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 함께 한 것이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여름에 15년기념 여행 가자고 했지만 여건이 안 됐고 이번에 얼마 되지도 않는 10년 만기 적금을 손해 보고 헐었다. 오늘만 사는 인생이라...
처음에는 전국에 흩어져 사는 그리운 사람들 찾아 가는 여행으로 정했다가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제주를 못 가본 남편에게는 제주가 로망이라 급하게(?) 제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미리 공부(?)를 하고 갔어야 했는데 느리작거리다가 제주기행 책을 몇 쪽 보다 말고 무작정 떠났다.
맨 처음 찾은 곳은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바위그늘 유적이다. 탐라 땅의 원형을 알 수 있는 곳일텐데, 예전엔 이곳 동굴까지 들어갈 수 있었나본데 훼손 위험 때문인지 울타리를 쳐 출입을 못 하게 해놨다. 동굴 안이 어찌 생겼나 궁금했는데, 이곳에서 중석기 시대 유물인 석기와 토기 몇 점이 나왔다고 한다. 동굴 바닥도 바윗돌로 평평하게 다져두었다는 말만 들었는데 직접 들어가 보지 못 해 애를 태웠다. 남편은, 저 조그만 곳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울타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갈 수도 있을텐데 남편이 극구 말려서 들어가 보지 못 했다.
자주 올 수도 없는, 물 건너가야하는 이곳을 모처럼 왔건만 날씨가 궂어서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비바람을 뚫고 관광객들로 들끓는 성산일출봉에 잠시 들렀다. 남편은 피곤하다고 차에서 자고. 맑은 날보다 바람 불고 비오는 날을 좋아하다보니 비바람 덕분에(?) 더 운치있는 기분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마음껏 돌아다니질 못 했다. 떠나기 전에 단단히 훈련(?)을 시키지 못 한 것이 한이네.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고 중턱까지만 올랐는데도 신발까지 다 젖어버렸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은데 바람이 미친년처럼 불어서 온 몸이 꽁꽁 얼었다. 그런데, 추워서 기분 좋다.
우리 고등학교 때 세월호 아이들처럼 배타고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는게 유행(?)이었다. 그땐 비행기를 타는 건 꿈도 꾸지 못 할 일이었으니. 배 안에서 슬램덩크 만화책을 돌려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때 수학여행이 얼마나 끔찍한 기억인가 하면 하루에 한 십 여군데 이상을 들렀다. 어딘지 모를 곳에 버스를 타고 금방 내려서 사진 찍고 다시 버스타고 그러기를 사흘. 도무지 기억나는 곳이라곤 없던 제주. 그 아름다운 섬을 그렇게 흐릿한 도장밥처럼 찍고 다녔다. 그 중 한 곳이 이 성산일출봉인데 그곳에 간 기억은 나지 않고 이곳을 배경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찍은 우리들 단체사진만 남아있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고지불턱
불턱
잠녀(해녀)들이 잠수하기 전에 옷 갈아입고 잠수하는 중간에 물에서 나와 쉬고, 잠수 후에 몸을 말리던 곳.
『제주기행』에서 주강현은 불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불턱은 해녀 문화가 남긴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이다. 물질은 불턱에서 시작하여 불턱에서 끝난다는 말도 있다. 물질 나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고 불턱에 모여 불을 쬔다. 찬물에 뛰어든 해녀들은 뭍으로 올라와 불턱 주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돌담은 물질에서 대단히 소중하다. 일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언 몸을 녹이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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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턱은 단순히 몸을 녹이는 공간만이 아니다. 애기해녀가 첫 물질을 어른들에게 신고하는 장소요, 기량 뛰어난 상군해녀에게서 경험을 한수 배우는 곳이다.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미심쩍은 소문의 진위가 확인되는 곳이며 심보가 고약한지 아름다운지도 여지없이 들통나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불턱 위치는 네비로 찾을 수 없어서 첫 숙소 주위에 있던 북촌항 주위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기왕에 온 제주, 답사하는 기분으로 훑자는 어설픈 생각에 잠녀들의 쉼터인 불턱에 집착했다. 엄청난 비바람에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겨우 찾아낸 불턱. 지금은 쓰지 않는지 쓰레기들이 꽤 남아있다. 그래도 얼마나 반갑던지. 불턱 주변에 요즘에 잠녀(잠녀, 잠수라고 부르던 것을 일제시대부터 해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들이 쓰는 집이 따로 있다. 벽과 지붕을 현무암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비자림에도 갔었는데 비자림마을 평대리에 있다는 불턱을 못 보고 온게 아쉽다.
월정해안을 지나다가 발견한 불턱. 가운데 커다란 화덕이 있는 이 불턱은 고지불턱에 비해 규모가 크다.
수많은 제주의 오름 중에서 으뜸이라는 군산오름.
제주에 온 지 며칠 만에 해가 반짝 떴다. 군산오름에서 내려다본 제주 전경이 장관이다. 저 멀리 한라산도 구름에 싸여 우뚝 서있고, 제주 전체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래서 제주가 깨끗하구나 싶었다. 차로 정상근처까지 가서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체력이 너무 떨어진 우리 부부는 다리가 아려서 밤에 고생했다.
바닷가에 가다보면 해신당이 있다. 강원 삼척에 있는 해신당은 처녀귀신을 달래기 위해 사당 안에 남근목을 깎아 걸어두었는데, 제주의 해신당은 돌 많은 동네답게 돌담으로 신당을 감쌌다. 어부, 해녀들이 요왕(龍王), 해왕(海王)을 모시고 있는 당으로 어부들은 매월 초하루 보름에 당에 다니고, 해녀들은 물에 들 때 수시로 간다고 한다. 우도 가려고 종달항에 들렀었는데 종달리에 해신당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들렀다 올 것을. 이번 여행은 뭣 모르고 가서 놓친 게 많다. 사진에 있는 이곳은 월정리에 있는 해신당이다. 작년 봄에 시누이랑 훌쩍 떠난 제주여행에서 처음 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가장 좋았던 곶자왈.
곶자왈은 '덩굴과 암석이 뒤섞인 어수선한 숲'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으로 가시덤불과 나무들이 혼재한 '곶'과 토심이 얕은 황무지인 '자왈'이 결합된 단어라고 한다. 버려진 숲으로 여겼던 것이 오히려 사람 손을 덜 타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이유라고 한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칼처럼 아무렇게나(인간의 의식수준으로는) 자라나는 나무들과 나무들과 공생하며 뒤엉킨 덩굴들, 나무에 기대어 함께 사는 콩짜개 넝쿨(나무에 붙어서 동글동글 푸른 이파리들이다. 콩을 반으로 쪼개놓은 모양이라 그렇게 이름붙였다고 한다.)과 숨골들. 신비로와서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든다. 골프장, 호텔 들을 지어대느라 곶자왈이 점점 사라져간다고 하는데 제주가 더이상 인간의 손에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태어나면 꼭 나무가 되고 싶다.
제주에서 바다는 마음껏 봤다. '제주로 언제 이사가?', '제주에서 살자.' 하고 남편을 계속 졸라댔다.(너무너무 비싼 땅이 돼버려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 다시 갈까. 제주 음식값이 너무 비싸서 성질이 뻗쳤다. 땅값이 너무 오른 탓이리라. 제주사람들은 이 지독한 물가를 어떻게 견디나 궁금하다. 다들 집밥만 먹고 사나.
제주굿을 보고 싶었는데 시기가 안 맞다. 제주 영등굿을 매년 음력 2월 14일에 한다고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한다는 굿을 꼭 보고싶다. 내년 3월 11일인데 그때 갈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