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처음 방문한 곳은 톱카프 궁전이다. 우리는 5일짜리 박물관 패스를 미리 끊었기 때문에 매표소에서 줄을 서지 않고 입장했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술탄 메흐메트는 당연히 비잔틴의 황궁을 궁전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도와 무슬림은 생활방식 자체가 달라서 사용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당연히 새 술은 새 부대에 아닌가, 집을 새로 장만해서 이사를 하는데 누가 헌가구를 쓰겠는가. 어쨌든 정복자는 처음에는 지금의 그랜드 바자르 옆 이스탄불 대학이 있는 자리에 궁전을 지었다가 얼마 후에 지금의 톱카프 궁전 자리에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당시에는 궁전입구 출입문 양 옆으로 대포를 배치해 놓아서 ‘톱카프’ 궁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톱은 대포라는 말이고 카프는 문이란 뜻이다.
1475년~1478년에 지어진 궁전은 19세기 중엽까지 근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인 술탄들이 거처한 정궁이다. 동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제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상의 중요한 사안들이 이 곳에서 입안되고 결정되었다. 원래 궁전의 영역은 지금의 귈하네 공원을 모두 포함하여 이스탄불 곶 상단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이다. 궁전은 골든혼과 보스포루스해협, 마르마라해 세 바다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400년동안 몇 차례의 증축과 개축,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이런 절묘하고 멋들어진 곳에 지어진 궁전은 지구상에서 이 곳밖에 없을 것이다.
궁전은 3개의 문과 4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생이 톱카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두 군데다. 하렘은 아니다. 하렘이라고 하면 뭐 벌거벗거나 아니면 먼지떨이 같은 짧은 깃털 치마를 입은 매혹적인 아랍 여인네가 엉덩이를 찰랑찰랑 흔들며 현란한 배꼽춤을 추는 무슨 유흥과 쾌락의 주지육림을 상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무지가 낳은 오해다. '하렘'이란 이슬람 사회에서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방을 뜻한다. 이 곳은 가족이외의 어떤 남성의 출입도 금지된다. 일반 가정에서의 하렘이 확대된 형태가 왕실의 하렘일 것이다. 술탄의 어머니와 술탄의 여인들, 술탄의 어린 자식들이 거처하는 곳일 뿐이다. 금남의 구역이라고 하니 이교도들인 서유럽인들은 야릇하고 해괴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고 관능과 애욕이 불타는 지상낙원이 아니다. 뭐든지 금지된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금지가 강할수록 욕망은 커지고 욕망의 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는 상상이란 형태로 구현되는 법이다.
하렘에 대한 오해와 다소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 바로 ‘터키탕’이 아닌가 생각한다. 터키의 목욕탕은 ‘하맘’이라고 하여 일종의 증기탕이고 탕 안에서도 올누드는 거의 없다. 은밀한 부분은 수건으로 가리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터키탕’ 이라는 것이 유행하면서 터키의 목욕탕을 모두 한국 터키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 아시다시피 과거 우리나라의 ‘터키탕’은 오늘날의 ‘안마방’의 전신이고, 바로 매춘업소다. 1990년대 말에 터키대사관에서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터키탕이라는 용어는 점차 사라져서 지금은 없어졌다. 소생도 소싯적에 동대구역 근처에서 ‘터키탕’이라는 간판을 많이 봤다. 어린 나이에도 저 곳은 어떤 곳일까? 아!!!! 나는 언제쯤 저런 곳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 몹시 애를 태우며 꿈을 키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그 소년은 과연 커서 꿈을 이루었을까요? 그건,,,,, 음.......입니다. 그건 그런데, 얼마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이 한국식 터키탕의 원조는 바로 일본이라고 한다. 2차대전 후 일본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성행한 매춘업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오스만의 궁전에서 소생의 인상에 가장 남았던 두 곳은 이슬람 보물을 보관한 보물보관소와 이슬람교의 성스러운 물건들을 보관한 성유물실이다. 40~50분 줄서서 성유물실에 입장했다. 소생은 성유물실을 둘러보고 놀라서 뒤로 자빠질뻔 했다. 뭐 자빠질려고 해도 사람이 너무 많아 뒷 사람에게 밀려서 자빠질 수도 없었겠지만... 성유물실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은 역시 예언자 무함마드와 관련된 것들이다. 예언자의 망토, 예언자 턱수염의 털, 625년 Uhud 전투에서 부러진 예언자의 이, 예언자의 검, 예언자의 활, 예언자의 발자국, 예언자의 편지 등이다. 안타깝게도 두 곳 다 사진 촬영은 금지다.
소생의 입이 똭!! 벌어진 이유는 예언자의 털이나 이 그런 것 때문은 아니고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관련된 물건들 때문이다. 유리 전시함 안에 있는 것이 “아브라함이 사용하던 접시”,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칼”, “요셉의 가운” 이라는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작은 표지판에 ‘staff of Moses’ 혹은 ‘sword of David’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하!!! 모세의 지팡이라니!!!! 내... 참.... 길이는 1미터 조금 넘는 듯하고 중간중간에 대나무같은 마디가 있는 일자 모양의 지팡이다. 노인들이 흔히 집고 다니는 지팡이랑 비슷하다. 저 지팡이가 바로 홍해 바다를 둘로 똭!!! 갈라버린 기적의 그 지팡이???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가 야훼를 면담할 때 짚었을지도 모르는 그 지팡이??? 광야에서 40년 풍찬노숙의 삶을 버틸 때 모세의 노쇠한 몸을 지탱해준 그 지팡이란 말인가??? 모세가 기원전 14세기 사람이라고 한다면, 저 지팡이가 3000년도 훨 넘었다는 이야기인데.....아앙아아아!!!!...이건.... 정말 희대의 사기극이다.
톱카피 궁전을 나올 때 기념품 가게에서 영문판 가이드 북을 한 권 샀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사전 찾아가며 근근히 읽어보니 모세의 지팡이나 다윗의 칼 등 구약의 인사들과 관련된 물건들은 그게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추정이라도 누가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추정하였단 말인가? 이건 역시 사기야....하는 생각이 드는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종교란 결국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진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진짜든 가짜든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또 믿어 그 믿음이 쌓여 단단하게 굳어지면 그것은 어느듯 진짜로 성물(聖物)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물보관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궁전의 두 번째 문인 인사의 문이다.
하렘의 입구
하렘의 내부 중 일부분인데 술탄의 방인지 뭔지 기억이 안난다.
궁전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다윗의 칼. 모세의 지팡이는 책에 사진이 안나온다.
예언자의 신성한 망토가 보관된 금궤
예언자의 이 보관함
예언자의 성스러운 털이다. 어째 말투가 불손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