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반격
트렌드 저널리즘

3장 반격의 과거와 미래

미국 여성들이 역사를 가로질러 진보해 온 모습을 정확히 기록미국한다면 그 고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유의 선을 향해 좀 더 가깝게 움직이는, 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나선형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이 나선형은 결코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수학적인 커브와 유사하다. 미국 여성들은 몇 세대를 끝없이 돌고 있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 채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가까워지기만 하는 이 점근성 나선에 갇혀 있다. 혁명은 매번 자신이 그녀를 이 궤도에서 해방시켜 줄, 그녀에게 마침내 완전한 인간의 정의와 존엄을 인정할 ‘그 혁명’이 되겠노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늘 나선은 결승선 바로 앞에서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간다. 늘 미국 여성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한다,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무대 위에 오를 시간이 아직 좀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그녀는 강압으로 인한지체를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거나 자랑거리로 여기게 될 수도있다. - P110

전시 경제를 통해 여성들에게 산업계의 고소득 일자리 수백만개가 개방되고, 정부마저 최소한의 보육 서비스와 가계 지원책을 제공하기 시작한 1940년대에 다시 나선은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 P115

‘여성의 신비‘로 집약되는 1950년대에 대한 기록은 풍부한 편인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베티 프리던의 1963년 저작이다. 하지만 사실 집에 틀어박힌 1950년대의 여성이라는 이 유명한 이미지는 당시 여성들의 실제 환경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반격과 특히 관련이 깊은 중요한 특징이지만,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보니 그 영향은 종종 무시되고 큰 문제가 없거나 심지어는 의미 없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50년대 여성들은 서둘러 결혼을 하긴 했지만 취업 역시 많이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전시 여성의 노동 참여를 능가할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반페미니즘적 광기를 자극하고 지속시킨 것은 여성의 가정으로의 후퇴가 아니라 바로 이런 여성의 수그러들 줄 모르는 직업 시장으로의 유입이었다. 현실에서는 아홉 시부터 다섯 시까지 일하는 여성들이 오히려 고분고분한 집순이이자 노리개라는 문화적 환상을 고조시켰던것이다. 문학 비평가 샌드라 길버트Sandra M. Gilbert 와 수전 구바 SusanGubar가 전후 시대에 대해 논평한 것처럼 "뇌를 써서 돈을 버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소설, 연극, 시에서 여성을 육체밖에 없는 존재로재현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56) - P118

여성의 신비 시절의 반격은 직장 여성들을 집으로 되돌려 보내지 못했다61)(그리고 교훈적이게도 종전 이후에도 전시 사무직 종사자는 거의 아무도 해고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화적으로 여성은 조롱의 대상이었고, 고용주들은 여성을 차별했으며, 정부는 여성을 차별하는 새로운 고용 정책을 홍보했고, 결국 여성 자신들은 일을 해야 한다면 타이프 치는 일만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면화했다. 1950년대에 직장 여성의 수가 줄지는 않았지만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난 여성의 비중이 늘었고 임금 격차는 커졌으며, 1930년에 절반을차지했던 고소득 직종 종사자의 수가 1960년에는 약 3분의 1로 줄어들면서 직업상의 남녀 구분이 심화되었다.62) 요컨대 1950년대의 반격은 여성들을 ‘행복한 주부‘로 탈바꿈시키지 못했고, 그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비서로 좌천시켰을 뿐이다. - P119

길을 잃었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는 사회적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안전한 은신처를 찾는 것에 어쩔 수 없이 더 끌리게 된다. 거대한 남성 문화와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남자와 평화를유지하는 것이 더 긴요한 일이 된다. (페미니즘의 모든 강령을 조용 - P124

히 지지하고 있더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신중한 자기 보호 전략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조건에서는 사회 부정의를 치유하려는 충동이 부차적으로 미뤄질 뿐만 아니라 잠재워질수도 있다. 페미니스트 작가 수전 그리핀 Susan Griffin의 말처럼 "혼자라고 느끼는 상태에서는 억압을 알고 있어도 침묵하게 된다."75) - P125

여론조사 기관들은 남성의 저항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가늠해 볼 수는 있지만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사회조사관들은 ‘남성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항상 ‘여성 문제‘에 쏟던열정의 10분의 1도 쓰지 않았다. 남성성에 대한 연구는 서가에서 보기 드물다. 문헌을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우리는 남성성이여성성에 비해 덜 복잡하고 덜 짐스러우며, 유지하는 데 손이 덜 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상태에 대해 우리가 구할 수있는 연구들은 이를 절대 장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런 연구들은 남성성이 연약한 꽃, 꾸준히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영양을 공급 - P128

해 줘야 하는 온실의 난초와 같다고 밝힌다. 사회 연구자 조지프 플렉Joseph Pleck은 "성 역할의 위반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4) 마거릿 미드 Margaret Mead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남성다움은 절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는매일 유지하고 다시 획득해야 하는데, 그것을 규정하는 데 본질적인요소 중 하나는 양성이 진행하는 모든 경기에서 여성을 이기는 것이다."95) 남성성의 꽃잎을 가장 처절하게 짓뭉갠 것은 페미니즘의 가는빗방울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는 단 몇 방울도 폭우로 인식된다.
대단히 미미한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기이할 정도로 과장된 남성들의 대응에 당혹스러워하는 많은 사회학자 중 한 명인 윌리엄 구드William Goode는 "남성들은 존중, 혜택, 기회를 아무리 조금만 잃어도 큰 위협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96) - P129

하지만 페미니즘의 희미한 그림자만 드리워져도 남성 정체성이 말살될 것만 같은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여성 평등에 정확히 어떤 의미인 것일까? 오늘날에도 남성성이 생존을 위해 ‘여성적인’ 의존성에 그렇게까지 의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남성성의 프레임을 짜는 방식에어떤 함의를 갖는 것일까? 지난 20년간 사회적 태도를 추적해 온 전국 규모의 거대한 조사인 ‘양켈로비치 모니터Yankelovich Monitor’의 설문 조사가 밝혀낸, 크게 주목받지 못한 연구 결과는 우리를 그럴싸한대답으로 훌륭하게 안내한다.120) 양켈로비치 모니터‘의 조사 요원들은 20년간 대상자들에게 남성성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20년간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의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이는지도자나 운동선수, 바람둥이, 의사 결정자가 되는 것도, 심지어는단순히 ‘남자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을 잘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남성성의 확립이 무엇보다 가정의 주 소득원으로서 성공하는 데달려 있다면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노력보다 더직접적으로 미국의 허술한 남성다움을 위협하는 힘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만일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남자가 무엇인지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면 1980년대의 경제적 상황에서 반격이 분출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남성의 실질임금이급격히 줄어들었고(백인 남성이 유일한 소득원인 가정의 경우 수입이 22퍼센트 급락했다) 전통적인 남성 부양자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전체 가정의 8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121) - P133

‘이 시대의 경제적 희생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훔쳐 달아났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절도범이 여성이라고 의심한다. 노동력 시장에 이제 막 진입한 신참내기 중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을 능가했고, 잠시나마 남성의 실업이 여성의 실업을 훨씬 앞섰던 1980년대 초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시기였다. 1980년대 초의 이 같은 상황은 반격을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촉발시켰다. 남성과 여성에게 이는 상징적인교차의 순간이었다.134) 백인 남성이 노동력에서 50퍼센트 미만이 된것도, 더 이상 새로운 제조업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대학등록자 중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것도,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도, 기혼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가지게 된 것도, 일자리를 가진 여성 중 자녀가 없는 여성보다 있는여성이 더 많은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을 남편으로 정의하지 않게 된 해가 1980년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 P136

어떤 사회가 여성이라는 대상에 공포를 한 번 투사하고 나면 여성을통제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문화적 상상 속에서 여성을 관리 가능한크기로 축소시키고 편안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규범에 이들이 순응하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이런 공포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여성성으로 귀환’하라는 요구는 문화의 기어를 후진으로 바꾸고, 모두가 지금보다 더 잘살고 더 어리고 더 패기 넘치던 전설의 시대로다시 회귀하자는 요구와 같다. ‘여성스러운‘ 여성은 영원히 정적이고아이 같다. 낡은 뮤직박스 속의 발레리나처럼 작고 소녀 같은 체격은변치 않고, 목소리는 옥구슬 같으며, 몸은 핀 하나에 고정되어 영원히 커지지 않을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돈다. - P140

소비에 집착했던 지난 10년은 여성들을 헌신적인 쇼핑 중독자라는 자아상으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페미니즘의 핵심 원칙 중 하나를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페미니스트들에게 폭언을 퍼부은 인물이긴 하지만) 크리스토퍼 래시*가『나르시시즘의 문화 The Culture of Narcissism』에서 밝혔듯 소비주의는 "남성의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때" 여성의 진보를 가장 치명적으로 침해한다. 152) - P142

페미니즘의 옷을 입고 있는 반페미니즘을 폭로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별 관심 없다고 선언하는 적을 상대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시트콤 대변인들의 비뚤어진 눈에는 낙태 반대 ‘장병‘의 완전한 광기마저 바람직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 냉소를 퍼뜨리는 치들은 하품을 참아 가며 페미니즘은 "대단히 1970년대적"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우린 ‘포스트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다. 그건 여성이 평등한 정의에 도달했고 그걸 넘어섰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관심 있는 척조차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결국 미국 여성의 권리에 가장 파괴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것은 이런 심드렁함이다. - P143

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
4장 반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성들의 삶의역설, 반격에서 핵심으로 자리하게 될 그 역설을 처음으로 주류 청중들에게 제시하고 해설한 집단이 바로 언론이었다는 점이다. 그 역설이란 바로 여성은 많은 성과를 손에 넣었지만 대단히 불만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여성들에게 안긴 것은여성들의 부분적인 성취에 대한 사회의 저항이 아니라 페미니즘의공적임에 틀림없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1970년대의 언론은 성공한여성의 화려한 그림을 흔들면서 "봐, 이 여자는 행복해. 그건 이 여자가 해방되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뒤집어진 반격의 논리에 따라 언론은 성공한 여성의 그림에 우거지상을 그려 넣고 "봐, 이 여자는 비참해. 그건 이 여자가 너무 해방되었기 때문이야"라고 선언했다. - P150

미국학 연구자 신시아 키너드가 미국의 반페미니즘 문헌에 대한서지 연구에서 밝혔듯 여성의 권리에 대한 언론의 공격은 "19세기 후반에 강력하게 성장했고 새로운 참정권 운동이 나타날 때마다 규칙적으로 정점을 찍었다." 주장은 언제나 천편일률적이었다. 동등한 교 - P151

육은 여성을 노처녀로 만들고, 동등한 고용은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며, 동등한 권리는 여성을 나쁜 엄마로 만든다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적 순환이 시작될 때마다 이 위협은 조금 수정되고 다듬어졌고 새로운 ‘전문가들’이 가담했다. 빅토리아시대의 정기간행물들은 성직자들에게 의지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에 힘을 보태고자 했다. 비교하자면 1980년대의 언론들은 심리 치료사들에게 의지했다. - P152

트렌드 저널리즘은 실제 보도가 아니라 반복의 힘을 통해 권위를 획득한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반복하면 그 어떤 것도 진실처럼 보일 수 있다. 하나의 미디어에서 선포한 트렌드는 나머지 미디어들이 재빨리 그 이야기를 퍼 나르면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메시지가 확산되는 번개 같은 속도는 트렌드의 정확도보다 - P152

는 이를 서로 반복하려는 언론인들의 성향과 더 관계가 있다. 그리고1980년대에 ‘독립’ 언론들이 극소수의 기업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반복은 특히 피하기가 어려워졌다.17) - P153

트렌드 기사가 항상 이런 식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일 때는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사실에 입각한 근거나 확실한 수치가 없고, 여성 서너 명 정도의 말만을, 그것도 보통은 익명으로 인용하여 트렌드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러그러한 감이 있다‘, ‘더욱더’ 같은 모호한 수식어를 사용하고, 예언 조의 미래 시제 (‘엄마들은 점점 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에 의존하고, 종종 다른 미디어의 트렌드 기사를 인용하여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하는 소비자 연구가, 심리학자 같은 권위에 호소한다. - P155

언론들은 싱글 여성들의 낮른 사회적 지위를 개인적인 결함으로 재규정함으로써 이를 단순히 보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싱글 여성들을 비탄으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 미디어는 싱글 여성들이 점점고립되고 있다고 기분 나쁘게 말했지만 이런 고립을 만들어 내고 강화하는 데 기여한 건 다름 아닌 트렌드 저널리즘이었다. 1970년대 미디어는 진짜 싱글 여성을 특히 집단적으로 재현하는 사진과 기사들을 실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언론들은 허구의 싱글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과 ‘합성된‘ 혹은 ‘익명의‘ 싱글 여성 이야기들을 담았는데, 거의 항상 혼자서 눈물이 얼룩진 베개를 끌어안고 있거나 다락방에서창문을 쓸쓸하게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맥콜스》는 그 원형을보여 주었다.106) "그녀는 일중독이다. 가끔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를즐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아파트에서 혼자 보내는 편이다. 밤만 되면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혼자 칩거한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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