딘도 그렇다.

이곳엔 날 주눅들게 만드는,

생각도 깊고 글도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그런 분들의 생활과 생각들을 읽으면서 자극받고

나를 다잡기도 한다.

 

이제 8월.

이 더위도 한 3주만 버티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 거다.

그 때는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며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여름 무더위가 철없는 아이의 투정같이 느껴져서

'저러다 지치면 말겠지..'하는 심정으로 그럭저럭 견뎌줄만 하다.

 

더우면 습관적으로 선풍기 버튼부터 눌렀었는데

요즘 부채에 맛들이고 있다.

생각보다 부채바람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틈틈이 더위를 식히기엔 아주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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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8-2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께 많이 자극받아요 언제나 멋지셔요 제가 늘 응원합니다

섬사이 2014-08-20 10:40   좋아요 0 | URL
우와, 멋지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밝아져요.
응원해주셔서 고마워요.
응원해주시는 만큼, 정말로 멋지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