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 & 데카르트 :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거인 지식인마을 10
박민아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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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읽었단다. 이 책도 사 놓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아빠가 최근에 수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데카르트와 뉴턴의 이야기가 계속 나왔잖아. 그래서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이 책이 생각나더구나. 그래서 이번에 읽은 거야. 뉴턴과 데카르트 각각에 관한 책을 읽으면 좋겠지만 집에 뉴턴과 데카르트에 관한 이 책은 이 책뿐이구나. 그런데 데카르트는 수학자과 과학자보다는 철학자로 더 많이 알려졌어. 그러나 얼마 전에 아빠가 다른 책을 읽고 쓴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데카르트의 좌표를 비롯한 여러 수학적 발견은 많은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어. 그 수학자중에는 뉴턴도 포함되어 있단다. 그러니까. 책 제목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거인>에서 앞의 거인인 데카르트이고, 뒤의 거인은 뉴턴이 되는 거야. 거인의 어깨에 올라간다는 이 표현을 많이들 사용하는데, 이 표현을 누가 처음 썼을까? 생각을 하곤 했는데, 뉴턴이 그런 표현을 썼다고 하는구나. 겸손하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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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노년에 누군가가 선생님은 어떻게 그리 훌륭한 일들을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뉴턴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기 가능했지요.”라며 아주 겸손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뉴턴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다시 자신을 거인으로 만들었던 과정은 뉴턴이 얼마나 예리한 현실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활용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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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뉴턴이 심성이 천사같이 착하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제대로 된 뉴턴의 전기를 읽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뉴턴은 몰인정한 면도 고집도 있었고, 정치적인 수완도 능숙한 사람이었더구나. 물론 과학적 업적도 대단했지만, 그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오늘날 위대한 과학자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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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뉴턴은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과학의 권위와 명성으로 확장시켰다.이렇게 고양된 과학의 이미지는 다시 뉴턴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데 기여했다. 한마디로 뉴턴은 왕립학회 회장이자 <프린키피아>의 스타로서 자신과 과학을 동일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 속에서 과학과 자신의 권위를 동시에 높여갔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과학자하면 금세 떠오르는 2~3명 속에 뉴턴이 포함될 수 있는 것은 그의 과학적 업적이 이룩한 성과 덕이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그가 만들어낸 이런 이미지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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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너무 유명한 철학적 발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데카르트 하면 철학자로만 알고 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데카르트는 과학자이자 수학자로도 뛰어난 업적을 냈어.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좌표의 발견이 가장 대표적이었어. 데카르트는 호기심이 많았던 사람 같아. 이 세상의 원리에 대해서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완성해 보려고 했어. 그런 상상력과 관찰력으로 자신만의 자연 법칙을 제안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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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첫째, 모든 물체는 다른 물체가 충돌해서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똑 같은 상태로 남아있다.

둘째, 한 물체가 다른 물체를 밀 때 자신의 운동을 잃지 않는 한 다른 물체에 운동을 줄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운동이 증가하지 않는 한, 다른 물체에서 운동을 빼앗을 수도 없다.

셋째, 물체가 움직일 때 물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들은 직선으로 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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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보면 후에 뉴턴의 운동 법칙에 영향을 주는 것 같은 내용도 있더구나. 오늘날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위대한 과학자들에 의해 자연의 법칙이나 원리들을 알 수 있어. 하지만, 데카르트가 살았던 16, 17세기에는 그런 것들이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었던 거야. 그러니 데카르트처럼 그런 것이 궁금한 사람들은 어쩌겠니. 혼자 연구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그런 데카르트의 심정이 이해가는구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 오늘날에도 그런 심정을 가진 이들이 있을 거야.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인류의 기원, 빅뱅 이전의 우주,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원자 속의 세상들그런 것들이 궁금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당시 데카르트의 심정을 이해하지 않을까. 데카르트의 상상력이 흥미롭더구나. 공간이란 플레넘이란 물질로 꽉 채워져 있다는 상상력도 흥미롭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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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데카르트의 공간은 물질로 꽉 차있는 플레넘(말 그대로 물질이 충만한 공간)으로, 이 플레넘은 세 종류의 물질로 채워져 있었다. 첫 번째 물질은 불의 원소로 아주 작고, 특정한 형태나 크기가 없어 모양이 쉽게 변한다. 따라서 어느 틈에나 채울 수 있다. 두 번째 공기의 원소는 아주 작지만 크기나 모양을 지니고 있다. 세 번째 흙의 원소는 불이나 공기의 다른 감각적 속성 없이 크기, 모양, 배열, 운동만으로 물질을 정의했고 그로부터 차가움, 뜨거움, 습함, 건조함 같이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에서 중요가게 여기는 질적인 개념들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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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만 아니라 우주의 역사를 그려내려고 노력이 엿보이는 <빛의 관하여>라는 책도 쓰고, 우리 몸에 대한 연구도 했어. 사람의 몸을 기계적 철학으로 접근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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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이처럼 데카르트는 인체를 각종 실과 관, 구명들로 가득 찬 기계로 파악하고 기계들이 작동하는 원리에 따라 인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다른 동물들도 작동 원리는 인간과 똑같이 기계적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동물은 똑 같은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다른 종류의 기계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데카르트는 오직 인간만이 사고할 수 있는 이성, 정신을 자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지었다. 또한 인간에게도 기계적 철학이 적용되는 영역을 몸에 국한시켜서 정신과 몸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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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데카르트라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알고 싶어지는 사람이었어. 데카르트를 다룬 전기문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2.

뉴턴에 대해서, 특히 과학적 업적에 대해서 무엇을 더 이야기를 해야 할까. 20세기 아인슈타인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위대한 과학자였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으로 뉴턴의 운동 법칙의 오류들이 밝혀졌지만, 우리가 살고 이 세상에서의 운동에는 여전이 뉴턴의 운동 법칙들이 지배하고 있단다.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뉴턴 이전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법칙들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뉴턴이 정립한 간단하지만 위대한 운동 3법칙은 정말 대단한 것 같구나.

너희들도 이제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 가면 뉴턴의 운동 3법칙을 배우게 될 텐데그것들의 너희들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뉴턴 이전의 과학자로 갈릴레오를 또 위대한 과학자로 손에 뽑곤 하는데, 갈릴레오가 죽은 1642년에 뉴턴이 태어났다고 해서 뉴턴이 갈릴레오의 환생이라고 재미 삼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구나. 뉴턴은 유복자로 태어났고,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외조부모와 함께 자랐다고 하는구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구나. 그런 영향인지 뉴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대.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골방에 갇혀 연구만 하는 과학자가 아닌, 대외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 영국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고, 제자들을 배출하기도 했단다. 간혹 갈등을 일으킨 사람들과 끝내 화해하지 않기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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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뉴턴주의 과학을 영국 사회로 퍼뜨리는 일은 뉴턴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한 것이었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 매혹된 젊은 세대 수학자, 천문학자들을뉴턴의 사도들로 키워내어 그들의 입을 통해 뉴턴의 과학을 사회에 알렸다. 과학자로서의 명성, 왕립학회 회장으로서의 권위를 적극 활용하여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지휘를 마련해주었고, 더 중요하게는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었다. 뉴턴주의가 과학으로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사회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뉴턴의 천재성과 뉴턴이 뉴턴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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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여러 이야기 중에 미분의 발견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단다. 뉴턴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라이프니츠라는 사람이 미분을 발견했어. 둘 사이에 편지 교류가 있었고, 뉴턴이 보낸 편지에 미분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미분 발견의 우선권 논쟁이 크게 일어나게 된 것이야.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인정을 했지만 말이야. 그 내용에 대한 것도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왔단다.

….

뉴턴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같이 따라오는 것이 그가 쓴 <프린키피아>라는 책이란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도 <프린키피아>라는 책에 대해 극찬을 했는데, 아빠도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좀 쉽게 해설한 책들 중에서 찾아봐야겠구나. 그리고 학습만화로 나온 <프린키피아>도 있던데, 너희들에게 그 책을 한번 추천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뉴턴은 아주 예쁜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어찌하랴, 그것이 과학 활동의 특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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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그러나 나는 별 쓸모도 없는 물건들을 집안에 잔뜩 쌓아놓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아주 긴 시간을 시달리다가 수십 년 뒤 허비한 세월을 후회하는 어른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보다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고 있었다. 최고의 자산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34)

이곳이었소. 물론 박사는 물리학자이니까, 반물질이 발견된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지. 하지만 현재 항공학의 원리들이 만들어진 곳도 칼텍이고, 지구의 나이를 처음으로 정확하게 확정한 곳도 칼텍이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르오. 로저 스페리가 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다르다는 사실, 그러니까 좌뇌는 언어에 쓰이고 우뇌는 시각이나 공간 감각에 쓰인다는 사실을 파악한 곳도 이곳이라는 것도. 분자생물학도 칼텍에서 만들어내다시피 했소. 그 일의 핵임에 있었던 사람이 박사 같은 물리학자인 막스 델브뤼크였지. 그는 그 공로로 1969년에 노벨상을 탔소.”

(44~45)

파인만은 철학 연구를 경멸했지만, 사실 두 사람의 마찰은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파인만은 물리학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나는 바빌로니아인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인으로, 바빌로니아인은 숫자와 방정식, 기하학의 이해에서 서양 문명 최초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우리는 수학을 발면한 것이 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 훗날의 그리스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바빌로니아인은 어떤 계산 방법이 효과가 있느냐, 즉 실재하는 물리적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느냐 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그것이 정확한가, 더 큰 논리 체계와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탈레스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은 정리(定理)와 증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어떤 진술이 공표된 공리(公理)나 가정의 체계에서 나온 정확한 논리적 결과물일 때에만 그 진술을 참으로 여겼다. 간단히 말해서, 바빌로니아인은 현상에 맞추었고 그리스인은 그 밑에 깔린 질서에 초점을 맞추었다.

(98)

예를 들어 중력이 강한 힘보다 훨씬 약하지 않다고 생각해보라. 별은 훨씬 더 압착이 되어 핵연료는 빠른 속도로 타버릴 것이고, 생명의 진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중력이 훨씬 더 약하다면, 전자기적인 반발력 때문에 물질이 하나의 별로 합체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강한 힘이 전자기력보다 훨씬 강하지 않다면, 대부분의 원자핵은 해체되어버릴 것이다. 물질 속의 전자와 양성자들의 숫자가 1퍼센트라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나와 1미터 떨어진 사람 사이의 전자기력이 지구의 무게보다 더 클 것이다. 자연의 힘들은 서로 다르지만 섬세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왜일까? 이 답을 찾으려면 개별적인 힘들을 묘사하는 각각의 이론들로는 부족하다. 오직 모든 힘을 포괄하는 하나의 이론만이 존재에 대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다.

(173)

그렇다고 나한테 좋은 상상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야. 사실 나는 소설을 상상하는 것보다 과학자의 일이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해. 즉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파악하거나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지. 소규모로 또는 대규모로 벌어지는 일들은 처음 예상과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네! 원자를 그려보는 데도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지. 원자가 이렇게 저렇게 움직일 거라고 예측하는 데 말이야. 원소의 주기율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지.

과학자의 상상력은 제어를 당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과는 다르네. 과학자가 뭔가를 상상하면, 신은 부정확하다거나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말하지. 물론 여기서 신은 실험이야. 신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 아니야, 그건 일치하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말해 나는 그것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해. 그렇다면 이런 것을 보게 될 거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우리가 잘못 추측한 거니까. 하지만 글쓰기에는 이런 것이 없네.

(208)

나는 스스로 과학자라고 말할 수 있네. 발견을 하면 흥분을 하지. 흥분은 사실 자신이 뭔가를 만들어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것이라네. 따라서 과학적인 것은 나의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네.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고, 어느 게 먼저고 어느 게 뒤인지는 모르겠네. 나는 통합된 사람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나의 회의주의 때문에 내가 과학에 관심을 갖는 것인지, 과학 때문에 회의적이 되는 것인지 그런 것은 모르겠네. 그런 것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해. 어쨌든 나는 무엇이 사실인지 알고 싶네. 그래서 사물을 들여다보지. 보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발견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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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3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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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제1 <로마의 일인자>의 마지막 3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길게 한숨 쉬고 시작해야겠구나. 3권은 기원전 104년부터 시작한단다. 1권 처음이 기원전 110년부터였으니까, 어느덧 7년이 흐른 거야.

아프리카 누미디아 반란을 평정한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화려한 개선식으로 로마에 입성을 하였고, 또 화려한 집정관 취임식으로 복귀를 알렸어. 여전히 그를 반대하는 원로원의 보수파 의원들이 꽤 있었어. 마리우스는 로마에 오래 머물지 않았어. 왜냐하면 갈리아 지방의 게르만족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거든. 이미 지난해에 대패를 당하기도 했잖니. 마리우스는 갈리아 지방으로 가는 일반적인 길인 알프스 산맥을 넘는 길이 아닌,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을 택했어. 그리고 줄어든 군인들을 채우기 위해 최하층민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노예들도 해방시켜 군의 자격을 주는 정책을 만들려고 했어. 그야말로 실용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

로마의 최하층민에게 군인의 자격을 주는 것도 강하게 반대하던 로마 원로원인데, 동맹국들의 노예에게 로마의 군인의 자격을 주는 것은 어떻겠니? 그야말로 온몸 바쳐 반대를 했단다. 마치 우리나라 국회의 모정당을 보는 것 같았어. 원로원은 이 정책이 채택되지 못하게 하려고 고의로 곡물 가격을 조정해서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어. 그리고는 사투르니누스라는 자에게 누명을 씌어 범인으로 지목했어. 억울한 사투르니누스는 마리우스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고, 마리우스는 사투르니누스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를 돕기로 했어. 사투르니누스가 호민관이 되는 것을 돕기로 하고, 그 대신 사투르니누스는 마리우스의 정책을 돕기로 했어.

술라는 마리우스의 갈리아 원정에도 동행했어. 술라는 한가지 묘책을 이야기했어. 자신이 게르만족으로 변신해서 게르만 족에 잠입하여 정보를 빼오겠다는 거야. 마리우스는 술라의 이런 작전에 놀랐지만, 그것이 성공만 하면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했어. 술라는 자신뿐만 아니라 마리우스의 측근 중에 한 명인 세르토리우스에게 동참할 것을 권했고, 세르토리우스는 흔쾌히 응했어.

 

1.

로마의 상황을 살펴보자꾸나. 원로원은 보수파가 차지하고 평민회는 신진세력이 주도를 잡고 있었어. 평민회는 앞서 이야기한 마리우스가 후원을 해 주는 사투르니누스 호민관 중심으로 활동을 했어. 사투르니누스는 원로원 의원들의 잘못을 찾아내어 기소를 해서 유죄까지 받아냈단다. 마리우스를 위해 열일을 하고 있었어. 특히 원로원 보수파의 거물인 카이피오가 돈을 몰래 빼돌린 것을 기소해서 유죄를 받아냈단다. 카이피오는 2권에서도 이야기했었지? 게르만 전투에 참여했다가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다가 패배의 빌미가 되었던 그 사람. 그리고 아우렐리아한테 시련을 당한 드루스라는 사람이 카이피오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잖아. 드루스의 동생 리비아는 오빠의 강압에 의해 카이피오 2세와 강제결혼을 했고 말이야. 그 카이피오가 유죄를 받고 유배를 떠났어.

 

2.

, 다시 갈리아 지방으로 가보자꾸나. 게르만족 첩자 역할을 했던 술라가 오랜 뒤에 돌아왔어. 게르만족의 대표회의까지 참석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고 했어. 위장결혼까지 해서 쌍둥이까지 낳았다고 했어. , 술라는 마리우스의 동서지간으로 카이사르의 둘째딸 율릴라와 결혼을 한 몸인데게르만족 사이에서 결혼까지 했으니 첩자 노릇을 정말 제대로 했구나. 술라가 알아낸 게르만족의 상황. 게르만족은 여러 부족들이 모여 있어서 늘 갈등을 보이고 있고 단합이 안 되곤 했어. 그런데 보이 오릭스라는 자가 그들을 한데 뭉치게 했다는구나. 하지만 늘 부족간 알력으로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고 했어. 그리고 게르만족은 다음해에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할 계획이 있다고 했어. 이번 해가 아니고 다음 해라면그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권력을 유지해야 하므로, 다시 집정관이 되어야 한다고 마리우스는 생각했어. 물론 로마 원로원에서는 딴 생각을 했지. 한동한 전쟁을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집정관 출마를 위해 로마에 돌아왔단다.

….

술라도 함께 돌아왔어. 술라는 오랜만에 집에 왔어. 집에서 기다린 것은 행복이 아니고 고성이었어. 아내 율릴라와 손녀를 봐주기 위해 온 장모 마르키아가 서로 싸우며 소리 지르고 있었거든율릴라는 늘 술을 마시고 취해있었어. 그래서 술라와도 심한 말다툼을 했단다.

..

어느날 술라가 결혼하기 전 만나곤 했던 소년이 찾아왔단다. 옛날 로마 사람들은 어린 소년과 사랑을 하기도 했어. 술라는 그 소년과 애정행각을 벌였는데, 그 장면을 율릴라가 봤어.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율릴라는 자살을 했단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마르키아는 율릴라의 자살을 받아들였어. 율릴라가 심적으로 늘 불안하고 술에 취해 있어서 자살이라는 행동이 뜻밖이라고 생각은 안 한 거야. 술라의 결혼은 시작부터 행복할 수 없었던 결혼이었던 것 같아. 술라는 오히려 게르만 첩자로 있을 때 결혼한 여자를 그리워했단다.

마리우스는 다시 집정관이 되어 갈리아로 갔어. 차석 집정관으로 뽑힌 카툴루스 카이사르도 군대를 이끌고 북으로 갔단다. 카툴루스는 원로파 보수파가 꼽아놓은 보수파의 꼭두각시 같은 인물이란다. 이때가 어느덧 기원전 102년이었어. 카툴루스 카이사르는 전쟁경험도 없고 군대를 이끌 실력도 안 되는 것을 마리우스는 알고 있었어. 그래서 술라를 선임 지휘관으로 카툴루스 카이사르에게 보냈단다. 카툴루스는 썩 좋아하지 않았고 술라와 갈등을 보였어. 카툴루스는 게르만의 부족 공격에 무모한 작전을 펼쳐 패배 위기에 빠졌어. 더 이상 보고 있으면 패배가 뻔히 보여 술라는 지휘부의 지지를 받으며 카툴루스와 단판을 지으려고 했어. 술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했지. 그러자 카툴루스가 한 발 물러나고 술라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어. 마리우스와 술라의 협공으로 게르만족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단다. 이에 마리우스의 인기는 치솟았고, 그 인기로 기원전 101년 다시 집정관이 되었어.

 

3.

갈리아 지방에 있는 마리우스는 로마에 있는 루푸스와 편지를 통해 서로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정황을 알고 있었어. 로마는 여전히 원로원들이 마리우스와 척을 세우고 있었어. 마리우스는 전쟁 승리의 소식을 자신의 처남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가 전하게 했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승리의 소식을 로마에 가지고 왔단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니 아우렐리아와 만났어. 귀족이었던 아우렐리아는 평민들이 사는 수부라 생활도 잘 적응했어. 그 사이에 두 딸을 낳았단다.

율리우스가 없는 사이 여주인 역할도 잘했단다. 자신의 수부라 지역의 술집에서 말썽을 부리는 술집 주인 데쿠미우스를 내쫓으려고 직접 찾아가기 했어. 쫓아내지는 못하고 말썽을 피우지 않겠다는 선에서 협상을 했지만, , 그 사람에게서 이상한 감성, .. 사랑 같은 거? 그런 것을 느꼈어. <로마의 일인자> 마지막까지 그들의 사이가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이야기인 <풀잎관>에서 어떻게 될 지 몰라 일단 그런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 거야.

원로원에서도 승리의 소식을 전해 들었어. 원로원 보수파의 꼭두각시 카툴루스도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카툴루스의 공을 띄워주기 위해 개선식을 마리우스와 따로 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마리우스는 영리하게 로마의 재정을 걱정하는 투로 개선식은 같이 한번만 하겠다고 했어. 원로원에서는 마리우스의 말이 합리적이라 반대를 할 수 없었어. 그렇게 갈리아 지방의 게르만족의 반란을 잠재우고 로마로 돌아왔단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집정관을 안 해도 되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집정관의 권력이 필요했어. 그래서 기원전 100년 다시 집정관이 되었단다. 워낙 민심의 지지가 높아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집정관이 될 수 있었거든. 여섯 번째 집정관. 그야말로 로마의 일인자라는 소리를 들을만했어.

 

4.

마리우스가 계획했던 일은 군인이 되었던 최하층민들이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의 복지에 대한 것이었어. 그들에게 아프리카에서 얻은 땅을 나눠 주겠다고 했어. 어차피 그 땅은 로마 귀족은 물론 평민들도 꺼리는 땅이니까 말이야. 최하층민들에게 나눠주면 그들에게도 좋고, 로마에게도 좋은 것이니까 말이야. 원로원에서는 당연히 극심한 반대를 하겠지. 원로원의 반대 이유는 뻔했어. 그 동안 그런 적 없다. 마리우스가 주장하니까 그냥 반대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리우스가 위기에 빠졌어. 원로원에서 쳐 놓은 함정에 빠져서 자신의 지지기반의 신임과 지지를 잃는 일이 생겼어. 마리우스가 후원하던 호민관 사투르니투스와도 사이가 틀어졌어. 마리우스를 로마의 일인자로 불렀지만, 원로원의 옹고집 같은 권력이 더 셌어. 그런 일이 있고 마리우스는 건강마저 안 좋아져서 쿠마이라는 곳으로 요양을 갔단다. 로마는 극심한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해졌어.

한편 다음해 집정관으로 보수파가 지지하는 안토니우스라는 해군장수를 후보로 내세웠어. 나머지 집정관도 보수파인 멤미우스라는 사람으로 채우려고 했어. 마리우스가 로마를 비운 사이 권력을 차지하려고 하는 꼼수라고 할까. 다시 로마에 돌아온 마리우스. 건강상의 이유로 집정관 불출마 선언을 했단다. 마리우스와 사이가 틀어진 사투르니누스는 호민관 후보에 다시 등록하고 그의 오랜 파트너인 글라우키아는 집정관에 입후보했어. 길을 가다가 보수파의 집정관 후보인 멤미우스와 시비가 붙었다가 싸움이 벌어져 엉겁결에 멤미우스를 죽이고 말았어.

글라우키아는 그 길로 도망을 갔어. 사투르니누스는 언변이 좋아서 말로 민심을 얻어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반란까지 일으키려고 했어. 사투르니누스의 반란 도모를 알게 된 마리우스 또한 영리한 정치인이었어. 민심을 잘 이용해서 사투르니누스 일행을 체포했단다. 사투르니누스는 결국 원로원 청년 보수파들에게 피살을 당했어. 사투르니누스의 반역 모의는 로마를 대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마리우스가 사전에 잘 막아낸 것으로 반대만 하던 원로원 보수파도 이 일에 대해서는 지지를 보냈어. 마리우스는 그렇게 원로원 보수파의 지지를 얻자마자, 많은 민중들 앞에서 곡물값을 내리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어. 원로원 보수파가 반대하고 있던 사항인데, 많은 민중들 앞에서 선언을 해버렸으니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지. 원로원이 한방 먹었다고 할 수 있지

….

여기까지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로마의 일인자> 이야기란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전성기를 그린 <로마의 일인자> 분명 예전에 다른 책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만났을 텐데, 전혀 기억이 없구나. 이 책의 기억도 또 얼마 안 가서 사라지겠지. 그래도 가이우스 마리우스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좋은 기회였고,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구나. 그와 로마원 의원들의 싸움이 오늘날 진보 대통령과 수구 정당과 싸움을 연상하게 되었단다. 앞뒤 안 가리고 열등감에 찌든 반대를 위한 반대.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마리우스를 지지했고, 그가 승리를 거둘 때마다, 원로원 의원들을 당황케 할 때마다 속 시원했단다. , 이제 2 <풀잎관>을 읽어야 하는데, 지금 바로 읽을 것은 아니란다. 천천히 또 읽고 싶어질 때 읽으려고 해. 그때 또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마리우스의 개선행진을 준비하는 일은 술라에게 맡겨졌다.

책의 끝 문장: “눈이 너무 부시군!” 술라는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 빛으로부터 눈길을 돌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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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43)

니체는 유혹하는 자 역으로 적격이다. 아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편이 되고 싶을 정도이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이며 나를 오싹하게 하는 동시에 매혹시킨다. 넌 영광과 권력을 얻고 싶어 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싶어 하고,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고, 혹은 세상 모든 여자들을 유혹하고 싶어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품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그래, 어쩌면 이것들은 천박한 열망들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실제적인 것들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이것들은 우리가 이기거나 질 수 있는, 승리하거나 패배할 수 있는 영역에서 펼쳐지는 반면 기독교적 모델에 따른 내적인 삶은 반박 받을 위험이 전혀 없는 이야기들을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가 보기에 존경할 만한 존재가 되기 위한 확실한 테크닉이라 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고 비겁하고 헛된 생각일 뿐이야. 모든 것을, 각 사람의 구원을 일종의 장애물 경주를 설정해 놓은 신이 마련한 시련들로 해석하는 것은 웃기는 망상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헛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는 능력으로 심판되어야 해 그리고 우리는 예수의 말과는 반대로 사람들을 심판해야 해. 현실을 대신하는 허구들, 위안이 되는 허구들이 아니라 현실 자체를 사랑하는 능력으로 심판되어야 해. 사람들은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의 양으로 심판되어야 한다고.

(152)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는데, 그가 불쑥 입을 열더니 어린 시절에 자기를 무척 놀라게 한 일이 하나 있었다, 자기 할머니의 앵무새가 새장을 열어 주었는데도 도망가지 않아서 정말 놀랐다고 말한다. 앵무새는 날아가니 않고 바보처럼 그냥 거기 남아 있었단다. 할머니는 그 비결을 설명해 주었다. 새장 안쪽에다 조그만 거울을 하나 놓아두면 된다는 거였다. 앵무새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 거기에 홀딱 빠져든 나머지, 활짝 열린 새장 문도, 날갯짓 한 번이면 도달할 수 있는 바깥과 자유도 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160)

예수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계시의 빛을 비추거나, 아니면 눈을 멀게 하거니 둘 중 하나이다. 나는 그것을 정면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근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을지라도, 우선은 이 조사를 하류에서부터 착수하여, 바오로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을 최대한 주의 깊게 읽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359)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은 다들 알고 있고,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얘기들이다. 나는 2천 년전부터 모든 기독교 역사가들이 해왔던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한 번 해봤다. 즉 바오로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을 읽어 보고, 그것들을 서로 겹쳐 보고, 얼마 안 되는 비기독교 자료들과 대조할 수 있는 부분은 대조해 보았다. 나는 이 작업을 정직하게 수행했으며, 내가 얘기하는 것의 개연성의 정도에 대해 독자를 속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서 보낸 2년에 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의 자료도 없다 따라서 나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꾸며 낼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535)

지금까지 나는 그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야 하려 하지만 좀 겁이 나는데, 왜냐하면 요한은 제1세대 기독교도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가장 파악하기 힘들고, 가장 다양한 얼굴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곧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는 곧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동일한 사람이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 대한 모든 참고 자료가 없어진 상황에서 동일 인물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586-7)

서기 70년까지, 기독교도는 일종의 유대인이었다. 이런 혼동은 기독교도들에게 나쁘지 않은 것이었으니, 제국은 유대인들을 모두 동일시하고, 또 대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구별이 행해졌는데, 이 구별은 기독교도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로마 대화재에 대한 보복으로 불태워 죽인 것은 그들이었지, 유대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 유대인들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겨지고, 그동안 누려 왔던 기분 좋은 특권들을 모두 박탈당한 추방자의 위치로 전락했을 때, 기독교도들로서는 그들과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70년까지 그들 교회의 중심인물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 등, 유대교의 전통에 충실한 유대인들이었다. 바오로는 그가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비주류의 말썽꾼이 불과했다. 그런데 70변부터 모든 게 바뀐다. 야고보의 교회는 광야의 모래 속에 사랴져 버렸고, 요한의 교회는 편집광적인 비의주의자들의 종파로 변했다. 바오로와 그의 탈유대적 교회에게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바오로 자신은 없었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루카는 이 바오로의 기독교 내 중진 중의 하나였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자신은 완전히 은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고, 게임은 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옛 동지들이 아니냐, 모든 게 다시 시작돼, 우리에게 당신이 필요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676)

기독교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떤 것이 되었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떤 아이가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 아이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로 남아있는 아이는 죽은 아이, 기껏해야 지진아일 뿐이다. 예수는 이 유기체의 유년기였고, 바오로와 초기의 교회는 반항적이고 열정적인 청소년기였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과 더불어 서구기독교의 긴 역사가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무거운 책무들과 대단한 성공들과 엄청난 권한들과 타협들과 부끄러운 과오들로 채워지는 성인(成人)의 삶과 전문적 커리어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계몽사상과 근대성은 은퇴의 시간이 왔음을 알렸다. 이제 교회는 실무에서 물러났고, 전성기가 지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우리가 아주 무관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그것의 노년이 과연 고약한 치매증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자신의 노년에 이르고 싶어 하는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 빛나는 지혜 쪽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차원에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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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2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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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로마의 일인자 2권을 이야기해줄게. 2권은 기원전 107년부터 시작해. <로마의 일인자> 전체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수석집정관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과 함께 처음으로 집정관이 된 해였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로마 출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으로 그가 집정관이 된 것을 불만을 갖고 있던 로마 원로원 회원들이 많았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그 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일들을 해 나갔어. 그에게 현재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프리카 땅에서 일어난 누미디아 반란을 잠재우는 일이었어.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치뤄야 하는데 군인이 부족했어. 그래서 그는 군인 자격이 없는 최하층 남자들을 군인으로 모집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어. 원로원의 격심한 반대가 있었지. 원로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파 회원들이 있었는데, 로마를 지키는 군대는 로마의 평민 계급 이상이어야 한다고 했어. 군인은 로마를 지키는 자존심이라서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마리우스는 최하층 남자들을 군인으로 뽑는 것은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어. 사회문제의 원천인 최하층 남자들에게 경제력을 주어 사회문제를 줄이고, 부족한 군인들을 보충할 수도 있다고 했지. 결국 집정관의 권한으로 법은 통과되고 최하층 남자들까지 모집해서 아프리카 원정을 떠났단다.

이때 재무관이자, 동서지간인 술라도 같이 가고, 처남들, 그러니까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같이 갔어. 아프리카에서는 누미디아의 유구르타가 전투를 피하고 다녀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되는 것처럼 보였어.

한편 북쪽에서는 게르만족의 계속된 침입으로 골치가 아팠어. 게르만족과 전투에서 계속 패배를 했거든. 기원전 107년의 로마는 남쪽에서는 아프리카 속국에서 일어난 반란을 정리해야 하고, 북쪽으로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아야 하는 어려움에 빠져 있었어. 마리우스도 이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빨리 아프리카를 정리하고 북쪽으로 향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1.

기원전 106년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와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가 집정관이 되었어. 카이피오가 게르만 원정에 갔다가 패배했어. 하지만 게르만족은 아직 더 이상 남하하지는 않고, 갈리아 지방에 넓게 눌러 앉아 있었단다. 하지만 늘 골치덩어리였고, 언제 쳐들어올 지 몰랐어.

아프리카 누미디아에서는 우연한 일로 적의 요새를 발견하게 되었어. 달팽이 요리를 좋아하는 어떤 병사가 달팽이 냄새를 따라 갔다가 그곳에서 유구르타 군대의 요새를 발견했어. 그래서 그 요새를 몰래 타격해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그 전투를 기점으로 마리우스가 이끈 로마군이 우세해졌어. 하지만,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어. 그들의 후방에는 유구르타의 장인인 보쿠스 왕이 이끄는 미우레타니아의 군대가 있었거든.

다시 해가 바뀌어 기원전 105. 집정관은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와 나이우스 말리우스 막시무스.

……

술라의 대활약이 있었어. 술라는 유구르타의 장인 보쿠스 왕을 설득 반 협박 반으로 포섭을 했어. 보쿠스 왕을 이용해서 함정을 만들어 드디어 유구르타를 생포할 수 있었단다. 이로서 누미디아 반란을 정리하게 되었어.

2..

그 오래 전에도 당연히 사랑이야기가 있었단다. 잠시 원로원과 집정관 사이의 정치 싸움을 뒤로 하고 사랑이야기 하나 전해줄게. 집정관인 루푸스의 조카 중에 빼어난 미인 아우렐리아가 있었어. 구혼자만 무려 서른일곱 명이라고 했어. 대단하구나. 루푸스는 여동생 부부에게 조언을 했어. 아우렐리아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시키라는, 오늘날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말을 했어. 아우렐리아는 현명하기 때문에 괜찮은 배우자를 고를 거라는 거지. 그러면서 루푸스는 아우렐리아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어. 그 자리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도 초대해서 동석시켰어. 말은 안 했지만, 거의 맞선 자리가 아니겠니. 루푸스는 아우렐리아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시키라고 하면서 그 앞에 괜찮은 남자를 하나 턱 갖다 놓은 거야. 허허.

아우렐리아와 카이사르 2세는 서로 한 눈에 반했단다. 아빠가 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동명이인이 많다고 했잖아. 여기서 이야기하는 카이사르도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니야… (사실은 그의 아버지란다.) 결국 아우렐리아와 카이사르는 결혼을 했어. 아우렐리아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카이사르 2세는 평범했어. 하지만 아우렐리아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단다. 그리고 아우렐리아는 진취적이면서 어떤 일을 해도 똑부러지게 잘 했어.

아우렐리아에게 구혼했던 서른일곱의 남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지. 그 중에 엄청 상처 받은 루푸스의 처조카 드루수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드루수스는 홧김에 부자인 카이피오를 찾아가 겹사돈을 맺자고 했어. 그러니까 드루수스와 카이피오의 딸 오다와 결혼을 하고, 드루수스의 여동생과 카이피오의 아들 카이피오 2세와 결혼하자고 했어. 카이피오는 드루수스의 능력과 유력 가문임을 알고 있었기에, (거기에 집정관의 처조카 아닌가…) 흔쾌히 허락했어. 그런데 드루수스의 여동생 리비아가 극구 반대했어.. 그 일로 드루수스는 리비아를 며칠 동안 가두기도 했어. 결국 리비아는 무슨 마음인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오빠의 뜻에 따랐단다.

.

4.

게르만족과 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어. 카이피오, 말리우스, 아우렐리우스가 각각 군대를 이끌고 왔는데, 각기 군대를 따로 이끌어서 의견 차이도 심했어. 특히 카이피오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고, 무모한 자신감으로 혼자 진지를 구축한다고 했어. 그것도 모두가 반대하는 위치에 말이야. 그곳에 진지를 구축을 하면 백전백패라는 것을 알기에 다들 그를 설득했지만 끝까지 고집했어. 아우렐리우스는 최전방에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전쟁보다 협상으로 전쟁을 막아보려고 했어. 그래서 게르만 장수들과 만나 협상을 했지만, 협상은 결렬됐어. 게르만족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와서 로마군과 전투를 벌였고, 로마군은 대패했단다. 죽은 군인 수만 8만 명에 이르고 군인이 아닌 사람도 2만 명이 되었다고 했어.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

카이피오는 빨리 로마로 가서 자기를 변호하려고 했단다. 원로원은 아무래도 첫 번째로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의 말을 믿을 테니 말이야. 그러나 원로원으로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코타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지름길로 로마에 먼저 도착했어. 비극적인  소식을 전했고, 그 원인이 카이피오의 고집 때문이라고 했어. 로마는 충격에 빠졌어. 집정관이었던 루푸스는 게르만 족과 전쟁은 아프리카의 승리를 이끈 마리우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그가 총사령관으로 군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다음해에 집정관의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했어. 원로원들은 무조건 반대했어.  그리고 마리우스는 아직 로마에 오지도 않았잖아. 부재자를 집정관으로 뽑은 역사는 없었거든그렇게 반대를 하지만, 다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어.

...

하지만, 원로원 회원 중에서도 마리우스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호민관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어. 결국 마리우스는 두번째 집정관이 되었어. 이 소식을 그는 아프리카 땅에서 들었단다. 술라와 함께 귀국했어. 술라는 마리우스와 동서이면서 측근으로 마리우스를 잘 따랐지만, 그의 속마음은 대단한 야심과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겉으로 지금 그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야.

여기까지가 로마의 일인자 2권의 이야기란다. 21권의 긴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읽기에는 아빠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해서, 줄거리를 좀 자세히 적었단다..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 때 좀 읽어보려고 말이야. 그리스와 더불어 민주주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원로원과 집정관의 알력다툼을 보고 있노라니,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본모습은 소수권력을 가진 자들의 다툼인가 싶었단다.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가이우스 마이우스의 첫 집정관 직만큼 당사자에게 중요한 집정관 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책의 끝 문장: 토가 칸디다를 입고 로마에 출두하지도 않은 사람이 3년만에 집정관으로 다시 뽑히질 않나, 최하층민을 군에 입대시키질 않나, 대신관과 조점관을 선거로 뽑질 않나, 누가 무엇을 통치할지에 대한 원로원 결정을 평민들이 뒤엎질 않나, 원로원에서 로마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질 않나, 신진 세력과 신출내기들이 실권을 행사하질 않나, 이런 젠장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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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2019-08-28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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