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동물 농장 - 194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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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주도한 볼셰비키의 중앙 집권적 독재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은 일찍이 독일의 급진 사회주의 학자인 로자 룩셈부르크가 경고한 바 있다.
수퇘지 나폴레옹의 혁명은 오히려 동물들을 혁명 이전보다 못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고, 이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이라는 독재자의 몰락을 전제로 쓰여진 우화이므로 결국 해체되고 말 것이라는 오웰의 믿음이 깔려있다.
마지막으로 동물들이 본 모습 ㅡ창문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돼지와 인간의 흉측한 얼굴이 서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이 혁명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라면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읽어도 참 좋은 오웰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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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7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 fairy Story까지 다 써 있는 초판본 표지네요^^ 구글 검색으로만 보던 옛 이미지에서
새로 나온 책 표지라니까 엄청 반갑네요

은하수 2023-05-27 11:26   좋아요 0 | URL
저도 괜히 이 표지가 초판본이라니까 끌려서 굳이 또 구입을 하게 되더라니까요~~
책 들이는 이유도 가지가지죠? ㅎㅎㅎ
 
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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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읽었지만 이 이야기의 끝은 보지 못한 듯한 기분이 강하게 든다. 

이 책은 츠바이크 사후 그가 남긴 원고 뭉치에서 발견이 되어 출간이 되었다. 츠바이크는 글을 몰아치듯 써서 작품을 출판했지만 이 원고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고치면서 천천히 작품을 써나갔다.  그래서 아내와 동반 자살을 생각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원고를 매만졌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하는 말들은 한 마디도 버릴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다 소중하다. 

   글을 쓰는 동안 경험한 천국과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분노하고 절망한 세상이라는 지옥을 오가며 썼던 이 원고에서 그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결말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었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 책의 결말은 여기서 끝이라고 해도, 다시 이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해도 분명 비극으로 치닫는 내용일 수 밖에 없다. 




   "1926년, 수도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 크렘스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마을 클라인-라이플링의 우체국.  이곳의 교체할 수 있는 정부 '비품'은 여성이다. 당국에서는 그냥 '우체국 여직원'이라고 부른다."(16쪽)


   이런 안쓰러운 설명이 붙은 우리의 주인공 우체국 아가씨 크리스티네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꿈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성이다. 공무원이란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니 어려운 시기에 그나마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정부는 최소한의 생활을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정도를 제공할 뿐이고, 전쟁으로 인하여 청춘의 빛을 잃어버린 그녀는 이미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져 있어 자신에게 행복한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미국에서 상류층으로 살아가는 이모로부터 스위스의 최고급 휴양지로 초대한다는 전보가 날아든 것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효과를 불러온다.  마치 신데렐라로의 변신 스토리 같은 가슴 두근거리는 이 화려하고 풍요로운 환상 여행은 물론 해피 엔딩일 수 없다. 츠바이크가 바라보는 세상은 동화 속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까 머뭇거리며 두려워하던 그녀는 곧 그 환상적이고 화려한 세상에 도취한 듯 빠져든다. 그러나 상류층의 부유하고 폐쇄적인 그 사람들은 끝내 그녀를 그들의 세상에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그녀를 초대했던 이모는 그녀의 평판에 흠집이 날까 부랴부랴 그녀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 보내버리고, 열흘 남짓 행복하고 아름다운 여행은 결국 씁쓸한 결말을 맺는다.

  

  "이것은 이별이 아니라, 죽음이었다."(231) 


   자신의 초라한 짐을 챙겨 호텔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선언한다! 죽음과도 같은 삶일 것이라고...

   이 환상적이고 화려한 여행은 읽는 내내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책장을 넘어가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츠바이크의 절묘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덫을 놓는다. 빠져나오고 싶지가 않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크리스티네가 스위스 여행에서 돌아와 죽음과도 같은 삶은 사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거다.  더 빠져들게 만드는 또 다른 국면의 전환을 맞는 빈으로의 주말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네는 자신의 초라한 삶을 견디기 힘들어 무작정 떠난 빈에서 언니 가족을 만나러 가고 그곳에서 형부 프란츠의 전우였던 '페르디난트'를 만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귀향 열차를 기다리던 중 체코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체코가 열차 선로를 폭파하는 바람에 그가 탄 기차는 시베리아로 돌아가고 볼셰비키와 차르 지지군의 내전에 휘말려 4 년간이나 포로 생활을 하다 적십자의 노력으로 겨우 돌아올 길이 열린다.  전쟁에서 돌아 오던 중 "귀국 바로 전날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지는 하찮은 사고"(280쪽)로 인하여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절망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페르디난트 앞에 크리스티네가 ㅡ 혹은 크리스티네 앞에 페르디난트가 ㅡ  나타난 것이다.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 이 두 젊은이는 곧 주말마다 만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어디에서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극심한 빈곤 속에 출구 없는 삶 뿐이고, 페르디난트가 다니던 직장이 망하면서 실직을 하는데 페르디난트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  결국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가기 힘들었던 두 사람은 동반 자살을 하기로 계획하는데, 계획을 실행하기 직전, 잠시일 것이지만 희망을 품고 삶을 좀 더 유예할 수 있는 극적인 기회가 찾아오고 그들은 그 기회를 잡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작품 속에서 페르디난트가 절절하게 토해내는 항변들이 진짜 츠바이크가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더 가슴이 아프도록 저려온다.  


   "사소한 부상이야, 그렇지 않아? 세계 대전을 겪고 시베리아에서 4 년간 지내면서 겨우 손가락 두 개 다쳤을 뿐이니. 그런데 죽은 손가락이 살아 있는 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잘 몰라. 건축사가 되고 싶은데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사무실에서 타이핑할 수도 없고, 무거운 물건을 들지도 못하지. 가느다란 힘줄 하나가 썼었을 뿐이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꼭 하고 싶은 일들이 그 실처럼 가느다란 힘줄에 매달려 있다는 게 문제야. 집을 설계할 때 도면에서 1밀리미터만 잘못 그려도, 겨우 1밀리미터이지만, 집 전체가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야."(281쪽)




  프란츠가 "상이군인 연금"을 받을 권리, 그리고 자네는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자,,


   "그렇게 생각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나처럼 집이고 포도밭이고 뭐고 다 날려버리고, 손가락까지 다치고, 전쟁이 6년이라는 세월을 앗아간 사람에게는 국가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친구야, 오스트리아에서 길이란 길은 모두 휘고 꼬여 있어. 나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고 상이군인 담당 부서를 찾아가서 보여줬지. 자 봐라, 이곳저곳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가 내 손가락이 이 모양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우선, 내가 전쟁 때문에 부상당했다거나 부상이 전쟁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거야.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전쟁은 1918년에 끝났는데, 1921년에 어떤 특수한 사정 때문에 부상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나? 아무 기록도 없는데. 게다가 한 가지 더 있어. 관료들이 대단한 일을 했잖은가. 프란츠, 아마 자네도 내 말을 들으면 놀랄 거야. 나는 이제 오스트리아 국민이 아닐세. 내 세례 증서를 보면 나는 오스트리아 메란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내 거주지는 이탈리아 메란 행정구로 되어 있어. 오스트리아 국민이 되려면 제때 국적을 선택해야 했던 거야. 그래서 모든 일이 엉망이 되고 말았지."(285쪽)




   페르디난트가 겪고 있는 이 모든 문제들은 츠바이크 자신이 겪은 일들과도 당연히 관련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츠바이크는 작가로서도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나치 탄압으로 망명객이 되어 외국을 뗘돌아야 했고, 조국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면서 나치에 재산을 몰수 당하였으며 모국어로 작품을 발표할 수도 없었던 그래서 결국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절망과 분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 ... 그래,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어. 어떤 의사도 6년간의 젊음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어. 누가 내 젊음을 보상해 주지? 국가가? 그 고위층 사기꾼들이? 그 고위층 도둑놈들이? 40명이나 되는 장관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대봐. 법무부 장관? 복지부 장관? 산자부 장관? 공정하게, 사리사욕 없이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고급 공무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름을 대봐. 그들은 우리를 전쟁에 몰아넣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고, '황제 만세!'를 외쳤어. 물론, 지금은 다른 걸 들려주고 있지. 진흙탕에서 보니, 세상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군."(288~289쪽)




   그러면서 그는 평범한 행복에 젖어 혁명을 함께 꿈꾸던 그 시절을 잊어버린 친구 프란츠를 은근히 비난하는 말들을 한다.  너무 선량하고, 의심할 줄 몰라서 이용만 당하고 가난 속에서 절망하다가 "인간이 평생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라는 그것,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자유"를 실행하게 만드는 국가라는 거대 권력. 왜 국가는 전쟁에 청춘을 바친 이 젊은이들을 구제하지 못하는가. 정부의 고위직 관료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 이 젊은이들을 극심한 가난 속에 방치하고 왜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하는지.  왜 프란츠는 시의회 의장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으면서 친구 페르디난트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인지. 왜 크리스티네의 이모는 조카를 그런 잔인한 방법으로 내치고 돕지 않는 것인지. 왜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는 28살, 30살이라는 꽃같은 나이에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 

   이러한 질문들은 이야기를 읽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1920년대 오스트리아의 현실이 지금의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알 수 없어졌다. 가난한 자의 역사는 반복이 된다는 이 단순한 진실이 주는 중압감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단지, 저는 너무 늦게 돌아왔습니다. 기차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 기차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죠.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기술도 배웠고, 지능이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김나지움과 수도원 부속학교에 다닐 때에는 우등생이었어요. ... .... 제게는 1년의 시간이 필요해요. 1년간의 자유 시간. 높이 뛰어오르기 전에 도움닫기가 필요하듯. 아...... 1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거예요. 어디가 좋을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이라도 당장 어금니를 깨물고 온몸을 긴장시키고 하루에 열 시간, 아니 열네 시간이라도 배울 수 있어요. 그렇게 몇 년을 더 보내고 나면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치겠지만, 만족감도 생기겠죠. 그러면, 저 자신과 화해하며 말하겠죠. '다 됐다! 끝났다!' (317쪽)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싫습니다. 만족감에 빠진 인간들 말입니다. 그 자들이 저를 자극하는 바람에 이따금 어쩔 수 없이 호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쥐곤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기득권을 철석 같이 끌어안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그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르니까요."(317쪽) 




   아... 저 페르디난트, 우리 사회의 수 많은 페르디난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저렇게 절규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할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면... 뭐라도, 아니 원하는 무엇이라도 다 들어줄 수만 있다면, 내게 그런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간절히 염원했는지 모른다.  츠바이크도 이 작품을 쓰면서 이런 심정이었겠지.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면서... 그럼에도 그의 절망과 울분,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결말은 잠시 유예된 채로 작품은 끝났지만,  이 두 젊은이와 츠바이크 부부의 마지막이란 것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자유"의 실행이어서 가슴이 아프다! 다른 한편으론 츠바이크 이 사람의 재능에 끊임없이 감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안타까움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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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아사랑해 2023-05-26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 할 책이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하수 2023-05-26 13:43   좋아요 1 | URL
네네~~~
꼭 읽어보세요.
책장 넘어가는게 얼마나 아쉬운지.. 왜 이다지 긴 리뷰를 쓰게 된 것인지 와닿으실걸요?
아마 제 개인적인 소견만은 아니란걸 실감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요~~~

얄라알라 2023-05-26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
이 리뷰, 이달의 당선작에서 다시 보게 되길 바랍니다

정부의 ‘비품‘이라니,
휴양지에서 반강제로 퇴출당하다니,
...손가락 2개의 어둠의 나비효과까지

이 책 읽는 독자의 감정도 결코 쉽지 않겠어요...

은하수 2023-05-26 14:38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비품이라는 글에서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안쓰럽고..아무튼 굉장히 여러 감정이 올라오고 끊임없이 생각할거리를 남겨주더군요. 일독을 권하는 마음이 이리 당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문장들이 굉장하답니다~~

당선작이야 되면 감사하죠! 삼만원 받아서 구입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던걸요^^

다락방 2023-05-26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거 읽고 있어요. 크리스티네가 변신에 도취하여 자신의 원래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을 때부터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하던지요. ㅠㅠ

은하수 2023-05-26 14:42   좋아요 2 | URL
저 1부 끝나고 그래서 며칠 쉬었잖아요.. 초조한 그 심정 너무 이해되거든요 사실 어떤 전개가 기다릴지 대충 감이 오니까 뒤를 보기 겁나서요 ㅠ.ㅠ
잡으면 순식간에 페이지가 달아난다니까요. 특히 페르디난트의 말은 하나하나 어찌나 콕콕 박히는지 .. 읽다 지금이랑 너무 똑닮이어서 소름 돋았자나요

이 책처럼 다른 플친님들 리뷰 궁금한건 없었던거 같아요.
얼른 읽으시고 리뷰 읽게 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온몸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벽에 의지한 채 멍한 표정으로 자기 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동물이 쓰러지기 직전 비틀거리며 몇 걸음 옮기듯이 휘청거렸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여자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불시에 무언가에 가격당한 듯 머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누가 가격 했을까? 분명 누군가 무슨 짓을 했다. 그녀를 해치고자 무슨 짓을 한 것이다. 그녀는 쫓겨나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도 할 수없었다.
- P217

무슨 일인지 애써 생각해 보았지만,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정신이 흐리멍덩하여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방에 단단한 벽이 있어 그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축축하고 캄캄한 관보다 더 갑갑한 유리관 속에 파묻힌 듯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왜 나를 쫓아버리려고 하는거야?"
가슴에 묵직하게 전해지는 압박감과 적대감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4백 명이나 되는 호텔 손님, 벽, 대들보, 거대한 지붕, 차갑고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 쾌적한 휴식을 위한 의자들, 행복한 표정을 비추어 보던 거울, 잘자라고 유혹하듯 꽃무늬로 장식된 보들보들한 깃털 이 - P217

불로 덮인 침대가 있는 침실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의자에 계속 앉아 있으면 그대로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창문을 깨버리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큰 소리로 울어버려서 자는 사람들을 모두 깨울지도 몰랐다.
‘밖으로 나가자!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가야겠어. 그러지 않으면 이 갑갑하고 적막한 곳에서 질식해서 죽을 것 같아. 어서 밖으로 나가야 해.‘
여자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무작정 밖으로 뛰어나갔다. 여자가 박차고 나간 문 뒤로 침실의 휘황한 불빛 아래 황동과 유리 장식들이 의미없이 빛나고 있었다. - P218

여자는 몽유병 환자처럼 공중을 떠다니듯 계단을 내려갔다. 카펫, 벽에 걸린 그림들, 호텔 가구들, 계단, 조명, 손님들, 웨이터, 여종업원들………. 
물체도 사람도 마치 유령처럼 여자를 스쳐 지나갔다. 아는 척해도 몰라보는 여자의 반응에 놀란 사람 몇몇이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여자의 시선은 텅 비어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어디로 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여자의 두 다리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 P218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절하는 몸의 어떤 기능이 마비된 것 같았다. 두려움에 쫓기면서 목적도 없이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듯 홀 입구에서 멈춰 섰다. 이곳에 앉아서 식사하고, 춤추고, 웃고, 즐거운 만남을 가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 P218

여자는 가공의 자신을 밀쳐내고 본래의 자신을 되찾으려고 했다.
어머니를 생각했다. 많이 편찮으시거나 어쩌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생히 느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자극해도 격렬한 고통이나 불안에 몰입할 수 없었다. 오직 한 가지 느낌이 다른 모든 느낌을 밀쳐냈다. 그것은 분노였다. 분출구도 없이 몸 안에 갇혀 부글부글 끓는 무력한 분노, 끝없이 솟구치는 분노였다. 그러나 여자는 그 분노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이모인지, 어머니인지, 혹은 자신의 운명인지. 그것은 불공평한 처사로 억울하게 고통을 받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분노였다. 여자의 상처받은 영혼은 온전했던 자신에게서 어느 한구석이 떨어져 나갔음을 느끼고 있었다. 축복받은 날개를 떼어버리고 이제는 땅바닥을 기는 눈먼 구더기가 되어야했다. 무엇인가가 영영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 P218

드디어 짐 정리가 끝났다. 여자는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보았다. 야회복, 댄싱슈즈, 허리띠, 분홍색 셔츠, 장갑등 원래 그녀에게 속하지 않았던 것들이 침대에 널려있었다. 마치 환상이 만들어낸 허깨비 같은 존재였던 폰 볼렌 양이 폭발하고 남은 잔해처럼 보였다. 크리스티네는 몸서리쳤다. 자기 물건은 하나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여자의 소유물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침대에서 자게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 창문을 통해 황금빛 풍경을 바라보고, 이 맑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것이다. 이제 여자는 그 누군가가 절대로 될 수 없었다. - P230

그런데 또다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여자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호텔 데스크 직원이 전보 한 장을 흔들며 뛰어왔다.
"어제저녁에 온 전보입니다. 야간 근무자가 수취인이 누군지 몰라서 전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손님께서 체크아웃하셨다는 것을 방금 알았습니다."
크리스티네는 전보를 펼쳤다.
ㅡ어머니 상태 악화. 조속한 귀향 바람, 폭스탈러
기차가 출발한다. 끝났다. 이제 다 끝났어 - P234

ㅡ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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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시간은 이제 끝났다.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츠바이크의 문장을 읽는 기쁨을 한껏 향유하고 있다!

밖으로 나오자 온몸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벽에 의지한 채 멍한 표정으로 자기 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동물이 쓰러지기 직전 비틀거리며 몇 걸음 옮기듯이 휘청거렸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여자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불시에 무언가에 가격당한 듯 머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누가 가격했을까? 분명 누군가 무슨 짓을 했다. 그녀를 해치고자 무슨 짓을 한 것이다. 그녀는 쫓겨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애써 생각해 보았지만,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정신이 흐리멍덩하여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방에 단단한 벽이 있어 그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축축하고 캄캄한 관보다 더 갑갑한 유리관 속에파묻힌 듯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왜 나를 쫓아버리려고 하는거야?"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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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23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책이 나왔군요~!! 표지부터 제목까지 완전 마음에 드네요~!!

은하수 2023-05-24 09:43   좋아요 1 | URL
책 내용도 흥미진진합니다^^
예전에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됐었다는군요
다락방님 서재 가서 봤답니다
아무튼 저는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eBook] 초월주의의 야생귀리 루이자 메이 올컷 선집 2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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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주의의 야생귀리>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재미보장!



   우리에게 <작은 아씨들>로 익히 알려진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초월주의의 야생귀리>를 읽었다. '병원스케치', '나의 콘트라밴드', '한 시간', '초월주의의 야생귀리'의 네 편의 단편으로 엮인 작품집이다. 

   여러가지 눈에 거슬리는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아주 재밌게 읽었다.  '초월주의'가 대체 뭐지? '야생 귀리'는 알겠는데.... 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흠흠, 일단 궁금증은 해소가 되었다.  '초월주의'는 한마디로 '이상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 원시 공산주의의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착취'를 통하여 얻어지는 목화, 비단, 누에, 가축, 가축의 분뇨료 만들어지는 거름 등의 도움없이 농사를 짓고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극단적으로 윤리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공동체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식물에서 얻어지는 전혀 보온성, 실용성이라곤 없는 옷을 지어입고 극단적 채식의 식단을 유지하면서 극단적 윤리적인 삶이라니... 한마디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웃기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말하는 거다. 이런 삶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도 백인 남자들이... 작가는 전혀 실현 가능하지 않는 삶의 방식, 무능하고 게으른 백인 남자 모두를  비판한 것이겠지만.



   작가의 아버지가 이러한 방식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1843년 가족을 데리고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하여 몇몇 친구들과 뉴 잉글랜드의 척박한 산골짜기 마을로 향한다. 있는 것이라곤 다 쓰러져가는 집?과 창고, 농토 뿐이었는데 대체 무얼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있는 것은 원대한 이상 뿐.  농사라곤 지어본 적도 없는 남자들은 하나의 밭에 여러 가지 다른 씨앗을 뿌리기도 하고 곡식을 거둘 시기에 강연을 다니고 무엇을 할 줄 모르고 도구라곤 변변하지 않으니 강연이 없을 땐 그저 빈둥빈둥... '무엇도 착취하진 않는 삶'을 꿈꾼다면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을 착취하는 건 착취가 아니란 말인가! 어린 자식들을 비롯한 가족의 생계는 온전히 올컷의 어머니의 몫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결국 공동체의 삶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몇몇 친구들이 다른 공동체로 떠나갔고 가족들의 생계는 온갖 삯 바느질과 남의 집 일을 봐주고 식모살이를 하는 등의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던. 여자들의 고통스런 삶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한심한 백인 남자들이여! 




   아주 읽다가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이것은 '초월주의의 야생귀리' 라는 단편의 내용이자 루이자 메이 올컷의 가족들의 삶, 어머니의 삶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그런데도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비극인거다...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었으니까)과 연민, 원망 사이에서 고뇌하지만,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을 것이다(어느 사회나 장녀는 고달프구나).  돈이라는 것을 버는 행위 자체를 경멸했으면서(얼씨구... 그럼 쓰지 말고 빚이라도 만들지 말든가) 끊임없이 빚을 만들어내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써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작품이 신문에 발표가 되거나 연재되는 형식이었으므로 독자의 순간적인 흥미를 끌지 못하면 발표를 할 수가 없었으니 작품성을 논하기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고, 신문을 읽는 대다수의 백인 중산층의 의식 수준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므로, 아무리 작가가 철저한 노예 해방론자이고 사회 참여적인 페미니즘의 옹호자였다 할지라도 '글을 쓰는' 백인의 시각을 가진 여성이라는 시혜자적 입장을 포기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의 단편 중 '한 시간'에 등장하는 백인 농장주인 개브리얼이나 주인공이 종군 간호사로 나오는 '병원 스케치'와 '나의 콘트라밴드(콘트라 밴드의 뜻 : 간호사가 개인적으로 부릴 수 있는,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는 흑인 환자를 말한다)'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에서 그런 입장을 찾아 볼 수 있다.  종군 간호사로 짧은 복무 경험이 있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 작품에서 나타나는데, 열렬한 노예제 폐지론자이면서도 간호사의 개인 콘트라밴드와 동등하지 않고 여전히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노예와 같은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50명의 흑인 노예를 거느린 백인 농장주인 개브리얼은 노예제 폐지론을 환영하는 청년이며,  북부에서 머물다 아버지의 병으로 농장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흑인 노예들이 폭력과 억압으로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마치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대천사 가브리엘인 것처럼)인양  무장한 노예들 앞에 맨 몸으로 나타나 노예 해방을 선언한다. 아주 대 영웅이 등장 하신거다. 그러자 무장한 폭도들이었던 흑인 노예들이 그 말을 믿으며(심지어 흑인 노예들의 어르신을 통하여 밑 작업까지 미리 해놓았다. 젊은 주인 어르신은 주인님과는 다르다고) 어떠한 긴장감도 없이 수긍하며 환호하는 모습이라니... 이렇게 순식간에 환호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어이없을 무...!




   '구원자이자 해방자로서의 백인', 북군에 팽배해있었던 '노예제 폐지와 남북 전쟁에 대한 정당성의 부여' 라는 시각은 작가 자신의 개인적 시각이라기 보다는 미국 북부의 노예 해방론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을 작품에 구현한 대변자였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품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스토리들이 실감나면서도 흥미진진한 서사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미국 워싱턴의 비능률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병원 운영을 유쾌한 시선으로 비웃기도 하고 여전히 흑인들은 자신들이 교화하고 해방시켜주어야만 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들도 백인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노예제 폐지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그들을 따뜻한 시선과 인간의 밝은 점을 부각시켜 서술한 점이 이 소설을 읽으며 발견한 작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역시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잘 읽히는 법이니까...  여러가지 눈에 거슬리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ㅡ 무엇보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그 해 1월 1일 노예 해방문을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노예 해방을 이룬 해이다. 무려 16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 동안 세상은 아마 백만 번도 더 변화했을 것이다 ㅡ 분명 또 배울 점이 남는다는 것은 나름의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병원 스케치'와 '나의 콘트라밴드'는 사실 아주 재미 있었다. 왜 책 제목이 <초월주의의 야생귀리>인건지 이해가 안 될 만큼.

   아참참...... 도망친 남부의 노예를 북부로 도망시켜주는 비밀조직인 "지하철도(Underground Railfoad)"의 활약을 다룬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읽었을 때 그 지하철도의 역으로 집을 제공해준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루이자 메이 올컷의 집도 잠시이긴 하지만 지하철도의 역으로 제공(1847년, 작가 연보 참조함)한 적이 있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노예제 폐지를 찬성한 작가에게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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