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연 시인의 첫 시집 <월드> 중 표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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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일하러 나갔고, 오빠는 학교에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는 내가 거기 있는데도 혼자였고, 내가 완벽하게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수수께끼 같은 마 - P7

음속에 있는 아득한 고요함은 아침이 다 지나고 어머니가 보통의 주부들처럼 이스테드가데에 장을 보러 나가야 할 때까지 계속되곤 했다. - P8

그 책에 실려 있는 모든 노래는 주제가 비슷하고, 어머니가 그것들을 부르는 동안 나는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을 때의 어머니는 자기 바깥의 어떤 방해물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말다툼하기 시작해도 어머니는 듣지 못한다. 아래층에는 기다란 금발머리를 땋아 내린 라푼젤이아직 자신을 블루벨 한 다발에 마녀에게 팔아 버리지는 않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왕자는 우리 오빠인데, 그는 자기가 머지않아 탑에서 떨어져 눈이 멀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모른다. 판자에 못들을 탕탕 두들겨 박는 오빠는 가족의 자랑이자 기쁨이다. 그게 남자아이들의 역할인 반면, 여자아이들은 그저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을 뿐이다. 여자아이들은 다른 누군가가 부양해 주어야하며, 다른 무엇도 바라거나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 P19

"아이가 혼자 깨친 거예요. 저희 잘못은 아니죠." 나는 어머니를 올려다보고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해한다. 어머니의 키는 다른 여자 어른들보다 작고,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보다 젊으며, 우리가 사는 구역 바깥에는 어머니가 두려워하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언제든 우리 둘이서 그 두려움을 함께 마주하게 되면 어머니는 나를 배신할 것이다. 우리가 거기 그 마녀 앞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어머니의 손에서 주방용 세제 냄새가 난다는 것도 알게된다. 나는 그 냄새가 몹시 싫다. 우리가 여전히 완전한 침묵에 잠긴 학교를 떠날 때, 내 마음은 그 순간부터 나머지 평생 동안 어머니가 내 안에서 불러일으킬 혼돈으로 가득 찬다. 분노와 슬픔, 연민이 뒤섞인 그것. - P27

생활 보호를 받으면 투표권이 상실되었지만, 어쨌게 우리는 굶주린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 뱃속은 언제나 뭔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절반의 굶주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딱딱해진 페이스트리와 커피만으로 며칠씩 때우다가 더 잘사는 집의 문가에서 흘러나오는 저녁 식사 냄새를 맡을때 느껴지는 허기였다. 내가 먹던 페이스트리는 책가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담으면 25 외레였다. - P34

한번은 내가 "비탄’이 무슨 뜻이에요, 아버지?"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막심 고리키의 작품에서 발견한 그 표현이 몹시 마음에 들었었다. 아버지는 말려 올라간 콧수염 양 끝을 쓰다듬으며 그 단어에 대해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 P36

"그건 러시아어에서 온 단어야. 고통과 비참함과 슬픔을 뜻하는 말이란다. 고리키는 위대한 시인이었지." 나는 기쁨에 차서 말했다. "나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곧바로 얼굴을 찡그리더니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여자는 시인이 될 수 없어!" 상처받고 화가 난 나는 다시 내 안에 틀어박혔고, 그러는 동안 어머니와 에드빈은 그 터무니없는 생각을 비웃었다. 나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내 꿈을 털어놓지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고는 어린 시절 내내 그 맹세를 지켰다. - P37

하지만 그런 지름길을 모른다면 당신은 어린 시절을 견뎌야만 한다. 매 시간 그 속을, 그 절대로 끝나지 않을 시절 속을 터덜터덜 걸어가야만 한다. 오직 죽음만이 당신을 거기서 해방시킬 수 있기에 당신은 오랜 시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어느 날 밤에는 죽음의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그때 죽음은 당신의 눈꺼풀이 다시 열리지 않도록 입맞춤해 줄 하얀 로브 차림의 친절한 천사가 된다. 또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결국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면 어머니가 지금 에드빈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좋아해 줄 거라고 말이다. 내 어린 삶은 나를 짜증스럽게 하는 만큼이나 어머니도 짜증스럽게 하는 까닭에, 우리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할 때는 오직 어머니가 그것의 존재를 갑작스럽게 깜빡할 때뿐이다. - P48

어린 시절은 캄캄한, 지하실에 갇힌 채 잊혀 버린 작은 동물처럼 언제나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추운 날 나오는 입김처럼 당신의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그것은 가끔은 너무 조그맣고, 또 가끔은 너무 크다. 정확하게 딱 맞는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을 벗어던진 뒤에야 당신은 그것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고, 마치 극복한 병처럼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어른들 대부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그들 자신은 정말로 그렇게 믿을지도 모른다. - P51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들이 간신히 시절을 잊는 데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 - P52

우리는 어디로 방향을 틀더라도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맞부딪히고단단하고 뾰족한 모서리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그 일은 수많은 상처들이 우리를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 놓은 뒤에야 멈춘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이 있지만, 그 각각의 모양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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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아이들 - 조천현 사진이야기 평화 발자국 24
조천현 지음 / 보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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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아이들의 놀이활동과 어른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사진집. 어린 시절 시골에 갔을 때 경험했던 놀이들-강 낚시와 물놀이, 소 몰이, 경운기 타기, 눈썰매 타기-을 보는 반가움. 10년 넘게 작가를 압록강으로 끌어당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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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사랑

여성과 사랑
사랑과 권력관계
여성의 사회적 상황


7장 로맨스 문화

낭만주의는 남성 권력의 문화적 도구
미디어를 통한 낭만주의의 확장

6장 사랑

사랑을 다루지 않은 급진적 페미니즘에 관한 책은 정치적으로 실패작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출산보다도 훨씬 더 여성 억압의 주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놀라운 사실을 함축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사랑을 없애기를 원하는 것인가? - P183

사랑은 충분히 경험되어 왔고 그 경험이 전달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이해된 적은 없다.
분석의 부재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즉, 여성과 사랑은 기본토대이기 때문에 그들을 검토한다는 것은 문화의 구조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 된다. - P183

여성이 그들의 에너지를 남성에게 쏟기 때문에 남성은 생각하고, 글을 쓰고, 창조한다. 즉, 여성은 사랑에 몰두하기 때문에 문화를 창조하지 않는 것이다. - P184

(남성) 문화는 호혜성reciprocity 없이 여성의 감정적 힘을 먹고 자라는 기생적인 것이다. - P184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남녀에게 결코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고, 그들을 가르는 심각한 오해의 한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앞에서 나는 ‘이중잣대double standard‘에 관한 거실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일반적으로 의견일치를 이루는 사랑에 있어서의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차이점을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즉 여성은 일부일처제적이고, 사랑하는 데 더 능하고, 소유욕이 강하고, ‘매달리고‘, 섹스 그 자체보다 깊이 개입된) 관계‘에 더 관심이 많고, 애정과 성욕을 혼동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남성은 성교(후다닥 끝내는 겉날리기식 섹스Wham Bam Thank YouMa‘am)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거나, 여성을 터무니없이 낭만화시킨다. 그리고 일단 확신을 가지면 악명 높은 호색한이 되어 결코 만족해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섹스를 감정이라고 오해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가 논의해온-어머니와의 첫 번째 관계에 의해 결정된 남녀 간의 성심리적 구조의 차이-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 P196

가장 창조적인 시기의 주요 에너지가 ‘괜찮은 남자를 낚기 위해 쓰여지고 일생의 대부분은 남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 쓰여진다.(사랑에 빠지는 것은 남성에게 직업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는 전일근무 직업이 될 수 있다). - P200

그러나 여성은 더 큰 (남성)사회에서의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거의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recognition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남성보다는 한 남성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이다. 사실상 바로 이것이 대부분의 여성이 하는 선택이다. - P201

여성은 판별력이 없다고, 남성을 개인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제공해야 하는 것(그의 계급) 때문에 사랑한다고, 계산적이라고, 다른 목적을 얻으려고 성을 이용한다고 불평할 때 남성은 옳은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여성은 자유롭게 사랑할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여성이 그녀를 사랑하고 뒷받침해줄 ‘괜찮은 남자‘를 찾을 정도로 운이 좋다면, 그녀는 성공한 것이며 대체로 그의 사랑에 보답할 만큼 감사해야 할 것이다. 여성이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판별력이란 그들을 선택한 남성들 사이에서 선택하거나, 한 남성, 한 권력을 상대방에게 서로 싸움을 붙여 덕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 그리고 일단 관심을 표현한 남자에게 헌신의 덫을 놓는 것은 엄밀한 자기결정이라 할 수 없다. - P204

그렇다, 사랑은 여성에게 의미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남성에게 의미한다. 사랑은 남성에게 소유와 지배를 의미한다. 사랑은 전에 그녀가 그의 질투심을 원했을 때 절대 보이지 않았던 질투심을 의미한다. - P206

7장 로맨스 문화

사랑이 권력관계에서 발생할 때, 모든 사람들의 ‘애정생활‘은 틀림없이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권력과 사랑은 함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 P213

예를 들어 전에는 가족이 느슨하고 끼어들어 갈 수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 데 반하여, 이제는 가부장제 핵가족으로 바짝 조여지고 굳어졌다. 또 전에는 여성들이 공공연히 경멸당했지만, 이제는거짓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되었다. 낭만주의는 여성이 그들의 조건을 알지 못하게 막는 남성 권력의 문화적 도구이다. - P214

그러므로 현대의 미디어를 통한 낭만주의의 확장은 그것의 효과를 엄청나게 확대시켰다. 이전의 문화가 에로티시즘, 성의 사유화, 미적 이상으로 남성우월주의를 유지했다면, 이러한 문화적 과정들은 이제 너무나 효과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다. 즉, 미디어는 ‘과잉‘에 대해 유죄이다. 역사상 이 시점에서 여성운동이 재건된 것은 우리의 현대 문화적 주입 제도의 내적 모순이 가져온 역효과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적 주입을 증폭시키는 데 있어서, 미디어는 무의식적으로 ‘여성성‘에 대한 비하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 P224

성의 대상들은 아름답다.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공격과 혼동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보그 Vogue』 지의 표지 얼굴의 아름다움을 단호하게 부정해야 한다고 느낄 정도로 경건해질 필요는 없다. 그것이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그 얼굴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아름다운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과 변화와 쇠퇴를 허용하는가,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도 표현하는가, 인위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허물어지는가, 혹은 금속이 되려고 하는 나무처럼 무생물적 대상의 다른 아름다움 자체까지 거짓으로 모방하는가 등의 문제이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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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작가의 에세이 <동해 생활> 중 [10월엔 마지막 서핑]

나는 보드에 매달려 생각했다. 너무 외롭다고. 외로운 순간이면 모든 것이 내 삶의 징조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때가 그랬다. 앞으로도 이렇게나 많은 먹먹한 순간들만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나는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에서 혼자 힘으로는 통제할 수조차 없는 보드를 붙들고 있는 지금처럼 외롭게 인생을 살아가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한 사람이 파도다! 라고 작게 외쳤고 나는 나도 모르게 보드에 엎드려 패들링을 시작했다. 그 순간 파도를 탔다는 직감이 들었고 나는 일어나려고 시도했지만 그대로 엎드려서 쭉 해변까지 떠밀려 갔다. 그리고 곧장 뒤집혀서 버둥댔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왔고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어떻게든 보드를 잡아 해변으로 올라왔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으면서 나는 바다에 떠 있는 서퍼들을 보았다. 모든 게 파도를 잡는 이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가 붙는 이 한순간을 위한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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