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우리집 막내의 첫영성체 교리가 있었다. 첫영성체를 하려면 일주일에 4번 성당에 가서 교리를 받아야 했는데 성당까지 가는 길이 좀 빡쎄다. 난 운전을 할 줄 모르고 버스를 타고 가기엔 애매해서 막내랑 같이 비탈 심한 길을 걸어다니느라 헉헉거렸다.  그나마 더워지기 전이라 다행이었지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웠다면 첫영성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앙심이 그 정도로 깊은 사람이 아니니까. (나이를 먹고 늙어갈수록 종교생활이란 게 도움이 된다는데...) 내가 내내 안나가고 있던 성당을 다시 나가면서까지 막내에게 첫영성체를 받게 한건 시댁이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막내는 5월 내내 교리를 받고 6월 첫 날 무사히 첫영성체를 마쳤다. 첫영성체를 하는 날에는 인천에서 시부모님이 축하해주러 오셨다. 처음에 성당을 낯설어하던 막내는 첫영성체 교리를 받는 동안 친구들도 사귀게 되면서 성당에 많이 재미를 붙였다. 첫영성체를 마친지 한 달이 지난 요즘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남편의 차를 타고 성당에 간다. 대학생 큰애들은 실컷 늦잠자라고 놔두고 남편과 나, 막내 셋이서만 간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남편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며 막내의 주일학교가 끝나길 기다린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함께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준비해 먹는 게 일요일 아침의 우리집 풍경이 되었다.

열심인 신자는 결코 아니고, 성당 사람들이 어떤 단체에 들어서 같이 활동하자고 하면 미꾸라지처럼 빠져 달아나는 날나리 신자라서 미안하지만 그냥 딱 이 정도. 일요일 아침 두 명이 빠지긴 했지만, 암튼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이 나들이 같기도 하고 산책 같기도 한, 딱 이 정도의 종교생활이 난 좋다.

 

 

 

 

몇 년 전에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 햇빛공방이라는 엄마들의 바느질 모임이 만들어졌었다. 함께 모여 그림책 속에 나오는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고, 헝겊 그림책도 만드는 아주 재미난 소모임이었다. 나도 잠깐 햇빛공방에 들어가서 <야옹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에 나오는 고양이 캐릭터를 넣어서 막내의 가방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바느질이라면 적성에 안맞는 일이라고 손사레를 치던 내가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그 책은 우리 막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그림책 중 하나였다)

그런 작은 모임이었던 햇빛공방이 작년에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해서 따로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은 마을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살림하고 애들 챙기면서 바쁘게 일하는 햇빛공방 엄마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햇빛공방 엄마들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함께 일을 해오던 엄마들인데 이번에 도서관협회에서 도서산간벽지의 작은 학교들에 책꾸러미를 만들어 보내면서 권윤덕 선생님의 <시리동동 거미동동>에 나오는 여자 아이와 토끼, 까마귀를 인형으로 만들어 선물로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 인형의 제작을 햇빛공방이 맡았고 권윤덕 선생님과의 협의 끝에 드디어 인형제작에 들어갔는데 일일이 핸드메이드로 만들다보니 일손이 부족...  내 코를 석자로 만들어놓은 일이 있어서 그 일을 먼저 마치느라 일찍부터 일을 돕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 햇빛공방의 한 멤버였고 오랫동안 함께 도서관 일을 해온 충만한 의리감으로 무장하고 마지막 이틀, 일손을 도왔다. 무사히 일을 마치고 80박스의 인형을 트럭에 실어 보내는 햇빛공방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엄마들은 힘이 무지무지 세다. 흠!!

 

 

 

 

트럭이 와서 인형박스를 실어가는 걸 보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왔더니 막내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울먹이며 떠듬떠듬 하는 말이.. 그러니까,  수요일이라 4교시밖에 안하고 집에 일찍 왔는데 밖에 같이 놀 친구가 하나도 없더란다. 혹시 같이 놀 친구가 나오려나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고, 그게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그래서 열 살 막내가 나를 붙잡고 엉엉 우는 거였다.

"내 시간 어떡해~~~ 어떡해, 내 시간~~~"

저런 멘트를 날리며 우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좋아하던 둘째가 어릴 때 "빵빵~~ 빵빵~~"하고 운 적은 있었지만 놀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이 아까워서 통곡처럼 우는 아이는 처음인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엉엉 우는 딸을 앞에 두고 엄마인 나는 우하하하하 웃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막내가 평소에 못놀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매일 저녁 7시 30분까지 신나게 밖에서 노는 아이다. 옛말에 틀린 말 없다더니..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이 딱 이런 경우에 맞는 말이다. 놀아본 놈이 노는 맛을 안다. 그 맛을 못 봤으니 저렇게 서러웠던 거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토닥토닥 해줬더니 금세 내 품안에서 곯아떨어졌다. 큰애들은 혼자 놀 줄을 모른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제 7월이다. 한 해의 반이 지나고 한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올해 지나간 반은 내 뜻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따라가기에 바빴던 것 같다. 이제 남은 반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한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을까. 작년까지 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 계셨던, 나랑 동갑인 선생님이 사서 일을 그만두고 황토집 짓는 걸 배우러 다니신다. 건강하고 즐거워하신다고 전해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내 시간을 살아야지'하는 조바심 비슷한 게 꾸물거린다.

나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성공을 하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도 별로 없다. 그냥 지금의 일상을 잘 지켜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그냥 조용한 내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마음이 내킬 때는 이렇게 주절주절 혼잣말하듯 끄적거리고 싶다. 아직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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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7-0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 첫 영성체 축하드립니다. 대견하네요^^
따뜻한 일상입니다. 성당을 나들이처럼........ㅎㅎ
일 그만두고 황토집 짓는걸 배우러 다니는 그 사서님 멋지시네요.

섬사이 2014-07-04 16:0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늦었지만 세실님 생일도 축하드려요. ^^
'사서'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 중에는 멋지고 좋은 생각을 갖고 사시는 분들이 많은가봐요.
세실님은... 지금은 '사서 선생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사서로 계셨으니까,
그래서 어르신의 워드 작업을 도와드리는 멋진 일도 하실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책을 늘 가까이 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라 그만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은 게 아닌가 싶어요.
뜨거운 날이네요.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몸 튼튼,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하늘바람 2014-07-06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이뻐요. 막내 울 태은이두. 저리 이쁘게 자랐으면하네요

섬사이 2014-07-07 16:04   좋아요 0 | URL
드레스를 입히니까 쪼끔 이뻐 보여요.
남자 아이들과 S보드 타면서 놀기를 좋아하는
머스마 같은 딸이랍니다.
태은이처럼 깜찍한 맛이 없어요. ㅠ.ㅠ

순오기 2014-07-08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도 예쁘고 인형도 예쁘지만 울면서 하는 말이 최고에요!!^^

'내 시간 어떡해~~어떡해 내 시간!'

섬사이 2014-07-08 23:28   좋아요 0 | URL
하루라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면
엉덩이에 뿔이 돋는 아이입니다.
그 날은 아마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잔뜩 기대했는데
빈 밥상을 받은... 그런 기분이었을 거예요.
걱정이지요.
갈수록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줄고 있거든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