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충주에 간다.  그 곳에는 <강아지 똥>, <오소리네 집 꽃밭>,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의 그림을 그리신 정승각 선생님이 살고 계신다. 한 달에 한 번 충주에 가서 정승각 선생님을 뵙고 오는 이유는 도서관 아이들 열 명 남짓이 정승각 선생님과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감각을 다듬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저기, 오래된 교회당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있는 곳이 정승각 선생님의 작업실이다. 5월에 갔을 때만해도 자그마하던 옥수수가 한달 만에 쑥 자라있었고 복숭아 나무는 열매들을 봉지 속에 감추고 있었다.  초록으로 뒤덮힌 밭 사이로 난 하얀 길 위를  걸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예쁘다. 서울이라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공간에 있을 때보다 한결 편안해 보인다고나 할까..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인데 저 책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이야기 중에 <챌로 켜는 고슈>를 선생님은 장장 40분에 걸쳐 아이들에게 읽어 주셨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활동하는 동안 엄마들은 마당의 작은 평상 위에 앉아 있었는데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는데 얼마나 실감이 나던지..

 

선생님과 만나는 날에는 오전 8시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10시 경에 충주에 도착, 그리고 늦은 오후까지 활동이 이어진다. 이 날은 오후 6시가 되어서야 활동이 끝났다. 정승각 선생님의 목은 다 쉬어 있었다.

 

이번에는 촉각을 활용한 활동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의자를 상상하고 만져보며 각각 4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색연필, 붓펜, 물감, 콘테 등 활용한 재료들도 다양하다.

 

     

 

     

 

 

 

 우리 개똥이의 그림이다.  의자를 보고 어떻게 꼬리 여섯 개 달린 여우가 연상된 건지 의아했는데 나중에 아이의 설명을 들어보니까 의자에 달린 바퀴 여섯 개를 보고 그런 상상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정승각 선생님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참 커다란 복이다.  정승각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수필가이신 김애자 선생님이 사시는 집이 있다. 그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수필가 선생님이 꾸미신 사유지 산 속으로 들어가면 정말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봄에 그 산에 올라 아카시아 꽃도 따먹고, 할미꽃도 보고, 심지어 뱀도 보았다.

 

아이들은 7월을 기다린다. 7월에는 마을회관을 빌려 1박을 할 작정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실컷 물놀이할 시간, 함께 어울려 놀 시간을 줄 예정이다. 수필가 선생님은 가을엔 꼭 밤을 따러 오라고 하셨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 사람들은 '정말 낳을 거냐'고 물었다.  특히 친정엄마는 몹시 안타까워 하셨다. 아이들이 커서 잔손 갈 일이 없어지고 이제 좀 편안하게, 자유롭게 살겠구나 여겼던 딸이 셋째를 임신했다니까 '이제 얘 낳아서 키우면 넌 할머니가 된다'며 속상해 하셨다.  나도 사회에 나가 내 일을 갖는다던가 하는 꿈은 다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막내 덕분에 열린 세상은 생각보다 크고 환하고 다채롭고 흥미진진했다.

 

어느새 열 살이 된 딸.  딸과 함께 충주로 갈 때마다 버스 안에서 조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 덕에 내가 크는 걸 감사하게 된다.

 

 

 

안국역 근처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렸던 3D 프린팅 앤 아트 전. 이것도 어제 도서관 아이들과 함께 간 전시다. 3D 프린터는 나에게 참 생소한 것이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을 보니 정말 놀랍다.  전시 설명을 해주시는 훈남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앞으로 출시될 아이폰 6에는 3D 스캐너 기능이 들어있을 수 있다고.. 그만큼 독일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3D 프린트가 많이 보급되어 있다고 한다. 10가구 중 4가구 정도가 가정에 3D 프린터를 갖고 있다나? 

 

전시를 보면서 "아, 이제 정말 기술문명의 발달 속도를 따라 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절했다. 그러다가, 그게 뭐? 세상 사람 모두가 기술문명을 따라 갈 필요는 없지. 난 그냥 이대로 살아도 돼,  누군가는 지나간 시대를 지키는 것도 좋잖아, 하는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집에 돌아와 큰딸에게 전시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 세대가 엄마인 내 세대보다 훨씬 더 기술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세대간의 격차가 벌어질 거라며 토닥토닥 위로해줬다. 

 

한 가지 더.  전시를 보면서 느낀 건, 복제 예술품들에서 느껴지는 삭막함 같은 거다. 3D 프린터를 사용했건 돌을 깎아 조각을 했건 방법이나 수단의 차이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난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이 좋은데 새로움은 있을지언정 따뜻함이 없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내가 이제 구세대이기 때문에 느끼는 갈증인 걸까..?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층계참 창문에 있던 작품.

 

 

적층방식의 3D프린터를 보고 서예를 연상했다는 작가가 3D프린터로 뽑아낸 글자체로 어느 시인의 시구를 창문에 붙여 놓았다.  '기술문명의 환한 빛 속에서 때때로 자주 사람들은 어둡다.'라는 뜻으로 보였다. 작가의 뜻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교육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 2시간 여의 시간동안 엄마아빠들은 근처 콩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시간의 순간과 영속성을 담았다는 저 작품처럼  즐거운 이 순간들이 모여 소중한 추억으로 쌓일 거라는 걸 믿는다. 적층방식은 3D프린트에만 해당하는 방식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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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7-08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가 이쁘게 잘 크고 있네요. 페이퍼에 올린 사진이 증명....
정승각선생님 작업실에서 누리는 복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요?@@
제가 셋째를 가졌을 때도 다들 심란해했는데, 벌써 대학생이 되었어요.

섬사이 2014-07-08 23:20   좋아요 0 | URL
네, 복 받은 아이들이지요.
아이들도 자기에게 온 행운을 느끼는지 충주가는 걸 참 좋아합니다.
순오기님도 셋째를 가졌을 때 주변 반응이... 축복보다는 걱정이었군요.
하하... 울 셋째는 아직도 더 많이 키워야 합니다.
언제 클까,, 하다가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면 서운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

세실 2014-07-0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승각 선생님께 수업을 듣다니....참으로 멋진 프로그램이네요. 이곳에서 충주는 2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겠군요.
3D.....두렵기까지 합니다^^

섬사이 2014-07-08 23:2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충주 가는 길에서 가끔 세실님 생각을 해요.
세실님 도서관도 충주 어디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면서요.
정승각 선생님은 아이들과 이런 활동을 하시는 걸 즐기시는 듯 해요.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한다는 게 참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인데
저희가 죄송할 정도로 정성을 쏟아 주십니다.
요즘 평화그림책 작업으로 바쁘신데도 한 달에 한 번, 꼭 시간을 내 주시구요.
3D는.... 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