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10)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게 그렇게 크게 고통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이다.

스무 살이 좀 지났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런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그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여러 번 뼈아픈 타격을 받고, 기만당하고, 오해받고, 또 동시에 많은 이상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30)

옛날 옛날에 아주 마음씨 착한 산양이 살고 있었단다.”

멋진 첫마디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씨가 착한 산양을 상상해 보았다.

산양은 항상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걸고 헉헉거리면서 돌아다녔지. 그런데 그 시계는 너무 무거운 데다가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도 않았어. 그래서 친구인 토끼는 이렇게 물었지. ‘이봐, 산양, 왜 자네는 가지도 않는 시계를 늘 목에 매달고 다니는 건가? 무겁기만 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걸 말이야.’ 산양은 그야 물론 무겁지. 하지만 익숙해졌거든. 시계가 무거운 것에도, 움직이지 않는 거에도 말이야하고 대답했지.”

(62)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고 3번도.”

그녀는 잠자코 이번에는 두 장의 LP를 들고 돌아왔다.

글렌 굴드와 박하우스, 어느 쪽이 좋아?”

글렌 굴드.”

(116-117)

어떤 신문 기자가 인터뷰 중에 하트필드에게 물었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 월드는 화성에서 두 번 죽고, 금성에서 한 번 죽었습니다. 이건 모순 아닙니까?”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우주 공간에서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알고 있나?”

아뇨,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도 모릅니다.”

기자의 말에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걸 소설에 쓴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123)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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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9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에 울집 강아지 ‘막둥이’가 대여해온 책을 갈기갈기 찢은 책입니다 ㅋㅋㅋ

bookholic 2018-12-19 22:24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그의 데뷔작이라고 하는 소설을 한번 읽어봤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두어 권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들도 하루키를 좋아하는군요..^^

카알벨루치 2018-12-19 22:34   좋아요 1 | URL
그노무 시키는 제 첨이자 마지막 강아지였습니다

하루키를 젊을땐 맹목적으로 좋아했는데 <쾌락독서>를 읽으면서 하루키에 대해 재고해보기도 하고 ...문유석 판사의 생각도 보게 되고,

하루키의 다른 소설은 몰라도 <기사단장죽이기>의 집필동기나 의도는 그냥 너무 탁월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더 좋아하게 되는데, 하루키 자신도 자신의 소설들의 어떤 목적이나 이유를 생각치않고 막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마치 오늘 제가 막 읽은 김중혁의 <나는 농담이다>처럼, 농담처럼 소설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시간의 검증이 지난후에 하루키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는 모르겠네요 노벨문학상 후보 운운하는 <기사단장죽이기>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두서가 없네요 암튼 결론은 열독을 응원합니다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19 22:53   좋아요 1 | URL
아참, 서재의 달인 되신거 축하인사 못 드렸네요 ㅎㅎ 축하합니다 ^^

bookholic 2018-12-19 23:22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서재의 달인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카알베루치님의 글도 잘 쓰시지만,
편집이 유명 잡지보다도 뛰어나십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연말연시 되십시오~~~

카알벨루치 2018-12-19 23:34   좋아요 1 | URL
못 볼꺼 다 보고 계시군요 ^^감사합니다 그 찬사 잊지 않겠습니다 황송합니다요~

서니데이 2018-12-19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bookholic 2018-12-19 22:27   좋아요 1 | URL
앗....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저에게 큰 힐링이 되어주는 곳이라 자주 왔을 뿐인데 ‘서재의 달인‘이라는 칭호까지 주었네요...^^
서니데이님의 디테일하며 파스텔톤의 글들도 저에게 큰 힐링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더불어 서니데니님도 서재의 달인이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9-10)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즘의 깡마른 내 몸을 보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권투를 배운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였다. 선수로 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취미생활이나 체력단련을 위해 배운 것도 아니었다. 에두아르마네는 열다섯 살을 두고 세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싶은 나이라고 말했다. 꼭 그런 기분이 드는 시절이었다. 나는 늘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그 분노의 정체는 대체로 터무니없거나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25)

이게 잽이라는 거다. 어깨와 주먹에 힘을 빼고, 툭툭, 주먹으로 치는 게 아니라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빨리 꺼내온다는 느낌으로 팔을 뻗는 거야. 툭툭, 스텝을 밟으면서 기계적으로 반복적으로, 툭툭, 발의 움직임을 따라 몸에 리듬을 타면서, 툭툭, 상대가 짜증이 나도록, 상대가 초조해지도록, 상대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가 차오르도록 툭툭, 계속해서 날리는 거야. 그럼 알아서 무너져. 잽으로 다 무너뜨린 다음 한 방에 보내는 거지. 해봐.”

(26)

링이건 세상에건 안전한 공간은 한 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사람들은 독기나 오기를 품으라고 말하지. 마치 싸움을 할 때 독기를 품으면 훨씬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하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뜨거운 것들은 결코 힘이 되지 않아. 그렇게 뜨거운 것들을 들고 싸우면 다치는 건 너밖에 없어. 정작 투지는 아주 차갑고 조용한 거지. 상대방은 화가 나 있어. 네가 자기 땅에 함부로 들어왔으니까.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으니까. 상대방은 아주 뜨거워졌지. 하지만 너는 차가워. 너는 그저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가져오고 있는 중이니까. 툭툭, 방울토마토 하나. 툭툭, 방울토마토 두 개. 툭툭, 방울토마토 세 개. 상대방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여전히 방울토마토를 가볍게 가져올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거지. 싸움은 그렇게 잔인간 거야. 어때? 너는 끝없이 잽을 날리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163)

통두사님! 그것은 띄엄띄엄 정신이 아니에요. 띄엄띄엄 정신은 뭘 하기는 하는데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좀 띄엄띄엄 하자는 것인데 통두사님은 아주 퍼져 있잖아요.”하고 통두사의 말에 끼어들었다. 통두사는 약간 뜻밖이라는 듯이 야쿠르트님도 이런 말을 다 할 줄 아시네, 하며 껄껄 웃었다. 이어 통두사는 야쿠르트님의 지적은 참으로 좋은 지적이지만 그것은 띄엄띄엄 살기 운동의 정신을 너무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두사의 견해에 따르면 미시적 입장에서 띄엄띄엄 살기 운동의 정신이란 한 개인이 너무 열심히 말달리려는 사람들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에 자기처럼 전혀 말달리지 않는 백수계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 말달림의 진행 속도를 떨어뜨려서 사회 전체를 띄엄띄엄 발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5)

, 아침에 마시는 맥주 좋아. 좋은 사람들이랑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서 마시는 맥주도 좋은데, 맥주라면 역시 밤새워 일을 끝낸 다음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가 최고지. 너희들은 출근해라. 나는 이제 맥주 마시고 잔다. 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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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8-12-19 0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주땡김

bookholic 2018-12-19 08:27   좋아요 1 | URL
아침에 출근해서 업무 전에 시원한 모닝비어 한잔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네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2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2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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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2 년 전에 재미있게 읽은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책이 있었어.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설마 음악에 관한 내용이라고 제목만 봐서는 추측하기 어려울 거야. 그런데 그 책은 감칠맛나게 음악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단다. 그래서 그 책을 읽고 나서 너희들 고모한테도 선물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구나. 그 책의 두번째 이야기가 있었어. 아빠는 이제서야 그 두번째 이야기를 읽어 보았단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 너희들이 이 책 제목을 보고, 그 맛있는 전복에 관한 이야기냐고 물어보았잖아.. 하하.. 그 전복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야. 바다에 사는 전복이 아니라 뒤집어 엎는다는 뜻의 전복이란다. 음악의 역사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기존의 음악 세계를 확 바꿔 놓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라고 짧게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첫번째 이야기의 강렬함 만큼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두번째 이야기도 역시 지은이 강헌 특유의 입담으로 재미있는 음악의 에피소드를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음악과 뮤지컬 영화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요즘은 제목만 알면 바로 검색창에 두들기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책을 읽다가 듣고 싶은 음악이 생기면 바도 찾아서 들으면서 책을 읽곤 했단다. , 그러면 어떤 전복과 반전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볼까?

 

1.

러시아 5인조의 이야기가 맨 처음 등장하는구나. 러시아 5인조는 예전에 읽은 풍월당 박종호님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이들인데, 이 책에서 만나니 반갑더구나. 러시아 5인조는 민족주의 음악가들로 유명한데, 그런 러시아 5인조 같은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조선 음악가 동맹.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단체이고, 이 단체에 소속한 음악가들 역시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한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을 거야.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945년 해당 당시의 설명이 필요하다면서,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 특히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단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는 아픈 역사. 그런 혼란 속에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여운형, 김구 등 민족주의자들이 암살당하고…. 음악계에서도 친일파였던 인사들이 다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는구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현제명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고려교향악협회라는 음악 단체를 만들었대. 20~30대 젊은 음악가들은 현제명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롤레타리아 음악을 하고자 하는 조선 음악가 동맹을 만들었단다. 대부분 젊은 음악가였는데, 안기영과 같은, 좀 나이가 있는 음악가도 있었어. 안기영은 당시 흔치 않은 미국유학파였는데, 귀국 후 그는 민족 음악을 했다고 했어. 민요를 채집하여 악보로 만들기도 했어. 그와 나이와 비슷하고 마찬가지로 유학파였던 홍난파와 전혀 다른 음악의 길을 갔다면서 지은이는 두 명의 음악가를 비교해 주었단다. 지은이 강헌의 글을 읽어보면 홍난파보다 안기영을 더 높이 평가하는 듯했어.

===================================

(50)

안기영은 작곡가였지만 동시에 미성의 테너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똑 같은 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말처럼 이 사람도 분명 처음에는 서양음악에 꽂혀 유학을 갔을 텐데도 홍난파와 매우 다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홍난파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하고 완전히 반해서 우리 걸 다 부정하고는 저 음악의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홍난파는 서구도 아닌 일본에 가서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를 보고 기꺼이 그 문화의 포로가 되었는데, 이에 비해 안기영은, 보니까 좋긴 하네. 그래도 역시 우린 우리 걸 해야 해하는 생각을 다지며 자신만의 음악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이 미세한 차이가 홍난파와 안기영이라는, 똑같은 서양음악 유학파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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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영은 작곡뿐만 아니라 테너로도 활동을 했대. 그리고 한국 최초의 뮤지컬 <견우직녀>도 만들었고, 이어 <콩쥐팥쥐> <견우직녀>의 후속작인 <은하수>도 만들었는데, <은하수>라는 작품이 반도가극단을 통해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구나.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 음악가였구나. 안기영은 조선 음악가 동맹 부위원장을 맞았고, 1947 8월 활동 금지를 당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월북을 했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하는구나. 안타깝구나.

조선 음악가 동맹에 또 한 명의 천재 음악가 김순남이 있었어. 1917년생인 그는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해방 후 조선 음악가 동맹에 가입했지만 좌익활동금지 조치로 숨어 지내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인민항쟁가>를 작곡했는데 좌익 단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인기를 얻었대. 한때 북한 국가를 대신하기도 했다는구나. 그가 음악 활동의 탄압을 받게 된 것은 현제명이 조선 음악가 동맹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미군청정 문화참사관(미국 사람인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구나.)이 우연히 김순남의 악보를 보게 되었고 반했다고 하는구나. 숨어 지내는 그를 찾아내라고 했고, 그의 부하가 김순남을 찾아냈대. 미군청정 문화참사관은 직접 그를 만나서, 그에게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 보내주겠다고 했어. 하지만 김순남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에게 미군차를 빌려달라고 했고, 그 미군차를 타고 월북을 했다는구나. , 이런 것도 기개라고 해야 하나.

북에서는 그를 대환영했고, 중요인사로 등용되었고, 그는 각종 음악을 작곡했어. 남에서는 숨어만 지냈는데 북에서는 그렇게 반겼으니 얼마나 신나서 음악을 했겠니. 거기에 모스크바로 음악 유학을 보내주기까지 했어. 그런데 갑자기 1953년 소환 명령이 떨어졌어. 1953년 북한은 서슬 퍼런 숙청이 있던 시기였는데 음악계 인사도 예외는 아니었지. 김순남 역시 남로당파였으니까다른 유학생들은 귀국하면 숙청당할 것을 알고 망명을 했는데, 김순남은 호기롭게 귀국을 했단다. 숙청당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는 법정 재판을 통해서 작곡금지령이 떨어지고 함경북도로 유배를 갔어. 처형 안 당한 것이 다행일 정도였지. 그 이후 그 천재 음악가의 삶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김순남처럼 남에서 쫓겨 북으로 갔다가 북에서 숙청을 당한 이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그들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였단다. 역사에서 그들의 기록은 한 줄도 없었어. 김순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안타까운 천재음악가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2.

시대를 쭉 뛰어넘어 이번에는 1980년대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이때 등장하는 이들은 아빠도 어렸을 때 들어본 가수들이구나. 1980년대 우리나라 가수 중 단 한 명을 뽑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똑 같은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구나.

조용필. 아직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진정한 가왕. 조용필은 1970년대에도 활동을 했지만, 유신정권에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찍혀서 대마초 사건 이후 가장 오랫동안 활동 금지를 당한 가수들 중에 한 명이었대. 박정희 정권에 사라지고 나서야 사면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당시 활동 금지 기간에 음악연습을 더 많이 하여 실력이 엄청 향상되었다고 하는구나. 만약 그 기간이 없었다면 1980년대 우리가 알고 있던 조용필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했어.

사면 이후 첫번째 앨범이 <창 밖의 여자>를 타이틀로 한 앨범인데 그야말로 싹쓸이를 했다는구나. 조용필은 첫 싱어송라이터라는 타이틀이 있었고, 그는 일인자였지만, 안주하지 않았고 동료 음악인들에게도 투자를 했대. 그와 함께 하는 밴드위대한 탄생에게 투자를 했고, 그 밴드를 운영하다 보니 부자도 못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당시 저작권에 대한 법적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서 그의 저작권료가 고스란히 앨범제작사로 들어가고 있었대.

그렇게 조용필에 우리나라에서 활개를 치고 있을 때, 미국과 전세계에서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가 평정하고 있었어 1980년대 들어서면서 MTV 출현과 Digital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CD의 출현. 이것과 발맞춰 비디오를 지향하는 화려한 춤 솜씨의 마이클 잭슨의 등장. 1982년 발매된 <스릴러> 앨범은 어마무시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단다. 아빠도 그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를 여럿 알고 있으니까앞서 이야기했듯 MTV를 타겟으로 뮤직비디오도 만들어 대박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스릴러> 뮤직비디오는 못 봤었어. 또는 봤지만 기억을 못하거나그래서 이번에 유투브를 통해서 봤는데 10분이 넘어가는 단편 공포 영화를 보는 듯했단다.

1980년대는 조용필과 마이클 잭슨이 이끌어가는 주류 음악뿐만 아니라 비주류 음악도 같이 공존을 했다고 하면서, 비주류 음악 세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단다. 외국에서는 펑크와 얼터너티브 락으로 이어졌고, 이들의 대표주자에는 아빠에게도 익숙한 U2, R.E.M, Nirvana 등이 소개되었단다. 그리고 우리나라 1980년대 비주류 음악에서는 학생들 중심의 운동가요 출신 가수들의 성장을 이야기했어. 아빠에게도 익숙한,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김광석, 안치환 등등그리고 락밴드도 크게 성행했던 것이 1980년대라고 했단다. 들국화를 필두로 많은 밴드들이 성행했던 1980년대다양한 음악이 공존했던 1980년대였어. 몇 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80년대의 음악을 다시 자주 들었을 때가 있는데, 여전히 촌스럽지 않고 기분 좋아지게 하는 음악이더구나. 아빠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소개된 1980년대 음악을 찾아 들어보면서 책을 읽었단다. 80년대 추억들이 소환되었단다. 음악의 힘은 대단해.

 

 

3.

20세기 클래식 음악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단다. 그나마 신()빈악파가 선전을 했지만, 쇠락의 길을 막을 수 없었어. 신빈악파 전에 빈악파가 있었어. 빈을 중심으로 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로 이름만 들어도 쟁쟁했던 이들이지. 그에 비해 신()빈악파는 쇤베르크, 안톤베베른, 알반베르크 등으로 쇤베르크를 제외하면 이름조차 낯선 이들이구나.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었어. 쇤베르크의 이야기 속에 그들이 추구했던 음악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단다.

쇤베르크가 이야기하기를, 지금까지가 평범한 시대였다면 우리 시대의 음악은 아주 달라야 한다고 했어. 그는 지금까지의 조성 체계를 족쇄로 생각하고 이를 파괴하는 무조성 체계의 음악을 추구했단다. 그렇다 보니 그의 음악은 일반인에게 난해했어. 일반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에 친숙해지기는 쉽지 않았어.

...

20세기에 들어서 디지털 음악이 유행하고, 음악을 쉽게 다운로드해서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클래식 산업은 크게 쇠락했다고 하는데, 지휘자로 잘 알려진 카라얀도 한 몫 했다고 하는구나. 그가 뭘 했냐고? 카라얀이 클래식 산업을 주도해서 베를린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와 2000장의 음반을 녹음을 했다는구나. 오호, 그러면 클래식 음악을 크게 성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가 녹음한 2000장의 음반이 모두 옛 고전 음악만 연주했고, 당대의 클래식음악은 녹음을 하지 않았대. 그렇다 보니 당대의 작곡가들은 어찌 보면 모차르트, 베토벤 등과 경쟁을 해야 했던 거야. 그렇게 20세기에는 클래식음악은 새로운 음악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어.

오페라도 마찬가지였단다.

.

 

 

4.

, 이제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아빠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뮤지컬의 환경은 척박했단다.. 하지만 최근에는 뮤지컬은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문화가 되었어. 너희들도 너희들을 위한 뮤지컬을 여러 편 봤었잖아. 그 뮤지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 그 뮤지컬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1600년 첫 오페라 <에우리디케>가 이탈리아에서 공연을 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오페라가 교향곡보다 늦게 출현한 줄 알았는데, 오페라가 먼저였다고 하는구나. 오페라의 분위기를 먼저 알려주려고 시작을 하면서 연주곡인 오페라의 서곡라는 것이 있는데, 이 서곡이 발전하여 교향곡이 되었대.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한 오페라는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고, 규모도 커지고 프랑스에서는 발레까지 접목한 형태가 나타났다고 했어.

오랫동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우리가 요즘도 즐겨는 듣는 아리아들과 서곡들을 비롯해 많은 음악들이 태어났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프랑스에서 기존 오페라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오페라코미크라는 장르가 생겨났고,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오페레타가 출현했다고 했어. 오페라에 비해 화려한 춤이 가미되었고 좀더 가볍다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아무튼 이런 오페라에서 조금씩 변형된 오페라코미크와 오페레타가 뮤지컬의 뿌리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구나.

오페레타는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해서 자크 오펜바흐라는 사람을 통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했어. 오펜바흐의 유명한 오페레타로 <지옥의 오르페우스>이 있단다. 이 오페레타에 삽입된 캉캉 춤곡이 유명한데, 들어보면 누구나 들어본 음악일 거야.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슬픈 사랑은 너무 극적이어서 오페라에서 많이 다루었다고 하는데,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에서는 조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는구나. 오르페우스가 사실 에우리디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래서 하데스가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던 것을 어긴 것도 사실은 일부러 그랬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대. 아빠는 <지옥의 오르페우스>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고, 한번 기회가 있으면 한번 보고 싶더구나.

지은이 강헌은 이 오페레타 이외에 슈트라우스2세의 <박쥐>라는 작품을 꼭 보라고 권했어. 실황으로 보면 좋겠지만, 영상을 찾아서 보라고 했어. 얼마나 재미있길래 보라고 하는지 꼭 보고 싶더구나.

이렇게 유행한 오페레타가 대서양 건너 미국에도 진출했어. 그리고 점점 진화를 거듭해서, 1927 <쇼보트>뮤지컬 플레이라고 하는 장르로 큰 성공을 거두었어. 드디어 장르 이름에뮤지컬이라는 용어가 들어갔구나. 하지만 이어진 대공황으로 뮤지컬의 성공은 단절이 될 위기에 처했어. 이 때 출현한 것이 뮤지컬 영화였단다.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뮤지컬 영화가 뮤지컬을 대신했던 거야. 그 첫번째 뮤지컬 영화가 <42번가>였다고 했어.

이 영화는 나중에 뮤지컬로도 재현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단다. 이렇게 뮤지컬보다 영화로 먼저 만들어져서 나중에 다시 뮤지컬로 성공한 작품들이 꽤 있다고 했어. 그 중에 또 대표적인 것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빠가 뮤지컬을 많이 보지 않았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들어봤어. 아무튼 요지는 그 전에 오페라의 불모지와 다름 없던 미국과 영국에서 오페라에서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뮤지컬이 크게 성공했다는 것이야.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웨스트엔드를 중심으로 뮤지컬은 크게 발전했다고 하는구나. 브로드웨이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사실 웨스트엔드도 뮤지컬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은 몰랐어. , 아빠가 뮤지컬에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 1980년대 뮤지컬 빅4라고 부르는 <캣츠>, <레미제라블>, <팬텀 오브 오페라>, <미스 사이공>가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이 뮤지컬들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공연되고 있어..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말이야. 그런데 이 4편 모두 캐머린 매킨토시라는 사람이 제작을 했대. ,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뮤지컬계의 스탠 리가 아닌가 싶구나.

우리나라의 뮤지컬의 역사는 어떨까. 앞서 조선 음악가 동맹을 이야기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안기영이라는 이가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다고 했잖아. <견우직녀>, <콩쥐팥쥐>, <은하수>를 만들었다고하지만 분단과 전쟁으로 뮤지컬은 맥이 끊겼다고 했어. 오히려 북한에서 피바다 가극단가 공연한 5대혁명가극이 유명해졌다고 했어. 유럽 순회 공연을 가질 정도였다는 구나. 이에 자극을 받은 남한에서 가극단예그린을 만들어 <살짜기 옵서예>라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워낙 뮤지컬이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국가의 지원이 끊어지자 더 이상 할 수 없었어.

그러다가 1990년대 서서히 뮤지컬의 시장이 넓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많은 뮤지컬 가수들이 등장하고 뮤지컬의 제작도 많아졌다고 했어. 그 붐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말이야. 하지만 아직 창작 뮤지컬은 너무 적다고 하는구나. 대부분이 외국 뮤지컬의 판권을 사와서 제작된다는 것이지.. 유능한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창작 뮤지컬만 나오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했어.

암튼 뮤지컬은 가장 늦게 등장했지만 가장 강력한 음악 장르가 되었고, 오페라를 역사 속으로 모셨다고 하는구나. 뮤지컬 킬 더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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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345)

하지만 가장 늦게 등장했음에도 뮤지컬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장르 혹은 상품이 되었으며 이 생명력은 앞으로도 굉장히 오래 이어질 것 같다. 그렇게 예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출발은 늦었으나 그 앞의 수많은 인류 예술사의 최선의 성과를 포섭하고 축적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이야말로 어쩌면 인류 예술사에 나타난 가장 순조로운 반전의 명예혁명 같은 것이 아닐까? 뮤지컬은 오페라를 학살하는 대신 조용히 유폐시켰고 오페라가 누려왔던 모든 것을 새 시대에 걸맞게 자신의 영역에 구축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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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전복과 반전의 순간 두번째 이야기란다. 음악과 음악가들 사이에 숨어 있는 에피소드들은 재미있는 것이 많은 것 같아. 그런 이야기를 알게 된 다음에 음악을 들으면 그 전과 달리 색다르게 들리기도 하더구나. 지은이 강헌님께서는 세번째 이야기를 출간해주셨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한국과 서구의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나에게 가장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는 대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책의 끝 문장 : 뮤지컬은 오페라를 학살하는 대신 조용히 유폐시켰고 오페라가 누려왔던 모든 것을 새 시대에 걸맞게 자신의 영역에 구축한 장르다.


(78)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음악가동맹’은 음악에서 기교나 기술보다는 민중과 함께하는 호흡을 중시했다. 그래서 치열한 역사를 쓰는 데 필요한 혁명가도 다수 작곡했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인 시로 노래나 가곡도 많이 만들었다. 조선음악가동맹이 특히 사랑한 시인은 김소월이었다. 소월의 시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의 울림을 안고 있다고 판단했고 최상의 음악적 언어로 표현해낼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민족음악일 것이라 생각했다. 김순남이 쓴 걸작 가곡 가운데 김소월의 시에 붙인 <산유화>가 있다. 다행히도 이 곡은 조수미가 부른 노래로 녹음이 되어 떳떳이 들을 수 있다.

(142)

나는 <빗 잇>의 맨 마지막 절 가사가 섬뜩하다. 이 노래가 나온 때는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의 시대였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를 도탄으로 몰아넣게 되는 신자유주의의 악령이 슬슬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하던 때다. 그런데 <빗 잇>은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외친다.

"지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어. 난 당신이 화려하고 강력한 투쟁력을, 싸움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옳고 그른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그냥 꺼져. 그냥 꺼지라고."

(254)

다만 중요한 사실은 서양음악사가 바로 쇤베르크에 이르러, 카라얀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말아먹기 전에, 이미 90년 전에 사실상 내면적 종말을 고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쇤베르크와 그 지지자들이 몸부림치면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 그 점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술사가 수많은 사례를 통해 동시대에는 공감되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이 수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어느새 너무나 당연하게 열광과 환호를 받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비밥도 그랬다. 비밥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왜 좋냐고 물으면 "그냥 좋던데요." 한다. 그 좋은 비밥 음악,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비밥 음악 중에 너무나 많은 곡이 놀랍게도 쇤베르크의 무조성주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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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

마르크스가 추구한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진리였다. 다른 사람들의 저서에서 진리를 발견하면 그는 자신이 새로 종합한 이론 속에 그것을 결합하려고 애썼다. 그의 사상의 기본 방향이 모습을 갖춘 파리 시절에는 특히 그랬다. 결과에서 독창적인 것은 어느 하나의 구성요소가 아니고 중심 가설이다. 중심 가설이 각 구성요소를 나머지 모든 구성요소들과 결합시킴으로써, 부분들은 단일한 체계의 전체 안에서 전제와 결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59)

마르크스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매우 뛰어난 유머감각을 갖고 있었던 그는 평생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경박했다거나 천박했다고 평가한 사람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러다가도 시대상황이 바뀌어 긴박하고 비참한 분위기가 조성되면, 늘 그렇듯이 곧 정신을 차리고는 정력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탐구하고 비판하는 데 몰두했다.

(77)

따라서 모든 시대를 진실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관계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는 그 자궁 속에 미래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고 앞으로 올 시대의 예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용의주도하고 명백한 사실증거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역사가라고 해도 이러한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계를 고려할 경우에만 역사가는 자기를 다루고 있는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올바른 전망 속에서 기술할 수 있고, 중요한 것을 사소한 것으로부터 구별해낼 수 있다. 또한 그 시대의 결정적 특성을 우연적이고 이차적인 요소들-이 요소들은 어느 때 어디서든 뿌리박고 있지도 않고 한 시대의 특정한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로부터 구별해낼 수도 있다.

(90)

진정한 자유는 외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를 극복하는 데 있다. 이것은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는 자신이 살고 있는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자신을 필요적으로 지배하는 법칙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합리적 본성, 즉 준법적 본성의 잠재력들-이러한 잠재력들의 실현은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을 유기적으로포함하고 있고 뭇 개인들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한다-을 현실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135)

피지배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항적이 되고 결국 전제적인 소수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데 생명을 바친다. 상황이 유리할 때는 피지배자들은 소수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피지배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노예 상태에 머무른 탓에 점차 타락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 주인들의 이상보다 더 높은 이상을 품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피지배자들이 권력을 쥐게 되더라도 그들은 자신을 억압했던 과거의 지배계급 못지않게 비합리적이고 부정한 방식으로 권력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그들이 새로운 피억압계급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차원에서의 투쟁을 또 다시 시작된다. 인류 역사는 그러한 투쟁의 역사이다.

(150)

엥겔스는 또한 치밀하고 명쾌한 지성과 현실 감각의 소유자였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급진주의자들 중에 이러한 점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만일 있다고 해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직접 독창적인 이론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실천적인지 그 여부를 가려내고 그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자기 생각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데다 성미도 까다로워서 글에 종종 서투르고 과장되고 모호한 구석을 내보였던 것과는 달리, 엥겔스는 글을 빠르면서도 알기 쉽게 편이었고 대단히 헌신적이면서 참을성이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이상적인 동지이자 공동 작업자가 될 수 있었다.

(185)

대립은 언제가 경제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계급들 사이의 충돌이다. 계급이란 사회 구조를 결정하는 생산 제도들 속에서 각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자신들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 내의 인간 집단으로 규정된다. 개인의 지위는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결정되며, 사회적 생산 과정은 주어진 단계에서의 생산력의 특성과 발전 정도에 직접 의존한다. 인간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자기 이외의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과 맺고 있는 경제적 관계들에 따라 행동한다. 생시몽이 말했듯이 이 관계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생계 수단의 소유권에 바탕을 둔 관계이며 모든 필요 가운데 가장 긴급한 것은 생존의 필요이다.

(186)

마르크스는 역사의 본질을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연의 왕국에 속해 있으므로-자연의 왕국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자신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곧 인간이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의 노리개에서 벗어나 그 힘들과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다.

(194)

그는 인간 생활에서 행위의 근본적 원천은 인간들이 경제 투쟁에서 맺고 있는 계급 간의 연합 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원천은 인간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으려면 한 가지 요소만을 알면 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지배계급에 속하는가 아닌가, 그들의 행복한 삶이 지배계급의 성공이나 실패에 달려 있는다, 그들이 기존 질서의 유지를 꼭 필요로 하는 위치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사회적 위치가 그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주원인이다. 일단 이것을 알기만 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개인적 동기와 감정들, 이를테면 그들이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관대한가 인색한가, 현명한가 어리석은가, 야심적인가 수수한가 따위는 연구와는 비교적 무관한 것이 된다.

(216)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현상을 유지하고자 할 뿐 세계를 바꿀 생각이 없다. 이들은 자기 계급의 현상 유지를 위해 잠정적 도구로 쓰이는 개념들에 의거해서 행위하고 생각한다. 부르주아들이 사용하는 개념은 자기 계급과 함께 발전한 특정한 역사단계의 산물이며, 외양에 상관없이 부르주아 계급의 현상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263)

정신적인 고통에는

오로지 하나의 해독제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 칼 마르크스 -<보크트 씨>

(356-357)

<자본론>은 처음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얼마 안 있어 점점 유행해지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놀랄 정도의 명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자본론>은 신념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쓰여진 그 어떤 저술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본론>은 이 책을 한 줄도 읽지 않았거나 혹은 때때로 등장하는 모호하고 애매한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읽은 수백 만의 사람들에 의해 맹목적 숭배, 또는 그 반대로 맹목적 증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자본론>의 이름으로 혁명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반혁명 세력은 적의 무기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면서 은밀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무기를 집중적으로 탄압했으며 지금도 탄압하고 있다.

(405)

이에 비해 마르크스가 맞서 싸운 상대는 당대의 천박하고 냉소적인 사회였다. 그가 보기에 기존 사회는 극심한 혐오감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저속화하고 타락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타락한 사회보다 더 강하고 질겼다. 마르크스는 정신적, 정서적으로 외부의 영향에 민감하지 않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의지 또한 강했다.

마르크스를 괴롭혔던 원인들은 밖에 있었다. 그것은 빈곤과 질병, 그리고 적의 승리였다. 그의 내적 삶은 단순하고 확고했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세상을 단순히 흑백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에게는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은 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 편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 편을 위해 싸우는 데 평생을 보냈으며, 결국에는 그 편이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407)

마르크스의 사상은 역사 과정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관념이다라는 명제를 논박하기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스스로의 테제의 힘을 약화시켰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개인이 환경이나 다른 개인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그때까지 널리 퍼져 있던 인식에 변화를 일으켰고, 또 그러한 관계 자체까지 변화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의 행위 방식과 사유 방식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적 힘들 중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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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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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을 읽었단다. 그의 소설을 여럿 읽었는데, 아직도 그의 이름이 헛갈린다. 피에르 르메르트? 피에르 르메트로? 피에로 로메트르? 피에로 르메트로? 아무튼 그의 가장 최근 소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읽었단다.

피 말리는 이야기라고 해야겠구나. 죄를 숨기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야. 분명 그가 잘못을 했으니까 죄를 받아야 하는데,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다 보면, 들통날까 조마조마하게 되더구나. 그 이야기를 해볼까? 스포일러를 시작해보자꾸나.

 

1.

1999년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12살이었던 앙투안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어. 엄마는 직장을 다녀야 했으니 집에서 늘 혼자 지내기 일쑤였지. 같이 놀던 친구들도 비디오게임이 유행하면서 보이지 않고, 앙투안은 혼자 숲에서 나뭇가지 등으로 아지트를 만들며 혼자 놀았어. 어느날 그를 따라온 이웃집 데스메트씨의 개 윌리스가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단다. 이후 늘 윌리스와 함께 지냈어. 그런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윌리스가 중상을 입었어. 그를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데스메트씨는 윌리스를 총으로 죽였단다. 그 현장에 있었던 앙투안은 깊은 슬픔과 윌리스를 죽인 데스메트씨에 대한 강한 분노를 갖게 되었지.

그는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은 숲 속의 아지트를 찾아가 다 부셔버렸어. 그때 숲에 놀러 온 레미. 데스메트씨의 어린 아들, 레미바로 그 윌리스를 죽인 데스메트씨의 아들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던 앙투안은 막대기로 레미의 머리를 가격했는데, 그만 레미가 죽고 말았어. 뒤늦게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법. 앙투안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수를 할까? 시신을 숨겨야 할까? 고민하다가 숲 반대편에 잇는 동굴 안 구덩이가 생각이 났어. 그곳에 시신을 버리고 돌아왔어. 오다가 지나가는 차가 한대 있었는데 잘 몸을 숨겼지.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자신의 손목시계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어. , 어쩌지?

 

2.

집에 돌아오자 데스메트씨 집에는 난리가 났단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사라졌으니 말이야. 데스메트 부인은 앙투안에게도 레미를 못 보았냐고 물어보았어. 못 봤다고 했지. 나중에는 군경까지 출동해서 앙투안을 심문했어. 당황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려고 했어. 앙투안은 혼자 도망갈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하지 못했어. 열두살짜리가 가면 어딜 가겠어. 군경대는 주변에 있는 큰 연못을 샅샅이 수색했단다. 어린 아이가 실종했다면 실수로 연못에 빠졌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수사를 받기도 했단다.

며칠이 지나고 앙투안의 실종사고는 텔레비전에서도 크게 보도가 되었어. 앙투안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수를 해야 하나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하나 괴로워했단다. 그리고 엄마의 약들을 한꺼번에 먹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 나중에 토하고 열이 심하게 나는 앙투안을 보고 엄마는 왕진 의사를 불렀어. 말이 적고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의사선생님은 치료를 다 해주고, 마치 진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고민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어.

레미의 수색은 점점 확대되어 대규모 자원봉사자들도 참여하기로 했어. 동네 사람들도 모두 참여하기로 했고, 수색지역도 넓혀서 시신을 숨긴 숲도 하기로 했어. 앙투안은 곧 자신이 범인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어. 일분 일초가 무서운 시간이었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들이었어.

 

3.

그런데 앙투안이 살고 있는 보발시에 강력한 태풍 2개와 엄청난 폭우가 왔어.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폭격을 맞은 듯 폐허로 만들었고, 그 폭우로 인해 죽은 사람도 있었어. 수해 복구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어. 레미 수색 작업을 하려고 했던 자원봉사자들은 수해 복구가 더 급해 보였어. 그들이 모두 수해의 피해자였으니까 말이야. 그 숲도 완전 엉망이 되어버렸어. 레미 사건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지.

 

4.

시간은 지나 2011년이 되었어. 앙투안은 파리에서 의대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었어. 여자 친구 로라와 함께 생활을 했지. 그는 대학 졸업을 하면 구호 단체에 가서 해외에서 활동할 계획도 세웠어. 앙투안은 어떻게 해서든지 보발시에서 멀리 벗어나려고 했어. 여전히 그날의 후유증으로 앙투안은 안정제를 먹어야 했고, 가끔씩 공황장애를 겼고 있었거든. 그 일이 그렇게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지, 그는 변함없는 범인이고 죄를 여전히 받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야. 정기적으로 보발시의 엄마가 혼자 지내는 집에 가는데, 어느날 어린 시절 짝사랑 하는 에밀리를 만났어. 순간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짧고 어설픈 불장난 같은 사랑을 나누었단다. 그리고 후회했지.

그리고 뜻밖의 소식. 레미의 시신이 숨겨져 있는 그 숲을 재정비해서 놀이공원으로 만든다는 소식이었어. 그렇게 되면 레미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러면 앙투안 자신이 범인으로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어. 다시 불안감과 공황장애로 괴로워했단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지내는데,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었단다.

서너 달 뒤에는 에밀리가 찾아왔어. 임신을 했다는 거야. 앙투안은 순간 화가 났단다. 자신의 아이인지 어떻게 아냐고 했어. 자신의 아이더라도 낳을 수 없다고 했어.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중절 수술 비용을 주겠다고 했어. 에밀리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럴 수 없다면서 화를 내며 보발시로 돌아갔어. 앙투안의 처지에서 보면 이것저것 한번의 실수들이 대형사고로 이어지니, 꼬인 인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단다. 하지만 모두 자신이 뿌린 씨앗들.

어느날 엄마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안 좋은 일들은 연이어 닥치는 것인가. 엄마를 간호해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어. 어쩔 수 없이 다시는 가기 싫은 보발시를 다시 가야만 했어. 병실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숲에서 어린 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봤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고 했어. 그 머리카락의 유전자 분석을 해 보았지만 경찰이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와 일치하는 것은 없다고 했어. 12년 전에 용의자로 조사받았던 코발스키씨가 다시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지만 그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풀려났단다.

한편, 에밀리가 그렇게 화를 내고 갔지만, 에밀리의 아버지는 가만히 있지 않았어. 앙투안을 고소하겠다고 했어. 에밀리가 임신한 아이와 앙투안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친자임을 확인하겠다고 했어. 앙투안은 다시 두려움이 엄습했어. 자신이 고소당해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면, 자신의 유전자는 경찰의 데이터에 저장이 되고, 언젠가는 레미의 유골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유전자와 일치됨을 경찰이 알게 된다면너무 앞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앙투안의 추리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 방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에밀리와 결혼하는 방법뿐이지. 결국 앙투안은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나가려는 계획을 접고, 사랑하는 여인 로라에게도 거짓말을 이야기해서 헤어지고, 에밀리와 결혼해서 다시 보발시로 돌아와 지내게 되었단다.

 

 

5.

2015년 보발시의 동네 병원 의사로 일하게 되었어. 어느날 코발스키씨가 환자로 찾아왔어. 레미 사건으로 두어 차례 경찰의 심문을 받았던 그 사람 말이야. 그가 앙투안에게 고백 비슷한 것을 했어. 그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단다. 1999년 레미가 죽던 날 차 운전을 하다가 앙투안이 허겁지겁 도망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어. 경찰서에 두 번이나 불려갔지만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앙투안의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리고 앙투안이 도망가는 것을 본 그 차 안에 그 혼자 있던 것이 아니라고 했어. 앙투안의 엄마도 같이 있었다고 했어.

그렇다면 앙투안의 엄마와 코발스키는 처음부터 다 눈치채고 있었다는 거야. 앙투안의 엄마도 말은 안 했지만 그 오랜 세월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셨을까. 앙투안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숨죽이며 고생했던 그 시간들. 앙투안이 먹었던 엄마의 약들을 엄마도 계속 먹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또 하나 놀라운 사실. 코발스키와 앙투안의 엄마의 만남은, 앙투안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졌다고 했어. 그렇다면….. 앙투안의 아빠는 …..

코발스키는 평생 숨겨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숨길 이야기를 해주고 돌아갔어. 그리고 며칠 뒤, 소포 하나가 왔단다. 1999년 그날 숲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손목시계였어.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참 묘한 감정이었단다. 분명 앙투안은 실수이긴 하지만 사람을 죽인 중대한 죄를 지었어. 그것에 대한 벌을 받아야만 했어.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가 잡히지 않길 바라게 되더구나. 지은이 피에르 르메트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런 걸 노리지 않았나 싶구나. 아빠가 지은이와 게임에서 졌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주인공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라고 했을까.

 

PS:

책의 첫 문장 : 1999년의 12월이 끝나 갈 무렵, 일련의 돌연하고도 비극적인 사건들이 보발을 덮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물론 어린 레미 데스메트가 사라져 버린 일이었다.

책의 끝 문장 : 물론 그것은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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