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붕..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간다는 전설 속 상상의 새.

북해 차가운 바다에 사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대붕' 되었단다.

대붕이 되고나면 남쪽 바다를 향해 하루 구만리를 날아가는데,

그건 세속의 질긴 삶(곤)을 벗어나 영적 깨달음을 얻은 상태(대붕)로 거듭나서

하늘나라로 가려는 인간을 비유하는 거라더구나.

그래서 대붕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위대한 존재를 상징한다고 하네..

중국의 시선 이백의 방랑이 단순한 방랑이 아니라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의 비상’이었다고 하고

그의 본질이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고도 하더라.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본다.

끝없이 넘실대는 대양 위를 나는 늠름한 새의 모습.

저 멀리 수평선 끝에서 떠오르는 오렌지 빛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그 모습.

내 마음 속 대붕이 날개짓 하는대로 잠시 내버려둔다.

하늘 높은 데서 부는 남쪽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모네의 그림 속에서 보던 분홍빛 구름을 스치며

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의 비늘을 굽어보며

나는 따뜻한 남쪽 바다를 향해,

자유를 향해서,

거침없이,

구만리를 날아간다.

날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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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뭐죠? 한번 날개짓으로 날아간다는 새. 가끔 답답할때 탁트인 곳으로 훌쩍 날아가고플 때가 있어요. 지금보다도 더 도시가 마을이 널널했던 때에도 사람들은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니..인간의 비상본능이 있나봐요

섬사이 2007-07-15 17:49   좋아요 0 | URL
새들은 날면서 자기가 자유롭다는 걸 느낄까요? 궁금해져요. 현실과 자기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좀더 멀리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때로는 날고 싶다는 것으로 표현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구요. 날고 싶다는 건, 지금 나를 묶어놓은 것들이 많다는 반증이 아닐런지...

비로그인 2007-07-16 17:23   좋아요 0 | URL
어쩜 새들은 걷거나 뛰기를 부러워할지도 몰라요. 물론 새대가리 (^^;;;)라 얼마나 소망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갈매기 그 누구냐는 높이 날려고 했으니까...도피하고자 하는 욕망과 현재 묶여있는...어쩜 비례할진 모르지만, 정작 날 수 있는 (비유썼음 ^^)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사람이 날려면 자기가 속한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자기가 원하는 건 끊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건 그냥 놔두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가끔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니면 오프일때도 그 시간에 눈이 떠지만, 참 난 잘 적응하고 있구나..보단 조련됬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그래도 어딘가 묶여있다는데, 종속되어있다는 것에, 아니 소속되어있다는 것에 보다 안전함을 느끼니까 그냥 참아요. 그래도 휴가땐 정말 사람이 달라질 정도로 발랑 발랑 뛰는걸요? 그렇지 않다면 휴가는 그리 달콤하지 않았을거예요.

섬사이 2007-07-17 21: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너구리님.. 막상 날게 되면 저는 또 땅을 그리워하게 될거예요. 땅을 딛고 사는 그 펀안한 기분을요.^^
 

낯가리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이사온 지 만 2년이 되도록 같이 어울릴 사람을 사귀지 못했었는데, 요즘 같은 라인 3층에 사는 비니 또래 남자 아이의 엄마와 좀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그 분과 어울리게 된 것도 순전히 비니 덕이다.  사교성 좋은 비니가 그 집 남자애와 몇 번 어울려 놀았는데, 활발하게 같이 뛰어놀 줄 아는 비니를 그 집 남자애(이름이 지윤이다)가 자주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니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인데, 지윤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라서, 지윤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유빈이랑 놀거야."하는 바람에 그 엄마가 곤란을 겪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엄마는 운전도 할 줄 아는데다, 그 엄마 전용 자동차가 있어서(싼타페) 도서관이나 장난감 세상(구청에서 장난감을 무료로 대여해 주는 것인데, 실내놀이터도 겸하고 있어서 요즘처럼 비가 오는 날엔 애들 데리고 가서 놀게 해주면 너무 좋다.) 에 갈 때 우리 비니랑 나를 같이 챙겨 가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어제, 비가 퍼붓던 날.  어둑어둑한 날씨 때문인지, 비니는 더 늦잠을 잤다. 세상이 커다란 컵이라면 누군가가 그 컵 속에 검은 잉크 몇 방울 떨어뜨려 휘휘 저어놓은 듯이, 희미한 어둠이 밀려 들어와 있었다.  큰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비니는 자고.. 고요와 적막 속에서 빗소리만 들려왔다. 

쇠로 된 베란다 난간에 통통 거리며 튕겨지는 빗소리, 후두둑 나뭇잎을 때리며 떨어지는 빗소리, 다다닥 잰 발걸음으로 돌바닥을 종종대는 빗소리..   여름같지 않은 서늘한 기운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가스 불에 주전자를 올려 커피를 끓였다.  부엌 창 밖으로 보이는 담쟁이 덩쿨로도 비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얀 김이 주전자 주둥이로 못견디겠다는 듯 뛰쳐나와 공중으로 훌훌 날아오른다.  하얀 머그 컵에 엷게 탄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들고 거실 창 앞에 앉아 비구경을 했다.

이런 날은 정말로 음악조차도 소음이다.  커피 속 카페인 성분을 온 몸으로 빨아들이려 했는데, 카페인 성분의 각성효과보다 강한, 커피의 따뜻한 품성이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폈다.  처음 읽는 바나나의 책이다.  비 내리는 적막한 날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참 좋구나, 밖에 비가 내리고, 따끈한 커피 한 잔에, 작고 예쁜 책이라니.. 오랜만에 누려보는 호사였다.

그렇게 행복해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3층이에요. 비니 아직 안일어났죠?"
"네.."
"우리 도서관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못가겠구나. 그럼 이따 오후에 장난감 세상에 같이 갈래요?"
"좋죠, 고마워요."

행복한 날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이 한 잔의 커피처럼 늘 따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좋다. 요즘은 적당한 온도로 물을 끓여주고 그 온도를 유지하는 똑똑한 주전자도 나왔다는데, 그런 주전자의 능력을 사람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후, 비가 잠깐 그쳤다.  화단 산수유 나무잎 끄트머리에 빗방울이 모여 몸집을 늘리다가 순간 반짝하면서 아래로 툭 떨어지며 추락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가방에 아이들에게 나눠 줄 요구르트와 3층 엄마와 나눠마실 따끈한 녹차를 보온병에 담아 챙겼다. 

장난감 세상에 가는 길에 3층 엄마가 묻는다.

"언제 같이 애들 데리고 동물원에 가지 않을래요?  능동 어린이 대공원 무료잖아요.ㅎㅎ"
"너무 좋죠."

고요함 속에 들리던 빗방울의 다양한 연주와 이웃의 따뜻한 호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훈훈한 소설,실내놀이터에서 또래 친구와 신나게 뛰어 논 비니의 만족한 땀방울이 어우러진, 적정온도의 행복감을 담은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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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7-1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그림이에요..
음악소리조차 소음으로 느껴지는 날에는 그저 '나'를 즐겨줘야죠..

섬사이 2007-07-13 09:24   좋아요 0 | URL
매일 "나"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욕심이 과하면 안되는데..-_-;;)

hnine 2007-07-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컵 속에 검은 잉크 몇 방울이란 표현이 너무 좋아요...

섬사이 2007-07-13 09:2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매지 2007-07-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함이 느껴지는 일상이예요 :)
장난감세상 저도 한 번 ㅎㅎㅎ

섬사이 2007-07-13 09:27   좋아요 0 | URL
네, 마음 따끈한 하루였어요. 장난감세상, 아세요? 혹시 이매지님이랑 저, 같은 동네 살고 있는 건가요?

이매지 2007-07-13 21:02   좋아요 0 | URL
아아. 요새 그런 식으로 체인도 있는 것 같길래
그건 줄 알았어요 :)
검색해보니 제가 사는 동네는 아니고 남친이 거주하는 지역이네요 ㅎㅎ

섬사이 2007-07-14 00:59   좋아요 0 | URL
오호~ 이매지님의 남친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니.. 지나가는 청년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을 듯..^^

홍수맘 2007-07-1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 세상이 커다란 컵이라면 누군가가 그 컵 속에 검은 잉크 몇 방울 떨어뜨려 휘휘 저어놓은 듯이, 희미한 어둠이 밀려 들어와 있었다" 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잔잔함에 행복이 묻어나는 일상이네요. 이런게 행복 맞죠?

섬사이 2007-07-13 09:28   좋아요 0 | URL
네, 행복 맞아요. ^^

치유 2007-07-12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날이에요..넘어다 보는 저까지도....

섬사이 2007-07-13 09:30   좋아요 0 | URL
님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님도 빨리 완쾌하시고.. 늘 신앙 안에서 강건하게 지내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지만..

비로그인 2007-07-1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이웃을 얻는 것은 행복이죠 (맨날 인사하는 너구리에게 "아, 네"만 말하는 앞집 미워욧!). 여하간, 비오는 소리에 음악마저 소음이다....며 빗소리를 설명해주신거 참 좋네요. 아, 저렇게 가볍게 빗소리를 들어본적이 언젠지 모르겠어요. 매번 어떻게 퇴근하니, 아, 내일 어떻게 출근하나..어떤 구두를 신어야 안젖지..그런것만 생각했는데 말이예요. 그리고 동물원엔 언제 마지막으로 가봤나....싶기도 하고. 갑자기 동물원에 무지 가고 싶어졌어요.

비로그인 2007-07-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올리려다 이미지화일이 커서인지 못올린게 있는데 외국에선가 어떤 아이가 너구리에게 먹을 것을 줬어요. 철창사이로 먹을 것을 두손으로 움켜쥔 너구리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앞으로 손을 뻗어있는 건데 귀여워서 마구 웃긴 했지만...후후, 어떻게 먹었을까요?

섬사이 2007-07-13 10:35   좋아요 0 | URL
유난히 빗소리가 좋았던 날이었어요. 좀 아까 님의 서재에서 문제의 그 너구리 사진을 보고 왔어요. ^^

알맹이 2007-07-1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비오는 소리하며, 모습하며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비 오는데도 왠지 기분 좋은 날이었는데..

섬사이 2007-07-14 00:53   좋아요 0 | URL
님도 그러셨군요. 학교 다니던 시절, 비가 오는 날엔 교실 분위기도 착 가라앉았던 기억이 나요. 마치 졸린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는 더 크게 멀리 퍼져갔었죠. ^^

네꼬 2007-07-1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웃을 만난다는 건 정말 따뜻한 일이에요. 읽는 제가 다 흐믓하고 좋습니다. : )
 

지난 주 퍼포먼스 미술놀이에서 과제물로 받아온 게 있었다.  어부들이 쳐 놓은 그물에 걸린 쓰레기들을 그려보라는 거였는데, 비니가 무슨 수로 쓰레기를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결국, 크레파스로 끄적끄적거리다가 휴지도 구겨 붙이고, 잡지며 광고지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뜯어 붙이기도 했는데.. 광고지에 나온 까만 속옷의 여인이 눈길을 확 끄는 거다.

그래, 바로 이거야, 했는데.. 옆에서 우리 딸 지니가 "배에 태워, 엄마!" 하는 거다.
"오호!!! 좋은 생각이야~~"

지니는 푸훗 웃다가 마시고 있던 냉녹차를 팍 내뿜고 코로도 넘어오고,(벌써부터 밝히는 건가~), 나는 삶에 활력을 느꼈다. 으~~~아~~~(나도 밝힘증?)

그래서 탄생한 비니의 과제 결과물이다. ^^



"다이빙 할껴"라는 말풍선은 큰딸 지니가 써 넣었다.  짜식~ 센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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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7-1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멋져요!! 요런 멋진 포스터라니!!
지니 재미있네요 ^^

섬사이 2007-07-12 09:18   좋아요 0 | URL
해놓고 나더니, 지니가 은근히 걱정하던 걸요. "엄마, 선생님한테 야단맞는 거 아니야?"하면서.. 그래서 제가 그랬죠."지니야, 예술의 세계에선 모든 고정관념과 대상의 신성함을 벗겨버리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란다."^^

향기로운 2007-07-1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너무너무너무 웃겨요..^^ㅋㅋㅋ 진짜 센스가 넘치는 과제물이군요^^

섬사이 2007-07-12 09:20   좋아요 0 | URL
네, 아주 작은 일탈이었는데, 삶이 재밌게 느껴지더라구요.^^

비로그인 2007-07-1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다이빙할껴 하는 포즈 작열해요!!!

섬사이 2007-07-12 09:22   좋아요 0 | URL
검정 레이스였다면 더 좋았을텐데...ㅎㅎ

Mephistopheles 2007-07-12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여자도 여자지만..졸지에 쓰레기로 취급받은 불쌍한 핑크팬더.....ㅋㅋㅋ

섬사이 2007-07-12 09:26   좋아요 0 | URL
메피님 말씀 듣고 보니, 핑크팬더가 좀 불쌍해 보이네요. 쓰레기를 건져내다가 바다에 빠진 핑크팬더를 구출한 걸로 봐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좀 덜 불쌍한데..^^

네꼬 2007-07-1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 이 글 찜해가요. ㅋㅋ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소설은 주로 삶에 대한 애증과 냉소, 허무감이 공통된 코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 소설을 연이어 읽어댔더니 이제 슬슬 그런 코드들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잘 모아지지도 않고, 조각조각 모아진 생각들이 제대로 엮이지도 않는다.  책을 덮고도 며칠을 그냥 보냈다. 엮이지 못한 생각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리뷰를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구석에서 날 노려보고 있고, 나는 "소설만 계속 읽었더니 다 그게 그거 같아."하며 불편해 했다.

정미경님의 단편집.  예리하게 날 세운 칼로 사람의 내면 심리를 도려내어 보여주는 듯한 느낌의 글들이 있었다.  그녀가 글로서 그린 그림은 분명 뾰족한 펜끝에 잉크를 묻혀 그리는 한 장의 펜화의 느낌이다. 읽으면서 TV 베스트 극장인가 하는 프로그램에 드라마화 해서 나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머릿 속에 장면 장면이 그려질만큼 이야기에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서로 혼합되지 못하고 어긋나며, 자기가 가진 결핍에 대한 강박증을 보이고, 삶이 드러낸 배반적인 이면에 몸서리치는 인물들이 차갑게 그려져 있다. 그러다 돌연 마지막 단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에서 살짝 온기를 머금는데, 그 온기가 어쩐지 어색하고 생뚱맞으면서도 책을 읽으며 느끼던 한기가 조금 풀어지는 듯 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것도 비극적인 결말을 보는 이야기이지만.

이젠 삶에 대한 냉소, 애증, 그리고 갑자기 모습을 바꾸는 삶 앞에서 피곤을 드러내는, 결핍과 상실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는 인물들에서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든다.  

문득 조르바가 그리워지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씩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하던 조르바.

날카로운 칼로 사람의 내면을 후벼파는 듯한 글을 쓰는 작가 정미경님이 조르바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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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히 독서하고 계시는군요 ^^
정미경의 책은 이책이 처음이라 장미빛 인생보다 저에겐 좋은 책이었죠.
요즘은 사람의 내면을 후벼파는 글보다는
쉬엄쉬엄 묻어가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그런 글을 읽고 싶어요.

섬사이님의 다음 리뷰 고대하겠습니다 :)

섬사이 2007-07-10 18:21   좋아요 0 | URL
요즘은 책 읽기에 속도를 못내고 있어요. 바람 든 막내 비니를 좇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그러다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고.. 이제 일주일에 한 두 권이라도 읽을 수 있으면 다행일 것 같아요.

씩씩하니 2007-07-1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에 대한 냉소..허무가 주제가 되는 작품이 많은 것이 딱 맞아요..
그런 감정이 보편적이라는 뜻이까요..세태반영이라 생각하면 조금 씁쓸해요....
그래서 마음이 안좋을 때는 소설책도 선뜻 읽지 못하겠드라구요...

섬사이 2007-07-10 18:24   좋아요 0 | URL
씩씩하니님, 반갑습니다.^^ 하니님도 다른 님들 서재에서 자주 뵈었어요. 그래서 낯설지가 않아요. 하니님 말씀대로 정말 냉소적인 사회가 되었나봐요. 빨리 기운 차리고 으쌰으쌰 씩씩하고 활기차고 용감하게 삶과 맞장 뜰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채인선 님이 쓰고 김은정 님이 그린 <딸은 좋다>라는 그림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푸훗 웃고 말았어요.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림책은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는데.. 사건의 발단은 그림에서 일어났죠. 

첫번째 그림은 바로 이거에요. 




딸은 엄마가 웃을 때까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출 줄 안다는 딸의 살가운 정에 대한 글에 붙여진 그림인데요..  전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왜 개그맨 정종철이 생각나는지... 제가 비정상인가요?

 

두번째 그림.



 

어느 새 결혼할 때가 된 딸.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에 눈물겨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내용의 글과 함께 실린 그림인데요,  전 이 그림 속 딸의 얼굴이 트로트 가수 주현미로 보이는 거에요.  제가 정말 이상한 건가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이 그림책, 딸 키우며 느끼는 엄마의 마음을 잘 담아낸 책이에요.  절대로 웃기거나, 허접하다거나, 유치한 그림책이 아니라구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아니면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는 건지 궁금해서 이런 페이퍼를 올리는 것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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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7-0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번째 그림보고 섬사이님의 글을 읽기 전에 주현미라고 생각했던 ;;;
첫번째는 글을 보고 그림을 보니까 정말 정종철 같군요 ㅎㅎ

다락방 2007-07-0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을 읽기도 전에 '주현미인가' 했는데요. 섬사이님 하나도 안이상하셔요. 흣.
:)

비로그인 2007-07-0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보여요 ㅋㅋㅋㅋㅋ

무스탕 2007-07-0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현미를 염두에 두고 그렸는지도 모르겠네요 ^^

kimji 2007-07-0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에, 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어쩐지 후련한 마음까지 듭니다; ㅎ )

홍수맘 2007-07-0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종철? 주현미?
ㅋㅋㅋ

프레이야 2007-07-0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닮았어요. 가만히 보니 삽화가 아주 다정다감하고 온화하네요.
정말 좋은 책 같아요. 채인선의 글을 좋아하지요.

비로그인 2007-07-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렇게 생각되었는걸요? 하하하

섬사이 2007-07-0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다락방님, 체셔님, 무스탕님, kimji님, 홍수맘님, 혜경님.
ㅎㅎㅎ 그렇죠? 제가 이상한 거 아니죠? 제가 이 그림책 보면서 "정종철 같다","주현미 같다" 하는데 옆지기는 그런 저를 보며 맞장구 안 쳐주고 계속 실실 웃기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눈이 이상한 건가.. 하는 의심이 들더라구요. ㅎㅎㅎ
kimji님, 처음 뵙네요. 후련하다시며 적극적으로 맞장구 쳐주시니 고맙습니다. ^^
혜경님, 정말 따뜻한 그림책이에요. 딸 키우는 엄마로서 가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채인선님 좋아하거든요.^^

향기로운 2007-07-0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 정말 닮았어요^^;;;

섬사이 2007-07-09 16:37   좋아요 0 | URL
아싸~~ 향기로운님도 저에게 한 표를 던져주셨어요~~^^

Mephistopheles 2007-07-09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는 도중 마빡을 때리며 신사동 그사람을 안부르셨다면..
정상인 겝니다.

섬사이 2007-07-09 20:44   좋아요 0 | URL
메피님, 반갑습니다. 다른 님들 서재에서 종종 자주 뵙곤 했죠. 참 재치있고 포용력있는 분인가보다 했었는데, 제 서재에까지 찾아와 주시고, 다정하게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너무 기뻐요. ㅎㅎㅎ 근데, 결론은 제가 정상이라는 데 표를 던지신 거죠? ^^

정아무개님, 감사합니다. ㅎㅎㅎ 여러분의 의견을 종합해서 옆지기에게 공식발표를 해야겠어요.

fallin 2007-07-0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현미는 정말 공감가네요 ㅋㅋㅋ 닮았어요 ^^

섬사이 2007-07-09 20: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신기해서 그림을 한참 봤다니까요.^^

마노아 2007-07-10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종철에 주현미! 진짜 닮았어요. 읽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재밌어요^^ㅋㅋㅋ

섬사이 2007-07-10 10:52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웃는 모습, 정말 예쁘던데.. 저 ㅋㅋㅋ 뒤에 마노아님의 환한 웃음이 있는 거죠?

치유 2007-07-10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면서 큭큭 웃음이 터지네요,.잠시라도 즐거운 상상이에요..

섬사이 2007-07-11 14:38   좋아요 0 | URL
ㅎㅎ ^^ 제가 좀 실없죠?

알맹이 2007-07-1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정종철은 지금 보니 똑같네요. 저도 주현미 생각은 했었는데. 같은 생각하셨다니 재밌어요. ㅋㅋㅋ

섬사이 2007-07-14 00:54   좋아요 0 | URL
앤디뽕님의 한 표도 추가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