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소생의 관심사인 ‘이스탄불’ 즉 ‘콘스탄티노플’의 설계자이자 건설자는 바로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콘스탄티누스 대제다. 얼마전에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소설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류상태가 지은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이 된 사나이>다. 이 소설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죄없는 처자식을 죽인 냉혹한 인간 아니 괴물로 묘사된다. 류상태는 대광고의 교목이었는데 2004년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으로 목사증을 반납하고 학교를 떠났던 인물이다. 소설가가 아니어서 소설은 상당히 거칠고 내용 전개에도 무리가 많다. 지금의 기독교가 예수의 종교가 아닌 바울의 종교라고 한다. 주장은 강하고 논리는 빈약하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한 권은 막스 갈로의 <콘스탄티누스의 선택>이다. 막스 갈로는 역사학자이며 소설가이자 유럽의회 의원을 지닌 정치가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알렉상드르 뒤마’라고 불리는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한다. 역시 콘스탄티누스가 유일한 권력을 위해 유일신 신앙인 그리스도교를 철저히 이용했다고 이야기한다. 갈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손에 묻은 골육의 피로 괴로워하고 또자신의 권력 유지와 제국의 안녕을 위해 끊임없이 고심하는 고독한 한 인간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고독한 법이고 절대 고독자의 속 마음을 알기는 또 절대적으로 어렵다. 소설은 재미있다.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연대기 1>.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2>,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13, 14> 등을 두루 살펴본 바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대충 이렇다

 

 

 

 

 

 

 

 

 

 

 

그리스도교와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빛나는 업적을 쌓은 대제의 가족사는 근친의 피로 더럽혀졌다. 콘스탄티누스는 310년 아내 파우스타의 아버지인 막시미아누스를 죽였다. 312년에는 아내의 오빠인 막센티우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325년에는 누이동생 콘스탄티아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매제인 리키니우스를 사형에 처했다. 어린 조카도 죽였다. 유혈의 절정은 326년 아들 크리스푸스와 아내 파우스타의 처형이다. 물론 이런 저런 이유는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권력 투쟁의 전장에서 어슬프게 인정을 베풀다 보면 그 인정에 자기 목숨이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그 유혈이 처자에 이르고 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어쨌든 자신의 손에 골육의 피를 묻힌 영혼이 온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두 번 결혼했다. 미천한 출신의 정실부인이었던 미네르비나는 크리스푸스라는 아들을 남기고 죽었다. 뒤이어 막시미나우스 황제의 딸인 파우스타와 결혼하여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우스, 콘스탄스라는 세아들과 두딸을 두었다. 크리스푸스는 17살에 부황제의 칭호를 받았다. 교양과 덕성을 겸비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신민들로부터 대중적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다. 324년 리키니우스와 비잔티움에서 벌인 결전에서 해군의 지휘를 맡아 27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크게 승리하여 아버지 콘스탄티누스의 경쟁자를 소탕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바도 있다. 젊은 황태자에게 쏟아진 대중적인 인기와 전국민적인 존경과 애정은 즉각적으로 아버지 황제의 주목을 끌었다. 아비는 아들의 충성심을 재확인하는 대신 잘못된 야심에서 비롯될지도 모를 해악을 미연에 방지하기로 결심했을 수도 있다.

 

크리스푸스는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집권 20주년 경축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는 와중에 황제의 명령으로 갑자기 체포되었다. 황태자는 엄중한 감시하에 폴라 요새로 압송되어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29세였다. 계모인 황후 파우스타와 간통했다는 패륜 혐의였다. 크리스푸스는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끝내 혐의를 부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 파우스타도 마구간 소속 노예와 간통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황후는 즉각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이 선고되었는데, 온도를 엄청나게 높인 목욕탕에서 증기에 의해 질식사했다고 한다. 이 존속 살해의 비극은 사건의 진상과 재판 과정, 처형 상황 등이 모두 깊은 어둠 속에 묻혀있다. 이 사건에 대한 콘스탄티누스의 태도는 침묵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러이러 해서 도저히 도리없었다는 둥의 합리화를 위한 시나리오 같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후세의 사가들과 호사가들은 온갖 구구한 억측과 망측한 상상을 하고 있다.

 

파우스타의 아들들이 점점 커가고 있고 아버지가 자신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푸스가 반란을 꾀하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미래 권력 주위에 응겨붙기 마련인 파리떼와도 같은 경솔하고 아첨을 일삼는 추종자들이 크리스푸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다가 밀고자에게 고발되었을 수도 있다. 파우스타는 콘스탄티누스와의 사이에 3남 2녀을 두고 있으나 전처의 소생인 크리스푸스가 너무 훌륭하게 장성하여 신민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자 자신과 자식들의 미래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크리스푸스를 중상 모략해서 죽게하고 결국 자신도 음모가 들통나서 죽게 되었을 수도 있다.

 

전해지는 바와 같이 불륜을 포함한 남녀간의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당시 40전후의 나이로 추정되는 파우스타와 29세의 크리스푸스가 어쩌면 정말 그렇고 그런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파우스타가 젊고 아름다운 크리스푸스를 유혹하려다가 일이 여의치않게 되자 거꾸로 크리스푸스가 아버지의 아내인 자신을 범하려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질투심에 불타는 황제가 자신이 낳은 자식들의 가장 무서운 경쟁자인 황태자를 제거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해 줬을 수도 있다. 에드워드 기번이 추측한 것처럼 에우리피데스의 고대 비극 <히폴리토스>가 로마 황실에 재현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히폴리토스>의 내용을 소개해 본다. 히폴리토스는 아테네왕 테세우스와 아마존족 히폴리테의 아들이다. 테세우스는 말년에 아리아드네의 동생인 파이드라와 결혼하게 된다. 히폴리투스는 아마존의 아들답게 남녀사이의 사랑이라든지 결혼 같은 것을 하찮게 여기고 사냥을 즐기며 순결과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를 신봉하고 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예쁘게 볼리 만무하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히폴리토스를 저주한다. 파이드라는 의붓아들인 히폴리투스를 보자 첫눈에 반해버린다. 파이드라의 유모는 파이드라의 가슴속에 숨겨진 사랑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자살하려는 마음을 알고 히폴리토스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순결의 여신을 숭상하는 히폴리투스는 당연히 역겨움을 나타내며 천박하다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파이드라는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는 거짓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히폴리투스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버지 테세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아들에게 저주를 내려줄 것을 간청하면서 아들을 추방한다. 히폴리토스는 해안을 따라 전차를 몰고 가다가 바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에 놀란 말들이 마차를 부수고 주인을 이리저리 끌고 다녀 죽게한다. 테세우스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는 이야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이 허위 고발을 믿고 경솔하게 아들을 죽인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여 40일동안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상의 안락을 멀리하고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 크리스푸스의 황금조각상을 세우고 “내가 부당하게 처형한 나의 아들을 위하여”라는 비문을 새겨넣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파우스타가 어떤 식으로든 의붓아들인 크리스푸스의 죽음과 연관되었으리라는 추측에 관해서는 적어도 네 명의 고대 역사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노리치는 말하고 있다. 전처 소생과 후처 사이의 싸움은 왕권쟁탈전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망자들의 혼령을 불러낸다고 하더라도 비극의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기는 어려울는지도 모른다. 자식의 장래에 대한 파우스타의 불안감과 크리스푸스 주위의 파리떼들과 황태자에 대한 황제의 질투심, 누구의 범접도 허용하지 않은 황제의 권력의지 뭐 이런 것들이 뒤엉켜 상호 복잡하고 오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년간 제국을 통치한 뒤 337년 5월 22일 성령 강림절 정오에 니코메디아에서 숨을 거두었다. 죽기직전에 대제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동안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악행을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세례를 통해 순식간에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리스도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볼때는 참 편한 방법이다. 나쁜 짓을 많이 해도 회계하면 끝. 그 죄는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아비의 손에 묻은 아들의 피가 과연 세례의 물로 씻길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누스를 언급할 때마다 12사도에 준하는 분이라는 명칭을 받드시 붙였다. 불경한 점이 없지 않으나 복음을 전파한 범위와 수로 본다면 12사도에 필적할 것이다. 더구나 황제는 수많은 교인들을 그 참혹한 고문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었다.

 

대제의 죽음으로 골육상쟁도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으련만 권력이 있는 곳에는 유혈도 대를 이어 계승되기 마련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자 가장 먼저 궁정을 장악한 대제의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는 두명의 숙부 율리우스 콘스탄티누스와 달마티우스, 일곱 명의 사촌, 부황의 매제 2명 등의 황족들을 학살했다. 남자 황족 중 살아남은 사람은 콘스탄티우스를 포함한 파우스타의 세 아들을 제외하고는 율리우스 콘스탄티누스(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복동생)의 어린 두 아들 갈루스와 율리아누스 뿐이었다. 337년. 콘스탄티우스 19세였다. 학살이 있은 후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우스, 콘스탄스 삼형제가 삼등분 했지만 영토 분할에 불만을 품은 맏이 콘스탄티누스가 막내 콘스탄스를 공격했다가 오히려 패배해 살해되었다. 340년. 콘스탄티누스 23세였다. 그로부터 10여년후 제국의 서방을 담당하고 있던 콘스탄스는 부하 장수의 반란으로 살해당한다. 350년. 콘스탄스 30세.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제국을 일통하고 일인자가 된 콘스탄티우스는 제국의 방위를 위해 어쩔수 없이 자신이 죽인 숙부의 아들 갈루스를 부황제로 임명한다. 갈루스는 실정을 거듭하다가 결국 얼마전에 크리스푸스가 처형되어 유명해진 폴라 요새로 호송되어 극심한 고문 끝에 황제 살해 음모를 자백하고 참수된다. 354년. 갈루스 29세였다. 그런데 콘스탄티우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355년 황제는 고심 끝에 갈루스의 동생인 율리아누스를 부황제로 임명한다. 361년 콘스탄티우스가 병사하자 율리아누스는 로마제국 유일의 최고권력자가 된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가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남자 혈육이자 후세에 배교자로 불리게 되는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배교였지만 율리아누스의 입장에서는 제국의 오랜 전통으로의 복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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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5-06-1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넘 재밌어요. 막장 드라마에 환장하는지라..ㅎㅎ 역사, 연대기엔 많이 약하지만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붉은돼지 2015-06-14 09:40   좋아요 0 | URL
역사책을 보다 보면 정말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사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북다이제스터 2015-06-1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생 한번 터키 가볼수 있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알수록 신기한 나라입니다. ^^

붉은돼지 2015-06-14 09:42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터키에 대해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역시 뭘 좀 알고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가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김훈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한 애착을 갖고 책들을 쌓아놓거나 분류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책은 자료나 사전, 일종의 일을 하기 위한 도구에요.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나 삽, 플래시 그런 것이듯 이 방에는 나의 도구들이 있어요.”, “저는 각종 언어 영어, 독일어, 한문, 국어사전과 우리나라의 여러 법전을 가지고 있지요. 한문 사전을 주로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여가가 있을 때는 한자의 글자를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쓰려면 외국어, 특히 한문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전은 이해가 가는데 법전은 어디에 써먹는지 자뭇 궁금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김훈의 서재에는 단국대에서 나온 <한한대사전>도 보인다. 몇십년간 <이규태 코너>를 쓴 이규태나 요즘 조선일보에 <세설신어(世設新語)>를 쓰고 있는 정민같은 분들을 보면 정말 도구로서의 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고한 이규태는 월급의 1/3을 도서구입비로 지출했다고 한다.) 가끔 인터넷으로 정민의 세설신어를 보는데 현 세태에 딱 맞아떨어지는 옛일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내어 한편의 깔끔한 칼럼을 완성해 내는지 그 솜씨가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나만은 요즘 들어서는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뭐 뼈에 사무칠 그런 정도는 아니고... 공부는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릴 때 억지로라도 공부를 많이 시켜야 된다는 그런 주의는 당연 아니다. 소생도 소생의 어린 여식에게 공부를 강요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소생이 중학교 다닐 때 방학만 되면 아버지의 강권에 어쩔수 없이 향교에 다니면서 한문을 배웠다. 머리 허연 할아버지들 틈에 끼여 아침마다 맹자며, 논어며, 고문진보며 이런 것들을 배웠다. 할배들로부터 어린 넘이 참 기특하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향교 수업은 아마 아침 7시~8시까지 였던 것 같다. 7시까지 향교에 가려면 집에서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 한없이 달달한 꿀잠을 원없이 잘 수 있는 방학인데, 그 피같은 꿀잠을 포기하고 새벽마다 향교에 다니려니 정말 곧 죽을 지경이었다. 배우는 한문이 중학생에게는 어려운 수준이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니 공부가 잘 될리 없다. 그래도 그때 주워 들은 공력으로도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한문 좀 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허!

 

고등학교 진학하고는 향교에는 안다녔는데 역시 어릴 때 배운 게 무서운지 나중에 대학졸업 즈음에 취직준비를 할 때 갑자기 한문공부가 하고 싶어져서 취업 준비하면서 틈틈이 <논어집주>를 각주까지 한글자도 빠트리지 않고 완독한 적이 있다. 한 1년 걸렸던 것 같다. 논어 완독이 취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지만 심적 안정에 보탬이 되었는지 어쨌든 취업이 되었고, 직장에 다니고 부터는 다시 한문과는 영영 빠이빠이가 되었다.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쉬지않고 한문 공부를 했더라면 지금쯤은 집구석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문집들도 무슨 글하는 선비마냥 술술술 읽고 했을텐데... 하는 헛된 생각을 해본다. 해본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오늘 <곁에 두는 세계사>,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 – 정재 류치명의 삶과 학문>을 구입했다.  <곁에 두는 세계사>는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구와 같은 책이다. 소생이 뭐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취미로 서재질을 해도 나름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 관련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잘 정리된 연표가 있었으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던 차이다. 가격이 좀 나가지만 차일피일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 김훈의 말마따나 도구라고 하면 역시 사전이 그중 으뜸이다. 소생 필생의 과업이 또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단국대학교에서 나온 <한한대사전>을 완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4권을 구입했다. 본편 1권, 2권, 3권과 색인 1권이다. 권당 10만원이다. 억소리 난다. 색인도 5만원이다. 색인포함 총 16권이다. 155만원. 허허허. 그만큼의 소용이 있을지는 역시 미지수다.

 

 

 

 

 

 

 

 

 

 

 

 

 

 

알라딘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퇴계학파 인물시리즈라는 책이 무려 15권이나 나온 것을 알았다. 한문이나 한학에 대한 향수가 밀려와 그중 하나를 구입했다. 그것이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 – 정재 류치명의 삶과 학문>이다.

 

 

 

 

 

 

 

 

 

 

 

 

 

 

소설가 이인화의 본명은 류철균이다. 논란이 되었던 2000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시인의 별>을 보면 나의 문학적 자서전에 물의 골짜기 어쩌고 하는 작가의 고향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물의 골짜기란 한자로 수곡(水谷)이고 물의 마을이란 한글로 무실이다. 이인화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선대의 고향은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의 무실마을이다. 임하댐 건설로 마을은 이미 오래전에 수몰되었다. 물속으로 사라진 물의 마을 무실. 고택들은 뜯어서 구미 해평으로 옮겼다. 이인화는 전주류씨 수곡파이고 퇴계의 학통을 이은 영남학파의 거두 정재 류치명은 이인화의 직계조상이 된다.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에도 류치명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인몽의 아내가 도망친 곳이 류치명의 집이고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부사영감도 류치명이다.

 

 

 

 

 

 

 

 

 

 

 

 

 

 

양반이라고 하면 당파싸움으로 나라 말아먹은 추물 취급을 하고 영남학파니 안동이니 하면 무턱대고 보수 꼴통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것 같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떠나 조선이 500년을 버틴 것은 성리학을 한 양반사대부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사들이 전국에서 제일 많은 지방도 단연 안동이다. 소위 빨갱이가 되어 월북한 인사들도 많았다. 이문열의 아버지는 안동사람은 아니지만 (이인화의 고향 무실에서 산봉우리 하나 넘으면 바로 영양 석보다.) 역시 공산주의자로 전쟁 중에 월북했다. 처자식 버리고 떠나는 심사가 오죽했으리오마는 빨갱이 새끼로 낙인찍힌 이문열과 그 가족들은 혹독한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이문열의 소설 <영웅시대>는 그 비극적인 가족사의 기록이다.

 

 

 

 

 

 

 

 

 

 

 

 

 

 

 

이문열은 영양 석보의 재령 이씨다. 이문열의 조상인 갈암 이현일은 영남학파의 학통을 이은 큰 선비다. 영남학파의 학통은 퇴계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에서 경당 장흥효, 갈암 이현일 등등을 거쳐 정재 류치명에 이른다. 영남학파는 학문적으로는 퇴계의 학문을 계승했고 정치적으로는 남인이었다. 영남 남인들은 영정조이후로는 정권에서 완전 소외된다. 그 소외에 대한 반동이 항일 구국운동으로 분출되었을 지도 모른다. 또 정권에의 소외가 학문적 성취에 대한 집착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권력 투쟁에서 완전 퇴출로 상처입은 자존심은 비록 누추한 지방에 거처하지만 심오한 학문에 매진하고 있다는 학같이 고고하고 꼬장한 선비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자신들은 권력을 놓고 승냥이처럼 서로 물어뜯고 이전투구하는 탐관오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니 어쩌면 학문에 매진하는 척하면서도 항상 중앙정계로의 복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한낱 포말로 스러진 영남남인들의 정치적 야망에 대한 진혼곡이자 자기연민의 애가에 다름아닌 것이다.

 

 

추신 1.

김훈 관련 자료를 찾으려고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를 검색했더니 지식인의 서재가 업데이트 되었다. 한분이 추가되었다. 금회 인터뷰어는 천병희다. 천병희의 서재도 김훈의 서재와 비슷한 맥락이다. 천병희 편의 타이틀은 “천병희의 서재는 작업장이다.”이고, 김훈 편의 타이틀은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이다. 지식인들이 추천하는 내 인생의 책들은 주요 관심사항이어서 목록을 꼼꼼이 체크하며 본다. 여기서 소생은 귀중한 책을 처음 접하기도 하고 지식인의 소개로 재발견하게되는 반가운 책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번 천병희의 추천도서는 반 이상이 본인의 번역서들이어서 약간 실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천병희 선생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제외하고 과연 무슨 책을 추천할 수 있겠는가.

 

 

추신 2.

오늘 두권을 주문하니 오만원이 넘었다. 짜잔... 드디어 복불복 도전의 기회가 다시 왔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전에 삼세번 어쩌고 하면서 세 번만 하고 그만한다고 했는데 오늘까지 포함해서 다섯 번도 넘은 것 같다. 당근 당첨된 적은 없다. 오늘은 간도 크게 5만 마일리지에 도전했다. 역시 꽝이다. 소심한 넘이 대범한 척 할려니 뭐가 잘 안되고 속이 쓰리다. 간이 자꾸만 땡땡 부어오르는지 불뚝 오기가 생길려고 한다. 깜량을 모르고 쓸데없이 오기부리면 끝이 안좋은데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새 발이 질퍽한 늪속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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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6-05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외구매라서 이런 저런 혜택은 거의 못 누리고 삽니다만.ㅎㅎ 그나저나 붉은돼지님도 참 대단한 책사랑을 보여주시네요.ㅎ 한학교육을 받은 부분은 부럽기 그지없구요. 아직도 한자를 좀 알았으면 하는 맘이 간절한데, 이젠 어렵네요.

붉은돼지 2015-06-05 10:20   좋아요 0 | URL
한자 공부는 지금부터 하셔도 될 듯합니다. 뭐, 공부는 평생..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죠 ^^
해외구매에는 복불복 이런 게 없는 모양입니다. 안타깝습니다요..ㅎㅎㅎㅎ
저는 언젠가는 고액마일리지에 꼭 당첨될 것만 같아요..ㅋㅋㅋ

[그장소] 2015-07-1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옥편놓고 사전놓고 말뿌리 찾다 하루가 온통 가는 날들이 있곤하는데,저는 있는 것도 소화 못하는 주제라 이런 책 덥썩 사는 분 서재는 어떨까..마구 궁금과 부러움이...^^ 도전하신 것에 응답이 꼭 있으시길 응원놓고 갑니다!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 새워 읽었어요^^

제가 비록 조모에게는 언감생심 미치지 못하지만,
한마리 돼지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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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5-29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ni 2015-05-29 19:44   좋아요 1 | URL
저도 조만간 읽을예정입니다 ^^*

붉은돼지 2015-05-29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생이 일필휘지로 써갈긴 상기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좋아요를 누르니
˝자신의 글은 좋아요 할수 없어요˝ 라고 뜨네요.^^
아 자신이 자신의 글을 좋아하지 못하면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
 

 

 

 

 

 

 

 

 

 

 

 

 

 

* 본 페이퍼는 현암사가 제공한 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읽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당 서재 주인장인 붉은돼지의 뜬금없는 생각을 대충 옮겨 본 잡문이올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꿀꿀 

   

소생이 밥 벌어 먹고 있는 공장에 ‘H이라는 상사분이 계신다. 작년에 6개월 정도 모시고 일한 적이 있다. H님은 상당히 샤프하고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조금 쌀쌀맞고 정이 없는 그런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첫인상이라는 게 있고, 같은 부서에서 일한 경험은 없지만 같은 공장에서 벌어먹고 있으니 오며가며 보고 또 주워들은 소문에 근거하여 소생은 H님의 인성을 대충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H님이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근무하다보면 한 달에 서너 번 정도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술자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술자리에선가 H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신은 가족들과 외식할 때나 아니면 혼자 커피를 사 마실 때는 일부러 한번씩 장사가 안되는 가게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젊었을 적에 안 해본 장사가 없는데, 텅빈 가게에 앉아 파리만 날리는 그 쓰라리고 애타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한다. 잘 보이려는 인기성 발언 같지는 않았다. 그말을 들으니 H님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아둔한 소생은 이거는 본 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 나도 한번 해 봐야겠네.’ 하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올 초에 우리 공장에 인사이동이 있어 소생은 자리를 옮겼다. 옮긴 사무실 근처에는 복어집이 두 군데 있는데 서로 붙어 있다. 어쩌다 직원들과 한번씩 가보면 A집은 항상 손님들로 바글바글하고, B집에는 파리나 참새가 날아다닌다. 당연히 복어집에 갈 때는 매번 A집에 간다. 안그래도 바글바글한 가게에 또 한 바글을 보태고 만다. 갈 때마다 보면 B집은 허전하고 쓸쓸하다. 뭐 주방장이 가래침 뱉고 코풀어 비빈 음식(생각만 해도 우웩! ㅋㅋ)을 내올리도 없건만 B집에는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다. 인지상정이다. 허나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고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듯이 선비는 인정에 얽메이지 않는 법이니 한번 가르침을 받았으면 바로 실천궁행하는 것이 또한 선비다.

 

소생도 잘하면 방귀 꽤나 뿡뿡 뀌는 꼬장한 선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욕심에 쓸쓸하고 적막한 B집에도 한번 가보려고 했다. 그러나 어쩌다 혹간 있는 외식 오찬의 메뉴 선정과 같은 그런 엄혹한 과업을 소생 마음대로 쭈물쭈물 할 수는 없다. 소생의 실천궁행은 부득이하게 차일피일 연기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주말에 동네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일부러 파리 날리는 가게에서 커피를 사서 먹어 봤다. 그런데... 아이씨.... 열라 맛이 없는 것이다. 손님이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내 돈 내고 내가 먹는 데 맛없는 것을 먹을 이유는 없다. ‘손님이 없는 집이라고 다 맛없는 집은 아닐 거야하고 생각해 보지만 왠지 자신이 없다.

 

다같이 잘 먹고 잘 살믄 정말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그렇다면, 재미야 있든 없든 혼자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것도 뭐 쉬운 일은 아닐 것인데... 어쨌든 잘 먹고 잘 사는 혼자들이 자꾸자꾸 꾸역꾸역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모두가 되는 거 아이가? ....내참,,, 이게 말이가 막걸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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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madology 2015-05-2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자본주의 만세! 경쟁사회 만세!

붉은돼지 2015-05-29 09:50   좋아요 0 | URL
서로 협동 협력해서 같이 잘 사는 그런 사회는 정녕인가요??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호호호

프레이야 2015-05-2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우익 선생의 저 책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식구가 식당이나 찻집 사람 많고 줄서서 기다리고 그런집 싫어해서 한산한 곳을 가는편인데 역시나 한산한 데는 이유가 있더라는 경험을 종종 하지요. ㅎㅎ

붉은돼지 2015-05-29 10:38   좋아요 0 | URL
맞아요..한산하고 손님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안그런 곳도 혹 가다가 있긴 있더라구요..^^

보물선 2015-05-28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전에 읽고 좋아했던 책. 자기는 좌익쪽인데 이름이 우익이라고 하셨던.

붉은돼지 2015-05-29 10:40   좋아요 0 | URL
˝이 친구 이름은 전우익인데 맨날 좌익만 안하는기요˝ 라고 전우익 친구분이 그랬다고 하더군요..
저는 사실 이 책을 안 읽어봤는데 한번 봐야겠어요^^

지금행복하자 2015-05-2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한 식당을 들어갔다가 역시나 했던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 물론 소문 난 식당도 마찬가지이지만요~~

같이 덜 먹고 같이 조금 못 살자고 하면 시대를 역행하는 멍멍이소리라고 하겠죠? ^^

붉은돼지 2015-05-29 10:44   좋아요 0 | URL
손님이 없는 식당은... 뭔가 이유가 있다는 선입견을 먼저 가지고 식당에 들어가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저는 미각이 둔감해서 유명한 맛집이라고 특히 맛나지도 한가한 식당이라고 특별히 맛이 없지도 않은 것 같더라구요....맛보다는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의 태도나, 식당의 청결상태, 내부 인테리어 같은 분위기 이런 것들도 식당 영업의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

오쌩 2015-05-2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님이 참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역시 사람은 겉모습이 다가 아닌가봅니다ㅎ

붉은돼지 2015-05-29 10:49   좋아요 0 | URL
예전에 고등학교 처음 입학했을 때 제 앞에 앉은 친구의 외모가 며칠 안감은 더벅머리에 초첨 흐린 커다란 눈, 두툼한 입술, 어눌한 말투 하여튼 좀 덜떨어진 그런 외모였어요....그런데 처음 모의고사를 치고보니 이 친구가 전교 1등을 한 거예요...정말 깜짝 놀랐죠... 햐~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되는구나...어린 나이에 나름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그게 또....마음 먹은대로 잘 안되더라구요....항상 생각을 해 줘고 또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친구는 나중에 서울대 법대갔고 사시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후론 몰라요. 공부 잘 하는 친구들과는 친하지를 못해서..ㅎ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5-29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부러 손님이 없는 가게에 가봤는데, 대부분 맛이 없거나 다른 문제가 있어요. 어쩌면 악순환을 끊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잘 되는 집은 그대로, 안 되는 집은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건 분명합니다. 맘씀씀이는 따뜻하지만, 역시 현실적인 이유로 실천은 어렵겠네요.ㅎ

붉은돼지 2015-05-29 10:53   좋아요 0 | URL
저도 h님의 마음씀씀이는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과거 경험이 큰 요인이 되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역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직접 경험이 어려우면 간접 경험....간접 경혐은 역시 독서..ㅎㅎㅎㅎㅎ
그래서 독서가 중요하다는 ㅎㅎㅎㅎ
 

24~25일에 1박 2일로 예천천문우주센터 가족캠프에 다녀왔다. 미항공우주국 방문기가 아니어서 아쉽지만 뭐 나름 유익했다면 유익한 방문이었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우주선을 타고 화성을 방문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을 품고 방문기를 시작해 본다. 예천센터는 중앙정부나 지차체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은 아니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다. 연혁을 보니 2002년에 예천어린이우주과학관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천문우주센터라고 해서 NASA 본부 같은 걸 상상해서는 조금 곤란하다. 사실 소생도 나사본부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모른다. 시설도 뭐 첨단 최신은 아니다. 그래도 초등학생용으로는 무난하다. 12일 가족캠프의 비용은 4인 기준 24만원이다. 조식이 제공된다. 아침은 밥, , 3~4종 정도다. 괜찮다. 숙소는 온돌방 형태고, TVPC는 없다. 취사 장소가 별도로 있어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있다. 원래는 어린이날 전인 3~4일 신청했었는데 비가 오신 관계로 24~25일로 연기했다. 날씨가 흐리거나 우천으로 관측이 곤란할 경우에는 모형만들기 체험 등으로 대체된다.

 

12일 가족캠프 프로그램 일정은 이렇다.

 

<1일차>

20:00~20:30 OT 및 망원경 설명(천문관 3층 강의실)

20:30~21:30 망원경 실습(강의실 및 야외 잔디밭)

21:30~22:00 별자리 설명(천문관3층 우주영상실)

22:00~22:30 육안 관측, 망원경 관측(천문관 4)

23:30~ 심야관측(희망자에 한함)

<2일차>

08:30~09:10 조식

09:30~10:30 주간관측(천문관 4)

 

처음에 하는 망원경 실습은 삼발이 달린 길이 1미터 가령의 이동식 망원경으로 한다. 망원경은 1가족당 1대씩 제공된다. 그날 캠프는 모두 8가족이 참여했는데, 인원수는 한 40여명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온 가족도 있었다. 강의실에서 망원경의 구조 및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단 실내에서 망원경 조종법을 실습한 후에 망원경을 가지고 나가 잔디밭에서 천체를 관측했다. , 목성, 금성 등을 살펴봤다. 망원경 조정하는 게 쉽지는 않다. 달 표면의 움푹움푹한 곰보자국 같은 분화구도 선명하게 보인다. 전문용어로 뭐라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목성이나 금성은 그냥 반짝이는 점으로 보일 뿐이다. 망원경으로 본다고 해서 콩알만한 것이 수박만하게 보이는 건 아니다. 천체 망원경은 기본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우주영상실은 40~50여석 규모의 돔형 천장이 있는 둥근모양의 방이다. 완전 뒤로 젖혀지는 의자가 둥글게 두줄로 놓여있다.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히면 돔 형태의 천장에 별자리 영상이 상영된다. 큰곰자리, 작은 곰자리, 처녀자리 등 강사의 별자리 설명을 들으니 옛날에 별자리 공부하던 때가 생각난다.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 어쩌고 하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연결된 별자리 이야기가 뜨문뜨문 떠오른다. 작은 곰자리의 꼬리 끝에 위치한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길잃은 여행자들에게 방향과 위도를 알려주는 길잡이 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북극성은 북극에서 1도 정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조금씩 움직인다고 한다.

 

영상실에서 별자리에 대한 개략적인 학습을 하고 4층 관측소로 올라간다. 우선 육안으로 하늘을 보며 강사님의 설명을 듣는다. 그날을 날이 좋아 어두운 밤하늘에 무슨 보석 조각을 흩뿌려놓은 듯 무수한 별들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북두칠성은 대번에 눈에 들어온다. 육안 관측후에 참가자들을 두팀으로 나누었다. 한팀은 달, 금성, 목성, 토성 등등에 각각의 망원경(망원경이 6~7개 쯤 있다)을 맞추어 놓은 관측 장소로 가고, 다른 한팀은 거대 망원경이 있는 관측장소로 갔다. 두팀이 번갈아서 관측한다. 토성이 콩알만한 크기로 보이는데 콩알 주위에 고리도 보인다. 예쁘고 신기하다. 거대 망원경이 있는 관측소는 마징가 제트의 머리 뚜껑이 열리듯이 천장이 열리면 그 열린 구멍 사이로 망원경을 조정하여 천체를 관측한다. 망원경과 돔천장은 360도 회전한다. 1600광년 떨어진 늙은 별들의 모임이라는 구상성단을 보여준다. 쌀알을 타원형으로 뿌려놓은 듯한 모습이 흐릿하다. 인터넷 등에서 흔히 보는 그런 선명한 성단의 모습은 아니다. 별 감흥이 없다. 1030분경 관측을 마쳤다. 심야에는 별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심야 관측 희망자는 밤 1130분에 사무실 앞에 모이라고 한다. 심신이 허약한 소생은 피곤해서 방에 드러누웠고 아내와 혜림씨는 심야 관측을 다녀왔다.

 

익일 조식을 먹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두목인 태양에 대한 강의를 듣고 망원경으로 태양 관측을 했다. 태양이 무슨 폭발 같은 걸로 없어지게 되면 지구는 목성의 중력에 끌려가서 결국은 목성과 충돌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지구에는 빙하기가 도래해 모두 다 땡땡 얼어 죽겠지만. 태양의 지름은 지구의 108배이고 부피는 지구의 130만배라고 한다. 태양의 표면온도는 6000도라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광속으로는 8분 거리이고, 인간이 만든 로켓을 타고가면 15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뭐 물론 갈 수도 없고 갈 일도 없겠지만 어쨌든 이런 걸 다 어떻게 계산하고 측정했는 지 소생같이 아둔한 인사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주가 한 점에서 빅뱅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가정 한다면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와 형태는 반지름이 137억 광년인 구형이고,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라고 한다. 인류라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이 티끌 먼지같은 지구보다 수천, 수만, 수억 배 큰 어마어마한 별들이 억수로 무수하고, 이 우주라는 것의 나이와 크기가 그렇게나 어마무시하게 많고 무지막대하게 광활한 것일진대,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이란 종이 이 우주 속에서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의 작은 존재이며 또 인간의 한 삶이라는 것이 얼마만큼이나 찰나에 지나지 않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문득 정비석의 <산정무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웅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연이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이란 그 티끌같은 지구 위에서, 비유컨데 달팽이 뿔 위에서 영토싸움을 하며 아웅다웅 사는 극히 미미하고 소소한 존재일 뿐만아니라 또 각 개체로 볼 때는 고작 칠십 생애를 겨우 버티어 낼똥말똥한 수유의 시간을 사는 인생이지만, 그렇지만, 인류라는 한 종족으로 볼 때는 어미가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새끼를 낳고 낳고 낳고하여 세대를 거듭하며 근근히 명맥을 유지함으로써 우수한 DNA를 유전시키고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전승하여 오늘날의 이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으니 실로 경이롭다 할 것이다. 인류가 철을 이용해 칼이나 농기구를 겨우 만들어 쓰기 시작한 이래 5000여년 만에 우리는 컴퓨터를 발명했고, 달을 정복했고,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 화성으로 탐사선을 쏘아 올렸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 엄청나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본다면 인류 역사 5000년은 10초 정도 밖에 안되는 시간인 것이다. 이런 추세로 계속 약진한다면 앞으로 5000천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이 신이 되어 우주를 정복할지도 모른다. 그전에 멸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불가사의하다. 내가 나를 모르니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구입한 지 한 보름 되었다. 양장본을 사야하나 보급판을 사야하나 고민 좀 했다. 가격이 두 배이상 차이가 난다. 몇날 몇일을 두문불출하며 장고한 끝에 보급판을 구입했다. 결론은 만족한다. 이제는 읽는 일만 남았다. 책의 두께를 보니 엄두가 안난다. 당초 계획은 예천천문우주센터에 갈 때 이 책을 가지고 갈려고 했었다. ‘천문우주센터방문이라는 이번 여행의 목적에는 기똥차게 부합하지만 12일의 여행 기간을 고려하면 얼토당토 않은 선택이다. 거기다가 만약 이 책을 짐가방에 넣는 것을 아내가 목도했다면 분명 한 소리 주워 들었을 것이다. “쓸데 없는 짓도 되우 하네....흥흥흥그리하여 결국 가져간 책은 무라카미 라디오2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이다.

 

 

 

 

 

 

 

 

 

 

 

 

 

 

 

 

 

예천 천문우주센터의 별천문대 건물이다. 무슨 우주선을 본떠서 지었다고 하는데, 우주선은 아닌 거 같고

우주기지 비슷한 모습이다.

 

 

 

 

 

 

 

 

주간 관측 모습이다. 낮에도 관측이 가능한 거시기 별을 맞추어 놓았다는 설명인데, 눈알빠지게 아무리 들여다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혜림씨라고 뭐 별수 없다. ㅋㅋㅋ 생각해 보라. 지구에서 1600광년 떨어져 있다는 거시기 별이 저런 걸로 그리 쉽게 보이겠는가 말이다. 그것도 대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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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26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주 관련 책들 보면 초장에 늘 나오는 - 태양이 조금만 가까웠어도 우리는 통닭구이, 조금만 더 멀었어도 빙수 재료- 글 보면, 이리 아웅다웅 하며 살지 맙시다 지만, 이 삶의 궤도가 또 어지럽습니다

붉은돼지 2015-05-27 09:27   좋아요 0 | URL
통닭구이ㅋㅋㅋㅋ 맞습니다. 광활한 우주에 비해 우리 지구와 인간들은 극히 소소하고 미미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또 그런 것 만은 아니지요...^^

cyrus 2015-05-26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초등학생 때 남자아이들이 많이 가입하던 보이스카웃 대신에 우주소년단이라는 것을 했어요. 과학 특히 우주 천문학 관련 실습 위주로 활동하는 단체였어요. 우주센터에 방문하는 캠프도 했었어요. 그런데 하필 그때 IMF 시기라서 참가비가 부담되었어요. 결국 우주소년단 활동을 1년만 했어요. 결혼해서 미래의 자식이 생긴다면 우주센터 캠프에 보내고 싶습니다. ^^

붉은돼지 2015-05-27 09:33   좋아요 0 | URL
제가 어릴 때 보이스카웃은 좀 사는 아이들만 가입했던 것 같습니다. 우주소년단이라는 것도 있었군요....나쁜 외계인으로 부터 우리 지구를 지키는 그런 ㅎㅎㅎㅎ

예천 말고도 천체관측할 수 있는 곳이 여러군데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cyrus님 아이가 초등학생 될 때 쯤이면 더 좋은 곳도 많이 생길겁니다. 아마.. 그리고 아래 달걀부인님 말씀처럼 공기좋은 시골에서 밤하늘 구경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새아의서재 2015-05-27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보단 몽골로 보내심이 어떠신지요? 직접 눈으로 바라보는 밤하늘이 별이 머리위에서 빙글빙글돌고있는 충격이 천문대에서의 관측만큼이나 놀라울듯 싶어요. 다 멀리서 보면 저리 빛나는 작은 점이니라..몽골 힘드시면 ...백두산도 괜찮습니다. 노천온천에서도 별이 쏟아집니다요. 오시면, 제가 안내합죠!

붉은돼지 2015-05-27 09:37   좋아요 0 | URL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군대 있을 때 전방에서 밤하늘의 은하수를 처음 봤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 살아서 봤을 수도 있지만 기억에 없고, 은하수를 본 기억은 군대 있을때 이후로는 없습니다. 은하수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몽골의 밤하늘은 별이 빙글빙글 도는군요.. 한번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