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1. 장애여성: ‘장애 여성‘이라고 띄어서 표기할 경우에 ‘장애‘가 ‘여성‘을 수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장애여성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야기하고, ‘수식어 - 명사‘라는 구분 없이 하나로 연결된 언어로 이해될 수 있도록 붙여서 ‘장애여성‘으로 표기했다. 같은 맥락에서
‘발달장애여성‘도 붙여서 표기했다. - P4

3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에 이르는 장애여성들이 인권운동, 예술 공연, 영업, 양육, 미술, 정치 활동, 생산 활동, 일상의 노동, 지역사회 네트워크 만들기 등을 하면서, 몸으로 부딪치며 사회와 제도를 바꾸며 살아온 몸의 감각이 젊은 장애여성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그 경험을 잘 기록해두고 싶다고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대신 책에 담긴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살아갈 후배 세대가 간직할 소중한 자산이고, 인생의 참고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존재하는 모든 몸들이 존엄하다는 사실은 정상성과 기능, 쓸모에 따라 매겨지는 가치에 위배되고, 절대 남에게 폐 끼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의 공공연한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P6

정상성의 사회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퍼트리면서, 선택적으로 어떤 의존들은 의존이 아닌 것처럼 은폐해왔다. 그 속에서 장애여성들은 독립은 의존 없이 불가능하다고, 의존하는 삶이 시설 수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외친다. 또 어떻게 사회가 장애인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당당하게 드러낸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축적해온 지식 없이는 인식이 확장되고 해방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 P7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혼자 알아서 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폐 끼침이 두려워 정상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의존하는 기술과 과정을 알려주고 있어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다. - P9

젠더와 장애가 교차되는 ‘장애여성‘이라는 언어는 장애여성공감의 운동적 지향을 압축하고 있다. - P13

우리는 이상한(queer) 몸을 가지고 있다. ‘모든 몸은 아름답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때때로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서 채택하는 선언이지만 각자가 가진 차이들을 쉽게 지우거나 고유한 삶의 방식들을 질문하지 않게만든다는 점에서 너무 뭉뚝하고 얄팍하다. 장애여성들은 정상성의 기준을 해체하고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는 퀴어한 사람들이며 각기 다른 몸을 가지고 고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퀴어함은 성소수자를 ‘이상하다‘며 비하하는 말이었지만, 사회와 불화하는 그 이상함이 사회가 추구하는 정상성의 폭력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는 정신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사회와 국가는 온전하지 못한 기능이나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 P20

불구의 정치가 피어난다. 불구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불구의 정치를 통해서 단지 사회질서에 통합되기 위한 장애 극복을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이상한 몸은 불구의 정치를 위한 우리의 힘이다. 이런 우리의 퀴어함이 자랑스럽고, 퀴어한 존재들과 동료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 P21

장애는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장애로 인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삶의 경험과 관계들, 더불어 장애와 함께 동반되는 통증은 매 순간 나의 일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장애를 떼놓고 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애와 나의 몸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난 여전히 나의 장애와 ‘좌충우돌 적응 중‘에 있으며, 이 적응에는 마침표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 P28

그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안에 있던 몸에 대한 정상성의 기준이 또 하나 깨져나가는 희열을 느꼈다. 수술 전보다 수술 후 살아가는 데 더 어려움이 있다면 ‘골절된 상태로 지내는 게 뭐 어때서?‘라는 의사의 메시지는 좀 더 쿨하게 나를 나의 장애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그날 밤 나는 바로 짐을 싸들고 퇴원했다. - P32

그러나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무시당한 채, 오로지 ‘돌봄을 받는 존재‘로만 인식되는 것에 솔직히 억울함을 넘어 매우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나도 여성으로서 이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다‘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돌봄의 역할이 여성에게 집중되고 그것이 노동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또 누군가는 장애를 가진 나처럼, 돌봄을 받는 존재로만 규정되고 이들에 대한 인식과 시선이 불편한 것이다. - P39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라고 여기는사회에서는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비정상적인 몸‘이 된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무런 장애나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인간의 몸에 대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환상은 의학과 자본이 만나 실제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매일 엄청난 양의 넘쳐나는 의학 정보와 건강을 매개로 하는 수많은 상품들은 건강한 몸, 즉 정상적인 몸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된다. - P41

소통하는 몸은 자신의 우연성을 삶의 근본적인 우연성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몸은, 그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취약하다. 고장은 몸에 내재되어 있다. 몸의 예측 가능성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우연성은 정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 - P42

영희는 장애인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당이 굴러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역량을 갖추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책임이 버거웠다. 장애인을 대표하는 한 명이 상징적으로 정당에 진입하는 방식을 넘어서 장애인의 진정한 정치 세력화를 이루려면 무엇을해야 할까? 영희는 이런 고민을 계속하다가 정당 활동을 정리했다. 6개월 정도 조용히 치유의 시기를 보냈다. 이후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사무국장을 맡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영희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사무국장을맡아 적응 시기를 보내고 지금은 대표로서 장추련에서 계속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P58

장애를 가진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은 여전히 몇가지 주제로 한정되어 있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다. 장애 극복 서사를 보여주거나 의료적 도움을 주는 일이나 경제적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들의 주제는 다 같다. 그건 흔히 동기부여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영감 포르노다. 영감 포르노는 호주의 코미디언으로 활약한 장애여성 스텔라 영(1982~2014)을 통해 알려진 말이다. - P67

레드는 상대가 제안할 때까지 기다리는 법이 거의 없었다. 레드에게는 글이 말보다 훨씬 예민하고 글자 하나하나를 통해서 감정이 전해졌기 때문에 감정이 통하는 사람을 잘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지속해나가면서 자신에 대해서 미리 충분히 알리고, 사진도 교환하고, 만나기전에 통화를 하면 대부분 판가름이 난다고 했다. 호감이 생기면장애가 벽이 되지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호감이 생기면 그가 피상적으로 알던장애가 만남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호감이 생긴상태에서 만난 사람도 있고, 단지 만나서 섹스를 하자는 데합의가 이뤄져서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레드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나누었고, 그에 대한 욕망을 서로 이해하고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 P72

그리고 정말 좋은 섹스를 하려면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이 시간만큼은 날 정말 사랑하라고 한다. 서로의 몸에 충실하는것. 부부관계, 연인관계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그순간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만족을 위해 집중하고 노력한다면 좋은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자신감이 있어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있고, 나와 상대방에게 질문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 때문에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참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레드가 원하는 것을 가로막고 자신감을 갉아먹는 요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섹스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자신이 원하는것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만 임했을 때 그것은 ‘당하는 섹스‘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만난 상대들은 초반에 레드의 적극성에 다들 놀랐다고 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처음부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 P75

사실 자신감은 섹스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왔을 때 자신을 원숭이 보듯 하는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그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즐기기 시작했을 때 외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삶에 자신감이 없는데 섹스할 때만 자신감이 생길 리 없다. 섹스에만 자신감을 보이는 남자들은 상대방의 만족을 전혀 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감은 이기거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만족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 P76

장애여성공감이 출발하면서 지금까지 내내 놓지 않는 화두가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이다.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진행되고 있는 질문들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다른 몸과 경험을 가진 장애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넘어서 자신의 성적 욕망과 쾌락을 어떻게 추구해나갈 수 있을까. 섹스가 매개된 관계가 폭력 피해만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제나 성공을보장할 수 없지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고, 섹스의 실패가 꼭 관계의 실패는 아닌, 그리고 관계의 실패가 꼭 삶의 실패는 아닌 그런 안전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 P77

차이에 기반을 둔 다양성이 존중된다면 사회적 소수자들이 동정의 대상, 복지의 대상, 혐오의 대상으로만 분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남성 중심/비장애인 중심/이성애 중심/선주민 중심/성인 중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되는 개인이 스스로 노력하고 극복하는 것보다 사회적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애여성운동을 통해 만나왔던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나는 세상을 보는 다른 렌즈를 장착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 내 몸의 기억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시도가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 P83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장애남성들은 ‘먼저 사고 치면 된다‘는 말도 많이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이 임신을 하면 그 부모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 여성의 부모는 ‘이렇게 된 거 어쩌겠느냐‘며 자신의 딸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순결하지 못한 상태임을 인정하고 ‘그래도 남자가 장애가 있으니 바람은 안 피우고 너한테 잘해줄 거다‘라고 말한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장애남성의 연애와 결혼 전략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장애 차별적인 인식을 묘하게 잘 활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P92

전형화는 소수자의 삶을 차별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치료, 극복, 불행, 불편 등의 부정적 서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로 구성된다.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비장애인과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산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생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 관계의 역동, 실패와 성공, 변화들을겪어내면서 사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다. 그 보편성과 장애라는 고유성 사이에 일어나는 복합적인 삶의 모습을 설명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경순은 쉽지 않았다. 세상을 비판하는 장애인운동은 경순에겐 먼 일이었고, 접해본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아이들이 기죽지 않도록 당당하게 키워내야 했다. 더 고집 있게 양육에 전념했던 이유다. - P117

딸들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지만 활동지원사와 관계 맺는 것을 볼 때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자존심과 주도권을 지키는 것, 남의 손을 빌려 사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게 경순의 원칙이다. 떳떳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어떤 활동지원사는 세 모녀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가르치려 들기도 했다. 자기새끼나 잘 가르치지 감 놔라배놔라 했던 일은 더욱 큰 무시의 기억으로 남는다. - P118

나는 혈연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지 13년이 되어가는 베테랑 활동보조 이용자이다. 사실 이 말은 남들이 내게 하는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베테랑 활동보조 이용자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활동지원사가 교체되는 순간 베테랑은 없다. 새로운 활동지원사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활동보조를 처음 받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사마다 적응하는 속도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므로 활동지원사가 새로 오는 날이면 베테랑 이용자라 불리는 나도 긴장하게 된다. - P137

활동보조 서비스는 중증 장애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도이다. 하지만 조금 더 대안적인 방법은 없을까. 인간의 삶이 각자 다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의 삶도 좀 더 다양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장애를가진 한 사람이지만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원하는 방식대로살았으면 한다. 사실 활동보조를 받는 이용자 중에 관계의중심을 잃고 모든 권한을 활동지원사에게 넘기는 이들도 종종 본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됨에 따라 장애인 이용자는 활동지원사에게 점점 종속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나 또한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활동지원사 교육보다 이용자 교육을 조금 더 촘촘히 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활동보조 제도를 비롯해서 IL 운동의 중요한 기반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지만 한 번도 주체 - P142

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장애인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장애인에게는 그저 선언에 불과할 뿐이다. - P143

지난 몇 년 동안 ‘춤추는허리‘에서 리더 역할을 하면서 장애여성의 삶 그 자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너 시간 연습을위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겨야 하고, 가족과 늘 타협해야하며, 활보와 소통을 해야 하고, 보조기구를 장착하고 나오기까지의 과정들,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장애인들 나오기 다 힘들지, 다른 장애인 극단도 그래, 뭐그렇게 유난스럽게 그래." 그러나 ‘춤추는허리‘는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연기를 위해 연기를 하는 곳은 아니다, 장애여성의 삶 그 자체가 연기인 것이다." - P163

지체장애를 가진 부원들의 활동보조는 조화영이 연극부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하나였다. 조화영은 누군가에게도움이 필요한 사정을, 도와달라고 말 못하는 속사정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회는 장애인이 눈치를 보고 부끄러워하도록 만든다. 조화영 또한 익히 겪어온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조화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부원들이 짜장면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제한된 선택지를 넘어 조화영이 발견한 ‘내 일‘이었다. - P171

"뭐지?" "왜 웃지?"라고 반문해왔듯 조화영은 경찰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들이 쓴 모자를 가리켜 "그 모자 내가 만든 거다!"라고 외쳤던 조화영의 말 한마디는 활동가들사이에서 어떤 구호보다도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것은 일하는 발달장애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한국 사회를 향한 일갈이었다. 아무리 지워도 나는 존재한다고, 내가 하는 일에 기대어 당신도 존재한다고 내질렀던 것이다. 조화영은 자신이 존재하는 일상의 자리를 인식하고 사회와 만나는 접점을 포착했다. 이를 해내기까지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되어준 것은 장애여성공감 회원 활동이었다. 조화영은 장애여성학교 인권반 수업에 참여하면서 "장애인도 대한민국 사람으로 보일권리가 있다는 걸 알고 인권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권을 사랑하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자 조화영은 교회에서의 일화를 들려줬다. - P178

한국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 상황이다. 발달장애인 지원법 제정을 비롯해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은 지난 몇 년간 장애인운동 진영의 중요한 이슈였다. 발달장애인 이슈는 주로 장애인 부모들의 투쟁으로 사회에 알려졌지만, 이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발언을 하고, 집회를 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화영도 동료들과 함께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투쟁‘해서 지키고 싶은 것은 ‘나‘였다. "활동가님이랑 함께하는 꿈"이 있다는 조화영은 이미 자신을 지키는 활동가로 일하고 있었다. 엄연한 일상의 자리에서. - P181

"남자냐 여자냐 차이지, 똑같아요. 나한테는 똑같이 비장애인일 뿐이에요.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같이 밥을 먹는다든가 차를 마신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일하는 게 편하지는 않아요. 그 사람들이 못 견뎌요. 내가 비장애인으로 여기서 버티고 있었으면 그들을 이끌어주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30퍼센트는 한계가있어요. 그들도 나에게 한계고, 나도 그들에게 한계예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30퍼센트예요. 그걸 서로 감안하고 가는거지. 한번은 아는 애가 ‘언니는 직장 동료들한테 안 미안해요? 그러더라고요. 걔는 내가 직장 동료들에게 도움받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마 다들 내가 직장에서 굉장히많은 지지와 격려와 이해를 받는 줄 알겠죠. 하지만 안 그래요, 직장 생활은, 삶은, 비장애인과 일하면서 일일이 표현할수도 없고, 도움받을 수도 없어요. 도움이라는 게 주고받는건데 내가 그들을 돕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한계를 30퍼센트는 항상 안고 가는 것 같아요. 그걸 안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맞춰서 살아가기가 우리나라 구조로는 너무 힘들어요."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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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때는 전화를 놓기 위해서 이사하는 날에 맞춰 전화를 설치해달라고 전화국에 미리 계약금을 주고 기다려야 했다. 전화가 들어온 날은 아파트에 대부분 다같이 전화가 들어오게 되어서 동네가 축제 분위기였다. 우리 집전화번호 뒤 네 자리는 아직도 이때 우연히 주어진 번호를 사용하고 있고, 식구들의 휴대폰 번호도 이 숫자로 했다. 때로는 전화번호가 가계도가 되기도 한다. - 이옥선 - P254

사실 젊음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혼돈을 겪어야 하는 힘든 시절인지도 모른다. 그 치기와 터무니없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진로의 탐색 등등. 그런데 말이지 살아보니 아웅다웅하고 잘난체하고 콧대를 세우고 그런 것들이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이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따위별 관심이 없어진다. 서로 편한 사이면 좋고, 까탈을 부리거나 좀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다. - P277

이 차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광고 카피가 ‘소리 없이 강하다‘였는데 요새 이 차를 운전하면 완전히 탱크 소리를 낸다(사실은 탱크 굴러가는 소리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직 씩씩하게 잘 달린다. 세차를 자주 하지 않아도 별 티가 나지 않는 우중충한 색깔이라 우리 식구들은 이 차 색깔을 두고 보때색(때를 보호하는 색)이라고 한다. 범퍼의 네 귀퉁이는 조금씩 흠집이 나 있고 차체 이곳저곳 긁힌자국도 나 있어서 그렇지 속은 말짱하다고, 자주 들르는 카센터 아저씨가 보증을 해주었다. 이 카센터 아저씨와는 2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아저씨 말에 따르면 전체 주행거리가 많지 않고 자신이 차의 내용을 잘 알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 P286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기 마련인데 어릴 때부터 독서, 독서 하면서 아이들이 독서에 반감을 가지게 해놓으면 남의 글을 허투루 훑어보고는 엉뚱한 비평을 하거나 제대로 이해를 못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매체에 글을 몇 편 올리면서 느낀바이기도 하다. 이제는 꼭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전자책도 있고 온갖 압축된 글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지 않나. 그러면 이걸 잘 읽어야 이해를 할 테니, 굳이 책이라는 형태로 되어있지 않더라도 남의 글을 의도한 대로 잘 읽는 연습 정도는 해야할 것 같다. - P296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행위로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을 고문하는 남자 사람이 우리 집에도 있다. 본격적으로 야구 시즌이 도래한 것이다. 자기가 응원하는 ‘놋대야‘ 팀이 야구를 하면, 거실에 있는 TV를 크게 틀어놓고 본방송은 당연히 보고 방송 3사의 스포츠 뉴스는 물론이고 이어서 <아이 러브 베이스볼> 기타 등등을 다 보고도 뒷날 아침에 일어나서 재방송까지 보고야 마는 이런 사람은 당연히 구속 입건 수사해야 할 대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309

자, 다시 한번, 그렇다면 운이 좋다는 것은 뭘까? 운이 좋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운이 좋은 사회일까? 운이 좋은 사람이 적은 사회가 운이 좋은 사회일까? 나는 나이를 제법 먹었지만 딱히 이것이다 싶은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많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다만 인용하고 싶은 어떤 구절이 있다.

자연은 푼돈까지 일일이 세고, 칼같이 시간을 따지며, 가장 미미한 사치까지 꾸짖는 인색한 회계사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자연 대신에 우주의 섭리라고 써도 좋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 P326

『노년예찬』(콜레트 메나주)이란 책의 부제가 ‘나이 든 사람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이 말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젊었을 때는 먹고사느라 고생고생했는데 늙어서도 그래야 한다면 사는 재미가 없지 않나. 그러니 젊었을 때 고생을 하더라도 나이 들면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늙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든 사람은 행복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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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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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생 작가의 인생을 관통한 이란의 역사 – 혁명, 시위, 정권 교체, 이란-이라크 전쟁 – 속에서 겪는 두려움, 혼돈, 그 혼돈을 피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가서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외로움, 다시 돌아온 고국에서 결혼과 프랑스 유학으로 끝맺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란이라는 먼 나라에 대해 조금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란의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도 언뜻 언뜻 겹쳐진다. 우리의 민주화운동, 집회/시위, 군부독재 시절, 전쟁 등. 다만, 종교를 절대화하는 정권에 의한 종교를 빙자한 차별과 억압이 다르다면 다르려나.


작가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0살 이전에는 테헤란에서 프랑스 학교를 다니며 학교와 가정에서 개방적인 교육을 받았으나, 1980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며 갑자기 프랑스 학교가 폐교하고 남녀가 분리되고 여자들은 그동안 쓰지 않던 히잡을 쓰고 신체를 가려야 하고 활동에 제약을 받는 삶을 강요받게 된다. 술도 파티도 외국문화도 자유로운 활동이 모두 금지된다. 종교적 금욕주의에 따른 생활이 강요되며, 몰래 하는 음주나 파티는 이웃에 의한 고발에 늘 신경써야 하는 감시, 검열 사회가 일상화된다. 술을 즐기던 이웃이 하루아침에 금욕주의자를 자처한다. 미니스커트를 즐기던 이웃이 하루아침에 정숙한 여인을 연기한다. 애초에 없던 것이 아니라 누리던 것을, 자유를 침해 받고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을 펴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조지 오웰의 1984도 생각난다.


작가의 부모님도 용감하고 멋진 분들이지만, 특히, 할머니는 너무 멋진 분인 것 같다. 작가의 정신적 지주. 다정함과 엄격함을 가진 분이다. 작가가 언젠가 할머니의 역사를 책으로 쓰면 좋겠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10여년 전에 사우디아라비아로 출장 갈 뻔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상사와 출장을 가려고 하였으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외국여성도 배우자를 동반하거나 종교경찰이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결국 그 출장은 남자후배가 대신 갔다. 출장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생소한 땅에 가볼 기회가 언제 오겠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장거리 비행을 좋아하지 않고 숨막히게 더울 것이 뻔한 그 나라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반반이었지만, ‘여자라서 기회를 배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겪으니 무지 기분 나빴던 기억이... 내가 사우디를 가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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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9-21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실물 두께 영접하
고 식겁했더라는 :>

다른 분들의 리뷰로 만족
하는 것으로 할까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09-21 21:23   좋아요 1 | URL
저도 도서관 사서가 건네주는 책 받고 두께에 하다다~~ 했습니다.
근데 이 책 350페이지 밖에 안되더라고요~
종이가 도화지처럼(?) 엄청 두꺼워요~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 작지만 단단한 바위섬이 하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는 ‘빅토리 노트‘를 펴볼 때마다 나의 태어남을 기뻐하고, 작고 연약한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보듬어준 누군가가 세상에 있었음을 문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마다 더욱 누렇게 바래어가는 종잇장 사이에서 인생의 비밀은 더욱 값지게 숙성되어 가는 듯하다. - P9

지금도 그렇지만 ‘헤어빨‘이 없으면 인물이 안 난다. - 이옥선

우리 엄마는 너무 정직해서 탈이다. 내가 방송에 나오거나 어디 실린 인터뷰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면 ‘니 눈 부었네‘ ‘머리가 웃기다‘ ‘눈썹이 진해서 어색함‘ 등등의 답이 온다. 그냥 칭찬거리를 좀 찾아서 얘기해주면 안 되는지. 서운할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까지 이런 대쪽 같은 정직함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 김하나 - P61

종이나 쇳덩이도 먹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지경이었을 때, 그때는 독박육아나 산후우울증 이런 용어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감정에 휩싸였는데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고 조금이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이제 두 살 반 된 아이와 7~8개월쯤 된 아이 둘을 데리고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니까 내가 마치 감시자 둘이 딸린 감옥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온종일 "맘마 먹자" "까까 줄까?" "쉬~, 똥 쌌니?" 이런 베이비 토크만 계속하다 보니 나 스스로 내가 한때 대학에 다녔고 누군가의 선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나 싶어졌다. 그냥 어른하고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4B 연필 씨는 평일에 제때 제정신으로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 P65

요새는 뭐든지 스스로 하겠다고 고집이다. 우유도 컵을 들고 직접 먹겠다고 하면서 내가 먹여주면 안 먹겠다고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고 그러다가 컵 고리에 손을 잡고 들고 마시다가 앞가슴에다 쏟아버리곤 한다. 밥을 먹을 때도 하나야 들고 있는 숟가락에다 엄마가 떠먹이는 숟가락, 두 개가 필요하단다. - P93

"똥 똥‘ 하며 손가락질을 하는구나. 정말 귀엽다." 마루에 똥을 누고 가리켜 보이는 것을 정말 귀엽다고 생각하다니도대체 부모의 마음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나는 우리 고양이들이 간혹 똥을 매달고 들어와 거실에 떨어트리면 기겁하는데. 그러니 엄마가 마음에 안 들 때면 내가 마루에 똥을 눠도 귀여워해준 사람이었음을 잊지 말자. - 김하나 - P100

"쾌활하고, 적극적이고, 고집쟁이고, 귀엽고, 착하고, 예쁘다." 위에 저렇게 패악질을 부리고 난장판을 만든 나의 만행을 다 서술한 뒤 "착하고, 예쁘다"로 끝나다니?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쓴 것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엄마는 습관적이고 인사치레 같은 말을 안하는 분이다. 종종 서운할 정도로 가차 없다. 오냐오냐 스타일과도 거리가 멀다. 이 일기에서도 엄마는 『난중일기』풍의 문체로 사실들만 간명하게 썼기 때문에 엄마가 실제로 저 모든 행패에도 불구하고 나를 착하고 예쁘게 보았던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P107

인구 정책요즘 사람들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려나. 지금은 출산율이 낮아서 야단이지만 45 년 전 그때는 정부 시책으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 아래 인구 억제 정책을 썼는데 우리는 어진 백성이라 정부시책을 잘 따랐다. 둘만 낳았고 불임 시술도 했다. 주공아파트를 분양할 때 불임 시술서를 내면 당첨될 확률이 높단다. 후에 진주까지 가서 서류를 떼 오기 귀찮아서 포기했지만, 그때는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은 정말 별일도 아니었고 필요하면 누구나 쉽게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낙태를 두고 불법이네 합법이네 왈가왈부하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니, 여자들이 용어 자체를 ‘임신중지‘로 바꾸고 계속 투쟁을 해서 겨우 합헌을 끌어냈다. 이걸 보면 우리 같은 시대의 여자들은 ‘정부가 참 별꼴이네. 언제부터그렇게 여성 건강을 생각해주고 태아의 인권을 생각했다고‘ 싶다. - 이옥선 - P113

나는 철이 늦게 든 편이었고, 가족의 입장을 배려하는 경우는 예민한 엄마의 잠을 신경 쓰는 것 외엔 거의 없었다. 만약 철이 일찍 들어 모든 가족을 배려하는 성격의 아이가 있다면 그아이는 어른스럽다는 칭찬은 많이 듣겠지만 자라서 남모를 고충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항상말했다. "새근이 너무 일찍 나는 건(철이 너무 일찍 드는 건) 좋은 것만은 아니야. 철모르고 지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씌우기도(고집부리기도) 하고 그래야지."
음, 그래서 엄마가 끝끝내 철이 안 든 아빠를 데리고 이혼을하네 마네 하며 평생 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김하나 - P125

이 일기의 중간쯤부터 필체가 바뀌고 문장의 느낌도 다른데 눈치채셨는지. 이 페이지는 아빠가 썼기 때문인데 나는 알지 못한 새 일어난 사건이고 하니 아빠보고 쓰라고 해서 생긴 일이다. - 이옥선 - P152

또 뭘 사달라고 조를 때 "엄마가 내일 사줄게" 그런 소리를 자주하니까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엄마 이게 내일이야?" 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엄마가 "아니야 내일은 하룻밤 더 자야 되고 이건 오늘이야" 하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잘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며칠을 계속 내일에 대한 질문을 하더니 이젠 그만둔 모양이다. 밖에 나가서 ‘개새끼‘라는 욕을 배워가지고 화가 많이 나면 아무나 보고 개새끼라고 하는 바람에 한번은 아빠에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단다.
성질도 사납고 고집불통에다 자존심이 강해서 매를 맞기도 하지만 인정이 많고(만약 오빠가 매를 맞거나 하면 엄마에게 항의를 하고 같이 울기도 한다) 건강하고(키는 작지만 오동통하다) 정말 정말 귀엽다. - P221

"500원짜리나 천원짜리는 엄마에게 다 주고동전으로 한 개 주면 좋아한다."
아직 어려서 그렇지 크면 자연스레 경제 관념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던엄마는 성인이 되어서도 돈 개념이 너무 없는 딸이 슬슬 걱정이 된나머지 돈은 중요한 것이라고 자주 일깨워 주려고 했다. 이때에도 인용구가 동원되었는데 앞서 말한 『조개 줍는 아이들』의 일부분이다.
"돈이란 중요한 거예요. 돈으로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좋은 차, 모피 코트, 하와이 여행이나 보석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독립, 자유, 품위, 배움, 시간같이 진짜로 소중한 걸 살 수 있으니까요."
나는 4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친구들로부터 ‘돈등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덕분에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돈의 가치에 대한 나의 생각에 단단한 틀이 되어준 문장이다. - 김하나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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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떤 책에서 추천한 건지 기억은 안나지만, 읽기 잘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한 아이에게 괜찮은 어른 한두명만 있어도 좋겠다. 아이들 읽으라고 사둔 작가의 “쑤우프~”도 조만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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