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순의 천일야화 6 - 알라여,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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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대단원이다. 방대한 <천일야화>를 단 6권으로 끝마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이 책은 원작을 고스란히 옮긴 책이 아니라 또 다른 '순수창작'이기에 6권으로 충분할 것이다. 허나 양영순이 담은 감동만큼은 6권으로 부족할 것이 틀림없다. 웹툰이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그 두배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대서사일테니 말이다. 20여 년 전만해도 일본만화의 홍수속에서 우리 국산만화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처지였다. '명함을 내놓는다'는 표현조차 일본식 표현이니 할말조차 없었을 것이다. 허나 이제는 'K-웹툰'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만화왕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마저 '한국 웹툰'은 대세를 거머쥐고 있으니 말이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에서 아이어맨이 로키에게 말한 대사가 있다. "우리에겐 헐크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마따나 "우리에겐 양영순이 있다"로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천일야화>는 대작이었다. 근데...안타깝게도 양영순은 '다작'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다작'이 대문호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닐 것이다. 일본 <파이브스타 스토리>를 봐도 그렇다. 아직도 '완결'을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1년에 한 편은커녕 10년에 1~2권을 쓸까 말까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독자들은 그렇지가 않다. 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하고 또 기대할 뿐이다. 더구나 <천일야화>가 꼴랑 6권으로 종결을 한 뒤에 허탈감은 더했을 것이다. 충분히 더 우려먹을 수도 있었을 것을 하고 말이다. 그 때문인지 양영순의 <덴마>는 가히 '스페이스 오디세이'라고 불릴만큼 긴 이야기를 담았다. <천일야화>도 그처럼 길게 연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암튼, 대단원의 도입부는 전편에 이어 '한 가지에서 꽃이 피면 다른 가지에서는 꽃이 지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리뷰에선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그동안 스포 다 해놓고 뭔짓이냐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판매중'인 이 만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마지막 이야기가 궁금해 미치겠다면 직접 읽어보시는 것도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양영순의 작화기법은 '가질 수 없기에 더 가지고 싶다'는 모순적인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는 것 같다. <천일야화> 1권부터 쭉 살펴보면, 이야기들이 모두 '극적인 감동'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어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욕구'를 내비치는 순간 영원하고 완벽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허무러지고 사라져버리는 '허무감'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생명, 당장 죽음을 마주했을 때에는 '살아남기만' 하면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린다고 해도 행복할 것이라 여겼건만, 막상 살고나면 빼앗기도 싶지 않고 싶은 법이다. 사랑은 어떤가?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숭고한 것이라 여기지만 내 사랑이 아니면 다른 이의 사랑은 그저 '입담화'에 오르내릴 천박한 추문에 불과하다. 희생은 고귀한 것이라 여기면서도 자기 자신은 절대 희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권력 또한 누리면 누릴수록 애초의 투명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 것인지 오래되면 될수록 감추고 또 감추어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장소'에서 이루어지며, 나중에 밝혀질 때는 죄다 추악한 흉물에, 코를 쥐어잡는 악취가 진동할 뿐이다. 그런데도 양영순과 만나면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감동 스토리'로 변모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진실과 마주할 때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수긍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러한 감동적인 스토리도 자꾸 반복되다보면 식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느낌이 팍 오기 때문이다. 마지막 6권의 이야기도 그렇다. 쌍둥이 중 한 쪽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한 쪽이 날마다 '생명의 주문'을 외워줘야만 한다. 하지만 애초에는 그럴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별되어 '서로의 존재'를 모르도록 키워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한 쌍둥이가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서 그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밀을 알아낸 쌍둥이를 죽여버린다. 그럼 남은 쌍둥이도 저절로 죽게 될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잔혹한 이야기로 진행되면 그저 끔찍한 이야기에 불과할테니 한가닥 살 수 있는 희망을 심어놓았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외워야 할 방대한 주문을 하루종일 '읽는 것'이 일상이었던 한쪽의 눈을 멀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눈이 먼 쌍둥이 형제는 이 사실을 모르는 남은 형제를 살리기 위해 그 긴 주문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그리고 장님이 되어 시장 한구석에서 구걸을 하면서도 형제를 살리기 위해서 주문을 외우며 살아간다. 원래는 자신이 살고 다른 형제가 죽을 운명이었음이 너무도 미안해서 말이다. 그렇게 뻔뻔한 삶을 살아갈 운명이 너무도 죄스러웠기에 말이다. 그리고 두 형제가 나중에 마주치게 된다. 서로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말이다.

 

  한편, 조카와 숙부 사이의 칼부림도 '외세의 침략'이라는 대위기 속에서 일단락이 되고 만다. 아무리 원수같은 사이라하더라도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우면 힘을 합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나 내전이 길었던 탓에 외세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할 수는 없었다. 마치 어부지리처럼 막강한 군사력 앞에 허물어지고 만 셈이다. 허나 샤리아르의 왕비가 아니었던 세라자드는 살아남았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은 전쟁통 속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스포는 안 한다고 했지만, 궁금하게는 만들어야겠기에 짤막하게나마 적어 보았다.

 

  <천일야화>는 그저 그런 야한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아름다운 미녀가 등장하고 강력한 마신이 등장하는 후끈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결코 야릇한 이야기만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교훈적인 이야기'만도 아니다. 잘못된 선입견에 빠져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는 임금이 등장하긴 하지만, 임금의 무능을 탓하지 않고 누구라도 한 번 들으면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깨치고 올바르고 현명한 군주로 되돌아오시라고 매일밤 드리는 기도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문'은 무려 1001일만에 성취가 되었다 무려 삼 년만에 말이다. 이 정도라면 간신히 '서당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찌 한 나라의 임금이 '서당개'에 비유될 수 있겠느냐고 코웃음을 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서당개보다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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