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사실과 신화
제3부 신화
2장 3장

몽테를랑Henry Millon de Montherlant(1896~1972)은 피타고라스류의 오만한 이원론을 나름대로 이용한 남성들의 긴 전통에 이름을 새기고 있다. 니체의 뒤를 이어 그는 허약한 시대만이 영원한 여성을 찬양했고, 영웅은 위대한 어머니에 반기를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P299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자들만 선택한다. 그는 여자들에게의식을 부여하는 것을 철저히 회피한다. 만일 그 흔적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격분해 자리에서 떠나 버린다. 여자와 어떤 주체 간의 상호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여자란 남자의 왕국에서 살아 숨 쉬는 단순한 물건에 지나지 않아야만 한다. 여자는 결코 주체로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관점은 절대 고려되지 않을 것이다. 몽테를랑의 남주인공은 기세가 등등한 것 같지만 실은 편리할 뿐인 도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걱정할 뿐이다. 그가 여자에게 애착을 가지는 것은 아니 그보다는 자기에게 여자를 붙들어 매는 것은 여자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즐기기 위해서다. 절대적으로 열등한 여자의 실존은 남자의 실체적이고 본질적이며 파괴할 수없는 우월성을 드러내 준다. - P307

몽테를랑은 애벌레들에게 오줌을 깔기면서 그중 몇 마리는 살려두고, 나머지는 박멸시켜 버리며 즐거워한다. 그는 악착스럽게 살려는 애벌레들에게 조소 어린 동정심을 보내고, 그것들이 살 기회를 얻도록 너그럽게 내버려 둔다. 이 유희가 그를 매혹한다. 애벌레들이 없었다면 소변의 방출은 기껏해야 배설 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것은 생사여탈의 도구가 된다. 기어가는 곤충 앞에서 자기의방광을 비우는 남자는 신의 전제적 고독을 맛본다. 보복받을 걱정도 없다. 이처럼 여자라는 동물 앞에서 남자는 높은 곳에 자리해 때로 잔인하고 때로 부드럽게, 차례로 공평하다가도 변덕스럽게 주고 다시 빼앗았다가 만족시켜 주기도하고, 동정하다가 화를 내기도 한다. 남자는 오직 자기 멋대로 즐길 뿐이다. 남자는 유일하고 자유로운 지배자다. 그러나 남성 앞에 나타나는 모든 동물은 오직 동물이어야만 한다. 남자는 일부러 그런 동물을 골라 그것들의 약점을 어루만져 주며 끈질기게 동물 취급을 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결국에 자기들의 조건을 수락하게 된다. 그래서 루이지애나주와 조지아주의 백인들은 흑인들이 하는 사소한 도둑질과 거짓말에 즐거워한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피부 색깔로부터 자신들에게 부여하는 우월성이 확인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이 ‘검둥이’ 중 한 명이 자신은 정직하다고 고집을 피우면 그를 한층 더 박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의 타락이 조직적으로 시행되었다. 군주 족속은 이런 비열함 속에서 자기들이 초인간의 본질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 P312

"채권자 앞에 있는 것처럼 의무감 같은 동요를 느낀다."
그러나 이 약함은 힘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결혼으로 아내는 그녀를책임지는 남편에게 자기를 준다. 라라는 쾨브르 앞에서 바닥에 눕고, 그는 그녀몸에 발을 올려놓는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아버지에 대한 딸의, 오라버니에 대한 누이의 관계는 군신의 관계다. 시는 조르주의 수중에서 봉건 군주에게 하는기사의 서약을 한다.
"당신은 영주요, 나는 불을 지키는 천한 무녀입니다." - P339

그래서 여자는 자기를 타자로 만들면서 - 나는 주主의 여종이다-자기를 주체로 실현한다. 그리고 여자가 타자가 되는 것은 자기의 대자속에서다. - P342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가 이 이상으로 찬양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상클로델은 약간 현대화된 가톨릭 전통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현세에서 여자의 소명은 그녀의 초자연적 자율성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거꾸로 여자에게 초자연적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가톨릭은 이 세상에서 남성의 특권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를신 안에서는 숭배하면서도 이 세상에서는 하녀로 취급한다. 게다가 여자에게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확실하게 여자를 구원의 길로 향하게 하는것이 된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가정에, 토지에, 조국에, 교회에 헌신하는 것은여자의 몫이며, 또한 부르주아 계급이 여자에게 언제나 할당해 온 운명이다. 남자는 자기의 활동을 제공하고 여자는 자기의 인격을 제공한다. 신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이런 계급제도를 신성화한다는 것은, 그런 차별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 고착시키도록 주장하는 것이다. - P342

진리, 아름다움, 시로서의 여자는 전체다. 다시 한번 타자의 모습 아래 전체이며, 자기 자신을 제외한 전체다. - P351

남자와 여자 사이의 눈에 띄는 차이는 그들 각각의 상황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여자들은 어째서 그녀들의 연인보다 더 몽상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수틀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따분한 일에 기계처럼 손만 움직이고, 머릿속으로 자기 애인을 꿈꾸고 있다. 한편 자기의 기병 대대와 함께 평원을 달리는 애인은 동작 하나라도 실수하면 영창에 갇혀 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여자들이 양식이 없다고 비난한다. "여자들은 이성보다 감성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습관에 따라 여자들이가정에서 어떤 중요한 책임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여자들에게 전혀 소용이 없다. (…) 당신의 소유지 중 두 자리쯤 선별해서 당신의 아내에게 관리를 맡겨 보라. 나는 그녀가 당신보다 장부를 더 잘 처리할 것이라 장담한다." 역사상여자 천재가 극히 적은 이유는 사회가 여자들에게 자기를 표현할 수단 일체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여자로 태어나는 모든 천재는 공공의 행복을 위해 사라진다. 우연히 능력을 발휘할 수단이 주어진 순간, 여자들이 가장 어려운 재능에 도달하는 것을 보라." 여자들에게 최악의 핸디캡은 그녀들을 바보로 만드는 교육이다. 억압자는 언제나 피억압자를 쓸모없는 존재로 약화하는 데 몰두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고의적이다. "우리는 여자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될 가장 탁월하고 풍부한 자질들을 여자들 속에서 그냥 잠자게 내버려 두고 있다." - P354

클렐리아가 성모 마리아에게 파브리스를 더는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는, 눈을 감고 있는 조건으로 2년 동안 그의 키스와 포옹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습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 P360

그녀는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어울리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녀는 타인의 평가보다도 자기 자신의 평가를 더높게 놓았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의 절대로서 실현한다. 메아리 없는 이 고독한 내부 갈등은 내각의 위기보다도 더 중대한 심각성을 띤다. 샤스텔레 부인이 뤼시앵 뢰방의 사랑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자문하는 것은 자기와 세계에 관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자기 마음을 믿을 수 있을까? 사랑의 가치와 인간의 맹세 가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미친 짓인가 아니면 고귀한 일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인생의 의미를, 각자와 모두의 삶의 의미를 문제 삼고 있다. 사실 분별력 있다는 인간은 자기 인생에 대하여 기존의 정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천박한 것이다. 반면에 열정적이고사려 깊은 여자는 매 순간 기존의 가치를 재검토한다. 그녀는 의지할 데 없는자유의 지속적인 긴장상태를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이 항상 위험에 처해 있다고느낀다. 즉, 그녀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얻거나 혹은 잃어버릴 수 있다. 불안 속에서받아들인 위험성은 여자의 이야기에 영웅적인 모험의 색채를 부여한다. - P361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 온전한 타성性이 아닌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여자는자기 자신이 주체다. 스탕달은 자기 여주인공들을 결코 남주인공과의 관계에 따라서만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녀들에게 독자적인 운명을 부여했다. 그는 어떤 소설가도 전혀 시도하지 않은, 한층 더 드문 기획을 시도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을 여자 인물 속에 투사했다. - P363

스탕달이 그렇게 대단하게 소설적인 동시에 결연하게 페미니스트라는 것은놀랍다. 페미니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것에 보편적인 관점을 취하는 합리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스탕달은 단지 일반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행복도고려해서 여성의 해방을 주장한다. 그는 여자들이 해방된다고 해도 사랑은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남자와 동등한 여자는 더 완전하게 남자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더욱더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된다. 여자들 안에 있는 자질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질들의 가치는 여자들에게서 표현되는 자유로부터 오고, 이 자유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별개의 두 존재는 자유 속에서 상충하며, 상대방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으면서 언제나 위험과 약속으로 가득 찬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스탕달은 진실을 신뢰한다. 진실을 피하는 즉시 인간은 산 채로 죽지만, 진실이 빛나는 곳에는 의미를 지닌 아름다움과 행복과 사랑과 기쁨이 빛을 발한다. 그 때문에 진실을 가장한 기만을 물리침과 동시에 신화의 거짓된 시詩도 거부한다. 그에게는 인간의 현실만으로 충분하다. 그에 의하면 여자는 단지 인간일 뿐이고, 어떤 형태의 꿈도 그보다 더 매혹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 P364

이 관념은 절대적 진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신화적 사고는 여자들의 분산되고 우연적이며 다양한 실존에 대하여 유일하고 고착된 영원한 여성을 대립시킨다. 이미 정해진 여자에 대한 정의가 현실의 살아 숨 쉬는 여자들의 행동으로 반박된다면 잘못은 이 여자들에게 있다. 여성성이 하나의 실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여성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경험은 부정될 수 있으나 신화는 결코부정될 수 없다. - P369

신화를 의미의 파악이라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미는 대상에 내재적이다. 그 의미는 살아 있는 경험에서 의식에 드러나는 것이다. 반면에 신화는 의식이 아무리 도달하려 해도 끝까지 달아나는 초월적 이념이다. - P371

마테를링크Maurice Macterlinck(1862-1949)의 말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신비스럽다." 각자는 자기에게만 주체이며, 각자는 자기의 내재 속에서 자기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타자는 언제나 불가사의하다. - P372

여자가 신비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여자가 침묵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자는 거기에 있으나 베일 속에 숨겨져 있다. 여자는 이 불확실한 외관 저편에 존재하고 있다. 여자는 누구인가? 천사인가, 악마인가, 무녀인가, 배우인가?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없다거나, 그보다는 여성 존재에게는 근본적 모호성이 있으므로 어떤 대답도 꼭 들어맞지 않는다고 추정한다. 여자는 자기 마음속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정의할 수 없는 스핑크스다. - P373

확실히 대부분의 신화는 자기의 실존과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남자의 자연발생적 태도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경험을 초월적 이념으로 높여 놓은 것은 가부장제 사회이며, 이는 자기 정당화의 목적으로 결연히 실행되었다. 그리고 그 사회는신화를 통해서 법칙과 풍습을 다채롭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개인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 P376

여자들을 가장 진정성 있게 소중sastop히 여겼던 시대는 궁정풍 사랑의 봉건 시대도 여자의 환심을 사려 한 19세기도 아니다. 그것은 - 예를 들면 18세기처럼 - 남자들이 여자들을 동류로 보았던 시대다. 바로 이때 여자들은 진정 몽상적으로 보였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험한관계』, 『적과 흑』,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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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맹미선(편집자)

1. 난다,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

2. 김종은, 익명을 설득하는 학생 자치

방송과 유튜브, 해외 사이트에서 수많은 지식 콘텐츠를 골라접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지식과 진리를 생산한다는 대학의위용도 예전 같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를 안은 채로 혹은 일부 문제를 개선하며 대학의 기능은 분명 다양해졌다. 어떤이는 커리어 전환을 위해 수능을 다시 치거나 파트타임 대학원에들어가고, 누군가는 오로지 배움을 위해 원격 대학에 들어간다. 입시 결과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나의 필요로 가는 대학은 학습콘텐츠를 통한 배움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 사회 속 실전 경험이나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좋은 대학을 판별하고 나에게 필요한 배움을 구할 수 있을까?
《한편》이 제안하는 관점은 대학을 생애 주기 속 경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맹미선(편집자) - P9

학력 말고 진짜 능력을 보자는 말과 공부 못하면목소리 내지 말라는 말. 이 둘에 담긴 사고방식은 사실비슷하다. 한쪽에서는 시험 성적으로 노력과 능력을 증명하고 나서야 현실을 비판할 자격을 인정해 주겠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적 말고 다른 능력, 창의성이나재능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로 우리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만이 인정받고 성공할 수있다는 생각은 양쪽 모두에 당연하게 깔려 있었다. - P25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와 학력 차별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학력 차별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곧장 드러났다. 정부가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려 하자 ‘시험 성적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능력을 보는 것‘이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학력을 안 보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반대 여론이 일어났다. 2021년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이논의될 때 교육부는 학력이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고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라며 학력을차별금지 사유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므로 능력주의 자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학력 차별도 해결될 수 없다. - P27

대학을 거부한다는 선언도,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주장도 많은 이들에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쨌든 모두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일 아닌가 하는 의아함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단순히 뛰어난 것이 좋다거나 개개인이 역량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믿음과는 다르다. 능력주의는 능력을 측정해 사람을 서열화하며 차별하는 사회적ㅍ제도이자 이를 공정하다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다.
다양한 능력의 차이를 두고 협력하고 공존해야할 이 - P28

유가 아니라 차별의 이유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대학을 거부하고 능력주의에 반대하는나는 교육과 배움을 거부하거나 무능을 지향하지 않는다. 나는 경쟁과 차별에서 해방된 교육을 요구하고대학 등 학교에만 갇히지 않는 배움을 추구한다. 다양한 능력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발휘되고, 특정한 능력의 부족이나 약함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 난다,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 - P29

오늘날 대학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란 주홍 글씨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조롱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말하기에 앞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으로 운을 띄워야만 할 때도 있다. - P44

누군가는 나에게 그렇게 열심히 해서 무엇인가 변했는지 묻는다. 당연히 많은 것이 변했다.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되어 돌아왔다. 얼렁뚱땅 넘어갈 수있는 일이라도 절차를 거쳐 수행하고, 작은 것이라도허투루 넘기지 않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이후의 나를 정의하는 토대가 되었다. 끔찍하게 바빠서, 혹은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자부심이자 자신감으로 남았다.

- 김종은, 익명을 설득하는 학생 자치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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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0 Far East of Europe

Japan’s Isolation: Closed Doors in the East

The “Foreign Conquest” of China: The Rise of the Man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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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밀어내는 겁니까?”

경찰관 한 명이 말했다.

"낸들 알겠습니까. 법이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당신을 체포합니다." - P12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서 백인 운전기사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을 거부하였으며, 이에 운전기사가 부른 경찰에 의해 경찰서로 연행되어 구치소에 수감된다. <정희진의 공부> 2월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정희진 샘이 언급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라는 말도 오버랩된다. 정말 흑인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왜 이렇게까지 흑인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내는 것인가.



모두가 내가 당한 일에 대해 분노했고,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흑백 분리 버스를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설사 일터까지 걸어서 가야 할지라도 두 번 다시 그런 버스를 타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번의 내 사건이 흑백 분리 버스탑승 제도에 대한 테스트 케이스(test case, 판례가 되는 소송사건, 또는 어떤 법률의 합헌성을 묻는 소송 - 옮긴이)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닉슨 씨가 내 사건을 테스트 케이스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어머니와 남편과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 파크스는 처음에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클로데트 콜빈 사건 당시 다중의 지지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논의했고 또 논쟁했다. 마침내 어머니도 파크스도 닉슨 씨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들도 흑백 분리 버스제도에 반대했고, 그것과 싸울 결심을 굳혔다. 고소인이 없는 한 판결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바로 그 고소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 P143~144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서 내향인이지만 강인하게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는 인물로 로자 파크스가 언급되어 있다. 로자는 의도하지 않은 본인의 사건을 통해 법을 바꾸고자 하는 변호사 및 활동가의 의견에 본인의 사건을 테스트 케이스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로자는 본인으로 인해 촉발된 몽고메리 버스 흑백분리 반대 운동을 진행하면서도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연설을 하지도 않지만, 본인을 필요로 하는 회의가, 어떤 도시에서 개최되든 참석하여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본인의 이름이 계속 언급되고 유명해지는 것이 부담스럽고 백인들의 폭언과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녀는 숨지 않는다. 그녀가 필요한 일이라면 조용하게 무엇이든 한다.



나는 유권자 등록을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등록을 시도한 것은 1943년이었다. 사무소에서는 매일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등록 업무를 보기 때문에 날짜를 미리 알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언제 유권자 등록 업무를 보는지 미리 공개하지도 않았다. 개인이 전화를 걸어 물어야만 알려주었다. 따져보니 그들은 어쩌다 한 번, 그것도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등록 업무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시간에는 대부분의 흑인들이 일을 하느라 사무소에 갈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설혹 짬을 내어 사무소에 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그들은 즉시 사무소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이모든 것이 흑인을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무사히 사무소 안에 들어가는데 성공해도 등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전에는 재산을 소유한 흑인만 등록을 해주었었다. 내가 등록할 무렵에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문해 시험에 통과한 사람만 등록이 허락되었다. – P87~88


인두세는 일 년에 1.5달러였고, 모든 등록 유권자들은 반드시 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두세를 소급해서 내야 한 사람들은 거의 다 흑인들이었다. 스물한 살이면 유권자 등록을 하는 백인들은 그 때부터 매년 1.5달러씩 내면 그만이지만 유권자 등록을 거부당했던 흑인들은 등록 즉시 스물한 살 때부터 소급해서 적용된 금액을 내야 했다. 1945, 즉 내가 서른두 살에 등록 유권자가 되었으니 11년 치의 인두세를 한꺼번에 내게 된 것이다. 당시 돈으로 16.5달러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 P89~90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흑인들이 유권자 등록을 하는 것에도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선거권을 획득했다고한들 실제 투표를 위한 유권자 등록에서 포기하는 흑인들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유권자 등록은 그렇게 방해하면서 일단 유권자 등록이 되면 법적으로 유권자 등록이 가능한 21살때부터 실제 등록한 시점까지의 밀린 인두세를 10년치든 20년치든 한꺼번에 내야 한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흑인들에게 밀린 인두세를 내게 하는 것도 선거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한 방편이었으리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악랄한 것인지.



미스 화이트에서 배운 것 중 최고를 뽑으라면, 나도 존엄한 한 인간이라는 것, 흑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주눅 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꿈과 야망을 갖도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도록 가르쳤다. 물론 학교를 통해서만 그것을 배운 것은 아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의 조부모님과 어머니를 통해서 익히 배운 바 있다. 미스화이트 선생님들은 내가 집에서 배운 이러한 지식을 거듭 일깨우고 강화시켜 주었다. - P59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로자의 사건이 아주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고, 버스 탑승 거부 운동이 우연히 들불처럼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로자는 이미 준비된 사람이였다. 로자는 나도 존엄한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흑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버스 탑승 거부 운동이 장기적으로 정착되어 마침내 법이 바뀔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과 협회가 조직적으로, 긴밀하게 움직였는지, 이미 준비된 사람과 조직이 기회를 기다렸고, 마침내 로자라는 적절한 기회가 왔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성취였다.



우리에겐 마틴 루터 킹도 필요하지만 로자 파크스도 필요하다.




















<사라, 버스를 타다>는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사라라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이다. 이 책이 집에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첫째가 알려주어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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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2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마틴 루터 킹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수많은 로자 파크스가 있기 때문이죠. 기사로만 읽었던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햇살님덕분에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3-03 11:3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로자 파크스나 참정권, 흑백 분리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많네요! 책은 너무 좋네요! 마틴 루터 킹 전기도 읽어보고 싶고요.
 

Ch.9 The Western War

The Thirty Years’ War, 1618-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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