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생활 20여년 만에 이렇게 큰 박스는 처음 받아 본다. 기념으로 찍어봤다. 근자에 타셴의 미술책을 몇 권 구입했다. 크기도 어마무시하지만 가격도 어머무시라한다. 하지만 책은 정말 마음에 든다. 다만 뭐 거의 영어 까막눈이어서 읽기가 어렵고 또 책이 너무 무거워서 들기도 어렵다. (저울에 달아봤다. 무게가 거의 8KG 그램이다. 팔 떨어진다.)
사울왕에게 골리앗의 머리를 바치는 다윗(1627) 쿤스트 박물관, 바젤
왼쪽 : 회개하는 베드로(1631), 이스라엘 박물관, 예루살렘
오른쪽 :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예레미아(1630), 레이크스박물관, 암스테르담
나사로의 소생(1630-1631),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엠마오의 저녁식사 1628. 자크앙드레 박물관, 파리
툴프박사의 해부학 교실 1632, 마우리츠하위스, 헤이그
십자가에서 내리다. 1632-1633, 알테피나코테크, 뮌헨
아브라함의 희생 1635,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쥐박물관
인간의 가장 여리고 약한 것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야훼. 비정한 아버지 아브라함은 생때같은 어린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말리지 않았다면 늙은 아비는 어린 아들 이삭의 목을 땄을 것이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삼손의 실명 1636, 프랑크푸르트, 슈타델박물관
삼손의 잘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배신녀 들릴라(옛날에는 데릴라라고 했더랬다.)는 황급히 병사들 뒤로 달아나고 있다. 머리잘린 삼손은 힘을 잃어 병사 두세 명에게 제압당한 채 눈알을 찔리고 있다. 한껏 꼬부라진 발가락에서 삼손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힘을 잃었으니 당할 수 밖에. 황석영의 소설 중에 <장사의 꿈> 이라는 단편이 있었다. 기골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시골 총각이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하지만 결국 뽀르노 배우가 되어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내용이다. 한 평론가의 리뷰 제목이 '머리 잘린 삼손의 분노'였던 것이 기억난다.
다윗의 편지를 받은 밧세바 1654, 루브르박물관, 파리
A는 B를 낳고, B는 C를 낳고, C는 D를 낳고, H,I,J,K,L,M,N....계속해서 낳고, 낳고, 낳고, 끝없이 낳는, 마태복음 1장은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다윗왕은 BC 1000년경 사람이고 예수는 기원 전후의 사람이니 이른바 이새(다윗의 아버지다.)의 뿌리로부터 예수까지는 1000년의 세월이 놓여있는 것이다. 뭐, 한 1000년 쯤이면 그 씨앗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그 뿌리가 어디로 뻗어갔는지 혹은 어디서 썩어 없어졌는지 알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경전은 꼭꼭 찝어서 예수의 인간세의 조상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있다. 뭐 신의 아들이면 단 2세로 끝인데(아버지 신, 아들 신)....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등등등 호명하기에 입이 아프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 죽인 그 순간은 바로 슈퍼스타의 탄생이었느니,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백전불굴의 장수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심금을 울리는 시인이요, 띠리리리 리리 아름다운 소리 수금의 명인이자, 더더구나 미남자였던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었다. 반면에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 음심을 품어 궁으로 불러 겁탈하고 우리야는 전쟁터의 사지로 몰아 죽게(살인교사)한 후에 그녀를 아내로 취하니 더럽고 치사한 인간 말종이기도 했다. 집구석이 온전할 리 없다. 다윗의 장자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을 강간한 사건이 있었는데, 다윗이 이를 처벌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자 다말의 친오빠이자 다윗의 5남인 압살롬이 이복형 암논을 살해하고 나중에 아버지에 반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전투 중에 허망하게 죽고 만다. 오! 압살롬! 압살롬!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다윗은 통곡을 했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다.
성경에는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지 않아 그 세세한 속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유대고대사를 쓴 요세푸스는 물론 다윗의 죄를 언급하는 한편 밧세바에게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소생이 아직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말하자면 둘이 짝짜꿍된 화간이라는 것인데, 당대나 그 이전 시대의 화가들은 대부분 이런 시각에서 밧세바를 그렸다. 다윗왕의 부름을 받고 들떠있거나 기대에 찬, 적어도 슬픈 표정은 없는 그런 모습을. 렘브란트 자신도 그런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그린 밧세바는 다윗의 전갈을 받고 수심에 잠긴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어떻게 몇 번의 붓칠로 저런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1654년작 <다윗의 편지를 받은 밧세바>는 루브르에 있다. 예전에 루브르에 갔을 때 열심히 찾았는데 어디 다른 전시에 차출이 되었는지 결국 못봐서 무척 아쉽고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큰 도판으로나마 대면하니 나름 위안이 된다.
왼쪽 : 십계명 언약돌판을 내리치는 모세, 오른쪽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