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가 욕망하는 방식뿐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까지도 변화시킨다. - P26

콘텐츠는 무언가가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콘텐츠는 밈(meme)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클리셰화함으로써 그것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 P29

벤야민은 일찍이 기술복제시대의 작품 수용방식이 ‘정신 분산적인’ 것임을 역설한 바 있다. 말하자면 "관중은 시험관인데, 정신이 산만한 시험관이다." 1936년 그의 글이 쓰인 이후로 9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놀랍게도 우리는 벤야민의 이 문장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어떤 경의도 존중도 없이 손끝으로 이런저런 콘텐츠를 뒤적인다. 이렇듯 정신이 산만한 시험관에게 과연 기대를 걸 수 있을까? - P31

핫플은 무관심을 통해서 쾌적함을 향한다. 핫플 사진은 그것이 런웨이처럼 아무것도 거슬리지 않는 매끄러운 것으로 보일 때 전리품 진열과도 구분된다. 과격하거나 놀라운, 황홀경과 같은 장면은 물론 사소한 것까지 귀중히 보일 때, 색다름은 내가 경험하는 순간 속에서 함몰한다. 매 순간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기 시작할 때, 대상의 성격은 물론 공간이 애초에 보유한 성격은 나에게 상관없어진다. - P43

게리 셔먼과 조너선 하이트는 귀여움을 귀여운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연결을 추동하는 감정으로 분석했다. 귀여움의 대상과 적극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은 대상을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도덕적인 고려의 대상(moral circle)에 포함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 P57

나는 귀여움을 권력관계나 돌봄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기존의 분석이 그 감정이 만들어 내는 일상적인균열과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귀여움은 강력한 느낌이다. ‘귀엽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내가 그와 맺고 있는 관계의 형태는 달라진다. 귀여움은 무관심의 벽으로 분리되어 있던 세계에 균열을 낸다. 특정한 대상에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전부 언어화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귀엽다‘는 가볍게 취급하기엔 농도가 짙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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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소설《맥파이 살인 사건》(열린책들, 2018)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책으로 인생이 바뀌려면 떨어지는 책에 맞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웃음을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회사까지 걸어가는 내내 이 말을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 P106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빠뜨릴 수 없다. 누군가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 없이 꼽았던 책이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10년 후에도그럴 것이다(미래의 일에 대한 몇 안 되는 확신 중 하나다). 이 책은 책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우주이다. 배경이 우주여서가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적이었다가 마르케스적이었다가 볼라뇨적이었다가 카프카적이었다가 칼비노적이었다가 보니것적이었다가………… 이런 식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며 평소 애정해 마지않던 작가들을 다 만나고 오는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독창적인 아우라와 유머에 번번이 허를 찔린다. 아무리 읽어도 절대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 P115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써온 표현을 지적받으면 아무렇지 않았던 과거가 무안하고 아무래져야 하는 미래가 번거로워 반발심이 들기 마련인데, ‘벙어리장갑‘처럼 이미 고유한 명사가 되어버린 친근한 단어를 놔두고 막 지어낸 듯한 어색한 단어를 가져다 쓰는 건 유난하다고 느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유난하다는 느낌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벙어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계속 상기시켜 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일 것이다. 이외에도 장애인 비하가 들어가 있는 표현들, 이를테면 ‘꿀 먹은 벙어리’ ‘눈뜬 장님‘ ‘눈먼 돈’ ‘앉은뱅이책상’ ‘절름발이행정‘ 같은 말도 역시 쓰지 않는다. - P125

의식적인 노력을 다한다 하더하도 글은 모든 상황과 입장을 전부 담지는 못한다. 어느 한곳에서는 반드시 누수가 일어나 어떤 존재들은 빠져나가고 배제되고 소외되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표현’을 계속 고민하고 다듬는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D들이 삐쭉댈 만한 말을 최대한 쓰지 않는 것. 누군가 내 글을 읽다가 외로워지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것. D가 슬프면 나도 무척 슬플 것이다. D가 아프면 나도 무척 아플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써왔던 말들을 버리고 벼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 P126

"그 후로 어쩐지 점심시간마다 너를 계속 기다리게됐어. 혹시 또 안 오나 해서."
다시 읽어도 숨이 멎을 듯해서 바닥에 잠시 주저앉았다. 펑펑 울었다.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서도 문득문득 뒷문을 쳐다봤을 M이 자꾸만 상상돼서, 그때마다 실망하는 M의 표정과 아무렇지 않은 척 실망을 추스르며 맞곤 했을 M의 오후가 자꾸만 생각나서, 그날처럼 크게 터져 나올 일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M의 끼룩끼룩대는 웃음소리가 자꾸 떠올라서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 후로도 수백 번은 더 하게 될 후회였다. 몇 번 더 갈걸, 더 자주 갈걸 하는 후회는 아니었다. 가지 말걸. 그날 가지 말걸. 그냥 지나갈걸. 그럴걸. - P134

설령 그렇지 않았던들 그건 엄마들만 미안해할 일이 절대 아니라고. 당시에는 어려서 사회가 ‘엄마‘에게 소급해서 씌우는 책임의 무게를 잘 몰랐다. 뒤에서 수군거리는어른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어른들이 미디어에 ‘나쁜 엄마들’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존재를 지워버렸다는 건 잘 몰랐다. 그래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한 번쯤 꼭 말하고 싶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그 시절을 우리가 어떻게 통과했는지에 대해서. 그런 우리들도 있었다고. 분명 있었다고. - P143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무능력했지 무기력하기까지 할까 봐!"라고 덮어놓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것도 내 안에 새겨진 다정들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쉽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서 얻게 되는 건 근육만이 아니었다. 다정한패턴은 마음의 악력도 만든다. 그래서 책 제목을 ‘다정소감‘이라고 붙여봤다. ‘다정다감‘을 장난스레 비튼 느낌도 좋았지만, 결국 모든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작은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인 것 같아서. 내 인생에 나타나준 다정패턴 디자이너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디자인에 워낙 재주가 없는 나에게 다정한 부분이 있다면그건 다 그들의 다정을 되새기고 흉내 내며 얼기설기 패턴을 만들어간 덕분일 것이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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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단체, 패키지여행, 이 세 가지가 결합해서 빚어내는 어떤 편견. ‘여행부심’과 ‘예술부심’이 이중으로 빚어내는 어떤 오만. 거기에는 후세대에 비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를 생활 밀착적으로 관람하는 문화를 경험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예술에 관심을 갖고 취향이라는 걸 만들어가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며, 지금처럼 여행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래서 여행을 가기까지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들이 쌓은 심리적 장벽을 패키지여행의 형태로 넘어보려는 세대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었다(중년 안에서도 경험치와 감수성이 천차만별일 거라는 고려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미술관에 가는 건 ‘경험’을 쌓는 걸로 봐주지만, 그래서 당장은 지루해하고 별 감흥을 느끼지도 못해도 그런 경험들 끝에 돌아올 ‘무언가‘를 기다려주지만 5, 60대 중년이, 이제 와서, 떼를 지어, 박물관 - P27

과 미술관에 가는 건, 단지 패키지여행 일정에 포함되어있으니 별생각 없이, 유명하다고 하니까, 그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싶어서,라고 쉽게 단정 지었다. 그들에게는 쌓을 ‘경험‘도 미래의 ‘무언가‘도 없을 거라는 듯이. - P28

그냥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가 오면 안 되나. SNS를 잠시 끊고 고즈넉한 여행을 즐기는 즐거움과 그때그때 SNS 친구들과 여행의 순간을 활발히 나누는 건 엄연히 다른 종류의 즐거움인데. 뭣도 모른 채 그냥 가보고 싶던 곳에서 먹고 싶은 거 먹고 나오면 안 되나. 그래서 맛이 없었다면 그건 실패한 경험인가. 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정원 사진을 찍고,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미술관에 가면 좀 어떤가. "유명한 스폿에서 사진 한 장씩 박고 가는 게 여행의 전부"면 또 어떤가. 타인이 더 나은 경험을 해보길 진심으로 바라서 하는 조언과, 무작정 던져놓는 냉소나 멸시는 분명 다르다. ‘세상의 빛을 보자‘는 게 ‘관광(觀光)’이라면, 경험에 위계를 세워 서로를 압박하기보다는, 서로가 지닌 나와 다른 빛에도 눈을 떠보면 좋지 않을까. - P30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이 비슷한 말들을 자주 듣게 된다. 후반전 시작 무렵부터 벌써 힘에 부쳐 내가 공을 차는 게 아니라 공에 내가 차이는 것에 가깝게 해롱대다가 결국 교체되어 축구장 밖에 나와 있으면, 전후반 풀타임을 거뜬히 뛰고 나온 4, 50대 언니들이 "나도 네 나이 때는 전반 겨우 뛰었어. 너도 내 나이쯤에는 후반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라고 위로를 한다든지, 며칠 전다 같이 받은 특훈의 결과로 종아리에 알이 잔뜩 배어다리를 모으지도 못하고 후들대며 걷고 있는데, 그 옆으로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며 언니들이 "네가 아직 하체 단련이 덜 돼서 그래. 나도 너만 할 때는 그랬어. 너도 웨이트 몇 년만 더하면 내 나이쯤 돼서는 다음 날 조금 쑤시다 말 거야"라고 격려를 한다든지. 이쯤 되니 나도 이 거꾸로 인간들에게 동화되어 축구장 밖 세상에서
‘나이가 많아서 난 이제 안 돼‘의 의미로 쓰이는 "내 나이 돼봐"에 적응이 안 될 지경이다. - P36

그런데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맞는‘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고통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통이 구체성을 띠고 다가오니 그게 또 두려움을 한결 줄였다. 적어도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다. 이것만도 굉장한 발전이었다. 우리는 보통 폭력에 제압당하기 전에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먼저 제압당하니까. 수비수한 명을 제친 기분이었다. - P48

‘좋은 사람’을 목표로 삼고 좋은 사람인 척 흉내 내며 좋은 사람에 이르고자 하지만 아직은 완전치 못해서 ‘가식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의 부단한 노력의 과정. 그러니까 내 앞에서 저 사람이 떨고 있는 저 가식은,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저 사람의 미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사람이 가진, 저기서 더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누군가가 "넌 가식적이야"라는 말로 섣불리 가로막을까 봐 지레 초조할 때도 있다. 실제로,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 중에 "내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자기혐오가 생긴다"라고 고민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 P63

내가 책을 어디까지 자기중심적이고 감정 과잉적으로 읽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가 있는데, 한창 되는 일도 없고 하는 일마다 망해서 나 자신이 너무나 하찮고 쓸모없게 느껴져 괴롭던 시절,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맞춤법 책을 읽다가 운 적이 있다. ‘쓸모 있다’는 띄어 쓰고 ‘쓸모없다’는 붙여 써야 문법에 맞으며, 그건 ‘쓸모없다’는 표현이 ‘쓸모 있다’는 표현보다 - P71

훨씬 더 많이 사용되기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그렇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그래, 세상에는 ‘쓸모없다’를 쓸 일이 더 많은 거야! 쓸모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게 정상인 거야! 나만 쓸모없는 게 아니야! 내가 그 많은 쓸모없는 것 중 하나인 건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멋대로 위로받고는 눈물을 쏟은 것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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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는 소위 ‘객관적 지식‘의 전제가 죽은 백인 유럽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음을 폭로하면서,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 개념은 모든 사람(그룹)의 비전이 그 사람(그룹)의 시시각각 변하는 정체성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상황적 지식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참인 것이 아닌,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의 한계인식을 포함하는 지식이다. - P105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에게 이원론의 미궁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암시할 수 있다. (…) 나는 여신보다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

해러웨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책은 1991년에 출판된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다. 이 책은 198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써 내려갔던 다양한 주제의 논문 묶음으로, 특히 「사이보그 선언」(1985)이 유명하다. - P110

실해러웨이의 이러한 사이보그 개념은 여성을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이보그를 통해서 해러웨이는 질문한다. 정말 ‘여성‘이라 자연스럽게 묶일 그러한 본질과 범주가 존재하는가? 실상 젠더, 인종, 계급 같은 단일한 정체성은 가부장제, 식민 자본주의의 모순된 사회현실들이라는 끔찍한 역사적 경험에 의해 우리에게강요된 성취다. 이때 ‘우리‘로 묶은 이는 누구이고, 그 ‘우리‘에 속하는 이는 누구인가? 이 ‘단일한 우리‘라는 묶음으로써 이득을 누리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라고 불리는 강력한 정치적 신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사람들이, 어떤 정체성들을 이용했는가? - P112

오히려 해러웨이는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죽음의 긍정이 절대적인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찬미한다는 의미에서의 긍정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죽어야 할 운명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특히 현대의 문화는 인간의 정상 상황을 고장 나지않은 상태, 즉 건강으로 삼는다. 건강에 대한 찬미는 죽음에 대한 감춤과 질병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다. 그러나 고장과 질병은 그저 부정적인 것일까? - P115

시몬 베유는 중력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조건을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검토한 인물이다. 그는우리를 중력에 묶어두는 구속력과 이에서 벗어나려는 정신의 운동에 관해 사유한다. 시몬 베유에 따르면, 두가지 힘이 우주를 통치한다. 빛과 중력. 두 힘은 물리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 P121

베유는 공장 노동에서 스페인 내전 참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뿌리 없는 자들의 문제"라 진단한다. 이들은 소외와 박탈로 일상을 영위하는 노동자 계급이며, 소속감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사람들로서 공허한 상실감이나 무료한 권태감 속에 생을 영위한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 P133

시몬 베유의 주된 사상은 중력과 은총에 나타나있다. 시몬 베유는 인간을 폭력과 고통으로 이끄는 ‘중력의 삶’에 대해 사유한다. 당대의 과학 지식을 수용했던 베유는 물리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정신의 에너지 역시도 중력의 법칙과 무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완전히 구분될 수 없으며, 인간은 홀로 자족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외부의 에너지에 의탁하여 삶을 영위한다. 인간에게 외부의 에너지는 언제나 욕망의 대상이며,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외부의 에너지를 사용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중력의 법칙은 특히 인간이 궁핍한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 P135

고통받는 자는 누구나 자기 고통을 사람들을 괴롭힘으로써 혹은 동정심을 유발함으로써―남들에게 알리려고 애쓰게 된다. 이것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한 것이며, 실제 이러한 방법으로 고통은 줄어든다. 아주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또 어느 누구도 괴롭힐 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 고통은 자기 안에 그대로 남아 그를 독살시키게된다. - P137

시몬 베유를 평생 시달리게 한 것은 자아라는 딱딱한 알맹이였다. 그에게는 스스로를 세계의 심판관처럼 여기며 자신만을 위하고 자신의 고통만을 울부짖으며 타인을 도구화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이들을 그저 바라보기만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죄책감이라는 이중의 칼날을 지닌 검은 때로 사람을 외부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도 하지만, 판단과 결합한 죄책감은 자신이 돕지 못한 사람을 도울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면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또는, 오히려 죄책감은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방어적 행동으로 변질되어 폭력의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기력으로 사람을 침잠시키기도 한다. 시몬 베유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 P140

크리스테바는 존재의 언어를 남성의 것으로 독점하거나, 육체와 무관한 순수한 정신적인 활동으로보는 전통적 언어관에 이의를 제기한다. 말하는 존재는 언제나 추상의 세계와 육체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고,
그 불가사의한 접면에서 말한다. 언어는 육체로부터 흘러나오고, 섹슈얼리티가 침투하면서 작동한다.
크리스테바는 ‘보편적 인간‘의 지위를 갖고 말하기와 글쓰기를 행하는 목소리가 실은 ‘특정 남성’의 목소리임을 잘 알고 있다. 크리스테바는 남성의 말하기라는 경계를 넘어,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고 글쓰기‘를 사유한다. 그리고 이 여성의 말하기와 글쓰기가 경계를 위반하여, 과잉으로 흐르고 분출하는 것을 목도한다. - P148

크리스테바는 구조의 완결성과 자족성에서 벗어난, 역동적 의미 생산에 대한 탐구를 상호텍스트성이라는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상호텍스트성은 무엇보다도 텍스트의 유일한 소유자이자 창조자로 여겨져온 작가의 위상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의 의미가 텍스트를 서술한 작가의 독창적 의도에서 비롯된다고 보지 않는다. 모든 텍스트는 우선 기존의 개별적 텍스트들 그리고 서술의 규율과 관습에의존하며, 그 자체로 완결적이지 않다. - P155

정신분석적 경험은 말하는 존재와 언어의 야수성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나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정신분석이 솔직하게 드러내는욕망과 증오의 배경에 대항하는 정치적 모델들이 내게는 거리가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방식인 것처럼보인다. 공포의 힘과 아브젝시옹처럼 말이다.

아브젝시옹은 비체(卑體)로 번역된다. 이는 언어상징계가 요구하는 적절한 주체가 되기 위해, 이질적이고 위협적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들을 거부하고 추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 P161

크리스테바는 비체를 통해 사람이 나와 다른 타인, 이방인들에게 매혹되면서 동시에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동질적인 소속감 강화를 꾀하는 내집단은 비체와 타인을 소비할 수 있을 때는 받아들인다. 언제나 모호한 경계를 가진 존재에게 끊임없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 질문하고, 같은 편이면 포섭하고 다른 편이면 배척한다. 그러나 비체는 언제나 경계 근처에 있고 동질의 내부로 결코 들어올 수 없기에,
이것이 동질성을 위협한다고 여겨질 경우 격렬한 열광으로 뭉친 내집단에게 곧장 극단적 혐오와 박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P164

나는 여성들이 복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단수로 말해질 수 없다. 여성은 복수다. 여성주의운동은 추상적인 단일 여성 서사와의 동일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처지와 위치에 있는 여성이 투쟁의 역사를 거쳐 확인한 가부장제의 분명한 차별에 함께 저항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함께 싸운다는 것은 나와 비슷한 고통에 바로 공감하여 연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동일시에서 비롯된 고통은, 내가 느껴본 고통에만 민감한 데 그쳐버릴 수도 있다. 고통에 공감하여 연대한다는 말을 내가 느껴본, 혹은 나와가까운 이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만 오인할 경우,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의 서사 일부로 통합하는 근대적 습관에 빠지기 쉽다. 고통의 가치를 규정하는 최종 심급을 ‘나‘라는 자기중심으로 수렴하는 방식을,
여성주의운동은 지양해야 한다. - P174

자기중심적 서사 구축에서 벗어나, 차이를 사상하지 않으면서, 차이에서 의미 있는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한 윤리적 태도와 서사의 방법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종결될 수 없는 여성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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