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 주술사부타 AI 의사까지, 세계사의 지형을 바꾼 의학의 결정적 장면들!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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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서민 교수의 책 중에 아빠가 가장 먼저 읽은 것은 <기생충 열전>이라는 책이란다. 신선한 충격의 도가니였어.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주위에 선물도 하고 그랬지. 그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 이후에 서민 교수의 책들을 몇 권 더 찾아서 읽고, 신간이 나오면 관심 있게 살펴 보았단다. 그런데 <기생충 열전>만한 책을 만나지 못했어. 첫 번째 책이 너무 좋아서 그 이후 기대치가 너무 상승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서민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 기생충 관련된 책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의 책들을 많이 쓰신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은 서민 교수 자신의 전공 분야와 가까운 주제를 다룬 책이란다.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그러니까 의학 관련된 역사를 다루는 책이야. 서민 교수가 아니고 다른 의학 교수가 의학세계사를 썼다면, 읽어볼 마음이나 가졌겠니. 서민 교수가 썼다고 하니 쉽고 재미있게 썼겠지, 하고 책을 들었단다. 의학세계사라고 하는 다소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서민 교수답게 글을 쓴 것 같구나. 일단 읽기 편해서 좋았단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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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991년 알프스 산을 오르던 독일인 부부가 얼음 속에서 엎드려 있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냉동된 덕분에 시체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처음에 경찰은 이 사람이 혹시 실종됐다던 학교 선생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이상한 점이 많았다. 시체에 도끼며 화살 같은 것들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자들은 그가 기원전 3400년경에 죽은 신석기시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발견된 곳이 외치계곡이어서 이름을 외치라고 했다. 얼음에 갇혀 있었는지라 아이스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5000년 전 인간이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니, 한바탕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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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얼음 속에서 발견된 5000년 전의 인간 외치. 얼음 속에 있는 외치의 시신은 온전치 보전되어 있었단다. 그의 몸에 여러 곳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어. 그런데 문신이 있던 곳을 보니 그가 병을 앓고 있던 부분과 같았대. 그래서 그 시절에는 문신이 치료의 한 방법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는구나. 이 책은 이 외치라는 신석기시대의 인물이 시간을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심장병을 고칠 수 있는 의료기술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단다.

그러면서 의학에 있어서 굵직굵직한 사건과 위대한 발견들, 유명한 의사나 의학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세계를 뒤흔든 병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단다. 유명한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히포크라테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아직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잖니. 그를 의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처음으로 의학을 과학으로 만든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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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2)

그를 의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가 선서 때문만은 아니다. 히포크라테스 이전의 의학은 주술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질병=신이 내린 징벌로 여기던 시대였으니, 마법사가 병을 치료한다고 나선 것도 무리는 아니다.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기원전 377?)는 모든 질병에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환자의 소변을 맛보기도 하고, 폐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으며, 환자가 호흡하는 모습과 안색 등을 살피기도 했다.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제거해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점에서, 히포크라테스야말로 의학을 과학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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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히포크라테스가 있다면 로마에서는 갈레노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의사들한테는 아주 유명한 사람으로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의사라고 하는구나. 이븐 시나를 비롯하여 이슬람 지역의 오래 전 의사들도 소개해 주었어.

기독교가 장악한 중세시대에는 의학도 많이 발전하지 못했고, 중세를 거쳐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낸 제너에 관한 이야기도 주었단다. 소젖을 짜는 여인들이 우연이 우두에 걸린 소와 접촉을 했는데, 그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제너가 우두를 이용하여 천연두를 걸리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대. 그래서 만든 것이 천연두 백신이었어. 인류 역사 최초의 백신이었어. 이후 천연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병에 대한 백신 연구가 이루어졌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단다. 옛날에는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가들이 죽는 경우가 많았는데, 백신이 발명된 이후에는 백신으로 예상접종을 하게 되어 영아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영국의 채드웍과 존 스노라는 사람이 있었어. 전염병이 물을 통해서 전파된다는 것을 깨닫고 물 관리를 국가에서 신경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각성하게 한 사람들로 인류 건강에 기여를 한 사람들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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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69)

콜레라뿐 아니라 나쁜 대장균, 장티푸스, A형 간염, 소아마비 등 수많은 질병이 물을 통해 전파된다. 가난한 나라들에서 이런 질병들이 쉽게 유행하고, 사망자도 많이 나오는 이유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늘 안전한 건 아니다. 1993년 미국 밀워키에서 발생한 와포자충이라는 기생충 질환은 40만 명의 감염자를 낳았고, 그중 69명이 죽었다. 이 사태의 원인은 밀워키에 물을 공급하던 물탱크 둘 중 하나가 오염된 탓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물 관리야말로 국가가 신경 써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법적 토대를 마련한 채드웍도 큰일을 했지만, 집집마다 다니면서 콜레라 역학조사를 했던 존 스노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훨씬 더 큰 희생을 치렀어야 했으리라. 그가 공중보건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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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사람만 더 소개해 주어야겠구나.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이라는 사람이야. 그가 1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람으로 이름은 알고 있었어. 어렸을 때 어린이 백과사전 같은 데서 처음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구나. 그런데 그의 인성이 그리 훌륭했던 사람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구나. 너희들에게 그의 그의 인성을 배웠음 하구나. 노벨 물리학상으로 받은 상금을 과학발전과 장학금을 위해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X선에 대한 특허 소유도 거절을 했다는구나. 자신은 자연에 있는 X선을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야. 참 멋진 사람이로구나. 너희들을 위한 뢴트겐에 관한 학습 만화나 위인전을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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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1901년 뢴트겐은 엑스선의 발견으로 제1회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상금을 뷔르츠부르크대에 과학 발전과 장학금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했다. 이후에도 뢴트겐에게 엑스선으로 특허를 내자는 독일 기업의 제안도 거절했다. 엑스선은 자신이 발명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니 모든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허라는 제약이 사라지자 누구나 자유롭게 엑스선에 관해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엑스선 관련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이 2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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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계를 뒤흔든 질병들도 많단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흑사병이구나. 이 책에서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아주 무서운 병이야. 세계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병. 중세시대 이 흑사병이 널리 퍼졌을 때, 약을 써도 잘 듣지 않으니까, 가톨릭 사제들의 기도로 병을 낫게 하려고 했지만, 사제들의 사망률이 일반 사람들보다 더 높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 흑사병으로 인해 가톨릭을 비롯한의 신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대. 흑사병에 대처를 하면서 인류는 의학에 발전도 이루였다고 하는구나. 방역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고, 전염병에 퍼지지 않도록 사람들을 일정기간 격리시키는 검역도 시작하기 시작했다는구나.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난치병과 불치병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게 되었어. 그렇게 오늘날 일부 국가에서는 기대수명이 90살이 넘기도 했대. 하지만,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병이 있으니 암이라는 병이란다. 우리 몸 어디서든 암세포는 발생할 수 있는데, 이 암은 아직 정복하지 못했대. 어떤 썰에 의하면 암 진료가 의사들의 가장 큰 돈벌이라서, 일부러 암을 정복하지 않았다는 음모론도 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냐. 아무튼 미국 정부가 몇 십 년 동안 돈을 쏟아 부었지만 암에 대한 큰 성과는 없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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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루니의 예상과 달리 과학자들은 암과의 전쟁에서 참패했다. 1971년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 정부는 220조 원을 쏟아부으며 암 연구를 독려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에서 암으로 죽은 사람은 56만 명으로, 1971년보다 오히려 23만 명이 늘었다. 암과 싸우던 과학자들이 패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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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푸른곰팡이로부터 얻은 페니실린이라는 최초의 항생제. 아빠는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잘 몰랐단다. 영국 문화원에서 전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난 80년간 세계를 바꾼 사건을 조사했는데, 거기서 페니실린이 2등을 했다는구나. . 아빠는 페니실린이 지난 80년 안에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있었고, 그것이 세계를 바꿀만한 대단한 발견이라는 것도 잘 모르는데, 온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더구나. 설문 조사를 한 전세계 1만 명이 아빠처럼 평범한 보통 사람 맞나? 혹시 의사들을 상대로 한 조사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무튼 페니실린은 그렇게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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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페니실린의 등장과 함께 인류의 평균수명은 1950년대 50대에서 현재 80대 이상으로 늘었다. 혹자는 페니실린이 없었다면 현재 인구 수가 절반 이하일 거라고도 말한다. 페니실린의 위력은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영국문화원이 전 세계 1만 명을 대상으로 최근 80년간 세계를 바꾼 사건을 뽑아달라고 요청했는데, 1위는 ‘www’, 2위가 바로 페니실린 대량생산이었다. PC 보급, 원폭 투하, 소련 붕괴보다도 앞선 순위라니,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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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위대한 발견이 여러 개의 우연들이 만났다는 점이야. 누구간의 실수, 우연히 서늘한 여름 날씨 등 여러 개의 우연이 만나 발견된 페니실린. 페니실린이 발견된 이야기도 재미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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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곰팡이에 의해 성장이 억제된 그 세균은 상처만 났다면 잽싸게 달려와 인명을 살상하던 포도상구균이었으니, 그 물질이 분리돼 약으로 만들어진다면 당시 40대 언저리에 머물던 인류의 평균수명을 20년쯤 늘려줄 터였다. 그러니 플레밍은 인류의 운명을 뒤바꿀 엄청난 발견을 한 셈이었다. 여기에는 운도 따랐다. 푸른곰팡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곰팡이가 아니다. 그런데 아래층에 있던 동료 과학자가 푸른곰팡이를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창문을 통해 날아와 플레밍이 키우던 세균의 배양접시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엔 배양접시를 배양기에 넣어두지 않고 휴가를 가버린 플레밍의 부주의도 한몫을 했다. 또다른 행운은 푸른곰팡이는 원래 낮은 온도에서 자라는데, 그해 여름 런던의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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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래의 의학은 또 어떤 역사를 써나갈까? 인간 평균 수명 100세 시대는 정말 올 것인가? 암도 정복할 수 있을까? 요즘 AI가 여기저기 많이 활용되고 미래에는 여러 직업군을 대체한다고들 하는데, 의사도 AI로 대체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병을 진단하는데 있어 컴퓨터보다 사람이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고 하는구나. AI의 진단이 좀더 정확해지고, 인간적인 기능 그러니까 친절함 같은 것까지 탑재하게 된다면, 불친절한 의사들은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친절한 의사들도 많지만, 불친절한 의사와 간호사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병원에 갔다가 불친절한 의사와 간호사로 인해 기분이 확 상해서 병원문을 나설 때, 빨리 AI로 대체되어야 해.. 이런 생각을 하곤 했거든.

….

최근에 중국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계가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일 확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고….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새로운 병이 생겨나는구나. 이 새로운 병으로 인해 중국에서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부디 빨리 치료제가 만들어져서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어느 분이 묻습니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죠?”

책의 끝 문장 :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1930년대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기 전까지, 인간은 장미 가시에 찔리기만 해도 일가친척을 불러 유언을 전해야 했습니다. 사소한 상처로 인해 감염이 발생하면 사망으로 이어졌던 것이죠. 페니실린으로 시작해 각종 항생제들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근교 지역에서 흔히 열리는 장미축제에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유명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사인이 바로 장미 가시에 찔려서 발생한 감염이었으니까요. - P6

이븐 시나는 뛰어난 의학자이기도 했지만, 그의 지식은 철학과 논리학, 종교학, 형이상학까지 뻗어 있었다. 때문에 그를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 P96

신항록 개척시대 이후 인류의 기호품으로 소비되어온 담배와 건강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다국적 담배회사는 과학자들과 비밀리에 계약을 맺었고, 과학자들은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숨겼다. 1963년에 이미 흡연이 암을 유발하고 니코틴이 중독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면, 담배회사는 1990년대까지도 이를 부인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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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과학자들이 우리의 피 같은 세금을 써가며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수많은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중 우주론이 오늘날의 과학이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문턱을 넘을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중 우주론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현대 물리학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문제, 우주상수와 미세 조정의 문제, 양자 얽힘의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끈이론과 M이론 등 인간의 이성 안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그림을 제공해준다.

(75)

0차원.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좌표축의 개수가 0인 세계. 여기에는 가로, 세로, 높이가 없고 시간의 차원도 없다. 이 세계는 시간과 무관한 그저 의 세계다. 점의 수학적 정의는 크기를 갖지 않는 최소의 단위. 이 모순되어 보이는 정의처럼, 0차원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크기도 갖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다. 시간, 공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만약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어떤 존재일까? 그는 아마도 세계 그 자체일 것이고,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세계는 나다. 나는 세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세계이고, 나는 나다.’ 그는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에 무척이나 어색함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존재와 부재는 구분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78-79)

만약 지금의 수치와 달리 아주 작은 차이만 있었더라도 우리 우주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 질량이 이미 정확하게 밝혀져 있는데,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조금 더 무겁다.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미세해서 고작 전자 2개 정도의 질량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너무도 미미하다. 그런데 이 미세한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차이를 만들었다. 더 무거운 중성자가 붕괴하며 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우리 우주의 모든 물질을 구성한 것이다. 만약 반대였다면 양성자가 약간 더 무거웠다면 양성자가 붕괴하여 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원자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의 물질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은하계와 태양계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며, 우주의 구조도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과 인간의 탄생이 불가능한 건 말할 것도 없다.

(103)

0부터 10^-43. 10^-43이라는 숫자가 친숙하지 않으니 분수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 1 뒤에 0 43개 붙는다. 왜 하필 이 시간을 우주의 첫 번째 시기로 말하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이 시간은 플랑크 시간이라고 하는데, 물리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최소의 시간 단위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극단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우주가 탄생한 이후 플랑크 시대라고 한다. 사실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이 시기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우주의 네 가지 임인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 모두 통합되어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류가 언제가 모든 것의 이론을 갖게 된다면, 아마도 이 시기에 대해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우주 크기는 10^-33cm 정도였다. 모든 것이 이 한 점에 뜨겁게 압축되어 있었다. 여기에 당신도, 나도, 이 책도, 의자도, 나무도, 그랜드캐니언도, 우주정거장도, 인간의 사유와 언어와 문화와 역사도 모두 함께 뭉쳐 있었따.

(111)

우주의 크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월적 거대함 앞에서 내 일상의 사소함은 너무도 하찮게 느껴진다. 현대의 이르러서도 인류가 을 놓지 못하는 철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가치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신이 인간의 기원일 것이라는 상상의 나의 존재론적 하찮음을 해소해준다.

(229)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크리슈나는 신의 본성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그대에게 자아의 신성(神聖)에 대해 설명하겠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틀을 갖지 않는다. 자아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중간이며 끝이다. 자아는 모든 존재의 탄생이고 시작이며, 끝이자 죽음이다. 자아는 영원하니 결코 태어난 적이 없고 결코 죽은 적이 없다. 자아는 모든 곳과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고 자기 속에 모든 만물이 존재한다. 자아 없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란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없다.”

(274)

노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덕이 없는 사회에서는 인이 강조되고, 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의가 강조되며, 의마저도 없는 사회에서는 예만 강조된다. 쉽게 말하면, 자기 내면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인자함이 중요시되고, 인자함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의리가 중요해지며, 의리가 사라진 사회에는 예절이 강요된다는 것이다.

(383)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무아설에 있다. 자아의 실체를 부정하는 세계관은 지금까지의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개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하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는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을 상정하고,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합리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도 사유하는 존재로서 자아의 자기동일성을 강조하며, 특정 종교나 사상을 떠나서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매우 상징적이고 친숙한 사고방식이 내가 있다는 전제이니 말이다.

(430)

플라톤은 우리의 머릿속에 혹은 영혼 속에 절대적이고 완벽한 이성적 개념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이렇게 이데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의 영혼은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지만 육체를 갖고 이를 망각한 상태로 지상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를 상기론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지식은 현실의 경험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 남아 있는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얻게 된다.

(479)

흔히 서양 사상은 두 가지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은 그리스*로마의 정신을, 헤브라이즘은 <구약>성서의 세계관을 말한다. 헬레니즘은 서양 철학의 기원이 되었고,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의 기원이 되었다. 이것은 언뜻 대립하는 사상처럼 보인다.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철학과 절대자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신본주의적 종교, 하지만 대립하는 두 사상은 근원에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것은 이원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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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그때의 심정을 이봉창은 <상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때부터 나도 직장일이나 생활이 점점 타락으로 치달아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상도 저절로 변해 어떤 사상 운동에 몸과 마음을 던지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엿봤으나 좋은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때의 사상은 특별히 정한 사상은 없었다. 무엇이든 좋다.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갈 기분이었다. 그후 다시금 생각하게 돼 나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선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우리 2천만 동포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109)

이봉창은 자신이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는 조선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인임을 깨닫는 그 순간 이봉창은 일본인이 되어 어떻게 하든지 식민지 백성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는 조선인이라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에는 편지도 보내지 않았으며 또한 본명도 밝히지 않고 언제나 항상 일본이름을 쓰면서 어디에 가든 진짜 일본인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본명을 사용해서는 이 세상을 편안하고 태평스럽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언짢은 마음 참을 길이 없었고, 당당하게 본명을 쓰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29)

그날 저녁 김구는 이봉창이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와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봉창은 김구에게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제 나이 서른하나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하여도 과거 반생 동안 방랑생활에서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해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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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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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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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최근에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를 여러 권 읽는 것 같구나. 아빠가 재미있는 것들만 우연찮게 고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재미있었어. 그래서 또 기대를 갖고 책을 펴는 것 같아. 이번에 읽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도 괜찮았단다. 앞표지의 하이힐 신은 발이 다소 자극적이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어. 무슨 내용이길래, 이런 디자인을 표지로 했을까. 책을 읽고 나서야 왜 이런 디자인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갔단다. 그리고 읽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앞표지의 디자인 속 다른 것도 보였단다. 군인 모양의 작은 인형들이 있었어. 군인들과 하이힐. 이 소설들과 모두 관련이 있단다..

지은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라는 분은 아빠 입에 달라붙지 않아서, 누군가 <판탈레온 특별봉사대>소설을 지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이야기할 것 같구나. 그냥 페루 사람이야.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구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아빠는 이분의 소설을 처음 읽어봤는데, 1960,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는구나. 이 소설도 1975년 출간한 책이었어. 나중에는 정치에도 참여하여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떨어졌대. 각종 문학상들을 섭렵하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그는 2010년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문학동네에서 이 책을 출간한 것이 2009. 2010년에 이 책이 좀 많이 팔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예측을 하고 출간할 것일까?^^ 아빠가 페루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아무래도 처음이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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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구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바꾸었고 말이야. 이 소설은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어찌하다 보니 지은이가 직접 감독까지 했다가 망했다고, 자학 개그를 하듯 서문에서 스스로 이야기했어. 원작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원작소설로 만든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려나?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군인인데, 그야말로 완전 모범 장교였어. 그는 명령과 군법이라고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사람이야. 아내 포치타와 어머니 레오노르 부인과 함께 리마에 살고 있었어.

어느날 특수임무를 받게 된단다. 아마존 밀림 지역인 이키토스에 가서 특수 비밀 임무를 해야 했어. 그 업무는 군인 신분을 숨기고 특별봉사대를 조직해서 운영하는 것이란다. 그가 비밀업무를 맡게 된 배경이 있단다. 그 아마존 밀림지역의 수천 명의 병사들이 지내고 있었는데, 인근 마을에서 강간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었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특별봉사대를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군인들을 위한 성접대를 하는 부대인 거야. 예전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기지촌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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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인 판탈레온은 그런 명령을 받아도 한마디 토를 달지 않고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어. 식구들도 그가 하는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단다. 군복도 입지 않고 하는 업무이니까 무척 중요한 업무라고만 생각했어. 그렇게 수국초특이 만들어졌단다. 수국초특은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의 줄인 말이었어. 판탈레온이 일하는 방식은 한 치 오차도 없었어. 그가 사전에 이렇게 조사하는 것을 보면 통계의 미학을 보는 것 같았어. 특별봉사대 이용 가능자수와 개인당 월평균 희망 횟수, 개인당 평균 희망 소요 시간을 조사하고, 필요한 봉사대원의 수를 산정했어.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다 집어 넣고 말이야.

그렇다고 그가 원하는 봉사대원을 모두 한꺼번에 구할 수도 없는 노릇. 우선 4명으로 시작했단다. 이키토스의 포주들의 도움을 받았어. 밀림이다 보니 그들이 이동하는 방법도 쉽지 않았어. 군인들이 사용하던 군대에서 사용하다가 이제는 쓰지 않는 선박과 비행기를 구해서 개조해서 사용하기로 했어. 그렇게 첫 수국초특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단다. 반응이 좋았어. 그리고 수국초특에서 일하는 여자들도 정기적인 수입과 휴식이 보장되고, 손님들이 매너가 좋다 보니 그 전에 길거리에서 일하는 것보다 만족도가 좋았단다.

수국초특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도 생기기 시작했어. 판탈레온은 수국초특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성접대하는 창녀로 보지 않았어. 그는 그들도 군대의 한 멤버로서 다루었단다. 처음에 4명으로 시작했던 수국초특은 8, 10, 15, 20명으로 점점 불어났어. 그렇게 수가 늘어나도 수천 명의 군인들을 상대하기는 그 수가 부족하다 보니 멀리 있는 곳에서 근무를 하는 군인들은 불만이 많았어. 심지어 예전에는 강간 때문에 민원을 넣었던 인근 마을에서 이번에는 자신들도 수국초특을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민원을 넣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일어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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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아빠가 그 이야기를 안 한 것 같은데, 지은이의 유머 감각이 뛰어난단다. 사실 군대를 위한 성접대가 그리 유쾌한 주제가 아니고, 어찌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지은이는 블랙 코미디 같은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단다.

2.

가끔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도 있었어. 어떤 특별봉사대원이 군인과 사랑에 빠져 몰려 결혼을 하고 둘이 탈영한 것이었어. 봉사대원은 수국초특에서 쫓겨나게 되어 다시 거리의 여인이 되었어. 수국초특에서의 안정된 수입을 받다가 거리로 내쫓겼으니 얼마니 힘이 들겠니. 그 여인은 판탈레온의 아내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어. 남편에게 잘 이야기해서 다시 수국초특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말이야. , 이게 무슨 날벼락. 판팔레온의 아내는 판탈레온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판탈레온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아내 포치타는 이혼을 선언하고 얼마 전에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리마로 돌아갔단다.

그리고 이키토스 지방의 최고의 라디오 방송 <신치의 소리>가 있었어. 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판탈레온과 수국초특에 대해 맹비난을 했단다. 그런 시련들이 있었어. 나중에는 <신치의 소리>가 판탈레온에게 우호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판탈레온이 아무리 모범적인 장교이긴 하지만 매일 그런 여성들과 함께 있는데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겠지. 브라질에 잠깐 갔다 온 경험이 있어 미스브라질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원이 있는데, 판탈레온은 미스브라질을 사랑하게 되었어. 그런데 있잖아. 어느날 미스브라질이 광신교도들에게 죽음을 당한 사고가 발생했단다. 그들은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어. 우발적인 사고로 그렇게 되었다고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미스브라질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었어. 미스브라질의 장례식은 군대식으로 엄숙하게 진행되었단다. 수국초특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판탈레온은 군복을 입었어. 사람들은 깜짝 놀랬어. 심지어 같이 일하던 수국초특 대원들도 처음 알게 된 거야. 그가 육군 대위였다는 사실을 말이야. 판탈레온은 장례식 때 미스브라질을 추모하면서 읽은 송덕문은 그가 봉사 대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알려주고 있었단다. 그 중 일부를 읽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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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상에서 당신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 이곳에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 페루 육군 장교의 숭고한 정복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떳떳이 책임감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우리 조국 페루를 위해 봉사한 용감한 병사 자격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공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아니 자랑스럽게 당신의 친구이며 상관이었고, 운명이 우리에게 지시한 임무를 당신과 함께 수행한 것이 영광스러웠다는 사실을 보여주어 이곳에 왔습니다. 그 임무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와 우리 병사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온갖 어려움과 희생으로 점철된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은 그 일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당신은 의무를 수행하다 세상을 떠난 불행한 순교자이며, 몇몇 남자들의 비열하고 천한 행동의 희생자입니다. 술이라는 악마와 음탕함이라는 가장 천한 본능과 가장 악마적인 광신의 사주를 받아, 그 비겁한 자들은 나우타 근교에 위치한 코카마족장협곡에 자리를 잡고서 야비한 속임수와 비열한 거짓말로 우리의 수송선 이브호에 해적처럼 승선했습니다. 그런 다음 짐승처럼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무자비한 욕망을 채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며 탈취한 당신의 아름다움이 페루의 용감한 병사들에게만 관대하게 바쳐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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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 후 결국 수국초특은 정체가 온 세상에 알려지고 해체하게 되었단다. 판탈레온 대위는 장군에게 호출을 받고 찾아갔어. 판탈레온 대위는 봉사대원을 위해 나라에서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 임무를 다했으니까 말이야. 그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장군의 생각은 달랐지. 장군에게 보기에 그들은 한낱 몸 파는 여자였던 거야. 판탈레온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

세상인 약자인 여성에 관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자세는 세상 어디나 비슷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구나. 그들의 필요에 의해 희생했던 여성들유머 넘치는 글들로 가득 찬 소설이지만, 읽고 나면 가슴 한 켠 아픔을 느끼는괜찮은 소설 한편 읽었구나. 아직도 이름을 외우지 못한 지은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일어나요, 판타.” 포치타가 말한다. “벌써 여덟시예요. 판타, 판티타.”

책의 끝 문장 : 밤에는 좀 빼놓는 게 어때요? 벌써 다섯시라고 했잖아요. 판타, 어서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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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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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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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가끔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곤 하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문학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단다. 과학문학,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SF 소설에 대한 문학상이 우리나라에 있다니처음에는 책표지에 커다랗게 써 있는 관내분실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싶어 책을 살펴 보았단다. 그리고 그 옆에 써있는 이 책의 정체.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우리나라에 이런 문학상도 있구나, 이 상을 만든 사람들에게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구나. 과학문학의 신예작가를 발굴한다는 취지의 상이라고 하는구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빠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정통 SF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는 것 같더구나. 김영탁님의 <곰탕> SF 소설이라고 할 수 있나? 아무튼, 정통 한국 SF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구나. 외국 작가의 SF 소설들은 몇몇 읽은 것 같은데.,. 그래서 한번 읽어보자고 생각했어. 한국 SF 소설을 응원한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리고 신예 작가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었단다. 가끔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 전개도 있었고, 약간 억지가 느껴지기도 한 작품도 있었지만 읽을 만 했단다. 한국 문학의 불모지를 개척하려는 의지도 살짝 엿보이기도 했단다.


1.

대상 수상작은 김초엽님의 <관내분실>이라는 작품이란다. 김초엽님은 대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작품으로 가작도 동시 수상했단다. 김초엽님은 최근에 자신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도 출간했어. 아빠의 이목을 끌었던 관내분실이라는 제목좀 자세히 풀어 이야기하면 도서관 안에서 분실했다는 뜻이었단다. 가까운 미래의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곳이 아니었어. 죽은 이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곳이었단다. 죽은 이의 마인드를 업로딩하여 보관을 하고, 유가족들은 도서관에 와서 죽은 이의 마인드를 꺼내어 만날(?) 수 있었단다. 그러면 실제 죽은 이를 만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단다.

주인공 송지민은 최근에 임신을 하고, 3년 전 돌아가신 엄마를 처음 만나려고 도서관에 왔어. 그런데, 송지민의 어머니 김은하는 사라졌어. 누군가 엄마의 index를 제거했다는 거야. 그렇게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족 밖에 없다고 했어. 그래서 송지민은 동생 유민에게 연락을 해보니 자신은 아니라고 했어. 그렇다면 남은 이는 연락 끊고 지낸 아버지뿐이었어. 연락을 해보니 역시 아버지였어. 그런데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했어. 그래서 그랬다고아버지와 짧은 만남을 통해 지민이 모르고 있던 젊은 시절 엄마의 열정과 꿈을 들을 수 있었어.

도서관에서 index를 잃어 버린 경우를 대비해서 새로운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어. 우여곡절 끝에 잃어버린 어머니의 index를 찾아서 만나게 된단다. 어머니와 생전에 하지 못했던 말은 전하고 소설은 끝을 맺었어.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 본연의 모습은 과학 발전으로 변화시킬 수 없을 거야.

김초엽의 가작 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제목이 이야기를 반쯤 먹고 들어가는 듯 했단다. 주인공 안나는 딥프리징을 개발하는 과학자였어. 딥프리징은 영어로 deep freezing겠지. 우주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생명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 필요했어. 그래서 개발한 것인 딥프리징이야. 그래야 멀고 먼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안나는 연구를 마치고 가족들과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이주해서 살기로 했어. 남편과 아들은 먼저 출발하고, 안나는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끝나면 뒤따르려고 했어. 그런데 연구가 좀 길어지게 되었고, 그 사이에 말로만 듣던 웜홀통로가 발견되었어. 이 웜홀로 우주여행을 하면 그동안 우주여행의 방법이었던 와프항법이 필요 없었어. 와프 공법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웜홀은 그렇지 않았거든. 우주의 웜홀에 그냥 몸을 실으면 우주 저편에 도착할 수 있었거든. 웜홀은 단점은 웜홀을 발견한 지점으로만 갈 수 있다는 것이야. 그런데 안나가 가고자 하는 슬렌포니아에는 아직 웜홀이 발견되지 않았어. 그런데 웜홀이 발견된 이후에 더 이상 와프 항법도 운행하지 않았어.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그러니까 안나는 가족들이 있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없었어. 결국 슬렌포니아에 다시 갈 수 있는 날까지 죽지 않고 기다려 했어. 딥 프리징을 하고 말이야. 그렇게 170살이 되었어과연 안나는 슬렌포니아를 갈 수 있을까? 그런데, 진짜 웜홀을 통하면 공간 이동이 가능할까?


2.

아빠는 대상 수상작보다는 김혜진님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단다. 인공지능을 갖춘 간병로봇에 관한 이야기였어. 성한은 10년째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를 돌보고 있었고, 7년 전부터는 간병로봇 TRS가 도와주고 있었어. TRS는 엄마뿐만 아니라, 성한도 체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어. TRS는 성한이 엄마 치료에 힘들어하는 것을 걱정하곤 했어. 오랫동안 가족을 돌보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성한이 바로 그런 우울증에 걸려 있었어. 성한이 한동안 병원에 오지 않았어. TRS는 성한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성한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엄마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성한의 우울증의 원인은 바로 오랜 엄마의 병이었으니까.

인공 지능을 가진 TRS에게 병든 엄마와 젊은 성한 중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젊은 성한을 선택하는 것이 그의 답이었지. TRS는 성한을 살리기 위해 엄마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냈어. 자살을 하려던 성한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어. 인공 지능을 갖춘 TRS는 몸만 기계이지, 거의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추고 있었고, 자아를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고, 나중에는 자살까지 원했어.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AI가 그 직업을 대신한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이미 그렇게 된 직업도 많고 말이야. 인공지능의 발전은 한계가 있을까? 결국 인간의 감정까지 구현한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영화 터미네이터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그 밖에 수상작으로는 미래의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오정연님의 <마지막 로그>, 종말 이후의 세상을 이야기한 김선호님의 <라디오 장례식>, 인간 지능과 인간이 혼합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이루카님의 <독립의 오단계>가 있었단다.

….

전체적으로 확 끌리는 작품은 없었지만, 이런 SF 문학이 좀더 활성화되어 우리나라에도 아이작 아시모프나 필립 K. 딕과 같은 SF 작가들이 출현하기를 바라면서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관내 분실인 것 같습니다.”

책의 끝 문장 : 그렇게 나는 나에게 오단계라는 이름을 주었고, 나는 내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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