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E. B. 듀보이스 <흑인의 영혼>

모든 이가 존엄과 자존,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원한다. 하지만 듀보이스는 피부색(또는 성적 지향이나 젠더) 때문에 인류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이 가야 할 길이 훨씬 험난하다는 현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소외된 자, 차별받는 자, 사회부적응자들은 가장 정중한 사회 구성원마저 던지는 무언의질문 하나를 감내해야 한다.
"골칫거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요?" - P20

켈리가 읽은 바에 따르면, 젠더는 스스로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한 믿음이다. 또 젠더는 선천적인 것으로, 사람들은 본인의 젠더를 딱히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젠더로 오인받는 게 아니라면 자기 젠더를 타인에게 밝힐 필요도 없다. 켈리는 자신이 어릴 적에 이렇게 자의식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 P58

켈리도 내심 와이엇의 행동과 감정을 의학적으로 설명할방법이 존재하리라 믿고 있었다. 이 같은 기대는 너무나 뿌리깊고 단단했다. 그래서 켈리는 와이엇이 원하는 장난감을 마음껏 고를 수 있도록 방임함으로써 자신이 올바른 양육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때조차 이런 생각을 서둘러 떨쳐버리려 했다. 와이엇은 정신장애가 있지도, 아프지도, 기이하지도 않았고, 괴물도 아니었다. 와이엇이 남자아이로서 행복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켈리가 할 일은 와이엇이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도움이나 확신, 혹은 그 무엇이라도 선사해주는 것이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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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입문 ㅣ 창비신서 74
테리 이글턴 지음, 김명환, 장남수, 정남영 옮김 / 창비 /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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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문학이론의 난해함에 이글턴의 난해함까지 더해져 입문이라기엔 허들이 너무 높다. 과학은 이론을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만큼 문학도 공부하지 않고는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관점을 철저히 보여주는 책. 10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지. 내 이해 수준엔 별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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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객관적이고‘ 기술적인 범주로 보아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그저 사람들이 문학이라고 부르기로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류의 가치판단들은 개인적 변덕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판단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분명히 흔들리지 않는 더욱 심층적인 신념의 구조들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문학은 곤충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존재하는것은 아니라는 사실, 나아가 문학을 구성하는 가치판단들이 역사적으로가변적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또한 이 가치판단 자체도 사회의 이데올로기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판단들은 궁극적으로는 단지 개인적인 취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들이 다른 사회집단들에 대해 힘을 행사하고 또 그 힘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의거하는 전제들을 가리킨다. 만일 이 말이 지나친 주장이요 저자 개인의 편견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영국에서의 ‘영문학(연구)‘의 발흥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것을 검증해볼 수 있을 것이다. - P26

여성해방론과 탈구조주의 사이에는 또다른 관계들이 있다. 탈구조주의가 파괴하려고 애쓴 대립쌍들 중에서 남녀 사이의 위계적인 대립이아마 가장 악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것이 가장 영속적인 것같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좋이 인류의 절반이 결함많은 존재이자 낯선 열등동물로서 내동댕이쳐지고 종속되지 않은 때는 한번도 없었다. 물론 이 어마어마한 사실은 새로운 이론적 테크닉으로 당장 교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이 더없이 현실적인 것이었긴 하지만, 이 남녀적대 이데올로기가 형이상학적 환상을 어떻게 내포하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남성에게 주어지는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이득에 의해 그 이데올로기가 유지되었다면 또 한편으로그것은 시급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공포. 욕망 • 공격성 • 매저키즘. 불안의 복합구조에 의해서도 유지되었던 것이다. 여성해방론은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쟁점, 여타의 정치적 사업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특별한 ‘캠페인‘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삶의 모든 면을해명하고 탐구하는 차원에 서 있다. 여성운동의 메시지는 국외자들에의해 해석되었듯이 남성과 똑같은 권력과 지위를 여성이 가져야 한다는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런 권력과 지위 전체에 던지는의문인 것이다. 그것은 세계가 더 많은 여성의 참여로 더 좋아지리라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역사의 ‘여성화‘ 없이는 세계가 살아남을 수없다는 것이다.
. - P184

여성해방론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의지하는 프로이트 이론가 중의 하나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자끄 라깡(Jacques Lacan)이다. 그것은뫄깡이 여성해방을 앞서 말한 사상가였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운동에 대한 라깡의 태도는 주로 오만하고 경멸적이었다. 그러나 라깡의 작업은 주체라는 문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위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과 언어 간의 관계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프로이트를 ‘재해석‘ 한 대단히 독창적인 시도이다. 이중주체와 언어의 관계라는 문제는 라깡이 문학이론가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라깡이 자신의 『글』(Ecrits)이라는 책에서 하고자 했던바는 구조주의자와 탈구조주의자의 담론이론이라는 틀로 프로이트사상을 재음미하는 일이었다. 라깡의 시도는 우리를 때때로 당황하게 만들 만큼 불투명하고 수수께끼로 가득찬 체계이지만 탈구조주의와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간략하게나마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도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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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은 명량에서 깨어진 적선에 올라가빼앗은 쌀이었다. 모두가 적들에게 빼앗긴 연안 백성들의 쌀이었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대낮에 오한이 오면서 임진년에 총 맞은 왼쪽 어깨가 쑤셨다. 바람이 없는데도 먼바다에서 물결이 일었다. 내일, 바다에는 비가 내릴 것이었다. - P117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 P135

그때 나는 세상이 견딜 수 없이 가엾고, 또 무서웠다. 나는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무서웠다. - P212

정유년 겨울에, 전쟁은 전개되지 않았다.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전쟁은 천천히 죽어가는 말기 암과 같았다. 적이 죽어가는 것인지 내가 죽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않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이 분명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 - P213

이 힘겹게 겨우겨우 흘러갔다. 저녁이면 먼 섬들 사이로 저무는 햇살에 갯고랑 물비늘이 반짝였고, 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소멸하는 날들은 기진맥진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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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입문자를 위한 구조주의 해설서이다. 수박 겉핥기 정도. 겉도 다 핥는 건 아니고 혀만 살짝 닿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지만 표지의 무시무시한 4인방의 이름과 구조주의라는 난해한 개념을 얇은 분량에 담아 읽기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먼저, 구조주의의 땅고르기에 큰 역할을 한, 사고의 전환, 관점의 전환을 가져온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가 간략하게 언급되고, 구조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인 언어학자 소쉬르의 언어학 개념에 대해, 그리고, 구조주의 4대장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의 핵심적 관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읽을 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되는 듯하지만(라캉은 그마저도 안 된다) 책을 덮으면, 아니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앞의 내용은 머리 속에서 사라진다. 그저 몇 명의 이름과 몇 권의 책 제목만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에 대해 생각한다. 무지는 저자의 말 대로 단순이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음, 모르고 싶음의 성실한 축적의 결과다. 세상의 이치에 호기심이 없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는 무지한 사람이다. 계속 무지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The Giver]의 구조화된 Sameness 사회 속에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를 자각하는 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느리지만, 금세 잊어버리지만, 그 끈을 놓지 않아야겠다.

푸코의 ‘표준화', 레비스트로스의 ‘증여’의 관점에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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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4-25 1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도서관 책으로 읽었는데, 담에 꼭! 다시 하고 메모해 두었던 책입니다. 우치다 다쓰루도 제 컬럭션에 들어 있는 작가구요.
구조와 sameness에 대한 이야기 또 해 주세요~~~ 관심이 많아요, 제가^^

햇살과함께 2026-04-25 11:54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작가 책 더 읽어보고 싶어요! 제가 말해드리고 싶지만 말이 안나오는 ㅠㅠ 공부해서 머리에 구조를 좀 채워야겠어요 ㅠㅠ

서곡 2026-04-25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부해서 머리에 구조를 좀 채워야겠어요 ㅠㅠ˝ 눈물과 미소가 동시에 나옵니다 ㄷㄷㄷ 응원해요!!! 햇살님 남은 이 달 잘 보내시길요~~~

햇살과함께 2026-04-25 20:49   좋아요 2 | URL
서곡님 응원 감사합니다^^ 어려워요 어려워~ 울고 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