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기레기 신문이 다 되었다는 소리를 듣는 한겨레이지만, 아직 한겨례문학상 수상작들은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을 늘 한단다. 그래서 한겨레문학상의 수상작에 대해서는 살펴보곤 한단다. 2018년 한겨례문학상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 강주룡은 사람일 테고, 체공녀는 무슨 뜻이지? 분명 실존했던 사람일 테고책 뒤쪽에 오래된 잡지에 실린 기사를 사진으로 찍어 실어놓았더구나.

그곳에는 한자로 을밀대상의 체공녀라고 제목을 적었고, 여류투사 강주룡이라고 써 있었단다. 체공녀. 한자로 쓰면 滯空女. 한자의 뜻풀이를 하면 공중에 머무르고 있는 여자라는 뜻이란다. 왜 강주룡이라는 여자는 공중에 머무르고 있었을까? 그 이야기를 소설 <체공녀 강주룡>이 해주고 있단다. 지은이는 박서련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작가란다.


1.

때는 1920년대 초반. 장소는 서간도 통화현. 그래, 그 시절 이야기야. 우리 민족이 가장 아픈 시절을 살던 시절. 강주룡은 나이 스물이었고, 열다섯 살 최전빈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어. 주룡의 아버지가 알아봐 준 자리였어.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사람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최전빈은 독립운동을 할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어. 그가 집을 떠나 독립운동을 할까 봐 그의 부모들이 서둘러 결혼을 시킨 것이란다.

하지만, 강주룡은 최전빈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독립군에 참여하기로 하고, 둘이 밤에 몰래 집을 떠나 독립군 부대로 향했단다. 최전빈과 강주룡이 속한 독립군 부대의 대장은 백광운이라는 사람인데, 백광운은 주룡에게 편애하는 듯했어. 그러자 좋지 않은 소문도 나고.. 주룡은 결백한데 말이야. 난처한 것은 최전빈이었지. 그렇게 다정했던 최전빈이 그 일로 강주룡과 말다툼을 했는데, 강주룡은 그 길로 서간도 친정 집으로 돌아왔단다. 참고로 1920년대의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강주룡의 행동과 말을 보면 안돼. 강주룡은 늘 당당했단다.

친정 집에서 지내고 있던 어느날 독립군 동지가 찾아왔단다. 전빈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어. 그 길로 주룡은 독립군 동지와 함께 전빈이 있는 곳으로 왔어. 하지만 전빈은 이미 회복은 어려웠어. 임종이라도 지킨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짧은 강주룡과 최전빈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강주룡으로 시댁에 가서 최전빈의 사망 소식을 전했어. 최전빈의 사망 소식에 이성을 잃은 전빈의 부모는 주룡에게 욕하고 마구 때렸어. 슬픔을 이기지 못한 행동으로 이해가 가면서도, 주룡도 불쌍하더구나. 강주룡은 시댁 식구들의 고소로 살인죄로 구치소에 갇히기도 했단다. 며칠 뒤에 풀려나서 다시 친정으로 왔어.

아버지는 차갑게 주룡을 대했고, 아예 서간도를 떠나 다시 한반도로 들어왔어. 사리원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단다. 아버지는 주인집 영감에게 주룡을 시집 보내려고 했어. 이에 주룡은 몰래 집을 떠나 도망갔단다. 이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을 거야.


2.

평양에 도착한 강주룡. 평양 고무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단다. 관리인들과 공장장들의 갑질에 한마디 하지 못한 여공들의 삶. 그것이 당연한 듯 생활하던 어느날, 주룡은 우연히 노동조합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들게 되고 그들과 함께 노동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남자였어.. 그 와중에 몇 안 되는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일침은, 노동 운동을 하는 남자들에게도 교훈이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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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

자료지를 보고 문득 궁금해진 것을 물어본 것이니 마음 쓰지들 마시라요. 실례했습네다. 한데 생각한 것보담두 대답들이 시원찮습네다. 비록 짧은 생각이지마는 내래 여러분의 배우자들은 여러분과 같은 사상을 가졌으리라구 생각하지 않습네다. 해가 저문 시방 이 시각에 여러분은 이 자리에 있구 그네들은 가정을 지키구 있는 탓입네다. 내처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러분은 그네들의 사상이 어떤지 궁금해본 적두 없을 거입네다. 내심 아녀자의 무학무식이 당연하구, 여러분이 공산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하는 거이니 부인도 도매금으루 공산 부인인 거이 당연하다 여기시디요. 이 말이 옳지 않다면 시비 가려주시라요. 틀렸다 하신들 여러분이 부인에겐 이런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고 혼차서 예 와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네다. 부인들께선 아일 적부터 배운 법도대루 남편에게 순종하여 집을 지키고 있는 거이 아닙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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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입에 착착 달라 붙고, 북쪽 사투리가 정감이 있으면서도 얼마나 설득력이 있던지강주룡의 이야기를 듣던 이들은 노동운동의 기운을 더 얻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들의 노동 운동은 자본가들과 경찰들의 강압에 의해 크게 효과를 내지 못했어. 공장주들은 불경기를 이유로 임금을 내리겠다고 했어. 노동자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일방적이었지. 강주룡은 안 되겠다 싶었어. 아무도 하지 않았던 노동 운동 방식을 선택했어.

을밀대. 6세기 고구려가 평양성의 내성을 쌓으면서 그 북장대(北將臺)로 세운 것. 그런 을밀대 지붕에 자리를 잡았어. 단식 고공 투쟁을 시작했단다. 체공녀 강주룡은 그렇게 생겨난 말이란다. 결국 강주룡의 이런 투쟁으로 공장주는 임금 인하 계획을 철회했단다. 하지만 강주룡은 이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단다. 그리고 병을 얻어 오래 살지 못하고, 30년 남짓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단다. 참 안타깝구나.

강주룡은 그렇게 안타깝게 죽었지만, 그의 후예들이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단다. 부당한 처우에 대한 정당한 노동운동은 오늘날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은 좋아졌으니, 한 노동자인 아빠도 강주룡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본다.


PS:

책의 첫 문장: 오래 주렸다.

책의 끝 문장: 저기 사람이 있다.


시집올 때야 이런 날이 올 줄을 어찌 내다보았으랴. 솔직한 말로 주룡은 나라가 무엇이고 독립은 또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를 지켜주지도 돌보아주지도 못한 나라가 독립은 해서 무슨 소용인가. 나라의 이름 같은 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내 가족이 굶지 않고 춥지 않게만 살면 됐지. 주룡의 생각은 그랬다. 떳떳한 것은 없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마음이었다. 독립군 바람이 든 어린 서방에게 기어이 가려거든 저를 데려가라 우긴 것도 서방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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