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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키는 사람들 ㅣ 사람이 보이는 사회 그림책 1
신순재 글, 한지선 그림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첫표지부터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그림책이 틀림없는데, 어째서 만화의 느낌이 나는 건지.. 혹시나 해서 휘리릭 속을 훑어보니까 어, 정말 만화같은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표지만 보고 만화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림책의 그림과 만화책의 그림은 어떻게 다른 걸까? 말풍선이나 몇개의 컷으로 화면을 분할한다거나 하는 눈에 띄는 특징 말고 그림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만화적 느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그 고민을 붙잡고 어영부영 며칠이 휙 지나가 버렸다. 어떤 과장된 표현이 들어있나 했지만 <마법사 똥맨>이라든가 <선생님 과자>같은 책에 그림을 그린 김유대의 그림에 비하면 특별히 과장된 그림이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스스슥 선의 느낌을 살려 그린 듯한 그림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 어쨌든 무겁고 진지하다는 느낌이 덜하니까 아이들은 더 쉽게 책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직업'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예전에 비하면 참 많이 소박해지고 다양해진 것 같다. 뭔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까운'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달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깨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몇 차례 읽고 난 느낌을 미리 말하자면 '일'보다는 '사람' 또는 '삶'의 소박하면서도 강인하고 따뜻한 모습이 더 마음에 남았다. 사계절 출판사의 '일과 사람'시리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사람이 보이는 사회 그림책' 시리즈도 '사람이 하는 일'보다는 '일 하는 사람'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지 않아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사계절 출판사의 '일과 사람 시리즈'가 한 권의 책에 하나의 직업을 담고 있다면 창비의 이 '사람이 보이는 사회 그림책 시리즈'는 어떤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는 하나의 직업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이를테면 이 책은 제목대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경찰관, 구급대원, 새벽 수산물시장의 사람들, 환경미화원, 도로정비원, 천문학자, 그리고 택시운전기사. 마지막으로 조카 영두와 함께 밤에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와서 밤을 지새우며 만화를 그리는 영두의 고모까지.
사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내 친정오빠는 디자인 일을 한다. 20대 대학시절부터 밤새기를 밥먹듯 하는 올빼미다. 친정엄마는 항상 그런 오빠를 탐탁치 않아 하신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오빠와 아직도 그 문제로 티격태격하시는데, 간혹 나한테 오빠에 대한 못마땅함을 드러내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금은 농경사회가 아니다, 농사짓고 살던 때나 해뜨면 일찍 일어나 일하러 나가는 거였지, 요즘은 일하는데 밤낮이 따로 없다고 말씀드리지만 말씀드릴 때뿐이다. 오빠의 건강을 염려하며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오빠의 밤샘을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보신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을 우리 친정엄마에게 읽어드리고 싶었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우리엄마의 노심초사를 이 책으로 덜어드리고 싶었다.
버스커버스커의 '서울사람들'이란 노래를 듣는다. '아가씨 어디가 클럽가요, 아니요 오늘도 야근해요~'하는 가사가 흐른다. 낮에 일하든 밤에 일하든, 무슨 일을 하든 고단함을 덕지덕지 어깨에 짊어지며 살아가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또는 그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내가 고맙고 소중하고 대견하다고 여겨주는 사람들이 많다면 힘들어도 견디며 살만하지 않을까. 이 책을 참 좋은 책이라고 한다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우리 아이들에게 '일'의 소중함과 함께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고마움을 갖게 한다는 것. 시리즈 제목대로 사람의 직업적 기능이 아니라 '사람'이 보인다는 것.
아이들의 공부가 중요해질수록 지식정보그림책이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지식정보그림책들에 묻혀 수준높은 순수문학적(이런 게 있었나? 싶지만 아무튼 용어선택에 대한 문제점은 그냥 넘어가주기를..) 그림책이 점점 사라져갈까봐 두렵다. 지식정보그림책은 아이들에 대한 어른의 욕구가 반영된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아이들이 이런 것 까지 알아야하나? 싶을 정도의 내용을 담은 책들을 보기도 한다. 지식정보그림책의 증가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요구라 한다면 조금은 아이들 입장을 헤아린 책들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사람'을 보여주는 이 책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