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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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책제목에 이끌려서 읽게 된 박선영 님의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이야기하려 해. 이 책은 독특한 책 제목으로 아빠가 몇 번을 책 소개를 읽어보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서 읽은 책이란다. 책 제목을 지은이가 지었는지, 출판사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잘 지은 것 같구나. 누구나 낙담을 하곤 만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고 욕심이 커서일 수도 있고, 아빠도 낙담이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일 것 같구나. 그러다 낙담을 하더라도 딱 하루치의 낙담만 하자…

오래 가지 않고 딱 하루치 정도의 낙담이라면 좋을 것 같다. 지은이 박선영 님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분인데, 한국일보에서 17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7년 전 그만둔 전직 기자 출신 작가란다. 다른 일을 하려고 그만 둔 것은 아니고 그냥 회사가 맞지 않아서 그만 둔 것 같더구나. 오랜 기간 동안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가 결국은 벗어 버린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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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말 속에서 당장 짐을 싸 도망쳐버리고 싶은 그 많은 날들을 나는 어떻게든 견뎠다. 심지어 인간들을 견디는 그 힘든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해냈다. 나는 나를 세뇌했다. 저 정도면 좋은 사람이라며, 모른 척 한 본 척, 잘 지냈다. 유머와 친화력은 내 무수한 성격적 결함들을 커버하며 조직형 인간의 장점으로 두루 각광받았다. ‘사내정치의 달인’이라는 비아냥이 들려놨을 때, 내가 울었던가 웃었던가. 쟤는 출세하려고 저런다, 누구하고나 잘 지내는 거 봐라, 저게 다 권력 획득을 위한 관리다 등등. 차라리 그런 사짜의 권력의지가 내게 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럼 분열 없이 행복했을 것인데, 못하기 싫었을 뿐인데 쓸데없이 너무 잘해버려서, 은밀히 이런 고충을 토로하면서 모두가 놀라며 믿어주지 않았던 것. 피부에 들러붙은 피복처럼 몸에 익어버린 처세. 내면과 외면의 격차. 그게 내 고통의 원천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나이에 커리어의 한복판에 주저앉아버린 원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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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두고 특별한 직업 없이 하고 싶은 것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그 동안 읽지 못했던 책도 많이 읽고, 아이들 양육에도 신경을 쓰는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하더구나.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즐거운 시간들만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 이유가 늘 낙담이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책제목도 <그저 하루치의 낙담>이라고 지은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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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한심하게 빈둥거렸던 그 긴 시간이 즐거웠다고만 할 수는 없다. 늘 낙담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해,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내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나의 미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나는 자주 낙담했다. 혼자서 학교 다릴 수 있으면 자식은 다 키운 거라던 내 계산은 완전히 빗나간 오답이어서, 두 사춘기 자녀의 양육이라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과업은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도록 나를 압도했다. 달콤했던 고독이 자각할 새도 없이 위태로운 고립으로 나를 몰아넣은 일도 흔했다. 세상에는 여전히 울 일이 많았고, 나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자인에 대해 낙담하고 또 낙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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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가 앞서 이야기하기를 이 책을 몇 번이나 사기를 망설였다고 했잖아. 그 이유가 에세이기 때문이었단다. 에세이를 안 읽는 것은 아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의 에세이는 좀 망설인단다.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읽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이 책은 에세이라는 정의를 모두 반영되어 있는 책인 것 같았어. 지은이 박선영 님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들, 기자로써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 경험한 이야기들, 그리고 이 사회를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고 생각한 것들.. 그런 것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단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칫 하면 읽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는데, 지은이는 글쟁이더구나. 글이 이렇게 조곤조곤하면서 가끔은 위트가 담겨 있어 재미있게 잘 쓰셨더구나. 아빠는 책에서 좋은 구절이 있으면 키보드로 하지만 발췌를 하잖니, 이 책은 엄청 많은 부분을 발췌했단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손으로 직접 써볼 텐데, 지금은 그런 여건은 안 되는구나.

그 중에 몇 개를 소개해 볼게. 그땐 몰랐는데, 이십 대가 인생의 봄이었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겠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십 대를 대학에서 시간을 보낼 텐데, 지은이는 대학 시절 외톨이였다고 하더구나. 문득 아빠의 대학 시절을 생각해 보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시간들이지만 한참을 멀리 와 있구나. 이제 너희들도 몇 년이 지나면 그런 시절이 올 텐데, 지은이처럼도 아니고, 아빠처럼도 아닌, 후회 없는 인생의 봄을 즐겼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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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대학이란 이상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비슷한 능력과 비슷한 야심을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사람들은 즐거운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려져 있다. 생애 첫 외톨이 체험이라는 불의의 사태가 발생한 것은 자처한 일임에도 쉽지 않았다. 고립이란 그 나이가 되어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혼자서 밥을 혼자서 강의를 듣고 혼자서 도서관에 가 있는 끝없는 나날들은 굳은 결의와 심지를 요했다. 자꾸 투항하려는 스스로를 저지하며 나는 남몰래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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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도 두 아이의  부모로써 아이들과 있었던 일들도 많이 이야기하였어. 그 중에 아래 글은 많이 공감이 가더구나. 힘들다는 표현을 다른 방식으로 하다 보니 더 힘들어지는 관계들. 그래도 너희들은 힘들다는 말을 솔직히 해주어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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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70)

세상에 상처받을 때마다 엄마를 공격하는 대신, 엄마, 힘들어요,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아직 어린 너희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지. 세상을 호의도 선의도 예의도 거칠고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집에서만 너무 많은 사랑을 퍼부은 탓에 너희들이 휘청거린다. 너희가 받는 사랑의 원천이 더 다양했더라면, 우리가 사랑의 에너지를 더 많은 곳에 골고루 나누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겠지. 꼬고 꼬고 또 꼬아놓은 기형적 문제들과 거기에서 갈리는 0.1점의 차이가 너희들 매일의 삶을 옥죄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양육고를 겪는 일도 없었을 텐데. 너희들을 달래려 그 많은 특권들을 탕진하듯 누리도록 하지도 않았을 테고, 왜 마음대로 나를 낳아 이 거지 같은 일들을 겪고 하느냐는 원망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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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을 다들 정말 치열하게 사는 것 같단다. 특히 너희들 같은 청소년들이 가장 치열하게 사는 연령대인 것 같아. 아빠가 너희들만 할 때도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한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요즘은 공부하는 양들을 보면 기겁부터 하게 되더구나.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하니 나만 안 하면 뒤쳐지는 기분도 들고… 지은이처럼 대충 살면 안 될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로 인해 대충 살기도 쉽지 않겠지. 어는 때는 법으로라도 대충 살아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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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288)

우리 좀 대충 살면 안 될까. 부모의 높은 기대로 괴로워하는 저 많은 아이들을 보라. 길거리에 나붙은 저 많은 소아청소년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의 간판을 보라. 포기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포기와 체념은 사람을 살게 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인근 학교 학생의 자살 소식을 1년이면 한 번은 꼭 들었다.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로 동네 고등학교에서 인도계 학생 한 명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학교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는 물론 동네 주민들까지 불러 상담 세션을 연 날이었다. 늦은 밤 집으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글자가 뭐라고 생각해?” 아이들이 사랑, 가족, 행복 같은 단어들을 댔다. “엄마는 포기하고 생각해. 포, 기.” 백미러에 아이들의 의아한 표정이 비쳤다. “정말 힘들 땐 포기하면 돼. 포기해도 괜찮아. 포기가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해주는데,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어. 삶.” 해보기도 전에 포기할까봐, 맨날 포기할까봐, 그게 무서워서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는 배추 셀 때난 쓰는 말”이라고 가르쳤지만, 우리가 실상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건 포기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언제 포기할 것인지,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 왜 포기하는 것인지를 가르치는 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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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문과 출신인데 이과적인 감성이 깃들 글도 깊은 생각을 갖게 만들더구나. 에너지 준위가 낮아질 때 빛이 방출한다는 화학 법칙을 통해 높은 곳에서 내려와도 괜찮다고 위안을 주는구나. 그런데 아빠는 왜 최근 줄줄 내려고 있는 주식과 환율이 생각날까? 아빠의 사라진 자산은 빛이 된 것이로구나. 오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빚이 아니고 빛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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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빛이란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떨어질 때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각각의 전자가 위치하는 궤도인 전자껍질마다 필요로 하는 에너지값이 다르고, 에너지 준위라 불리는 그 특정 값은 직선의 형태가 아니라 불연속적 계단 구조로 상승 혹은 하강한다. 전자가 낮은 계단에서 높은 계단으로 올라설 때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는 빛의 형태(광자)로 흡수된다. 반대로 높은 계단에서 낮은 계단으로 내려갈 때 그 에너지의 차이는 빛의 형태로 방출된다. 빛에 관한 이 설명이 나는 몹시 마음에 든다. 높은 계단으로 올라설 때가 아니라 낮은 계단으로 내려올 때 빛이 나오는 것이다. 올라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이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그렇지 않다. 내려와도 괜찮다. 빛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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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많은 위안을 갖게 되었어.

내려와도 돼.

실패해도 돼.

포기해도 돼.

낙담해도 돼.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

새로운 글쟁이를 알게 되어 좋았단다. 지은이 박선영 님의 신간 소식에 안테나를 켜 놓아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나는 늘 은둔과 도피의 서사에 매혹됐다.

책의 끝 문장: 그래도 괜찮다면, 엄마에게 바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욕망의 지도를 따라서 인생을 살아간다. 내 삶은 지금까지 축적해온 내 선택들의 총합이다. 나는 아마 인생을 다시 살아도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내 욕망의 나침반이 결국 같은 지도를 그리게 만들 테니 말이다. 욕망의 지번이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가 지속되지 못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온통 나 같은 사람들이다. 끝내 순정을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 아무리 날렵한 지성과 세련된 유머를 구사해도 알고 보면 우직하기 그지없는 사람들. 촌스러운 사람들. - P42

멀어진다고 해서 좋아하는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된다. 늘 청결한 욕실을 원한다면 청소라는 노력이 부단히 필요한 것처럼, 멀어지는 마음에도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햇볕을 자주 쐐줘야 한다. 가까이 있는 동안은 이러저러한 사회적치적 자력으로 인해 접시가 잘 깨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관계를 유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멀어지고 나면 이런저런 실금들이 총궐기하면서 관계의 청산을 요구한다. "이런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만 끝내라고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당신은 실금들의 궐기에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지고 싶지 않다면 전화기를 들어야 하고, 메시지를 보내야 하며, 가끔은 선물을 고르고, 편지를 써야 합니다. 내가 미처 못했을 땐 아무리 바빠도 기쁘게 연락을 받아야 하고, 정말 바빠서 연락을 놓쳤다면 반드시 콜백을 해야 하며, 예기치 못한 편지나 선물에는 산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반색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멀어지기의 기술입니다. - P89

어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더 현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슬픈 사람이며, 그것이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슬픔의 수집가가 되려면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진짜 삶을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 P106

너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다. 너에게 인색하기란 내게 몹시 어려운 일이다. 사랑이란 본디 흘러넘치는 것이고, 정량의 사랑이란 고로 형용모순이다. 베이킹용 계량법의 봉긋 솟아오른 밀가루를 자객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날로 깎아내는 그런 깍쟁이 같은 사랑은 내게 사랑이 아니다.
- P157

고통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살아남은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오만방자한 발언이다. 하지만 거기엔 일말의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이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남으라고,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세상엔 뜻밖에도 허술한 구석들이 제법 있다고 등 두드려주고 싶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말라고, 주눅 들 것 없다고, 알고 보면 뭐 중뿔난 것도 없다고 손 꼭 잡아주고 싶다. 세상에 내 자리는 없을 것 같아 잔뜩 움츠러든 소녀들, 소년들, 청년들에게 야심을 가지라고, 호랑이를 그리려고 덤벼야 고양이라도 그리는 법이라며, 힘차게 등 떠밀어주고 싶다. - P193

나는 낭비된 여행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행은 나를 성장시켰고, 나는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 방랑벽을 선택해 또다시 여행들을 탕진할 것이다. 누구에게든 여행에 탕진된 한 시기는 있는 편이 좋다는 생각한다. 젊어서 할 수 없었다면 나이 들어도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 삶을 구원한다는 그런 낭만적 생각은 아무 다시는 갖지 않을 것 같다. 내겐 결핍들을 축적해 갈망으로 변환시키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에 쫓겨, 현실이 싫어, 그저 떠나는 것에만 강박적으로 매달렸던 미친 시간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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