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말라리아에서 시작된 두 시간의 사색 끝에 월리스는 자연선택이론을 완성해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발전하고 도태하는 자연의 자정 작용은 필연적으로 다음 세대를 진보하게 할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열등한 종은 빨리 죽을 것이고, 우월한 종은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즉 가장 적응을 잘한 종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월리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표본을 수집해온 정글이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기후 변호, 가뭄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계속 변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오랫동안 찾아온 자연의 법칙”을 깨달았다.


(59)

당시 다윈은 이미 <종의 기원> 3판을 출간하며, 자연선택 이론의 ‘주인’으로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있었다. 월리스는 다윈의 명성이 높아진 것을 보고도 전혀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계는 이제 월리스를 학자로 대우했다. 영국 조류학협회는 월리스를 명예회원으로 인정했고, 동물학회는 그를 특별회원으로 지정했다.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발표했다. “월리스 같은 사람은 한 세대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인물이다. 열대의 야생 밀림을 아무 탈 없이 돌아다니기에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고, 대단히 훌륭한 수집품을 모았다. 게다가 그 수집품을 분석해서 아주 현명하게 결론을 도출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류학자, 존 굴드는 월리스의 표본이 앞으로의 연구에 아주 요긴하게 쓰일 ‘완벽한’ 자료라고 단언했다.


(73-74)

산업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수치는 더욱 커졌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이아몬드 깃털을 자랑하던 1798년 프랑스에는 깃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자가 25명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862년에 이르면 120명까지 증가하고, 1870년경에는 280명까지 급증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깃털을 뽑고 가공하는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미가공 깃털 상인 조합’, ‘깃털 염색업자 조합’, ‘깃털 산업 어린이 노동자 보호 협회’ 같은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1890년대 프랑스에는 거의 4만 5000톤에 달하는 깃털이 수입됐다. 런던 민싱가에 있는 경매장에서는 4년간 극락조 15만 5000마리가 거래됐다. 같은 기간, 현재 가치로 약 28억 달러에 달하고 무게로는 총 1만 8000톤에 달하는 극락조가 거래되었다. 한 영국인 딜러는 1년간 새 가죽 200만 장을 팔았다. 미국의 깃털 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1900년대까지 8만 3000명의 뉴요커가 모자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북미 지역에서만 매년 약 2억 마리의 새들이 죽어갔다.


(285)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박물관 표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일정 시간 후에는, 아마 100년 정도는 되겠지만, 표본들에서 뽑아낼 수 있는 과학적인 데이터는 이미 모두 뽑아냈겠지요. DNA로 이제 더는 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의 역할이 뭐죠? 그 새들이 멸종되지 않고 더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었죠. 하지만 제대로 안 됐잖아요. 지금도 멸종되는 새가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밀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345)

그들은 모두 수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계속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또 다른 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냐,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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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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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천명관 님의 소설을 읽었단다. 천명관 님이 소설을 쓰신 것도 오랜만 이라고 하더구나. 김언수 님의 <뜨거운 피>라는 소설을 천명관 님이 영화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첫 영화감독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천명관 님과 김언수 님을 좋아하고, 소설 <뜨거운 피>도 재미있게 봤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 <뜨거운 피>는 보질 못했구나. 아무튼 그렇게 영화감독을 하시느라 바쁘셔서 그런지 한 동안 새로운 소설 소식이 없었단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서 천명관 님의 신간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바로 클릭해 보았단다. 음, 작가님 사진도 나왔는데, 아빠가 알고 있던 모습에 비해 많이 중후해지고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신 모습이었구나. 그 전에 천명관 님의 소설들을 재미있게 읽었으니 이번 신간도 바로 주문을 하고 바로 읽었단다.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천명관 님 작가 특유의 서사성이 돋보여서 그 자리에 앉아서 다 읽었단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된 시점의 한 고아의 성장기라고 짧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영화감독으로 입봉하셔서 그런지 그대로 한 편의 영화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 그럼 소설 <아코디언> 이야기를 해줄게.

 

1.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아코디언은 요즘에 흔히 볼 수 없는 악기로, 양손으로 건반으로 누르고 주름상자를 밀고 당기면서 공기를 통과시켜서 소리를 내는 건반악기로 손풍금이라고 해.

...

주인공 동이는 전쟁을 겪으면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혼자가 되었단다. 동이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전쟁에 참가했다가 감감무소식이었어. 동이의 어머니와 동이가 함께 피난을 오다가 동이 혼자 배에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어. 그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설에서는 정확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유명한 흥남 부두에서 있었던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서 동이가 홀로 타게 된 것 같더구나.

그렇게 남쪽으로 홀로 내려온 혼자가 된 동이는 양목사를 만나 앵벌이를 하게 되었어. 양목사는 해방촌 산자락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전쟁 고아들을 데려다가 앵벌이를 시켰어. 장님 소녀인 연이, 팔 잃은 아이인 깜상, 앉은뱅이 거북이 등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의 수입이 좋다고 양목사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데리고 있었어. 양목사를 아이들을 툭하면 때리고 핍박하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어. 하지만 아이들은 갈 곳도 없고 도망가기도 쉽지 않았어. 아이들을 관리하는 무시무시한 삼촌 ‘아미‘가 아이들을 감시하고 있었지.

어느 날 동이는 백화점 앞에서 앵벌이를 하는데, ‘구직‘이라는 푯말을 들고 서 있는 다리 하나 없는 상이군인과 친해지기도 했어. 그 상이군인은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가했다가 다리를 잃었는데,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직접 직업을 구하려고 길에 나선 거야.. 쉽지 않았지. 다들 어려운 시기였지만 상이군인들은 어떻게든 보상을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얼마 후 그 상이군인은 달리는 전차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단다.

...

양목사는 아이들을 잡아두기 위해 구름탄이라는 약을 먹였는데, 그것은 마약이었어.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은 구름탄 때문이라도 다른 곳에 가지 못했단다. 그들이 사는 판잣집에 연이 할아버지의 유품인 아코디언이 한 대 있었어. 동이는 교회에서 풍금을 치던 엄마가 생각나기도 했어. 동이는 음감이 좋았어. 절대음감이라고 해두자. 연이의 아코디언을 연주해 보았는데 곧잘 잘 했어. 그 이후 연이와 짝을 이루어 앵벌이를 했단다. 동이는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장님인 연이는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하고... 처음에는 찬송가를 주로 불렀는데, 나중에는 ‘목포의 눈물‘ 등 대중가요를 불렀어.

동이와 연이의 수입이 짭짤했단다. 깜상이라는 아이가 누명을 쓰고 양목사에게 매타작을 당한 일이 있는데, 이 일이 있고 깜상은 도망쳤어. 그러나 마약 중독 때문에 다시 돌아와 약을 달라고 했어. 아미 삼촌이 그를 때리려고 하자 동이가 저항하며 막으려고 했고, 아미 삼촌은 동이를 삽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양목사가 와서 말렸단다. 이렇듯 그들의 판잣집은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언제 무슨 일이 날지 몰랐어. 아무튼 양목사는 깜상을 다시 받아주었단다.

...

어느 날 빌리 아저씨라는 미국 사람이 와서 찬이를 입양한다고 했어. 찬이는 이제 미국에서 가서 살 거라고 했어. 그런데 며칠 뒤 순사가 와서 아미 삼촌을 찾았어. 아미 삼촌이 빌리 아저씨를 죽였다는 거야. 사실 빌리 아저씨는 자선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 찬이를 입양시켜서 미국에 간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어. 그런 빌리를 아미 삼촌이 죽였다고? 음.. 살인이 나빠도 아미 삼촌의 속마음은 겉모습과 좀 다른 가 보구나. 그런데 순사가 양목사의 판잣집에 아미를 찾으러 왔다가 양목사가 불법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고 양목사를 체포해 갔어. 아미 삼촌은 도망가고, 양목사는 체포 당하고 판잣집에 아이들만 남게 되었어. 그렇게 아이들만 남았는데 판자촌에 불이 났어. 그 불러 앵벌이를 하는 아이들 세 명이 죽고, 동이는 앉은뱅이인 거북이를 구출해서 살려주었단다. 그런데 그 화재 후 연이가 사라졌어.

남은 아이들은 동이, 깜상, 거북이를 중심으로 굴바위 아래에서 지내다가 판잣집을 다시 만들어 함께 지냈단다. 동이가 아코디언을 연주해서 돈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앵벌이로 돈을 벌어 쌀도 사서 밥도 직접 지어 먹었어. 양목사가 없으니 오히려 그들은 좀더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어. 그런데 얼마 후 어떤 아이들이 돈을 빼돌리는 경우가 있었어. 거북이는 양목사는 없지만 어느 정도 기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동이에게 이야기해서 규율을 만들자고 했어. 그렇게 본의 아니게 동이가 대장 노릇을 했어. 그들은 돈도 모아서 함께 관리하면서 지냈어.

..

어느 날 동이는 음악소리에 끌려 미군부대 안 클럽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진짜 밴드 연주를 보게 되었어. 그 밴드 연주를 듣고 감동을 받아 집에 돌아와서도 그 생각뿐이었어. 동이는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 미키라는 아이를 알게 되었는데, 미키가 동이의 아코디언 연주 솜씨를 보고 동이를 미군부대 밴드의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해주었어. 실력은 좋지만 동이는 악보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연주들과 합주가 어렵다면서 오디션에서 탈락했어.

....

 

2.

얼마 후 양목사가 다시 움막에 돌아왔어. 양목사는 다시 예전처럼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구름탄을 먹이려고 하자, 동이가 저항했어. 그러자 양목사는 장작으로 동이를 두들겨 팼어.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양목사에게 달려들어 양목사를 공격했어. 이젠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었어. 양목사 없이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깨달았어. 양목사는 아이들의 공격을 당하지 못하고 속옷만 입힌 채 나무 십자가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어. 밤에 동이가 밖에 나오니 양목사가 풀어달라고 하자, 동이는 하느님이 계시면 양목사를 죽지 않게 둘 것이라며 돌아섰어. 다음 날 아침 양목사는 사라지고 없었어. 누가 풀어준 것일까? 양목사는 도망가다가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되어 다시 움막으로 데리고 왔어.

…

동이는 하우스보이 미키가 미군부대의 식당에서 설거지 일자리를 알아봐 주어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전차에서 임신한 연이와 마약에 절어 절룩거리는 아미 삼촌이 앵벌이를 하는 것을 보았어. 판자촌에 화재가 났을 때 사라진 연이가 왜 이곳에? 그렇다면 아미 삼촌이 연이를 데리고 간 것일까? 동이는 면접을 뒤로 하고, 몰래 연이와 아미 삼촌의 뒤를 따라갔어. 아미 삼촌은 여전히 연이를 폭행하고, 자신은 마약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어. 동이가 연이에게 알은 채를 하고 함께 도망가자고 했더니, 연이는 아미 삼촌을 놔두고 못 간다고 했어. 그때 정신을 차린 아미 삼촌이 동이를 알아보고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

동이는 아미 삼촌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 동이가 가지고 있던 연이의 아코디언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거든. 아미 삼촌이 연이의 할아버지를 죽였다고 말이지… 그걸 아미 삼촌에게 물어보니 아미 삼촌이 이야기하기를, 그 사람은 연이의 친할아버지가 아니라고 했어. 연이를 앵벌이시키는 노인일 뿐이라고 했어. 그리고 도망 못 가고 앵벌이 하는데 유리하게 하려고 연이 눈도 그 노인이 멀게 했다는 거야. 연이와 아미 삼촌과 헤어지고 다시 판짓집으로 돌아왔어. 부상을 입고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양목사가 죽여달라고 애원했어. 동이가 양목사를 죽이려고 하자 거북이가 말렸어. 그 사이에 양목사는 스스로 목을 찌르고 죽고 말았단다. 동이와 아이들은 양목사를 뒷산에 묻어주었단다.

…

어느 날, 연이가 찾아왔어. 아미 삼촌이 죽었다고 했어. 연이는 얼마 후 아이를 낳았단다. 동이는 자신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선언했어. 동이는 점점 대장 노릇이 아닌, 대장이 되어가는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날 육손이라는 사람과 샘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어. 그들은 양목사가 자신들에게 빚이 있다면서 갚으러 왔다고 했어. 육손과 샘은 양목사와 아미 삼촌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들이었어. 결국 동이와 아이들은 양동에 있는 샘의 판잣집으로 이동해야 했고, 그 전보다 더 다양하고 고된 일을 해야 했어. 하루 종일 앵벌이를 하고 집에서는 담배 마는 일을 해야 했어. 동이는 깜상과 몰래 음모를 꾸몄어. 동이와 깜상은 그들의 돈통에 대한 정체를 샘에게 알려주고 그 돈통의 위치를 알려주겠다면서 샘을 판잣촌에 있는 우물로 유인하여 그곳에 떨어뜨려 죽였단다. 그리고 그들은 동대문에 있는 육손의 거처에 갔어. 그곳에서 연이의 아들 돈이를 몰래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곳에서 뜻하지 않는 찬이를 만나게 되어 찬이도 구출했어. 그런데 또 뜻밖의 사람을 만났어. 미키가 발에 차꼬를 차고 묶여 있는 거야. 미키는 동이를 보자 미안하다고 했어. 자신이 동이의 거처를 육손에게 알려주었다고 했어. 미키는 발에 차꼬가 채워져 있어서 구하지 못했어.

동이는 구출한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역으로 향했단다. 동이와 깜상은 샘을 죽이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갈 계획을 사전에 세웠어.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모두 서울역에 와 있었어. 동이는 다른 아이들을 부산으로 모두 보내고, 자신은 할 일을 마치고 가겠다면서 부산에서 만나자고 했단다. 그것이 아이들이 본 동이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어.

 

3.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동이의 아코디언을 물려받은 홍이라는 아이가 동이를 찾으려고 서울에 왔어. 홍이는 우여곡절 끝에 미키를 만났어. 미키는 5년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어. 동이는 다시 미키를 찾아와서 미키를 구했으나, 육손한테 들켜서 함께 도망을 갔다는 거야. 그러다가 동이는 미키를 먼저 보냈다고 했어. 동이는 육손과 싸우다가 채석장 절벽 아래로 떨어졌어. 정신을 잃은 육손을 남겨두고 동이는 도망을 치고 때마침 시위대가 거리에 가득 차 있어서 그 시위대 속으로 몸을 숨겼어. 하지만 육손이 그곳까지 동이를 찾아왔고, 동이는 결국 육손의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단다.

미키는 동이와 사전에 정했던 약속장소에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동이는 오지 않았어. 그래서 동이가 죽었다고 생각했대. 그것이 홍이가 미키로부터 들은 동이의 이야기였단다.

....

또 5년이 지나고, 육손은 여전히 아이들을 앵벌이 시키는 나쁜 짓을 하고 있었어. 전차에서 신문팔이 소년과 부딪혔는데 갑자기 육손은 면도날에 목이 베여 피를 철철 흘리다가 죽었단다. 그 신문팔이 소년은 아무도 모르게 인파 속으로 사라졌단다. 그 소년은 누구였을까? 지금까지 다 이야기하고 맨 마직을 이야기하지 않냐는 너희들의 원성이 들리는 듯 하구나.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보길.

….

소설이 끝나기 전에 동이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동이의 엄마란다. 동이가 전쟁 중에 헤어진 엄마와도 다시 만나길 바랬으나,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구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끝나 버렸으니… 전쟁이 아니었다면 동이와 친구들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 텐데… 전쟁은 약한 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구나. 오늘날 지구촌 이곳 저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들은 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

앞서 이야기했듯이 천명관 님의 이번 소설 <아코디언>은 한편의 시대극을 보는 듯했어. 앞으로는 자주 소설을 출간해주시길 바라며, 오늘 이야기는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버스정류장엔 쯔그러진 깡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훗날, 동이는 우물가에서 들었던 울음소리가 실은 귀신의 소리가 아니라 아코디언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아코디언이 전해주는 소리에 늘 슬픔과 분노만 담겨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기엔 수많은 사연과 감정이 뒤엉키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동이는 연주를 통해 그 이야기를 다시 세상에 풀어놓았다. 아코디언을 치는 동안, 슬픔과 고통은 깊은 깨달음으로 정화되고 안개처럼 뿌옇게 가려졌던 진실은 거울처럼 선명해졌다. 그렇게 동이는 글자가 아닌 소리를 통해 벽 너머의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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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ㅣ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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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박지리 님의 소설을 읽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박지리 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요절하셔서, 남겨진 작품들만 가끔씩 읽고 있구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박지리 님이 남기신 작품들은 모두 여섯 편... 그리고 아빠가 읽은 박지리 님은 작품은 오늘 이야기 할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까지 다섯 권이더구나. 이제 한 작품 남았는데 좀 아껴서 읽어야겠구나.

이번에 읽은, 제목을 정확하게 외우기 쉽지 않은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라는 소설은 박지리 님 사후 출간되었던 첫 번째 책이라고 하더구나.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17년으로 약 10년이 흘렀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이질감 없이 읽게 되더구나. 그 경쟁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줄어들지는 않은 것 같고... 이 소설은 소설이라고 하긴 하지만 중간 중간 연극 시나리오 형식을 띠고 있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단다.

소설의 주인공 M은 제약회사 W에서 48번째 면접을 보고 있다. 면접을 하는 것을 보니 이번에도 떨어질 것이 뻔해 보였어. 그런데 마지막 질문... 다른 면접자들과 달리, 의도적이지만 솔직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답변을 한 것이 점수를 받은 것인지 합격을 했단다. 그래서 4주간의 신입사원 합숙 연수에 들어가게 되었어. M은 3반 5조에 배정을 받았고, 5조에는 조장 안경잡이, 여자 1, 여자 2, 회색셔츠, 떠버리, 그리고 M 이렇게 여섯 명이었어. 룸메이트는 꼬마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인데, 누나 셋의 막내로 집에서 귀염둥이 역할을 했던 것 같고, 아침 저녁으로 늘 가족들과 전화 통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 전화 내용을 들어보니 엄마가 간암 투병을 하고 계신 것 같았어.

....

 

1.

하루 일과는 아침 7시 30분까지는 자유 시간이고 아침 식사도 자율적으로 하면 됐어..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일찍 일어나 아침 구보를 하고 체조도 하기도 있고, 어떤 조는 아침마다 모여서 함께 아침을 해 먹는 이들도 있었어. 다들 사수 선배한테 잘 보여서 신입사원 연수에서 점수를 좋게 받으려는 의도처럼 보였어. M이 속한 5조는 아침도 각자 먹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단다. 합숙 연수생들은 가끔씩 외부 봉사활동으로 수해 피해 지역의 집 짓는 봉사활동을 했어. 연수 기간 중 육체적 노농이 가장 많은 활동이었단다. 그 외에 내외 강사들이 와서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 신입 사원으로서는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본부장 강연도 있었지. 연수생들은 그저 강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잘 따기 위해서 그럴싸한 질문을 하겠다고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어. 그런데 M이 어디서 들었는데, 이 합숙연수가 합격자들의 연수가 아니고 마지막 3차 면접이라는 거야. 모든 사람이 입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중에 일부는 합격하고 일부는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이야.

미처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M은 당황했어. 그 동안 감점될 만한 행동을 한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점수를 따겠다는 행동을 한 것이 거의 없었거든. 그런데 그 때 사수의 호출로 사수들이 사용하는 사무실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어. 그곳에서 어떤 서류를 하나 봤는데 이름도 없이 번호만 나열 되어 있고, 날짜마다 ˝O˝표와 ˝X˝가 되어 있었어. 그런데 13번만 둘째 날부터 쭉 ˝X˝표시가 되어 있었어. 13번은 누구지? M은 아무래도 그 13번이 자신인 것 같았어. 그래서 지금이라도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행동을 하기로 했어. 먼저 자신이 조장이 되려고 했어. 하지만 이미 안경잡이가 조장을 하고, 특별한 문제도 없고 연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조장을 어떻게 바꾸지? 안경잡이가 조장 일을 힘들어한다는 식으로 조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조장을 다시 뽑자고 제안을 했고, 안경잡이도 크게 개의치 않게 생각해서 다시 조장을 뽑게 되었어. 다들 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모양새가 이상했는데, 어떤 녀석이 제비 뽑기로 하자는 거야. 위기... 자신이 조장이 안 되면 어쩌지? 그런데 다행히 M이 제비 뽑기에서 조장이 되었단다.

조장이 된 M은 모든 일에 솔선수범을 하고, 아침 식사도 조원들 것까지 모두 차려서 다 같이 식사를 했어. 이렇게 하자 사수들에게도 눈에 띄게 되었어. 물론 아침 식사를 먹고 싶어하지 않은 조원들을

강제로 집합시켜서 갈등을 빚기도 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리고 아침 체조에도 참석했어. 이제 와서 아침 체조에 동참하는 M을 보고 눈총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M은 점수를 따기 위해서는 그런 눈총은 모른 척 했어. 봉사 활동을 나가서도 다른 때보다 더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해서 일을 했어.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몰래 사수들의 사무실에 가서 그 서류를 확인했는데 여전히 13번만 ˝X˝ 표시가 되어 있었어. 걱정은 더 쌓여갔어. 왜 M은 자신을 13번이라고 생각했을까...

..

 

2.

더욱 조장으로써 역할을 열심했어. 그러다 보니 권위의식이 생겨서 조원들에게 강압적이면 명령을 내리기도 해서 조원들과 갈등은 더 심해졌단다. M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을 험담하고 오버해서 솔선수범 일했어. 그리고 또 밤에 몰래 사수들 사무실에 들어가서 그 서류를 훔쳐 보았단다. 하지만 여전히 13번은 ˝X˝ 표시가 되어 있었어. 망상에 사로잡힌 M은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어. 캄캄한 밤에 복도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는 깜짝 놀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깨진 벽돌로 그를 공격하고, 그 길로 연수소를 도망쳐 버렸단다.

연수 종료를 2일 남겨두고 그렇게 망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연수생을 공격하고 도망친 거야. 집으로 돌아온 M은 6개월 동안 방에서 칩거했어. 그리고 자신이 공격한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더 이상 방에만 숨어 지낼 수 없고 죄책감에 살아갈 수 없어서 그는 경찰서에 가서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자백했으나, 경찰은 그를 미친 놈 취급하며 내쫓았어.

....

다시 M은 직장을 구하려고 길을 나섰으나, 이제 면접기피증세가 있어서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어.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연수생 동기를 만났어. 그리고 그 연수생이 알려준 사실들... 그 연수는 3차 면접이 아니라, 최종 합격이 확정된 신입사원 연수였다는 것이야. 도대체 M은 어쩌다 그 연수를 3차 면접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누구 한 이야기를 오해했던 것 같구나. 그리고 M이 보았던 서류, 연수생을 평가했다고 생각하는 서류... 그것은 사실 청소상태를 체크한 것이고, 문제의 13번 항목는 연수 이틀째부터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전자레인지라는 거야...

거참, 허망하구나. 그리고 M이 그 캄캄한 밤에 복도에서 벽돌로 내려친 것은 사람이 아니고 창문으로 잘못 들어온 새였다는구나. 그 연수생은 새를 돌로 치고 연수소를 도망간 사람으로 M을 기억하고 있더구나. M은 수많은 면접을 통해서 합격에 대한 불안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강박증까지 생긴 것이 아닌가 싶구나. 이 경쟁 시대에 경쟁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충분히 정신적으로 쇠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사회는 왜 경쟁을 원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없는가? 너희들도 경쟁사회에서 고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빠의 마음도 불편하더구나.

....

박지리 님은 이 소설을 통해 과도한 경쟁에 대한 사회 문제를 풍자적으로 잘 이야기해주신 것 같구나. 이번 작품도 좋았어.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관객을 위한 의자나 배우를 위한 무대 없이 오직 빛의 밝기로만 경계를 만드는 원형 극장 안에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다.

책의 끝 문장: 어두웠던 나머지 공간에도 빛이 들어오자 관객을 위한 의자나 배우를 위한 무대 없이 오직 빛의 밝기로만 경계를 만들었던 원형 극장은 다시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 웅성웅성 대는 목소리들만 되살아난다.


뭐야, 대체 왜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왜 다들 나를 피하는 거야? 혹시 얼른 불이 들어오기만 바라고 있는 거야? 당신이 서 있는 곳에 불이 켜지는 순간 내가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웃기지 마, 난 사라지지 않아. 나는 인간이야. 불이 켜진다고 해서 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사라질 수 있겠어? 당신은, 당신은 불이 켜지면 사라지는 존재인가? 어? 그런 허깨비야? 나도 아니야. 나는 사라지지도, 어디로 가지도 않아. 길을 알아낼 때까지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해. 그러니 제발 좀 말해 줘. 우리, 이렇게 가까이 있잖아. 내 침이 당신 코에 튈 정도로 가까이 있잖아. 내 침이 당신 코에 튈 정도로 가까이 있잖아. 여기가 어디야, 응?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도대체 왜 난 혼자만 이렇게 절규하는 거야? 당신들의 지금 그 눈빛은 대체 뭐냐고.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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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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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사람은 누구냐는 상식 문제는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문제라고 생각해. 정답은 마젤란이잖니. 아빠가 어렸을 때도 이런 저런 퀴즈에 많이 나왔던 문제였던 것 같구나. 그런데 마젤란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구나. 아빠는 마젤란이 어느 사람인 줄도 몰랐거든. 그렇다고 아빠가 그런 마젤란이 궁금해서 오늘 소개할 책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을 읽은 것은 아니란다. 이 책의 지은이가 아빠가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라서 이 책을 읽은 거야.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이고, 특히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평전들이 좋았단다. 그래서 이번에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을 읽은 거야.

이번 책 또한 무척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마젤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저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서는 마젤란이란 사람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 하기야 그러니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시도했겠지. 이따가도 이야기하겠지만 마지막에 방심만 하지 않았다면 세계일주의 마무리까지 했을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쉽더구나. 자, 그러면 마젤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

이 책의 첫 문장 “일의 발단은 향료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의 향료는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 없으면 안 되는 상품이었단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 이후 인도와 이어지는 육로길이 막히게 되었고, 육로가 있어도 중간 중간에서 향료에 대한 엄청난 세금이 붙으면서 유럽 사람들은 육로길이 아닌 바닷길을 찾기 시작했단다. 그것이 대항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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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십자군전쟁은 종종 낭만적으로 묘사되듯이, 이교도로부터 성지를 탈환한다는 단순히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의도만은 아니었다. 이 유럽 최초의 기독교연합은 한편으로 홍해를 가로막는 봉쇄의 사실을 깨부수고자 했다. 유럽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위해 동양과의 무역의 길을 열어놓고자 하는 목적의 몸짓이었다. 그러나 이 충돌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들은 이집트를 이슬람교도들에게서 빼앗아오지도 못했으며 이슬람교도들은 여전히 인도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인도로 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또 다른 길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싹튼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바로 바다였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바르롤로뮤 디아스와 바스코 다 가마가 남쪽으로, 그리고 카보트가 라브라도를 향해 북쪽으로 떠날 수 있었던 대담함은, 그 무엇보다도 서양을 위해 간세도 물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고 인도로 갈 수 있는 자유로운 항로를 발견해서 이슬람의 패권을 꺾어놓고 말겠다는 분명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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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포르투갈은 유럽의 변방이었는데, 1394년에 태어난 엔리크 왕자에 의해 전세를 바뀌게 된단다. 엔리크 왕자는 다른 책에서는 엔히크 왕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엔리크 왕자로 번역했단다. 엔리크 왕자는 포르투갈이 해양을 탐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원을 했단다. 항해 학교를 세우고, 조선술, 천문학에 많은 지원을 했어. 그의 이런 노력은 성과로 나타나는데 처음으로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항로를 개척한 바르톨로 뮤 디아스도 포르투갈 사람이고, 인도까지 바닷길을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도 포르투갈 사람이었단다.

이런 분위기에서 콜럼버스가 인도 가는 길을 개척하겠다고 포르투갈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당시 왕이었던 주앙 2세는 콜럼버스의 요청을 거절을 했다는구나. 주앙 2세는 엔리크 왕자 같은 감각이 없었나 보구나. 결국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국에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일로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의 또 하나의 주역이 되었단다.

이런 대항해 시대가 한창이던 1480년경에 포르투갈에서 마젤란이 태어났단다. 마젤란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고 하는구나. 마젤란이 기록에 처음 출현하는 것은 마젤란이 24살 때 포르투갈 함대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한 것이래. 그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고 아프리카에서 치료를 받은 후 1507년 리스본에 귀향을 했다는구나.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함대를 타고 인도로 향했고 1509년 처음으로 인도에 도착했다는구나. 유럽에서 인도를 가려면 아프리카를 삥 돌아가야 하니 누군가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당시에는 수에즈 운하도 없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서쪽 바다로 나아가면 더 빠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콜럼버스도 그런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가 신대륙을 발견했으니 말이야.

…

아무튼 마젤란은 인도에서 7년 동안 함대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하고 여러 차례 위기를 맞고, 부상도 당했지만 끝내 살아남았단다. 마젤란은 전쟁에서 여러 가지 성과도 내어 상사로부터 신뢰를 받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장교로 진급하기도 했어. 인도에서 7년의 생활을 마치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는데, 그 사이는 리스본은 번창하여 큰 도시로 변해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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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그는 이미 배가 벨렘에 입항할 때부터 놀라기 시작하였다. 바스코 다 가마가 출항할 때 그를 축복해주던 낡고 나지막한 교회 대신 이제 인도의 향료 덕분에 부강해진 조국의 첫 번째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하고 화려한 대사원이 완성되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변화가 느껴졌다. 예전엔 통행도 뜸했던 강에는 이제 돛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고, 강변의 조선소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더 장대한 함선들을 만들어내느라고 일꾼들이 부지런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항구에는 깃발은 깃발끼리, 돛대는 돛대끼리 자국선이건 외국선이건 간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고, 정박소와 물품창고는 터질 것만 같았다. 새로 쌓아올린 웅장한 왕궁들 사이로 뻗은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북적대고 있었다. 해외상관과 환금창구, 중개업소에는 갖가지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인도를 약탈한 덕분에 리스본은 이제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소도시에서 세계적인 도시요, 사치와 향락의 도시가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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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은 리스본에 잠깐 머물다가 마젤란은 다시 해군으로 모로코 전쟁에 참여했다가 다리 부상을 입었어. 그런데 양떼를 적군이 넘겼다는 누명을 쓰고 갇혀 있다가 탈영해서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왔단다. 마젤란은 왕을 만나 자신의 주장했으나 왕은 그를 믿지 않았어. 마젤란은 다시 모로코로 와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명예를 회복하고 정식으로 군대를 제대했단다. 포르투갈에 돌아와서 그는 항해를 준비했어. 먼저 신대륙을 탐험한 사람이 작성한 항해보고서를 봤는데, 그 보고서에는 대서양과 나중에 태평양이라고 부르게 되는 바다를 잇는 뱃길이 있다고 했어.

마젤란은 그 통로를 찾아서 인도를 가면 아프리카를 돌아서 가는 것보다 빠르다고 생각했어. 그 경로로 가서 인도의 향료를 가지고 오면 자신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여 국왕을 만나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어. 음, 포르투갈 국왕은 또 한번 좋은 기회를 걷어차는구나. 마젤란은 자신이 다른 나라를 위해서 일해도 되냐고 물어보았는데, 국왕은 그러라고 답변을 받았단다. 그때 마젤란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어.

...

 

2.

마젤란은 1년 뒤 스페인으로 망명을 했어. 마젤란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뱃길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스페인 왕에게 후원을 받으려고 했으나 스페인 왕을 만날 기회가 없었지. 그런데 어떤 상인이 마젤란의 이야기를 듣더니 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여 그 상인이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당시 스페인 왕인 칼 5세와 마젤란을 만나게 해 주었단다. 칼 5세는 결단력이 부족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젤란을 지원하는 것은 확실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대.

마젤란이 칼 5세를 잘 설득했나 보구나. 그렇게 지원 약속을 받은 마젤란은 항해 준비를 했어. 선원들을 모집할 때는 향료 군도를 떠나는 항해라고만 이야기했어. 향료 군도에 가서 향료를 얻을 수 있어 다들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항해 준비를 하면서 실무자들과 갈등이 있기도 했어. 항해가 얼마나 길어질지 정확히 모르니 식량 등을 얼마나 확보하고 선원들을 얼마나 모집해야 할지 어려웠을 것 같구나. 이렇게 마젤란이 항해 준비를 하고 있는 소식이 포르투갈에도 전해졌고, 포르투갈 정부는 마젤란의 계획을 알고 격분했다는구나. 이런 경우가 발생할까 봐 마젤란이 사전에 다른 나라를 위해 일해도 되냐고 물어보았던 것 같구나. 포르투갈 영사가 마젤란을 찾아와 협박도 하고 회유도 했고, 스페인 왕을 찾아가 항의도 했단다. 그렇게 포르투갈 영사에서 법석을 떨다 보니, 오히려 마젤란의 존재감만 부각이 되었어. 스페인 왕도 더욱 마젤란을 보호하고 포르투갈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단다.

1년 6개월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265명의 선원들, 다섯 대의 함선이 준비되었어. 각 함선의 함장들을 마젤란이 직접 고르면 좋겠지만, 자신의 배와 다른 한 배에 자신과 함께 망명한 사촌을 함장으로 임명하고 나머지 세 척은 스페인 왕이 임명한 스페인 사람들이었단다. 마젤란을 감시하는 역할도 있었던 것 같아. 그 스페인 함장들은 마젤란을 좋게 보는 사람이 없었단다. 마젤란은 1519년 9월 20일 드디어 대서양으로 출발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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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519년 9월 20일 화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세계사적으로 기억되어야 할 날이었다. 닻이 올려지고, 돛이 펄럭이고, 대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육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용감하고, 가장 원대한 탐험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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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은 신대륙과 오가는 항로는 개척되어 있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마젤란이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 항로를 되돌아간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것으로 다른 함장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대. 처음부터 쉽지 않은 길이로구나. 결국 부사령관 후안 데 카르타헤나가 저항을 하며 반기를 들었어. 마젤란의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부여 받은 절대 재판관의 권한으로 부사령관을 반란자로 구속시켰단다. 마젤란이 그렇게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선원들은 다들 놀랬어. 일정보다 한참 지난 출발한지 11주만인 12월 13일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단다.

...

그런데 마젤란이 출발하기 전 포르투갈에서 본 항해보고서에서 본 ‘파소‘가 예상했던 위치에 없었어. ‘파소‘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통로를 말한단다. 마젤란은 자신이 예상했던 위치에 ‘파소’가 없어서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는 만과 강을 모두 점검하였어. 그러다 보니 또 시간은 지체되었어. 자연스레 선원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 이번에는 스페인 함장들이 함께 반란을 일으켰단다. 마젤란의 사촌이 함장으로 있는 함선을 약탈한 후 마젤란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어. 숫자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오랜 전쟁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젤란은 기습 공격으로 반란을 제압했단다. 반란의 주동자인 케사다를 처형시키고 다른 함장들과 반란을 주도했던 신부는 해변가에 버리고 떠났단다. 반란에 참가했던 나머지 선원들은 강제노역을 시켰어.

....

두 번째 함선인 정찰 중에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이제 함선은 네 척이 되었어. 마젤란은 여전히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통로를 찾는데 노력을 했지만, 찾지는 못했고, 이것으로 시간은 계속 지체되었어. 그리고 출항한지 1년도 훨씬 지난 1520년 10월 25일, 드디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해협을 찾았단다. 나중에 이 해협은 마젤란 해협이라고 불렀단다. 마젤란은 다른 함장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지 물어보았어. 계속 항해를 하느냐, 아님 귀환 하느냐... 어떤 사람이 해협을 찾았고 일정도 많이 지체되었으니, 일단 스페인에 복귀했다가 재정비를 하고 다시 오자고 했어. 하지만 마젤란은 ‘답정너‘였어. 그는 귀환하자는 의견에 반박하고 앞으로 계속 가기로 결정했단다. 왜 물어본 거야?

그런데, 어느 날 함선 한 대가 사라졌어. 한참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어. 그 배는 알고 보니 몰래 스페인으로 돌아간 것이란다. 마젤란의 계획이 무모해 보였던 거야. 하필 사라진 배가 가장 큰 배이고 식량도 가장 비축된 배였기 때문에 남은 일행들에게는 큰 손실이었단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만 더 가면 인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아무도 태평양으로 그렇게 넓고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거야. 마젤란도 마찬가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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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1)

1520년 11월 22일, 그의 명령에 따라 배는 정어리강의 항만을 떠났고, 며칠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였다(앞으로 마젤란 해협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해협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젤란은 캅 데세아도(열망의 곶)라고 명명한 곶 뒤쪽으로 유럽의 배가 아직 항행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바다가 끝없이 넘실대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서쪽 수평선 뒤로 보물의 섬인 향료군도가 놓여 있을 것이었다. 그 뒤로는 동양의 제국들, 중국, 일본과 인도가 있을 것이고 계속해서 가다 보면 고향인 스페인과 유럽대륙이 나타날 것이다. 지구가 개벽한 이래 그 누구도 통과해보지 못한 대양으로 돌진하기에 앞서 한 번 더,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했다. 1520년 11월 28일, 닻을 올리고 깃발이 올려졌다. 축포를 쏘아올리면서 세 척의 작은 배는 마치 생사의 결투를 앞둔 투사가 위대한 적수에게 인사하듯 낯선 바다에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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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젤란은 나머지 세 척을 정비하고 길을 떠났단다. 그야말로 그 바다는 아무리 가도 바다만 계속되었어. 그들 생각하기를 이미 한창 와서 지팡구(일본)을 지나쳤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직 3분의 1도 못 간 상황이었단다. 이제는 굶주림과 싸움이었어. 이렇게 항해가 길어질 거라 생각을 못했으니, 식량이 금방 떨어지고 말았어. 선원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소가죽으로 만든 돛 줄도 먹었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단다.

계속된 항해 끝에 마젤란 일행은 1521년 3월 16일, 드디어 필리핀 사마르 제도에 도착했단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드디어 직접 증명을 한 거야. 마젤란은 세부 섬의 왕을 만나 접견했어. 세부의 왕은 마젤란 무리에 겁을 먹고 그들을 환대했단다. 하지만, 인근의 막탄 섬에 있는 라푸라푸는 그들을 환대하지 않고 저항하고 전투 자세를 보였어. 마젤란은 그들을 얕보고 60여 명의 사람들만 데리고 갔단다. 갑옷과 총을 너무 믿었어. 사실 부하들 대다수는 이미 지체한 시간도 너무 많이 이 탐험에 지쳐 있었던 상황이라서, 막탄 섬에 가지 말고 얼른 향료 군도에 가서 향료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했단다. 하지만 마젤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어. 마젤란 일행은 막탐 섬의 부족들의 어마어마한 원주민들과 맞서야 했어. 1521년 4월 27일 결국 마젤란은 허무하게 그들에게 죽고 말았단다. 위대한 탐험가이자 뱐란도 제압하고, 망망대해의 고난을 다 이겨내고 새로운 바다를 발견하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던 마젤란의 죽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망했단다. 그렇게 준비가 철저했던 사람이 그렇게 방심할 수 있단 말인가.

....

마젤란이 죽고 나서 나머지 사람들도 지휘관을 잃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어. 세하웅과 바르바사가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었단다. 하지만 그들도 원주민들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세하웅의 친구이자 부하인 카르발요가 배신을 하고 세하웅과 바르바사를 버리고 도망을 갔어. 그래서 세하웅과 바르바사도 원주민한테 죽고 말았단다.

카르발요가 사령관이 되었어. 그는 마젤란이 원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원칙을 깨고 약탈을 일삼기 시작했단다. 그러자 다른 승무원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카르발요도 사령관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단다.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 마젤란의 측근인 고메스 데 이스피노자와 대서양에서 반란에 참여했던 이력이 있는 세바스티안 델 카노가 함장을 맡게 되었어. 남아 있는 선원들의 숫자로 보았을 때 함선 세 척을 모두 운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한 대는 태워 버렸단다. 이제 남은 배는 빅토리아 호와 트리니다드 호 두 척뿐.

그들은 드디어 향료 군도에 도착을 했단다. 그들은 고국에 가져갈 많은 향신료들을 배에 싣고 드디어 고국 스페인으로 갈 준비를 했단다. 그런데 트리니다드 혹 고장이 나서, 고메스 데 에스피노자 함장과 절반의 선원들은 배를 고치기 위해서 남고, 빅토리아 호만 스페인으로 출발했단다. 하필 반란에 참여했던 세바스티안 델 카노가 함장으로 있는 배였다니… 아직 수에즈 운하가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라 그들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서 가야 하니 그 길 또한 만만치 않은 항로였단다. 또 다시 식량 부족과 물 부족에 시달려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결국 스페인을 출발한 지 3년에서 12일이 모자란 1522년 9월 8일 스페인에 도착했단다. 처음 출발할 때는 265명이었는데 18명만 살아서 스페인에 도착을 했어. 그리고 마지막 사령관은 마젤란의 배신자였던 세바스티안 델 카노였는데 모든 영광을 그가 다 차지했단다. 2년 전 마젤란을 배신하고 먼저 스페인으로 돌아온 산 안토니오 호의 사람들도 델 카노의 도움으로 모두 명예회복을 했단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승리자이고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잖니.

....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까지 있었던 마젤란과 항해기록자 피가페타의 항해일지가 사라져버렸어. 이곳 또한 스페인 정부가 자신들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일지를 일부러 없앴다는 소문이 돌았단다.

...

마젤란이 중도에 허망하게 죽긴 했지만 그가 최초로 지구를 일주하고 태평양을 발견한 업적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기까지 보여준 용기와 결단력은 높이 칭송되었다고 한다. 그는 안타깝게 죽었지만 후세에 영웅과 신화로 남았단다.

....

마지막으로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 항해기록자 피가페타는 항해하는 3년 내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지를 쓰고 그날의 요일도 기록했는데 분명 수요일이었는데,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을 했을 때 그곳은 목요일이라고 했어. 피가페타는 하도 이상해서 일지를 다시 점검했지만 빼먹은 날은 없었어. 당시 세계일주를 처음 하다 보니, 자전 방향으로 세계일주를 했을 때 지구 한 바퀴를 돌면 하루가 사라진다는 것을 몰랐던 거야. 나중에 이런 현상 때문에 날짜 변경선도 만들고 그랬나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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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284)

베르데 곶에서의 체류가 시간도 짧고, 위험하기도 했지만 씩씩한 기록자 피가페타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식료품을 사려고 해변까지 갔다온 선원들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는데, 육지는 목요일이라는데 배에서 수요일이 틀림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거의 3년 동안 매일같이 일지를 적어온 파가페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그렇게 해서 한 주가 지나고, 1년이 지나도록 날짜를 계산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하루를 모르고 지나쳐버린 것일까. 그는 자기처럼 매일 선박일지를 쓰는 키잡이 알보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의 기록에도 아직 수요일이라는 것이었다.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루가 달력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베르데 곶에서 처음으로 관찰한 새롭고 중요한 이 현상은 전생애에 걸쳐 그를 흥분시키고 몰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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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젤란 평가를 발췌하면서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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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세속적인 이익이 어떤 업적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를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의식을 고양시키는 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젤란의 행위는 당시 모든 행위들을 능가한다. 그의 명성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라면 다른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이념을 위해 수천, 수십만의 목숨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라, 단 하나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토록 영웅적인 자기희생으로 인해 미지의 세계와의 성스러운 전쟁을 위해 떠난 다섯 척의 보잘것없고, 힘없고, 외로운 배들의 찬란한 용기가 영원히 잊히지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려 했고, 함대의 마지막 배 한 척이 이를 완수했다는 점에서 마젤란 자신도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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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얼마 전에 책더미에서 어떤 책을 찾다가 아빠가 오래 전에 산 베른하르트 카이의 <위대한 항해자 마젤란(전 2권)>이란 책을 발견했단다. 그렇지, 아빠가 이 책을 샀었구나. 그때는 마젤란에 대해 궁금해서 샀던 것 같은데, 책더미 속에 있다 보니 ‘out of sight out of mind’가 되었던 것 같구나. 이 책도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진짜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일의 발단은 향료였다.

책의 끝 문장: 한 인간이 자신의 짧고 덧없는 일생을 바쳐 수백 세대를 거쳐 오는 동안 단지 꿈에 불과했던 것을 현실이 되게 하고 스러지지 않을 진실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탐험의 시대는 거대한 배은망덕의 시대였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위해서 전세계를 정벌해나간 저들 정복자들이 국왕에게 받은 대가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콜럼버스는 사슬에 묶인 채로 세비야에 돌아왔고, 코르테츠는 왕의 총애를 잃어버렸고, 피자로는 살해되었으며, 남태평양을 발견한 누녜즈 데 발보아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포르투갈의 투사이자 시인인 카모엔은 비열한 시골 관리들에 의해 누명을 쓰고 동지인 위대한 세르반테스처럼 몇 달, 몇 해를 오물통 같은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카디스와 세비야의 골목길엔 귀향 선원들과 병사들이 불구가 되어 피폐해진 모습으로 열병에 시달리면서 거지떼처럼 헤매고 있었다. - P72

더 이상은 마젤란도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위해 바랄 것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좀더 경이롭고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아직 어린 칼 5세는 말하자면 소극적이고 결단력이 부족한 성격이었는데, 성격과는 달리 이 원정대의 항해에 있어서는 열정적인 후원에 나섰다. 마젤란이 가졌던 남자다운 확고한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이 원정의 대담한 때문인지, 무엇인가가 이 젊은 군주에게 특별한 열정을 불러일으켰음이 분명했다. 매주마다 진척사항에 대해 보고하도록 하는 등 누구보다도 그 스스로가 가장 장비와 항해 준비에 열심이었다. 때문에 일에 장애가 생길 때면 마젤란은 국왕에게 알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왕의 서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평소에는 의지가 박약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 이 황제는 그의 긴 통치기간 동안 거의 유일하게 굳건한 신의를 지키며 이 위대한 이념을 실천해나갔다. - P115

그리고 이 순간 마젤란은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자신의 업적이 완성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동쪽에서 출발하여 그가 12년 전에 도착한 바 있던 말라야 언어권의 한 변두리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토록 열망하는 향료의 섬에 도달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 섬을 찾게 되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곳을 찾던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업적의 본질은 향료의 섬이 아니라 누구든지 바다를 따라 계속 항해하면, 그것이 태양이 지는 쪽이든 뜨는 쪽이든 상관없이 자기가 출발했던 지점에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증명했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철학자들이 추측해 왔고, 꿈꾸어 왔던 일이 한 인간의 용기에 의해 믿을 수 있는 사실이 된 것이다. 진정으로 지구는 둥글었다. 한 인간이 지구를 둥글게 한바퀴 돌아온 것이다. - P235

사령관이 누군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제는 주로 주로 그를 겨냥했다. 벌써 두 번이나 투구를 머리에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사령관은 몇 명 남지 않은 병사들과 함께 용감한 기사로서 더 이상 후퇴하려 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잘 지켰다. 이렇게 한 시간 이상을 대치해서 싸웠는데, 마침내 인디오 한 명이 사령관이 얼굴에 갈대로 만든 투창을 던졌다. 사령관은 노하여 이 공격자의 가슴을 창으로 찔렀다. 창이 찔려 죽은 사람의 몸에서 빠지지 않자 사령관은 이제 칼을 뽑으려 했지만 오른팔이 창에 찔려 마비가 되었기 때문에 절반 정도밖에 뽑지 못했다. 이를 보고 적군은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 중 하나가 단칼에 왼쪽 다리를 내리치자 사령관은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인디오들은 모두 그에게 덮쳐 창이나 다른 무기들을 가지고 그의 몸을 마구 찔러댔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자 빛이요 위안이었던 지도자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 P258

이제 하룻밤, 하루 낮, 이제 하룻밤만 지내면 된다. 단 하룻밤. 그리고 마침내(모두들 갑판으로 뛰쳐나가서 행복감에 전율하며 한 덩어리로 얼싸안았다) 산루카에서 바다와 만나는 구아달키비르 강이 육지 한가운데로 은띠처럼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3년 전 265명이 마젤란의 지휘 아래 다섯 척의 배를 타고 출발했던 것이다. 18명의 선원들은 비틀거리면서 배에서 내리자 간신히 무릎을 꿇고 이 딱딱하고도 고마운 고향의 흙에 입을 맞추었다. 1522년 9월 6일, 항해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업적이 마침내 그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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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낮이건 밤이건 들려오는 징과 피리와 꽹과리 소리에 남측은 상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아 피가 나올 때까지 제 귓속을 후벼 파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점잖지 않은 욕설을 뱉어댔다. 대중 음악의 세례 속에서 자라난 젊은 미군들이 특히 힘들어하여 ‘박자, 저 염병할 박자 좀 어떻게 해줘’하고 비명 지르다 까무러치곤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흥겨운 로큰롤 리듬에 길들여 있던 그들에게 징지쿵삐리딱징땡땡 하는 엇박자 굉음은 그저 고문이었다. 이 음파 고문에 남측은 집단 공황을 일으켰다. 숫자만 많았다 뿐이지 개별 전투력은 허접했던 중공군이 고작 악기 연주-여보게 그게 과연 연주인가-로 무섭게 기세를 올리는 중이었다. 당장 뾰족한 수가 필요했다.


(100)

하지만 그게 바로 전쟁이었다. 총알이 떨어져 아무 작대기나 들고 싸우다 수류탄이라도 하나 생기면 세상을 다 얻은 양 우쭐해져서 상대편 모인 곳으로 던졌다. 그 수류탄이 터질 때마다 부근에 있던 수많은 군인이 방사형으로 날아갔다.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꿈이 있는 이들이었다. 거기서 무시했다면 고향에 돌아가 연인을 만들고 가족을 만들고 음탕한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한 성씨의 시조도 될 수 있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 수십 명이 싸구려 화약을 채운 수류탄 하나로 신의 공에 맞은 볼링 핀처럼 쓰러졌다. 그렇게 하여 얻은 건 고작 한두 뼘의 땅인데, 사실 군인 대부분이 저 멀리 북쪽이나 저 아래 남쪽 출신이어서 철원의 험준한 땅덩어리 한두 뼘을 맹렬히 탐낼 이유가 없었다. 따져보면 이유는 딱 하나, 남북 수령 간의 사이가 안 좋아 졸개끼리 머리통 터지게 싸우는 것이었다.


(178-179)

들어라, 미개한 국민이 자유만 원한다면 한탄하던 해방 직후의 남한 지도층은 북한이 쳐들어오니 자유가 위협받는다고 난리를 쳤다. 그들은 북한을 혐오하려 자유를 내세웠음에도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에 북한을 혐오하는 척했다. 이윽고 북한이 패퇴하자 지도층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무슨 복지원이니 무슨 학원이니 고상한 이름들을 단 강제수용소를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 국민의 자유를 회수했다. 백골단이나 땃벌레나 각목부대 등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관변 정치 깡패들도 기승을 부렸다. 준공무원을 자처하는 이들 정치 깡패는 사람의 어디를 때리면 가장 아픈지, 가장 상처가 크게 나는지, 가장 오랫동안 낫지 않는지 외과 의사만큼 잘 아는 자들이었다. 다만 지도층도 정치 깡패도 박복대의 자유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박복대가 입은 미국 군복 때문이었다. 군인도 아니고 군무원도 아닌 관계로 박복대의 군복에는 계급장이 없었다. 다만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8)

인쇄란 정교하고 전문적이긴 하나 숙달된 노동자한테는 다소 지루한 작업이다. 뉴스를 물어 와 기사 쓰는 신문사와 달리 의뢰인이 써 온 글을 사용하는 것이어서 약간의 교정 교열과 판형 및 용지 선택, 조판 등 뻔한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복대는 그 무한 반복이 좋았다. 박복대는 전쟁이 터지기 전만 해도 자신이 농사를 무한히 반복하며 늙을 줄 알았다. 그에 비하면 인쇄라는 무한 반복은 몸이 더 편하고, 더 배울 게 많고, 보수도 아무튼 농사보다야 많고, 자연재해라는 예상치 못한 골탕을 먹을 일도 적고, 글씨를 연습하거나 인쇄물을 읽는 등 자유롭게 사용할 시간도 많았다. 세상에 이런 작업이 있는 줄 알았다면 천생 농부인 아버지도 당장 갈아탔을 것이다. 말은 거의 없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씩 웃어주는 황 씨, 변 씨랑 지내는 것도 좋았다. 작업 전 청소, 교정 교열, 식자, 인쇄, 작업 후 청소와 뒷정리로 이어지는 매일의 일과가 퍽 행복했다. 시간이 잘 갔다. 무엇보다도 저녁밥이 너무나 맛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갈 때마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반찬과 어떤 국이 나올까 궁금해 애가 탈 지경이었다. 한국에 있는 진미라는 진미는 모두 먹는 것 같았다. 자연히 살이 뒤룩뒤룩 쪘다. 한 해가 안 되어 80킬로그램을 훌쩍 넘겼다. 스무 살 넘은 나이에 키도 더 자라 177센티미터나 되었다. 당시 한국 남자의 평균 체격보다 많이 컸다.


(238)

들어라, 박정희 시대가 저물고 이제 세상이 좋아지나 했더니만 웬걸, 불과 두 달도 못 돼 또 다른 군인 자식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허리 좀 펴보려 했던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했다. 한복 입은 모진 할아버지를 만나 죽도록 맞고, 그놈이 가자 이때다 하고 튀어나온 군복 입은 땅꼬마한테 또 죽도록 맞았는데, 그놈도 간 후 고개를 들어보니 저 앞에 군복 입은 대머리가 해머를 질질 끌며 오는 중이었다. 그게 바로 전두환의 등장을 대하는 시민들의 심정이었다. 이놈의 군인들은 적과 싸울 땐 부리나케 도망치던 주제에 제 나라 국민 두들겨 패는 일에는 미슐랭 레스토랑 앞에서처럼 줄을 서 있는 모양이었다.


(349)

박복대는 오랫동안 모른 채 살아왔다. 상한 고통만큼 잃은 고통도 큼을 모르고, 크게 쓰러지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음을 모르고, 우리 삶이란 아찔한 상실의 연속임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나 피비린내 진동하는 화암동 계곡에 홀로 서세 된 박복대는 제 인식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조연화에게 매달렸다. 조연화는 박복대와 정반대였다. 그녀는 손쓸 수 없이 다쳐버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돌보았다. 자기 삶을 쪼개가며 간호했다. 그런 이유로 초자연적인 치유의 비밀을 알기도 전부터, 알고 나서는 더더욱, 그녀에게 박복대는 저 참담한 헌신에서 눈을 떼 잠깐이나마 쉬게 해주는 존재였다. 박복대에게 조연화가 마땅히 달려가야 할 목표였다면, 조연화에게 박복대는 숨 돌릴 수 있는 휴식이었던 셈이다. 둘이 서로에게 자신을 가져다 묶은 이유는 그처럼 달랐다. 박복대는 자신을 완전케 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조연화는 자신을 쓸모없게 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408)

부랑자의 재활을 위해 형제복지원이 있는 게 아니었다. 형제복지원의 운영을 위해 부랑자가 필요했다. 부랑자가 ‘나 부랑자야’하고 말할 리야 없겠으나 들어보면 어처구니없이 잡혀 온 원생이 너무 많았다. 집 주소를 쓰고 보호자 이름을 대고 전화번호까지 또박또박 읊어봤자 소용없었다. 용구산 공원에서 꽃을 꺾다가 잡혀 온 꼬마가 있었다.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구경하다가 잡혀 온 소녀가 있었다. 늦게까지 회사 업무를 보고는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터벅터벅 걷다 잡혀 온 남자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잡혀 온 사태를 전혀 이해 못했고, 작은 아버지가 국회의원을 했다느니 매형이 큰 사업을 한다느니 큰 소리로 바락바락 대들다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쯤에서 멈췄으면 좋으련만, 어디 두고 보자며 대놓고 이를 갈았는데 이 협박에 위협을 느낀 조장들한테 두들겨 맞아 자대 배치도 받기 전에 깨꾸닥했다. 그의 협박은 거짓말이 아니어서, 정말로 일주일 뒤에 전직 국회의원인 작은아버지와 크게 사업하는 매형이 찾아와 무덤을 파고 시신을 인수해 갔다.


(597)

아는 얼굴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많은 추억을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몰라 막막한 심정이었다. 맥이 풀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한 신부님마저 떠나자 이제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게 걱정되어 우리 다정한 신께서 박복대가 잘 아는 얼굴, 툭하면 꿈에 나오던 얼굴,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 하나를 노숙자 차림으로 창신시장 국밥집에 데려다 앉혀놓았다.


(615)

하지만 박복대는 한국전쟁은 경험했다. 북한군에게도 맞아봤고 중공군과 유엔군에게도 맞아봤고 남한군에게도 맞아봤고 깡패에게도 맞아봤고 서북청년단에게도 맞아봤고 경찰에게도 맞아봤다. 시민한테도 맞아봤고 어린애한테도 맞아봤고 자랑은 아니지만 동생과 애인한테도 맞아봤고 병 고치는 의사한테도 맞아봤고 부자한테도 맞아봤고 거지한테도 맞아봤고 외국인한테도 맞아봤고 자동차한테도 맞아봤고 젠장 곰한테도 맞아봤다. 춘천에서 맞아봤고 홍천에서 맞아봤고 서울에서 맞아봤고 이북에서 맞아봤고 철원에서 맞아봤고 대구에서 맞아봤고 광주에서 맞아봤고 삼청교육대에서 맞아봤고 형제복지원에서 맞아봤고 무슨 연구소에서 맞아봤고 깊은 산속에서 맞아봤고 자기가 사장으로 군림하는 식당에서 맞아봤다. 분명하게 맞아봤고 모호하게 맞아봤고 적당히 맞아봤고 무분별하게 맞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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