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영화 [작전명 발키리] 브라이언 싱어

<전쟁의 슬픔> 바오 닌,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3장 타자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

설국열차, 부산행, 스테이션 에이전트
이것이 서구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적 진보(progress)의 개념이다(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와는 다르다). 단수(單數)의 시간. 과거-현재-미래라는 직선적 시간관과 단수의 주체가 시간의 기준을 제시한다. 개별적 인간의 상황마다 ‘10분‘의 의미가 다를수 있는데, 백인 남성 비장애인의 시간을 중심으로 삼아 객관적 시간 개념이 설정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처럼 행복한 시간과 지루한 시간은 그 길이가 다르다. 고문당하는 10분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10분이 어떻게 같겠는가. 시간은척도가 아니라 경험이다. 농촌의 시간과 도시의 시간은 다르다. 장애인의 시간과 비장애인의 시간은 다르다. 이런 차이가 무시되고 누군가의 시간이 기계적으로 표준으로 설정되고, 사람들은 속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발전, 추격, 100미터 달리기, 문명과 야만, 최연소의 성취……. - P211

녹색당에서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구호에 대해 고등학생 당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어른‘ 당원들은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등학생들은 왜 자신들을 현재의 동반자가 아니라 어른의 관점에서 ‘미래‘로 정의하느냐며 항의했다.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구호는 "우리 모두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었다. 자신들을 타자화하지 말라는 얘기다. <설국열차>나 녹색당의 ‘어른‘(성인 남성)은타자를 정의하고 보호하는 주체의 역할을 자임한다. 그들은 재현의 주체이지, 재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0대들은 말한다. - P214

"우리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야. 당신의 관점에서 우리를 정의하지마." - P215

내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감독 자신이, 예술가 자신이스스로 타자가 될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항상 주체이고, 주체를 구원할 수 있는 대상조차 지정할 수 있는 조물주인가. 여성이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착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새로운 주체는 기차 밖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주체는 스스로 ‘꺼지면‘ 안 되는가 자리에서 내려오라. 인류와 지구를 해방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방하라. 팬데믹 시대의 구원은 우리 모두 ‘섬싱(something)‘이 되고자 했던의지를 버리고, 자연의 일부인 ‘낫싱(nothing)‘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갈팡질팡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의지가 부끄러울 뿐이다. - P221

미스터 션샤인, 청연
개인의 삶도 복잡한데, 국제정세가 얽혀 있는 나라를 되찾는 일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원인 프란츠 파농은 민족 해방 투쟁(독립운동)은 빼앗기기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탈식민주의, 즉 포스트콜로니얼(post colonial)은 과거에 식민지배를 겪은 국가들이 형식상의 주권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가해국에 대한 피해 의식, 동일시 욕망, 경쟁심, 원한 등에 시달리고있는 상태를 말한다.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가장 ‘웃긴‘ 사례가 ‘코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전에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이 무슨 정체성인가? 같은 주인을 모신 나라들의 운동 경기?
물론 아일랜드처럼 8백 년이나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끝까지 싸워 독립을 쟁취한 국가도 있다. 당연히 ‘코먼웰스‘ 회원국도 아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인도나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영국의 지배를 받은 국가들도 내부 구성원의 생각이 같지않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친미(親美), 반미(反美), 숭미(崇美), 용미(用美)·····… 다양한 입장을 지닌 이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 P230

기억의 전쟁
이 글 서두에 인용한 이야기는 나의 고통을 대변한다. 내가생각하는 페미니즘은 기존의 정치적 대립 구도가 누구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진상 규명이나 진실보다는 누가 협상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지, 누구의 관심사가 명확히 표현되지 않는지, 누구의 이득이 표명되지 않는지, 누구의 진실이 발언되거나 인정되지 않는지, 우리가 놓치고있는 진실을 찾아내려 한다. - P244

탈식민주의 이론가 호미 바바의 말을 빌리면 기억(re/member)은 사지(四肢)가 재조합되는 환골탈태의 과정이다. 기억은 기억하는 자에게 몸의 변태를 요구할 만큼의 고통스러운일이다. 베트남에 대한 사과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로 변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가.
서두의 인용문처럼, 문이 열리고 내면의 모순이 드러나면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충돌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을 하기는커녕 나 자신에게조차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랬다저랬다 하고 뭉개버리고 만다. 상황에 개입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보호하고자 진심을 말하지 않는 한편, 누가 자기 진심을 읽으려고 하면 상대가 마음에 드는 가장 위쪽 상태만 드러내고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의식의 수풀 안에 감춘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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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he went on with his reflections: "I thought that I was rich, with a flower that was unique in all the world; and all I had was a common rose. A common rose, and three volcanoes that come up to my knees-- and one of them perhaps extinct forever that doesn‘t make me a very great prince......." And he lay down in the grass and cried.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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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통증의 위치

그래비티
어떤 의사는 자기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으세요. 나도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죽음을 바랍니다. 단, 내일 죽으세요. 내일 이후에는 또 그 내일…………." 견디고 버티라는 의미다. - P120

우리가 우울할 때 혹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정말 죽을 만큼 아프다는 의미에서 ‘환자‘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모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집에서, 침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일이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동과 운동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다른데,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주, 가장 먼 이동이다. ‘우울과 중력‘이라는주제에 대해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만 한 통찰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 P121

밀히언 달러 베이비
사랑은 상대(대상)와의 관계가 아니다.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나의‘ 사건이다. 흔히 말하는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행위,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결혼, 이성애주의, 로맨스 문화, 헌신, 희생 따위를 포함하는 제도와 문화적 각본(cultural script, 이데올로기)이 있다. 인간은 사람이든 절대자든 물화된 대상이든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존재다. 인간의 조건은 사회적 삶과 생명체로서 유한성 두 가지인데, 생명체로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사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사랑은 가장 절실한 방도다. 사랑이 없다면 삶도 없다. 사랑 자체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사는의미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특정한 개인/파트너와의 애정을 추구하는 이들이나 사회적 권력, 돈, 명예를 성취하려는 노력 역시 모두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이다. - P125

가부장제 사회에서 출산은 여성의 자유가 아니라 성역할로 간주된다. 한국 여성들은 출산이라는 성역할을 거부함으로써(출산 파업), 기후 위기와 식량 문제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사 영역에 걸친 여성의 이중 노동, ‘독박 육아‘, 강제적 모성을 강요해 왔던 가부장제 사회 자신의 부메랑이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방법-전쟁과 같은 남성 문화ㅡ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인구를 조절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되었다.
낮은 출생률에 대한 남성 사회의 공포는 16~18세기 유럽의절대 왕정에 대한 저항으로서 근대 국가를 염원하는 이들이, 국가의 개념을 정립할 때 나온 국가의 3대 요소(주권, 영토, 국민)가 있다는 신화의 산물이다. 세 가지가 일치하지 않는 국가도많고, 인구가 적다고 무조건 ‘후진국‘도 아니다. 국민을 ‘총알받이‘, 병사, 소비자, 생산적인 노동자로 동원하지 않고 인간으로 존중하는 공동체에서 출생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인구는 근대에 이르러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 P169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 ‘세뇌‘ 때문이다. 에고가 공포를 가져온다. 가볍고 조용한 죽음. 인간의 존엄, 죽음의 철학에 관한 최고의 영화다. 역대 칸에서 상을 받은 영화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것이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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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반격
트렌드 저널리즘

3장 반격의 과거와 미래

미국 여성들이 역사를 가로질러 진보해 온 모습을 정확히 기록미국한다면 그 고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유의 선을 향해 좀 더 가깝게 움직이는, 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나선형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이 나선형은 결코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수학적인 커브와 유사하다. 미국 여성들은 몇 세대를 끝없이 돌고 있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 채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가까워지기만 하는 이 점근성 나선에 갇혀 있다. 혁명은 매번 자신이 그녀를 이 궤도에서 해방시켜 줄, 그녀에게 마침내 완전한 인간의 정의와 존엄을 인정할 ‘그 혁명’이 되겠노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늘 나선은 결승선 바로 앞에서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간다. 늘 미국 여성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한다,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무대 위에 오를 시간이 아직 좀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그녀는 강압으로 인한지체를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거나 자랑거리로 여기게 될 수도있다. - P110

전시 경제를 통해 여성들에게 산업계의 고소득 일자리 수백만개가 개방되고, 정부마저 최소한의 보육 서비스와 가계 지원책을 제공하기 시작한 1940년대에 다시 나선은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 P115

‘여성의 신비‘로 집약되는 1950년대에 대한 기록은 풍부한 편인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베티 프리던의 1963년 저작이다. 하지만 사실 집에 틀어박힌 1950년대의 여성이라는 이 유명한 이미지는 당시 여성들의 실제 환경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반격과 특히 관련이 깊은 중요한 특징이지만,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보니 그 영향은 종종 무시되고 큰 문제가 없거나 심지어는 의미 없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50년대 여성들은 서둘러 결혼을 하긴 했지만 취업 역시 많이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전시 여성의 노동 참여를 능가할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반페미니즘적 광기를 자극하고 지속시킨 것은 여성의 가정으로의 후퇴가 아니라 바로 이런 여성의 수그러들 줄 모르는 직업 시장으로의 유입이었다. 현실에서는 아홉 시부터 다섯 시까지 일하는 여성들이 오히려 고분고분한 집순이이자 노리개라는 문화적 환상을 고조시켰던것이다. 문학 비평가 샌드라 길버트Sandra M. Gilbert 와 수전 구바 SusanGubar가 전후 시대에 대해 논평한 것처럼 "뇌를 써서 돈을 버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소설, 연극, 시에서 여성을 육체밖에 없는 존재로재현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56) - P118

여성의 신비 시절의 반격은 직장 여성들을 집으로 되돌려 보내지 못했다61)(그리고 교훈적이게도 종전 이후에도 전시 사무직 종사자는 거의 아무도 해고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화적으로 여성은 조롱의 대상이었고, 고용주들은 여성을 차별했으며, 정부는 여성을 차별하는 새로운 고용 정책을 홍보했고, 결국 여성 자신들은 일을 해야 한다면 타이프 치는 일만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면화했다. 1950년대에 직장 여성의 수가 줄지는 않았지만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난 여성의 비중이 늘었고 임금 격차는 커졌으며, 1930년에 절반을차지했던 고소득 직종 종사자의 수가 1960년에는 약 3분의 1로 줄어들면서 직업상의 남녀 구분이 심화되었다.62) 요컨대 1950년대의 반격은 여성들을 ‘행복한 주부‘로 탈바꿈시키지 못했고, 그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비서로 좌천시켰을 뿐이다. - P119

길을 잃었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는 사회적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안전한 은신처를 찾는 것에 어쩔 수 없이 더 끌리게 된다. 거대한 남성 문화와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남자와 평화를유지하는 것이 더 긴요한 일이 된다. (페미니즘의 모든 강령을 조용 - P124

히 지지하고 있더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신중한 자기 보호 전략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조건에서는 사회 부정의를 치유하려는 충동이 부차적으로 미뤄질 뿐만 아니라 잠재워질수도 있다. 페미니스트 작가 수전 그리핀 Susan Griffin의 말처럼 "혼자라고 느끼는 상태에서는 억압을 알고 있어도 침묵하게 된다."75) - P125

여론조사 기관들은 남성의 저항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가늠해 볼 수는 있지만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사회조사관들은 ‘남성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항상 ‘여성 문제‘에 쏟던열정의 10분의 1도 쓰지 않았다. 남성성에 대한 연구는 서가에서 보기 드물다. 문헌을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우리는 남성성이여성성에 비해 덜 복잡하고 덜 짐스러우며, 유지하는 데 손이 덜 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상태에 대해 우리가 구할 수있는 연구들은 이를 절대 장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런 연구들은 남성성이 연약한 꽃, 꾸준히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영양을 공급 - P128

해 줘야 하는 온실의 난초와 같다고 밝힌다. 사회 연구자 조지프 플렉Joseph Pleck은 "성 역할의 위반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4) 마거릿 미드 Margaret Mead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남성다움은 절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는매일 유지하고 다시 획득해야 하는데, 그것을 규정하는 데 본질적인요소 중 하나는 양성이 진행하는 모든 경기에서 여성을 이기는 것이다."95) 남성성의 꽃잎을 가장 처절하게 짓뭉갠 것은 페미니즘의 가는빗방울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는 단 몇 방울도 폭우로 인식된다.
대단히 미미한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기이할 정도로 과장된 남성들의 대응에 당혹스러워하는 많은 사회학자 중 한 명인 윌리엄 구드William Goode는 "남성들은 존중, 혜택, 기회를 아무리 조금만 잃어도 큰 위협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96) - P129

하지만 페미니즘의 희미한 그림자만 드리워져도 남성 정체성이 말살될 것만 같은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여성 평등에 정확히 어떤 의미인 것일까? 오늘날에도 남성성이 생존을 위해 ‘여성적인’ 의존성에 그렇게까지 의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남성성의 프레임을 짜는 방식에어떤 함의를 갖는 것일까? 지난 20년간 사회적 태도를 추적해 온 전국 규모의 거대한 조사인 ‘양켈로비치 모니터Yankelovich Monitor’의 설문 조사가 밝혀낸, 크게 주목받지 못한 연구 결과는 우리를 그럴싸한대답으로 훌륭하게 안내한다.120) 양켈로비치 모니터‘의 조사 요원들은 20년간 대상자들에게 남성성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20년간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의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이는지도자나 운동선수, 바람둥이, 의사 결정자가 되는 것도, 심지어는단순히 ‘남자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을 잘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남성성의 확립이 무엇보다 가정의 주 소득원으로서 성공하는 데달려 있다면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노력보다 더직접적으로 미국의 허술한 남성다움을 위협하는 힘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만일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남자가 무엇인지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면 1980년대의 경제적 상황에서 반격이 분출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남성의 실질임금이급격히 줄어들었고(백인 남성이 유일한 소득원인 가정의 경우 수입이 22퍼센트 급락했다) 전통적인 남성 부양자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전체 가정의 8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121) - P133

‘이 시대의 경제적 희생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훔쳐 달아났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절도범이 여성이라고 의심한다. 노동력 시장에 이제 막 진입한 신참내기 중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을 능가했고, 잠시나마 남성의 실업이 여성의 실업을 훨씬 앞섰던 1980년대 초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시기였다. 1980년대 초의 이 같은 상황은 반격을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촉발시켰다. 남성과 여성에게 이는 상징적인교차의 순간이었다.134) 백인 남성이 노동력에서 50퍼센트 미만이 된것도, 더 이상 새로운 제조업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대학등록자 중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것도,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도, 기혼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가지게 된 것도, 일자리를 가진 여성 중 자녀가 없는 여성보다 있는여성이 더 많은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을 남편으로 정의하지 않게 된 해가 1980년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 P136

어떤 사회가 여성이라는 대상에 공포를 한 번 투사하고 나면 여성을통제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문화적 상상 속에서 여성을 관리 가능한크기로 축소시키고 편안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규범에 이들이 순응하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이런 공포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여성성으로 귀환’하라는 요구는 문화의 기어를 후진으로 바꾸고, 모두가 지금보다 더 잘살고 더 어리고 더 패기 넘치던 전설의 시대로다시 회귀하자는 요구와 같다. ‘여성스러운‘ 여성은 영원히 정적이고아이 같다. 낡은 뮤직박스 속의 발레리나처럼 작고 소녀 같은 체격은변치 않고, 목소리는 옥구슬 같으며, 몸은 핀 하나에 고정되어 영원히 커지지 않을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돈다. - P140

소비에 집착했던 지난 10년은 여성들을 헌신적인 쇼핑 중독자라는 자아상으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페미니즘의 핵심 원칙 중 하나를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페미니스트들에게 폭언을 퍼부은 인물이긴 하지만) 크리스토퍼 래시*가『나르시시즘의 문화 The Culture of Narcissism』에서 밝혔듯 소비주의는 "남성의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때" 여성의 진보를 가장 치명적으로 침해한다. 152) - P142

페미니즘의 옷을 입고 있는 반페미니즘을 폭로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별 관심 없다고 선언하는 적을 상대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시트콤 대변인들의 비뚤어진 눈에는 낙태 반대 ‘장병‘의 완전한 광기마저 바람직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 냉소를 퍼뜨리는 치들은 하품을 참아 가며 페미니즘은 "대단히 1970년대적"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우린 ‘포스트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다. 그건 여성이 평등한 정의에 도달했고 그걸 넘어섰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관심 있는 척조차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결국 미국 여성의 권리에 가장 파괴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것은 이런 심드렁함이다. - P143

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
4장 반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성들의 삶의역설, 반격에서 핵심으로 자리하게 될 그 역설을 처음으로 주류 청중들에게 제시하고 해설한 집단이 바로 언론이었다는 점이다. 그 역설이란 바로 여성은 많은 성과를 손에 넣었지만 대단히 불만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여성들에게 안긴 것은여성들의 부분적인 성취에 대한 사회의 저항이 아니라 페미니즘의공적임에 틀림없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1970년대의 언론은 성공한여성의 화려한 그림을 흔들면서 "봐, 이 여자는 행복해. 그건 이 여자가 해방되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뒤집어진 반격의 논리에 따라 언론은 성공한 여성의 그림에 우거지상을 그려 넣고 "봐, 이 여자는 비참해. 그건 이 여자가 너무 해방되었기 때문이야"라고 선언했다. - P150

미국학 연구자 신시아 키너드가 미국의 반페미니즘 문헌에 대한서지 연구에서 밝혔듯 여성의 권리에 대한 언론의 공격은 "19세기 후반에 강력하게 성장했고 새로운 참정권 운동이 나타날 때마다 규칙적으로 정점을 찍었다." 주장은 언제나 천편일률적이었다. 동등한 교 - P151

육은 여성을 노처녀로 만들고, 동등한 고용은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며, 동등한 권리는 여성을 나쁜 엄마로 만든다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적 순환이 시작될 때마다 이 위협은 조금 수정되고 다듬어졌고 새로운 ‘전문가들’이 가담했다. 빅토리아시대의 정기간행물들은 성직자들에게 의지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에 힘을 보태고자 했다. 비교하자면 1980년대의 언론들은 심리 치료사들에게 의지했다. - P152

트렌드 저널리즘은 실제 보도가 아니라 반복의 힘을 통해 권위를 획득한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반복하면 그 어떤 것도 진실처럼 보일 수 있다. 하나의 미디어에서 선포한 트렌드는 나머지 미디어들이 재빨리 그 이야기를 퍼 나르면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메시지가 확산되는 번개 같은 속도는 트렌드의 정확도보다 - P152

는 이를 서로 반복하려는 언론인들의 성향과 더 관계가 있다. 그리고1980년대에 ‘독립’ 언론들이 극소수의 기업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반복은 특히 피하기가 어려워졌다.17) - P153

트렌드 기사가 항상 이런 식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일 때는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사실에 입각한 근거나 확실한 수치가 없고, 여성 서너 명 정도의 말만을, 그것도 보통은 익명으로 인용하여 트렌드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러그러한 감이 있다‘, ‘더욱더’ 같은 모호한 수식어를 사용하고, 예언 조의 미래 시제 (‘엄마들은 점점 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에 의존하고, 종종 다른 미디어의 트렌드 기사를 인용하여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하는 소비자 연구가, 심리학자 같은 권위에 호소한다. - P155

언론들은 싱글 여성들의 낮른 사회적 지위를 개인적인 결함으로 재규정함으로써 이를 단순히 보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싱글 여성들을 비탄으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 미디어는 싱글 여성들이 점점고립되고 있다고 기분 나쁘게 말했지만 이런 고립을 만들어 내고 강화하는 데 기여한 건 다름 아닌 트렌드 저널리즘이었다. 1970년대 미디어는 진짜 싱글 여성을 특히 집단적으로 재현하는 사진과 기사들을 실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언론들은 허구의 싱글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과 ‘합성된‘ 혹은 ‘익명의‘ 싱글 여성 이야기들을 담았는데, 거의 항상 혼자서 눈물이 얼룩진 베개를 끌어안고 있거나 다락방에서창문을 쓸쓸하게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맥콜스》는 그 원형을보여 주었다.106) "그녀는 일중독이다. 가끔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를즐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아파트에서 혼자 보내는 편이다. 밤만 되면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혼자 칩거한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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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the men?" the little prince at last took up the conversation again. "It is a little lonely in the desert...."
"It is also lonely among men," the snake said. The little prince gazed at him for a long time.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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